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호[리뷰]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 - 《교사, 수업을 살다》 (진현)

202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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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

박진환 씀, 《교사, 수업을 살다》, 교육공동체 벗, 2020



진현

mani406@hanmail.net

경기 상봉초. 25년 차 초등 교사로 상상력은 매우 부족한데 상상력 넘치는 벗들과 꾸준하게 인연을 맺은 덕분에 여러 상상을 같이 하고 있다. 사람 좋아하고 사람들과 함께 모여 실천하는 걸 좋아한다. 한 번 맺은 모임을 오래 버티는 힘은 좀 있다. 그 덕에 계속 커 가고 있다.




상상이 필요한 이유


120여 일 만에 학생들을 만났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눈만 빼꼼하게 볼 수 있을 뿐이지만 그 눈가에는 기대와 떨림과 설렘이 묻어났다. 나 역시 새로 옮긴 학교에서 새로 만나는 어린이들이라 엄청 떨리고 반갑고 기뻤다. 비록 투명 가림막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래도 만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3월에 주려고 쓴 편지와 첫 만남 선물도 석 달이나 지나 전해 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더 늦어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목소리로 듣고 상상하던 담임 선생님을 직접 만난 어린이들이 나를 반겨 주고 환호해 주어 더 고마웠다.


원격 수업에서는 서로 하지 못했던 눈 맞춤도 하고, 하나하나 이름도 불러 주고, 그림책도 스캔 파일이 아닌 진짜 책으로 읽어 줄 수 있었다. 내 앞에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아침부터 매우 질문이 많은 어린이도 있었고, 겨우겨우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어린이도 있었고, 무조건 ‘싫어요’라는 말을 먼저 하는 어린이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정말 ‘교육은 만남’이라는 말의 뜻을 절절하게 느끼는 요즘이다. 우리 아이들 옆에 있을 때 교사인 내 모습이 의미가 있음을 느낀다.


얼마 전에 등교 수업을 했는데 학교에서 〈EBS〉 방송을 틀어 주어 학부모들의 원성을 샀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올해 2학년을 맡게 된 나도 동학년 동료들과 등교 수업과 원격 수업을 병행하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의논했다. 우리는 등교 수업에서 어린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부터 고민했다. 읽기와 쓰기, 수학의 기초 기본 개념을 방송 시청만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책 읽어 주기와 수학 연산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우리 어린이들과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으로 ‘마주 이야기장’과 ‘동시 한 알 낭송하기’를 준비했다. ‘마주 이야기’는 주말마다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내 마음을 먼저 보여 주기 위한 시도이다. 담임 교사의 편지에 어린이들이 답장을 쓰면 나는 다시 또 답장을 하고 또 다른 편지를 보낸다. ‘동시 한 알’은 소리 내 읽기를 우리 아이들과 더 많이 하고 싶어 만든 공책이다. 자주 만날 수 없으니 내가 골라 준 동시 1편을 날마다 낭송하면서 우리 말의 재미도 느끼고, 어린이들 마음도 다독이고 싶어 시작했다. 우리 학년 교사들이 다 함께하고 있어 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기사에 난 학교 교사들은 왜 등교 수업을 해서도 방송을 틀어 주었을까? 아마도 교육과정 진도를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커서 그랬을 것 같다. 1년 동안 완주해야 할 목표가 있는데 그 시간을 놓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판단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아마도 그 과정이 빠졌으리라 본다. 교육에서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하게 보여 준 장면이 아니었을까 한다.


교육과정 문서에 적힌 문구 그대로, 교과서 차례 그대로 따라 하는 전달자로서의 교사가 아니라, 어린이들과 더 좋은 만남을 꿈꾸고, 진짜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 교사로서의 삶과 시민으로서의 삶을 하나로 연결 지어 살고 가꾸고 실천하는 교사로 살아가는 선생님! 늘 상상하며 탐구하고 실천하는 선생님! 나는 《교사, 수업을 살다》에서 그런 교사들을 만나 오늘도 틀을 깨고 나오는 노력을 한다.



전설이 아닌, 당신들과 함께 교사의 길을 갑니다


“아니, 그 선생님이 실제로 존재하는 분이세요? 전설 속 인물인 줄 알았어요.” 서울에서 한 달에 한 번 조성실 선생님과 초등 수학 공부방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하니 학교 후배가 이렇게 되물었다. 맞다. 내게도 전설 속 무용담의 주인공 같은 선배들인데 후배 교사에게는 이 책에 실린 선생님들이 더 신비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책이 더 반갑고 귀하게 느껴진 까닭은 전설 속 먼 인물이 아닌 지금 내 곁에 이 교사들이 존재하고 있고, 이렇게 꿈꾸고 상상하며 실천하는 교사처럼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진짜 수업 속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 수업을 살다》를 통해 8명의 교사들을 만났다. 수학 수업과 사회적 정의를 연결해 이야기해 주신 조성실 선생님, 수업이 진정 아이들의 복지로 다가가야 한다는 박지희 선생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시간을 살며 아이들과 누구도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수업을 살아온 최은경 선생님, 즉흥과 변주가 어우러지며 수업과 예술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신 강승숙 선생님, 생각하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어 자신만의 주제 중심 교육과정을 만들어 낸 이경원 선생님, 수업은 곧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 여기며 교육과정 투쟁을 이어 간 김강수 선생님, 학교가 만들어 준 수업이라는 시공간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는 심은보 선생님, 그리고 교육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기록하고 풀어내며 수업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교사로서 어떻게 성장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나침반을 제공해 준 박진환 선생님.


