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청년이슈 인터뷰
달팽이 민주주의를 통해 ‘다시 만난 세계’
이화여대 점거 농성을 통해 살펴본 새로운 학생운동의 가능성과 우려
이화여자대학교 학생 조진영
때와 곳 8월 31일 종로3가역 근방 카페
진행·정리 김환희 본지 편집위원
사진 최승훈 기자
Intro
지난 7월 30일, 이화여자대학교 본관에 1,600명의 경찰이 진입했다. 이화여대(이하 이대) 학생들이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철회’를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벌인 지 3일 만의 일이었다. 점거 농성 중인 학생 수의 5배가 넘는 경찰들이 집회 해산과 연행을 위해 이대 학생들을 에워쌌다. 본관 복도를 점거 중이던 학생들은 서로 팔짱을 단단히 낀 채 경찰을 마주보았다. 긴장감이 최고조로 달한 어느 순간, 학생들의 제창으로 아름다운 멜로디가 퍼져 나갔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만, 눈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은 /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그 멜로디는 연대 구호도 민중가요도 아닌,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다. 이 장면을 촬영한 영상은 SNS에서 ‘이화여대와 소녀시대 : 새로운 운동가요’와 같은 이름으로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점거 농성과 대중가요라는 생경한 조합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그 의미를 해석하기 바빴다. 나 또한 우려와 기대가 섞인 충격을 받았고, 학생운동에 뭔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 신선한 놀라움은 하루 만에 한숨으로 바뀌었다. 이대생들이 운동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학내 운동권을 농성장에서 내쫓고, 타 대학 총학생회의 연대 제안도 거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연대 없이 어떻게 성공할까 싶었다. 성공한다고 해도, 그 덕분에 운동권 배제가 사회에 더 횡행하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학생운동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에 아주 중요한 변곡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달려가 취재하려 했으나 이대는 폐쇄되어 있었다. 재학생과 졸업생에 한해서만, 후문으로 입장이 가능했다. 공식 입장 발표가 아닌 농성 참가자들의 개인 인터뷰도 금지되어 있었다.
8월 3일, 이대 졸업생들이 모금을 통해 〈조선일보〉 1면에 점거 농성을 지지하는 광고를 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최경희 총장은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졸업생들의 다양한 루트를 통한 압박이 효력을 발휘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어쨌든, ‘외부 세력’ 없는 순혈주의를 선택한 이대생들의 승리였다. 철회 발표에도 이대생들은 최경희 총장 사퇴를 최종 목표로 농성을 이어 가기로 결정했다. 8월 24일에는 이대 교수비상대책위원회가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191명의 교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나는 이때쯤, 점거 농성 중인 이대생들을 연결해 줄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터뷰 금지령을 뚫고 솔직한 목소리를 외부에 들려줄 사람을 드디어 찾게 된 것이다. 이대 서양화과에 재학 중인 조진영 씨였다.

김환희 학교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조진영 학교에서 자치 단위 활동을 했었다. 시네마떼끄라는 자치 영화 상영 단위의 운영위원으로 있었다. 그 후에는 동아리연합회 집행부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학교 자치단위 외에는 사회변혁노동자당 이대분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철도민영화 반대 총파업 등으로 대학생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이 불었을 때 큰 집회를 나가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가입했다.
김환희 이대 학생들의 요구사항은 무엇이며,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조진영 본관 점거를 시작하게 한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대학 폐지’ 요구안은 사업 폐지라는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본관 점거 도중 7월 30일에 학교가 본관에 경찰 병력을 투입한 것과 이전에 일방적으로 진행되어 왔던 문제가 더해져 총장 사퇴라는 요구안까지 나아가 있다. 지금은 ‘최경희 총장 사퇴’를 집중 요구안으로 본관 점거를 이어 나가고 있다.
생존 경쟁으로 등 떠미는 교육부, 절벽 위에 선 대학
김환희 이번 사태가 이대만의 문제가 아니고 코어사업, 프라임 사업 등 교육부 정책에 대학 개편 전반의 문제인 것 같다. 따라서 총장이 사퇴한다 해도 이후에도 이런 방향으로 대학이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이대생들의 입장은 어떤지 듣고 싶다.
조진영 교육부 정책의 일환으로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 사업(평단 사업)이 진행된 것이라는 점을 학생들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본관 학생들은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대학 폐지’를 우선 과제로 생각했고, 그 후엔 ‘최경희 총장 사퇴’에 주력하기로 했다. 평단 사업 폐지를 이뤄낸 성과가 다른 대학이나 교육부에 영향을 줄 수는 있으나 다른 대학의 학생들을 지지하거나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자 하는 의지는 없다. 이는 본관 점거의 기조가 모든 연대를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총장 사퇴를 주력 요구안으로 설정한 이유는 이를 시작으로 학내 행정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학내 민주주의를 이뤄내기 위해 대학 평의원회(평의회)의 학생 위원 비율을 늘리고, 학사 행정기구에 학생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창구를 구축하며, 학생을 이사로 선출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의 대안 제시를 검토하고 있다. 물론, 교육부 정책의 전반을 고려했을 때 연대를 거절하는 방침이 우려되는 지점은 있다. 이번에는 사업 하나를 막아 냈지만 이대를 비롯한 모든 대학들이 교육부 정책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 연대의 필요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환희 점거 농성의 정식 입장과 다르게 본인은 연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인가?
조진영 지금 형국은 이대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에서 결국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교육부가 각 대학에 공통적으로 지급되는 교부금을 줄이고, 선별적 재정 지원 사업은 대학 구조조정과 연계시켰기 때문이다. 인문계열 단과대를 통폐합하거나 교육부가 원하는 방향의 구조 개혁을 해야만 대학으로서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대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이대가 졸속으로 따낸 프라임, 코어, 평단 사업 모두 대학 구조조정의 맥락에 있는 사업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업이 추진될 때마다 학생들이 적시에 막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미래라이프 이전의 프라임, 코어, 이화파빌리온➊ 사업 같은 것은 막아 내지 못했고 다른 학교의 경우에도 개별 단위에서 막아 내기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의견을 낼 수 있는 창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고 이럴수록 같은 상황에 있는 다른 대학 학생들과 교육부의 정책에 대한 인식을 함께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➊ 캠퍼스 안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체인과 기념품 샵 등 각종 상업 시설을 세우는 사업. 이화여대, 서강대를 포함해 많은 사립대들이 교내 수익 사업을 통해 재정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캠퍼스 내에 각종 상업 시설을 늘리고 있다.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이 대학교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라는 명분을 바탕으로 대학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밀어 붙이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대학을 기업화시키는 ‘학문자본주의’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총장은 CEO, 정부와 대기업이 대주주”➋이고, 수험생과 학부모는 상품의 구매자이다. 구매자가 원하는 것은 취업이고, 대주주들이 원하는 것은 당장의 이익을 뽑아 낼 수 있는 실용 학문들이다. 돈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쓸데없이 국가와 자본을 비판하기까지 하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은 대학에서 쫓아내야 할 대상이다.➌ 한편 이와 같이 대학이 기업화되고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위상이 붕괴하는 현상은 신자유주의 종주국 “미국에서 시작되어 영국, 캐나다, 일본에 이어 대학의 모델을 제공하였던 독일, 프랑스에도 파급”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➍ 따라서 이대 학생들이 비판의 초점을 최경희 총장 개인에게 두는 것은 전투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 시점 한국의 모든 대학이 함께 직면한 거대한 전쟁에서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➋ 우치다 타츠루, 〈대학개혁 망국론〉, 《녹색평론》 제148호 (2016년 5·6월), 119쪽.
