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호[지상중계] 청소년운동의 역사라는 내러티브를 만들자 (이진주)

201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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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청소년운동의 역사라는 내러티브를 만들자

-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출간 기념 토크 콘서트

 

때와 곳 2016년 11월 6일 서울 한남동 북파크

정리 이진주 기자

사회 공현



공현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청소년운동사》) 출간 기념 행사를 겸해서 이렇게 토크 콘서트를 마련했다. 원래 정용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이 고등학생운동을 했던 교사로서 이야기 손님 역할을 맡아서 이야기해 주기로 섭외가 됐는데, 급한 사정이 생겨서 못 오셨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오기로 했다가 취소한 사람도 몇 명 더 있다. 아쉽지만 모인 사람들끼리 화기애애하게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청소년운동사》에 인터뷰를 한 윤가현 씨가 인터뷰이이자 청소년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간단하게 인사말을 하고 시작하겠다. 최근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데뷔도 하셨다.

 

윤가현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부터 활동을 시작한 후 스무 살까지 하다가 잠깐 쉬고, 스물세 살 때부터는 알바노조 활동을 했다. 지금은 〈가현이들〉이라는, 알바노조에서 저랑 이름이 같은 가현이 세 명을 만나는 영화를 만들었다. 청소년운동을 해서 무엇을 가장 크게 얻었나 하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내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 남들에게 치우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운동을 할 때는 내가 한 게 그렇게 중요한 운동인지 생각을 못 했다. 일제고사 반대 운동도 활동가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고민을 나누는 게 즐겁고, 나에게는 해방구 같은 활동이었다. 《청소년운동사》를 읽다 보니 그때 생각이 났다. 그때는 고등학교 다니면서 학교 끝나고 6시에 충정로까지 가서 회의하고 막차 타고 집에 들어가서 다음 날 학교 가는 생활을 반복했는데, 무슨 힘으로 그렇게 열심히 활동했나 싶다. 어쨌든 지금 돌아봐도 굉장히 재미있는 활동이었고, 지금 만나도 반가운 사람들이다. 이 책을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공현 윤가현 씨는,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는지? 역시 자기 인터뷰인가?

 

윤가현 그건 아니고.(웃음) 들어가는 글에서 이 부분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청소년운동은 누군가에게는 반성하고 극복해야 할 반면교사로,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을 바꾼 전환점으로, 누군가에게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삶의 원리이자 체험으로 남아 있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뭉클해졌다. 당시에 같이 투쟁했던 사람들 생각도 나고, 저 스스로에게도 큰 전환점이 됐던 운동이기 때문에 이 부분이 와 닿았다.

 

 

청소년운동 활동가에게 이 책의 의미는

 

공현 오늘 이야기 손님으로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에서 활동하는 혜원 씨와 인권교육센터 들의 배경내 씨를 초대했다. 두 분이 중점적으로 이야기를 하시되 다른 분들에 함께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참여해 주시면 좋겠다. 우선 두 분은 이 책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혜원 당시의 청소년들 혹은 청소년운동 활동가들이 청소년운동을 통해서 어떻게 세상과 마주해 왔는지 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난 학생인권조례 관련해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앞의 인터뷰들을 통해서 내가 했던 운동이 갑자기 나타난 운동이 아니라는 것, 그 쌓여 온 토대와 역사를 알 수 있어서 신기했다. 청소년운동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고 애써 온 운동가들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고, 이 책을 출간해 준 교육공동체 벗에게 고맙다.


내 인터뷰 말미에 대학 생활과 청소년운동 활동을 병행하는 데 대한 고민과 대학 진학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는데, 바로 뒤에 대학입시거부 인터뷰가 실려 있어서 기분이 묘했다. 그 인터뷰를 한 어쓰도 오랫동안 같이 활동한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 선택이 달라졌다. 청소년운동을 계속 해 왔던 이들 사이에서도 선택이 달라지고 다른 삶들이 만들어졌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각자의 위치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배경내 뭔가 추억의 책장을 넘기는 기분이었다. 물론 별다른 접점이 없었던 운동도 있긴 했다. 얼굴은 알지만 고민은 잘 몰랐던 사람들도 있었다. 1998년의 중고등학생복지회로부터 2012년 참정권 운동으로 마감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반갑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다가온 느낌은 함께하는 공간에서도 각자 다른 것을 경험하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연령으로는 청소년이 아니고, 이미 조직되어 있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이 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처음 이 운동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던 사람들, 그리고 청소년이라는 위치에서 이 운동을 경험한 사람들과는 나의 경험의 폭과 설움의 깊이가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에게 조금 더 활력 있고 덜 서러운 공간이 되려면 이곳을 지키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나는 이 책의 지배적 정서가 설움이라고 읽혔다.


