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후 1년, 사과는 없었다
- 어린이들의 목소리에 돌아온 어른들의 ‘억까’
남궁수진
blessedsj11@gmail.com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2023년 8월 8일 오전 10시 30분. 6명의 어린이와 6명의 양육자들 그리고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대표인 김영희 변호사는 국회 본청에 들어섰다. ‘당 대표 회의실’, 화면으로만 보던 곳이었다. 복도에서 우리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오늘 행사의 공식 명칭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를 위한 아동·청소년·양육자 간담회’이다. 양육자들은 여섯 명 어린이 활동가들의 고사리손을 잡고 들어가야 한다. 스치는 불안감을 안고, 그렇게 회의실 문턱을 넘는 순간, 우린 이미 짜여 있는 판 속으로 쓸려 갔던 것이다.
“엄마, 바다에 핵 오염수가 들어가잖아. 그리고 햇빛에 바닷물이 증발할 거야. 그리고 비가 돼서 내리겠지? 그럼 그걸 우리가 마시는 거잖아.” 초등학교 2학년인 김한나는 핵 오염수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왜 우리나라는 바다를 마주한 일본이 핵 오염수를 버리는 것에 찬성했는지 의아해했다. 그런 어린이가 손피켓 그림을 그리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회의실에 앉았다.
“지난주에 저는 교회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파도를 탔습니다.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후쿠시마 바다를 생각했어요. 그곳도 안전하고 행복한 바다일까요? 저는 영상으로 후쿠시마 핵 발전소를 보았어요. 너무 위험해서 사람이 들어가지 못했고 로봇이 촬영한 것이었습니다. 발전소 안은 아주 끔찍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나온 위험한 물을 바다에 버린다고요? 저는 무지 놀랐습니다. 내가 제일 싫은 건 우리나라 대통령이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걸 찬성했다는 거예요. 만약 저나 제 친구 누구가 대통령이라면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걸, 절대로 막았을 겁니다. 우리처럼, 후쿠시마 오염수를 반대하는 국민들도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도 위험한 핵 발전을 당장 멈춥시다. 저는 핵 발전소보다도 더 무서운 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경주 월성에 사는 다섯 살 동생도 피폭되었어요. 너무 속상합니다.”
어린이 활동가의 발언에 이어 청소년과 양육자가 발언했다. 특히 김정덕 활동가는 오늘 우릴 초청한 민주당의 무책임한 기후 위기 대응 행태를 꼬집었다.
“2022년 9월 30일 ‘신규 석탄 발전소 철회를 위한 탈석탄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국민 5만 명의 동의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회부되었습니다. 그러나 청원 달성 10개월이 지나도록 국민 청원은 입법 발의의 문턱을 여전히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 청원이 국회에 회부된 후에 ‘신규석탄발전중단법’ 제정을 서두르라는 시민들의 요구와 관련 활동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이후로 230일 넘게 국회 앞 1인 시위는 계속됐습니다. 여기 계신 어린이 활동가분들도 가을, 겨울, 봄, 여름이 될 때까지 국회 앞에서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민주당 등 거대 정당들은 법안 발의를 위한 가시적인 노력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국회가 5만 시민들의 청원 요구를 외면하면서, 시급한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국회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김정덕 활동가는 이 외에도 수라 갯벌과 낙동강 하구에 새만금 공항, 가덕도 신공항 등 심각한 기후 위기에도 안이한 국회의 태도에 대해 구체적인 지적과 비판을 이어 갔다.
이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대한민국의 모든 환경 문제에 관심 가지고 노력해야 되겠지만, 지금 당장 시급한, 핵 오염수 배출 문제에 대해서 총력 단결하고 저지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라며 김정덕 활동가가 규탄한 내용을 기피하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민주당의 속내는 알 수 없으나, 그날 어린이들과 양육자들의 발언은 민주당의 편이 아니었다. 반대로 민주당이 오이(忤耳)할 내용이었다.