➌ 실제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2014년 국립대학에서 인문계 학부를 폐지하기로 결정하였다. 위 글.
➍ 고부응, 〈고난의 시대, 몰락한 대학〉, 《녹색평론》 제148호 (2016년 5·6월), 85쪽.
김환희 미래라이프에 반대하는 이대생들의 내심에는 학벌 사회에서 하나의 카르텔을 이루고 있는 이대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조진영 그런 비판은 주로 학교 측에서 점거 농성하는 학생들을 비난하는 논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대생들은 학벌 카르텔을 유지하기 위한 욕망이 아니라, 교육적 차원의 우려 때문에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성별 불평등 사회에서 여자대학의 교육은 여성의 지위 향상과 평등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이대 평단 사업 내용을 보면 사실상 이대가 추진해 온 대학 구조조정과 같은 선상에서의 취업 관련 전공을 확대하고 학위를 팔아 등록금 장사를 하려는 것이다. 신설 예정이었던 ‘뉴미디어 산업 전공, 건강·영양·패션을 다루는 웰니스 산업 전공’은 학문으로서 깊이 있는 내용이 아니며 노골적으로 취업과 연관되어 있는 학과라는 것이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항이다. 또한 경력 단절 여성에게 재취업 또는 재교육의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로 만든 이런 학과들은 여성의 직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보여 준다. 학생들은 이화여대의 창립 방향성과 맞지 않는 단대 건설을 반대하고, 학생들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행정 과정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
인터뷰이의 답변과는 별개로, 나는 이대생들이 점거 농성에 참여한 이유 중에는 학벌 카르텔의 붕괴와 이로 인한 취업상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단체 ‘학벌없는사회’의 해체 선언문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는 학벌 카르텔의 최상위권 학교 출신 학생들조차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나는 이대생들이 그 두려움 때문에 시위에 참여하였다고 해도 학교 당국처럼 그 동기의 속됨을 비난할 의사가 조금도 없다. 그러나 ‘대학의 시장화’라는 광풍 속에서 명문대의 학벌 카르텔마저 조금씩 붕괴하고 있고, 이를 둘러싼 자본, 국가, 학교, 학생의 이해관계가 엇갈린다는 점을 드러내 주기 때문에 이 비판이 이번 사태를 해석하는 중요한 지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대에 재학 중인 필자의 지인이 밝힌 견해를 따로 소개한다.

현 총장은 이번 미래라이프 단대 사업만이 아니라 정말 많은 상업적 요소들을 학교에 독단적으로 들여놓은 엄청난 사람이다. 그러나 그 ‘독단성’을 제외하면, 학내 구성원들이 과연 그를 올바르게 비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가? 글쎄…….
‘우리 이화’라는 말이 상징하는 학벌 카르텔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다수 이대 학생들은 (……) ‘우리 학교의 입학 성적이 이렇게 높다’라고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단순히 개인들의 움직임인지, 현 총학도 그런 활동에 동참했는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만, 이런 움직임들은 학내 커뮤니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뭐 물론 당연히 이런 현상이 이대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수능을 치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은 학벌 장사와 대학의 상업화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니까, 이대 재학생들 역시나 학벌 장사와 대학의 상업화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현 총장의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뷰티와 웰니스가 ‘학문’이 아니라고? (……) ‘학문’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하나 예를 들자면 경영학과는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지? 경영학과 복수전공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주전공인 학생들이 학습권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계속 대두되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렇게 경영학을 복수전공하지 못해서 안달인가? 경영학이 가장 높은 ‘학문’이라서?
학내 자치가 위협받는 상황과는 별개로, (……) 나는 11년도부터 이대에 재학하며 한 번도 우리 안의 학벌주의를 성찰하는 내부 움직임을 본 적이 없다. (있다면 누가 알려 주세요. 함께 하거나 희망을 가져보게.)
- 수수, 이화여대 재학생
김환희 이대는 건립 초기부터 학내 시위자를 제적 처리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할 정도로, 학내 자치에 매우 열악한 환경이라고 들었다. 그럼에도 이번 시위는 대중가요를 통해 단합하는 등 독특한 집회 문화를 만들어 낸 것 같다. 학생과 학교 간 관계의 역사적인 맥락을 바탕으로 어떻게 이런 변화가 발생했는지 말해 달라.
조진영 이대 학생들은 언제나 목소리를 냈다. 전국여성대회 김활란상 수여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도 대강당 앞에 모여 항의했고, 파빌리온 건물이 학생들과 논의 없이 지어질 때도, 프라임/코어 사업이 날치기로 통과됐을 때도 항의 시위를 했다. 2016년 이전에도 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들은 고공 농성부터 천막 농성, 단식까지 많은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 왔다. 이번 본관 점거도 수업 일정 변경, 장학금 일부 폐지, 신산업 융합 사업 등 학교가 일방적으로 처리해 온 일련의 과정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사건이다. 많은 학생들이 본관에 스스로 모인 만큼 다양한 아이디어가 시도되었다.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른 것은 점거 중에 신청곡을 받던 것이 계기가 된 것 같다. 학생들이 서로 격려하고 어떻게 하면 점거를 더 즐겁게 이어 나갈 수 있을까 주체적으로 고민하는 과정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김환희 점거 내내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가린 이유는 무엇인가?
조진영 이대가 지금 사회에서 여성혐오의 타깃으로 상징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일베 회원이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들을 쓴 팻말을 들고 이대 정문 앞에서 시위를 한 경우도 있었다. ‘된장녀’라든지 ‘나, 이대 다니는 여자야’라든지, 여성비하 표현의 많은 경우가 이대생이라는 프레임을 갖고 있었다. 학생들 마음속에는 이대생, 여대생, 여성으로서 외부에 어떻게 비칠지 두려움이 큰 것 같다.
이대생들의 시위에는 분명 여자대학교로서의 특이점이 존재한다. 신설 예정이던 웰니스 전공이 건강·영양·패션과 같이 여성에게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므로 반대한다는 이대생들의 논리는 이대가 상징하는 바 때문에 더욱 특별하다. 학교의 전통적 캐치프레이즈인 ‘해방 이화’에도 녹아있듯이 이대는 설립 초부터 한국 사회에서 여성주의운동의 산파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그리고 이는 대중들이 이대생에 관한 특정한 이미지와 선입견을 갖게 했다. 이번 점거 시위를 제대로 보려면 여성주의적 맥락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한국에서 대학 나온 여자’의 대표 격이 된 이대생들에 대한 인식도 확인해 볼 수 있다. (……) 문제는 이화여대와 이대생들이 여성의 사회 진출에 있어 성 평등권을 주장하면서 남성층으로부터 위협의 대상이 돼 온 점이다. 대표적 사례가 군복무 가산점제 폐지 청원 사건이다. (……)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엔 운동권 페미니즘을 제도권으로 안착시켰다는 여성가족부 설립에 이화여대 출신들이 크게 기여했다. 훗날 부산대 월장 사태(2001년 부산대 페미니즘 웹진 ‘월장’이 복학생 문화를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가 사이버 테러를 당한 사건)의 논리적 근거들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아, 그저 학생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사회 제도권 내에 압력단체화하는 페미니즘을 각인시켰다. 그렇게 또다시 이대생은 동 세대 남성층에게 가장 큰 위협이자 비판 대상이 됐다. 이 과정에서 ‘꼴페미’와 같은 비하조 언어가 생겨났다.
