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호[특집] ‘끝을 알 수 없다’는 절망에 대하여 (한낱)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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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알 수 없다’는절망에 대하여

- 거리 청소년 자립 지원 현장에서 목격하는 빈곤


한낱 mingpung@gmail.com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나다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들’에서 만든 몸으로 현장을 겪고 싶어 2년 전 자립팸으로 이직했습니다.




“땡큐, 코로나”의 역설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한창 고조되던 올해 봄이었다. 세계적 경제 위기를 우려하는 뉴스가 연일 쏟아졌다. 그 와중에 내가 만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운수 좋은 날’이 찾아왔다. 위기는 낙차로 체감된다. 갑작스러운 영업 손실, 폐업, 실직 등으로 생계 불안정성이 급격히 높아질수록 혼란을 크게 느낀다. 그런데 거리 청소년에게 불안과 위기는 일상이다. 


탈가정을 감행한 이후, 한 번도 가난을 피해 간 적이 없다. 그러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그다지 새롭지 않다. 오히려 일시적으로 증가한 정부와 민간 차원의 현금성 지원 덕택에 식비를 해결하고, 반년 가까이 밀린 공과금을 납부했다. 정부 긴급 재난 지원금을 수령해 계절에 맞는 옷을 비로소 사 입은 이도 있다. “땡큐, 코로나”라도 외쳐야 할 것 같은, 기이하게 역설적인 이 상황은 극도로 빈곤한 거리 청소년의 일상을 조명한다.


이 글에서 청소년은 만 9세 이상 만 24세 이하를 뜻한다. 특정 연령대를 구분하거나 강조하고 싶을 때는 10대, 후기 청소년(만 18~24세) 등의 표현을 별도로 사용한다.

가정, 학교, 시설 등 사회 주요 장소들로부터 밀려나 불안정하지만 한편 자유로운 경계 지대인 ‘거리’에 임시적으로 머물고 있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싶을때 주로 ‘거리 청소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와 같은 반짝 ‘특수’도 만 18세 이하거나 부모와 주소지를 분리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정부 재난 지원금을 예로 살펴보자. 지급 단위를 ‘가구(주민등록표상 등재된 세대)’로 설정하고, 〈국민 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 개념을 적용했는데, 이러면 청소년 ‘개인’이 지원금을 수령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 일단, 미성년자의 경우 보호자의 동의 없이 전입 신고가 어렵다. 더군다나 시설 입소를 택하지 않은 거리 청소년의 경우, 거처가 늘 임시적이기에 새로 전입할 주소 자체가 없기도 하다. 어찌하여 주소지가 달라졌다고 해도 미성년자는 건강보험 분리가 가능하지 않다.


부모의 친권이 정지되었거나, 청소년이 단독 가구로 기초 생활 수급권을 얻는 경우 제외. 거리 청소년의 경우 전·후자 모두 극히 드물다.


지원금은 세대주가 수령하므로 해당 청소년의 지원금은 그들의 부모(보호자)에게 지급된다. 이러한 조건에서 이들이 지원금을 수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방임하거나 학대했던 부모에게 연락해 자기 몫을 요구 하는 것이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아동학대 신고 전력이 있는 경우, 행정 복지센터(주민센터)를 통한 이의 신청이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자식의 도리’로 부모를 신고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대다수고, 신고를 했더라도 혹여 부모가 자신에게 보복할까 봐 이의 신청을 꺼렸다. 애초부터 청소년 개인에게 직접 지급했다면, 이러한 사각이 발생하는 걸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동학대 피해자’와 ‘가출 청소년’ 사이에서


내가 일하고 있는 청소년 자립팸 이상한나라(자립팸)는 움직이는청소년센터 엑시트(엑시트)의 짝꿍 조직이다. 엑시트는 아웃 리치를 통해 지원이 필요한 청소년을 발견하고, 버스를 매개로 관계 맺기의 장을 연다. 