나한테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나가는 글 중에서 이 부분이다. “내가 왜 청소년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왜 청소년운동을 했는지 묻는다면, ‘청소년이어서 그랬다’는 대답밖에는 할 말이 없다. 오히려 반대로 묻고 싶다. 여러분의 청소년기는 어떠(땠)냐고.” 나한테도 이 질문이, 나는 비청소년으로서 청소년운동을 시작한 셈이지만, 나의 청소년기의 시간을 돌아보는 게 청소년인권운동을 지속하는 동력으로 남아 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질문을 반갑게 받아들이고, 자기 삶의 질문으로 가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현 “청소년운동 때문에 인생 망쳤다” 같은 대답도 각오를 하며 청소년운동이 어떤 의미로 남냐고 물었다. 그런데 의외로 대부분 좋은 답이 돌아왔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밝고 희망찬 이야기가 담기긴 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활동했던 분들이 이 책을 읽고 ‘내가 한 활동이 쓸모없지 않았다’라는 생각을 해 주기를 기대했다. 예전에 활동을 했던 분들이 수백 명은 될 텐데 다들 이 책을 사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웃음)

 

쥬리 맨 앞에 실린 나정훈·김한울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때 청소년운동의 기반이 없고, 사회적으로 인정도 해 주지 않고, 청소년운동이라는 말도 없고, 청소년 활동가로서 정체성이라는 것도 형성되기 어려웠던 상황을 접하면서, 지금은 그래도 좀 많이 나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분들보다는 조금 더 나은 상황에서 청소년운동을 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안타깝고 고마운 마음이 있다.

 

 

칭소년인권운동과 청소년운동

 

공현 ‘청소년운동’이라는 말 자체가 우여곡절을 거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제목을 정할 때도 ‘청소년인권운동사’로 하냐, ‘청소년운동사’로 하냐 하는 고민이 많았다.

 

배경내 공현이 〈인권오름〉에 ‘청소년운동’과 ‘청소년인권운동’에 대해 쓴 글이 있다. 공현이 자신은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말보다 청소년운동이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면서,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멘트가 있는데, 서운하더라.(웃음) ‘청소년인권운동이 어떻게 만든 말인데…….’ 이런 생각도 들고.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이 2006년 만들었던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라는 조직과 무관하지 않다. 고등학생운동과 좀 다른 중고등학생의 인권에 관한 의제들이 등장하고 있었지만 그때도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말이 명확하게 쓰이진 않았던 것 같다. ‘청소년운동’이라는 말은, 청소년수련관 같은 청소년 보호·수련 시설에서 쓰이곤 했다. 청소년이 주체가 되어 청소년 인권의 의제를 앞세운 독자적인 운동 진영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등장했다.


➊ 공현, 〈청소년운동? 청소년‘인권’운동?〉, 《인권오름》, 2016년 2월 17일.



공현 청소년운동으로 굳이 쓰자고 한 것에는, 인권으로 포괄할 수 없는, 예를 들면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나온 것만이 아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우리 운동이 담고 있지 않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 또 하나는 청소년수련관이나 청소년 선도 활동 같은 것 말고 우리가 진짜 청소년운동이라고 하고 싶은, 그 말을 뺏어 오고 싶은 야심도 있었다.

 

배경내 예를 들면 여성인권영화제와 여성영화제가 있는데, 여성인권영화제는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등을 다룬 영화를 주로 상영하고, 여성영화제는 그보다는 훨씬 광범위하게 다룬다. 인권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한계를 갖는 측면이 있긴 한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는 운동을 정체성으로 말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청소년운동이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운동이라고 해서 그 자체로 진보적인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가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은 ‘여성주의운동’의 줄임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운동의 지향을 담으려면 지금까지는 청소년인권운동이 가장 적절하지 않나? 이를테면 ‘청소년주의’라는 말이 있을 수 있다면 청소년운동이 아니라 청소년주의운동이 더 낫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청소년운동사》를 청소년인권운동사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서준영 아까 배경내 씨가 이 책의 정서가 ‘설움’이라고 했는데 나는 동의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챕터들이 성장의 구도를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청소년운동에서 얻은 가치관이나 감수성이 지금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하는 측면에서 낙관적이라고 느꼈다. 읽으면서 낙관과 의지를 북돋워 주는 경험을 했다. 아쉬웠던 것은 형식의 한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실패의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었다. 좀 더 고민의 궤적을 짚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기명 인터뷰라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장여진 씨의 인터뷰가 운동에 대해 반성적인 목소리를 내고 실존적 고민을 이야기해서 기억에 남는다. 공감이 많이 갔고, 청소년운동을 한 사람들의 보편적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속내가 다른 인터뷰에서도 드러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쥬리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운동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어떤 역사를 가지고 여기까지 왔는지를 그 전에는 잘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번에 ‘청소년운동 우물모임’에서도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청소년운동에 대해 다루며 청소년운동이 과연 무엇인가 정리한 소책자도 냈는데 같이 읽어 봐도 좋을 것이다.

