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호[기획] 애니메이션 속 성차별 찾기 수업을 하기까지 (Yourlife)

기획/ 페미니즘과 교육

 

애니메이션 속 성차별 찾기 수업을 하기까지

 

Yourlife

초등학교 교사

hansolhansol0829@gmail.com



뻔한 이야기로 시작해야겠다. ‘강남역 10번 출구’다. 그 사건을 겪고 분개해 함께 페미니즘 수업을 연구할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인디스쿨에 올렸다. 인디스쿨에서 이렇게 많은 관심과 우려를 받은 스터디 모임이 있었을까 싶다. 100개가 넘게 달린 댓글 중엔 알뜰살뜰한 응원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그것들을 읽고 답하는 것만으로도 맘이 지친 상태였다.

 

어렵게 첫 모임이 성사됐다. 내가 주최자니까 뭐라도 계획을 말해야겠는데, 나라고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유명한 페미니즘 도서를 읽고 차차 생각해 보자는 두루뭉술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고른 책이 레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였다. 재미있는 책이었고 유익했지만 사실 책을 읽는 내내 좀 당혹스러웠다. 그럴 만했다. TV를 끊은 지 10여 년이 지났고, 초·중·고 때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로, 그 이후에는 여초 사회인 교대, 교직에서 생활했으니까. 그렇게 구분 짓고 나니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남자가 많은 업계가 있긴 하지. 어떤 여자들은 이런 업계를 택한 덕에 고생이 많겠네. 그렇다. ‘어떤 여자들’이었다. 내가 아니라.

 

페미니즘 도서를 읽다 보면 여성을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으로 나누어서 여성을 판단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그 이야기를 읽은 건 꽤 오래 전이었지만 그 논리를 나 자신이 사용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나의 경험도 있었다. 교대 토론 수업에서 토론이 끝나면 늘 기가 세다는 평을 들었고, 평소 나의 자유 의지를 제법 존중하던 부모님은 대학 선택에 있어서만큼은 완고하게 교대를 고집하셨다. 남자의 성기는 놀이터에서 여덟 살 무렵에 처음 봤으며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자취방을 고를 때에는 아무리 비싸도 ‘2층 이상’을 고집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워 도중 남자가 창문을 열고 들여다보려 했던 일을 겪었다. 그때 나는 집에 남자가 있는 척해야 한다는 생각에 있지도 않은 “여보!”를 연호했고 이걸 부모님에게 말하는 순간 “혼자 사는 여자애가 칠칠치 못하게 창문도 안 잠그고 뭐했냐!” 같은 비난을 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내가 어떤 식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는지. 뼈아픈, 하지만 가치 있는 첫 자각이었다.

 

왜 이렇게 어려웠나 싶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내가 그 논리를 사용해 차별 당하고 성폭행 당하고, 살해당한 저 여자와 나 사이의 차이점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나 또한 저러한 위협에 속절없이 노출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나 혼자의 힘으로 바꾸는 게 거의 불가능한 거대한 사회의 구조가 나에게 대단히 불리하게 되어 있음을 굳이 인식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인식하지도 못하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나름 교육 받은 성인인 내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라면 아이들은 어떨까?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

 

학교 현장에서는 이미 양성평등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페미니즘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대다수의 학교에서 창체 시간을 이용해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양성평등 주간을 비롯해 4학년 2학기 사회 2단원에 나오는 3차시 분량의 내용이 그것이다. 이때 아이들은 ‘성역할’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되고 ‘동화책을 읽고 감동해 우는 남자아이를 놀리는 친구들’, ‘축구를 하겠다는 여자아이에게 핀잔을 주는 친구들’ 등의 예화를 통해 성역할의 구분이 남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배우게 된다.

