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기획] 특수에서 보편으로
특수교육대상자 보호자의 반성문
- 보호자로서 학교의 (특수)교육 활동 참여를 돌아보며
정예현
btyeppy@googlemail.com
전국통합교육학부모협의회 서울위원
특수교육대상자 vs. 장애가 있는 학생
제목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는 특수교육대상자의 보호자이다. 발달이 조금 지연되었다고 진단받은 유치원생을 키우다가 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니 특수교육대상자를 키우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특수교육대상자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바로 떠올리지 못한다. 그리고 특수교육대상자와 장애가 있는 학생이 뭐가 다른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장애인복지법」이 정한 장애인이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이다. 대통령령으로 장애의 영역을 정하게 되어 있는데 현재 장애 영역은,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정신장애, 신장장애, 심장장애, 호흡기장애, 간장애, 안면장애, 장루·요루장애, 뇌전증장애가 있다.
그렇다면 특수교육대상자는 누구를 지칭하는 말일까? 말 그대로 ‘특수교육’이 필요하다고 ‘특수교육운영위원회’(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 관할)가 ‘선정’한 학생이다. 특수교육대상자 영역은 위의 장애 영역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다.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적장애, 지체장애, 정서·행동장애, 자폐성장애, 의사소통장애, 학습장애, 건강장애, 발달지체 등.
장애가 있는 학생과 특수교육대상자는 같은 말이 아니다. 특수교육대상자가 장애가 있는 학생의 부분 집합도 아니고, 거꾸로 장애가 있는 학생이 특수교육대상자의 부분 집합도 아니다. 이 부분에서 혼란이 조금 생기는데 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학령기에 특별히 ‘특수교육’은 필요 없다고 판단된 사람은 법적으로 ‘장애인’이지만 ‘특수교육대상자’는 아니다. 「장애인복지법」상 ‘지적장애인’이지만 특수교육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며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한 학생들도 존재한다. 또한 대부분의 학습장애 영역의 특수교육대상자들은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장애판정위원회를 무사히 통과하면 장애인이 되고 특수교육대상자 선정 절차를 무사히 통과하면 특수교육대상자가 된다. 이 글에서는 ‘학교’를 다룰 것이기 때문에 특수교육대상자가 주인공이다.
반성 1 : 개별화교육지원회의에 보다 많은 이들의
참석을 요구하지 않은 것
이 특수교육대상자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개별화교육’이다. 개별화교육이란 “특수교육대상자 개인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하여 장애 유형 및 장애 특성에 적합한 교육목표·교육방법·교육내용·특수교육 관련서비스 등이 포함된 계획을 수립하여 실시하는 교육”인데,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특수교육법)에서 개별화교육을 ‘수립’하고 ‘실시’하는 주체로 지목한 사람은 흔히 떠올리는 특수 교사가 아니다. 놀랍게도 ‘각급학교의 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특수 교사를 떠올린다고 억울해하는 ‘각급학교의 장’이 반드시 계시기를 바란다. 그 억울함을 꼭 널리 알려 주시면 좋겠다.
이 개별화교육을 위해서는 당연히도 ‘개별화교육지원팀’이 있어야 하고 ‘개별화교육계획’이란 것도 있어야 한다. 이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매 학기 초 지원팀이 모여 회의를 하고 최종 개별화교육계획을 작성하는데, 학기 중에 시행착오를 겪거나 새로운 지원이 필요하면 언제든 지원팀은 다시 모여 의견을 나누고 계획을 수정할 수도 있다. 내 주변의 특수교육대상자 보호자들은 대부분 경험해 보지 못했고, 실제 개별화교육지원팀 회의를 필요할 때마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 들어 본 적 없어서 그럴 것이다.
매 학기 초 개별화교육지원팀 회의를 할 때면 원적 학급(통합 학급) 담임 교사, 특수학급 교사, 보호자인 나 이렇게 셋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법률에 의하면 교장님이 개별화교육지원팀의 책임자라 꼭 참석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 6년 동안 한 번도 교장님의 참석을 요구해 본 적이 없다. (학부모가 요구하지 않아도 ‘법대로’ 회의에 교장님이나 교감님이 오시는 그런 학교는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어차피 그분은 특수교육에 대해서 잘 모르시기도 하고 다행히도 학교 책임자인 교장님이 회의 자리에 안 계셨어도 학생 지원에 필요한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괜히 ‘교장님이 참석하지 않으면 저도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유의 강공법은 써 보지 않았다. 그래 봐야 특수학급 선생님만 곤란해지실 것 같았다. 고백하건대 업무가 넘치는 그의 짐을 덜어 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의 곤란함이 앞으로 내 자녀의 학교생활에 아주 약간이라도 먹구름으로 발현되면 어쩌나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빙빙 돌려 썼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치가 보였다’.