 

공현 이 책에서 이런 게 빠져서 아쉽다는 내용이 있을까? 나는 학생회 법제화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마땅한 인터뷰이를 찾지 못해서 결국 못 담았다. 기획할 때 고민으로는, 예를 들면 강의석의 종교 자유 투쟁은 넣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하지만 구성을 짤 때 한 사람이나 한 학교에서의 투쟁보다는 청소년운동이라는 큰 흐름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운동의 발전과 흐름을 보여 주자는 관점에서 진행하다 보니 변두리에 있는 운동, 가령 소수자 이슈 같은 게 누락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준영 인터뷰이들이 거의 수도권 중심이다. 그 외 지역에서 고군분투했던 사람들 이야기가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

 

남궁정 그 당시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빠진 것들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학교에서 싸운 사람들이나 의제를 주장한 사람들 중에 저희가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들이 자기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유의미한 증언을 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는 것 같다. 정당에서 활동한 청소년이라든지, 온라인 공간에서 모임을 만들거나 다양한 활동을 한 사람들도 있는데, 찾아내기 어려워서 못 다룬 면도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빠진 부분들은 후속 작업을 통해 보완하면 좋겠다.

 

배경내 인물 중심으로 운동사를 정리하다 보면 그렇게 되기 쉬운 것 같다.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거나, 굉장히 유의미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인데 지금 연락이 되지 않아서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그게 남겨진 과제 아닐까. 의제로 보면 청소년 노동이나 성소수자운동 안에서 청소년이 등장하게 되는 과정이라든가, 이런 게 왜 누락됐을까? ‘청소년인권운동’이 아니라 ‘청소년운동’이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청소년운동은 배타적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공현 청소년 노동은 굉장히 다뤄 보고 싶었는데, 당사자로 활동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꼭 책의 형태가 아니라도, 예를 들어 4.19혁명 구술 아카이브 같은 것도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그렇게 구술사 작업을 해도 재미있겠다.

 

 

선배 세대에 바라는 것

 

공현 2006년에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역사연구팀 활동을 하면서부터 청소년인권운동 역사를 정리해 왔다. 한 10년 정도 청소년인권운동 역사를 잡고 있던 거다. 역사를 정리하다 보니까, 청소년운동이 활동 당시에는 주목을 받는데, 정작 그 실천에 대해 꾸준히 기록하고 관심 가지는 것이 부족하다. 이를테면 학생인권조례도 진보 교육감들의 성과로 인지가 돼 버리고. 청소년운동의 역사가 우리 사회에서 온당한 대우를 받고 있나, 이런 고민이 들었다.

 

혜원 사회 전면에 나서는 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2008년도 이후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청소년이라고 주목을 받고 부각이 되는 것 자체가 청소년 혹은 청소년운동이 뭔가 부차적이고 예외적인 운동으로 치부되는 것 같다. 여전히 기특한 애들 혹은 싸가지 없는 요즘 애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특히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서명을 받는 주민발의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경기도처럼 교육감이나 교육청이 주도하고 그 결과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런데 그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을 때 서글픔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한 걸 몰라준다는 서글픔보다는, 그런 변화를 만들어 내고 역사를 써 온 청소년들이 여전히 배제당하는 현실 때문이다. 기특하다는 반응, 혹은 여전히 청소년에게 반말을 하고 폭언을 내뱉을 수 있는 환경이, 이 사회 안에서 청소년들에게 여전히 시민의 자리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슬프다. 뭔가 세상이 바뀌고, 누군가 덜 짐승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됐다면 거기에는 분명히 청소년운동이 기여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공현 1991년 고등학생운동을 다룬 소설인 《나무에게서 온 편지》의 가제가 ‘패륜아’였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싸가지 없고 세상에 반항하는 그런 이미지였던 건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래서 고등학생운동이 제대로 기억되고 의미를 부여받는 것은, 청소년운동이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가져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청소년운동에도 좀 더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다.


