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공 지능 시대 앞에 선 교육
"반드시 일어날 일인가요,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인가요?"
인공 지능 시대, 교육에 대한 성찰
정용주
서울 염경초 교사, 본지 편집위원장
edcom234@gmail.com
이메일이 서너 개쯤 되고 혈액형은 성격 파악 어렵다는 AB형인 교사입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이지만 의식은 점점 노동자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물질적인 부자보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미래의 유령이 스크루지의 묘비를 가리키자 스크루지는 이렇게 묻는다. “이것이 반드시 일어날 일인가요, 아니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인가요?”
기술과 세계의 미래를 놓고 같은 질문을 하면, 답은 후자가 된다. 기술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낳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도달할 미래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의지가 개입하는 미래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례없는 풍요와 자유를 얻을 수도 있고,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재앙을 인공 지능과 함께 맞이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인공 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어떤 미래의 인적 자원을 교육이 양성할 것이며, 언제부터 정보통신 기기를 활용하게 할 것이며, 언제부터 코딩교육을 할 것인가가 아니다. 학교 행정, 학교 문화, 교육과정, 시설 등 폐쇄적이며 위계적이고 분업화된 시공간적 배움의 방식을 네트워크적으로 재구성하며 공유 지식을 바탕으로 서로 협력하며 교차하는 배움의 망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기술이 인간을 능가하는 시대,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시대 그리고 오래된 환상
대한민국 헌법에는 근로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국방의 의무 등 4대 의무가 있다. 근대 국가는 이러한 네 개의 의무를 국민에게 부여함으로써 작동한다. 우선 인간은 노동을 하고 그 대가로 받은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적당한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공동체와 국가가 작동한다. 그리고 이러한 세금을 내는 국민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의 의무를 부여하고, 마지막으로 국가의 존속과 국가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병역의 의무를 부여한다.
그런데 인류는, 지루한 일을 하지 않고서도 모든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되어 우리의 진정한 관심사, 흥밋거리, 열정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환상을 오랫동안 꿈꾸었다. 그날이 오면 자동화한 하인(기계)들이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의식주뿐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불쾌한 일을 지겹게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상상했다. 또한 자율 주행, 반복적인 일의 기계 대체, 인공 지능의 발전, 로봇공학과 유전공학은, 병역의 의무조차도 기계와 인공 지능이 대체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학교에 오지 않고도 배울 수 있는 상상을 실현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는 생산성의 폭발적 증대와 풍요의 기반이 되지만, 다른 쪽에서는 일자리 감소에 따른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전문직보다 중간 임금 노동자의 실직이 많아지고 있고 파이는 커지는데 내 조각은 작아지는 현상과 함께 노동과 자본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기술의 진보는 기계화에 따른 실직, 일자리 축소, 그리고 경쟁의 심화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4차 산업 혁명의 도래를 이야기할 때 기술은 풍요를 증대시키는 동시에 격차를 증대시킨다고 말하며 제2의 기계 시대로 대표되는 디지털 세계는 대단히 복잡하고 치밀하기 때문에 많은 위험을 수반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이제까지 미래라는 시간 속에서 그리고 다소 이론적인 수준에서 4차 산업 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제4차 산업 혁명의 도래를 목도하게 했다. 이제 각종 산업에서 인공 지능의 활용 문제를 포함한, 스스로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인공 지능과 인간과의 관계,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 이후의 문제에 대한 담론들이 생산되고 있다. 우리 역시 이러한 다양한 논의들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인공 지능과 관련된 기술들이 급속히 진화하고 있고 이러한 진화가 우리 삶, 우리 일, 우리 경제와 교육을 변모시키는 역동적인 힘들의 전모를 우리가 생생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고 자동화되는 세상에서 인간의 배움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시작되기를 희망한다.
알파고 시대를 말하기 전 확인해야 할 전제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교육 관련 담론이 생산되었다. 국가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국가는 이러한 새로운 담론의 배치를 통해 학생을 교육하고, 교사의 교수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알파고 충격 이전에도 지식 기반 사회 또는 인지자본주의 시대, 글로벌 무한 경쟁 담론을 통해 국가는 개인에게 미래 학교라는 비전을 수립하고 창의성 교육을 강조해 왔다. 이러한 비전을 바탕으로 최근 발표된 (문제가 많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단편적인 정보를 습득하고 익히는 것을 넘어서서 정보와 지식을 창출하고 확산하며 활용하는 능력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 분석적 사고, 협력적 문제 해결 능력, 창의적이며 혁신적 사고, 인간관계 능력, 자기 관리, 세계적 생존 능력 등을 갖춘 세계 시민이 될 것을 학습자에게 요구하고 있고, 교사에게는 이러한 학습자를 기르는 교육을 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알파고 이후의 교육 담론의 형성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교육적 공간에서 이러한 미래 교육의 담론을 생산, 소비하고 있지만, 교육에서 오고가는 담론을 생산하는 진정한 주체는 교육 관련 주체들이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교육 관련 주체들만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장은 더 이상 단지 배우고 가르치기만 하는 투명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 흐름으로 수렴된다. 우선 교육과 학교가 시민의 양성이라는 공적 가치를 저버리고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과 지식의 생산에 봉사하는 것을 비판하는 흐름이 있다.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맥락에서 학교와 교육이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과 지식의 생산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학교는 정확한 교육 상품의 시장 정보, 곧 교육 공급자들의 서비스의 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비판하는 흐름도 존재한다. 이러한 학교와 교육을 바라보는 균열은 근대적 공교육 제도로서 학교교육 체제가 수립되는 당시부터 존재해 온 계급적 불일치를 드러내며, 학교 제도가 이상에 대한 완전하고 견고한 합의의 산물이 아닌 정치적 반대 세력 간의 타협의 산물임을 보여 준다.
교육은 지식이나 정보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올바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여기서 올바른 성장이란 사회 속에서 인간 존재의 능력과 가능성을 계발시켜 주고 확장시켜 주는 것이다. 이는 교육에서 균형성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고 균형성의 의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올바른 성장으로서 교육을 지향하려면 학교교육은 성장의 일정한 시기에 있어 중요한 요구와 능력에 알맞은 학과목의 종류를 재구성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교과 간의 적당한 균형을 선택하여 학습자의 성장을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올바른 성장을 위해 신체적인 성장, 지적, 도덕적 성장을 포함하여 바른 성장과 발달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공 지능 시대에 교육의 변화를 논하기 이전에, 먼저 교육의 전제를 수립해야 한다. 나는 학교교육이라는 공교육 제도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동등한 자유와 합당한 평등의 추구를 구현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교육은 여건에 둔감하고 선택에 민감한 분배의 원리를 통해서 개인의 의지적인 선택과는 무관한 여건이 분배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중립화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분배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개인 스스로가 책임을 지게 하면서 사회와 공동체를 존속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모든 교육의 문제는 자유와 평등의 조절을 통한 상생과 공존의 문제로 수렴된다. 즉 모든 교육은 사회 구성원들의 공동적인 삶communal life과 구성원 각자의 좋은 삶good life이 성공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원리를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공동의 삶과 좋은 삶은 보완적일 수도 있으며 상쇄적일 수도 있다. 가령 공동의 삶을 강조하다 보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개인이 생각하는 좋은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개인이 생각하는 좋은 삶을 강조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공동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교육의 문제가 형평성의 관점에서 판단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형평성은 자유와 평등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조절 이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평성은 동등한 자유equal liberty와 합당한 평등just equality으로 규정할 수 있다.