- 이문원, 〈‘이대생 때리기’는 ‘변화 공포증’ - 겹눈으로 본 ‘이화여대 사태’〉, 《신동아》 2016년 9월호
익명 커뮤니티와 직접 민주주의
김환희 시위 과정에서 ‘이화이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곳인가?
조진영 이대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다. 재학생, 졸업생들이 인증을 거쳐 가입 가능한 익명사이트이다. 이화이언에는 ‘비밀의 화원’이라고 익명 게시판이 있는데 외부인은 게시물을 볼 수 없다. 주로 이곳에서 점거 농성에 관한 담론이 만들어지고 있다.
김환희 점거 농성에 관한 논의는 어떻게 시작됐나?
조진영 미래라이프 사업은 대학평의회에서 결정되기로 되어 있었다. 학생회에서 평의회 회의가 열리지 않게 막아 내자고 학생들에게 제안해서 그 전날 집회를 했고 평의회 회의 당일은 회의를 막기 위해 점거 농성이 시작됐다. 이화이언에서는 학생화와 별도로 자생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학생회에서는 집회를 ‘만민공동회’의 형식으로 하여 다 같이 평의회 회의를 막자고 합의를 이루어 내고 본관 점거를 시작했다. 그때 이화이언 분들도 합류했다.
김환희 이화이언에서 토론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
조진영 익명 커뮤니티인 만큼, 사람들이 자유롭게 글을 올리면 새로운 주장과 댓글들이 붙으면서 여론 같은 게 형성됐다. 지금은 본관에 꾸려진 여러 팀 중 담당 팀이 온라인상에서 이슈가 된 주제를 선정해서, 그 주제에 대한 토론이 오프라인 상에서도 이루어진다. 현장에서도 만민공동회 식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만민공동회 형식은 총학생회가 주도한 집회에서 처음 제안이 되었다. 학생회에서는 대표자가 주동하는 시스템이긴 하지만 최대한 많은 학우 분들의 의견을 듣는 게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한 사범대 학생이 그 문제의식을 듣고 역사에 나오는 만민공동회의 이름을 붙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만민공동회는 자유롭게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고 의견을 말하는 방식이다. 초반에는 계속 의견을 받는 식이었다. 어느 정도 의견을 받아 주류적인 흐름이 생겼다고 판단되면 찬반 표결을 했다.
김환희 ‘느린 민주주의’, ‘달팽이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언론에 많이 회자되었다.
조진영 만민공동회라는 형식 자체가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자기가 의견을 말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을 다 듣는 방식이기 때문에 논의가 느리게 진전됐다. 느린 민주주의, 달팽이 민주주의는 그런 걸 빗대어 표현한 말 같다.
김환희 집행부가 없는 만민공동회, 민중가요가 아닌 소녀시대 노래와 같은 새로운 형식의 운동에서 희망을 보는가?
조진영 분명히 장점이 큰 상황이라고 생각은 한다. 왜냐면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기존 시위나 집회 같은 곳에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에 공고하게 새겨진 ‘좌파’에 대한 선입견이 너무 무섭고 자신의 신원이 들킬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이 없이 보호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런 레드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사업을 제안하고 게임을 만들고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의지만 있다면, 주체가 되어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학우들이 모였다. 더 많은 학우들이 모였기 때문에 미래라이프사업의 폐지까지 이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이다.
비정치의 정치 : ‘운동권’ 배제와 연대 거부
김환희 한편으로 고칠 점도 있을 것 같다. 학내의 소위 ‘운동권’, 총학생회까지 배제되고, 타 대학교와의 연대를 거부한 이유는 무엇인가?
조진영 30일 아침이 되자 경찰들이 회의실 주변으로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변을 경찰병력이 완전히 포위하게 되자 점거 중이던 학생들을 제압하고 평의회 위원들을 빼냈다. 학생들이 그 사실에 충격을 받고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한 학생이 발언을 하자, 많은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그 발언을 막았다. 이 학생이 이화이언에서 운동권이라고 지목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나서, 많은 학생들이 이 학생에게 발언권을 준 총학생회에 몰려와 항의했다. 그리고 만민공동회에 이와 관련된 안건이 올라왔고 학생회 측을 압박한 결과 그들에게 운동권 개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그리고 연이어 운동권인 학생 1명이 본관에서 투표로 쫓겨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➎
➎ 양효영 씨를 말한다. 양효영 씨는 이후,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농성에서 배제하는 것은 근시안적 단견일 뿐이다〉(《노동자 연대》 178호, 2016년 8월 1일)라는 글로 다음과 같이 의견을 밝혔다. “나를 쫓아내는 데 찬성한 일부 사람들은 지난 30일 경찰이 대거 투입돼 충돌이 벌어진 것에 큰 충격을 받고 두려움을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운동권’이 있으면 경찰 투입의 빌미가 될 것이고, 연행자도 나올 수 있다고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운동권’을 배제하는 것은 ‘위험 요소’를 없애는 것이기는커녕 운동의 저변을 축소시키고 학교와 정부, 경찰의 자신감만 키울 것이다.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사회적 지지를 활용하고 이를 더 늘리는 식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비록 나는 지금 부당하게 농성장 밖으로 밀려났지만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농성장 밖에서 투쟁을 지지하며 좌파적 목소리가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 입증하려 애쓸 것이다.”
이후 운동권 계열➏이었던 총학생회 역시 개입이 제한되었다. 이제 총학생회도 사회자나 주최자가 아닌 이대 학생으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이후 모든 게 익명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현장에서도 익명커뮤니티를 하지 않으면 진행 사항 등을 공유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➏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을 말한다.
김환희 이와 같은 ‘운동권 혐오’나 적대적 태도는 언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나?
조진영 이게 온라인에서 오고간 이야기라 말하는 게 조심스럽긴 한데, 시위 초반부터 굉장히 심했다. 양효영 씨에 관한 사진과 신상 정보가 익명 커뮤니티 안에서 공개가 됐다. 예를 들어 그분이 학교 어디에 있는지 추적해서 실시간으로 커뮤니티에 올리거나, 그걸 보고 잡으러 가서 비난하고 조롱하며 모욕하는 행위들이 있었다.
김환희 맙소사. 왜 그렇게까지 심했던 건가?
조진영 점거 초반에 일부 학생들에게 이런 문자가 대량으로 뿌려졌다. “지금 본관 시위에 통합진보당 등 외부 세력이 개입이 돼서 주도하고 있는 게 아니냐.” 그렇게 시위의 본질을 왜곡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외부 세력이 개입되어 있다고 언론에 나갈 경우에 시위의 진정성이나 순수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두려움, 언론에 어떻게 비치는지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이화인들 사이에 컸다. 그래서 절대 이화인 이외의 사람들이 개입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타 대학교의 성명을 비롯한 모든 연대 제안을 거절한 이유도 결국 연대의 의미를 왜곡해서 해석하는 언론과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대생들은 이 전략을 통해 평단 사업 폐지를 이뤄 낸 후 더욱더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연대를 거절하는 기조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 같다.
