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호[에세이]‘농農’의 편에 서서 (하승수)

202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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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의 편에 서서

 - ‘공익법률센터 농본’을 만든 이유

 

 

하승수

haha9601@naver.com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변호사

 



지난 6월 28일 충북 괴산군에 갔다. 괴산군 사리면에 52만 평 규모의 산업 단지와 함께 190만t의 산업 폐기물을 매립하는 매립장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는 문제 때문이었다. 괴산군 사리면은 인구가 3,000명 정도 되는 농촌 지역인데, 마을 이장단을 비롯해서 면 전체가 반대를 하고 있었다.


산업 단지와 폐기물 매립장 예정지 부근에는 어린이집과 학교가 있고, 면 소재지도 가까운 위치였다. 그러니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농지와 임야가 대규모로 훼손되고, 악취와 침출수 피해도 우려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괴산군수가 나서서 산업 단지와 폐기물 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공무원들을 동원해서 사리면 주민들을 만나러 다니게 하고, 군수 본인도 사업 부지 안에 토지를 가진 종중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설득을 하고 다니는 정도라고 한다. 내년이 지방 선거인데, 사리면 주민들이 반대하는 사업을 군수가 밀어붙인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주민들에게 군수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니, ‘공무원 출신이고 현 도지사의 비서실장을 하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지방 선거에 나와서 당선됐으니, 그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을지는 짐작이 되었다. 게다가 3선을 하고 있는 이시종 충청북도지사는 그동안 충청북도 곳곳에 산업 단지와 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서도록 해 온 장본인이다.

 

 

자본의 탐욕, 그리고 유착된 정치·행정

 

괴산군에 가기 전 충청북도에서 추진된 산업 단지와 폐기물 매립장들의 상황을 찾아보았다. 지금 괴산군에 추진하려는 산업 단지 이름이 ‘메가폴리스’인데, 이미 충주시에 ‘충주 메가폴리스’라는 산업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이 산업 단지는 SK건설과 토우건설이라는 지역 토건 업체가 제안해서 추진된 것이었다. 시민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 농촌 지역에 만들어지는 많은 산업 단지들은 민간 업체들이 제안하고 지자체가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땅을 분양해서 얻는 이익도 민간 업체들이 가져간다. 지자체가 일부 참여해서 배당을 받기도 하지만, 큰 이익은 민간 기업들이 챙겨 가는 구조이다. 거기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산업 폐기물 매립장까지 집어넣는 것이다.


충주시에 이미 들어선 ‘메가폴리스’ 산업 단지에도 산업 폐기물 매립장이 있었다. 산업 폐기물 매립장을 운영하는 업체의 회계 자료를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20억 원의 자본금을 투자해서 매년 200억 원 이상의 순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2020년에 챙겨 간 배당금만 400억 원에 달했다. 그야말로 돈을 쓸어 담고 있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이 업체의 주식 지분은 누가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TSK코퍼레이션이라는 낯선 이름의 회사가 70%의 지분을 갖고 있었고, 지역 건설 업체인 토우건설 계열사가 30%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TSK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를 알아보니, 이번엔 태영그룹과 SK가 나왔다. 〈SBS〉 방송사를 지배하는 그 태영그룹이었다. 알고 보니 TSK의 ‘T’는 태영그룹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SK는 ‘SK’를 의미하는 것이었다(최근 SK는 TSK코퍼레이션 주식을 처분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한마디로 ‘태영그룹 + 지역 건설 업체(토우건설) + SK그룹’의 3자 동맹이 충주에 산업 단지를 만들고, 그 안에 산업 폐기물 매립장까지 설치해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똑같은 방식의 사업을 충북 음성에서도 벌이고 있었고, 이제는 괴산에서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건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농촌은 이제 탐욕스러운 자본이 들어와서 이윤을 뽑아 가려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정치·행정은 그런 자본의 탐욕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이 충청북도 지역에서 산업 단지와 산업 폐기물 매립장 문제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농촌에서 보니 보이는 것들

 

6월 28일에 괴산에 간 것은 이런 산업 폐기물 매립장 문제의 실체에 대해 강연을 하기 위해서였다. 강연을 마치고 나니, ‘너무 화가 난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탐욕스런 자본이 들어와서 농촌 지역의 삶터를 파괴하고 돈만 벌어 가려 하는데, 지방자치단체장이 자본의 편에 서서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사실 나도 농촌으로 오지 않았다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농촌으로 온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에 새롭게 눈을 뜨게 한 것이다.


나는 5년 전에 충남 홍성군 홍동면으로 귀촌을 했다. 전부터 홍동면으로 귀촌을 하려고 준비해 왔으니, 그 기간까지 포함하면 8년이 되었다. 요즘 서울에 일을 보러 갔다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홍성에 산다’고 하면, ‘충남 홍성이 고향이냐?’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그러면 ‘연고는 없다’고 대답한다. 실제로 혈연, 학연, 지연 같은 연고는 전혀 없다. 연고라면, 녹색당 활동을 하면서 홍동면으로 귀농·귀촌한 분들을 알게 된 것이 연고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시골로 와서 살겠다고 생각한 지는 꽤 되었다. 2004년 핵폐기장 문제로 전라북도 부안에서 한 달 넘게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농촌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에 부안군 13개 읍·면을 돌며 민간 차원의 주민 투표를 준비했었는데, 그러면서 개인적인 삶이나 앞으로의 활동을 생각하면 도시보다는 농촌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당시에 내가 살던 경기도의 도시에는 재건축 붐이 일고 있었는데, 그런 현실을 보면서 ‘도시에서 과연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회의감도 느끼고 있던 때였다.


