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호[리뷰]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바람이 되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 (톨)

리뷰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바람이 되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

 

교육노동자

10860953@hanmail.net

잘 살아 보겠다고 애쓰고 있는, 청소년노동인권과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모든 억압에 저항하려고 나름 발버둥치고 있는, 하지만 뭔가 어설픈 인간 동물.



  

공현·둠코,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교육공동체 벗, 2016

 

교육공동체 벗에서 출판한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는 총 4부, 13개의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처럼 청소년운동의 주요 인물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뷰 형태의 글들이다. 이 책은 한 번도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청소년운동과 그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우리는 당사자로서 청소년운동을 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청소년운동이란 무엇이고, 청소년 활동가란 누구인지 보여 주려 한다. (……) 어떤 사람들이 청소년운동을 했고, 청소년운동을 한다는 것이 개인에게 어떤 경험이며, 청소년운동을 했던 이들은 현재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 본문 11쪽

 

하지만 인물에 대한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인권선언(1998), 노컷 운동(2000), 18세 선거권 운동(2004) 등과 같이 시기별 청소년운동의 주요 의제를 함께 다루고 있다. 덕분에 1995년부터 2014년까지 약 20년 동안의 청소년운동을 통사적으로 살펴 볼 수 있어서 청소년운동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고찰하면서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


나는 이 책이 무척 반갑다. 현직 교사로서, 청소년노동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청소년운동과 당사자들의 삶이 특이한 아/이/들의 특별한 이야기로 여겨지는 현실이 무척 안타까웠다. ‘미성숙한 것’들의 ‘돌발 행동’ 정도로 치부되어 아예 보지도, 보이지도 않던 목소리가 이 책을 통해 사회적 목소리이면서 엄연한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어 반갑다. 더군다나 이 책의 글쓴이와 취재 대상이 청소년운동의 당사자들이라는 점에서 주체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더욱 의미가 있다. 청소년운동의 주체들이 비청소년들에게 청소년운동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을 요구하는 데서 더 나아가 스스로의 기억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청소년들의 평가가 아닌, 스스로가 말함으로써 의미를 드러내는 과정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책은 청소년운동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한국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책의 첫머리에서 공동저자 중 한 명인 공현은 이렇게 썼다. “무엇보다도 서글픈 것은, 사람들이 면면히 이어져 온 청소년운동과 그 주체들에 대해 기억하지 않는 점이다.”(본문 8쪽) 그리고 그는 2005년의 내신등급제 반대 촛불 집회와 두발 자유 운동 등을 이야기하는 “기억되지 않는 ‘우리의 촛불’” 챕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에게 ‘촛불 집회’란 2005년 5월 내신등급제와 두발 규제를 반대하며 모였던 그 촛불들을 말한다. 그래서 2002년의 촛불 집회 또는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만을 기억하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당황하는 순간이 생기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는, 그저 하나의 해프닝으로 지나쳐 간 2005년 5월의 촛불은, 그러나 청소년운동의 역사 속에서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 본문 133쪽


엄연히 존재해 왔던 자신들의 이야기가 누락된 역사들. 그 속에서 결코 잊지 않으려는 그들의 몸부림을 보여 주는 이 책은 지금도 여전히 투명 인간으로 취급받는 청소년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인간을 꿈꾸다’라는 소제목을 단 1부로 시작한다. 그 첫머리에는 1998년 학생인권선언이 등장한다. 그러나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청소년들은 ‘인간이기를 꿈꾸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청소년은 여전히 ‘미성숙과 통제’의 올가미 속에 욱여넣어져 있다. 이처럼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서 읽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지금 한국 사회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멈추지 않는 삶과 운동


이 책에서 청소년운동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당시 운동 문화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그 비판은 청소년운동의 한계를 향하기도 하고 다른 운동 주체들이 청소년운동을 보는 시선의 한계를 향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미성숙한 어린 존재가 아니라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면서도 고민하고 판단하며 비판하고 실천할 줄 아는 주체들임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청소년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사회의 직간접적인 탄압 말고도, 청소년운동의 어려운 상황, 무엇 하나 이루지 못했다는 좌절감, 운동에 열중하면서 입시 경쟁에서 뒤처지는 불리함까지 개인이 오롯이 감내해야 했다.

- 본문 38쪽

 

"같은 편에서 대처해 주고 해결을 본 지역운동 단체들에게는 아직 고맙지만, 그때 저는 지역운동의 패악질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청소년운동이 얼마나 얕보이는가를 느낄 수 있었어요."