자립팸은 18~24세 사이 연령의 여성 청소년들이 (최대 5명) 사는 집이며, 최장 2년 2개월까지 머물수 있다. 자립팸의 모든 입국(입소를 대체하는 표현)은 엑시트를 통해 이루어지며, ‘권리로서의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구성원들이 함께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약속(청소 방식 등)을 함께 정해 운영한다. 활동가는 상주하지 않고 주 1~2회 숙직하며, 필요한 지원은 따로 약속을 잡아 진행한다. 출국(퇴소를 대체하는 표현)한 청소년에 대한 사후 지원도 적극 제공한다.

엑시트는 2011년, 사단법인 ‘들꽃청소년세상’과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이 거리 청소년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38인승 버스 내부를 청소년들이 놀고, 먹고, 쉴 수 있는 곳으로 개조해 정해진 장소에서 주 1~2회 아웃리치(2020년 8월기준, 매주 금요일 신림역 인근에서 오후 8시부터 새벽 2시까지)를 진행해 왔다. 기관 전화를 매개로 청소년들과 24시간, 365일 소통하며 필요 시 긴급 출동한다.

기존의 복지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을 직접 찾아가 지원하는 활동을 말한다.


자립팸은 그렇게 인연을 맺은 청소년 중 안정적 주거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집’을제공한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사회 안전망 붕괴와 함께 해체되거나 위기 상황을 맞는 가정이 늘어났고, 2000년대 초반 청소년들의 탈가정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이에 대한 민간 차원의 대응으로 만들어진 곳이 엑시트와 자립팸이다.


엑시트와 자립팸 활동을 소개하고 나면 청중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청소년이 집을 나오면 시설에서 살면 되지 않나요?(살아야 하지 않나요?) 왜 거리를 전전하나요?” 한국의 탈가정 청소년 보호 정책은 원가정 복귀와 시설 보호로 이분화되어 있다. 그러나 폭력이 발생한 가정으로 무작정 되돌아가는 것도, 꽉 짜인 프로그램과 엄격한 생활 관리를 강제하는 쉼터 등의 시설로 들어가는 것도 대안이 되기 어렵다. 청소년 쉼터에 한 해 동안 2만 9,256명의 청소년이 입소했지만, 55.9%인 1만 6,352명의 청소년이 무단이탈, 자의 퇴소, 무단 퇴소 등 스스로 쉼터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사회는 시설 보호가 주거 대안이 될수 없음을 이미 오래전부터 강조해 왔다. 2019년 10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제5·6차 국가 보고서에 대한 최종 견해에서 “구체적인 탈시설 계획을 통해 시설 보호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2015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출 청소년 실태 및 청소년 쉼터 중장기 발전 방안 연구〉에 의하면 가출을 경험하는 청소년은 연간 27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박경미 의원실, “[국감 보도 자료] 쉼터 찾은 청소년 절반은 ‘제 발로 나간다’”, 2017년 11월 3일.


탈가정 후 시설 중심의 통제 시스템 안으로 포섭되길 거부하는 거리 청소년은 흔히 ‘가출 청소년’ 또는 ‘비행 청소년’으로 호명되며, 우범 집단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자립팸 입/출국 청소년은 모두 아동학대 피해자이기도 하다. 학대의 양상에는 차이가 있지만, 유년 시절부터 가정 폭력을 경험한다. 안타깝게도 ‘한두 차례 때렸다고’ 집을 나오는 청소년은 드물다.


집 나가면 고생한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이러다 죽겠구나’라는 공포가 밀려올 때, 마지막 수단으로 탈가정을 선택한다. 적어도 내가 만난 청소년들은 그러했다. 이들을 향해 부당하게 덧씌워진 이미지를 거둬 내야 한다. ‘비행 청소년’은 곧 학대 피해 생존자다.



탈가정 이후의 생존


우리를 언짢게 하지 않으면서 아동학대와 방치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살균 처리된 이미지가 이 문제의 실체를 왜곡한다. 이런 사진은 희생자가 시간 속에 얼어붙은 채 우리가 그 안으로 손을 뻗어 위험으로부터 빼내어 주기를 기다리는 영원한 아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낳는다. 이들은 어린아이로서 무한한 연민과 동정을 받는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법적 과실을 저지르는 순간, 이들을 대하는 우리의 전반적인 태도가 달라진다. 우리가 인정하든 않든 방치되고 학대받은 아이, 난폭한 청소년, 노숙인, 알코올 중독자, 약물 중독자, 그리고 끔찍하고 무책임하며 폭력적인 부모가 실은 삶의 다양한 단계에 있는 동일 인물인데도 말이다.