《청소년운동사》를 보면 활동을 하다가 다른 영역에 가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다른 직업을 가지거나 운동을 하고 있는 분들이 우리 인맥이 돼 주면 좋겠다. 고등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선배 세대라고나 할까. 이분들이 이런 역할을 해 주면 좋겠다 하는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

 

서준영 청소년운동은 앞서 이루어진 활동은 많은데 잘 기록이 안 돼 있어서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게 되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기록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과거 운동의 조직 구성이나 절차나 회칙 같은 것이 잘 기록되면 나중에 활동하는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게 많다는 생각을 한다.

 

남궁정 저희 집에도 자료가 한 박스 있다. (웃음)

 

서준영 아수나로는 인터넷에 정리가 돼 있긴 한데, 옛날 자료들은 홈페이지에도 없는 것도 많다. 정리를 해 두면 나중에 뒤 세대에게 참고 자료가 될 텐데……. 청소년들이 포털을 많이 검색하기 때문에,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잘 정리해 두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배경내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이 있잖나. 예를 들어 지금 대중 조직 건설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도 있는데, 과거에 대중 조직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고 어려움도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경험과 역사가 개인의 몸과 정신에만 남아서 흩어져 버리는 일이 반복된다.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 그런 질문들에 대해서 기억을 토해 놓는 자리를 갖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공현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일 수 있는데, 우리의 우군이 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청소년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다른 공간에서 청소년인권과 청소년운동을 옹호하는 말을 한 마디라도 해 주는 역할을 해 주면 좋겠다. 꼭 자기가 예전에 청소년운동을 했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후회한다더라 그런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있던데, 그런 거 좀 하지 말고.

 

배경내 예를 들면, 김한울이 박근혜의 악수를 거부해서 유명해졌을 때, ‘제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감수성과 용기는 키워지지 않았을 겁니다’ 하는 고백을 해 주었더라면? (웃음) 그 시기에 형성된 나의 감수성이 지금도 나한테 귀한 것으로 남아 있다는 역사적 고백을 많이들 해 주면 좋겠다.

 

누니 중고등학생복지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하고 지금도 만나는데, 직장생활을 하거나 공부하면서 일상을 살고 있는데, 중고등학생복지회 활동을 어두운 기억으로 갖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나는 안 그런데, 왜 그렇게 기억이 될까 그런 고민이 많이 된다. 학생연합 친구들도 아쉽고 어두운 기억으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왜 그럴까. 그 이유가 뭘까. 청소년인권운동 내지 청소년운동이 한 개인에게 긍정적인 정체성으로 남을 수 있을까. 그 사람이 현재 사회운동을 하지 않고 일상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게 있어야만 자신의 경험이나 쌓아 온 기록을 공유하고,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이 가장 고민이다. 그래서 최근에 운동하셨던 분들이나 현재 운동하고 계신 분들은 청소년운동에 대해 어떤 정체성으로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윤가현 내가 청소년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궁금하긴 하다. 나는 운동을 계속 하고 있어서 청소년운동의 경험을 더 긍정적으로 사고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운동을 떠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면 잘 모르겠다.

 

혜원 나도 암흑기까지는 아니고, 활동을 하다가 대학을 가고 난 후 1~2년 동안은 잘 활동을 못 했다. 부채감일 수도 있고, 미안함일 수도 있는데, 가장 컸던 것은 자괴감이다. 청소년운동의 감수성과 이 운동에서 지향하는 바들이 너무 당연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공간에서는 내가 쌓아 온 삶의 원리들을 배반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이러려고 청소년운동을 했나? (웃음) 좀 덜 자괴감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은 다시 청소년운동을 시작하고 그 원리들, 감수성을 고민하는 이들과 좀 더 가깝게 지내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삶의 원리나 감수성이 환대받는 곳에서 나 역시 좀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청소년운동에 대한 공모자 내지는 지지자들의 존재가 더 많이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청소년 활동가와 청소년들에 대한 하대, 차별 문제에 대한 비판과 주체로 인정해 달라는 호소문이 돌았다. SNS에서도 공유를 많이 했다. 자기 위치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지, 어떤 의미였는지 글을 남기면서 공유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 글들을 볼 때마다 안정감이 들었다. 내 편이 있고 어디에선가 이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안정감. 외롭지 않게 되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현 청소년운동이 성과를 내기가 힘들잖나. 변화는 10년 단위로 봐야 조금씩 움직이는데, 대부분 2~3년 정도밖에 운동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한 건 뭐였을까, 뭔가에 기여하긴 한 것일까 하는 회의를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책을 만들면서 그 사람들에게 청소년운동의 역사라는 긴 내러티브를 만들어서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검은빛 나는 이 책을 보면서 힐링이 되었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옛날부터 했다는 게.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라는 페미니즘 책이 최근 나왔는데, 청소년운동에도 계보가 있었던 거다. 나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는 힐링이 됐다. 이 책에 ‘낡은 새로움’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울컥했다. 나는 정치적 권리 운동에 대해 인터뷰를 했는데, 그 활동이 망했다고 생각해서 자괴감에 빠져 있었는데, 나처럼 망하면서 청소년운동을 다져 온 사람들이 있었고 내 운동을 통해 뭔가 한 발 더 나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2016년, 청소년운동의 과제는