어린이의 자발성을 부정한 정치와 언론
당시 민주당 대표가 회의실에 들어설 때 무섭게 빗발쳤던 카메라 플래시들은 수많은 기사로 이어졌다. 그 회의의 전체 내용은 유튜브로 생중계되었고, 기자들도 현장에서 취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과 양육자들이 규탄했던 내용들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8살 어린이를 “활동가” 소개… 대통령 성토케 한 野 ‘오염수 간담회’”, “행사에 불려 나온 어린이들”❶, “고작 아이들을 선동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인가”, “초등 2년생을 ‘활동가’라 부르며 오염수 저지 간담회 연 민주당”, “광우병 괴담, 사드 괴담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까지 동원하여 정쟁에 이용했던 민주당의 모습”❷……. 비단 기사 내용만이 아니었다. 기사에 사용된 사진도 의도적이었다. 오랜 간담회에 지친 어린이가 짧게 하품을 한 찰나를 메인 사진으로 쓰거나, 어린이들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 한 치욕스런 사진❸도 있었다. 하품을 한 모습으로 폄훼된 어린이 활동가는 5만 명이 모인 ‘일본 오염수 방류 중단 촉구 집회’에서도 당당히 목소리를 낸 이정후 활동가이다. 기사 밑에 달린 댓글은 양육자로서 감히 떠올리고 싶지 않고, 차마 글에 담을 수가 없다. 아기 기후 소송에 참여한 한제아 님이 〈MBC〉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내용으로 갈음한다. “댓글 중에서는 너는 숨도 쉬지 말라고…….”❹
어린이들은 악의적인 보도에 시달렸고, 직접 해명에도 나섰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왜 그 누구도 어린이 활동가들의 자발성은 전제하지 않는 것인가? 어린이 활동가들의 정치적 견해를 무시하고 어린이를 수동적·비자발적 존재로 폄훼하기 이전에,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견해는 무엇인지 자신의 취재 방식이 수동적이고 비자발적이진 않은지 자성하기를 바란다”라는 성명을 냈고, 더불어 어린이 활동가들의 의견을 물었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자발성을 부정한 어른들에게 쓴소리를 했다. “안 가고 싶으면 안 간다. 어디를 가든 내가 결정한다.”(박서율 활동가),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거다. 난 이 문제에 관심이 있고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걸 반대하기 때문에 간 거다. 국민의힘과 그 기자 누구냐?”(백재희 활동가) “어린이 모욕하지 마세요, 얕보지 마세요.”(정두리 활동가) “나오고 싶어서 나온 거예요. 왜냐하면 후쿠시마 오염수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리고 싶고, 어린이 의견을 전달하려고요.”(이지예 활동가)
특히 이은유 활동가는 “오징어와 문어를 좋아해서 바다를 지켜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발언 기회가 없었다며 아쉬움도 표현했다. 이은유 활동가는 교육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산림청, 기상청 등 6개 관계 부처의 업무 협약으로 선정돼 지원 중인 ‘탄소중립 중점 학교’에 재학 중으로, 2022년 3월부터 탄소 중립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양육자인 권영은 활동가는 “아이가 교육받고 실천하다 보니 덩달아 양육자도 교육받게 됐고, 저희도 실천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혔다.
당시 언론들이 가리고 묻어 버린 내용은 이뿐만 아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반대 단식 투쟁 때 받은 편지를 내보였다. 태랑초등학교의 한 학생이 오염수를 막아 달라는 서명을 100명의 어린이에게 받아서 보내 온 것이었다.
“해양생물 그리고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걱정을 덜어 주는 미래를 선물해 주세요. 부디 이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에 대해 한번 더 깊이 생각해 주세요. 여름에는 바다에서 물놀이도 하고 걱정 없이 해산물도 먹고 싶습니다. 부탁드려요.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해 주세요.”
기후 위기에 대해 어린이들이 목소리를 낼 때마다 불퉁한 소리를 들어 왔다. 이에 더해 민주당과 함께 간담회를 가졌다는 이유로 어린이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 양육자가 외치는 소리는 묻혔고, 어린이를 폄훼하는 뉴스와 여당에 의해 고통받는 참혹한 시간이 흘렀다. 이 일련의 사건에서 정말로 ‘정치적’인 것은 누구인가? 발화자가 이야기한 내용은 덮어 버리고자 빨간 칠을 하고 의도적인 이미지 왜곡으로 몽니를 부린 쪽은 여당과 언론 아닌가? 더 나아가, 왜 어린이들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면 안 되는가?