- 본문 314쪽


이 책에 등장하는, 당시 청소년운동의 당사자들은 이제는 청소년이 아니다. 법적 나이로는 비청소년이다. 지금 그들은 청소년운동 활동가, 진보언론을 꿈꾸는 활동가, 인권교육 활동가, 노조위원장, 통일교육 강사, 청년운동 활동가, 마을 활동가, IT 협업 컨설팅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으며, 활동을 중단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청소년이라고 규정된 나이를 지났다고 해서 청소년운동이 멈추는 것은 아님을, 청소년운동이 운동으로서도 그리고 삶의 서사로서도 지속 가능한 운동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그들은 삶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도 한계가 있음을 성찰하면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현재를 바꾸려는 노력을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운동이 힘들 때일수록 (……) 잠깐 쉬고, 나가서 돈도 벌고, 그러다 또 돌아”오겠다고 말하기도 하고(본문 87쪽), 청소년운동의 새로운 사회적 의미를 추구하기도 하며, 지속 가능한 생활과 운동을 고민한다.

 

"노동자 계급의 청소년들과 하는 운동은, 사람들의 욕망을 ‘성공과 계급 상승’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라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고, 더 나아가서는 학부모들을 계몽시킬 수 있을 거 같아요. 노동자 학부모들부터 의식화시켜야 돼요!"

- 본문 179쪽

 

"제가 경험하고 있는 생계나 활동에 대한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는 돌파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수원에서 아수나로 활동에 올인 하면서 집에서 탄압받고 있는 10대 활동가를 보면, 활동가의 생활 기반을 탄탄히 만들어 주고 싶어요. 먹고살 길이 막막하니까 사람들이 떠나게 돼요. 이런 사람들이 안 떠나도록 하려면 뭔가 기반이 있어야죠."

- 본문 198쪽

 

 

말을 빼앗긴 자들의 목소리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청소년운동이라는 말이 그리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었다. 청소년운동 초기에 활동했던 당사자들도 그랬고 그 주변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스스로 “청소년운동”이라는 이름을 쓴다. 이 호명은 자신을 주체화하는, 멈추지 않았던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이름이다. 그래서 이 호명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왜 청소년운동을 했는지 묻는다면, ‘청소년이라서 그랬다’는 대답밖에는 할 말이 없다. 오히려 반대로 묻고 싶다. 여러분의 청소년기는 어떠(땠)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발버둥 칠 법하지 않(았)느냐고. (……)


하긴, 청소년을 무시하지 말고 존중하며 인권을 보장하라고 한 것이 1920년대 소년 운동·어린이날 운동 등의 주제이기도 했으니 결국 본질적으로는 같은 이야기를 100여 년 동안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기억을 기록하고 전하는 작업이 경험과 역사를 공유하고 전수하며 ‘다른 새로움’을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 본문 317~319쪽


조금이나마 청소년과 청소년운동에 고민을 하거나, 관심을 갖거나, 실천하려거나, 실천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길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청소년(어린이)이라는 개념은 발견된 것이 아니라 발명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근대 산업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만들어진 개념이자 범주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이야기는 청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청소년이라 규정된 어떤 사람들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시혜적이거나 보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할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그들’이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던 관점, ‘내’가 알고 있던 사실에 대해 의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그들과 함께 하는 시작일 것이다.


말을 빼앗긴 자들의 목소리가 나에게 무엇으로 들리는지 이 책을 통해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다. 한국 현대사는 말을 빼앗긴 자들이 말을 하게 되는 과정이다. 불만만 있고,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미숙해서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억압 받고 있는 존재들. 바로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청소년들이 그들이다. 그들, 말을 빼앗긴 자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그들의 말이 외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흘려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오지랖 넓게도 조금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함께 기억하고 싶은 청소년운동의 또 다른 역사도 기록되고 널리 알려지는 것이다. 이 책의 기록 시기 이전이었던 1990년에서 1991년 무렵, 대구 경화여고 김수경 씨, 충북 충주고 심광보 씨, 전남 보성고 김철수 씨 등과 같이 고등학생운동에서 목숨을 불살랐던 분들에 대한 조명을 시도해 봤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청소년운동의 관점에서 그리고 그 당사자들의 시선으로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도 목소리를 낼 수 없기에 더 묻혀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시도는 그것을 충분히 가능하게 할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슴 한 구석에 먹먹함이 크게 다가온다.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는 마무리에서 정희진의 ‘낡은 새로움’이라는 말을 소개한다. 오래전부터 문제 제기가 반복되지만 계속 단절되고 매번 낯설고 새롭게 시작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경험, 학교와 교육에서 느끼는 숨막힘 등이 청소년운동을 시작하는 이유가 된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로 책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청소년들이 겪는 현실의 문제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잠깐 쉴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청소년운동 역시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작은 날갯짓이 큰 폭풍을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이 책이 의미하는 바가 결코 작은 날갯짓이 아니기에,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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