개인으로 보면 무한한 자유가 허용되지만 사회적 관계에서는 어느 한 사람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이 나에게 허용하는 만큼 자유를 남에게 행하는 것과 그 역의 관계가 동시에 적용되는 동등성이 형평성의 이념을 구성하는 것이 동등한 자유의 관념으로서 상생의 논리이다. 상생의 논리를 구성하는 다른 개념은 평등의 원리이다. 모든 개인은 목적적 존재로서 평등하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는 교육적 가치들이 동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처해 있는 여건에 따라 평등의 의미가 상이하게 해석될 수 있다. 때로는 차등이 평등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선택될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이 평등의 원리가 여건에 따라서 상이하게 적용되는 것이 형평성의 이념을 구성하는 합당한 평등의 관념이며, 이러한 합당한 평등의 관념은 상생의 원리를 구성한다. 결론적으로 상생의 논리는 동등한 자유와 합당한 평등을 양축으로 하여 공동적인 삶과 좋은 삶이 일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의 논리이며, 이러한 상생의 논리는 공동체를 유지·존속하면서 그 속에서 개인의 능력과 자유의 실현을 극대화하는 기반이 된다.
인공 지능, 그리고 진짜 충격적인 것
인류는 증기 기관이 이끈 1차 산업 혁명, 컴퓨터와 인터넷이 불러일으킨 2, 3차 산업 혁명을 거친 후, 이제 인공 지능이 선도하는 4차 산업 혁명 초입에 서 있다. 인공 지능으로 인한 4차 산업 혁명은 이전의 산업 혁명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알파 동물은 언제나 인간이었다. 하지만 인공 지능의 등장은 인류보다 지능적으로 더 완벽한 존재의 등장이다. 인간만의 전유물이었던 지적 활동은 더 이상 우리만의 특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인류 생활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 농경도 가축도 아니고 기술이라고 말한다. 증기 기관의 발명과 개량이 바로 그 원동력이다. 그리고 지금 인류 역사의 궤도가 다시금 크게 변하고 있다고 본다. 증기 기관이 제1의 기계 시대를 열었다면, 디지털 기술이 제2의 기계 시대를 열고 있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제1의 기계 시대가 인간의 육체적 능력을 강화했다면, 제2의 기계 시대는 정신적 능력을 강화할 것이다. 단순 반복적인 일은 컴퓨터가 대신하고 인간은 창의성과 감수성이 요구되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이러한 방향에서 교육과정, 수업 방법, 평가, 교육 제도 등을 개혁하면서, 기계의 엄청난 처리 능력을 인간의 창의성과 결합한 새로운 협력 관계를 설계하고, 근본적으로 달라진 세계에 걸맞은 교육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 정책 설계와 개혁의 방향은 여건에 둔감하고 선택에 민감한 교육 정책과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고, 그 핵심은 기술의 진보로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인공 지능이란 사고나 학습 등 인간이 가진 지적 능력을 컴퓨터를 통해 구현하는 기술이다. 특히 구글의 딥 마인드로 대표되는 인공 지능은 정책 네트워크와 가치 네트워크를 통해 컴퓨터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학습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특히 알파고는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수많은 네트워크 프로세스를 이용해 엄청난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범위를 좁히며, 가치망으로 최적의 판단을 찾아내는 것은 경험과 이해의 성장이라는 교육의 문제와 연결되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자동화된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제2의 기계 시대는 한편에서는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의미를 갖지만, 인공 지능이 인간의 기억과 학습 능력을 뛰어넘는 문제를 야기한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도구가 노동과 지식을 재편하며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는 시대를 의미하며 기술과 사람이 건강한 관계를 구축할 방도를 모색하는 것을 교육이 보다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함을 의미한다.
인공 지능 시대에 교육의 변화에서 핵심적인 것은 가르치는 활동을 하는 교사와, 배우는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의 변화이다. 우선 가르치는 활동을 주로 하는 교사의 역할이 변화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가르치는 직업으로서 교사가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의 논의와 함께 뜨거운 주제가 되고 있다. 이미 외국의 경우 로봇에 의한 강의가 만들어지고, 평가와 피드백 등을 로봇과 인공 지능이 대체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교사도 컴퓨터와 드라이버와 같은 운명이 될지도 모른다.
‘컴퓨터computer’는 원래 사람을 뜻하는 단어였다. 1828년 발간된 《웹스터 사전》은 컴퓨터를 ‘계산하는compute 사람-er’이라고 풀이했다. 계산원을 지칭하던 컴퓨터에 ‘기기’라는 의미가 추가된 것은 1913년이다. 두 세기만에 계산원이 계산기가 되고, 또 한 세기만에 계산기가 오늘날의 컴퓨터로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는 이제 인공 지능을 갖추고 로봇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처럼 모든 기술은 결국 그동안 해당 업무를 수행해온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운명을 지닌 채 태어난다. 컴퓨터가 계산원에서 오늘날 만능 기계를 가리키게 된 것처럼, 머지않아 ‘교사teach+er’라는 단어도 ‘교육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려고 하는 것을 찾아주고 도와주는 기계’를 뜻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인공 지능과 로봇이 가져다 줄 문명사적 차원의 변화를 내 삶과 밀착된 질문들을 통해 봐야 한다. 어떻게 교육이 그렇게 될 수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비행기 조종사, 기자, 약사처럼 기계가 대체할 수 없을 거라 여기던 지식 산업과 서비스 산업의 전문 직종마저 이미 자동화 기술이 속속 꿰차고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실시간 자동 번역이 가능하고 언어 장벽이 사라지는 시대에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질문은 외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배우는 활동을 주로 하는 학생들의 문제로 전이된다.