 

하지만 여성이 겪는 성차별은 여기에서 나오는 예시, 그러니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따위의 속담이나 친구의 놀림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남성 중심적으로 만들어진 사회 구조 자체가 가하는 차별이 개인적인 차별보다 훨씬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교과서가 그것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교과서는 그저 ‘남자와 여자가 겪는 개인적인 차별’을 공평하게 하나씩 보여주고 ‘남녀 모두 피해 보는 것이 있으니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라고 말할 뿐, 사회적으로 여성이 겪는 차별 그리고 특히 남성이 얻는 이익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어떤 부담스러움인지 이해가 갔다. 한 쪽으로 치우친 것처럼 보이는 서술은 교과서가 가장 꺼려하는 것 중 하나다. 교과서의 예시도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이 고루 나오게 배치되어 있었고 거기에서 어떤 의도가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이 치우쳐 있는데 교과서에서조차 그 치우침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 피해를 감당하는 것은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지게 된다.


여자아이들은 학교라는 테두리를 떠나자마자, 아니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부터 겪게 될 수많은 성적 편견들에 대해 대항할 방법이 필요하다. 초등학교에서는 오직 여자아이들만 짧은 바지를 입었을 때 지적을 듣는다. 고등학교에서 조금이라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 여학생이라면 원하는 전공 대신 교대를 가라는 부모님의 애정 어린 권유를 들어 봤을 것이다. TV 드라마 속 멋진 남 주인공은 여자의 팔을 마음대로 잡아당기고, 원하지 않아도 키스하며,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소리를 질러 의견을 관철시킨다.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나이이고, 요즘 한창 낮아진 연애 시작 나이를 생각해 보면 이런 모습에 대한 대응 방식 또한 공교육에서 가르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남자 아이들에게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좀 더 크다. 여자 아이들의 경우 굳이 페미니즘 교육을 하지 않아도 살면서 얻는 불이익이 워낙에 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련 자료나 생각을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남자 아이들의 경우 여자 아이들보다 더 힘든 결단,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 독점을 포기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당연히 거부감이 클 것이다. 그것이 왜 필요하며 그것으로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에 대한 교육이 거부감이 적을 시기에 선행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그런 결단을 내리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이미 성역할에 관한 내용은 4학년 때 배운 상태였기 때문에 수업 수준을 정하기 위해 간단한 설문 조사를 했다. 성역할과 관련된 고정 관념이 어느 정도 있는지 알아보려는 설문지였는데 “남자아이가 수학을 더 잘하는 것은 사실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여자가 좀 더 잘한다”와 같은 성역할 관련 응용 문항과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자는 성폭행을 당할 수 있다”와 같은 성폭행의 원인에 대한 질문이 섞여 있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성역할에 대해 분명히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편견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많았고, 성폭행과 여성의 행실을 연결시키는 문장에 대해서는 더 높은 비율의 아이가 ‘연관이 있다’는 답을 했다.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차마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반에도 설문 조사를 부탁드렸다. 총 100여 명의 아이로부터 답안지를 돌려받았다. 결과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생활 속에서 겪는 성역할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있으리라는 가정 하에 사회적인 성차별에 대해 수준 있게 다뤄 보자는 나의 여유 만만한 계획은 시작부터 뒤틀렸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해야 한다는 것에 대놓고 반대하는 아이는 없었으나 교과서에 나온 예시가 아닌 실제 상황을 맞닥트렸을 때, 아이들은 이것이 성차별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하기 힘들어했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나의 잘못이었다. 남자는 운동을 잘 하니 여자 친구들과 짝 피구를 할 때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고, 아이들에게 “밤늦게 다니거나 너무 꾸민 옷차림을 하면 나쁜 일을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으니까. 아이들은 그저 선생님의 가르침을, 사회의 가르침을 너무나도 잘 내면화한 것뿐이었다.

 

 

“뭐야, 다 남자네요?”

 

하나하나의 성차별 사례를 가르치려 하면 끝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사회 현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면 분석 과정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형태로 수업을 기획해야 했고, 좀 더 쉽고 거부감이 덜한 소재가 필요했다. 남녀 간의 임금 격차 그래프를 보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이들이 분석할 수야 있겠지만 그들의 경험에서 너무 동떨어진 소재이니 만큼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는 힘들 것이란 판단이었다. “그럼 남자가 다 나쁘다는 거네요” 하고 볼멘소리를 할 남학생들의 마음도 한편으론 이해가 갔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도 여성이 차별 당하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이가 많은데, 하물며 초등학교가 사회생활 경험의 전부인 남자아이가 여성이 약자라는 것을 마음 깊이 공감하기는 힘들 터였다.

