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호[에세이] 하야를 하야라 말하지 못하고 (조영선)

201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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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하야를 하야라 말하지 못하고

학생회 담당 교사의 찌질한 고백

 

조영선

서울 영등포여고 교사

imaginer@hanmail.net

교사로 ‘행복한 밥벌이’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학생인권을 만났습니다. 학생인권을 통해 ‘내 안의 꼰대스러움’으로부터 해방되면서 학교를 견디는 힘이 커지고 있어요. 학교에서 좌충우돌하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는, 괜찮은 교사이기보다는 ‘괜춘한’ 인간이고 싶습니다.



어찌 보면 2014년 4월 16일 이후, “박근혜 정권 퇴진”은 일상의 구호였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려웠다. 교사라는 이유로,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서며”라는 제목의 글을 청와대 게시판에 대표로 올렸다는 이유로 한 교사가 구속되었다 풀려났다. 그 글과 관련된 교사들도 줄줄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 다음 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전교조도 박근혜 정권 퇴진 선언을 하긴 했지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퇴진을 내건 선언을 할지 말지 논쟁으로 진통을 겪었다. 그래서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시고 시신이 침탈될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도 구호는 “책임져라”였다. “박근혜 정권 퇴진”이 입에서만 맴돌던 중,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갑자기 다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시대가 되었다. 정말 다이나믹 코리아다.


작년에 나는 전교조 본부에서 전임을 하면서 재직하고 있는 학교 교사의 이름으로 박근혜 정권 퇴진 선언을 다시 올렸고 그것을 이유로 압수수색도 당했다. 하지만 전임을 마치고 어렵게 복직한 뒤로는, 조용해서 질식할 듯한 학교의 공기 속에 얌전히 살고 있었다. 학생회를 맡았지만, 조심스러웠다. 어떤 면에서 학생회는 질서정연했고, 학교와 학생들 사이에 껴서 자기 목소리를 잘 드러내지 못했다. 선후배 간의 규율도 강한 편이었다. 교사가 함부로 그 질서에 개입하는 것이 혹시 학생회의 자주성을 해치는 게 될까 염려스럽기도 했다. 학생회는 예산에 대한 걱정이 많아 간식도 안 먹고 일하는 데도 익숙한 상황이었다. 우선은 재정을 지원하고, 중요한 일들에 대해 논의하는 정도로 내 역할을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11월 3일 학생의 날 이벤트를 준비하자는 제안을 했다. 엄청난 기획을 했던 것은 아니고 학생의 날 시즌이 돌아왔으니 그냥 할 일을 한다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학생회 회의에서는 재작년에도 학생의 날 이벤트를 했다고 해서 그때의 피켓에 올해 구호 정도를 추가해 피켓을 만들고 ‘너의 꿈을 응원해’라는 게시판을 만들어 3일 정도 캠페인을 하기로 결정되었다. 기획 단계에서 떠올렸던 ‘꿈’은, 예컨대 ‘수능 대박’과 같은 진로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박근혜 하야”가 붙은 게시판

 

그런데 그 게시판에 학생들이 쓴 “박근혜 하야”가 붙었다. 그러더니 곧 그 주변에 박근혜-최순실 사건과 관련된 여러 포스트잇이 붙었다. 그러자 생활지도부장 교사가 갑자기 창의인성부로 연락을 해 왔다. 그는 “애들한테 자유를 주면 이렇게 저질스럽게 나온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다 떼겠다고 했다. 다른 부장은 애들이 보면 안 되는 것이니 반 덮어 놓자고 했다. 나는 떼려는 손을 막으며 이건 학생회가 연 행사이니 학생회와 상의해 보고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서둘러 학생회와 대책 회의를 했다. 학생들의 의견은 ‘학생회가 붙인 것도 아니고 학생들이 붙인 것을 학생회가 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또 “선생님들이 차라리 시위를 나가면 나가지 학교에 이런 걸 붙이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선 못 떼겠다고 말해 보고 시위를 나가자”라고도 했다. 긴장감 속에 학생회 회의가 진행됐고, 그 다음 날 아침 7시 55분 학생회 학생들은 교장실로 갔다.

 

학생회 운영위원 전체가 교장실에 들어갔고, 왜 뗄 수 없는지 조목조목 말했다. 교장은 학교는 정치와 종교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며 이 문제는 학생회가 교장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자신도 이 시국에 대해 할 말이 있지만, 학교에서는 말하지 못한다며 정치적 금치산자로서의 교장의 처지를 이야기했다. 학생들은 이에 더 말을 하지 못했다. 사실 교장은 공권력을 행사하는 공무원 중 하나니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교장이 적용받는 그런 기준을 학생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학생들은 교장도 못하는 것을 학생들이 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교장이 결국 물러서지 않으니 학생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교장은 간담회를 마치고 나보고 올라가라고 하더니, 회장, 부회장을 불러 1교시 전에 포스트잇을 다 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어찌 할지 모르는 학생회 학들에게 나는 우선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니, 학생들에게 상황을 알린 뒤 자진 철거해 달라고 요청한 후 안 되면 정리하겠다고 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그래서 학생회는 11월 2일 오전 9시쯤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학생회입니다.