인공 지능 시대 교육의 문제
인공 지능과 뇌과학의 권위자인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최근 출판한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라는 책에서 딥 러닝 기술 개발이 100년 이상 걸릴 것이라 예상한 인공 지능 시대의 도래를 20~30년 후로 급격히 앞당겼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전 세계 IT업계는 발 빠르게 기술 혁신 중이고 놀랍도록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드는 예는 사진만 보고 그 상황에 대한 글을 대신 써 주거나 신문 기사를 쓰는 인공 지능, 차원이 다른 학습 능력을 가진 통역 인공 지능, 사물을 인간과 같이 파악해 내는 진화하는 지각 능력 등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런 기술의 발달로 인해 머지않은 20여 년 후엔 산업 혁명과 같은 급격한 전환의 시기가 도래할 것이고 현재 유망하다고 생각되는 직업을 포함해 전체 직업 가운데 45%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김대식은 결론적으로 산업 혁명 시대에 주체가 되지 못해 아직도 고생하고 있는 한국이 새로운 시대 변화의 과정에서 같은 과정을 밟지 않고 주체로서 살아남는 길은 현재의 국영수 중심 교육 제도를 개혁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국영수 관련 분야는 창의력 이외의 분야에서 100% 인공 지능이 인간을 능가하기에 지금 같은 교육 속에 성장한 아이들은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인공 지능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창의성과 공감 능력과 깊은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꼽는다. 마지막으로 그가 강조하는 것은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맞아 사회 제도도 새롭게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 지능을 가지고 있는 0.00001%가 모든 혜택을 가져간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불평등의 사회가 되며, 이는 시장 경제가 무너지고, 소비자가 사라지는 것이란 이야기다. 인공 지능은 우리가 잘만 활용하면 유토피아고 잘못하면 디스토피아인데, 항상 그랬지만 천국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어려운 반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아주 쉽다. 인공 지능과 함께하는 미래를 천국으로 만들지, 지옥으로 만들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그럼 이러한 인공 지능의 시대, 기계와 공존하는 시대, 우리들은 어떤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 어떻게 서로에게 공감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어떠한 교육이 되어야 하는가? 그런데 사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해 왔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해 온 질문들을 재음미해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 우리는 대입 제도 개선, 미래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학력관, 의무교육을 보편적으로 확대하면서도 개인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교육제도 설계, 국공립대학네트워크와 일과 학업의 연계, 마을과 연계한 학교교육, 놀이터가 안전해야 더 모험적일 수 있다는 상식으로부터 출발한 기본 소득의 보장과 사회적 안전망 구축, 고등학교 학력 인증과 대학 입시의 분리를 통한 민주시민적 자질 함양과 이를 토대로 한 진로 직업의 탐색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것들은 알파고 시대에 오히려 더 강조되어야 할 교육 개혁의 원칙들이다. 이에 더해 고등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는 문제, 우리의 교육 자체가 협력적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공유 지식을 확대하고 공유 지식의 장 속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으로서 여건에 둔감하고 선택에 민감한 제도를 설계하는 문제, 수업과 교과교육으로 분할된 지식을 총체적 경험이라는 맥락에서 융합하는 교육과정과 수업·평가의 혁신, 이를 위한 국가 수준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의 대대적인 사회적 이양과 지방 교육자치의 확대 등이 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근대적 학교 체제는 자아실현의 최종적인 목표를 노동에 두고 있다. 즉 최종 학력을 획득하여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도록 하는 방향에서 나이에 따라 단계적으로 설계되었다. 이것은 아동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나름 균형 있는 성장에 기여하는 등, 나름대로 기여한 점이 많다. 그러나 학교라는 독점적 공간에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출석하여,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만들어진 교과서의 내용을, 공식적인 면허를 가진 교사가 가르치고 얼마나 잘 배웠는지 평가하고, 이러한 평가결과가 누적된 학력을 토대로 노동 시장에 진출하는 방식은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다. 패러다임 변화에 맞게 이러한 근대적 교육 체제를 해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2016년 시도교육청 주요 업무 계획이라는 문서상에 등장하는 가장 빈도수가 높은 키워드 검색을 해보면 다음의 열 가지가 공통적으로 등장하며 강조된다.
학습하는 방법의 학습, 즐거움 배움, 삶의 맥락을 통한 학습과 현실 참여, 창의적이고 협력적 문제 해결, 가르치지 않는 배움 –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창조적 사고, 배움의 과정의 강조, 마을·사회와 연계된 배움, 정답을 추구하지 않는 교육, 다양한 표현 능력 신장
이러한 키워드들은 모두 알파고 시대 교육이 고민해야 할 주제들이다. 이것을 하나의 키워드로 다시 묶어 내면 배움의 즐거움이 되며, 삶의 역량을 키우는 배움이 된다. 이처럼 알파고 이후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다룰 진정한 교육의 문제들은 교육을 통해 어떤 직업을 얻느냐의 문제를 넘어설 것이다. 역설적으로 지금과 같은 배움의 형식은 한계에 봉착하지만, 배움 자체가 평생교육적 관점에서 재구성되는 안드라고지적 전환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기계를 활용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인간이 기계와 공존하며 기계가 인간의 일부가 되는 삶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역량을 평가하는 방식도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이 기계와 공존하며 함께 성장하게 되기 때문에 인공 지능과 인간 지능을 구분하고 인간의 지능과 그 지능에 따른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교라는 배움의 독점적 공간에서 교사만이 가르치고, 교과로 분절된 지식의 내용을 공부하는 방식은 재구성되어야 한다. 모든 것이 분절되어 각자 도생하고 발전하는 갈라파고스적 진화의 방식은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알파고 시대에는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삶 자체가 혼종적이며 통합적이라는 것, 듀이와 같이 인간의 배움 자체가 총체적인 경험의 계속적인 재구성 과정임을 인식하고 이것을 결합하는 교육과정과 교육 체제가 구안되어야 한다.
더불어 교육이 기술을 따라가지 못할 만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 때, 일반적 불균형이 심화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과감한 정부 투자를 해야 한다. 만약 이 점이 고민되지 않는다면 미래교육은 보다 세련된 의미의 자기 책임 윤리가 구조화된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교사의 지원을 포함한 다양하고 디테일한 설계가 필요하다.
인공 지능 자체를 완벽하게 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공 지능도 결함을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의 사소한 결함을 예측하지 못한 것이 연쇄적인 사건들을 통해 확대되면서 훨씬 더 큰 규모의 피해를 일으키는 현상, 즉 찰스 페로가 말하는 ‘시스템 사고’ 또는 ‘정상 사고’ 현상이 알파고 시대에 심화될 수 있다. 그리고 조지 오웰이나 윌리엄 깁슨이 그린, 자유가 없고 독재자가 기술을 이용하여 권력을 휘두르며 정보 흐름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가 인공 지능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사이버 발칸화Balkanization➊는 학생들에게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하지 못하게 하고, 차별, 조롱, 멸시, 모욕감을 유발하며 약자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종합하면 인공 지능 시대에는 인권적인 것, 사회적인 것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알파고 이후 오히려 민주시민교육, 인권교육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다.
