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코로나19가 남긴 교육의 과제
이것이 대안교육의 오늘이라면
- 코로나 이후, 오디세이학교에서 마주하는 현실
재은
naebbum@gmail.com
하자센터 오디세이학교
2024년 5월 어느 토요일, 하자센터를 거쳐 간 청소년들의 스무 살을 축하하는 자리가 열렸다. 관객석에 앉자, 봄바람에 살랑이는 큰 나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봄볕이 따뜻하고 화창한 날이었다. 2021년에 고1이었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해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여서 마스크가 당연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마스크 벗은 얼굴들이 낯설면서 친근했다. 열댓 명의 성년자들이 한 명씩 무대에 서서 다짐문을 낭독했다. 한 명은 오디세이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에게 남은 가치는 내가 나로서 사는 것이라고 했고, 다른 한 명은 나만의 속도에 따라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나는 풀꽃을 엮은 화관을 성년자들의 머리에 씌웠다. 화관을 쓴 성년자들의 얼굴이 말갛게 빛났다.
이들을 만난 건 오디세이학교를 통해서다. 나는 2020년부터 오디세이학교 길잡이 교사를 하고 있다. 오디세이학교는 서울시교육청 소속의 17세 청소년 대상 1년 과정 학교이다. 1년은 짧지만 공교육 체계 안에서 ‘공부 말고 다른 길은 없을까?’ 질문하며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은 의미 있다. 1년 과정을 마치면 자신이 속한 학교로 돌아간다. 성년식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시 입시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 버거웠지만,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는 힘이 오디세이학교에서 보낸 시간 덕분에 생겼다고 말했다.
성년식이 아름다웠던 만큼, 올해 청소년을 대하며 느끼는 무력감이 더욱 크게 다가오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팬데믹을 겪은, 현재 고1인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나는 어렵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교사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 상황을 여러 번 맞닥뜨렸다. 학생들 스스로 배우는 사람으로 설 수 있게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운영하면서 매년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올해는 특히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학생들을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코로나19 이후 늘어나는 현상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은 4월인데 출석이 들쭉날쭉했다. 보통 이 시기는 새로운 것들을 해 보려는 기운이 가득한 편이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아파서 못 오는 사람, 아예 연락이 안 되는 사람, 늦잠 자서 늦는 사람, 친구 얼굴 보기가 힘들다는 사람 등 학교에 오지 않는 이유가 다양했다. 학급 구성원 절반만 함께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입학하자마자 3주 정도는 오디세이학교 탐색 기간을 갖는다. 이곳을 왜 선택했는지 자기 목소리 내는 자리를 시작으로, 배움이란 무엇인가 질문하면서 1년간 무얼 하는지 이해하고,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알아 가는 시간이다. 올해 모인 사람들은 유독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오디세이학교에 왔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중학교를 거치면서 친구들과 관계 맺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2년 동안은 친구를 사귀지 않아도 괜찮았다. 중학교 2학년에 등교를 시작하면서 마음처럼 되지 않는 걸 경험했다. 친구 사이는 쉽게 틀어질뿐더러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도 어려웠다.
희수(가명)도 그랬다. 친구들이랑 금방 친해지는데 지속하지 못한다고. 여기서만큼은 마음 맞는 친구를 사귀고 싶어 했다. 초반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잘 지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친구 사이가 삐그덕대자, 희수는 식은땀이 나고 숨을 쉴 수 없었다. 희수는 우울증이 심해 중학교 때 질병 결석이 40일이 넘었던지라, 오디세이학교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되던 학생이었다. 하루는 수업 도중에 괴롭다면서 교실을 박차고 나갔다. 교사들은 친구들과 희수가 관계를 풀 수 있도록 대화 자리를 열었고, 희수와 개별 면담도 여러 번 했다. 그 시기에 친구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희수에게 힘들겠다고 공감해 주면서, 수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 보자고 했다. 희수는 알겠다고 했지만, 점심시간이 되면 집에 가겠다고 찾아왔다.
어느 쉬는 시간, 희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죽고 싶은데 어떡하죠.” 보통은 집에 가겠다고 하면 양호실에서 쉬다가 다시 얘기하자고 했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내 한마디에 희수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 모르기에 섣불리 입을 떼기 어려웠다. “희수야, 내가 의사가 아니라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비상약은 먹었어?” 희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안 된다는 거지? 그럼, 병원을 가 보자. 부모님께 연락 드릴게.” 부모가 희수를 데리고 가는 걸 보고 나서야 나도 숨이 쉬어지는 듯했다.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걸까. 교육적 개입을 넘어서 의료적 개입이 필요함을 어떤 근거로 판단할 수 있을까.