학생의 날을 맞아 준비한 캠페인에 대해 말씀드릴 사항이 있어 글을 올립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진행되는 학생의 날 캠페인 진행 중 여러분의 메시지 내용에 대해 학교 선생님들과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학생회는 여러분의 의견을 끝까지 존중하려 했지만 교장 선생님께서는 학교 내에서는 정치적, 종교적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중립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몇 가지 글을 철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학생회는 학생회 임원이기 이전에 영등포여고 학생의 입장에서 친구 혹은 선배의 메시지를 함부로 뗄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생각한 최선은 점심시간 전까지 자체적으로 떼어 주시는 것입니다. 저희 학생회는 여러분들의 의견을 존중할 것이며 다른 방안을 찾아 다시 공지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고 나서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게시판에 그 사이에 누군가 교사의 이름을 거론하며 “OOO과 OOO 학교에서 나가”라는 포스트잇을 붙였다. 이런 억압적인 상황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교장은 특정인에 대한 인신공격이 행해졌다며 그것을 문제 삼았고,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며 당장 철거하라고 했다. 점심시간에 결국 다른 부장이 학생회를 시켜 포스트잇들을 철거하게 했다. 학생들은 일부는 철거하고 일부는 다른 포스트잇에 가려 놓았다. 학생들은 이렇게 포스트잇을 떼게 된 것에 분노하여 이에 항의하는 포스트잇들을 붙였다.

 

학생회에서는 학생들의 이런 목소리를 모아 학생회가 주최하여 11월 12일 집회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당일 날 신길역에는 학생회 위원들을 포함하여 18명의 학생들이 모였고, 집회장에서는 먼저 가 있던 학생들과 만나기도 하였다.

 

함께 가 보니, 이 학생들은 모두 거리 집회를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인파에 묻혀 잃어버릴까 봐 내가 손을 들고 걸었더니 모든 학생들이 함께 손을 들었다. 나름 학생회 이름으로 만든 피켓에 각자의 목소리를 담아 학교에서 못 외쳤던 그 말들을 열심히 외쳤다. 서로 잘 모르는 학생들끼리 만나 함께했던 이 경험이 학생들에게 어떤 자욱국 남겼을지 사뭇 궁금하다.

 

 

‘찌질한’ 고백을 하는 이유

 

화려한 시국선언과 학생들의 재기 발랄한 표현이 분출되는 상황에서 어찌 보면 초라한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이유는 교장과 학생회 사이에서 침묵을 지켰던 나의 ‘찌질함’에 대해 고백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업 안에서 대자보 쓰기를 하는 건 쉬웠다. 수업권이라는 틀 안에서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내 권한 안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드러나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수업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공적인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되는 순간, 나는 걱정했던 것 같다. 나의 개입이 학생회로 하여금 배후설에 시달리게 하지 않을까? 결국 인신공격이라는 빌미로 포스트잇이 다 떼어지긴 했지만, 이건 학교에서 정치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던가? 학생들의 기지라고 일컬어지는 “교실 밖은 위험해, 하야 하야 순시려”와 같은 풍자도 이런 현실과 연관되어 있다. “박근혜 정권 퇴진”이라고 쓰면 혼날까 봐 추우니 문 닫으라는 말에 관련된 단어를 넣어 붙인 것이다.

 

그런데 교실 밖은 위험하다고 하지만, 어쩌면 정치적으로는 가장 안전하다. 학교 안에서 박근혜 하야를 외치면 눈총을 받지만 교실 밖에서는 칭찬을 받는다. 하지만 이 칭찬도 허용된 범위는 정해져 있다.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에 대해 대견해하고, 중고생까지 나섰으니 곧 혁명이라도 될 것처럼 기특해하며 기뻐하지만, 한편으로 시간이 늦어지면 이제 할 만큼 했으니 집에 가라든지, 너희가 이렇게까지 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꼭 붙인다. 학생이 대자보를 붙이자 교사가 이에 호응하는 대자보를 붙인 일이 감동적인 사례로 신문 기사로 소개되는 이유는 그것이 기삿거리가 될 정도로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자랑스럽게 학생들의 대자보를 올리는 학교보다는, 우리 학교처럼 꿈틀거리는 학생들과 애면글면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교와 교사들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 몰래 학생회가 공식적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한 집회를 학생들과 함께 갔다가 돌아오는 길. 한편으로는 작은 꿈틀이라도 한 것 같아 기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또 학교에서 침묵의 카르텔은 계속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대통령은 퇴진하라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도 자신에게 폭언을 하는 교사에게 대들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는 학생들에게 나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학교 밖의 박근혜에게는 물러가라고 외친다고 하지만 학교 안의 수많은 박근혜들한테 우리는 어떻게 하자고 말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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