➊ 국가나 지역이 서로 적대적이거나 비협조적인 여러 개로 쪼개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발칸반도에서 분쟁들이 일어났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교육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대학 등록금은 계속해서 치솟고 있다. 그런데 대학 졸업장은 더 이상 고용의 보증 수표가 아니며, 학력 인증 시스템의 견고한 고리도 점점 약화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인공 지능은 교육을 공공재로 만들고 있으며, 지식의 유효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학생들은 새로운 정보를 얻고 배우기 위해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며, 지식의 유효 기간이 짧아진 시대에 대학을 가서, 졸업장으로 취업을 할 필요도 없게 된다.
알파고 사건은 인공 지능 시대의 준비 운동 단계에 불과하며, 제2의 기계 시대로 더 깊숙이 진입할수록 우리는 경이로운 기술들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기술이 모든 것을 디지털로 완벽하게 복제하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조합하여 혁신을 이루며,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해 가면서 인류가 역사상 가장 놀라운 두 가지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진정한 인공 지능의 탄생과 공통의 디지털망을 통한 모든 사람의 연결이다. 이렇게 무수한 기계 지능들과 상호 연결된 수십억 개의 인간의 뇌가 서로 협력하여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노동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재편되는 시대에 교육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논하는 것은 어려움을 넘어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여건의 둔감함과 선택의 민감함이라는 균형을 통해 교육이 실현하고자 하는 미래는, 기술의 진보가 부와 소득 불평등을 심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덕분에 우리가 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은 덜하면서 더 많은 부를 만들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며, 개인적으로 삶에서 선택의 여지가 늘어나고 다양성이 커지며 질이 향상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은 특별한 능력을 갖추거나 고등교육을 받은 노동자는 가치를 창조하고, 평범한 능력을 갖추거나 교육을 덜 받은 노동자는 같은 기계에 의해 대체되어 빈곤해지고 불평등해지는 상황을 만드는 사회의 재분배 시스템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러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이 가속될수록 뒤처지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고, 현재의 기술은 덜 숙련된 노동자보다 숙련된 노동자를 선호하고, 노동보다 자본의 소유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을 늘렸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며 이러한 사회 체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계가 사람을 일대일로 대체하도록 유도하는 ‘숙련 편향적 기술 변화’는 고등교육을 받은 노동자의 수요는 상대적으로 늘리는 반면, 대개 교육을 덜 받은 단순 노동자의 수요를 줄여 왔다. 노동을 물적 자본으로 대체하도록 부추기는 ‘자본 편향적 기술 변화’는 자본 소유자의 이익을 늘리고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소득분배율을 줄여왔다. 두 가지 사례에서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수준의 부가 형성되었으며, 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승자의 소득이 증가해 왔다. 공유 지식, 공유 경제를 이야기하는 시대에도 이러한 일은 저절로 교정되지 않는다. 네트워크와 공유 경제를 전면에 내거는 와중에도, 위키피디아 같은 공유 지식을 확대하는 흐름과 에어비앤비Airbnb와 같이 공유 자체를 상품화하는 흐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기술과 정보 처리 능력을 가진, 자본에서 우월한 재능 있는 소수에게 부가 몰리며 나머지와의 소득 격차는 유례없이 커질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교육도 오히려 승자 독식 시장의 비중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유 지식이라는 거인을 키우고 그 거인의 어깨 위에 난쟁이들이 올라가 다양한 실험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공유 지식의 규모를 키우는 것과 난쟁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탔을 때 떨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도록 기본 소득이나 보편적 복지라는 안전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만든 공유 지식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누구나 올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한 지원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개인은 사회 속에서 성장하고 발달하는 것이며, 개인의 전면적 발달은 사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성장과 발달 자체가 사회적인 것이다. 그런데 교육은 늘 학교를 통한 발달에 대해 과잉 설명하고 사회적인 발달에 대하여 과소 설명하려 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개인은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계급적으로 인식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을 개인화시키는 개인화 테제에 갇히게 된다. 알파고 이후 교육에 대한 고민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다시 말해 교육을 정치, 경제, 사회적 장치들이 교차하는 영역으로 재배치하도록 한다. 교육의 장은 단지 배우고 가르치기만 하는 투명하고 단일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 공간에서 어떤 특정한 조건들이 어떤 방식으로 교사와 학생을 통치하는가, 그럼으로써 이 공간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학생 주체를 생산하는가에 대해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개인이 놓인 실재하는 삶을 서술할 수 있다. 그리고 교육을 미래를 위한 준비, 예비 과정으로 붙박는 협애한 틀을 넘어서서 교육의 공간에서 유통되는 현재의 문제들, 사회 구조의 문제들, 국가가 교육에 관철시키려 하는 전략들을 불러들일 수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는 시장적 인적 자원 모델 위에서 알파고 시대의 교육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노동이라는 산업 사회 모델 자체에 균열을 만들어 내면서 학생들이 배움에서 자기 책임성, 자기 조직화, 그리고 생동하는 연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알파고 이후의 교육을 상상하는 것이다. 공부는 취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생의 로맨스가 되어야 하며, 언제 시작해서 어떤 책을 단계적으로 배우는 방식, 학년제 운영 등이 재검토되도록 하여야 한다. 교육이 경제적 가치 창출의 극대화를 지향하며 인간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유 경쟁을 유도하는 것에서 해방되어, 학생들이 평생교육적 관점에서 배움을 자기 삶에서 조직하고, 개인 간의 생동하는 배움의 연대가 일어나도록 하는 상상력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학생들의 시민으로서 참여와 인권을 대학에 간 이후로 유예시켜선 안 된다. 학생들이 교육권과 시민권을 가지고, 동시대적 참여를 통해 상생보다 경쟁에 치중하게 하고 비민주적이며 반생명적인 교육에 반대하는 행동에 참여하면서, 지금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실천이 조직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배움의 자기 조직화, 자기 책임성, 생동하는 배움의 연대로 말미암아, 공유와 협력하는 인간간의 연대, 상생의 삶을 촉진하는 앎의 세계를 재구성하고, 인간과 자연간의 창조적인 신진대사를 활성화하게 된다. 모든 교과 공부는 삶의 위한 교과교육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알파고 시대 교육의 핵심은 공유와 타인에 대한 공감,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이다. 고립된 개인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개인이 타인과 평등한 관계 속에서 시민적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될 수 있으며 개인이 사회 속에서 다른 행위자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를 전제로, 이러한 공동체 내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복속되어 있지 않는 지위, 조건을 구체화하는 교육이 활성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을 상상할 때 인공 지능 시대가 던지는 충격은 우리 사회의 교육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전근대적이라는 사실이다. 궁극적으로 알파고 시대 교육의 핵심은 공유와 타인에 대한 공감,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이다. 고립된 개인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개인이 타인과 평등한 관계 속에서 시민적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될 수 있으며 개인이 사회 속에서 다른 행위자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를 전제로, 이러한 공동체 내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복속되어 있지 않는 지위, 조건을 구체화하는 교육이 활성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을 상상할 때 인공 지능 시대가 던지는 충격은 우리 사회의 교육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전근대적이라는 사실이다.