김환희 이전에도 운동권 혐오 정서가 있었나? 그리고 혹시 이화이언 안에서 ‘꿘충’➐이라는 말이 쓰이는지?
조진영 초반에는 쓰였는데, 지금은 자체적으로 검열하고 있다. 그런 것들이 언론에 나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단어는 거부하기로 했다. 학내의 운동권 혐오가 이렇게까지 표면화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선거 시즌일 때, 지금 나온 선본이 운동권이냐는 정도의 추궁 같은 거는 있었는데 직접적인 혐오로 드러나진 않았다.
➐ ‘운동권 벌레’라는 뜻으로 메갈리아에서 처음 명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운동권을 배척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운동권 혐오 표현이다.
김환희 어쨌든, 운동권 배제에 대해서 보수 언론의 은근한 상찬이 많았던 것 같다.
조진영 이대의 독특한 집회 문화와 연결지어 ‘순수한 시위’를 부각하는 뉴스가 많았던 것 같지만, 나는 우려지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먼저, ‘순수한 시위’를 결정하는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았다. 처음에 느린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한 학우를 내쫒기 위한 투표를 진행했고, 총학생회의 선서를 받아 내는 과정 역시 “Yes or No”를 외치면서 윽박지르듯 강요해 받아 낸 결과였다. 그리고 둘째로, 외부 세력과의 무관함을 주장하면서 어떤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할 여지가 있는 물품들의 반입을 제한했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은 본관 점거에 참여할 수 없을 정도로 냉랭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런 것들은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이며, 사회적인 편견을 이대생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집회 같은 경우에도 “외부 정치 세력이 개입했기에 이것은 순수하지 않다”라며 진정성을 왜곡하는 프레임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그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운동권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은 연대의 진정성 자체를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대생들도 그런 거다. 각자도생의 판국에서 선의의 연대가 가능할 리 없다는.
운동권 없는 농성, 학생회를 구속한 경찰
김환희 배제 전략의 문제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조진영 ‘운동권’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외부 세력이 아닌, 조금 더 분명한 정치적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의사 표현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는 이화인일 뿐이다. 소속 단위를 알리며 참가하는 것은 이화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분명하게 발화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1만 6천의 학생이 있는 만큼 그만큼의 다양성이 존재할 것이다. 1만 6천 가지의 정치색을 표백해 단일한 하얀색으로 만들어야 진정성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소속 단위에 있는 이화인들이 다른 의견들을 내며 합의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학내 민주주의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관을 점거한 학생들은 좀 더 빠른 합의와 빠른 승리에 몰두한 나머지 통념에 호소하는 실리를 택했다. 이 과정 전체가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의 배제를 통해서만 시작할 수 있는 ‘느린 민주주의’는 적어도 민주주의로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김환희 학생회가 주도권을 잃은 채 진행됐는데, 경찰은 왜 지금 학생회 임원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명령을 내렸을까?➑
➑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본관에 있던 교수, 교직원 5명의 출입을 학생들이 막은 것과 관련해 “주모자 5명을 잠정적으로 특정해 그중 3명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통보를 했다”라고 밝혔다. 총학생회 관계자들은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이들(재학생, 졸업생)과 공모해 피해자들을 감금했다’는 혐의(특수감금)를 받고 있다.
조진영 경찰이 추적할 수 있는 사람이 대표자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실명을 알고 인적 사항이 공개가 된 사람들은 대표자밖에 없었다. 조사가 돼 봐야 알겠지만 어느 시위나 그렇듯이 두어 명을 주동자로 몰아서 징계를 먹이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니까. 학생들도 조사를 받고 있는 학생회 구성원들에게 공감과 연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본관 시위 자체가 익명성을 걸고 한 것인데 어떻게 여기에 주동자가 있을 수 있냐고, 이 시위는 주동자가 없는 시위라고 분개하고 있다.
김환희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조진영 나는 소위 운동권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으로서 아직 이화이언에 신상이 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속한 단위와 실명을 모두 털어 놓고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지금 이대에는 운동권임을 드러내고 발언을 할 수 있는 창구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단위를 드러내고 활동을 하는 것이 본관 안에서 완전히 금지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의견을 온전히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어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안에서는 점거 농성의 시스템에 대해서나 ‘느린 민주주의’의 모순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런 문제 제기를 했다가 총장 사퇴안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거나 아예 내쫓길 가능성도 있다. 나는 점거 농성이 끝난 후 새로운 운동 방식에 대한 차후의 역사적 평가가 있다면, 이 문제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교육》이 그런 창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실명을 다 공개하면서 인터뷰에 응한 것이다.
Outro : 학생운동에서도 ‘비정치의 정치’가
모순된 심경을 떠안은 채 시작한 인터뷰였는데, 인터뷰를 마치자 더욱 복잡 미묘한 심경에 빠져 들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교육의 종말’이었다. 초·중등교육이 망한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고등교육도 이미 교육이 불가능한 공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학은 영리 기업이 됐다. 일개 대학의 적립금(사내유보금)이 1조에 가까울 정도로 쌓여 가도 등록금이 매년 급증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윤을 남겨 먹어야 하니까. 사내유보금은 이사장의 잉여 축적, 사유재산이니까. 그리고 그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기업에 충성하고, 쉽게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기업 맞춤형 인재(라고 쓰고 ‘노예’라고 읽는다)들로 양성되어 사회로 진출한다. 취업이라는 미명 하에 교육의 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대 점거 시위는 이 ‘교육의 기업화’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통해 학생 정치의 실태를 살펴보니 우려스러운 점이 많았다. 물론, 이대 점거 시위는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시위처럼 직접 민주주의의 저력을 보여 주고 있는 운동이다. 그러나 동시에 학생 자치의 정치적 주체가 사라진 자리에 소비자 주체가 공고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을 보여 준 사건이다. ‘비정치의 정치’란 자신의 독특한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고 ‘순수한 소비자 국민’으로서의 자신의 중립성만을 강조하는 참여를 일컫는다. 이대에서 하나의 시위 형식으로 나타난 ‘비정치의 정치’는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각성 없이도 운동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정치적 연대 대신에 모금(주간지 1면 광고)과 소비자(재학생, 졸업생)들의 보이콧이 더 나은 전략임을 증명해 보였다. 어느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정치의 정치’는 기존의 레드콤플렉스가 시장주의와 만나 더욱 업그레이드된 버전이 아닐까?
하지만 아직 이화여대 점거농성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막 탄생한 ‘만민공동회’라는 방식은 내부 민주성 강화를 통한 직접 민주주의 학생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수평적 구조와 대중 지성의 힘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연대의 연결망이 다시 안과 밖으로 이어지기만을 바란다. 나는 아직도 프랑스의 68혁명처럼 우리가 대학생들과 지식인,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해서 교육의 판을 뒤집는 ‘한 방’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대학생들의 각개 전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제대로 된 싸움을 통해 모든 대학교를 평준화시키고 대학교 수업료를 전액 면제시키고 대학 기업을 사회적 공공성을 위한 학문 도야의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날을 꿈꿔 본다.