그렇지만 글을 쓰면서 문득 내가 크게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관리자 선생님들이 특수교육을 알아 나갈 기회를, 학교에서 물의를 일으킬 때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도 일상생활을 함께하는 학생임을 상기시킬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박탈했다는 생각. 특수교육대상자 학부모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아이가 자주 방문하는 보건실 보건 교사도, 초등 고학년 때 처음으로 우리 학교에 ‘등장’한 상담 교사도 아이와 접촉면이 넓기에 지원팀 회의에 초대하고 싶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과학 과목 선생님도 초대하고 아이가 어려워하는 영어 과목 선생님도 초대하고 싶었지만, 이 생각을 표현하는 순간의 불편한 공기를 견디고 싶지 않아, 회피를 거듭하다 주저했고 결국은 아이의 담임 교사 둘(원적 학급과 특수학급)에 나, 이렇게 조촐한 원탁회의를 했다.
보호자로서 학교 활동에 다양하게 참여하면서 여러 선생님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필요하면 따로 연락하면 된다고 나의 머뭇거림을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그렇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내 아이가 특수교육대상자임을 모르는 상태로 과학 수업을 하던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과제를 제출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아이를 재촉했다가 내 아이로부터 ‘싸가지없는 선생’이라는 욕을 들어야 했다. 내가 개별화교육지원팀 회의에 과학 선생님을 초대했더라면, 아니 참석을 요구했더라면 ‘도대체 누구 엄마가 이렇게 번거롭게 하냐’면서 내 아이에 대해 미리 알아보았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결국 회피의 대가는 ‘아이의 무례함과 언어 폭력을 사과’하는 나와 ‘특수교육대상자인 줄 모르고 아이를 재촉했다며 사과’하는 선생님의 참으로 서글픈 대화였다.
법으로 보장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해서 권리 자체가 앞으로 축소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문득 생겼다.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보호자들이 원하지 않아요’라며 개별화교육지원팀이 축소되면 어쩌나.
반성 2 : 특수교육대상자들도 참여할 수 있는,
학부모 공개 수업을 요구하지 않은 것
특수교육대상자가 학부모 공개 수업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배제’라는 단어를 고른 이유는 당사자인 학생이나 학부모가 참여를 원했음에도 ‘그렇게 하기로 학교에서 결정했다’는 통보를 받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❶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특수교육대상자 가족들은 아예 초등학교 1학년부터 ‘통합 학급 공개 수업은 참여하지 않겠다’라는 의사를 밝힌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학교가 공개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특수교육대상자를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부분의 특수교육대상자가 ‘개별 학습’을 하러 특수학급에 가는 국어 과목을 굳이 공개 수업 과목으로 결정하지는 않을 테니까.
보호자들이 공개 수업 참여를 스스로 포기하는, 혹은 자녀에게 포기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수교육대상자가 ‘함께하기 어려운’ 혹은 ‘함께할 수 있게 설계되지 않은’ 통합 학급 수업에, 내 자녀가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모습을 같은 반 보호자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는 아닐까? 나 역시 통합학급 수업을 ‘방해하는’ 존재임을 들킬까 봐 숨어 버리기도 하고, 행여나 공개 수업이 끝나고 ‘이런 아이가 같은 학급에 있으면 다른 아이들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것 아니냐’는 민원 전화가 학교로 빗발치지나 않을까 겁이 나서 숨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리기도 한다.
우리 집의 경우, 초등 저학년 때는 공개 수업이 많아 정말 바빴다. 통합 학급 공개 수업에도 가야 하고 특수학급 공개 수업에도 가야 하고 거기에 일반 방과후수업과 특수학급 방과후수업에서 하는 공개 수업까지. 그러다 초등 5학년 때부터는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자기 모습을 다른 보호자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며 공개 수업을 거부한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여 공개 수업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것도 ‘특수교육대상자의 수업 참여를 염두에 두지 않는 통합 학급 현장을 고발한다’는 사명감으로 무조건 공개 수업에 참여했어야 했다. 덧붙여, 학창 시절 장애 학생과 함께 학교생활을 해 보지 못했던 대부분의 다른 보호자들을 위해서라도 공개 수업에 참여했어야 한다. 그들이 배우지 못했던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삶’을 보호자가 된 지금에라도 직접 눈으로 보고, 그들의 자녀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했는데, 반성한다.
반성 3 : 집 앞 학교에 특수학급을 설치해 달라고
좀 더 열심히 요청하지 않은 것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고 난 후, 집 바로 앞 초등학교에 당연히 들어갈 줄 알았는데, 이 학교는 ‘특수학급 미설치교’라고 했다. 이상해서 특수교육법을 찾아봤는데, 특수교육대상자가 있으면 학교장은 무조건 특수학급을 설치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교육청 특수교육지원센터에 문의했더니, ‘법은 법이고 현실은 현실’이라 했다. 그러면서 초등 배치 담당자는 나에게 “여기저기 민원을 넣고 학교를 찾아가서 특수학급 설치를 요구해 주세요”라고 했다. “저보고 하라고요? 제가요?”