- 대런 맥가비, 김영선 옮김(2020), 《가난 사파리》, 돌베개, 170쪽


자선단체 광고에 나오는 학대 피해 아동 모습(필자 주)



대런 맥가비는 영국의 빈곤 가정에서 극심한 아동학대를 겪으며 자란 사람이다. ‘당사자’만이 말할 수 있고, 아프지만 말해야만 하는 진실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용한 문장을 빈곤 가정의 부모 혹은 가난한 사람들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잣대로 읽어선 곤란하다. 가난이 사람의 마음을, 관계를, 그리하여 인생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 처절함을 우리는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올해 1월, 자립팸 입국 신청을 앞둔 청소년과 서로를 알아 가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알바 경험이 궁금해 “열네 살 때 탈가정 하고 그동안 어떻게 먹고살았어요?”라고 물었는데, “친구들하고 오토바이를 털기도 하고, ○○ 휴대전화를 팔기도 하고…….” 청소년은 사기, 절도 등 몇 가지 범죄 경험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엑시트와 자립팸의 지원을 받는 청소년 중 상당수가 범죄 가해/피해에 연루되어 있고, 소년 보호 사법 절차를 밟아 각종 보호 처분을 받은 이도 많다. 


여성 청소년의 경우, 성매매 착취 피해를 겪었는데 ‘대상 청소년’으로 분류돼 처벌을 받기도 했다. 성매매와 성폭력, 연애의 경계가 불분명한 성적 관계를 이어 가며 동거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 모든 현상의 이유는 하나로 수렴된다. 다름 아닌 생존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의 오랜 노력으로 지난 5월,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성매매에 유입된 아동·청소년을 ‘피해 아동·청소년’으로 규정하고 법적 보호를 지원하는 내용 등이 포함되었다. 개정 전에는 이들을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규정하고 보호 처분 등 처벌 성격의 선고를 할 수 있었다.



가난은 단순히 소득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자원에 대한 접근 가능성에서부터 시민적 지위를 확보하는 문제까지 삶의 안정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이 빈곤을 가늠하는 지표로 쓰인다. “학교를 못 다닌 건 좀 후회되긴 하지. 교복에 대한 로망도 있고.” 이곳에서 일하며 인연을 맺은 20명 남짓 되는 청소년 중 제도권 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1명도 없다. 탈가정 전부터 학교생활이 순탄치 않았던 이들이 많다. 몇 남아 있는 학교에 대한 기억은 모욕으로 새겨져 있다.


들쑥날쑥 출결을 유지하다 탈가정과 함께 영영 학교로부터 멀어진다. 학교에 갈 수 있는 형편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첫째, 등·하교의 루틴을 형성 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활(생계) 안정이 확보되지 않는다. 둘째, 거리 생활의 ‘자유로움’에 익숙해질수록 학교의 규율과 통제를 견딜 수 있는 역치가 낮아진다. 거리 청소년에게 학교는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학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학교를 못 다닌 건 아쉽다. 대안적 의미로 탈학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평범함’을 박탈당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성년에 이를 때까지 부모(보호자)에게 권리를 위임한 채 살아가야 하는 한국의 모든 청소년은 어떤 의미에서 ‘가난’하다. 중산층 가정의 청소년이라 할지라도 부모와 단절되는 순간 언제든 위기 상황에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 또는 가구 소득을 기준으로 청소년의 빈곤을 추정하는 통계 방식은 전혀 핵심을 겨냥하지 못한다.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휴대전화 개통도, 통장 개설도, 일자리를 구할 수도, 부동산 계약을 맺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먹고살 수 있을까. 한국의 법과 제도가 거리 청소년들에게 거꾸로 ‘범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생계가 어려우면 기초 생활 수급을 신청하면 되지 않나요?”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10대 초중반부터 사실상 원가정과 단절된 채 살아왔다 하더라도 시설에 입소해 시설 수급을 받는 게 아닌 이상, 수급자 선정 절차는 매우 까다롭다. 무엇보다 원가정과의 단절을 입증하는 것이 어렵고, 단절을 입증하지 못하면 부양 의무제 때문에 부모의 소득을 이유로 수급 선정이 불허된다. 그러니 기초 생활 보장 제도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들이 드문 것이 현실이다. 가족과 미미하게 인연을 이어 가며 보장 가구로 묶여 의료 급여 등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들도 있으나 생계 급여는 가구주(세대주)가 수령하기 때문에 생계비 지원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거리 ‘맛보기’의 불가능성