연재/ 청년이슈 인터뷰
달팽이 민주주의를 통해 ‘다시 만난 세계’
이화여대 점거 농성을 통해 살펴본 새로운 학생운동의 가능성과 우려
이화여자대학교 학생 조진영
때와 곳 8월 31일 종로3가역 근방 카페
진행·정리 김환희 본지 편집위원
사진 최승훈 기자
Intro
지난 7월 30일, 이화여자대학교 본관에 1,600명의 경찰이 진입했다. 이화여대(이하 이대) 학생들이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철회’를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벌인 지 3일 만의 일이었다. 점거 농성 중인 학생 수의 5배가 넘는 경찰들이 집회 해산과 연행을 위해 이대 학생들을 에워쌌다. 본관 복도를 점거 중이던 학생들은 서로 팔짱을 단단히 낀 채 경찰을 마주보았다. 긴장감이 최고조로 달한 어느 순간, 학생들의 제창으로 아름다운 멜로디가 퍼져 나갔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만, 눈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은 /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그 멜로디는 연대 구호도 민중가요도 아닌,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다. 이 장면을 촬영한 영상은 SNS에서 ‘이화여대와 소녀시대 : 새로운 운동가요’와 같은 이름으로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점거 농성과 대중가요라는 생경한 조합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그 의미를 해석하기 바빴다. 나 또한 우려와 기대가 섞인 충격을 받았고, 학생운동에 뭔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 신선한 놀라움은 하루 만에 한숨으로 바뀌었다. 이대생들이 운동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학내 운동권을 농성장에서 내쫓고, 타 대학 총학생회의 연대 제안도 거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연대 없이 어떻게 성공할까 싶었다. 성공한다고 해도, 그 덕분에 운동권 배제가 사회에 더 횡행하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학생운동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에 아주 중요한 변곡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달려가 취재하려 했으나 이대는 폐쇄되어 있었다. 재학생과 졸업생에 한해서만, 후문으로 입장이 가능했다. 공식 입장 발표가 아닌 농성 참가자들의 개인 인터뷰도 금지되어 있었다.
8월 3일, 이대 졸업생들이 모금을 통해 〈조선일보〉 1면에 점거 농성을 지지하는 광고를 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최경희 총장은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졸업생들의 다양한 루트를 통한 압박이 효력을 발휘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어쨌든, ‘외부 세력’ 없는 순혈주의를 선택한 이대생들의 승리였다. 철회 발표에도 이대생들은 최경희 총장 사퇴를 최종 목표로 농성을 이어 가기로 결정했다. 8월 24일에는 이대 교수비상대책위원회가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191명의 교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나는 이때쯤, 점거 농성 중인 이대생들을 연결해 줄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터뷰 금지령을 뚫고 솔직한 목소리를 외부에 들려줄 사람을 드디어 찾게 된 것이다. 이대 서양화과에 재학 중인 조진영 씨였다.
김환희 학교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조진영 학교에서 자치 단위 활동을 했었다. 시네마떼끄라는 자치 영화 상영 단위의 운영위원으로 있었다. 그 후에는 동아리연합회 집행부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학교 자치단위 외에는 사회변혁노동자당 이대분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철도민영화 반대 총파업 등으로 대학생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이 불었을 때 큰 집회를 나가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가입했다.
김환희 이대 학생들의 요구사항은 무엇이며,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조진영 본관 점거를 시작하게 한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대학 폐지’ 요구안은 사업 폐지라는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본관 점거 도중 7월 30일에 학교가 본관에 경찰 병력을 투입한 것과 이전에 일방적으로 진행되어 왔던 문제가 더해져 총장 사퇴라는 요구안까지 나아가 있다. 지금은 ‘최경희 총장 사퇴’를 집중 요구안으로 본관 점거를 이어 나가고 있다.
생존 경쟁으로 등 떠미는 교육부, 절벽 위에 선 대학
김환희 이번 사태가 이대만의 문제가 아니고 코어사업, 프라임 사업 등 교육부 정책에 대학 개편 전반의 문제인 것 같다. 따라서 총장이 사퇴한다 해도 이후에도 이런 방향으로 대학이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이대생들의 입장은 어떤지 듣고 싶다.
조진영 교육부 정책의 일환으로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 사업(평단 사업)이 진행된 것이라는 점을 학생들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본관 학생들은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대학 폐지’를 우선 과제로 생각했고, 그 후엔 ‘최경희 총장 사퇴’에 주력하기로 했다. 평단 사업 폐지를 이뤄낸 성과가 다른 대학이나 교육부에 영향을 줄 수는 있으나 다른 대학의 학생들을 지지하거나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자 하는 의지는 없다. 이는 본관 점거의 기조가 모든 연대를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총장 사퇴를 주력 요구안으로 설정한 이유는 이를 시작으로 학내 행정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학내 민주주의를 이뤄내기 위해 대학 평의원회(평의회)의 학생 위원 비율을 늘리고, 학사 행정기구에 학생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창구를 구축하며, 학생을 이사로 선출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의 대안 제시를 검토하고 있다. 물론, 교육부 정책의 전반을 고려했을 때 연대를 거절하는 방침이 우려되는 지점은 있다. 이번에는 사업 하나를 막아 냈지만 이대를 비롯한 모든 대학들이 교육부 정책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 연대의 필요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환희 점거 농성의 정식 입장과 다르게 본인은 연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인가?
조진영 지금 형국은 이대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에서 결국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교육부가 각 대학에 공통적으로 지급되는 교부금을 줄이고, 선별적 재정 지원 사업은 대학 구조조정과 연계시켰기 때문이다. 인문계열 단과대를 통폐합하거나 교육부가 원하는 방향의 구조 개혁을 해야만 대학으로서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대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이대가 졸속으로 따낸 프라임, 코어, 평단 사업 모두 대학 구조조정의 맥락에 있는 사업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업이 추진될 때마다 학생들이 적시에 막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미래라이프 이전의 프라임, 코어, 이화파빌리온➊ 사업 같은 것은 막아 내지 못했고 다른 학교의 경우에도 개별 단위에서 막아 내기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의견을 낼 수 있는 창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고 이럴수록 같은 상황에 있는 다른 대학 학생들과 교육부의 정책에 대한 인식을 함께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➊ 캠퍼스 안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체인과 기념품 샵 등 각종 상업 시설을 세우는 사업. 이화여대, 서강대를 포함해 많은 사립대들이 교내 수익 사업을 통해 재정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캠퍼스 내에 각종 상업 시설을 늘리고 있다.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이 대학교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라는 명분을 바탕으로 대학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밀어 붙이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대학을 기업화시키는 ‘학문자본주의’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총장은 CEO, 정부와 대기업이 대주주”➋이고, 수험생과 학부모는 상품의 구매자이다. 구매자가 원하는 것은 취업이고, 대주주들이 원하는 것은 당장의 이익을 뽑아 낼 수 있는 실용 학문들이다. 돈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쓸데없이 국가와 자본을 비판하기까지 하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은 대학에서 쫓아내야 할 대상이다.➌ 한편 이와 같이 대학이 기업화되고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위상이 붕괴하는 현상은 신자유주의 종주국 “미국에서 시작되어 영국, 캐나다, 일본에 이어 대학의 모델을 제공하였던 독일, 프랑스에도 파급”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➍ 따라서 이대 학생들이 비판의 초점을 최경희 총장 개인에게 두는 것은 전투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 시점 한국의 모든 대학이 함께 직면한 거대한 전쟁에서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➋ 우치다 타츠루, 〈대학개혁 망국론〉, 《녹색평론》 제148호 (2016년 5·6월), 119쪽.