1년이 지난 후, 기후 소송에서 이기고……
1년이 지난 2024년 8월, 후쿠시마 핵 오염수 문제는 괴담이었다고 평가하는 정치인들과 그것을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들의 모습은 여전하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김한나는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1주년, 방류 반대 기자 회견에 자신도 꼭 참석하고 싶다고 양육자를 채근했다. 바다가 죽는다고, 바다의 작은 생명들이 피폭되면 그 다음 큰 물고기 그리고 우리까지 피폭된다며 꼭 가자고 한다. 기자 회견에 참석하러 집을 나서는데, 작년 당 대표 회의실 앞에서 정두리 어린이 활동가가 자비로 후쿠시마 오염수를 알리려고 복사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종이가 눈에 띄었다. 김한나 어린이 활동가도 종이를 건네받으며 친구들에게 함께 알리겠다고 마주 보고 웃었던 순간이 스쳐 지나간다.


그로부터 다시 20여 일이 지났다. 2024년 8월 29일, 「탄소중립기본법」 위헌 심판 청구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일이었다.❺ 지난 2022년 6월, 어린이 활동가들을 포함하여 62명의 ‘아기 기후 소송단’
(5세 이하 39명, 6~10세 22명, 20주 차 태아 1명)도 헌법소원에 청구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2년 동안 어린이·청소년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에게 손편지를 보내고, 뜨거운 낮에 기자 회견을 하느라 마이크를 들었다. 정부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제대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것을 촉구했다. 드디어 선고의 시간이 왔다. 헌법재판소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 계획이 부재한 것이 미래 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며 “헌법 불합치” 결론을 내렸다.
어린이·청소년들이 이겼다. 1년 전에 언론과 여당이 ‘무얼 아느냐’고, ‘북한처럼’, ‘동원되었다’고 힐난하고 모욕했던 어린이, 청소년들이 해낸 것이다. 아기 기후 소송 당사자 중 헌법재판소 공개 변론에서 변론한 한제아는 이제 여러 매체에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심지어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목소리를 낸 어린이들을 모자이크 처리해서 “명백한 아동학대”라고 연일 보도했던 〈TV조선〉도 한제아를 스튜디오에 초대하여 제법 곱게 메이크업을 해서 출연시키는 정성을 보였다. 한제아는 여러 매체 인터뷰에서 밝힌다. 우리를 욕하는 어른들이 있었다고. 심지어 기사를 찾아본 친구들이 ‘어른들이 제아에게 억까(억지로 욕한다는 뜻)했다’라고 말해 주었다는 일화도 이야기한다. 인터뷰어는 말한다. “그저 무시하라”고…….
1년 전 지옥 같았던 그때는 인터넷 기사와 유튜브에 박제되어 있고, 무엇보다 어린이와 양육자 들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어린이의 주체성을 폄훼했던 당사자인 여당과 언론들은 자신들의 행태를 그냥 덮고 넘어갔고 반성과 사과란 없었다. 어린이 활동가의 발화 내용이 아닌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대로 어린이 활동가를 보도, 재현하는 행태. 어린이의 인권이 우선인가, 정치적 진영이 우선인가? 어린이 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은 이렇게 여실히 증명되었다.
“제가 해냈어요”
대한민국에서 어린이·청소년은 경쟁 교육, 입시 교육의 대상이다. 수학과 과학, 영어, 예술에서 뛰어나게 두각을 보이는 영재는 추켜세우기 바쁘다. 그러나 기후, 인권, 혹은 민감한 정치적 사안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며 목소리를 내는 어린이, 청소년에게는 무서운 말을 쏟아 낸다.