그 후에도 오랫동안 농촌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 5년 전 홍동면으로 귀촌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무렵부터 충남 지역의 여러 곳에서 산업 폐기물 문제로 연락이 왔다. 도시에서 살 때에는 폐기물 하면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는 생활 폐기물이나 음식물 쓰레기 정도를 생각했는데 농촌에 오니 그게 아니었다. 산업 폐기물, 건설 폐기물이 농촌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좀 더 알아보니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중에 생활 폐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90% 가까운 폐기물이 건설 폐기물, 사업장 일반 폐기물, 지정 폐기물로 분류되는 산업 폐기물이었다. 이 산업 폐기물을 농촌에 가져와서 지하 수십m에 매립하겠다는 매립장이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었고, 소각장도 여러 곳에서 추진되고 있었다.


농촌에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을 접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농촌에 살지 않았다면 농촌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얼마 전 한 언론사에서 일하는 사람과 산업 폐기물 매립장 문제로 얘기를 나눴다. 농촌 지역으로 밀려드는 산업 폐기물 매립장 문제는 환경 문제일 뿐만 아니라, 경제 정의의 문제이고 정치의 문제라는 것을 많이 설명했다. 사모 펀드와 건설 대기업들이 인허가만 받으면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이런 질문이 돌아왔다.


“그런데 어쨌든 산업 폐기물 매립장이 필요한 건 아닌가요? 현실적으로 농촌이 아니면, 어디에 폐기물 매립장을 설치해야 하는 건가요?”


열심히 대답과 설명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그 언론과의 협의는 무산되었다. 그 언론사는 산업 폐기물 매립장 문제를 아이템으로 다루지 않았다.

 

 

농촌 주민은 소수자다

 

사실 그 언론사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은 충분하다. 우선 산업 폐기물의 양은 줄이려고 노력하면 줄일 수 있다. 매립을 최소화하려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인 것을 감안하면, 매립이 아닌 다른 처리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산업 폐기물이 많이 발생하는 공장과 산업 단지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도저히 안 되어서 매립장을 설치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몇몇 민간 업체들이 ‘떼돈’을 벌게 할 것이 아니라, 공공에서 매립장을 설치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적인 설명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도시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농촌으로 폐기물이 가지 않는다면 도시에서 더 많은 폐기물을 처리해야 하는데, 그런 얘기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 있다는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이런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 한국에서 농촌에 사는 주민들은 소수자다. 숫자도 소수이지만, 국회 안에 있는 그 어떤 정당과 정치인도 농촌에 사는 사람들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소수자다. 지역구가 농촌인 국회의원들조차도 그렇다. 표가 필요할 때에만 농촌과 농업을 언급할 뿐이다. 실제로 농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보수든 진보든, 그 어떤 종합 언론도 농촌 주민들의 얘기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심지어는 농촌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 지방 의원, 지방 공무원들도 농촌 마을의 편이 아니다. 이들은 대부분 도시화된 읍 지역에 살거나 인근 도시에 산다. 그러니 이들조차도 면 지역의 농촌 마을은 후순위이다.


도시에 몰려 있는 시민단체들과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이 하는 일이 가치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도시에 몰려 있고, 도시 중심으로 일을 한다. 억울한 일이 수시로 일어나고, 심지어는 마을이 사라지고, 온갖 유해 물질과 악취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농촌에 있는데, 왜 농촌의 편에 서려는 단체와 전문가들은 없을까? 어느 순간부터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수도권-비수도권이라는 구분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도시-농촌의 구분이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권력으로부터 소외되고 배제된 소수자라면, 그 소수자의 편에 서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농촌에 사는 수많은 생명들과 자연을 대변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면, 탐욕스런 자본의 편이 아니라 농촌의 편에 서는 단체나 사람도 필요하지 않은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2021년 2월에 ‘공익법률센터 농본’이 창립하게 되었다. ‘농본’은 농촌, 농민, 농사의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농촌 마을을 지키려는 주민운동을 지원하려는 단체이다.