인구 밀도가 낮은 지방도 아닌 서울에서 만원 버스를 타고 초등학교에 다닐 수는 없으니 부지런을 조금 떨었다. 일단, ‘특수학급 미설치교’ 교무실에 전화를 해서 교장님을 만날 약속을 잡았고, ‘국민신문고’라는 곳에 민원 글을 올려도 보았다. 민원 글은 담당 장학사에게 전달이 되었고, 그는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마지막 방법이 ‘특수학급 미설치교’ 교장님을 ‘보호자’가 설득하는 것이라 했다. 대한민국에서 ‘학부모’ 되기가 왜 이렇게 어렵냐고 구시렁대면서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겠노라 다짐을 하고 교장님을 만났다.
교장님의 입장은 간결했다. “과밀 학교라 공간이 없다. 딱 하나 남는 공간이 지하에 있는 어둡고 습한 공간인데, 양심적으로 특수교육대상자들이 이런 열악한 교실에서 공부를 하게 할 수는 없다.” 내가 본 그 어느 학교보다 교장실이 넓었는데(일반 교실의 2/3는 되어 보였다) 오죽하면 교장실이 이렇게 작겠냐고 신세 한탄까지 하셨다. 그리고 마무리로 이런 말씀도 하셨다. “그런 애들 한 명 반에 있어 보세요. 담임이 죽어납니다.”
‘그런 애들’의 엄마와 아빠인 우리들 면전에서 이런 말을 웃으면서 건네는 그 교장님. 그 죽어나는 담임 선생님을 한 번 만나라도 보고 싶다고, 특수학급이 없는 학교에 다니는 특수교육대상자들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 들어 보고 싶다고 마지막으로 요청했지만 학교로부터 그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설령, 그 어둡고 습한 교실 한 칸에 특수학급 간판을 달 수 있게 되더라도 우리는 이런 관리자가 있는 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말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너무 쉽게 포기하고 버스 통학을 결심했다. 몇 년이 지나고 같은 동네에 살면서 우리처럼 자동차나 버스로 통학을 하는 특수교육대상자 가족들을 알게 되었는데,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때 좀 더 열심히 싸웠더라면, 법대로 하라고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도 하고 언론사에 제보도 하고 사람들을 모아서 기자 회견도 해서 특수학급 설치에 ‘성공’했더라면 우리 동네의 특수교육대상자 가족들이 아침마다 아이를 일찍 깨워서 씻기고 먹이고 입혀서 차에 태워 학교로 보내는 생고생을 안 할 텐데. 학교에 도착해서 마땅한 주차 공간이 없어 눈치 보며 불법으로 차를 세우고 아이를 학교 안으로 들여보내는 짓은 안 해도 될 텐데. 교문 앞 좁지만, 합법적인 주정차 구역은 다른 아이들이 걷거나 뛰다가 혹시라도 사고가 날 수 있으니 등하교 시간에는 주정차를 금지한다며 ‘걸어서 등하교하라’는, 애초에 자동차로 통학할 수밖에 없는, 특수학급 미설치교의 학구에 사는 우리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 작성한, 모멸감이 드는 가정통신문을 받지 않아도 될 텐데.
왜 나는 더 극렬하게 싸우지 않고 쉽게 포기했을까. 이제 반성을 넘어 권리를 쉽게 포기했다는 자괴감까지 든다.
반성 4 : 특수교육대상자의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교육 당국이 적절하게 특수학급을 증설할 것이라 믿은 것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중학교 입학은 다를 줄 알았다. 특수교육대상자는 특수학급이 설치되지 않은 대부분의 사립 중학교를 제외하고 배치를 받게 된다(당사자가 원한다면 특수학급이 없는 학교의 일반 학급으로 배치받을 수도 있기는 하다). 사립 중학교가 몰려 있는 지역에 사는 특수교육대상자들이 진학 가능한 중학교는 법정 정원을 초과해서 학생을 받기 일쑤다.
하필, 우리 동네가 바로 자치구에 딱 2개 있는 사립 중학교가 몰려 있는 곳이다. 덕분에 근거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는 무려 6개 초등학교의 특수교육대상자 졸업생들이 지원한다. 이 공립 중학교에 배치받지 못하면 아침 도로 정체로 인해 가는 데만 40분이 걸리는 학교에 다녀야 한다. 나는 막연히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립 중학교에 배치가 될 거라 생각하고 편안하게 기다렸다.
중학교 배치를 위한 특수교육운영위원회를 앞둔 어느 날, 담당 공무원의 전화를 받았다. 설마 했는데, 이 공립 중학교 지원자가 너무 많으니, 그 ‘40분 걸리는 학교’에 갈 생각은 없냐 물었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예의 없는 악성 민원인으로 둔갑하고 말았다.
“아니, 선생님. 정말 너무하시네요. 초등학교도 힘들게 빈자리 찾아 멀리 있는 학교 입학해서, 통학비도 못 받고(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서울시교육청은 ‘초등학교는 근거리 배정’이 원칙이라는 이유로 초등학교 특수교육대상자들에게는 통학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6년을 차량으로 등하교했는데, 중학교까지 이러면 어떻게 합니까? 아침에 저희 집에서 그 학교 가려면 40분 걸려요. 선생님이 한번 다녀 보시고 이런 말씀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생각해도 너무했다. 저경력의 특수 교사임이 거의 분명한 그 담당 공무원에게 나는 왜 이런 예의 없는 말을 하면서 울었을까? 그 담당자는 급기야 “그렇게 다니기 힘들면 혹시 대안학교는 생각해 보셨나요?”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나에게 남겼다가 후에 우리 아이 초등학교 특수 교사의 항의 전화까지 받았다.
