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중계
‘돌봄’ 중심으로의 전환,
무해한 말들을 넘어 정치적인 전망으로
교육공동체 벗은 지난 8월 6일부터 8일까지 “‘돌봄’ 중심으로의 전환, 무해한 말들을 넘어 정치적인 전망으로”라는 주제로 여름 연수를 진행하였다. 연수에서 다룬 내용 중 일부를 지면에 담는다.
《오늘의 교육》은 2020년 돌봄전담사 파업, 2024년 늘봄학교 논란을 경유하며 ‘돌봄’과 ‘교육’을 분리하고 위계화하는 관점을 경계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돌봄’이 단지 아동들을 안전하게 ‘맡아 두는 것’, 감시하고 관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도록 돌봄이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 무엇인지 탐색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교육운동에서 돌봄 논의는 여전히 학교 안에서 돌보느냐 지역 사회 다른 기관들로 분산하느냐, 교육부·교육청·학교가 중심이 되느냐 지자체로 이관하느냐 하는 쟁점에 고착되어 있다.
언제부턴가 아동 돌봄 논의는 ‘아동·청소년을 왜, 언제 돌보아야 하는가’, ‘아동·청소년을 잘 돌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돌봄 자체가 ‘선’인 것처럼 전제하고 이루어졌다. 안전한 공간,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고 프로그램을 빈틈없이 채우는 것이 곧 좋은 돌봄인 것처럼 뭉뚱그려졌다. 그 속에서 아동·청소년은 위험으로부터 격리해야 할 보호 대상이자 돌봄을 받기만 하는 무력한 객체로 간주되었다. 이번 연수에서는 기존 논의의 틀을 벗어나 돌봄운동 현장들에서 길어 올린 사유들을 바탕으로 아동·청소년들과의 관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상상하고 교육운동에 지금 필요한 ‘돌봄’ 의제를 갱신할 수 있기를 바랐다.
조한진희는 페미니스트이자 돌봄운동 활동가의 관점으로 아동 돌봄 정책을 두고 일어난 논의를 해석하고 비판한다. 자신이 청소년기에 참여했던 고등학생운동의 주장과 역사, 팔레스타인 점령 반대 현장 활동에서 목격한 어린이들의 생활 장면, 정치적 주체였던 역사 속 어린이들을 겹쳐 본다. 아동을 바라보는 관점과 관계 맺는 방식으로부터 교육운동의 과제를 다시 설정할 것을 제안한다.
조기현은 20대에 아버지를 돌보게 된 청년으로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청(소)년들을 조직하고 ‘영케어러(돌봄청년)’ 문제를 사회 문제로 대두시킨 과정, 그 과정에서 피어난 교육에 대한 사유를 전한다. 그리고 영케어러에게 필요한 것은 ‘기회의 공정’이 아니라 돌봄 경험이 ‘스펙’이 될 수 있는 반능력주의적 가치 전환이라고 말한다. 그 일환으로 돌봄을 수행하는 시민들이 학교라는 공동체이자 공간에 개입하여 변화를 이끌어 내는 ‘돌봄교육’이라는 구상을 제시한다.
돌봄의 감각은 깊이 잠들어 있지만 누구에게나 깃들어 있기에 보편적이고, 변화의 잠재력을 품고 있다. 이 기획이 그 변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편집부
지상 중계
‘돌봄’ 중심으로의 전환,
무해한 말들을 넘어 정치적인 전망으로
교육공동체 벗은 지난 8월 6일부터 8일까지 “‘돌봄’ 중심으로의 전환, 무해한 말들을 넘어 정치적인 전망으로”라는 주제로 여름 연수를 진행하였다. 연수에서 다룬 내용 중 일부를 지면에 담는다.
《오늘의 교육》은 2020년 돌봄전담사 파업, 2024년 늘봄학교 논란을 경유하며 ‘돌봄’과 ‘교육’을 분리하고 위계화하는 관점을 경계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돌봄’이 단지 아동들을 안전하게 ‘맡아 두는 것’, 감시하고 관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도록 돌봄이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 무엇인지 탐색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교육운동에서 돌봄 논의는 여전히 학교 안에서 돌보느냐 지역 사회 다른 기관들로 분산하느냐, 교육부·교육청·학교가 중심이 되느냐 지자체로 이관하느냐 하는 쟁점에 고착되어 있다.
언제부턴가 아동 돌봄 논의는 ‘아동·청소년을 왜, 언제 돌보아야 하는가’, ‘아동·청소년을 잘 돌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돌봄 자체가 ‘선’인 것처럼 전제하고 이루어졌다. 안전한 공간,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고 프로그램을 빈틈없이 채우는 것이 곧 좋은 돌봄인 것처럼 뭉뚱그려졌다. 그 속에서 아동·청소년은 위험으로부터 격리해야 할 보호 대상이자 돌봄을 받기만 하는 무력한 객체로 간주되었다. 이번 연수에서는 기존 논의의 틀을 벗어나 돌봄운동 현장들에서 길어 올린 사유들을 바탕으로 아동·청소년들과의 관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상상하고 교육운동에 지금 필요한 ‘돌봄’ 의제를 갱신할 수 있기를 바랐다.
조한진희는 페미니스트이자 돌봄운동 활동가의 관점으로 아동 돌봄 정책을 두고 일어난 논의를 해석하고 비판한다. 자신이 청소년기에 참여했던 고등학생운동의 주장과 역사, 팔레스타인 점령 반대 현장 활동에서 목격한 어린이들의 생활 장면, 정치적 주체였던 역사 속 어린이들을 겹쳐 본다. 아동을 바라보는 관점과 관계 맺는 방식으로부터 교육운동의 과제를 다시 설정할 것을 제안한다.
조기현은 20대에 아버지를 돌보게 된 청년으로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청(소)년들을 조직하고 ‘영케어러(돌봄청년)’ 문제를 사회 문제로 대두시킨 과정, 그 과정에서 피어난 교육에 대한 사유를 전한다. 그리고 영케어러에게 필요한 것은 ‘기회의 공정’이 아니라 돌봄 경험이 ‘스펙’이 될 수 있는 반능력주의적 가치 전환이라고 말한다. 그 일환으로 돌봄을 수행하는 시민들이 학교라는 공동체이자 공간에 개입하여 변화를 이끌어 내는 ‘돌봄교육’이라는 구상을 제시한다.
돌봄의 감각은 깊이 잠들어 있지만 누구에게나 깃들어 있기에 보편적이고, 변화의 잠재력을 품고 있다. 이 기획이 그 변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