그날 이후 희수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학교에 오지 않는 사람들을 오게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코로나19 이후 우울증을 겪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10대의 정신 질환 진료 인원은 2018년에 비해 2022년에 50.3% 늘었다.❶ 한 학급이 20명이라면 그중 2명 정도는 정신 질환으로 진료를 받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수준이며, 진료를 받지 않는 학생들을 포함하면 더 늘어날 것이다. 우리 학급에는 우울증, 공황 장애, 강박과 불안 등으로 약을 먹는 학생들이 6명 정도 된다.
교실을 벗어나는 학생들
교사로서 제일 어려운 건 수업 중간에 교실을 벗어나는 학생이었다. 성민(가명)은 오디세이학교 지원서에 ADHD가 있다고 했다. 학기 초엔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 많아서 성민의 행동이 튀지 않았다. 문제는 1학기 시간표대로 수업이 흘러가면서 드러났다. 성민이 수업 시간에 교실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처음엔 화장실을 가는 것처럼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점점 나가는 횟수와 밖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오디세이학교가 운영되는 하자센터는 청소년 기관이라, 통상의 학교 구조와 다르게 숨을 곳이 많았다. 성민은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거나 비어 있는 회의실에서 휴대전화를 했다. 성민이는 휴대전화를 놓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카톡방을 들여다봤다.
성민이가 교실을 벗어나면 그 시간에 수업이 없는 교사가 찾으러 다녔다. 양호실에 누워 있으면 어디가 아프냐고 묻고 교실에 들어가라고 했다. 성민은 그땐 들어가는 것 같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와서 교사들의 눈에 띄지 않는 다른 곳으로 갔다. 성민이를 찾으러 다니는 게 일이 되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 학생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확인하기 위해 얘기를 하자고 하면, “아씨, 나 말고 걔도 그러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요?” 쏘아붙였다. 성민이는 제법 큰 덩치여서 그가 화를 내듯 말하면 안 그러고 싶어도 움츠러들었다. 개별적으로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내버려두는 경우도 생겼다.
성민이가 교실에 있다고 수업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었다. 책상에 연필 자국이 있으면 지우개가 사라질 때까지 책상을 문질렀다. 성민은 강박 증상과 충동 조절 장애, 사회성 부족, 휴대전화 중독 등 여러 상태가 복합적으로 겹쳐 보였다. 여기 있는 건 방치에 가까웠다.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여 그에 따른 적절한 치료와 학습을 하는 일이 필요해 보였다. 의논할 수 있는 상대는 부모였다.
보호자 면담에서도 성민이의 상태를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휴대전화 중독이 심해져서❷ 수업 참여가 안 되고 또래 관계가 어려워져 상담실을 병행했다는 정도였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어 오디세이학교를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교사들은 수업 중간에 나가는 게 반복되면 패턴이 강화되어 성민이에게 좋지 않다고 말했다. 보호자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도대체 여기가 아니면 어딜 가야 하냐고, 치료가 가능하긴 한 건지, 해야 한다면 갈 만한 병원은 어디에 있냐고 한숨을 쉬었다.
교사 개인기로
대처하는 상황
앞서 말한 희수와 성민이는 ‘정서 행동 위기 학생’에 속한다. 정서 행동 위기 학생은 심리·정서·행동의 문제로 일상적 교육 활동 참여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말한다. 이들은 교실 안 자해, 언어적·신체적 공격, 수업 중 자리 이탈 등으로 정상적인 교육 환경 조성에 어려움을 초래한다.❸ 교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현장에서 문제를 풀어내고 있다. 교사가 보호자에게 진단·치료·상담 등을 권하거나 학생·보호자와 교사의 관계가 악화되면 민원으로 이어질 수 있어 두고 보는 교사가 많은 편이다.
작년부터 오디세이학교를 선택하는 학생 중 정서 행동 위기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❹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중학교 3년을 보낸 학생들이 또래 관계 어려움을 포함해 학습 부진, 정서 장애로 인한 어려움의 대안으로 오디세이학교를 선택하는 경향성이 보인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관계 개선이 안 될 것 같아, 1년 동안 기초 학습을 보충하면서 또래 집단과의 관계 맺기를 연습하기 위해 오디세이학교를 택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정서 행동 위기 학생을 비롯해 느린 학습자, 자폐스펙트럼 등에 해당하는 학생의 비중이 한 교실에서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교사들이 개별적으로 살피고 돌보면서 대응하고 있지만, 희수와 성민 같은 학생들이 여럿이라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한 사람의 상태를 진단하고 파악하여, 치료와 학습을 병행할 수 있는 구조는 어떤 방식이어야 할까?