지나고 나니 너무 미안했다. 특수학급 과밀 문제가 담당자 잘못도 아닌데. 공교육이 어려우니 대안학교 가라고 권할 수도 있지.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것 같다. 다행히 과밀 학교보다는 원거리 통학을 선택한 학생이 무려 3명이나 있어서 아이는 특수학급 신입생이
8명밖에 안 되는 공립 중학교에 무사히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과밀 학급에 입학한 덕분에 더 이상 ‘개별 수업’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특수학급과 통합 학급을 오가며 수업을 듣는 1학년 학생만
6명. 이들에게 ‘개별’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1명의 특수 교사가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32시간을 일하더라도, 학생 1명당 주당 5시간 이상, 다시 말해 하루에 1시간 이상은 수업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룹 수업이 가능한 아이들을 모아서 수업을 한다고 해도 특수 교사 1명으로는 역부족. 이런 상황에서 특수교육대상자의 선량한 권리 옹호자인 양, ‘저희 아이는 무슨 무슨 수업은 통합 학급 수업이 어려우니 특수학급에서 개별 수업을 해 주시고, 통합 학급에 들어가는 수업은 미리미리 교과 담당 선생님과 상의해서 수업 지원을 꼭 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국내법을 공부하고 국제적 수준의 협약을 공부하며 자녀의 교육받을 권리를 반드시 보장받게 하겠다고 다짐만 할 뿐, 또다시 현실과 타협해 버렸다. 정다운 학교❷라던가 서울의 더공감교실❸이라던가 하는 실험들은 역시나 ‘내 것이 될 수 없는’ 남의 이야기이다.
예산이 부족하여 이런 실험을 확대할 수 없다는 서울시교육청 높은 분의 말씀에 “아유, 그렇죠~ 예산이 늘 문제네요”라며 고개를 끄덕였던 내 과거가 또 부끄럽다. 우리 학교는 과밀 학급이니 교육청에 추가 특수 교사를 배치해 달라고 하면 안 되는지 조심스레 물었지만, 그런 건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민원을 넣어서 해결하는 거라는 교감님 말씀을 듣기도 했다. 사립 중학교에 특수학급을 설치하게끔 강제해야 공립 중학교 과밀이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의견을 냈다가 ‘그러게 왜 미리미리 학부모들이 민원 안 넣었냐’는 핀잔도 들었다. 특수학급 설치 요구가 학부모들의 임무임을 왜 나는 잊었을까. 다시 반성했다.
앞으로 바뀔까?
두서없는 반성을 한참을 하고 나니 문득 의문이 든다. 아이고 어른이고 반성문을 쓴다고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는 위에서 반성한 여러 가지에 대해 ‘앞으로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다만 여전히 조심스럽고 소심하겠지만, 한 걸음은 더 나아가고 싶다. 그것은 두려움 없는 협력이다. 아이의 학교생활이 조금 더 참여로 채워질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혼자 고민하지는 않겠다. ‘왜 이런 것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대신 작은 것 하나라도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 교사와 아이와 보호자가 머리를 맞대고 싶다.
친구들만큼 잘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과제를 찾아 애쓰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이를 보며, 한 번에 이 복잡한 현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작은 성공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가고 싶다.
가정에서는 아이의 어떤 점을 바꾸어 나가면 좀 더 학교생활 참여가 원활해질지 고민하고, 학교는 어떤 환경을 바꾸면 좀 더 특수교육대상자 학생들이 친구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배움을 일으킬 수 있을지 고민하면 좋겠다. 그 고민은 각자 따로 하지 않고 항상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했으면 좋겠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실패는 자극이 되고 성공은 거름이 되어 마침내 학교를 떠나는 날에는, 사회가 규정해 왔던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아상을 내 아이가 흐릿하게라도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 나는 특수교육대상자 보호자로 12년 학교를 함께 다니는 동안, 조금은 더 나은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역시 학교는 학생뿐만 아니라 그 보호자에게도 소중한 교육 활동이 일어나는 곳임을 증언하러 다닐 수도 있겠다.
❶
2023년 가을, 배제 당사자의 부모님이 이 문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기도 했다.
❷
정다운학교는 통합교육중점학교 모델로 2017년 〈제5차 특수교육발전 5개년계획〉에서 시작되었다. 특수 교사와 일반 교사가 협력하여 통합교육 모델을 개발하고 운영하며 협력 교수 방안을 모색한다. 2018년 40개 학교에서 시작해 2027년에는 200개 이상의 학교에서 운영하는 것이 교육부 목표라고 한다.
❸
더공감교실은 정다운학교의 서울 모델이다. 2024년 현재 6개 연구학교, 10개 운영학교가 있다.