기후 위기 시대에 어린이·청소년들은 이미 많은 것을 겪어 왔다. 영유아 때부터 미세 먼지로 마스크를 쓰라는 채근을 받았다. 몇 년 후에는 코로나19로 마스크는 아예 얼굴이 되어 버렸다. 한창 사회적 지능을 키워야 할 때 세상과 분리되어서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밖에서 여럿이 어울려 편하게 뛰어 놀지 못했다. 더워진 날씨로 2024년 여름에는 실내 놀이만 가능했다. 친구들과 많이 못 놀았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어린이에게 앞으로 올 여름은 더 더운 날들뿐이다. 기후 위기의 피해를 온몸에 나이테처럼 새긴 어린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목소리를 외치지도 못하게 한다. 기후 위기 앞에 살아갈 곳이 난파되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아이들을 어른과 똑같이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가 무얼 아냐고 하지 마세요. 저는 활동가이고 제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발언을 시작하겠습니다.”
작년 2023년 8월 8일,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를 위한 아동·청소년·양육자 간담회’에서 김한나 어린이 활동가의 발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년 후, 2024년 8월 아기 기후 소송에서 이겼을 때, 김한나에게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제가 해냈어요.”
“그래, 한나와 친구들, 그리고 동생들, 언니, 오빠가 해냈어. 다같이 고생했어.”
“아니, 그게 아니야. 그 뜻이 아니야.”
“응?”
“엄마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라고.”
❶
“8살 어린이를 “활동가” 소개… 대통령 성토케 한 野 ‘오염수 간담회’”, 〈조선일보〉, 2023년 8월 8일.
❷
“6세 어린이가 활동가?… 與 “후쿠시마 정쟁에 아이들까지 이용””, 〈한국경제〉, 2023년 8월 8일.
❸
[“‘민주당 尹 비판 무대에 6~10세 아이들 등장”, 〈연합뉴스〉, 2023년 8월 9일] 외 〈채널A〉, 〈TV조선〉 보도 다수.
❹
“[이슈+] 기후 변화 헌법소원 이끈 6학년… 이유는?”, 〈MBC〉, 2024년 9월 5일.
❺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 2021년 10월 기후위기비상행동, 2023년에는 환경단체 회원 등 시민들이 제기한 헌법소원 4건을 병합하여 2024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 판결이 이뤄졌다.
기고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후 1년, 사과는 없었다
- 어린이들의 목소리에 돌아온 어른들의 ‘억까’
남궁수진
blessedsj11@gmail.com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2023년 8월 8일 오전 10시 30분. 6명의 어린이와 6명의 양육자들 그리고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대표인 김영희 변호사는 국회 본청에 들어섰다. ‘당 대표 회의실’, 화면으로만 보던 곳이었다. 복도에서 우리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오늘 행사의 공식 명칭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를 위한 아동·청소년·양육자 간담회’이다. 양육자들은 여섯 명 어린이 활동가들의 고사리손을 잡고 들어가야 한다. 스치는 불안감을 안고, 그렇게 회의실 문턱을 넘는 순간, 우린 이미 짜여 있는 판 속으로 쓸려 갔던 것이다.
“엄마, 바다에 핵 오염수가 들어가잖아. 그리고 햇빛에 바닷물이 증발할 거야. 그리고 비가 돼서 내리겠지? 그럼 그걸 우리가 마시는 거잖아.” 초등학교 2학년인 김한나는 핵 오염수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왜 우리나라는 바다를 마주한 일본이 핵 오염수를 버리는 것에 찬성했는지 의아해했다. 그런 어린이가 손피켓 그림을 그리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회의실에 앉았다.
“지난주에 저는 교회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파도를 탔습니다.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후쿠시마 바다를 생각했어요. 그곳도 안전하고 행복한 바다일까요? 저는 영상으로 후쿠시마 핵 발전소를 보았어요. 너무 위험해서 사람이 들어가지 못했고 로봇이 촬영한 것이었습니다. 발전소 안은 아주 끔찍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나온 위험한 물을 바다에 버린다고요? 저는 무지 놀랐습니다. 내가 제일 싫은 건 우리나라 대통령이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걸 찬성했다는 거예요. 만약 저나 제 친구 누구가 대통령이라면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걸, 절대로 막았을 겁니다. 우리처럼, 후쿠시마 오염수를 반대하는 국민들도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도 위험한 핵 발전을 당장 멈춥시다. 저는 핵 발전소보다도 더 무서운 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경주 월성에 사는 다섯 살 동생도 피폭되었어요. 너무 속상합니다.”