특집/ 인공 지능 시대 앞에 선 교육
"반드시 일어날 일인가요,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인가요?"
인공 지능 시대, 교육에 대한 성찰
정용주
서울 염경초 교사, 본지 편집위원장
edcom234@gmail.com
이메일이 서너 개쯤 되고 혈액형은 성격 파악 어렵다는 AB형인 교사입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이지만 의식은 점점 노동자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물질적인 부자보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미래의 유령이 스크루지의 묘비를 가리키자 스크루지는 이렇게 묻는다. “이것이 반드시 일어날 일인가요, 아니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인가요?”
기술과 세계의 미래를 놓고 같은 질문을 하면, 답은 후자가 된다. 기술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낳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도달할 미래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의지가 개입하는 미래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례없는 풍요와 자유를 얻을 수도 있고,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재앙을 인공 지능과 함께 맞이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인공 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어떤 미래의 인적 자원을 교육이 양성할 것이며, 언제부터 정보통신 기기를 활용하게 할 것이며, 언제부터 코딩교육을 할 것인가가 아니다. 학교 행정, 학교 문화, 교육과정, 시설 등 폐쇄적이며 위계적이고 분업화된 시공간적 배움의 방식을 네트워크적으로 재구성하며 공유 지식을 바탕으로 서로 협력하며 교차하는 배움의 망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기술이 인간을 능가하는 시대,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시대 그리고 오래된 환상
대한민국 헌법에는 근로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국방의 의무 등 4대 의무가 있다. 근대 국가는 이러한 네 개의 의무를 국민에게 부여함으로써 작동한다. 우선 인간은 노동을 하고 그 대가로 받은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적당한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공동체와 국가가 작동한다. 그리고 이러한 세금을 내는 국민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의 의무를 부여하고, 마지막으로 국가의 존속과 국가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병역의 의무를 부여한다.
그런데 인류는, 지루한 일을 하지 않고서도 모든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되어 우리의 진정한 관심사, 흥밋거리, 열정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환상을 오랫동안 꿈꾸었다. 그날이 오면 자동화한 하인(기계)들이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의식주뿐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불쾌한 일을 지겹게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상상했다. 또한 자율 주행, 반복적인 일의 기계 대체, 인공 지능의 발전, 로봇공학과 유전공학은, 병역의 의무조차도 기계와 인공 지능이 대체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학교에 오지 않고도 배울 수 있는 상상을 실현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는 생산성의 폭발적 증대와 풍요의 기반이 되지만, 다른 쪽에서는 일자리 감소에 따른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전문직보다 중간 임금 노동자의 실직이 많아지고 있고 파이는 커지는데 내 조각은 작아지는 현상과 함께 노동과 자본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기술의 진보는 기계화에 따른 실직, 일자리 축소, 그리고 경쟁의 심화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4차 산업 혁명의 도래를 이야기할 때 기술은 풍요를 증대시키는 동시에 격차를 증대시킨다고 말하며 제2의 기계 시대로 대표되는 디지털 세계는 대단히 복잡하고 치밀하기 때문에 많은 위험을 수반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이제까지 미래라는 시간 속에서 그리고 다소 이론적인 수준에서 4차 산업 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제4차 산업 혁명의 도래를 목도하게 했다. 이제 각종 산업에서 인공 지능의 활용 문제를 포함한, 스스로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인공 지능과 인간과의 관계,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 이후의 문제에 대한 담론들이 생산되고 있다. 우리 역시 이러한 다양한 논의들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인공 지능과 관련된 기술들이 급속히 진화하고 있고 이러한 진화가 우리 삶, 우리 일, 우리 경제와 교육을 변모시키는 역동적인 힘들의 전모를 우리가 생생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고 자동화되는 세상에서 인간의 배움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시작되기를 희망한다.
알파고 시대를 말하기 전 확인해야 할 전제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교육 관련 담론이 생산되었다. 국가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국가는 이러한 새로운 담론의 배치를 통해 학생을 교육하고, 교사의 교수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알파고 충격 이전에도 지식 기반 사회 또는 인지자본주의 시대, 글로벌 무한 경쟁 담론을 통해 국가는 개인에게 미래 학교라는 비전을 수립하고 창의성 교육을 강조해 왔다. 이러한 비전을 바탕으로 최근 발표된 (문제가 많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단편적인 정보를 습득하고 익히는 것을 넘어서서 정보와 지식을 창출하고 확산하며 활용하는 능력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 분석적 사고, 협력적 문제 해결 능력, 창의적이며 혁신적 사고, 인간관계 능력, 자기 관리, 세계적 생존 능력 등을 갖춘 세계 시민이 될 것을 학습자에게 요구하고 있고, 교사에게는 이러한 학습자를 기르는 교육을 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알파고 이후의 교육 담론의 형성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교육적 공간에서 이러한 미래 교육의 담론을 생산, 소비하고 있지만, 교육에서 오고가는 담론을 생산하는 진정한 주체는 교육 관련 주체들이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교육 관련 주체들만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장은 더 이상 단지 배우고 가르치기만 하는 투명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 흐름으로 수렴된다. 우선 교육과 학교가 시민의 양성이라는 공적 가치를 저버리고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과 지식의 생산에 봉사하는 것을 비판하는 흐름이 있다.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맥락에서 학교와 교육이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과 지식의 생산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학교는 정확한 교육 상품의 시장 정보, 곧 교육 공급자들의 서비스의 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비판하는 흐름도 존재한다. 이러한 학교와 교육을 바라보는 균열은 근대적 공교육 제도로서 학교교육 체제가 수립되는 당시부터 존재해 온 계급적 불일치를 드러내며, 학교 제도가 이상에 대한 완전하고 견고한 합의의 산물이 아닌 정치적 반대 세력 간의 타협의 산물임을 보여 준다.
교육은 지식이나 정보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올바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여기서 올바른 성장이란 사회 속에서 인간 존재의 능력과 가능성을 계발시켜 주고 확장시켜 주는 것이다. 이는 교육에서 균형성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고 균형성의 의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올바른 성장으로서 교육을 지향하려면 학교교육은 성장의 일정한 시기에 있어 중요한 요구와 능력에 알맞은 학과목의 종류를 재구성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교과 간의 적당한 균형을 선택하여 학습자의 성장을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올바른 성장을 위해 신체적인 성장, 지적, 도덕적 성장을 포함하여 바른 성장과 발달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공 지능 시대에 교육의 변화를 논하기 이전에, 먼저 교육의 전제를 수립해야 한다. 나는 학교교육이라는 공교육 제도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동등한 자유와 합당한 평등의 추구를 구현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교육은 여건에 둔감하고 선택에 민감한 분배의 원리를 통해서 개인의 의지적인 선택과는 무관한 여건이 분배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중립화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분배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개인 스스로가 책임을 지게 하면서 사회와 공동체를 존속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모든 교육의 문제는 자유와 평등의 조절을 통한 상생과 공존의 문제로 수렴된다. 즉 모든 교육은 사회 구성원들의 공동적인 삶communal life과 구성원 각자의 좋은 삶good life이 성공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원리를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공동의 삶과 좋은 삶은 보완적일 수도 있으며 상쇄적일 수도 있다. 가령 공동의 삶을 강조하다 보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개인이 생각하는 좋은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개인이 생각하는 좋은 삶을 강조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공동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교육의 문제가 형평성의 관점에서 판단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형평성은 자유와 평등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조절 이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평성은 동등한 자유equal liberty와 합당한 평등just equality으로 규정할 수 있다.