➌ 실제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2014년 국립대학에서 인문계 학부를 폐지하기로 결정하였다. 위 글.
➍ 고부응, 〈고난의 시대, 몰락한 대학〉, 《녹색평론》 제148호 (2016년 5·6월), 85쪽.
김환희 미래라이프에 반대하는 이대생들의 내심에는 학벌 사회에서 하나의 카르텔을 이루고 있는 이대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조진영 그런 비판은 주로 학교 측에서 점거 농성하는 학생들을 비난하는 논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대생들은 학벌 카르텔을 유지하기 위한 욕망이 아니라, 교육적 차원의 우려 때문에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성별 불평등 사회에서 여자대학의 교육은 여성의 지위 향상과 평등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이대 평단 사업 내용을 보면 사실상 이대가 추진해 온 대학 구조조정과 같은 선상에서의 취업 관련 전공을 확대하고 학위를 팔아 등록금 장사를 하려는 것이다. 신설 예정이었던 ‘뉴미디어 산업 전공, 건강·영양·패션을 다루는 웰니스 산업 전공’은 학문으로서 깊이 있는 내용이 아니며 노골적으로 취업과 연관되어 있는 학과라는 것이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항이다. 또한 경력 단절 여성에게 재취업 또는 재교육의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로 만든 이런 학과들은 여성의 직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보여 준다. 학생들은 이화여대의 창립 방향성과 맞지 않는 단대 건설을 반대하고, 학생들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행정 과정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
인터뷰이의 답변과는 별개로, 나는 이대생들이 점거 농성에 참여한 이유 중에는 학벌 카르텔의 붕괴와 이로 인한 취업상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단체 ‘학벌없는사회’의 해체 선언문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는 학벌 카르텔의 최상위권 학교 출신 학생들조차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나는 이대생들이 그 두려움 때문에 시위에 참여하였다고 해도 학교 당국처럼 그 동기의 속됨을 비난할 의사가 조금도 없다. 그러나 ‘대학의 시장화’라는 광풍 속에서 명문대의 학벌 카르텔마저 조금씩 붕괴하고 있고, 이를 둘러싼 자본, 국가, 학교, 학생의 이해관계가 엇갈린다는 점을 드러내 주기 때문에 이 비판이 이번 사태를 해석하는 중요한 지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대에 재학 중인 필자의 지인이 밝힌 견해를 따로 소개한다.
현 총장은 이번 미래라이프 단대 사업만이 아니라 정말 많은 상업적 요소들을 학교에 독단적으로 들여놓은 엄청난 사람이다. 그러나 그 ‘독단성’을 제외하면, 학내 구성원들이 과연 그를 올바르게 비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가? 글쎄…….
‘우리 이화’라는 말이 상징하는 학벌 카르텔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다수 이대 학생들은 (……) ‘우리 학교의 입학 성적이 이렇게 높다’라고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단순히 개인들의 움직임인지, 현 총학도 그런 활동에 동참했는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만, 이런 움직임들은 학내 커뮤니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뭐 물론 당연히 이런 현상이 이대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수능을 치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은 학벌 장사와 대학의 상업화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니까, 이대 재학생들 역시나 학벌 장사와 대학의 상업화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현 총장의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뷰티와 웰니스가 ‘학문’이 아니라고? (……) ‘학문’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하나 예를 들자면 경영학과는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지? 경영학과 복수전공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주전공인 학생들이 학습권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계속 대두되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렇게 경영학을 복수전공하지 못해서 안달인가? 경영학이 가장 높은 ‘학문’이라서?
학내 자치가 위협받는 상황과는 별개로, (……) 나는 11년도부터 이대에 재학하며 한 번도 우리 안의 학벌주의를 성찰하는 내부 움직임을 본 적이 없다. (있다면 누가 알려 주세요. 함께 하거나 희망을 가져보게.)
- 수수, 이화여대 재학생
김환희 이대는 건립 초기부터 학내 시위자를 제적 처리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할 정도로, 학내 자치에 매우 열악한 환경이라고 들었다. 그럼에도 이번 시위는 대중가요를 통해 단합하는 등 독특한 집회 문화를 만들어 낸 것 같다. 학생과 학교 간 관계의 역사적인 맥락을 바탕으로 어떻게 이런 변화가 발생했는지 말해 달라.
조진영 이대 학생들은 언제나 목소리를 냈다. 전국여성대회 김활란상 수여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도 대강당 앞에 모여 항의했고, 파빌리온 건물이 학생들과 논의 없이 지어질 때도, 프라임/코어 사업이 날치기로 통과됐을 때도 항의 시위를 했다. 2016년 이전에도 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들은 고공 농성부터 천막 농성, 단식까지 많은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 왔다. 이번 본관 점거도 수업 일정 변경, 장학금 일부 폐지, 신산업 융합 사업 등 학교가 일방적으로 처리해 온 일련의 과정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사건이다. 많은 학생들이 본관에 스스로 모인 만큼 다양한 아이디어가 시도되었다.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른 것은 점거 중에 신청곡을 받던 것이 계기가 된 것 같다. 학생들이 서로 격려하고 어떻게 하면 점거를 더 즐겁게 이어 나갈 수 있을까 주체적으로 고민하는 과정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김환희 점거 내내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가린 이유는 무엇인가?
조진영 이대가 지금 사회에서 여성혐오의 타깃으로 상징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일베 회원이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들을 쓴 팻말을 들고 이대 정문 앞에서 시위를 한 경우도 있었다. ‘된장녀’라든지 ‘나, 이대 다니는 여자야’라든지, 여성비하 표현의 많은 경우가 이대생이라는 프레임을 갖고 있었다. 학생들 마음속에는 이대생, 여대생, 여성으로서 외부에 어떻게 비칠지 두려움이 큰 것 같다.
이대생들의 시위에는 분명 여자대학교로서의 특이점이 존재한다. 신설 예정이던 웰니스 전공이 건강·영양·패션과 같이 여성에게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므로 반대한다는 이대생들의 논리는 이대가 상징하는 바 때문에 더욱 특별하다. 학교의 전통적 캐치프레이즈인 ‘해방 이화’에도 녹아있듯이 이대는 설립 초부터 한국 사회에서 여성주의운동의 산파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그리고 이는 대중들이 이대생에 관한 특정한 이미지와 선입견을 갖게 했다. 이번 점거 시위를 제대로 보려면 여성주의적 맥락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한국에서 대학 나온 여자’의 대표 격이 된 이대생들에 대한 인식도 확인해 볼 수 있다. (……) 문제는 이화여대와 이대생들이 여성의 사회 진출에 있어 성 평등권을 주장하면서 남성층으로부터 위협의 대상이 돼 온 점이다. 대표적 사례가 군복무 가산점제 폐지 청원 사건이다. (……)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엔 운동권 페미니즘을 제도권으로 안착시켰다는 여성가족부 설립에 이화여대 출신들이 크게 기여했다. 훗날 부산대 월장 사태(2001년 부산대 페미니즘 웹진 ‘월장’이 복학생 문화를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가 사이버 테러를 당한 사건)의 논리적 근거들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아, 그저 학생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사회 제도권 내에 압력단체화하는 페미니즘을 각인시켰다. 그렇게 또다시 이대생은 동 세대 남성층에게 가장 큰 위협이자 비판 대상이 됐다. 이 과정에서 ‘꼴페미’와 같은 비하조 언어가 생겨났다.
