61호[기획] 차별금지법, 동등한 시민으로 관계 맺기 위한 조건 (몽)

202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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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차별금지법이 만들 학교

 

차별금지법, 동등한 시민으로 관계 맺기 위한 조건

 

canicular67@gmail.com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지난 3월 3일 스스로 트랜스젠더라고 밝힌 최초의 직업 군인 변희수 하사가 세상을 떠났다. 고 변희수 하사는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았고,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관계없이 군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국가에 요구한 트랜스젠더 군인이었다. 그리고 모든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군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지 대답을 요구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많은 사람들이 변희수 하사의 ‘용기’를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이어 간 이유를 떠올려 본다. 익명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제도적으로 승인된 바 없는 권리를 얻기 위한 싸움이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공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것이리라 짐작해 본다.


자신의 존엄과 권리가 훼손되는 경험에 ‘차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싸움을 이어 가고 있는 사람들, 변희수 하사의 권리가 자신의 삶의 조건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있다. 변희수 하사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바로 다음 날, ‘소수자 학생 보호’를 명시한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근거해 마련된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안)의 시행을 촉구하는 기자 회견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게 전하는 전국 청소년 성소수자 106명의 요구안이 발표되었다. 1줄 1줄 읽어 내려 가던 도중 한 청소년의 이야기에 내 시선이 멈추었다.

 

“학교에서 한 번 인권 관련 가정 통신문을 배부한 적이 있는데, ‘차별, 혐오, 폭력에 함께 대응해요’ 그리고 ‘소수자의 정체성은 개그 소재가 아니에요’와 같은 문구가 있어서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어요.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학생들에게 배부하는 통신문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그래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그 변화가 좀 더 빨랐으면 좋겠어요.”

 

나는 변희수 하사의 죽음이 그에게 깊은 슬픔과 분노를 안겨 주었을지라도, 서로의 용기에 기대어 함께 변화를 만들어 내자고 말 건네는 학교 동료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니, 그 이전에 학교라는 공간이 ‘용기’를 내지 않아도 그 자신의 슬픔과 분노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나눌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란다. 변화를 앞당기고 싶다는 성소수자 청소년의 바람이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지 않으면서도, 그의 삶이 평등이라는 거대한 이상에 편입된 평범한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그 평범한 일상이 사회의 관용이나 타인의 배려가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고 싸우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힘으로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것을 사회적 경험으로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학생인권기본계획 추진을 가능하게 한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과정이 그러했듯이, 차별금지법 제정이 열어줄 수 있는 ‘평등한 학교’ 역시 청소년 당사자의 힘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전망이기 때문이다.

 


차별을 알아차리는 사회적 경험

 

차별금지법이 실제로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한 학교라는 전망을 그리게 해 줄 수 있을까? 우선 차별이든 혐오든 무언가가 ‘없는’ 무결한 상황은 도달 불가능한 이상이지만, 차별과 혐오가 ‘없는’ 상태를 지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학교 공간에서 얼마나 잘 들리게 할 것인지는 소수자 위치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실존의 문제다. 우리가 차별금지법이 가져올 학교의 변화를 상상해 보기 쉽지 않다면 그건 학교에서 평등을 요구하는 주체, 특히 청소년 학생의 목소리가 ‘차별’이라는 언어로 해석되고 권리로서 승인되는 경험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011년 한 고등학교 신입생이 B형 간염을 이유로 고등학교 기숙사에 입사가 거부된 사례가 있다. 학교 측은 거부의 이유로 “기숙사 생활 중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숙한 청소년들이 칫솔이나 물컵을 공동 사용하는 과정에서 B형 간염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들었다. 이 사안이 ‘병력 또는 건강 상태’라는 차별 금지 사유로 인한 교육 기관의 교육·직업 훈련 영역에서의 ‘불합리한 차별 행위’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우선 B형 간염이 공동 생활을 통해 타인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높은 종류의 질병인지에 대한 사회적 지식이 필요하다. 질병관리본부, 대한의사협회, 전문의와 대학 병원에 전문적인 판단을 청취하는 과정은 그 지식을 갖추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B형 간염은 공동 생활을 통해 감염될 위험이 매우 적고 다만 적절한 보건 위생 관리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다른 학생들의 건강권 및 교육권을 고려해야 한다면, 학교 측이 기숙사 입소 거부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다른 합리적인 대안이 없는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당사자 학생과 공동 생활을 하는 다른 학생들이 적절한 보건 위생 교육을 통해 B형 간염의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면, 기숙사 입소 거부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행한 차별 행위가 된다. 하지만 학교가 다른 대안을 찾지 않은 이유는 근본적으로 청소년을 스스로 판단하고 실천할 수 없는 미성숙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거나 훼손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와 연루된 사람들이 가장 억울하고 황당한 순간은 위와 같은 때가 아닐까? 해당 학교가 가진 관점은 ‘차별’의 원인을 피해 당사자가 가진 질병 탓으로, 공동 생활의 의미를 이해하고 생활 운영의 기준을 실천할 만큼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이나 나이의 탓으로 둔갑시킨다. 결과적으로는 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한다는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 학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책무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변명이나 핑계는 사실 ‘너 때문에’라는 피해자 탓하기인 경우가 많다. 차별금지법은 이렇게 그동안 막연하고 추상적인 인식을 통해 일상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수많은 차별적 관행들이 실제로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판단해 가는 과정이다. 차별의 핑계나 변명거리를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통해 공식적으로 부인해 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차별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사회적 경험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차별이 동등한 권리의 보장과 동등한 사회 참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사회적 인식을 쌓아 나갈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그러한 경험과 인식 속에서 우리 사회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파악하고 변화의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법〉 외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는 차별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정의와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와 효과적인 예방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차별을 해소하고 평등을 증진할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기 때문이다.