현재는 그저 교사의 개인기로 대처하고 있다. 오디세이학교 한 학급의 정원은 20명이고, 3~4명의 교사가 한 반을 운영한다. 서울 전역에 분산되어 있는 학급들은 큰 방향은 합의하되, 수업 구성은 조금씩 다르다. 학급마다 자율성이 있고 교사 여럿이 한 반을 운영하는 특성상 책임이 분산된다. 자율성이 존중되는 만큼 오디세이학교 본부는 교실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등의 사안이 아니면 개입하지 않는다.
학교들은 정서 행동 위기 학생에 대한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상태를 진단하거나 파악하여 치료를 권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으면 좋겠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이 교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 교사들은 도움받을 곳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학생·보호자와 면담을 하거나 사라진 학생을 찾으러 다니는 것밖에 가능하지 않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올해 2학기부터 서울 초·중·고교에 심리·정서적 문제로 교육 참여가 어려운 학생을 돕는 행동 중재 전문가가 투입된다고 밝혔다. 대안교육 현장에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이는 각 대안교육 기관의 재원으로 감당하긴 어려우므로 공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복합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하고 지역 사회에 연계하는 등 전반의 과정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협력하는 구조❺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여러 상태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 있을 때
매년 교실을 꾸려 가는 일이 쉽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코로나19로 등교하지 못하는 상황, 친구 사이에 서열을 만들어 권력을 휘두르는 학생을 만나는 일 등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보이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그럴 때 코로나 상황 자체를 배움으로 연결 짓자며 ‘코로나 읽기’를 제안한 동료 교사가 있었고, 권력관계를 만드는 친구에게 그건 아니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둥글게 모여 앉아, 오디세이학교를 선택한 만큼 이곳에서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겠다고 이야기 나누는 에너지와 기운이 우리를 그다음으로 이어 가게 했다.
이처럼 대안교육이 추구하는 가치는 학생의 주도성을 전제로 한다. 오디세이학교 또한 진로 탐색이나 다른 삶을 모색하는 청소년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문학을 토대로 자신을 성찰하고 친구와 대화하는 형태의 수업이 많다. 주로 자기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글쓰기 수업, 사회 이슈에 대한 토론 수업 등이다. 한 학급에 20명이 안 되는 인원이라 개인의 특성이 더 두드러진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느냐에 따라 수업의 질이 달라진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관계 맺는 폭이 넓어지느냐, 친구를 탓하고 배제하는 분위기가 되느냐는 구성원의 비율에 따라 달라진다.
일주일에 2시간, 자치 회의를 통해 학급 운영에 필요한 약속을 정한다.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 사용 문제를 짚거나 친구들의 지각이 잦아져 힘이 빠진다고 말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받는 존재라는 걸 배운다. 이번 학기 자치 회의에서 친구들의 수업 태도에 대한 안건이 제기되었다. 수업 특성상 조별 활동이 많은데 늦게 오거나 수업 중간에 나가는 친구들 때문에 집중이 안 되어 수업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로서 교실 전체를 보면서 조율하고 서로 배우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고, 배제하기보다 다름을 이해하는 계기로 삼자고 얘기했다. 문제를 제기한 학생은 날카롭게 되물었다. “어차피 바뀌지 않는 애들하고 뭘 같이 하라는 거예요?” 누군가로 인해 손해를 입는 것, 교실을 벗어나는 친구들과 조별 과제를 하면서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체념 섞인 불만이었다.
코로나 이후 대안교육의 역할
오디세이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안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영향받았던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선생님은 20년 넘게 대안학교 교사로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고민을 말하자 선생님도 전교생의 1/4 정도가 우울증이 깊거나 ADHD, 자폐스펙트럼, 느린 학습자라고 했다. 선생님은 이들에게 돌아갈 곳 같은 기억을 심어 주고 싶다면서, 작은 목소리로 약을 털어 넣어 죽고 싶다고 했던 학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한 존재를 바꾸겠다고 달려드는 것이 얼마나 오만방자하고 위험한가에 대해서 느끼고, 또 한편으론 불가능한 거 아닌가 생각하지.” 선생님과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20년 넘게 교사로 살아가는 이유를 묻자, 선생님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교사라는 직업에는 자기를 비출 기회, 자기를 들여다볼 기회가 많다고. “이 속에서만 설명되고 여기에 있을 때 나한테서 나오는 에너지와 내가 맺는 관계의 특성이 있는 거야. 그냥 나 개인이라면 고민 안 하고 살았을 문제들도 여기 있는 순간 고민과 갈등으로 마주하게 되는 거지.” 나도 교사가 아니었다면 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가 아니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 1년이라는 일시적인 시공간에서 그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역할에 대해 느끼는 어려움이었다. 선생님은 덧붙였다.