- 이문원, 〈‘이대생 때리기’는 ‘변화 공포증’ - 겹눈으로 본 ‘이화여대 사태’〉, 《신동아》 2016년 9월호
익명 커뮤니티와 직접 민주주의
김환희 시위 과정에서 ‘이화이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곳인가?
조진영 이대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다. 재학생, 졸업생들이 인증을 거쳐 가입 가능한 익명사이트이다. 이화이언에는 ‘비밀의 화원’이라고 익명 게시판이 있는데 외부인은 게시물을 볼 수 없다. 주로 이곳에서 점거 농성에 관한 담론이 만들어지고 있다.
김환희 점거 농성에 관한 논의는 어떻게 시작됐나?
조진영 미래라이프 사업은 대학평의회에서 결정되기로 되어 있었다. 학생회에서 평의회 회의가 열리지 않게 막아 내자고 학생들에게 제안해서 그 전날 집회를 했고 평의회 회의 당일은 회의를 막기 위해 점거 농성이 시작됐다. 이화이언에서는 학생화와 별도로 자생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학생회에서는 집회를 ‘만민공동회’의 형식으로 하여 다 같이 평의회 회의를 막자고 합의를 이루어 내고 본관 점거를 시작했다. 그때 이화이언 분들도 합류했다.
김환희 이화이언에서 토론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
조진영 익명 커뮤니티인 만큼, 사람들이 자유롭게 글을 올리면 새로운 주장과 댓글들이 붙으면서 여론 같은 게 형성됐다. 지금은 본관에 꾸려진 여러 팀 중 담당 팀이 온라인상에서 이슈가 된 주제를 선정해서, 그 주제에 대한 토론이 오프라인 상에서도 이루어진다. 현장에서도 만민공동회 식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만민공동회 형식은 총학생회가 주도한 집회에서 처음 제안이 되었다. 학생회에서는 대표자가 주동하는 시스템이긴 하지만 최대한 많은 학우 분들의 의견을 듣는 게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한 사범대 학생이 그 문제의식을 듣고 역사에 나오는 만민공동회의 이름을 붙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만민공동회는 자유롭게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고 의견을 말하는 방식이다. 초반에는 계속 의견을 받는 식이었다. 어느 정도 의견을 받아 주류적인 흐름이 생겼다고 판단되면 찬반 표결을 했다.
김환희 ‘느린 민주주의’, ‘달팽이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언론에 많이 회자되었다.
조진영 만민공동회라는 형식 자체가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자기가 의견을 말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을 다 듣는 방식이기 때문에 논의가 느리게 진전됐다. 느린 민주주의, 달팽이 민주주의는 그런 걸 빗대어 표현한 말 같다.
김환희 집행부가 없는 만민공동회, 민중가요가 아닌 소녀시대 노래와 같은 새로운 형식의 운동에서 희망을 보는가?
조진영 분명히 장점이 큰 상황이라고 생각은 한다. 왜냐면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기존 시위나 집회 같은 곳에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에 공고하게 새겨진 ‘좌파’에 대한 선입견이 너무 무섭고 자신의 신원이 들킬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이 없이 보호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런 레드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사업을 제안하고 게임을 만들고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의지만 있다면, 주체가 되어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학우들이 모였다. 더 많은 학우들이 모였기 때문에 미래라이프사업의 폐지까지 이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이다.
비정치의 정치 : ‘운동권’ 배제와 연대 거부
김환희 한편으로 고칠 점도 있을 것 같다. 학내의 소위 ‘운동권’, 총학생회까지 배제되고, 타 대학교와의 연대를 거부한 이유는 무엇인가?
조진영 30일 아침이 되자 경찰들이 회의실 주변으로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변을 경찰병력이 완전히 포위하게 되자 점거 중이던 학생들을 제압하고 평의회 위원들을 빼냈다. 학생들이 그 사실에 충격을 받고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한 학생이 발언을 하자, 많은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그 발언을 막았다. 이 학생이 이화이언에서 운동권이라고 지목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나서, 많은 학생들이 이 학생에게 발언권을 준 총학생회에 몰려와 항의했다. 그리고 만민공동회에 이와 관련된 안건이 올라왔고 학생회 측을 압박한 결과 그들에게 운동권 개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그리고 연이어 운동권인 학생 1명이 본관에서 투표로 쫓겨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➎
➎ 양효영 씨를 말한다. 양효영 씨는 이후,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농성에서 배제하는 것은 근시안적 단견일 뿐이다〉(《노동자 연대》 178호, 2016년 8월 1일)라는 글로 다음과 같이 의견을 밝혔다. “나를 쫓아내는 데 찬성한 일부 사람들은 지난 30일 경찰이 대거 투입돼 충돌이 벌어진 것에 큰 충격을 받고 두려움을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운동권’이 있으면 경찰 투입의 빌미가 될 것이고, 연행자도 나올 수 있다고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운동권’을 배제하는 것은 ‘위험 요소’를 없애는 것이기는커녕 운동의 저변을 축소시키고 학교와 정부, 경찰의 자신감만 키울 것이다.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사회적 지지를 활용하고 이를 더 늘리는 식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비록 나는 지금 부당하게 농성장 밖으로 밀려났지만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농성장 밖에서 투쟁을 지지하며 좌파적 목소리가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 입증하려 애쓸 것이다.”
이후 운동권 계열➏이었던 총학생회 역시 개입이 제한되었다. 이제 총학생회도 사회자나 주최자가 아닌 이대 학생으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이후 모든 게 익명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현장에서도 익명커뮤니티를 하지 않으면 진행 사항 등을 공유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➏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을 말한다.
김환희 이와 같은 ‘운동권 혐오’나 적대적 태도는 언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나?
조진영 이게 온라인에서 오고간 이야기라 말하는 게 조심스럽긴 한데, 시위 초반부터 굉장히 심했다. 양효영 씨에 관한 사진과 신상 정보가 익명 커뮤니티 안에서 공개가 됐다. 예를 들어 그분이 학교 어디에 있는지 추적해서 실시간으로 커뮤니티에 올리거나, 그걸 보고 잡으러 가서 비난하고 조롱하며 모욕하는 행위들이 있었다.
김환희 맙소사. 왜 그렇게까지 심했던 건가?
조진영 점거 초반에 일부 학생들에게 이런 문자가 대량으로 뿌려졌다. “지금 본관 시위에 통합진보당 등 외부 세력이 개입이 돼서 주도하고 있는 게 아니냐.” 그렇게 시위의 본질을 왜곡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외부 세력이 개입되어 있다고 언론에 나갈 경우에 시위의 진정성이나 순수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두려움, 언론에 어떻게 비치는지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이화인들 사이에 컸다. 그래서 절대 이화인 이외의 사람들이 개입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타 대학교의 성명을 비롯한 모든 연대 제안을 거절한 이유도 결국 연대의 의미를 왜곡해서 해석하는 언론과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대생들은 이 전략을 통해 평단 사업 폐지를 이뤄 낸 후 더욱더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연대를 거절하는 기조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 같다.