어린이 활동가의 발언에 이어 청소년과 양육자가 발언했다. 특히 김정덕 활동가는 오늘 우릴 초청한 민주당의 무책임한 기후 위기 대응 행태를 꼬집었다.
“2022년 9월 30일 ‘신규 석탄 발전소 철회를 위한 탈석탄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국민 5만 명의 동의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회부되었습니다. 그러나 청원 달성 10개월이 지나도록 국민 청원은 입법 발의의 문턱을 여전히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 청원이 국회에 회부된 후에 ‘신규석탄발전중단법’ 제정을 서두르라는 시민들의 요구와 관련 활동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이후로 230일 넘게 국회 앞 1인 시위는 계속됐습니다. 여기 계신 어린이 활동가분들도 가을, 겨울, 봄, 여름이 될 때까지 국회 앞에서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민주당 등 거대 정당들은 법안 발의를 위한 가시적인 노력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국회가 5만 시민들의 청원 요구를 외면하면서, 시급한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국회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김정덕 활동가는 이 외에도 수라 갯벌과 낙동강 하구에 새만금 공항, 가덕도 신공항 등 심각한 기후 위기에도 안이한 국회의 태도에 대해 구체적인 지적과 비판을 이어 갔다.
이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대한민국의 모든 환경 문제에 관심 가지고 노력해야 되겠지만, 지금 당장 시급한, 핵 오염수 배출 문제에 대해서 총력 단결하고 저지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라며 김정덕 활동가가 규탄한 내용을 기피하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민주당의 속내는 알 수 없으나, 그날 어린이들과 양육자들의 발언은 민주당의 편이 아니었다. 반대로 민주당이 오이(忤耳)할 내용이었다.
어린이의 자발성을 부정한 정치와 언론
당시 민주당 대표가 회의실에 들어설 때 무섭게 빗발쳤던 카메라 플래시들은 수많은 기사로 이어졌다. 그 회의의 전체 내용은 유튜브로 생중계되었고, 기자들도 현장에서 취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과 양육자들이 규탄했던 내용들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8살 어린이를 “활동가” 소개… 대통령 성토케 한 野 ‘오염수 간담회’”, “행사에 불려 나온 어린이들”❶, “고작 아이들을 선동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인가”, “초등 2년생을 ‘활동가’라 부르며 오염수 저지 간담회 연 민주당”, “광우병 괴담, 사드 괴담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까지 동원하여 정쟁에 이용했던 민주당의 모습”❷……. 비단 기사 내용만이 아니었다. 기사에 사용된 사진도 의도적이었다. 오랜 간담회에 지친 어린이가 짧게 하품을 한 찰나를 메인 사진으로 쓰거나, 어린이들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 한 치욕스런 사진❸도 있었다. 하품을 한 모습으로 폄훼된 어린이 활동가는 5만 명이 모인 ‘일본 오염수 방류 중단 촉구 집회’에서도 당당히 목소리를 낸 이정후 활동가이다. 기사 밑에 달린 댓글은 양육자로서 감히 떠올리고 싶지 않고, 차마 글에 담을 수가 없다. 아기 기후 소송에 참여한 한제아 님이 〈MBC〉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내용으로 갈음한다. “댓글 중에서는 너는 숨도 쉬지 말라고…….”❹
어린이들은 악의적인 보도에 시달렸고, 직접 해명에도 나섰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왜 그 누구도 어린이 활동가들의 자발성은 전제하지 않는 것인가? 어린이 활동가들의 정치적 견해를 무시하고 어린이를 수동적·비자발적 존재로 폄훼하기 이전에,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견해는 무엇인지 자신의 취재 방식이 수동적이고 비자발적이진 않은지 자성하기를 바란다”라는 성명을 냈고, 더불어 어린이 활동가들의 의견을 물었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자발성을 부정한 어른들에게 쓴소리를 했다. “안 가고 싶으면 안 간다. 어디를 가든 내가 결정한다.”(박서율 활동가),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거다. 난 이 문제에 관심이 있고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걸 반대하기 때문에 간 거다. 국민의힘과 그 기자 누구냐?”(백재희 활동가) “어린이 모욕하지 마세요, 얕보지 마세요.”(정두리 활동가) “나오고 싶어서 나온 거예요. 왜냐하면 후쿠시마 오염수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리고 싶고, 어린이 의견을 전달하려고요.”(이지예 활동가)
특히 이은유 활동가는 “오징어와 문어를 좋아해서 바다를 지켜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발언 기회가 없었다며 아쉬움도 표현했다. 이은유 활동가는 교육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산림청, 기상청 등 6개 관계 부처의 업무 협약으로 선정돼 지원 중인 ‘탄소중립 중점 학교’에 재학 중으로, 2022년 3월부터 탄소 중립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양육자인 권영은 활동가는 “아이가 교육받고 실천하다 보니 덩달아 양육자도 교육받게 됐고, 저희도 실천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혔다.