“나는 때로 아이들에게도, 여기 선생들에게도 똑같은 삶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선생들도 우울증을 얼마나 많이 겪는지 몰라. 내가 몇 년째 이 안에서 무슨 이유로든 다른 사람들의 우울증과 공황 장애를 보고 있는 거야. 학교가 맺어 놓은 관계의 어떤 성질들이 교사들도 아이들도 병들게 하기도 하지만 성장하게 하는 환경도 만든다고 생각해.”
입시 경쟁이 계속되는 한 대안교육 현장에도 어려움을 가진 청소년들이 계속 늘어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분기점이었다. 코로나 이후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의 양상이 다면화되었고 다양해졌다. 이들이 배제되지 않고 안전하게 지낼 공간으로서 학교는 더욱 중요해졌다. 그렇기에 더욱 교사가 문제를 혼자 감당한다고 느끼지 않도록 학교의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다양한 구성원을 품을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야 함은 물론이며, 사회 전반에 만연한 경쟁을 과열시키는 교육 체제 또한 바뀌어야 한다. 궤도에서 이탈한 혹은 낙오된 청소년들은 어디에 갈 수 있을까. 학교에서 밀려나거나 다른 기관으로 떠넘겨지는 경험은 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까.
종종 올해 만난 청소년들이 성년이 되는 날을 떠올린다. 이들이 성년이 되었을 때, 지금 여기에서의 경험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남는다면 좋겠다. 든든한 울타리 같은 기억은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서 뒤로 물러날 여유를 갖게 한다. 교사인 나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만나는 일의 특성상 교사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고 그것은 때때로 버겁기도 하다. 대안교육의 목표가, 과거에 해 온 방식대로 하지 않고, 청소년들이 다르게 배우고, 다르게 관계 맺고,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익히면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한 명 한 명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과제를 맞닥트릴 수밖에 없다. 교사로서의 시행착오는 계속되겠지만, 고여 있지 않고 다르게 사고하고 연구하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 보는 연습 중이란 생각이 든다. 덕분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남을 수 있도록, 앞으로 대안교육의 역할과 그것이 가능한 조건을 고민하며 현장에서 풀어 가고 싶다.
❶
“우울증 앓는 10대들… 입시 경쟁·코로나로 ‘마음 면역력’ 약해졌다”, 〈서울신문〉, 2023년 12월 7일.
❷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2년 스마트폰 과의존 현황’을 보면 3세에서 69세 스마트폰 이용자 중 과의존 위험군이 23.6%다. 대략 4명 중 1명꼴이다. 이마저도 2018년 19.1%에서 시작해 팬데믹을 지나며 상승했다가 지난해 24.2%에 이른 후 처음으로 감소한 수치다. 반면 청소년 중에는 매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과의존 위험군이 2021년 37%에서 지난해 40.1%로 증가했다.(〈오늘 하루 당신의 스마트폰 사용량은?〉, 《시사IN》, 835, 2023년 9월 21일)
❸
“교실 안 ‘정서행동 위기’ 학생 돕는 전문가 투입”, 〈한겨레〉, 2024년 2월 14일.
