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호[리뷰] 역사 쓰기의 소용, 청소년의 주체-되기 (양돌규)

201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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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역사 쓰기의 소용, 청소년의 주체-되기


양돌규

redgadfly@hanmail.net

지금은 인문사회과학 서점 레드북스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에서 고등학생운동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노동운동 역사 자료를 보관, 수집, 연구하는 단체 ‘노동자 역사 한내’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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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전누리 씀,

《우리는 현재다 – 청소년이 만들어 온 한국 현대사》,

빨간소금, 2016




청소년의 신원회복


다소간 과장이 섞일 것을 알면서도 말해 보자. 1980년대 변혁의 시대를 만들어 낸 중요한 책들 중엔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한국민중사》가 있었다. 이 책들은 ‘민중 사관’을 확립하고 그 사관에 입각해 근현대사를 통시적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지배적인 역사 서술을 전복해 냈다. 왕과 양반, 지주들와 엘리트가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이 전복적 선언의 기초 위에서 민중은 스스로를 위한 역사를 실재하는 현재로 열어 나가게 됐다.  


하지만 민주화를 향한 도정이 일단락된 후, 민중운동의 부침 가운데 민중사도 정체된다. 그런데 그즈음부터 그 ‘민중’이라는 이름에 뭉뚱그려짐으로써 배제되고 삭제된 이들이 일종의 ‘신원 회복 운동’처럼 ‘나 역시 그 일부이자 중요한 한 주체였다’고 발화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여성사, 노동사, 미시사, 구술사 등이 그것들이다. 2000년을 전후로 등장하기 시작한 이 같은 연구 성과들은 평가하기에 따라서는 ‘민중사’를 촘촘하게 정정·보완했거나 전복했다.  


자, 여기까지의 거친 회고 가운데서도,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신원회복 운동’에서조차 배제됐던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뒤늦게나마 그들이 《우리는 현재다》를 통해 “우리도 그 주체요”라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청소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청소년의 한국 민중사의 ‘재’인식”, “한국 청소년사”라 불릴 만하다. 그리고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이 책이 청소년의 세계와 우리 시대에 있어 어떤 ‘변혁의 시대’를 열어 줄 수 있을 것인가 자못 궁금해진다.



구슬과 실, 그리고 주체-되기


《우리는 현재다》는 1919년 3.1운동에서부터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1960년 4.19혁명을 거쳐 1980년 5.18민중항쟁, 그리고 최근에는 2008년 촛불에 이르는 11개의 갈피를 엮어 어떻게 청소년들이 역사와 민주주의를 열어 가기 위해 앞장서고 또 기여했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억압되고 좌절됐는지를 꼼꼼하게 발굴해 성공적으로 모아냈다. 근 100년의 역사를 간추려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까지 이들은 얼마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집필 시간만 따져 보자면 얼마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업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2006년 봄, 갓 스무 살을 넘겼던 저자들과 처음 만난 것은 대학연구동 앞에서였다. 한창 석사 논문 준비에 바쁠 무렵이었는데 이들은 내 논문 주제인 1980∼1990년대 ‘고등학생운동’에 대해 묻기 위해 학교까지 찾아왔다. 난 ‘고등학생운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그 운동에 참여했던 경험자들을 제외하고는) 처음 봤고 그건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청소년인권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던 활동가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0여 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래서 이들이 청소년의 역사라는 서 말의 구슬을 꿰기 위해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구슬이 한곳에, 그러니까 작업대 같은 데 쌓여 있어 이제 바로 꿰기만 하면 됐던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참고 문헌들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어떤 구슬은 모래밭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고(1970년대 반反유신운동, 여성 청소년 노동자) 또 어떤 구슬은 이미 어떤 장신구 속에 박제화(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1960년 4.19혁명)되어 있기도 했을 것이다. 새로운 사료의 발굴, 그리고 기존에 알려져 있던 사실들의 재해석 등의 작업을 하나씩 해 나가면서도 이들은 아마 자신들이 모아야 할 구슬이 몇 말인지도 모른 채 그저 열심으로 쉼 없이 구슬을 모아 나갔을 것이다. 전교조가 이사하면서 갖다 버린 사료 뭉치를 텅 빈 사무실 바깥 쓰레기 더미를 뒤져 챙겨 왔던 것도 이들이었고 그 목록을 만들고 편철해 보존하고 있는 것도 이들이었다. 1980∼1990년대 고등학생운동 경험자, 1990년대 중고등학생복지회나 전국중고등학생연합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녹취록을 풀고, 기사를, 논문과 책을 써 낸 것도 이들이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역사의 일부는 민족운동사, 학생운동사, 교사운동사, 노동운동사, 민주화운동사 속에 편입돼 있다. 그것들을 재해석해 내기 위해서는 하나의 실로 꿰어 낼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이들은 구슬을 모으는 한편 실을 자아야 했을 것이다. 청소년운동을 해 나가면서 부딪혔던 현실의 장벽과 난관, 크고 작은 성취는 그 바탕이 되어 줬다. 다시 말해 실천과 운동의 현실을 통해서 벼려 낸 관점이 이들의 실이었고 이는 청소년운동과 공저자들이 함께 물레를 돌려 자아 낸 집단적 운동의 성과였다.  