[연속 기획] 특수에서 보편으로
특수교육대상자 보호자의 반성문
- 보호자로서 학교의 (특수)교육 활동 참여를 돌아보며
정예현
btyeppy@googlemail.com
전국통합교육학부모협의회 서울위원
특수교육대상자 vs. 장애가 있는 학생
제목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는 특수교육대상자의 보호자이다. 발달이 조금 지연되었다고 진단받은 유치원생을 키우다가 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니 특수교육대상자를 키우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특수교육대상자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바로 떠올리지 못한다. 그리고 특수교육대상자와 장애가 있는 학생이 뭐가 다른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장애인복지법」이 정한 장애인이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이다. 대통령령으로 장애의 영역을 정하게 되어 있는데 현재 장애 영역은,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정신장애, 신장장애, 심장장애, 호흡기장애, 간장애, 안면장애, 장루·요루장애, 뇌전증장애가 있다.
그렇다면 특수교육대상자는 누구를 지칭하는 말일까? 말 그대로 ‘특수교육’이 필요하다고 ‘특수교육운영위원회’(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 관할)가 ‘선정’한 학생이다. 특수교육대상자 영역은 위의 장애 영역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다.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적장애, 지체장애, 정서·행동장애, 자폐성장애, 의사소통장애, 학습장애, 건강장애, 발달지체 등.
장애가 있는 학생과 특수교육대상자는 같은 말이 아니다. 특수교육대상자가 장애가 있는 학생의 부분 집합도 아니고, 거꾸로 장애가 있는 학생이 특수교육대상자의 부분 집합도 아니다. 이 부분에서 혼란이 조금 생기는데 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학령기에 특별히 ‘특수교육’은 필요 없다고 판단된 사람은 법적으로 ‘장애인’이지만 ‘특수교육대상자’는 아니다. 「장애인복지법」상 ‘지적장애인’이지만 특수교육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며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한 학생들도 존재한다. 또한 대부분의 학습장애 영역의 특수교육대상자들은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장애판정위원회를 무사히 통과하면 장애인이 되고 특수교육대상자 선정 절차를 무사히 통과하면 특수교육대상자가 된다. 이 글에서는 ‘학교’를 다룰 것이기 때문에 특수교육대상자가 주인공이다.
반성 1 : 개별화교육지원회의에 보다 많은 이들의
참석을 요구하지 않은 것
이 특수교육대상자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개별화교육’이다. 개별화교육이란 “특수교육대상자 개인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하여 장애 유형 및 장애 특성에 적합한 교육목표·교육방법·교육내용·특수교육 관련서비스 등이 포함된 계획을 수립하여 실시하는 교육”인데,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특수교육법)에서 개별화교육을 ‘수립’하고 ‘실시’하는 주체로 지목한 사람은 흔히 떠올리는 특수 교사가 아니다. 놀랍게도 ‘각급학교의 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특수 교사를 떠올린다고 억울해하는 ‘각급학교의 장’이 반드시 계시기를 바란다. 그 억울함을 꼭 널리 알려 주시면 좋겠다.
이 개별화교육을 위해서는 당연히도 ‘개별화교육지원팀’이 있어야 하고 ‘개별화교육계획’이란 것도 있어야 한다. 이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매 학기 초 지원팀이 모여 회의를 하고 최종 개별화교육계획을 작성하는데, 학기 중에 시행착오를 겪거나 새로운 지원이 필요하면 언제든 지원팀은 다시 모여 의견을 나누고 계획을 수정할 수도 있다. 내 주변의 특수교육대상자 보호자들은 대부분 경험해 보지 못했고, 실제 개별화교육지원팀 회의를 필요할 때마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 들어 본 적 없어서 그럴 것이다.
매 학기 초 개별화교육지원팀 회의를 할 때면 원적 학급(통합 학급) 담임 교사, 특수학급 교사, 보호자인 나 이렇게 셋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법률에 의하면 교장님이 개별화교육지원팀의 책임자라 꼭 참석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 6년 동안 한 번도 교장님의 참석을 요구해 본 적이 없다. (학부모가 요구하지 않아도 ‘법대로’ 회의에 교장님이나 교감님이 오시는 그런 학교는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어차피 그분은 특수교육에 대해서 잘 모르시기도 하고 다행히도 학교 책임자인 교장님이 회의 자리에 안 계셨어도 학생 지원에 필요한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괜히 ‘교장님이 참석하지 않으면 저도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유의 강공법은 써 보지 않았다. 그래 봐야 특수학급 선생님만 곤란해지실 것 같았다. 고백하건대 업무가 넘치는 그의 짐을 덜어 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의 곤란함이 앞으로 내 자녀의 학교생활에 아주 약간이라도 먹구름으로 발현되면 어쩌나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빙빙 돌려 썼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치가 보였다’.
