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호[리뷰] 깨워야 할 것은 학생들이 아닌 학교이다 (공현)

20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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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깨워야 할 것은 학생들이 아닌 학교이다



성열관 씀,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

학이시습, 2018


공현

gonghyun@gmail.com

본지 기자




고백건대,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이라는 책 제목은 내게 구매를 망설이게 했다. 제목이 다소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요즘 애들 교실에서 수업도 안 듣고 잔다, 이게 다 체벌을 금지해서 그렇다” 하는 타령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18년 12월에 새로 나온 책 목록을 보다가 이 책을 집어든 것은 처음에는 일종의 의무감의 작용이었다. 학생인권 보장 조치 때문에 수업을 못 한다는 등의 볼멘소리는 그치지도 않고 갈수록 커져 가는 와중, 교육학적 관점에서 수업 참여 문제를 좀 공부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그런 의무감만으로는 책을 사서 통독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끝내 책을 사도록 나를 이끈 첫째 요소는 저자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신뢰도였다. 성열관 교수의 몇몇 논문들을 읽어 본 경험이, 이 저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해 주리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둘째 요소는 “교실사회학 관점”이라는 부제였다. 교육학적 관점도 심리학적 관점도 아니고 ‘사회학’이라니,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책은 그런 기대와 호기심을 배반하지 않았다.



학술적 내용의 비탈길을 올라


책의 내용 대부분은 저자가 기존에 출간한 논문이나 썼던 칼럼들을 고치거나 모아서 실은 것이다. 저자가 2011년 무렵부터 5~6년 동안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 즉 ‘수업 참여 기피’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연구를 해 왔다는 점에서 저자의 깊은 고민과 끈기를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책의 1부는 수업 참여 기피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관점과 교육학·사회학적 이론을 소개하고, 2부는 학생들과 교사들에 대한 질적 연구를 통해 수업 참여 기피 현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며, 3부는 수업 혁신의 사례와 ‘가난하지만 성실한 학생들’의 사례를 통해 수업 참여 기피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 뒤 저자가 주장하는 과제를 제시하며 마무리된다.


나는 책을 읽으며 1부 2장 ‘교수 실천의 유형학’과 3장 ‘수업 참여의 유형학’ 부분에서 책장을 넘기기가 유독 힘들었다. 배질 번스타인과 그 후계자들의 교육사회학 이론과 연구를 소개하는 부분인데 상당히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분류화’와 ‘프레이밍’이라는 개념과 코드로 읽어 내고, ‘도구적(학업적) 질서’와 ‘표현적(사회적) 질서’를 구분하여 분석하는 방식은 상당히 유용해 보이기에, 학술 용어와 도표의 비탈길을 타올라 넘으면 조금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혹시 나처럼 독서 중 이 부분에서 막히는 독자가 있다면 과감하게 챕터를 건너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권하고 싶다. 학술적인 내용에 막히거나 겁을 먹고서 저자의 값진 연구와 논의를 읽지 못하게 되는 것은 더 아쉬운 일이니 말이다. 이 부분을 읽지 않으면 이후에 저자가 언급하는 분석 틀이나 용어를 일부 이해할 수 없게 되긴 하지만, 논의의 핵심 줄기를 따라가는 것은 가능할 듯싶다. 마찬가지로, 학술적 관심이 적은 독자라면 중간중간 있는 연구 방법론 설명 등도 대충 훑어보고 지나가도 괜찮을 것이다.


3부의 8장과 9장은 수업 참여 기피 문제와의 직접적 연관성은 비교적 적다. 수업 혁신을 비롯하여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때 참고할 만한 사례들을 담고 있는 부분이다. 내용이 흥미로우니, 관심사에 따라서 골라 읽어도 될 것이다. 3부 10장 ‘자는 아이들을 참여시키기 위한 여섯 가지 과제’는 책 전체의 결론인 셈이고 저자의 문제의식이 집약되어 있으므로 꼭 읽기를 권한다.



