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호[특집] 늘봄학교를 통해 본 돌봄의 현실 | 서우철

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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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돌봄 사회로의 전환과 교육의 과제


늘봄학교를 통해 본 돌봄의 현실

 

서우철

newopen@naver.com

경기 고양 서정초 교장



늘봄학교를 논하기에 앞서 내게는 돌봄과 관련하여 3개의 큰 경험이 있다. 먼저 2017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주관해 진행한 학교의 미래에 관한 연구에서 전문가 FGI(Focus Group Interview)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학교의 미래에 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토론을 했다. 여러 시나리오 중에서 참여자들이 가장 희망하는 안이 있었는데, 그것은 학교 안에 학교교육 외에도 돌봄을 비롯하여 지역 사회 교육 등 모든 교육 활동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참여자들 중 교원인 나를 제외한 각 분야의 교수들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그 안을 선호했다. 학교의 본질적인 필요성은 외면한 채, 사회적으로 필요한 시설과 시스템을 갖추려고 노력하기보다 학교에 밀어 넣는 손쉬운 방책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로 인해 학교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런 일방적인 사고방식이 계속되는 한 학교 안으로 밀어 넣는 사회 교육 시스템을 막을 방법이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학교가 모든 걸 감당하게 하는 나라가 대체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고, 너무 무책임하다고 항변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2018년 일본에서 학교와 지역 사회 교육을 목격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의 초등학교와 교육청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우리와 다르게 지방 자치화 교육 자치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교육청이 시청의 한 부서로 존재했다. 한 초등학교에 방문했는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돌봄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알아보니 학교에서 진행될 뿐 운영은 지자체에 속한 교육청이 직접 하고 있었다. 돌봄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 모두 교육청이 직접 집행하고 채용한다고 했다. 학교는 공간만 대여해 줄 뿐이었다. 주말에도 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데 이 역시 학교가 아니라 교육청이 직접 사람을 채용해 운영한다고 했다. 아울러 일본은 평생교육 시설인 공민관에서 방과 후에 학생들을 지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역 사회의 여러 자원들이 자원봉사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 활동을 제공하며 돌보고 있었다. 모든 걸 학교 안에서, 학교가 감당해야 하는 우리나라 학교가 더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후 이러한 일본의 돌봄과 방과 후 교육 시스템을 교육 당국에 이야기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돌봄에 관해서 기억나는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돌봄 정책을 교육부에서 여성가족부(여가부)로 이관하기 위한 부처 간 물밑 접촉이 있었다. 대선 공약이었던 ‘온종일 마을학교’는 학교 밖에서 지역 사회가 참여하는 가운데 방과 후 교육과 돌봄을 운영하는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여가부 차관은 청소년 수련관을 운영하고 있고 지자체와도 긴밀한 여가부로 돌봄 정책을 가져오고 싶어 했다. 나 또한 청소년 자치 배움터인 몽실학교를 운영하고 있던 터라 담당자 입장에서 관련 정책을 제안할 기회가 생겼다. 돌봄이 학교에서 분리되고 지자체가 책임 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교육부보다 여가부가 운영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고, 관련 자료를 준비해서 여가부 차관을 만났다. 몽실학교의 운영 상황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설명하자 여가부 차관은 큰 관심을 보였다. 이후 여가부가 정부 내에서 업무 조정을 통해 돌봄을 가져오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육부의 정책들 중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것이 돌봄 정책이었고 그만큼 많은 예산을 배정받기에 교육부가 돌봄 정책을 여가부로 넘겨주지 않았다고 했다. 요즘도 그때 일을 떠올리며 돌봄 정책이 여가부로 넘어갔다면 학교의 어려움을 한층 덜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이러한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고 교육부의 고집대로 올해부터는 늘봄학교까지 더해져 학교가 돌봄을 모두 떠안게 됐다.

 

늘봄학교와 초1 에듀케어의 현실

 

올해 늘봄학교란 이름으로 기존의 돌봄 교실과 방과후학교의 통합, 전 학년 확대까지 추진되고 있다. 그로 인해 초등학교는 큰 혼란과 함께 다양한 문제들로 고난을 겪고 있다. 교원들이 극심한 반대를 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당국은 돌봄 관련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방과 후에 무조건 실시해야 하는 초등학교 1학년 에듀케어 정책도 시작되었다. 하반기 전면 시행을 목표로 하는 늘봄학교의 전초전과 다름없다. 공문으로 하달된 내용에 따르면, 외부 강사를 고용해 돌봄 교실과 방과후학교에 참여하지 않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 중 희망하는 학생들을 오후 3시까지 학교에서 돌봐야 했다.

문제는 돌봄이든, 늘봄이든 관련 업무를 교원들이 반대하고 돌봄 전담사들도 거부하고 있어 업무를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교육청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망하는 학교에 1년 계약의 기간제 교사나 3개월 단기 인력을 채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 기존 돌봄 교실에서 대부분 수용 가능해 단기 인력을 채용했다. 그러나 대부분 학교에서는 10시간 정도 교과 수업까지 전담할 수 있는 기간제 교사를 채용했다고 한다.

무조건 하라고만 하는 교육 당국의 압력과 업무를 담당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 직면한 학교의 입장에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인력 지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늘봄학교를 정식으로 선택하지 않은 학교들까지 사실상 늘봄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사 자격증을 가진 시간제 교원이 병가 등으로 수업을 못 하는 교사를 대신하여 수업하는 경우 시간당 2만 4,000원을 받는다. 그런데 에듀케어 강사는 시간당 4만 원을 받기 때문에 2명 뽑는데 20명이 넘게 지원하는 풍경이 벌어졌다. 우리 학교의 경우 1학년이 1학급밖에 되지 않아 돌봄 교실에 참여하는 17명을 제외한 7명이 에듀케어에 참여했다. 그 학생들 중 대부분이 방과후학교에 참여하는 터라 오후 3시까지 에듀케어 교실에 남아 있는 학생은 1~2명뿐인 상황이다.