그런 점에서 난 이들이 《우리는 현재다》의 11개의 갈피를 엮어 낸 ‘관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1운동부터 최근 광장에서 펼쳐진 촛불의 향연에 이르기까지, 청소년들은 100여 년 동안 한결 같은 편견, 고정관념, 억압의 언설들과 싸워야 했다. 이를테면 “대견하다”, “기특하다”는 촛불의 편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로 시작해 “배후 조종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다”는 억측에 이르는 태극기의 편 모두와 말이다. 어쩌면 싸움에 나섰던 청소년 중에는 그런 생각에 조금은 동조하는 이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실천의 현장에 있었던 저자들은 이러한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청소년들이 주체로 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마도 이들의 생각이 맞을 것이다. 주체가 되지 못하면 역사 쓰기는 불가능하다. 그 모든 민중사가 처음엔 ‘운동사’의 형태로 쓰이는 것은 그래서이지 않을까. 실재의 삶 속에서 싸움에 나서는 이들이 있을 때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역사 쓰기를 통해 ‘주체-되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실재의 지평에서 다시금 ‘주체-되기’를 실현해 낸다. 저자들의 구슬과 실의 작업은 보배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장인의 노동과 닮아 있지만, 그것은 보배 자체가 목적인 작업은 아니다. 이것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내겠다는, 이 책의 ‘소용所用’으로 이어지는 바, 그 소용은 청소년의 ‘주체-되기’였던 것이다.



맹점과 몰각, 확증 편향을 넘어서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의 민중사는 청소년의 ‘주체-되기’에 아주 제한적으로만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들이 이 책을 집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얼마나 심했는지 고등학생들도 시위에 나설 정도였다.” “10대가 나설 정도면 혁명이 일어난다.” 흔히 청소년을 역사적 사건에 등장시키는 방식이 이렇다. 민중사가들도 장구한 민족사, 민중사 가운데서 빛났던 그 사건들, 광주학생독립운동이나 4.19를 얘기할 때 청소년들을 등장시키기는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얘기한다. 


“한창 공부해야 할 ‘어린’ 학생들이 시위에 나설 정도로 나라는 엉망이고 민중은 도탄에 빠져 있으며 정의는 실종됐다.” “그래서 가장 순수하고 정의로운 학생들이 ‘예외적으로’ 시위를 결행했다.” 그런 방식의 서술 배면엔 무슨 생각이 있을까. “나라가 제대로 서면 청소년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이들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니 이들이 지금 아스팔트 위에서 허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회와 정치의 풍파가 학교 담장을 넘어서는 안 되고 그 담장 안 안전한 곳에서 학생들은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학생의 본분…….” 뭐 그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학교가 사회와 정치의 풍파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이었던 적은 동서고금을 떠나 단 한 번도 없었다. 박근혜의 국정 교과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라는 개념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학교는 국가의 일부이자 체제의 일부였고 지금도 그렇다. 노동력을 생산하는 기관이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학생은 공부함으로써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을 스스로 생산해 내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싸움은 항상적이었다. 청소년의 일상적 저항은 ‘운동’의 형태뿐이 아니다. 주체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저항을 포기하지 않는다. 민중사는 이 같은 청소년들의 저항 중에서 표출된 싸움만, 그것도 ‘선택적’으로 취했다. 


예컨대 저명한 한 현대사가는 “1975년 4월 신일고등학교생들이 유신 반대 유인물을 뿌려 9명이 구류를 산 것을 마지막으로 고등학생들의 사회 참여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라고 쓴다. 《우리는 현재다》를 읽었다면 저렇게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다》는 1980년 항쟁에 참여한 광주의 고등학생, 그리고 1987년 6월의 아스팔트를 내달렸던 전국의 고등학생들을 등장시키고, 또 학교교육으로부터 밀려났지만 노동조합을 통해 사회적 주체로 거듭났던 1970년대 청계피복노조의 여성 청소년들의 투쟁 사례도 추가한다. ‘고등학생들’의 사회 참여뿐만 아니라 비학생 청소년, ‘청소년 노동자’의 사회 참여도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다. 이 현대사가는 5월 광주와 6월의 거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보았지만 부러 그 사실의 일부를 몰각沒却하는 것일까? 