❹
오디세이학교는 서울 전역에 분산되어 영등포구(하자), 서초구(이룸), 종로구(꿈틀, 민들레), 성동구(혁신)에 총 5개 학급이 있다. 올해 영등포구(하자)와 서초구(이룸)에 위치한 학급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절반 정도 된다. 동작구, 강남구, 서초구 학생들이 주로 모인 학급은 학습 부진으로 인한 좌절이 깊고 우울과 공황 증상이 있는 학생들이 많은 편이다. 양천구, 구로구, 강서구, 영등포구 학생들이 주로 모인 학급은 작년부터 정서 행동 위기 학생이 증가하는 추세다. 지역에 따른 차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❺
학생 맞춤 통합 지원. 학생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필요와 요구에 맞는 맞춤형 통합 지원을 제공하여 교육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학생 성장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지원 체계이다.(발랑(2024), 〈청소년, 듣고 싶은 그들의 이야기〉, 《오늘의 교육》, 81(2024년 7·8월))
[기획] 코로나19가 남긴 교육의 과제
이것이 대안교육의 오늘이라면
- 코로나 이후, 오디세이학교에서 마주하는 현실
재은
naebbum@gmail.com
하자센터 오디세이학교
2024년 5월 어느 토요일, 하자센터를 거쳐 간 청소년들의 스무 살을 축하하는 자리가 열렸다. 관객석에 앉자, 봄바람에 살랑이는 큰 나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봄볕이 따뜻하고 화창한 날이었다. 2021년에 고1이었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해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여서 마스크가 당연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마스크 벗은 얼굴들이 낯설면서 친근했다. 열댓 명의 성년자들이 한 명씩 무대에 서서 다짐문을 낭독했다. 한 명은 오디세이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에게 남은 가치는 내가 나로서 사는 것이라고 했고, 다른 한 명은 나만의 속도에 따라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나는 풀꽃을 엮은 화관을 성년자들의 머리에 씌웠다. 화관을 쓴 성년자들의 얼굴이 말갛게 빛났다.
이들을 만난 건 오디세이학교를 통해서다. 나는 2020년부터 오디세이학교 길잡이 교사를 하고 있다. 오디세이학교는 서울시교육청 소속의 17세 청소년 대상 1년 과정 학교이다. 1년은 짧지만 공교육 체계 안에서 ‘공부 말고 다른 길은 없을까?’ 질문하며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은 의미 있다. 1년 과정을 마치면 자신이 속한 학교로 돌아간다. 성년식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시 입시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 버거웠지만,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는 힘이 오디세이학교에서 보낸 시간 덕분에 생겼다고 말했다.
성년식이 아름다웠던 만큼, 올해 청소년을 대하며 느끼는 무력감이 더욱 크게 다가오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팬데믹을 겪은, 현재 고1인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나는 어렵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교사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 상황을 여러 번 맞닥뜨렸다. 학생들 스스로 배우는 사람으로 설 수 있게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운영하면서 매년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올해는 특히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학생들을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코로나19 이후 늘어나는 현상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은 4월인데 출석이 들쭉날쭉했다. 보통 이 시기는 새로운 것들을 해 보려는 기운이 가득한 편이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아파서 못 오는 사람, 아예 연락이 안 되는 사람, 늦잠 자서 늦는 사람, 친구 얼굴 보기가 힘들다는 사람 등 학교에 오지 않는 이유가 다양했다. 학급 구성원 절반만 함께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입학하자마자 3주 정도는 오디세이학교 탐색 기간을 갖는다. 이곳을 왜 선택했는지 자기 목소리 내는 자리를 시작으로, 배움이란 무엇인가 질문하면서 1년간 무얼 하는지 이해하고,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알아 가는 시간이다. 올해 모인 사람들은 유독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오디세이학교에 왔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중학교를 거치면서 친구들과 관계 맺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2년 동안은 친구를 사귀지 않아도 괜찮았다. 중학교 2학년에 등교를 시작하면서 마음처럼 되지 않는 걸 경험했다. 친구 사이는 쉽게 틀어질뿐더러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도 어려웠다.
희수(가명)도 그랬다. 친구들이랑 금방 친해지는데 지속하지 못한다고. 여기서만큼은 마음 맞는 친구를 사귀고 싶어 했다. 초반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잘 지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친구 사이가 삐그덕대자, 희수는 식은땀이 나고 숨을 쉴 수 없었다. 희수는 우울증이 심해 중학교 때 질병 결석이 40일이 넘었던지라, 오디세이학교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되던 학생이었다. 하루는 수업 도중에 괴롭다면서 교실을 박차고 나갔다. 교사들은 친구들과 희수가 관계를 풀 수 있도록 대화 자리를 열었고, 희수와 개별 면담도 여러 번 했다. 그 시기에 친구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희수에게 힘들겠다고 공감해 주면서, 수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 보자고 했다. 희수는 알겠다고 했지만, 점심시간이 되면 집에 가겠다고 찾아왔다.
어느 쉬는 시간, 희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죽고 싶은데 어떡하죠.” 보통은 집에 가겠다고 하면 양호실에서 쉬다가 다시 얘기하자고 했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내 한마디에 희수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 모르기에 섣불리 입을 떼기 어려웠다. “희수야, 내가 의사가 아니라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비상약은 먹었어?” 희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안 된다는 거지? 그럼, 병원을 가 보자. 부모님께 연락 드릴게.” 부모가 희수를 데리고 가는 걸 보고 나서야 나도 숨이 쉬어지는 듯했다.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걸까. 교육적 개입을 넘어서 의료적 개입이 필요함을 어떤 근거로 판단할 수 있을까.