 

그래서 찾은 것이 아동용 애니메이션이었다. 아이들이 이미 경험해 본 소재이고, 가족 중 누군가, 이를테면 동생이 경험하고 있으며, 남자아이들 또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소재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애니메이션을 한 편씩 다 보기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지루할 수밖에 없으니 어떤 방식으로 분석을 해야 할지가 고민거리였다. 또 당시가 학기 말이었기 때문에 얼마 안 남은 수업 시수 안에 수업 내용을 어떻게 녹여 넣을지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였다.

 

다행히 적절한 단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민주적인 문제 해결 절차를 배우는 사회과 학습 내용과 주장하는 글쓰기를 익히는 국어과 학습 내용을 합쳐 프로젝트 식으로 운영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회 교과서에는 공동체의 문제를 찾아 분석한 뒤, 서명 운동을 통해 여론을 모으고 청원하는 과정이 민주적 문제 해결 절차로 소개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직접 거리에 나가 서명을 받는 것은 어려운 점이 많이 있으니 인터넷을 통해 서명을 받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쓴 주장하는 글을 게시해 여론을 모아 보는 식으로 수업을 전개해 보자는 계획이 섰다.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 분석 과정을 공을 들였다. 다행히 홈페이지에 있는 캐릭터 소개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성차별적인 내용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다. 주인공의 성별은 무엇인지, 성별에 따른 주요 캐릭터의 수는 어떻게 되는지, 캐릭터를 상징하는 색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캐릭터 소개에서 사용된 성역할이 담긴 언어들이 무엇이 있는지 학습지를 통해 분석하도록 구성했다.


➊ (수업의 자세한 진행 과정 등은 다음 언론 기사에 잘 소개되어 있다. “왜 주인공은 항상 남자지? 초등학생들 “양성평등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주세요””, 〈경향신문〉, 2016년 8월 4일.)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주인공의 성별 분석하기를 시작하자마자 아이들 사이에서 “뭐야. 다 남자네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게 왜 문제입니까?” 역으로 내가 질문하자 아이들이 당황했다. “여자도 있어야지요.” “왜 여자가 있어야 합니까?” “우리 반에 남자가 13명이고 여자가 12명이니까. 거의 반반이잖아요. 그럼 만화 주인공도 현실처럼 거의 반반으로 해야지 어린아이들이 오해를 안 할 것 아니에요.” 아이들 사이에서 오.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만약에 모든 주인공을 남자로 하면 어린 아이들이 어떤 오해를 할 수 있나요?” 수많은 답이 되돌아왔다. 주인공은 늘 멋진 역할을 하는데 그게 다 남자만 나오면 남자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남자 아이들 중에서도 막 나서서 뭘 하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아이가 있을 수 있는데 주인공이 다 남자로만 나오면 내가 남자답지 못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요즘에는 반에서 회장을 뽑을 때에도 남자 회장 1명, 여자 회장 1명으로 공평하게 뽑는데 저렇게 하는 건 불공평하다.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아이들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모두 남자 캐릭터인 것이 공평하지 않다고 주장했고, 소수의 여성 캐릭터가 하나같이 핑크색으로 상징되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쉽게 파악해 냈다. 그건 남자 어린이가 핑크색 티셔츠를 입었다고 놀림을 받는 현실이었고, 여자 어린이가 치마를 입지 않으면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울먹이는 상황이었다. ‘일반적인’ 여자아이는 배려하고 요리를 좋아하고 꾸미는 것을 즐기는 애교쟁이여야 한다는 뜻이었으며, 그렇지 않은 여자아이는, 또 겁이 많고 운동을 싫어하는 얌전한 남자아이는, 이상한 아이로 취급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런 편견도,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여러 가지 차별도 사라지기를 원한다. 그런 세상에서 남자아이는 핑크색을 포함한 그 어떤 색을 좋아한다고 말해도 놀림 당하지 않을 것이고, 여자 아이는 자유롭게 원하는 옷차림을 하고도 스스로를 예쁘고 멋지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이 원하는 세상은, 내가 페미니즘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그리고 내가 누리기를 바라는 세상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이 아름답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나처럼 서툰 많은 이들이 나와 함께하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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