개인으로 보면 무한한 자유가 허용되지만 사회적 관계에서는 어느 한 사람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이 나에게 허용하는 만큼 자유를 남에게 행하는 것과 그 역의 관계가 동시에 적용되는 동등성이 형평성의 이념을 구성하는 것이 동등한 자유의 관념으로서 상생의 논리이다. 상생의 논리를 구성하는 다른 개념은 평등의 원리이다. 모든 개인은 목적적 존재로서 평등하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는 교육적 가치들이 동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처해 있는 여건에 따라 평등의 의미가 상이하게 해석될 수 있다. 때로는 차등이 평등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선택될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이 평등의 원리가 여건에 따라서 상이하게 적용되는 것이 형평성의 이념을 구성하는 합당한 평등의 관념이며, 이러한 합당한 평등의 관념은 상생의 원리를 구성한다. 결론적으로 상생의 논리는 동등한 자유와 합당한 평등을 양축으로 하여 공동적인 삶과 좋은 삶이 일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의 논리이며, 이러한 상생의 논리는 공동체를 유지·존속하면서 그 속에서 개인의 능력과 자유의 실현을 극대화하는 기반이 된다.
인공 지능, 그리고 진짜 충격적인 것
인류는 증기 기관이 이끈 1차 산업 혁명, 컴퓨터와 인터넷이 불러일으킨 2, 3차 산업 혁명을 거친 후, 이제 인공 지능이 선도하는 4차 산업 혁명 초입에 서 있다. 인공 지능으로 인한 4차 산업 혁명은 이전의 산업 혁명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알파 동물은 언제나 인간이었다. 하지만 인공 지능의 등장은 인류보다 지능적으로 더 완벽한 존재의 등장이다. 인간만의 전유물이었던 지적 활동은 더 이상 우리만의 특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인류 생활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 농경도 가축도 아니고 기술이라고 말한다. 증기 기관의 발명과 개량이 바로 그 원동력이다. 그리고 지금 인류 역사의 궤도가 다시금 크게 변하고 있다고 본다. 증기 기관이 제1의 기계 시대를 열었다면, 디지털 기술이 제2의 기계 시대를 열고 있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제1의 기계 시대가 인간의 육체적 능력을 강화했다면, 제2의 기계 시대는 정신적 능력을 강화할 것이다. 단순 반복적인 일은 컴퓨터가 대신하고 인간은 창의성과 감수성이 요구되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이러한 방향에서 교육과정, 수업 방법, 평가, 교육 제도 등을 개혁하면서, 기계의 엄청난 처리 능력을 인간의 창의성과 결합한 새로운 협력 관계를 설계하고, 근본적으로 달라진 세계에 걸맞은 교육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 정책 설계와 개혁의 방향은 여건에 둔감하고 선택에 민감한 교육 정책과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고, 그 핵심은 기술의 진보로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인공 지능이란 사고나 학습 등 인간이 가진 지적 능력을 컴퓨터를 통해 구현하는 기술이다. 특히 구글의 딥 마인드로 대표되는 인공 지능은 정책 네트워크와 가치 네트워크를 통해 컴퓨터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학습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특히 알파고는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수많은 네트워크 프로세스를 이용해 엄청난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범위를 좁히며, 가치망으로 최적의 판단을 찾아내는 것은 경험과 이해의 성장이라는 교육의 문제와 연결되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자동화된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제2의 기계 시대는 한편에서는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의미를 갖지만, 인공 지능이 인간의 기억과 학습 능력을 뛰어넘는 문제를 야기한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도구가 노동과 지식을 재편하며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는 시대를 의미하며 기술과 사람이 건강한 관계를 구축할 방도를 모색하는 것을 교육이 보다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함을 의미한다.
인공 지능 시대에 교육의 변화에서 핵심적인 것은 가르치는 활동을 하는 교사와, 배우는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의 변화이다. 우선 가르치는 활동을 주로 하는 교사의 역할이 변화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가르치는 직업으로서 교사가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의 논의와 함께 뜨거운 주제가 되고 있다. 이미 외국의 경우 로봇에 의한 강의가 만들어지고, 평가와 피드백 등을 로봇과 인공 지능이 대체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교사도 컴퓨터와 드라이버와 같은 운명이 될지도 모른다.
‘컴퓨터computer’는 원래 사람을 뜻하는 단어였다. 1828년 발간된 《웹스터 사전》은 컴퓨터를 ‘계산하는compute 사람-er’이라고 풀이했다. 계산원을 지칭하던 컴퓨터에 ‘기기’라는 의미가 추가된 것은 1913년이다. 두 세기만에 계산원이 계산기가 되고, 또 한 세기만에 계산기가 오늘날의 컴퓨터로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는 이제 인공 지능을 갖추고 로봇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처럼 모든 기술은 결국 그동안 해당 업무를 수행해온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운명을 지닌 채 태어난다. 컴퓨터가 계산원에서 오늘날 만능 기계를 가리키게 된 것처럼, 머지않아 ‘교사teach+er’라는 단어도 ‘교육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려고 하는 것을 찾아주고 도와주는 기계’를 뜻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인공 지능과 로봇이 가져다 줄 문명사적 차원의 변화를 내 삶과 밀착된 질문들을 통해 봐야 한다. 어떻게 교육이 그렇게 될 수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비행기 조종사, 기자, 약사처럼 기계가 대체할 수 없을 거라 여기던 지식 산업과 서비스 산업의 전문 직종마저 이미 자동화 기술이 속속 꿰차고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실시간 자동 번역이 가능하고 언어 장벽이 사라지는 시대에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질문은 외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배우는 활동을 주로 하는 학생들의 문제로 전이된다.
