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호[읽은 이야기] 오늘의 교육 79호 | 강성규

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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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이야기

 

오늘의 교육  79호(2024년 3+4월)

 

대구의 한 공립 대안학교에서 일합니다. ‘읽은 이야기’를 수락한 덕분에 바쁜 일상 속에 쉼표 같은 글쓰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대구의 근황을 먼저 전합니다. 지난 4월 돌아가신 홍세화 선생님은 두 거대 정당을 각각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주로 하는 세력,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세력이라고 말씀하셨지요. 대구에서는 시장과 시의회의 만장일치로 박정희 동상을 역과 도서관 앞에 세우는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주로 하는 사람들의 세력이 늘 시민성을 퇴보시키는 퇴행적인 일이 벌어지는 이곳, 대구의 퇴행일까요, 아니면 한국 사회의 축소판일까요?

답답한 마음으로 질문을 던지며 《오늘의 교육》 79호를 읽었습니다. 표지에는 노란 리본이 인쇄되어 있네요. 채효정 편집위원장의 ‘오늘의 교육을 열며’에서는 날카로운 현실 진단과 개수대의 비유가 인상 깊었습니다. 개수대 밖의 무너져 가는 환경과 시스템에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지속 불가능한 지위 경쟁에 몰두하는 ‘전 국민적 전 가족적 장기 입시 경쟁’의 시대 바깥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앞부분을 읽다가 ‘세월호 10주기’ 기획으로 건너가 박정현 교사와 정용주 교장의 글을 읽었습니다. 언뜻 스친 적이 있을 박정현 교사는 대구의 사립 고등학교에서 묵직한 유무형의 ‘외압’과 내압에 맞서 싸우는 분이었군요. 대구, 사립 학교 재단의 분위기에서 세월호 수업을 하고 애도와 추모의 공간을 만드는 일은 저처럼 공립 학교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것과 결이 다른 일일 겁니다. 노란 리본 배지를 다는 사소한 행동을 불편해하고 배지를 떼라고 하는 동료 교사들, 추모 물품을 수업 예산으로 구매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으려는 관리자의 경직된 권한 남용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처럼 세월호 기억 수업을 슬쩍 넘어가도 될 법한 조건이 충분한 상황에서도 필자의 물러서지 않는 결심과 실천이 참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앞으로도 그의 용기가, 교사의 실천을 정치와 구분하고 순수성을 증명하라는 안팎의 압력을 이기면 좋겠습니다. 정용주 교장의 글에서는 세월호 이후 10년간, 안전 담론이 어떻게 저항성을 잃고 통치 담론으로 흡수되었는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세월호’라는 낱말 대신, ‘4.16’이라는 기호 대신 ‘국민 안전의 날’이라는 무표정의 언어로 뒤바꾸어 저항성을 휘발시켜 버린 국가 권력의 총체적인 통치 기술을 비판하는 내용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4월 초에 전교조 사무실에 오랜만에 나갔습니다. 돌아가며 세월호에 대한 10년 동안의 자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노란 리본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여러 단계를 외면하고 뭉개어 단순한 개요로 전해지는 ‘기억하겠습니다’가 나약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 선생님께서 ‘그렇게만 볼 게 아니라 각자의 잊지 않으려는, ‘기억’하려는 노력 자체는 힘이 세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두 이야기가 서로를 풍부히 돕는 느낌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대안학교에서 일하다 보니, 선도보다는 성장을 위한 협의와 서클을 통한 대화의 맛을 조금은 더 보고 있습니다. 갈등 사안이 생기면 관계 회복의 차원에서 늘 고민하고요. 그런 터라 박성실 연구원의 《회복되는 교실》 리뷰를 찬찬히 읽어 보았습니다. 한 권 사서 꼭 읽고 학교에서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는 동료들과 좀처럼 풀기 힘든 학생들 간의, 교사와 학생 간의 갈등의 해법을 모색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올해 4월의 국어 수업에서는 ‘416 단원고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 열두 권을 교실에 펼쳐 두고 한 권씩 골라, 그 안에 담긴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소감을 쓰는 활동을 했습니다. 우리처럼 살다가 사라진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읽은 학생들은 다양한 소감을 써내었습니다. 그중 한 학생의 글을 소개합니다.

 

2학년 10반 장혜원의 사연을 읽었다. (……) 혜원이는 봄이 되어 곧 떠날 제주도 수학여행을 기대하며 친구들과 장기자랑 연습도 하고, 미래에 어른이 되어 친구들과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날 계획도 세우며 설레했었다. 이 설렘이 더 오래 혜원이에게 남았다면 좋았을 텐데……. 이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은 세상에 없는 혜원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세월호라는 끔찍한 사건 때문에 무수히 소중한 꿈들이 사라졌다는 걸 잊지 않는 것뿐이란 걸 느꼈다.

 

4월 16일 오후에는 학교 1층 로비에서 버스킹 행사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무대에서 학생, 교사들과 함께 세월호 추모곡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기타 반주에 맞춰 부르고 노란 리본을 나누었습니다. 행사 전에 한 학생과 이야기 나눴어요.

“선생님, 세월호를 추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어요.”

“그게 뭘까?”

“세상을 바꾸는 거예요.”

“세상은 어떻게 바꾸지?”

“저부터 바뀌어야겠죠.”

고개를 끄덕이며, 그 학생의 목소리를 반복 재생해 봅니다. 꼭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하고 생각하면서요. 저부터 다시금, 한 뼘의 변화를 다짐해 봅니다.


- 강성규(교육공동체 벗 조합원, 대구 해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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