 

학교 안에서 동등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한국 사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다는 것은 이러한 세 가지 역할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통합적인 정책이 사실상 없다는 의미다. 제도의 공백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사회적 문제를 지속시키고 있는데, 첫 번째는 차별의 해소를 피해 당사자의 몫으로 전가함으로써 차별의 구제와 예방이 일관되게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무엇보다 ‘무엇이 차별인가’에 대한 사회적 규범과 합의를 만들어 가기 어렵고, 이로 인해 특정한 주체는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에서 배제되기 쉽다는 점이다. 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차별 금지 영역인 ① 고용, ② 재화·용역·시설 등의 공급 또는 이용, ③ 교육 기관 및 직업 훈련 기관에서의 교육·훈련(이하 교육 기관의 교육·훈련), ④ 행정 서비스의 제공과 이용에서 특히 그렇다. 인권과 차별 담론을 연구하는 홍성수는 차별 금지 영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이유로 이 네 영역이 인간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를 다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공공 영역’이라고 칭하는 이 네 영역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가 보장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상 교육 기관의 교육·훈련 영역에서는 특히 교육 기회와 교육 내용에서의 차별에 주목한다. 먼저 교육 기회의 차별 금지를 살펴보자. 그 누구도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기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두에게 균등하게 주어진 것처럼 보이는 교육 기회이지만, 차별적인 지위에 놓인 소수자 학생들에게는 높은 문턱이 있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186명의 이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15.2%가 학교 측의 거부를 경험했다. 그 중 20%는 비자가 없어서, 12.5%는 비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학이 거부되었다.❺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입학 결정은 학교장의 재량에 맡겨져 있어 입학을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재학 중 학생이 임신할 경우 퇴학, 전학, 자퇴 권고 등의 근거가 되는 학교 생활 규정, 학교생활 내외에서의 사고 등에 대해 장애 학생 또는 보호자가 모든 책임을 지도록 서약서를 의무화한 학칙이 남아 있는 특수 학교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모두 인종 및 출신 국가, 장애, 임신 또는 출산을 이유로 한 교육 기회의 차별이다. 하지만 특수 학급과 특수 교사가 없다며 장애 학생에게 입학을 포기하도록 강요한 학교에 장애 학생이 입학한다고 해서 교육 기회가 온전히 보장될 수 있을까? 차별적인 학교생활규정이나 학칙이 사라지고 학교장이 처벌받는다고 해서 교육 영역에서의 차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장애나 병력을 가진 학생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편의 시설의 제공이 학교장의 의무로 함께 포함되고, 미혼모 청소년이 학교 외에도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교육 방안을 마련할 책임이 국가와 교육 책임자의 의무로 요구되는 것이다.

 


평등하고 동등한 존재로 만날 권리

 

교육 내용에서의 차별 금지는 보다 논쟁적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극렬하게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 세력은 이 조항으로 인해 학교에서 ‘성소수자 인권교육’이나 ‘좌파 편향 노동인권교육’을 비판할 수 없게 될 거라고 주장한다. 차별금지법을 대체로 지지하는 교육계의 사람들도 교사가 차별 가해자나 혐오자로 비난받거나, 교육 지도의 권한이 침해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하기도 한다.