사회적 현상으로 접근한다는 것


책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수업 참여 기피’를 사회학적 문제로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자는 것은 과연 심리학적 문제일까? 상담이나 행동 치료의 대상일까? 물론 심리학적 접근 또는 상담을 통한 처방과 대처 방안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 현상은 매우 사회학적인 문제다. (……) 수업 시간에 자는 것을 심리적 치유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 학교와 교실의 질서를 인식하고 이에 동의하거나 저항하는 이유를 밝힐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은 집단, 규범, 질서, 동의, 저항 등 사회적 관계를 다루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회학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 본문 11~12쪽



이를 사회학적 문제라고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먼저 학생들의 수업 참여 기피는 학생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실에서 나타나는 사회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 개개인에 대한 심리적 접근이나 의료적 접근은 당장의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두 번째는 학교 교실과 수업의 문화와 질서,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 사이의 역할 기대와 상호 작용 등은 사회학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라는 이야기다. 이는 책의 부제대로 ‘교실사회학’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학교의 ‘코드’, 학교의 문화나 수업의 방식, 학교 교실 안의 행위자들의 인식과 행동 등을 분석함으로써 수업 참여 기피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수업 참여 기피는 학교교육 내부에서 기인한 현상이라기보다는 학교 밖의 사회 구조와 직결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학생의 가정 환경 등 사회적·경제적 배경은 물론, 우리 사회가 학교에 요구하는 선발 기능이나 우리 사회의 거시적인 변동 등의 문제들이 모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접근하기에 저자는 “수업 거부 현상을 학생 훈육의 문제(학교 책임론)나 학생들의 태도 문제(학생 책임론)로 논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본문 71쪽)고자 한다. 또한 “메리토크라시 체제의 일부로 오직 선별 기능이 지배하는 학교에서 학습권을 박탈당한 피해자로서, 무기력한 학생들”(본문 324쪽)을 보고자 한다. 나는, “깨워야 할 대상은 ‘자는 학생들’이 아니라 학교의 사회적 규범과 기존의 관행”(본문 163쪽)이라고 외치며 문제의 초점을 학생이 아닌 학교와 사회로 이동시키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가치라고 본다.



이중의 과제


저자가 3부 10장에서 수업 참여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하는 여섯 가지 과제는, 교실사회학 관점 취하기, 모두가 존엄한 사회를 위해 모두가 존엄한 수업을 운영하기, 국가교육과정 난도를 낮추기, 1교시에서 6, 7교시까지 협력의 매개로 수업하기, 절대 평가를 중심에 놓기, 메리토크라시에서 데모크라시로 전환하기이다. 인식을 바꾸는 문제나 수업을 바꾸는 문제에서부터 국가 단위의 제도를 바꾸는 문제, 학교와 사회의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적 성격의 문제까지 아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업 방식과 문화를 바꿈으로써 학생들의 수업 참여 기피 현상을 해결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 그러나 그 한계는 분명하다. 이 책에서는 수업 테크닉의 변화로는 학생들에게 수업의 의미를 되찾아 줄 수 없다고 말하고, 협력 수업을 소개한 장에서도 그것이 학생들을 ‘적극적 참여자’로까지 만들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불가능한 영역’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인정해야 할 것은 수업의 변화 또는 학교의 어떤 노력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영역의 존재다. 학교가 사회적 선별 장치로서 시스템에 적응한 승자와 그렇지 못한 패자를 계속 골라내는 작금의 역할에만 충실할 때, 아무리 수업을 잘 운영해도 수업 소외 현상을 완전히 치유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 학교의 노력만 가지고는 ‘불가능한 영역’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교육자들은 이 ‘불가능의 영역’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본문 163~164쪽


그렇다면 수업 방식과 문화를 바꾸는 것은 학생들의 수업 참여 기피 현상을 해결하는 데 무의미한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저자는 교육의 장이 사회로부터 어느 정도 자율성을 확보해야 하며, 좋은 사회를 지향하는 첫걸음은 교육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혁신학교를 비롯해 수업을 혁신하려는 노력을 소개하며 공교육의 책임과 윤리를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중의 과제를 인식하고 풀어 나가야 한다. 수업, 나아가서 학교의 문화나 교육과정을 바꾸어 나가되, 그것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불가능성을 명확히 인식하며 사회의 거시적인 변화 역시 추구해야 한다.