인공 지능 시대 교육의 문제
인공 지능과 뇌과학의 권위자인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최근 출판한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라는 책에서 딥 러닝 기술 개발이 100년 이상 걸릴 것이라 예상한 인공 지능 시대의 도래를 20~30년 후로 급격히 앞당겼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전 세계 IT업계는 발 빠르게 기술 혁신 중이고 놀랍도록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드는 예는 사진만 보고 그 상황에 대한 글을 대신 써 주거나 신문 기사를 쓰는 인공 지능, 차원이 다른 학습 능력을 가진 통역 인공 지능, 사물을 인간과 같이 파악해 내는 진화하는 지각 능력 등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런 기술의 발달로 인해 머지않은 20여 년 후엔 산업 혁명과 같은 급격한 전환의 시기가 도래할 것이고 현재 유망하다고 생각되는 직업을 포함해 전체 직업 가운데 45%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김대식은 결론적으로 산업 혁명 시대에 주체가 되지 못해 아직도 고생하고 있는 한국이 새로운 시대 변화의 과정에서 같은 과정을 밟지 않고 주체로서 살아남는 길은 현재의 국영수 중심 교육 제도를 개혁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국영수 관련 분야는 창의력 이외의 분야에서 100% 인공 지능이 인간을 능가하기에 지금 같은 교육 속에 성장한 아이들은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인공 지능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창의성과 공감 능력과 깊은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꼽는다. 마지막으로 그가 강조하는 것은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맞아 사회 제도도 새롭게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 지능을 가지고 있는 0.00001%가 모든 혜택을 가져간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불평등의 사회가 되며, 이는 시장 경제가 무너지고, 소비자가 사라지는 것이란 이야기다. 인공 지능은 우리가 잘만 활용하면 유토피아고 잘못하면 디스토피아인데, 항상 그랬지만 천국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어려운 반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아주 쉽다. 인공 지능과 함께하는 미래를 천국으로 만들지, 지옥으로 만들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그럼 이러한 인공 지능의 시대, 기계와 공존하는 시대, 우리들은 어떤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 어떻게 서로에게 공감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어떠한 교육이 되어야 하는가? 그런데 사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해 왔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해 온 질문들을 재음미해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 우리는 대입 제도 개선, 미래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학력관, 의무교육을 보편적으로 확대하면서도 개인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교육제도 설계, 국공립대학네트워크와 일과 학업의 연계, 마을과 연계한 학교교육, 놀이터가 안전해야 더 모험적일 수 있다는 상식으로부터 출발한 기본 소득의 보장과 사회적 안전망 구축, 고등학교 학력 인증과 대학 입시의 분리를 통한 민주시민적 자질 함양과 이를 토대로 한 진로 직업의 탐색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것들은 알파고 시대에 오히려 더 강조되어야 할 교육 개혁의 원칙들이다. 이에 더해 고등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는 문제, 우리의 교육 자체가 협력적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공유 지식을 확대하고 공유 지식의 장 속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으로서 여건에 둔감하고 선택에 민감한 제도를 설계하는 문제, 수업과 교과교육으로 분할된 지식을 총체적 경험이라는 맥락에서 융합하는 교육과정과 수업·평가의 혁신, 이를 위한 국가 수준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의 대대적인 사회적 이양과 지방 교육자치의 확대 등이 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근대적 학교 체제는 자아실현의 최종적인 목표를 노동에 두고 있다. 즉 최종 학력을 획득하여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도록 하는 방향에서 나이에 따라 단계적으로 설계되었다. 이것은 아동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나름 균형 있는 성장에 기여하는 등, 나름대로 기여한 점이 많다. 그러나 학교라는 독점적 공간에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출석하여,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만들어진 교과서의 내용을, 공식적인 면허를 가진 교사가 가르치고 얼마나 잘 배웠는지 평가하고, 이러한 평가결과가 누적된 학력을 토대로 노동 시장에 진출하는 방식은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다. 패러다임 변화에 맞게 이러한 근대적 교육 체제를 해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2016년 시도교육청 주요 업무 계획이라는 문서상에 등장하는 가장 빈도수가 높은 키워드 검색을 해보면 다음의 열 가지가 공통적으로 등장하며 강조된다.
학습하는 방법의 학습, 즐거움 배움, 삶의 맥락을 통한 학습과 현실 참여, 창의적이고 협력적 문제 해결, 가르치지 않는 배움 –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창조적 사고, 배움의 과정의 강조, 마을·사회와 연계된 배움, 정답을 추구하지 않는 교육, 다양한 표현 능력 신장
이러한 키워드들은 모두 알파고 시대 교육이 고민해야 할 주제들이다. 이것을 하나의 키워드로 다시 묶어 내면 배움의 즐거움이 되며, 삶의 역량을 키우는 배움이 된다. 이처럼 알파고 이후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다룰 진정한 교육의 문제들은 교육을 통해 어떤 직업을 얻느냐의 문제를 넘어설 것이다. 역설적으로 지금과 같은 배움의 형식은 한계에 봉착하지만, 배움 자체가 평생교육적 관점에서 재구성되는 안드라고지적 전환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기계를 활용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인간이 기계와 공존하며 기계가 인간의 일부가 되는 삶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역량을 평가하는 방식도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이 기계와 공존하며 함께 성장하게 되기 때문에 인공 지능과 인간 지능을 구분하고 인간의 지능과 그 지능에 따른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교라는 배움의 독점적 공간에서 교사만이 가르치고, 교과로 분절된 지식의 내용을 공부하는 방식은 재구성되어야 한다. 모든 것이 분절되어 각자 도생하고 발전하는 갈라파고스적 진화의 방식은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알파고 시대에는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삶 자체가 혼종적이며 통합적이라는 것, 듀이와 같이 인간의 배움 자체가 총체적인 경험의 계속적인 재구성 과정임을 인식하고 이것을 결합하는 교육과정과 교육 체제가 구안되어야 한다.
더불어 교육이 기술을 따라가지 못할 만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 때, 일반적 불균형이 심화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과감한 정부 투자를 해야 한다. 만약 이 점이 고민되지 않는다면 미래교육은 보다 세련된 의미의 자기 책임 윤리가 구조화된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교사의 지원을 포함한 다양하고 디테일한 설계가 필요하다.
인공 지능 자체를 완벽하게 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공 지능도 결함을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의 사소한 결함을 예측하지 못한 것이 연쇄적인 사건들을 통해 확대되면서 훨씬 더 큰 규모의 피해를 일으키는 현상, 즉 찰스 페로가 말하는 ‘시스템 사고’ 또는 ‘정상 사고’ 현상이 알파고 시대에 심화될 수 있다. 그리고 조지 오웰이나 윌리엄 깁슨이 그린, 자유가 없고 독재자가 기술을 이용하여 권력을 휘두르며 정보 흐름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가 인공 지능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사이버 발칸화Balkanization➊는 학생들에게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하지 못하게 하고, 차별, 조롱, 멸시, 모욕감을 유발하며 약자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종합하면 인공 지능 시대에는 인권적인 것, 사회적인 것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알파고 이후 오히려 민주시민교육, 인권교육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다.