그날 이후 희수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학교에 오지 않는 사람들을 오게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코로나19 이후 우울증을 겪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10대의 정신 질환 진료 인원은 2018년에 비해 2022년에 50.3% 늘었다.❶ 한 학급이 20명이라면 그중 2명 정도는 정신 질환으로 진료를 받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수준이며, 진료를 받지 않는 학생들을 포함하면 더 늘어날 것이다. 우리 학급에는 우울증, 공황 장애, 강박과 불안 등으로 약을 먹는 학생들이 6명 정도 된다.
교실을 벗어나는 학생들
교사로서 제일 어려운 건 수업 중간에 교실을 벗어나는 학생이었다. 성민(가명)은 오디세이학교 지원서에 ADHD가 있다고 했다. 학기 초엔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 많아서 성민의 행동이 튀지 않았다. 문제는 1학기 시간표대로 수업이 흘러가면서 드러났다. 성민이 수업 시간에 교실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처음엔 화장실을 가는 것처럼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점점 나가는 횟수와 밖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오디세이학교가 운영되는 하자센터는 청소년 기관이라, 통상의 학교 구조와 다르게 숨을 곳이 많았다. 성민은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거나 비어 있는 회의실에서 휴대전화를 했다. 성민이는 휴대전화를 놓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카톡방을 들여다봤다.
성민이가 교실을 벗어나면 그 시간에 수업이 없는 교사가 찾으러 다녔다. 양호실에 누워 있으면 어디가 아프냐고 묻고 교실에 들어가라고 했다. 성민은 그땐 들어가는 것 같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와서 교사들의 눈에 띄지 않는 다른 곳으로 갔다. 성민이를 찾으러 다니는 게 일이 되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 학생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확인하기 위해 얘기를 하자고 하면, “아씨, 나 말고 걔도 그러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요?” 쏘아붙였다. 성민이는 제법 큰 덩치여서 그가 화를 내듯 말하면 안 그러고 싶어도 움츠러들었다. 개별적으로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내버려두는 경우도 생겼다.
성민이가 교실에 있다고 수업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었다. 책상에 연필 자국이 있으면 지우개가 사라질 때까지 책상을 문질렀다. 성민은 강박 증상과 충동 조절 장애, 사회성 부족, 휴대전화 중독 등 여러 상태가 복합적으로 겹쳐 보였다. 여기 있는 건 방치에 가까웠다.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여 그에 따른 적절한 치료와 학습을 하는 일이 필요해 보였다. 의논할 수 있는 상대는 부모였다.
보호자 면담에서도 성민이의 상태를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휴대전화 중독이 심해져서❷ 수업 참여가 안 되고 또래 관계가 어려워져 상담실을 병행했다는 정도였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어 오디세이학교를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교사들은 수업 중간에 나가는 게 반복되면 패턴이 강화되어 성민이에게 좋지 않다고 말했다. 보호자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도대체 여기가 아니면 어딜 가야 하냐고, 치료가 가능하긴 한 건지, 해야 한다면 갈 만한 병원은 어디에 있냐고 한숨을 쉬었다.
교사 개인기로
대처하는 상황
앞서 말한 희수와 성민이는 ‘정서 행동 위기 학생’에 속한다. 정서 행동 위기 학생은 심리·정서·행동의 문제로 일상적 교육 활동 참여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말한다. 이들은 교실 안 자해, 언어적·신체적 공격, 수업 중 자리 이탈 등으로 정상적인 교육 환경 조성에 어려움을 초래한다.❸ 교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현장에서 문제를 풀어내고 있다. 교사가 보호자에게 진단·치료·상담 등을 권하거나 학생·보호자와 교사의 관계가 악화되면 민원으로 이어질 수 있어 두고 보는 교사가 많은 편이다.
작년부터 오디세이학교를 선택하는 학생 중 정서 행동 위기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❹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중학교 3년을 보낸 학생들이 또래 관계 어려움을 포함해 학습 부진, 정서 장애로 인한 어려움의 대안으로 오디세이학교를 선택하는 경향성이 보인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관계 개선이 안 될 것 같아, 1년 동안 기초 학습을 보충하면서 또래 집단과의 관계 맺기를 연습하기 위해 오디세이학교를 택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정서 행동 위기 학생을 비롯해 느린 학습자, 자폐스펙트럼 등에 해당하는 학생의 비중이 한 교실에서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교사들이 개별적으로 살피고 돌보면서 대응하고 있지만, 희수와 성민 같은 학생들이 여럿이라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한 사람의 상태를 진단하고 파악하여, 치료와 학습을 병행할 수 있는 구조는 어떤 방식이어야 할까?