“70년대 소설 같은 게 나오면 거의 중국 사람에 대한 비하 발언? 뭐라고 해야 하나. 떼놈, 못 믿을 놈, 뭐 이런 거? (……) 이런 표현들이 소설에 나와요. 옛날에는 이런 표현들이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아서, 그것뿐만 아니라 인권에 대한 것도 옛날 소설에 보면 여자에 대한, 비하 발언도 많이 나오고 하니까.”(교사)❼

 

“만약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교육과정에서 그들 자신이 재현된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면, 그들의 교육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되거나 분리될 수 있습니다.”(트랜스젠더 청소년)❽

 

우리는 보통 차별을 이해할 때 소수자 위치에 있는 누군가의 권리가 차단되거나 특정한 사회적 이익 분배에서 배제된 상황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차별의 바탕에는 “‘자신이 정당하다고 믿는 것’에 대한 사회적 상호작용 실패의 경험”이 존재한다. 이는 차별 경험이 심리·문화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정치적 장에서 다른 사회 구성원과 동등한 위치에서 완전한 상호작용을 불가능하게 하는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드러낸다. 몇 년 전 서울의 한 여고 학생들이 신사임당 전시물에 포스트잇을 붙여 항의한 적이 있다. “여자도 사람이다”,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는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학생들이 드러내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문인’이 아니라 ‘여성 문인’이라는 남성을 기준으로 여성을 사회에서 2등 시민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담긴 표현, 신사임당의 정체성과 역량을 ‘현모양처’로 제한하며 모델로 제시하는 차별적 관행은 더 이상 현재 여성청소년들의 삶의 규범과 지향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투’에서 ‘#스쿨미투’로 이어진 여성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교육에서의 성차별이 여성을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이라는 점을 드러냈다. 교육과정에서 동남아시아 출신의 학생들은 주로 가난하고 불쌍한 존재로만 재현되거나, 뚱뚱한 사람은 게으른 사람으로 묘사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동성애자이거나 트랜스젠더인 청소년은 아예 교육과정에서 자신의 롤 모델을 찾을 수 없거나, ‘찬성 vs 반대’의 구도에서 존재 자체가 토론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쉽다.

 

“내 주변에 성소수자 친구가 있더라도 어떻게 정말 이 친구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학교 같은 데서 교육을 그래도 해야 될 것 같아요.”(청소년)

 

이러한 문제들을 ‘차별’ 문제로 제기하는 이유는 차별에 노출된 소수자 개인 및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교육과정에서 소수자가 평등한 존재, 동등한 지위를 가진 동료 시민으로 재현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의 교육학자인 심스 비숍Sims Bishop은 학교 교실에서 사용하는 텍스트가 학생들에게 ‘거울’, ‘창문’과 ‘미닫이 유리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학생들은 텍스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통해 긍정적인 자아 정체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거울), 자신과는 다른 문화, 가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볼 수 있어야 하고(창문), 미닫이 유리문을 통과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당사자 청소년뿐만 아니라 비당사자 청소년에게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인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는 이성애 중심주의 사회에 위치한 자신의 관점을 인식하고 변화시키려 노력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한 예로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학교의 교육과정, 교재 등에 인권을 주제로 포함시키고, 동화주의가 아닌 국가 및 인종 집단 사이의 상호 존중과 관용을 증진시키는 교육을 실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에도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과 〈다문화가족지원법〉 등에 이에 대한 지침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문화 가족’으로 분리된 집단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서로 다른 국적 및 인종 배경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이 교육과정과 교육 내용을 통해 동등한 존재로 만날 수 있으려면, 우선 동등한 존재로 만날 수 없게 하는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와 차별의 구조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별은 가해자에 의한 가시적이고 강압적인 행위라기보다 공공연하게 일상화되어 있으면서도 은밀한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차별하려는 특정한 의도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차별의 속성이다. 차별금지법이 차별 행위자에 대한 엄밀한 처벌과 규율이 아니라, 구조적 차별을 해결해 나가기 위한 시정과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을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별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연대

 