김환희 이전에도 운동권 혐오 정서가 있었나? 그리고 혹시 이화이언 안에서 ‘꿘충’➐이라는 말이 쓰이는지?
조진영 초반에는 쓰였는데, 지금은 자체적으로 검열하고 있다. 그런 것들이 언론에 나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단어는 거부하기로 했다. 학내의 운동권 혐오가 이렇게까지 표면화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선거 시즌일 때, 지금 나온 선본이 운동권이냐는 정도의 추궁 같은 거는 있었는데 직접적인 혐오로 드러나진 않았다.
➐ ‘운동권 벌레’라는 뜻으로 메갈리아에서 처음 명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운동권을 배척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운동권 혐오 표현이다.
김환희 어쨌든, 운동권 배제에 대해서 보수 언론의 은근한 상찬이 많았던 것 같다.
조진영 이대의 독특한 집회 문화와 연결지어 ‘순수한 시위’를 부각하는 뉴스가 많았던 것 같지만, 나는 우려지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먼저, ‘순수한 시위’를 결정하는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았다. 처음에 느린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한 학우를 내쫒기 위한 투표를 진행했고, 총학생회의 선서를 받아 내는 과정 역시 “Yes or No”를 외치면서 윽박지르듯 강요해 받아 낸 결과였다. 그리고 둘째로, 외부 세력과의 무관함을 주장하면서 어떤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할 여지가 있는 물품들의 반입을 제한했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은 본관 점거에 참여할 수 없을 정도로 냉랭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런 것들은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이며, 사회적인 편견을 이대생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집회 같은 경우에도 “외부 정치 세력이 개입했기에 이것은 순수하지 않다”라며 진정성을 왜곡하는 프레임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그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운동권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은 연대의 진정성 자체를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대생들도 그런 거다. 각자도생의 판국에서 선의의 연대가 가능할 리 없다는.
운동권 없는 농성, 학생회를 구속한 경찰
김환희 배제 전략의 문제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조진영 ‘운동권’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외부 세력이 아닌, 조금 더 분명한 정치적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의사 표현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는 이화인일 뿐이다. 소속 단위를 알리며 참가하는 것은 이화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분명하게 발화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1만 6천의 학생이 있는 만큼 그만큼의 다양성이 존재할 것이다. 1만 6천 가지의 정치색을 표백해 단일한 하얀색으로 만들어야 진정성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소속 단위에 있는 이화인들이 다른 의견들을 내며 합의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학내 민주주의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관을 점거한 학생들은 좀 더 빠른 합의와 빠른 승리에 몰두한 나머지 통념에 호소하는 실리를 택했다. 이 과정 전체가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의 배제를 통해서만 시작할 수 있는 ‘느린 민주주의’는 적어도 민주주의로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김환희 학생회가 주도권을 잃은 채 진행됐는데, 경찰은 왜 지금 학생회 임원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명령을 내렸을까?➑
➑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본관에 있던 교수, 교직원 5명의 출입을 학생들이 막은 것과 관련해 “주모자 5명을 잠정적으로 특정해 그중 3명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통보를 했다”라고 밝혔다. 총학생회 관계자들은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이들(재학생, 졸업생)과 공모해 피해자들을 감금했다’는 혐의(특수감금)를 받고 있다.
조진영 경찰이 추적할 수 있는 사람이 대표자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실명을 알고 인적 사항이 공개가 된 사람들은 대표자밖에 없었다. 조사가 돼 봐야 알겠지만 어느 시위나 그렇듯이 두어 명을 주동자로 몰아서 징계를 먹이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니까. 학생들도 조사를 받고 있는 학생회 구성원들에게 공감과 연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본관 시위 자체가 익명성을 걸고 한 것인데 어떻게 여기에 주동자가 있을 수 있냐고, 이 시위는 주동자가 없는 시위라고 분개하고 있다.
김환희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조진영 나는 소위 운동권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으로서 아직 이화이언에 신상이 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속한 단위와 실명을 모두 털어 놓고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지금 이대에는 운동권임을 드러내고 발언을 할 수 있는 창구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단위를 드러내고 활동을 하는 것이 본관 안에서 완전히 금지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의견을 온전히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어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안에서는 점거 농성의 시스템에 대해서나 ‘느린 민주주의’의 모순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런 문제 제기를 했다가 총장 사퇴안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거나 아예 내쫓길 가능성도 있다. 나는 점거 농성이 끝난 후 새로운 운동 방식에 대한 차후의 역사적 평가가 있다면, 이 문제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교육》이 그런 창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실명을 다 공개하면서 인터뷰에 응한 것이다.
Outro : 학생운동에서도 ‘비정치의 정치’가
모순된 심경을 떠안은 채 시작한 인터뷰였는데, 인터뷰를 마치자 더욱 복잡 미묘한 심경에 빠져 들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교육의 종말’이었다. 초·중등교육이 망한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고등교육도 이미 교육이 불가능한 공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학은 영리 기업이 됐다. 일개 대학의 적립금(사내유보금)이 1조에 가까울 정도로 쌓여 가도 등록금이 매년 급증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윤을 남겨 먹어야 하니까. 사내유보금은 이사장의 잉여 축적, 사유재산이니까. 그리고 그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기업에 충성하고, 쉽게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기업 맞춤형 인재(라고 쓰고 ‘노예’라고 읽는다)들로 양성되어 사회로 진출한다. 취업이라는 미명 하에 교육의 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대 점거 시위는 이 ‘교육의 기업화’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통해 학생 정치의 실태를 살펴보니 우려스러운 점이 많았다. 물론, 이대 점거 시위는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시위처럼 직접 민주주의의 저력을 보여 주고 있는 운동이다. 그러나 동시에 학생 자치의 정치적 주체가 사라진 자리에 소비자 주체가 공고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을 보여 준 사건이다. ‘비정치의 정치’란 자신의 독특한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고 ‘순수한 소비자 국민’으로서의 자신의 중립성만을 강조하는 참여를 일컫는다. 이대에서 하나의 시위 형식으로 나타난 ‘비정치의 정치’는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각성 없이도 운동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정치적 연대 대신에 모금(주간지 1면 광고)과 소비자(재학생, 졸업생)들의 보이콧이 더 나은 전략임을 증명해 보였다. 어느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정치의 정치’는 기존의 레드콤플렉스가 시장주의와 만나 더욱 업그레이드된 버전이 아닐까?
하지만 아직 이화여대 점거농성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막 탄생한 ‘만민공동회’라는 방식은 내부 민주성 강화를 통한 직접 민주주의 학생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수평적 구조와 대중 지성의 힘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연대의 연결망이 다시 안과 밖으로 이어지기만을 바란다. 나는 아직도 프랑스의 68혁명처럼 우리가 대학생들과 지식인,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해서 교육의 판을 뒤집는 ‘한 방’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대학생들의 각개 전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제대로 된 싸움을 통해 모든 대학교를 평준화시키고 대학교 수업료를 전액 면제시키고 대학 기업을 사회적 공공성을 위한 학문 도야의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날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