그렇지만 글을 쓰면서 문득 내가 크게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관리자 선생님들이 특수교육을 알아 나갈 기회를, 학교에서 물의를 일으킬 때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도 일상생활을 함께하는 학생임을 상기시킬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박탈했다는 생각. 특수교육대상자 학부모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아이가 자주 방문하는 보건실 보건 교사도, 초등 고학년 때 처음으로 우리 학교에 ‘등장’한 상담 교사도 아이와 접촉면이 넓기에 지원팀 회의에 초대하고 싶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과학 과목 선생님도 초대하고 아이가 어려워하는 영어 과목 선생님도 초대하고 싶었지만, 이 생각을 표현하는 순간의 불편한 공기를 견디고 싶지 않아, 회피를 거듭하다 주저했고 결국은 아이의 담임 교사 둘(원적 학급과 특수학급)에 나, 이렇게 조촐한 원탁회의를 했다.
보호자로서 학교 활동에 다양하게 참여하면서 여러 선생님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필요하면 따로 연락하면 된다고 나의 머뭇거림을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그렇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내 아이가 특수교육대상자임을 모르는 상태로 과학 수업을 하던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과제를 제출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아이를 재촉했다가 내 아이로부터 ‘싸가지없는 선생’이라는 욕을 들어야 했다. 내가 개별화교육지원팀 회의에 과학 선생님을 초대했더라면, 아니 참석을 요구했더라면 ‘도대체 누구 엄마가 이렇게 번거롭게 하냐’면서 내 아이에 대해 미리 알아보았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결국 회피의 대가는 ‘아이의 무례함과 언어 폭력을 사과’하는 나와 ‘특수교육대상자인 줄 모르고 아이를 재촉했다며 사과’하는 선생님의 참으로 서글픈 대화였다.
법으로 보장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해서 권리 자체가 앞으로 축소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문득 생겼다.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보호자들이 원하지 않아요’라며 개별화교육지원팀이 축소되면 어쩌나.
반성 2 : 특수교육대상자들도 참여할 수 있는,
학부모 공개 수업을 요구하지 않은 것
특수교육대상자가 학부모 공개 수업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배제’라는 단어를 고른 이유는 당사자인 학생이나 학부모가 참여를 원했음에도 ‘그렇게 하기로 학교에서 결정했다’는 통보를 받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❶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특수교육대상자 가족들은 아예 초등학교 1학년부터 ‘통합 학급 공개 수업은 참여하지 않겠다’라는 의사를 밝힌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학교가 공개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특수교육대상자를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부분의 특수교육대상자가 ‘개별 학습’을 하러 특수학급에 가는 국어 과목을 굳이 공개 수업 과목으로 결정하지는 않을 테니까.
보호자들이 공개 수업 참여를 스스로 포기하는, 혹은 자녀에게 포기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수교육대상자가 ‘함께하기 어려운’ 혹은 ‘함께할 수 있게 설계되지 않은’ 통합 학급 수업에, 내 자녀가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모습을 같은 반 보호자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는 아닐까? 나 역시 통합학급 수업을 ‘방해하는’ 존재임을 들킬까 봐 숨어 버리기도 하고, 행여나 공개 수업이 끝나고 ‘이런 아이가 같은 학급에 있으면 다른 아이들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것 아니냐’는 민원 전화가 학교로 빗발치지나 않을까 겁이 나서 숨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리기도 한다.
우리 집의 경우, 초등 저학년 때는 공개 수업이 많아 정말 바빴다. 통합 학급 공개 수업에도 가야 하고 특수학급 공개 수업에도 가야 하고 거기에 일반 방과후수업과 특수학급 방과후수업에서 하는 공개 수업까지. 그러다 초등 5학년 때부터는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자기 모습을 다른 보호자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며 공개 수업을 거부한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여 공개 수업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것도 ‘특수교육대상자의 수업 참여를 염두에 두지 않는 통합 학급 현장을 고발한다’는 사명감으로 무조건 공개 수업에 참여했어야 했다. 덧붙여, 학창 시절 장애 학생과 함께 학교생활을 해 보지 못했던 대부분의 다른 보호자들을 위해서라도 공개 수업에 참여했어야 한다. 그들이 배우지 못했던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삶’을 보호자가 된 지금에라도 직접 눈으로 보고, 그들의 자녀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했는데, 반성한다.
반성 3 : 집 앞 학교에 특수학급을 설치해 달라고
좀 더 열심히 요청하지 않은 것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고 난 후, 집 바로 앞 초등학교에 당연히 들어갈 줄 알았는데, 이 학교는 ‘특수학급 미설치교’라고 했다. 이상해서 특수교육법을 찾아봤는데, 특수교육대상자가 있으면 학교장은 무조건 특수학급을 설치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교육청 특수교육지원센터에 문의했더니, ‘법은 법이고 현실은 현실’이라 했다. 그러면서 초등 배치 담당자는 나에게 “여기저기 민원을 넣고 학교를 찾아가서 특수학급 설치를 요구해 주세요”라고 했다. “저보고 하라고요? 제가요?”