당시 언론들이 가리고 묻어 버린 내용은 이뿐만 아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반대 단식 투쟁 때 받은 편지를 내보였다. 태랑초등학교의 한 학생이 오염수를 막아 달라는 서명을 100명의 어린이에게 받아서 보내 온 것이었다.
“해양생물 그리고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걱정을 덜어 주는 미래를 선물해 주세요. 부디 이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에 대해 한번 더 깊이 생각해 주세요. 여름에는 바다에서 물놀이도 하고 걱정 없이 해산물도 먹고 싶습니다. 부탁드려요.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해 주세요.”
기후 위기에 대해 어린이들이 목소리를 낼 때마다 불퉁한 소리를 들어 왔다. 이에 더해 민주당과 함께 간담회를 가졌다는 이유로 어린이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 양육자가 외치는 소리는 묻혔고, 어린이를 폄훼하는 뉴스와 여당에 의해 고통받는 참혹한 시간이 흘렀다. 이 일련의 사건에서 정말로 ‘정치적’인 것은 누구인가? 발화자가 이야기한 내용은 덮어 버리고자 빨간 칠을 하고 의도적인 이미지 왜곡으로 몽니를 부린 쪽은 여당과 언론 아닌가? 더 나아가, 왜 어린이들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면 안 되는가?
1년이 지난 후, 기후 소송에서 이기고……
1년이 지난 2024년 8월, 후쿠시마 핵 오염수 문제는 괴담이었다고 평가하는 정치인들과 그것을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들의 모습은 여전하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김한나는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1주년, 방류 반대 기자 회견에 자신도 꼭 참석하고 싶다고 양육자를 채근했다. 바다가 죽는다고, 바다의 작은 생명들이 피폭되면 그 다음 큰 물고기 그리고 우리까지 피폭된다며 꼭 가자고 한다. 기자 회견에 참석하러 집을 나서는데, 작년 당 대표 회의실 앞에서 정두리 어린이 활동가가 자비로 후쿠시마 오염수를 알리려고 복사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종이가 눈에 띄었다. 김한나 어린이 활동가도 종이를 건네받으며 친구들에게 함께 알리겠다고 마주 보고 웃었던 순간이 스쳐 지나간다.
그로부터 다시 20여 일이 지났다. 2024년 8월 29일, 「탄소중립기본법」 위헌 심판 청구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일이었다.❺ 지난 2022년 6월, 어린이 활동가들을 포함하여 62명의 ‘아기 기후 소송단’
(5세 이하 39명, 6~10세 22명, 20주 차 태아 1명)도 헌법소원에 청구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2년 동안 어린이·청소년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에게 손편지를 보내고, 뜨거운 낮에 기자 회견을 하느라 마이크를 들었다. 정부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제대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것을 촉구했다. 드디어 선고의 시간이 왔다. 헌법재판소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 계획이 부재한 것이 미래 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며 “헌법 불합치” 결론을 내렸다.