 

 

서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것이 다르다

 

농촌에 살면서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농촌을 지키고 농민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농’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적인 재앙도 피할 수 없지만, 한반도에서는 대규모 식량 위기와 같은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살면서 기후 위기를 얘기하는 일부 정치인, 관료, 전문가들은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실제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듯하다. 그저 재생 가능 에너지 발전 용량이 얼마나 늘었고 발전하는 전력량이 얼마나 되는지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농지를 태양광 발전기로 덮고 숲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재생 가능 에너지는 또 다른 ‘자멸’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농지가 없고 숲이 없는 세상이 지속 가능할 것 같은가? 그런 세상을 만들면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은가?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한편 재생 가능 에너지와 함께 추진되고 있는 LNG 발전은 더욱 심각하다. 전기를 대량으로 소비하지 않는 시골에 대규모 LNG 발전소들이 추진되고 있다. LNG 발전은 전기도 생산하고 남은 열도 사용하는 ‘열병합 발전’을 하기에 유리하다는 것이 장점인데, 농촌 지역에 LNG 발전소를 지으면 열을 사용할 곳이 없다. 전기만 생산하고 열은 버려야 한다. LNG 발전소를 짓는 과정에서 농지가 파괴되고, 농촌 마을이 사라진다. LNG 발전소에서 나오는 대기 오염 물질이 농촌 마을의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이런 문제들이 농촌의 시선에서 보면 보이는데,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기후 위기로 인한 자멸을 피한다면서, 새로운 ‘자멸’을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의 현장도 농촌, 그러나 무성의한 정부

 

기후 위기로 인한 최대 피해도 농촌이 입고 있다. 장마가 시작됐는데, 농민들은 ‘올해는 장마가 작년처럼 길지 않아야 할 텐데’라는 걱정이 앞선다. 작년 가을 추수 때에는 ‘조생종 벼 수확량이 30% 이상 줄었다’, ‘친환경으로 지은 경우가 관행농보다 수확량이 더 줄었다’라는 얘기들이 돌았다. 긴 장마와 도열병 때문이었다.


통계청은 2020년 10월에는 3.0% 정도 쌀 수확량이 줄 것이라고 예측했다가, 농촌 현장에서 ‘피해가 훨씬 더 크다’는 목소리가 빗발치자 11월에는 ‘쌀 수확량이 6.4% 줄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농민들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수확량 감소 폭은 훨씬 더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논란을 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쌀 수확량을 계산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자동차 생산 대수, 반도체 수출량 계산하듯이 그렇게 나왔을까?’, ‘그런데 전국의 논이 몇 필지인데 제대로 다 집계했을까?’ 등의 의문들도 이어졌다.


그래서 농본에서는 2021년 3월부터 통계청의 계산 방법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파악한 결과, 통계청이 발표하는 쌀 수확량은 실제 수확량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에 3,000필지 조금 넘는 논을 뽑아서 표본 조사를 한 것이다. 그런데도 실수확량인 것처럼 발표를 하니, 농민들이 체감하는 것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사례는 귀촌 통계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귀촌 통계에 따르면, 도시에서 농촌으로 가는 귀촌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0년에는 345,205가구가 귀촌을 해서 그 전해보다 8.7%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농촌 마을에서는 인구가 계속 줄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귀촌인이 많은 5개 지방자치단체를 뽑은 것을 보니 경기도 화성시, 남양주시, 김포시, 광주시, 평택시라고 한다. 새로운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는 지역이다. 서울이나 경기도의 동洞 지역에 살다가, 이런 도시의 읍·면 지역 아파트로 이사하면 ‘귀촌 인구’로 잡히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의 아파트에 살다가 경기도 화성시의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이 어떻게 ‘귀촌’이 될 수 있는가?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이 이런 식이다. 그야말로 농촌, 농업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성의도 없다.

 

 

‘농’의 편에 선다는 것

 

쓰다 보니 흥분을 많이 했다. 다시 6월 28일 괴산으로 돌아가 보자. 괴산문화예술회관에서 ‘산업 폐기물 매립장, 무엇이 문제이고, 누가 이득을 보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사리면 주민들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 주민 한 분이 ‘괴산이 전국에서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아느냐?’라고 얘기하신다. 잘 모른다고 했더니, ‘절임 배추’를 전국에서 제일 먼저 괴산에서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랑할 것이 더 있다고 하신다. ‘대학찰옥수수’가 유명하고, 고추와 감자도 유명하고, ‘유기농업’으로도 요즘에는 많이 알려져 있고……. 이렇게 지역 자랑을 하시다가, ‘왜 이런 것을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군수가 산업 단지와 폐기물 매립장을 유치하겠다고 하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얘기하신다. ‘산업 단지와 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서면, 오히려 사람들이 사리면을 떠날 것’이라고 걱정하신다. 마을 이장 한 분은 ‘산업 단지가 들어서면 농지도 사라지고 아버지 무덤도 사라지는데, 이곳에 살 이유가 없다’고 얘기한다.


나는 이 주민들의 얘기가 옳다고 믿는다. 농촌을 살리는 것은 산업 단지를 유치하고 산업 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서게 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을 농촌답게 지켜 나가는 것이다.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를 생각해도 그렇다. 나는 농사를 기본으로 하는 삶의 방식을 지키고 유지하면서 ‘농’의 가치를 살려 나가는 것이 기후 위기 시대에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그것조차도 불가능해진 상황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노력하는 것이 이 암울한 시대에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농촌 마을을 지키려는 지역 주민들의 편에 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힘을 보태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농촌·농사·농민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는 잘못된 정책들을 감시하면서 농촌에서 대안을 만들려는 노력에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힘을 보태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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