인구 밀도가 낮은 지방도 아닌 서울에서 만원 버스를 타고 초등학교에 다닐 수는 없으니 부지런을 조금 떨었다. 일단, ‘특수학급 미설치교’ 교무실에 전화를 해서 교장님을 만날 약속을 잡았고, ‘국민신문고’라는 곳에 민원 글을 올려도 보았다. 민원 글은 담당 장학사에게 전달이 되었고, 그는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마지막 방법이 ‘특수학급 미설치교’ 교장님을 ‘보호자’가 설득하는 것이라 했다. 대한민국에서 ‘학부모’ 되기가 왜 이렇게 어렵냐고 구시렁대면서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겠노라 다짐을 하고 교장님을 만났다.
교장님의 입장은 간결했다. “과밀 학교라 공간이 없다. 딱 하나 남는 공간이 지하에 있는 어둡고 습한 공간인데, 양심적으로 특수교육대상자들이 이런 열악한 교실에서 공부를 하게 할 수는 없다.” 내가 본 그 어느 학교보다 교장실이 넓었는데(일반 교실의 2/3는 되어 보였다) 오죽하면 교장실이 이렇게 작겠냐고 신세 한탄까지 하셨다. 그리고 마무리로 이런 말씀도 하셨다. “그런 애들 한 명 반에 있어 보세요. 담임이 죽어납니다.”
‘그런 애들’의 엄마와 아빠인 우리들 면전에서 이런 말을 웃으면서 건네는 그 교장님. 그 죽어나는 담임 선생님을 한 번 만나라도 보고 싶다고, 특수학급이 없는 학교에 다니는 특수교육대상자들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 들어 보고 싶다고 마지막으로 요청했지만 학교로부터 그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설령, 그 어둡고 습한 교실 한 칸에 특수학급 간판을 달 수 있게 되더라도 우리는 이런 관리자가 있는 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말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너무 쉽게 포기하고 버스 통학을 결심했다. 몇 년이 지나고 같은 동네에 살면서 우리처럼 자동차나 버스로 통학을 하는 특수교육대상자 가족들을 알게 되었는데,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때 좀 더 열심히 싸웠더라면, 법대로 하라고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도 하고 언론사에 제보도 하고 사람들을 모아서 기자 회견도 해서 특수학급 설치에 ‘성공’했더라면 우리 동네의 특수교육대상자 가족들이 아침마다 아이를 일찍 깨워서 씻기고 먹이고 입혀서 차에 태워 학교로 보내는 생고생을 안 할 텐데. 학교에 도착해서 마땅한 주차 공간이 없어 눈치 보며 불법으로 차를 세우고 아이를 학교 안으로 들여보내는 짓은 안 해도 될 텐데. 교문 앞 좁지만, 합법적인 주정차 구역은 다른 아이들이 걷거나 뛰다가 혹시라도 사고가 날 수 있으니 등하교 시간에는 주정차를 금지한다며 ‘걸어서 등하교하라’는, 애초에 자동차로 통학할 수밖에 없는, 특수학급 미설치교의 학구에 사는 우리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 작성한, 모멸감이 드는 가정통신문을 받지 않아도 될 텐데.
왜 나는 더 극렬하게 싸우지 않고 쉽게 포기했을까. 이제 반성을 넘어 권리를 쉽게 포기했다는 자괴감까지 든다.
반성 4 : 특수교육대상자의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교육 당국이 적절하게 특수학급을 증설할 것이라 믿은 것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중학교 입학은 다를 줄 알았다. 특수교육대상자는 특수학급이 설치되지 않은 대부분의 사립 중학교를 제외하고 배치를 받게 된다(당사자가 원한다면 특수학급이 없는 학교의 일반 학급으로 배치받을 수도 있기는 하다). 사립 중학교가 몰려 있는 지역에 사는 특수교육대상자들이 진학 가능한 중학교는 법정 정원을 초과해서 학생을 받기 일쑤다.
하필, 우리 동네가 바로 자치구에 딱 2개 있는 사립 중학교가 몰려 있는 곳이다. 덕분에 근거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는 무려 6개 초등학교의 특수교육대상자 졸업생들이 지원한다. 이 공립 중학교에 배치받지 못하면 아침 도로 정체로 인해 가는 데만 40분이 걸리는 학교에 다녀야 한다. 나는 막연히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립 중학교에 배치가 될 거라 생각하고 편안하게 기다렸다.
중학교 배치를 위한 특수교육운영위원회를 앞둔 어느 날, 담당 공무원의 전화를 받았다. 설마 했는데, 이 공립 중학교 지원자가 너무 많으니, 그 ‘40분 걸리는 학교’에 갈 생각은 없냐 물었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예의 없는 악성 민원인으로 둔갑하고 말았다.
“아니, 선생님. 정말 너무하시네요. 초등학교도 힘들게 빈자리 찾아 멀리 있는 학교 입학해서, 통학비도 못 받고(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서울시교육청은 ‘초등학교는 근거리 배정’이 원칙이라는 이유로 초등학교 특수교육대상자들에게는 통학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6년을 차량으로 등하교했는데, 중학교까지 이러면 어떻게 합니까? 아침에 저희 집에서 그 학교 가려면 40분 걸려요. 선생님이 한번 다녀 보시고 이런 말씀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생각해도 너무했다. 저경력의 특수 교사임이 거의 분명한 그 담당 공무원에게 나는 왜 이런 예의 없는 말을 하면서 울었을까? 그 담당자는 급기야 “그렇게 다니기 힘들면 혹시 대안학교는 생각해 보셨나요?”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나에게 남겼다가 후에 우리 아이 초등학교 특수 교사의 항의 전화까지 받았다.