➊ 한홍구(2002), 〈한홍구의 역사 이야기 : 10만 년 어치 감옥살이를 벌었다?〉, 《한겨레21》, 2002년 12월 24일.



이처럼 망막에 맺혔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맹점盲點은 분명 기존 현대사에 이 같은 사실들을 ‘부기’함으로써 쉽게 제거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현대사가의 다음과 같은 문장은 기존 현대사가 ‘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주체’로 보기보다는 ‘민중의 아들·딸’ 정도로 바라보고 있음을,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을 한국의 지배적 사회 통념과 공유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의 평소 생각과 다른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확증편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랜 침묵을 깨고 청소년들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발언을 한 것은 1989년 전교조가 만들어질 때다. 그런데 이 당시는 고등학생들이 특별한 정치의식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달프고 삭막하기 짝이 없는 학교생활에서 자기들 처지를 더 잘 이해해 주고 따뜻하게 대해 주는 선생님들,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예뻐하지 않는 선생님들의 절대 다수가 전교조에 들었고, 그래서 학교를 떠나야 했으니 아이들 눈에서도 피눈물이 났을 수밖에.

- 한홍구(2002), 앞의 글


《우리는 현재다》는 1989년 전교조 사수 투쟁 이전, ‘정치의식’을 갖춘 ‘고등학생운동’이 1980년대에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1980년 광주부터 1989년 참교육운동과 전교조에 이르기까지 제시함으로써, 그것이 그저 피눈물 때문에 벌인 ‘아이들’의 해프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이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대감금의 시대, 대중 노동자의 시대를 지나


한국의 이른바 ‘개발 독재’ 시대인 1970년대에는 유신으로 상징되는 폭압적 반공 규율 체제와 함께 중화학 공업의 본격 추진이 이루어졌다. 그 이면에 중등교육은 어마어마한 규모로 확대되는데, 이는 평등교육의 확산 따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건 10대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감금의 시대’와 같다. 소 꼴 베러 갔다가 논둑에 누워 풀피리 불던 농촌의 청소년도, 골목길을 몰려다니다 공터에서 뛰어놀던 도시의 청소년도 모두 군복 같은 교복을 입히고 연병장 같은 운동장과 감옥 같은 교실에 갇히게 된 시대라는 얘기다. 


물론 한창 중등교육의 확대 과정에 있었던 1970년대, 그로부터 배제된 청소년 노동자가 없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이 역시 1980년대가 되면 급속하게 자취를 감추게 되고 비학생 청소년, 탈학교 청소년의 설 자리는 사라진다. ‘전 10대의 학생화’라는 이 현상은 그 이전, 그러니까 1960년대와는 청소년의 발언권의 무게가 달라짐을 의미한다. 


중화학 공업의 확대와 고도화된 산업 구조로의 재편 과정은 한국 자본주의를 새로운 단계로 이끌었고 인구학적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중 노동자의 창출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에 맞춰 노동력도 생산될 필요가 있었다. 노동력 생산 공장인 학교에서는 대량으로, 값싸게, 통제 가능한 인간을 다수 창출했다. 1970년 31만 명이던 고등학교 학생 수는 1980년 93만 명을 거쳐 1990년 147만 명으로 급증하면서 정점을 찍는다. 학도호국단, 국민교육헌장, 반공 규율 체제 등이 결합된 유신 체제는 마치 공장처럼, 감옥처럼, 군대처럼 학교 체제를 강화시켰다. 그런 점에서 1980년대 학생들이 수기와 문집을 통해 ‘학교가 감옥 같다’고 한 건 유비가 아니었고 리얼리티였다. 


이 대감금 시기의 고등학생들의 저항이 동형적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고등학생운동에 대한 기록을 쓰면서 다소간의 지역 차이를 사상시킬 수 있었던 큰 이유는 모든 학생이 처한 조건과 처지가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1989년 정점을 찍었던 그 시대 중·고등학생들의 저항 역시 그런 점에서 하나의 집합 기억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우리는 현재다》의 두 저자는 이 ‘대감금’, 그러니까 대중 노동자 시대를 명료하게 서술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4.19 이전과 1990년대 이후가 나뉘는 것은 독서 과정에서 느끼기 어렵지 않다. 


그 정점에 광주 5.18민중항쟁이 있다. 항쟁 당시 고등학생들의 경험과 구술, 기록과 체험을 재구성 해 한 편의 서사를 만들어낸 제7장은 내게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1980년 광주의 역사적 기억을 약간 개인화시키면서 성찰한다는 느낌을 받은 나로서는, 오히려 이 장이 옛날 ‘오월문학’이 그렇듯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항쟁의 비밀을 드러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쟁의 주체는 누구였나’라는 질문을 던졌던 1988년 홍희담의 문제적 소설 《깃발》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라고 하면 과할까. 