한편 강사비 불균형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방과후학교 강사들이 늘봄학교 강사로 옮겨 가려는 경쟁이 일어나 방과후학교 강사 수급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방과후학교의 시간당 강사비는 3만 원인데 늘봄학교의 시간당 강사비는 4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학교에서는 배식 보조원을 하던 분이 늘봄학교 강사에 지원하며 사직하는 경우도 생겼다고 한다.

우리 학교와 달리 30학급이 넘는 큰 학교의 경우 공간 문제로 대혼란이 일어났다. 늘봄학교는 학교의 준비 상황과 관계없이 진행되다 보니 교실 수급 문제가 심각하다. 인근 50학급 규모의 학교에서는 기존 돌봄 교실 4학급에 늘봄학교 4학급을 추가로 개설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남는 교실이 없었다. 정규 수업 교실도 부족해서 특별실을 없애는 마당에 늘봄학교 교실을 만들어야 하니 학교는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큰 학교들은 할 수 없이 수업이 빨리 끝나는 저학년 교실을 늘봄학교 교실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저학년 학생들과 담임 교사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실을 비워 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담임 교사들의 경우 학생들을 보내고 수업 결과를 채점하거나 다음 날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자기 교실에서 쫓겨나 연구실에서 밀린 업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교사들이 이런 상황을 불만 없이 받아들이겠는가?

4월이 되면서 초1 에듀케어와 늘봄학교 강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을 당국도 인지했는지, 시간당 강사비가 4만 원에서 6만 원으로 급등했다. 이로 인해 학교에는 더 큰 혼란이 발생했다. 수익자 부담인 방과후교실과 달리 에듀케어는 모두 무료이다 보니 맞벌이가 아닌 가정에서도 에듀케어를 선호했다. 강사들 또한 시간당 강사비가
2배나 차이가 나니 에듀케어와 늘봄학교로 쏠리게 되었다. 일부 교사들은 자기 교실을 뺏기지 않고 수당까지 받을 수 있는 늘봄학교 강사에 자원하고 있다.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교사도 늘봄학교 강사를 할 수 있게 한 정책이 낳은 결과였다.

이처럼 공간과 인력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데다, 막대한 예산까지 투입하고 있어 과연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올해 뽑은 기간제 교사를 내년에도 고용할 수 있게 인건비를 지원해 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늘봄학교는 하반기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어 늘어나는 대상 학생을 감당할 공간도 인력도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 늘봄학교는 아침, 저녁 돌봄에 틈새 돌봄까지 추가했다. 우리 학교에서도 틈새 돌봄을 신청받았는데 주로 3, 4학년 학생들이 방과후학교에 가기 전에 빈 시간을 안정적으로 보내기 위해 신청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교육지원청에서 위탁 업체를 선정해 인력을 보내 주어 학교는 크게 신경 쓸 일 없이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는 관내에서 5개 학교만 신청해서 인력 지원을 해 준 것 같다. 내년에 관내 90개 학교 모두 진행하게 되면 인력 지원을 과연 무슨 예산으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규모가 큰 학교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서는 행정실인데 관련 업무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반면 인력 지원은 요원해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학교장들은 계속 교육지원청에 인력 충원 요청을 하지만 답이 없는 상황이다.

 

아이들이 떠난 돌봄 교실을 바라보며

 

이처럼 학교가 혼란을 겪고 있는 사이 아이들은 잘 성장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그들의 상황은 어떠할까? 예전에는 방과 후 빈 시간들을 친구들과 놀이를 하며 지냈는데 지금은 수업을 받으러 늘봄 교실로 가야 한다. 부모들의 늘봄학교 만족도가 엄청 높다고 하는데 과연 아이들도 같은 생각인지 물어봐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학생들의 생각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신경 쓰지도 않는 것 같다. 정규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학교에 남아 다시 수업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 그 상황이 지겹고 힘든 학생들이 돌봄이란 이름으로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일단 시작하고 발생하는 문제는 그때그때 해결하자는 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늘봄학교. 세밀하지 못한 돌봄 정책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형국이다. 부모들의 만족도만 보고 밀어붙이지 말고 현재 학교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점들을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 나가야 한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돌봄 정책 아이디어가 쏟아졌는데 그 논의는 사라지고 없는 상황이다. 학교 규모나 상황에 따라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아 해결 방안도 다각으로 모색해야 하며, 그래야 많은 모순점을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제안하는 바이다. 우선 돌봄 공간이 부족한 학교들을 위해 지역 사회와 협력해 학교 밖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운영은 ‘돌봄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고 위탁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공민관처럼 평생교육 시설을 돌봄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도교육청에서 학교 통폐합으로 남는 유휴 시설을 단설 유치원처럼 단설 돌봄학교로 만들어 방과 후 교육을 책임지게 하는 방법도 제안한다. 반면 돌봄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학교에는 교육지원청에서 인력을 지원하고 운영까지 책임지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길 바란다. 교육지원청에서 직접 ‘돌봄 사회적 협동조합’을 선정하고 위탁하는 방식으로 작은 학교들을 묶어 돌봄 교육을 통합 운영하게 한다면 학교의 부담은 크게 줄 것이다. 학교는 말 그대로 공간만 제공하면 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학교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교육부의 한 부서가 모든 걸 떠맡아 밀어붙이는 정책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성과는 요원하고 더 많은 문제만 양산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돌봄의 사회적 역할을 학교에만 떠넘기지 말고 정부와 지역 사회, 교육 주체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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