엑시트는 매해 자원 활동가 정기 교육의 마무리 프로그램으로 ‘거리 맛보기’를 배치한다. 이는 탈가정(가출) 이후 겪게 되는 삶의 불안을 잠시라도 체감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24시간 동안 신분증도, 현금도, 휴대 전화도 없이 특정 공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⑪ 

만약의 위험 상황에 대비해 자원 활동가들이 조를 이뤄 움직이고, 상임 활동가들 역시 24시간 호출 대기한다.



나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자원을 확보할 최소한의 수단도 없이 덩그러니 거리에 남겨진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배도 고팠고, 날씨도 무더웠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무료함이었다. 터벅터벅 걸어 다니기에 거리는 그리 안전하지 않았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청소년들의 조언에 따라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남들이 먹다 버린 음료 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몇 시간을 버틴 활동가들도 있었다. 나는 시계를 여러 번, 자주 확인했다. ‘조금만 있으면 고생이 끝난다’는 희망만이 유일한 위안으로 다가왔다.


이 프로그램의 한계를 우리 역시 잘 알고 있다. 타인의 고통을 ‘맛보는’ 기획이 과연 가능할까. 누구도 타인의 삶을,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을 온전히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쉽사리 그리할 수 있다는 오만이 오히려 당사자와 미끄러지는 서비스, 제도, 정책을 낳곤 한다. 무엇보다도 24시간의 거리 맛보기는 ‘끝이 정해져 있음’으로 인해 탈가정이 초래하는 고통의 본질을 비껴갈 수밖에 없다. 돈도 없고, 갈 곳도 없고, 연락할 사람도 딱히 없는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무력감. 이 깊고 막연한 무력감이 절망을 낳는다. 그렇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조차 없다. 바삐 연락하고, 움직여야 오늘 하루 잘 곳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 게으를 수 없다. 만 17세 청소년의 주민등록초본에 27번의 주소 이동 기록이 찍혀 있다. 언제나 삶은 기록보다 흘러넘친다. 이들의 삶 앞에서 나는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성년’의 문턱을 넘어서도


20대로 돌입하면 삶이 좀 나아질까. 〈청소년 기본법〉은 만 9세 이상 만 24세 이하를 청소년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청소년 사회 복지 현장에서는 흔히 10대를 청소년으로 규정하고, 지원 역시 10대 위주로 제공한다 (〈아동복지법〉은 만 18세 미만인 사람을 아동으로 정의). 스무 살이 넘으면 ‘청년’으로 분류되기 시작하고,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하길 요구(강요)받는다. 탈가정 후기 청소년의 경우, 성년이 되어 〈민법〉상 권리를 획득하더라도 갑자기 신분적 지위가 회복되지 않는다. 연령은 청년기에 돌입했으나 사회 경제적 여건은 청소년기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 시기의 학력 단절과 가족 자원 등의 부재로 구직이나 소득 확보 자체가 여전히 어렵다. 또한 학대 피해 및 거리 생활의 스트레스가 트라우마로 깊게 남아 오랜 심리적 치유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근로 능력이 있다고 간주되어 생계 급여가 중단되거나 민간 차원의 지원이 더 이상 연계되지 않아 생계 불안을 겪는다.