어린이·청소년들이 이겼다. 1년 전에 언론과 여당이 ‘무얼 아느냐’고, ‘북한처럼’, ‘동원되었다’고 힐난하고 모욕했던 어린이, 청소년들이 해낸 것이다. 아기 기후 소송 당사자 중 헌법재판소 공개 변론에서 변론한 한제아는 이제 여러 매체에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심지어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목소리를 낸 어린이들을 모자이크 처리해서 “명백한 아동학대”라고 연일 보도했던 〈TV조선〉도 한제아를 스튜디오에 초대하여 제법 곱게 메이크업을 해서 출연시키는 정성을 보였다. 한제아는 여러 매체 인터뷰에서 밝힌다. 우리를 욕하는 어른들이 있었다고. 심지어 기사를 찾아본 친구들이 ‘어른들이 제아에게 억까(억지로 욕한다는 뜻)했다’라고 말해 주었다는 일화도 이야기한다. 인터뷰어는 말한다. “그저 무시하라”고…….
1년 전 지옥 같았던 그때는 인터넷 기사와 유튜브에 박제되어 있고, 무엇보다 어린이와 양육자 들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어린이의 주체성을 폄훼했던 당사자인 여당과 언론들은 자신들의 행태를 그냥 덮고 넘어갔고 반성과 사과란 없었다. 어린이 활동가의 발화 내용이 아닌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대로 어린이 활동가를 보도, 재현하는 행태. 어린이의 인권이 우선인가, 정치적 진영이 우선인가? 어린이 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은 이렇게 여실히 증명되었다.
“제가 해냈어요”
대한민국에서 어린이·청소년은 경쟁 교육, 입시 교육의 대상이다. 수학과 과학, 영어, 예술에서 뛰어나게 두각을 보이는 영재는 추켜세우기 바쁘다. 그러나 기후, 인권, 혹은 민감한 정치적 사안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며 목소리를 내는 어린이, 청소년에게는 무서운 말을 쏟아 낸다.
기후 위기 시대에 어린이·청소년들은 이미 많은 것을 겪어 왔다. 영유아 때부터 미세 먼지로 마스크를 쓰라는 채근을 받았다. 몇 년 후에는 코로나19로 마스크는 아예 얼굴이 되어 버렸다. 한창 사회적 지능을 키워야 할 때 세상과 분리되어서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밖에서 여럿이 어울려 편하게 뛰어 놀지 못했다. 더워진 날씨로 2024년 여름에는 실내 놀이만 가능했다. 친구들과 많이 못 놀았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어린이에게 앞으로 올 여름은 더 더운 날들뿐이다. 기후 위기의 피해를 온몸에 나이테처럼 새긴 어린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목소리를 외치지도 못하게 한다. 기후 위기 앞에 살아갈 곳이 난파되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아이들을 어른과 똑같이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가 무얼 아냐고 하지 마세요. 저는 활동가이고 제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발언을 시작하겠습니다.”
작년 2023년 8월 8일,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를 위한 아동·청소년·양육자 간담회’에서 김한나 어린이 활동가의 발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년 후, 2024년 8월 아기 기후 소송에서 이겼을 때, 김한나에게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제가 해냈어요.”
“그래, 한나와 친구들, 그리고 동생들, 언니, 오빠가 해냈어. 다같이 고생했어.”
“아니, 그게 아니야. 그 뜻이 아니야.”
“응?”
“엄마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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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어린이를 “활동가” 소개… 대통령 성토케 한 野 ‘오염수 간담회’”, 〈조선일보〉, 2023년 8월 8일.
❷
“6세 어린이가 활동가?… 與 “후쿠시마 정쟁에 아이들까지 이용””, 〈한국경제〉, 2023년 8월 8일.
❸
[“‘민주당 尹 비판 무대에 6~10세 아이들 등장”, 〈연합뉴스〉, 2023년 8월 9일] 외 〈채널A〉, 〈TV조선〉 보도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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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기후 변화 헌법소원 이끈 6학년… 이유는?”, 〈MBC〉, 2024년 9월 5일.
❺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 2021년 10월 기후위기비상행동, 2023년에는 환경단체 회원 등 시민들이 제기한 헌법소원 4건을 병합하여 2024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 판결이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