8명의 수업 이야기를 읽는 동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들이 걸어온 그 험난한 과정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엄청난 실천에 부러움과 존경심이 들었다. 읽고 난 후에도 깊은 감동이 여운으로 남아 마음이 들썩거려 한동안 책을 잡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업과 관련된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느끼지 못했던 이 격한 마음은 무엇 때문이지? 왜 이렇게 울컥하고 가슴 떨리고, 부러울까? 벅찬 감정을 추스르고 돌아보니 그 교사들의 삶 이야기, 수업 이야기에 내 이야기가 겹쳤기 때문이다. 좋은 선생이 되고 싶었고, 좋은 수업을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고, 답답했었던 내가 보였다. 선배 교사들을 좇아 수업 모임을 하고 모임을 통해 나온 결과를 교실 속에서 실천하다가 학교 관리자에게 혼이 났던 경험이 있다. 교과서 아닌 다른 책으로 수업한다고 혼났던 기억도 있고, 특히 가장 아팠던 기억은 내가 학년 부장을 맡아 우리 학년에서 1학년들에게 책 읽어 주기를 하러 갔다가 나 때문에 1학년 교사들이 단체로 사유서를 쓰게 됐던 경험이다. 학교장에게 교육과정 변경 운영과 관련하여 결재받지 않았다고 이제 곧 퇴임을 앞둔 선배 교사들마저 사유서를 쓰게 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참 마음이 아프다. 학생들과 소통이 잘 안 되어 힘들었던 경험, 학습 부진 학생을 돕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다지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경험들. 그리고 미처 나는 용기가 없어서 또는 상상력이 부족해서 실천하지 못해 부럽기만 한 교육과정 만들기와 수업들. 책 속의 수업 이야기와 삶 이야기 속에서 나는 지난 내 수업과 내가 만난 학생들과 내가 만들어 온 삶의 흔적을 떠올린 것이다. 흔적을 기억하고 추억만 곱씹는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다시 꿈꾸고 또 다른 상상을 실천하기 위한 힘을 얻었다.


이 책은 ‘저 선생님들은 특별하잖아요. 특별한 교사라서 그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수업인 거죠. 그러니 평범한 나 같은 교사는 그냥 교육과정 진도에 맞게 수업할래요’ 하는 생각으로부터, 그 교사들을 이런 전설 속 영웅담으로 소비하는 태도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8명의 교사들은 수업의 성공만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드러내고 가르치려고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실패하면서도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린이들과 관계 맺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 왔고, 기발하거나 특별한 방법으로 어떤 활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어린이들을 만나 왔고, 사회 정의를 수업 현장에서 꿈꾸어 왔으며, 혼자 앞서가지 않고 동료나 선후배들과 모임을 꾸려 왔다. 책에서 그들의 진정성이 오롯이 읽힌다. 그래서 나도 그 길을 좇다 보면 나만의 수업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일 것이기에 더욱 용기가 난다.



수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교사!


‘삶’이라는 낱말을 풀면 ‘사람’이 되고 ‘사람’이란 글자를 합하면 ‘삶’이 된다고 하는데 교사의 삶은 바로 수업이라며 ‘수업이라는 시공간은 교사와 아이들에게는 그저 삶 자체로서, 수업은 교사와 아이들의 삶을 담은 한 편의 이야기’라는 앞머리 말이 마음에 쿵 하고 와 닿았다. 교사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만나며, 수업은 교사로서의 내 정체성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삶을 나누는 이야기라는 말에 위로받았다.


그동안 수업은 혁신해야 할 대상이거나, 코칭해야 할 무엇이었다. 수업 명인이나 수업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동기 유발은 이렇게, 목표 제시는 이렇게, 활동 1, 2, 3으로 주어지는 어떤 절차를 밟아서 주어진 시간 안에 무언가 완전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나 역시 판에 박힌 그러한 틀을 답습하여 수업을 해 왔고 어느 시기에는 그런 틀을 깨기 위해 많은 선배들의 수업 연수를 배우려고 애써 왔다. 그런데 그렇게 수업에 대한 연수를 듣기만 하고 따라만 했더라면 아마도 더 이상의 성장은 없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다른 사람의 수업에서 좋다는 점만 따와서 소비하려고 하는 것을 넘어 벗들과 함께 토론하고 되돌아보고 내 수업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내 벗들이 떠올랐다. 벗들이 있어 수업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누고 어린이들과 관계 맺기를 위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늘 성찰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생각하고 실천하고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었다. 수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바로 교사이다. 교사로서 오늘도 우리 아이들과 어떤 삶을 나눌 것인지 고민하고, 내 삶을 가꾸어 가야겠다. “교사는 수업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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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