차별금지법, 학생인권기본계획까지 모두를 반대하는 ‘전국교육회복교사연합’ 같은 조직이 어떤 방식으로 평등의 진전을 가로막고 무력화시키고 있는지를 떠올려 본다. 이러한 제도들이 ‘사실상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법적으로 옹호’하는 제도라고 비난하는 이들에게 여태껏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답해 왔을까? 성소수자들이 혐오의 전선에서 온갖 수모를 겪을 때 ‘성소수자를 법적으로 옹호하는 제도가 맞다’고 말하기보다, ‘학교가 보호하려는 소수자 학생에 성소수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대처해 왔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학교가 다른 영역보다 특별히 더 차별 및 혐오 대응에 무능해서, 무력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학교가 속해 있는 한국 사회에, 차별과 혐오에 대항할 수 있는 근거,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규범이 제대로 자리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바로 그 사회적 규범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평등이라는 규범이 부재할 때 현실을 변화시키고 싶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교사 역시 차별의 조건에 놓이기 쉽다. 성차별이 강고한 사회에서 개개인의 역량으로 성평등한 학교를 만들기란 불가능하고, 페미니스트 교사로 살아가는 것 역시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동성애는 죄이고 성전환이 유난스러운 일로 여겨질 때, 포괄적 성교육을 지지하고 실행하고 싶은 학교나 교사들도 징계를 받거나 시비에 휘말리거나 학부모들의 반발에 부딪힐까 봐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차별금지법이 교사의 교육 활동을 제약하거나 교사에게 더 많은 책임을 부과하는 법이기보다, 오히려 교사의 권리를 위한 법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은 동등한 시민의 지위와 권리에서 누군가를 삭제하려는 시도에 맞서는 과정으로 자리매김해 온 역사가 있다. 동시에 공통의 차별 구조로부터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다시 공통의 차별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연대를 만들어 온 과정이기도 하다. 차별과 혐오라는 조건에 놓인 청소년들을 위해 움직이는 구세주나 대리하는 해결사가 아니라, 차별과 혐오의 조건에 놓인 당사자로서 교사 자신의 경험과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들이 더 많이 이야기되었으면 좋겠다. 그때 교사와 학생이 함께 차별에 맞서는 동료로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 평등도 일정한 권리의 몫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지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과 체계를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학교에 가져다줄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라면, 바로 그 가능성이 아닐까.

 



❶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게 보내는 106명 청소년 성소수자의 요구안〉,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서울시교육청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 강력 촉구 기자 회견 - 청소년 성소수자의 요구를 들어라’, 2021년 3월 4일.

❷ 이는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차별금지법안을 적용해 보자면 제33조(학교활동 및 교육서비스의 차별금지)가 적용될 수 있는 차별 사례다.

❸ “홍성수 교수 ‘ 개별적 차별금지법만으로 역부족… 큰 우산 만들어 개별법과 조화 이루어야’ ”, 〈뉴스앤조이〉, 2020년 7월 30일.

❹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제3절 ‘교육기관의 교육·직업훈련’에는 제31조(교육기회의 차별금지), 제32조(교육내용의 차별금지), 제33조(학교활동 및 교육서비스의 차별금지), 제34조(교육기관의 장의 편의제공 의무), 제35조(교육책임자 등의 의무), 제36조(자격증 및 교육훈련에서의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의견 표명한 ‘평등법 시안’은 이 중 교육 기회와 교육 내용에서의 차별 금지, 교육 기관의 장의 편의 제공 의무 세 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❺ 석원정(2010), 〈이주 아동의 교육권 실태 조사 종합 보고 및 정책 제언〉, 국가인권위원회 ‘이주 아동 교육권 현황 및 개선 방안 토론회’ 자료집, 20~24쪽.

❻ 차별금지법안 제32조(교육내용의 차별금지)는 1. 교육목표, 교육내용, 생활지도 기준이 성별 등에 대한 차별을 포함하는 행위, 2. 성별 등에 따라 교육내용 및 교과과정 편성을 달리하는 행위, 3. 성별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나 편견을 교육내용으로 편성하거나 이를 교육하는 행위, 4. 그 밖에 교육내용 등에 있어 성별 등을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하거나 현존하는 차별을 유지·심화하는 행위를 차별로 금지한다.

❼ 김지혜 외(2019), 〈한국 사회의 인종 차별 실태와 인종 차별 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 (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국가인권위원회 연구 용역 보고서, 128쪽.

❽미국 필라델피아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 Hazel Edwards의 발언(Maya Lindberg, “Nothing About Us Without Us Is for Us”, Learning for Justice Magazine, SSUE 57, FALL 2017).

❾ 박건(2010), 〈차별을 다르게 생각해 보기 - 무시나 모욕감, 차별 그리고 인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쟁점 포럼 1 : ‘모욕감’을 중심으로 한 차별의 재구성', 2010년 6월 30일.

❿ 김영한 외(2020), 《청소년의 혐오 포현 노출 실태 및 대응 방안 연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80쪽.

⑪ Rudine Sims Bishop(1990), Mirrors, Windows and Sliding Glass Doors, Perspectives : Choosing and Using Books for the Classroom,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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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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