➊ 국가나 지역이 서로 적대적이거나 비협조적인 여러 개로 쪼개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발칸반도에서 분쟁들이 일어났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교육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대학 등록금은 계속해서 치솟고 있다. 그런데 대학 졸업장은 더 이상 고용의 보증 수표가 아니며, 학력 인증 시스템의 견고한 고리도 점점 약화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인공 지능은 교육을 공공재로 만들고 있으며, 지식의 유효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학생들은 새로운 정보를 얻고 배우기 위해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며, 지식의 유효 기간이 짧아진 시대에 대학을 가서, 졸업장으로 취업을 할 필요도 없게 된다.
알파고 사건은 인공 지능 시대의 준비 운동 단계에 불과하며, 제2의 기계 시대로 더 깊숙이 진입할수록 우리는 경이로운 기술들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기술이 모든 것을 디지털로 완벽하게 복제하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조합하여 혁신을 이루며,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해 가면서 인류가 역사상 가장 놀라운 두 가지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진정한 인공 지능의 탄생과 공통의 디지털망을 통한 모든 사람의 연결이다. 이렇게 무수한 기계 지능들과 상호 연결된 수십억 개의 인간의 뇌가 서로 협력하여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노동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재편되는 시대에 교육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논하는 것은 어려움을 넘어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여건의 둔감함과 선택의 민감함이라는 균형을 통해 교육이 실현하고자 하는 미래는, 기술의 진보가 부와 소득 불평등을 심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덕분에 우리가 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은 덜하면서 더 많은 부를 만들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며, 개인적으로 삶에서 선택의 여지가 늘어나고 다양성이 커지며 질이 향상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은 특별한 능력을 갖추거나 고등교육을 받은 노동자는 가치를 창조하고, 평범한 능력을 갖추거나 교육을 덜 받은 노동자는 같은 기계에 의해 대체되어 빈곤해지고 불평등해지는 상황을 만드는 사회의 재분배 시스템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러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이 가속될수록 뒤처지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고, 현재의 기술은 덜 숙련된 노동자보다 숙련된 노동자를 선호하고, 노동보다 자본의 소유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을 늘렸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며 이러한 사회 체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계가 사람을 일대일로 대체하도록 유도하는 ‘숙련 편향적 기술 변화’는 고등교육을 받은 노동자의 수요는 상대적으로 늘리는 반면, 대개 교육을 덜 받은 단순 노동자의 수요를 줄여 왔다. 노동을 물적 자본으로 대체하도록 부추기는 ‘자본 편향적 기술 변화’는 자본 소유자의 이익을 늘리고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소득분배율을 줄여왔다. 두 가지 사례에서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수준의 부가 형성되었으며, 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승자의 소득이 증가해 왔다. 공유 지식, 공유 경제를 이야기하는 시대에도 이러한 일은 저절로 교정되지 않는다. 네트워크와 공유 경제를 전면에 내거는 와중에도, 위키피디아 같은 공유 지식을 확대하는 흐름과 에어비앤비Airbnb와 같이 공유 자체를 상품화하는 흐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기술과 정보 처리 능력을 가진, 자본에서 우월한 재능 있는 소수에게 부가 몰리며 나머지와의 소득 격차는 유례없이 커질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교육도 오히려 승자 독식 시장의 비중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유 지식이라는 거인을 키우고 그 거인의 어깨 위에 난쟁이들이 올라가 다양한 실험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공유 지식의 규모를 키우는 것과 난쟁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탔을 때 떨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도록 기본 소득이나 보편적 복지라는 안전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만든 공유 지식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누구나 올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한 지원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개인은 사회 속에서 성장하고 발달하는 것이며, 개인의 전면적 발달은 사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성장과 발달 자체가 사회적인 것이다. 그런데 교육은 늘 학교를 통한 발달에 대해 과잉 설명하고 사회적인 발달에 대하여 과소 설명하려 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개인은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계급적으로 인식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을 개인화시키는 개인화 테제에 갇히게 된다. 알파고 이후 교육에 대한 고민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다시 말해 교육을 정치, 경제, 사회적 장치들이 교차하는 영역으로 재배치하도록 한다. 교육의 장은 단지 배우고 가르치기만 하는 투명하고 단일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 공간에서 어떤 특정한 조건들이 어떤 방식으로 교사와 학생을 통치하는가, 그럼으로써 이 공간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학생 주체를 생산하는가에 대해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개인이 놓인 실재하는 삶을 서술할 수 있다. 그리고 교육을 미래를 위한 준비, 예비 과정으로 붙박는 협애한 틀을 넘어서서 교육의 공간에서 유통되는 현재의 문제들, 사회 구조의 문제들, 국가가 교육에 관철시키려 하는 전략들을 불러들일 수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는 시장적 인적 자원 모델 위에서 알파고 시대의 교육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노동이라는 산업 사회 모델 자체에 균열을 만들어 내면서 학생들이 배움에서 자기 책임성, 자기 조직화, 그리고 생동하는 연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알파고 이후의 교육을 상상하는 것이다. 공부는 취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생의 로맨스가 되어야 하며, 언제 시작해서 어떤 책을 단계적으로 배우는 방식, 학년제 운영 등이 재검토되도록 하여야 한다. 교육이 경제적 가치 창출의 극대화를 지향하며 인간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유 경쟁을 유도하는 것에서 해방되어, 학생들이 평생교육적 관점에서 배움을 자기 삶에서 조직하고, 개인 간의 생동하는 배움의 연대가 일어나도록 하는 상상력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학생들의 시민으로서 참여와 인권을 대학에 간 이후로 유예시켜선 안 된다. 학생들이 교육권과 시민권을 가지고, 동시대적 참여를 통해 상생보다 경쟁에 치중하게 하고 비민주적이며 반생명적인 교육에 반대하는 행동에 참여하면서, 지금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실천이 조직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배움의 자기 조직화, 자기 책임성, 생동하는 배움의 연대로 말미암아, 공유와 협력하는 인간간의 연대, 상생의 삶을 촉진하는 앎의 세계를 재구성하고, 인간과 자연간의 창조적인 신진대사를 활성화하게 된다. 모든 교과 공부는 삶의 위한 교과교육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알파고 시대 교육의 핵심은 공유와 타인에 대한 공감,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이다. 고립된 개인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개인이 타인과 평등한 관계 속에서 시민적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될 수 있으며 개인이 사회 속에서 다른 행위자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를 전제로, 이러한 공동체 내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복속되어 있지 않는 지위, 조건을 구체화하는 교육이 활성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을 상상할 때 인공 지능 시대가 던지는 충격은 우리 사회의 교육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전근대적이라는 사실이다. 궁극적으로 알파고 시대 교육의 핵심은 공유와 타인에 대한 공감,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이다. 고립된 개인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개인이 타인과 평등한 관계 속에서 시민적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될 수 있으며 개인이 사회 속에서 다른 행위자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를 전제로, 이러한 공동체 내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복속되어 있지 않는 지위, 조건을 구체화하는 교육이 활성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을 상상할 때 인공 지능 시대가 던지는 충격은 우리 사회의 교육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전근대적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