‘학교 붕괴’, ‘요즘 애들’ 담론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는 뭔가 새로운 현상이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내가 중학교를 다닌 2000년에서 2002년 3년을 돌이켜 봐도 수업 시간에 상습적으로 자거나 딴짓을 하는 학생들은 40명 중 최소 10명은 넘었던 것 같다. 대놓고 자다가는 체벌을 당했기 때문에 눈에 안 띄게 몰래 딴짓을 했을 뿐이지 제대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던 학생들은 아마도 더 많았으리라.


나는 2003년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여기에서도 수업 시간에 자는 등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은 적은 비율로나마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다닌 자사고에서는 수업 참여를 기피하는 학생들 중 절반쯤은 수업 참여를 포기한 경우였지만, 나머지 절반쯤은 학교 수업이 입시 준비에 비효율적이라고 여겨서 혼자 다른 공부를 하고 있거나, 사교육에 더 치중하고 학교 수업 시간은 휴식에 쓰는 경우였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음악 시간 등 입시에서의 비중이 적은 수업 시간이면 더욱 수업 참여를 기피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곤 했다. 자사고가 이러했는데, 다른 고등학교들은 어땠을까. 결국 수업 참여 기피 현상은 학교가 나와 공동체의 삶에 가지는 의미를 잃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교육 불가능’과도 같은 맥락에 있는 문제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교실 붕괴’, ‘학교 붕괴’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 것이 1990년대이니 벌써 20년도 더 전이다. 그러니 시간적 선후 관계만 보더라도 이런 현상은 학생인권 신장이 원인일 수가 없다. 체벌 금지 등 학생인권 신장이 문제를 더 눈에 띄게, 수면 위로 올라오게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이토록 오래전부터 문제시된 현상임에도 아직도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는 듯하고 언론들은 ‘학교 붕괴, 그러니 교권 강화!’ 등을 외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이 문제에서는 우리 사회의 시간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사회가 이 문제에 대처해 온 방식은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이 책에서는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사의 학생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학생을 교육의 주체로 보지 않고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본문 114쪽)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언론들이 교육 문제를 다루는 상투적인 프레임을 비판한다.


사회적으로 심각한 교육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유교적 위계성의 상실이 그러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해진다. 특히 언론은 이러한 프레임을 전제로 사례만 바꾸어 가면서 이런 식의 논리를 재생산해 왔다. 이러한 유교적 전통을 기반으로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군사부일체’의 일부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반인권적 체벌조차 정당화되어 왔던 것이다. 최근 들어 ‘요즘 애들, 싸가지가 없어졌다’는 사회적 무의식이 각종 고상한 말로 포장되어, 인성교육 등을 그 대안으로 떠올리며 아이들을 대상화하고 있다.

- 본문 117쪽


‘교실 붕괴’ 또는 ‘학교 붕괴’ 담론 역시 한계를 가진다. 학교 붕괴 담론은 “공교육의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그 결과 시장 주도 교육 개혁이 들어올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공간을 만들어 주었”(본문 70쪽)으며, “대체로는 교사의 권위를 강화하고 학생을 통제하고자 하는 사회 정서가 강하게 작용”(본문 7쪽)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학교 붕괴’ 담론, 그리고 오랫동안 번져 온 청소년 혐오적인 ‘요즘 애들’ 담론을 넘어서, 이 책이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를 위해서는 저자의 역설대로, “수업 소외를 인권, 사회 정의, 인정, 권리 옹호의 문제로 인식”해야만 하며 “수업을 바꾸려는 행위는 변별 시스템으로서 학교를 바라보는 사회와 대결을 벌이는 일임을 명심해야”(본문 358쪽)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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