무능하기 때문에 취업을 못 하는 게 아니다. 축적된 경험은 다양하지만, 학력이나 자격증 취득 등 이력서에 기재할 만한 전형적인 경력으로 수렴될 수 없어서 문제다. 요즘은 단기 알바 일자리조차 비슷한 연령대의 대학생(대졸자)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구직난은 더욱 심각해졌고, 실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는 신용 대출이나 고금리 사채 등 채무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소득은 차치하고 주거라도 일단 안정이 되면 극단적인 불안은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수도권 지역에서 가족의 지원 없이 자신의 독립된 주거를 갖고 월세를 내며 집을 유지하는 게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보증금이나 전세 자금을 가족에게 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금융 대출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금융 대출의 경우 정기적 소득이 있음을 명백히 증명해야 하며 본인 이름의 부동산 계약서가 있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거 환경은 열악하면서도 월세 부담이 높은 고시원이나 원룸 등에서 지인과 함께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주거비 경감을 위한 현금 지원이 절실하지만 현물 후원을 선호하는 기업이나 재단들이 월등히 많고, 증빙이 까다로워 민간 차원의 지원이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성년’의 문턱을 넘어서도 빈곤은 끝나지 않는다.



도와달라고 부탁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바꾸자


여기 현장은 참 바삐 돌아간다. 거리 청소년의 삶의 고단함을 함께 짊어지는 게 활동가들의 역할이다. 이들이 겪는 곤란을 해결하려면 여러 통의 전화를 돌려야 한다. 온갖 부탁을 대신하는 꼴인데, 제도를 통한 권리로서의 돌봄 체계가 허술하다 보니 각종 인맥에, 민간 기관에, 기업에 처지를 설명하고 자원을 끌어와야 한다. 당사자가 아닌데도 비루한 감정을 느낀다. 종종 우아한 문전박대를 겪을 때면 목울대가 간질간질 서러워진다.


활동가로서 나의 실패와 곤란은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거리 청소년들은 이렇게 기대가 좌절되고, 의지가 꺾이는 상황을 얼마나 많이 겪었을까. 오랫동안 누적된 실패의 경험이 깊은 무기력을 낳는다. “자립 의지가 확인되지 않아서 더 이상 지원이 어려워요.”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선후 관계가 뒤집혔다. 황량한 세상을 살아가느라 의지가 꺾여 온 시간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작은 성취를, 의지의 씨앗을 만들기 위해 ‘건강한 의존’이 필요한 것 아닌가. “(월세 미납 해결을 위한 현금 지원을 요청하자 이를 거절하며) 집을 잃는 것도 하나의 경험일 수 있잖아요?” 같은 반응을 접한 적도 있는데, 이는 청소년 빈곤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을 여실히 보여 준다. 월세 납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바로 그 청소년은 이미 집을 잃는 경험을 무수히 해 온 상태였다. 더군다나 집을 잃는다는 건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며 성장한다’는 따위의 상투적인 성공 서사로 뭉뚱그릴 수 없는 심각한 삶의 불안정을 초래한다.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내 권리를 요청하는 것만으로도 생계 안정을 보장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현장 실무자, 인권 활동가, 법률 활동가들과 함께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청소년의 다양한 주거 대안을 만들어 보려 시작한 운동인데, 문제를 파면 팔수록 딸려 나오는 이슈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양 의무제 폐지는 물론이고 친권, 청소년의 행위 능력 등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도 간단치 않다. 주거도, 소득도 문제지만 살아가면서 의지할 만한 ‘곁’을 형성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거리 청소년 당사자가 이 운동에 어떻게 주체로 함께 참여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다. 전형적인 피해자 서사에 갇히지 않고, 자기 언어로 스스로의 삶을 말할 수 있는 청소년의 존재가 늘어나길 우리는 늘 꿈꾼다.


덧붙임

독자분들께 도와 달라는 부탁을 드리며 글을 맺으려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자립팸, 그리고 짝꿍 조직 엑시트가 내년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올해를 끝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청소년의 가난에, 조직의 가난이 겹쳤다. 두 기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한 해 수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대부분이 인건비다. 청소년들에겐 곁을 지킬 사람이 제일 필요한데, 사회 복지 공모 사업의 경우 인건비 제한 규정이 있어 예산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다. 알려 주고픈 정보든, 소개시켜 주고픈 사람이나 기업이든 무엇이든 좋다.

mingpung@gmail.com으로 연락 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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