현재는 그저 교사의 개인기로 대처하고 있다. 오디세이학교 한 학급의 정원은 20명이고, 3~4명의 교사가 한 반을 운영한다. 서울 전역에 분산되어 있는 학급들은 큰 방향은 합의하되, 수업 구성은 조금씩 다르다. 학급마다 자율성이 있고 교사 여럿이 한 반을 운영하는 특성상 책임이 분산된다. 자율성이 존중되는 만큼 오디세이학교 본부는 교실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등의 사안이 아니면 개입하지 않는다.
학교들은 정서 행동 위기 학생에 대한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상태를 진단하거나 파악하여 치료를 권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으면 좋겠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이 교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 교사들은 도움받을 곳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학생·보호자와 면담을 하거나 사라진 학생을 찾으러 다니는 것밖에 가능하지 않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올해 2학기부터 서울 초·중·고교에 심리·정서적 문제로 교육 참여가 어려운 학생을 돕는 행동 중재 전문가가 투입된다고 밝혔다. 대안교육 현장에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이는 각 대안교육 기관의 재원으로 감당하긴 어려우므로 공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복합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하고 지역 사회에 연계하는 등 전반의 과정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협력하는 구조❺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여러 상태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 있을 때
매년 교실을 꾸려 가는 일이 쉽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코로나19로 등교하지 못하는 상황, 친구 사이에 서열을 만들어 권력을 휘두르는 학생을 만나는 일 등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보이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그럴 때 코로나 상황 자체를 배움으로 연결 짓자며 ‘코로나 읽기’를 제안한 동료 교사가 있었고, 권력관계를 만드는 친구에게 그건 아니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둥글게 모여 앉아, 오디세이학교를 선택한 만큼 이곳에서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겠다고 이야기 나누는 에너지와 기운이 우리를 그다음으로 이어 가게 했다.
이처럼 대안교육이 추구하는 가치는 학생의 주도성을 전제로 한다. 오디세이학교 또한 진로 탐색이나 다른 삶을 모색하는 청소년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문학을 토대로 자신을 성찰하고 친구와 대화하는 형태의 수업이 많다. 주로 자기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글쓰기 수업, 사회 이슈에 대한 토론 수업 등이다. 한 학급에 20명이 안 되는 인원이라 개인의 특성이 더 두드러진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느냐에 따라 수업의 질이 달라진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관계 맺는 폭이 넓어지느냐, 친구를 탓하고 배제하는 분위기가 되느냐는 구성원의 비율에 따라 달라진다.
일주일에 2시간, 자치 회의를 통해 학급 운영에 필요한 약속을 정한다.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 사용 문제를 짚거나 친구들의 지각이 잦아져 힘이 빠진다고 말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받는 존재라는 걸 배운다. 이번 학기 자치 회의에서 친구들의 수업 태도에 대한 안건이 제기되었다. 수업 특성상 조별 활동이 많은데 늦게 오거나 수업 중간에 나가는 친구들 때문에 집중이 안 되어 수업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로서 교실 전체를 보면서 조율하고 서로 배우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고, 배제하기보다 다름을 이해하는 계기로 삼자고 얘기했다. 문제를 제기한 학생은 날카롭게 되물었다. “어차피 바뀌지 않는 애들하고 뭘 같이 하라는 거예요?” 누군가로 인해 손해를 입는 것, 교실을 벗어나는 친구들과 조별 과제를 하면서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체념 섞인 불만이었다.
코로나 이후 대안교육의 역할
오디세이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안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영향받았던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선생님은 20년 넘게 대안학교 교사로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고민을 말하자 선생님도 전교생의 1/4 정도가 우울증이 깊거나 ADHD, 자폐스펙트럼, 느린 학습자라고 했다. 선생님은 이들에게 돌아갈 곳 같은 기억을 심어 주고 싶다면서, 작은 목소리로 약을 털어 넣어 죽고 싶다고 했던 학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한 존재를 바꾸겠다고 달려드는 것이 얼마나 오만방자하고 위험한가에 대해서 느끼고, 또 한편으론 불가능한 거 아닌가 생각하지.” 선생님과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20년 넘게 교사로 살아가는 이유를 묻자, 선생님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교사라는 직업에는 자기를 비출 기회, 자기를 들여다볼 기회가 많다고. “이 속에서만 설명되고 여기에 있을 때 나한테서 나오는 에너지와 내가 맺는 관계의 특성이 있는 거야. 그냥 나 개인이라면 고민 안 하고 살았을 문제들도 여기 있는 순간 고민과 갈등으로 마주하게 되는 거지.” 나도 교사가 아니었다면 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가 아니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 1년이라는 일시적인 시공간에서 그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역할에 대해 느끼는 어려움이었다. 선생님은 덧붙였다.