어쨌든 1990년대가 넘어가면서 대규모 산업 노동에 기초한 한국 경제 체제가 변모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노동력 생산의 공간도 학교로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다》에서도 제시하지만 PC통신의 확산과 대중문화의 영향력 확대 가운데 주체성이 생산되는 공간이 학교만은 아니게 되고, 따라서 저항도 꼭 학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소년 내부도 (비록 거의 전부가 학생으로 포섭된 시대이기는 하지만) 이질성이 증대되는데 그것을 차이가 증대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변화를 학교 바깥이 더 중요해졌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청소년들의 저항 공간은 이제 곳곳으로 산포되어 때로 이곳, 때로 저곳에서 근거지를 만들었다가 해체되기도 하는 식으로 변화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힘과 흐름이 때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이나 광장의 촛불을 계기로 모아지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한다. 고등학생운동의 소멸 가운데 변한 건 인권 프레임으로의 전환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퀴는 없다 다만 흘러갈 뿐


《우리는 현재다》는 청소년운동의 최전선에 서 왔던 이들이 들려 주는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는 서사이다. 그런데 이 계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식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앞의 사건과 뒤의 사건이 연관이 없지는 않되 필연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기원과 연원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이들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마치 잘 직조된 민족운동사처럼, 어떤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역사의 기관차’으로 그려 내지도 않는다. 어디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그것이 합법칙적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비유하자면 물길과 같다고 말해야 할까. 언제, 어디로, 얼마만큼의 강폭을 가진 채로, 어떤 양상으로 흘러 갈 것인지 미리 내다볼 수도 없는 물길 말이다. 사람들의 눈에 새파랗게 보이는 시원한 강줄기였다가도 때로 건천 지표면 아래로 흘러 눈에 보이지 않다가 벌컥 어디에선가 용천하기도 할 게다. 또 두세 개로 갈라져 흐르다가도 다시 합치거나 어떤 때는 흐르지 못하고 고여 마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아마도 이 운동의 계보는 앞으로도 그렇게 전개될지도 모른다. 청소년의 주체성은 다층적이기도 하고 때론 내부적으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학생 청소년과 비학생 청소년의 처지가 다르고 여성 청소년과 남성 청소년도 다르다. 운동의 테마도 리듬감 있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고, 어떤 테마는 쭉 앞으로 전진하지만 다른 테마는 돌림 노래처럼 후미에서 따라가기도 할 것이다. 끊기고 또 이어지는, 즉 단속적斷續的인 청소년운동의 특징은 청소년이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는 소위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에 긴박당하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 모든 미래는 열려 있지만 내 생각엔 그 모두가 《우리는 현재다》에 담길 수 있다. 이 책의 구성상의 특징 중 하나는 ‘들어가는 말’은 있지만 ‘나가는 말’ 또는 결론 같은 장章이 없다는 것인데, 그건 마치 구슬들을 꿰긴 꿰었지만 아퀴를 짓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이 책의 단점이기보다는 장점이라고 볼 수 있고, 현재 청소년운동이 맞이하고 있는 어떤 전환의 징후 때문이기도 할 것 같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016년 12월 24일, 광화문 촛불 집회가 열리는 와중에 정부종합청사 앞 인도에서 저자 중 한 명으로부터 이 책을 건네받았다. 몹시 추웠고 인파에 휩쓸리는 상황에서 오래 이야기할 건 없었다. “고맙다”와 “잘 지내느냐”는 안부 몇 마디를 나누고 우리는 촛불처럼 흩어졌다. 그 촛불 가운데서 수많은 청소년들을 마주쳤다. 깃발을 들거나 친구들과 왔거나 가족과 함께 왔던 촛불 교복들. 아마도 지금 이 청소년들은 땅 위로 용천해 한창 흘러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든든한 미래의 계보를 그려 가고 있는 것이겠고 그래서 만약 몇 년 후 《우리는 현재다》 증보판이 나온다면 이들의 이야기는 열두 번째 갈피에 당당하게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아퀴를 짓지 못했던, 아니 않았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미 지금의 청소년은 역사상 그 어떤 청소년들보다 더 멀리 와있다. 역사 속 빛나는 존재였던 그들보다도 가장 멀리에서 더 먼 곳을 향해 있다. 지금까지의 청소년들과 다른 주체이고 다른 존재들인 이들이 어디로 갈지 20세기의 사람들인 우리가 알기란 힘들다. 다만 이 책이 그들에게 어떤 방편이 되어 주기를, 그래서 더욱더 멀리 나아갈 수 있기를, 물길이 닿는 곳에 촛불처럼 환하게 켜질 수 있게 되기를. 그럴 때 이 책은 그 소용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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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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