지나고 나니 너무 미안했다. 특수학급 과밀 문제가 담당자 잘못도 아닌데. 공교육이 어려우니 대안학교 가라고 권할 수도 있지.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것 같다. 다행히 과밀 학교보다는 원거리 통학을 선택한 학생이 무려 3명이나 있어서 아이는 특수학급 신입생이
8명밖에 안 되는 공립 중학교에 무사히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과밀 학급에 입학한 덕분에 더 이상 ‘개별 수업’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특수학급과 통합 학급을 오가며 수업을 듣는 1학년 학생만
6명. 이들에게 ‘개별’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1명의 특수 교사가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32시간을 일하더라도, 학생 1명당 주당 5시간 이상, 다시 말해 하루에 1시간 이상은 수업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룹 수업이 가능한 아이들을 모아서 수업을 한다고 해도 특수 교사 1명으로는 역부족. 이런 상황에서 특수교육대상자의 선량한 권리 옹호자인 양, ‘저희 아이는 무슨 무슨 수업은 통합 학급 수업이 어려우니 특수학급에서 개별 수업을 해 주시고, 통합 학급에 들어가는 수업은 미리미리 교과 담당 선생님과 상의해서 수업 지원을 꼭 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국내법을 공부하고 국제적 수준의 협약을 공부하며 자녀의 교육받을 권리를 반드시 보장받게 하겠다고 다짐만 할 뿐, 또다시 현실과 타협해 버렸다. 정다운 학교❷라던가 서울의 더공감교실❸이라던가 하는 실험들은 역시나 ‘내 것이 될 수 없는’ 남의 이야기이다.
예산이 부족하여 이런 실험을 확대할 수 없다는 서울시교육청 높은 분의 말씀에 “아유, 그렇죠~ 예산이 늘 문제네요”라며 고개를 끄덕였던 내 과거가 또 부끄럽다. 우리 학교는 과밀 학급이니 교육청에 추가 특수 교사를 배치해 달라고 하면 안 되는지 조심스레 물었지만, 그런 건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민원을 넣어서 해결하는 거라는 교감님 말씀을 듣기도 했다. 사립 중학교에 특수학급을 설치하게끔 강제해야 공립 중학교 과밀이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의견을 냈다가 ‘그러게 왜 미리미리 학부모들이 민원 안 넣었냐’는 핀잔도 들었다. 특수학급 설치 요구가 학부모들의 임무임을 왜 나는 잊었을까. 다시 반성했다.
앞으로 바뀔까?
두서없는 반성을 한참을 하고 나니 문득 의문이 든다. 아이고 어른이고 반성문을 쓴다고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는 위에서 반성한 여러 가지에 대해 ‘앞으로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다만 여전히 조심스럽고 소심하겠지만, 한 걸음은 더 나아가고 싶다. 그것은 두려움 없는 협력이다. 아이의 학교생활이 조금 더 참여로 채워질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혼자 고민하지는 않겠다. ‘왜 이런 것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대신 작은 것 하나라도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 교사와 아이와 보호자가 머리를 맞대고 싶다.
친구들만큼 잘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과제를 찾아 애쓰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이를 보며, 한 번에 이 복잡한 현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작은 성공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가고 싶다.
가정에서는 아이의 어떤 점을 바꾸어 나가면 좀 더 학교생활 참여가 원활해질지 고민하고, 학교는 어떤 환경을 바꾸면 좀 더 특수교육대상자 학생들이 친구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배움을 일으킬 수 있을지 고민하면 좋겠다. 그 고민은 각자 따로 하지 않고 항상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했으면 좋겠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실패는 자극이 되고 성공은 거름이 되어 마침내 학교를 떠나는 날에는, 사회가 규정해 왔던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아상을 내 아이가 흐릿하게라도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 나는 특수교육대상자 보호자로 12년 학교를 함께 다니는 동안, 조금은 더 나은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역시 학교는 학생뿐만 아니라 그 보호자에게도 소중한 교육 활동이 일어나는 곳임을 증언하러 다닐 수도 있겠다.
❶
2023년 가을, 배제 당사자의 부모님이 이 문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기도 했다.
❷
정다운학교는 통합교육중점학교 모델로 2017년 〈제5차 특수교육발전 5개년계획〉에서 시작되었다. 특수 교사와 일반 교사가 협력하여 통합교육 모델을 개발하고 운영하며 협력 교수 방안을 모색한다. 2018년 40개 학교에서 시작해 2027년에는 200개 이상의 학교에서 운영하는 것이 교육부 목표라고 한다.
❸
더공감교실은 정다운학교의 서울 모델이다. 2024년 현재 6개 연구학교, 10개 운영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