“나는 때로 아이들에게도, 여기 선생들에게도 똑같은 삶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선생들도 우울증을 얼마나 많이 겪는지 몰라. 내가 몇 년째 이 안에서 무슨 이유로든 다른 사람들의 우울증과 공황 장애를 보고 있는 거야. 학교가 맺어 놓은 관계의 어떤 성질들이 교사들도 아이들도 병들게 하기도 하지만 성장하게 하는 환경도 만든다고 생각해.”
입시 경쟁이 계속되는 한 대안교육 현장에도 어려움을 가진 청소년들이 계속 늘어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분기점이었다. 코로나 이후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의 양상이 다면화되었고 다양해졌다. 이들이 배제되지 않고 안전하게 지낼 공간으로서 학교는 더욱 중요해졌다. 그렇기에 더욱 교사가 문제를 혼자 감당한다고 느끼지 않도록 학교의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다양한 구성원을 품을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야 함은 물론이며, 사회 전반에 만연한 경쟁을 과열시키는 교육 체제 또한 바뀌어야 한다. 궤도에서 이탈한 혹은 낙오된 청소년들은 어디에 갈 수 있을까. 학교에서 밀려나거나 다른 기관으로 떠넘겨지는 경험은 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까.
종종 올해 만난 청소년들이 성년이 되는 날을 떠올린다. 이들이 성년이 되었을 때, 지금 여기에서의 경험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남는다면 좋겠다. 든든한 울타리 같은 기억은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서 뒤로 물러날 여유를 갖게 한다. 교사인 나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만나는 일의 특성상 교사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고 그것은 때때로 버겁기도 하다. 대안교육의 목표가, 과거에 해 온 방식대로 하지 않고, 청소년들이 다르게 배우고, 다르게 관계 맺고,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익히면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한 명 한 명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과제를 맞닥트릴 수밖에 없다. 교사로서의 시행착오는 계속되겠지만, 고여 있지 않고 다르게 사고하고 연구하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 보는 연습 중이란 생각이 든다. 덕분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남을 수 있도록, 앞으로 대안교육의 역할과 그것이 가능한 조건을 고민하며 현장에서 풀어 가고 싶다.
❶
“우울증 앓는 10대들… 입시 경쟁·코로나로 ‘마음 면역력’ 약해졌다”, 〈서울신문〉, 2023년 12월 7일.
❷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2년 스마트폰 과의존 현황’을 보면 3세에서 69세 스마트폰 이용자 중 과의존 위험군이 23.6%다. 대략 4명 중 1명꼴이다. 이마저도 2018년 19.1%에서 시작해 팬데믹을 지나며 상승했다가 지난해 24.2%에 이른 후 처음으로 감소한 수치다. 반면 청소년 중에는 매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과의존 위험군이 2021년 37%에서 지난해 40.1%로 증가했다.(〈오늘 하루 당신의 스마트폰 사용량은?〉, 《시사IN》, 835, 2023년 9월 21일)
❸
“교실 안 ‘정서행동 위기’ 학생 돕는 전문가 투입”, 〈한겨레〉, 2024년 2월 14일.
❹
오디세이학교는 서울 전역에 분산되어 영등포구(하자), 서초구(이룸), 종로구(꿈틀, 민들레), 성동구(혁신)에 총 5개 학급이 있다. 올해 영등포구(하자)와 서초구(이룸)에 위치한 학급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절반 정도 된다. 동작구, 강남구, 서초구 학생들이 주로 모인 학급은 학습 부진으로 인한 좌절이 깊고 우울과 공황 증상이 있는 학생들이 많은 편이다. 양천구, 구로구, 강서구, 영등포구 학생들이 주로 모인 학급은 작년부터 정서 행동 위기 학생이 증가하는 추세다. 지역에 따른 차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❺
학생 맞춤 통합 지원. 학생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필요와 요구에 맞는 맞춤형 통합 지원을 제공하여 교육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학생 성장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지원 체계이다.(발랑(2024), 〈청소년, 듣고 싶은 그들의 이야기〉, 《오늘의 교육》, 81(2024년 7·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