 

공현 현재 2016년의 청소년운동은 어떤 상황에 있고, 어떤 과제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다. 나는 학생인권조례가 4개 지역에 생겼는데, 전국적으로 법률이 제정돼서 최소한 체벌 금지나 두발 자유가 뿌리내리게 하는 게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참정권 관련해서도, 꼭 선거권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청소년들이 말하고 떠들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배경내 최근의 시국과 관련해서 청소년들이 학내에서 시국선언도 하고 대자보도 많이 붙인다. 두 개의 궤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자신들이 공부하는 수험생으로서 ‘우린 이렇게 고생하는데, 너희는 특혜 받고 사냐, 이게 민주주의냐’ 하는, 즉 내 삶의 현재가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냐 하는 문제 같다. 또 하나는 이 땅의 거국적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시민으로서 발언이 있는 것 같다. 이 발언들이 또 두 개로 나뉘는데, 하나는 우리에게 거짓 민주주의 말고 올바른 민주주의를 돌려달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있고,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청소년의 비시민됨 자체를 민주주의의 문제로 제기하는, 그래서 오늘 우리가 시민인지를 스스로와 친구에게 묻는 이들이 있다.


《송곳》의 대사처럼, 존중이라는 게 두려움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조직된 힘을 갖지 않은 운동과 존재가 존중을 기대하기 힘들다. 존중이 인성 차원의 변화만의 몫의 결과는 아니다. 최소한의 청소년에 대한 존중이 시민사회의 교양도 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랬을 때 청소년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게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을 기특해 하는 사회의 시선을 훌쩍 뛰어넘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 주는 수밖에 없고, 그 핵심은 참정권에 관한 인식의 틀을 여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에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이 ‘무서워요, 소고기 먹기 싫어요’ 말고, ‘우리가 두렵지 않느냐’라고 하는 장면이었다. 그런 장면들을 지금 더 많이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남궁정 지난 10월 29일 집회에서 밤샘 발언을 많이 하더라. 청소년들도 굉장히 발언을 많이 했다. 주로 경쟁 교육과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였다. 2008년 촛불 집회 때도 그렇고, 그 이후 많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의제로 자기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 청소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한 번 더 그런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현 광장이 열렸을 때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2008년에도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국 사람들은 미국산 소고기 문제로만 기억한다. 그 안에서 나온 수많은 이야기는 우리 마음속에만 남는 걸까? 그래서 어떤 다른 정치를 기획하고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든다. 단순히 시국선언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어떤 실천, 어떤 다른 이야기기를 하고 유통시킬 수 있을까?

 

혜원 나는 운동에 대한 전망들을 그리는 게 늘 어려웠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데……. 청소년운동이라고 해 봤자 한 줌도 안 된다. 그동안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는 청소년운동의 재정적, 담론적 기반을 만들고, 운동을 지키기 위한 고민과 활동을 해 왔는데, 그냥 지금 잡고 있는 이 한 줌이라도 제대로 잡고 싶은 생각이 강하다. 전망이라기보다는 지금 오늘이라도 잘 버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공현 오늘을 잘 버텨야 내일을 더 잘 생각할 수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청소년운동에 관해서 제안하고 싶은 활동을 나누고 마쳤으면 한다.

 

두요 청소년운동사에 대한 아카이브 페이지 같은 계획은 없나? 아까 이야기 나온 것처럼, 아주 체계적이지는 않더라도, 웹페이지라도 만들면 유용하지 않을까?

 

검은빛 아이디어 수준이긴 한데, 거창한 건 아니더라도, 포털 같은 걸 만들면 어떨까 싶다. 청소년들과 활동가들이 교류하고 생각하는 것을 올리는 장도 되고 아카이빙도 할 수 있는.

 

두요 난 포털보다는 스낵 뉴스 같은 걸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최근에 최순실 게이트 관련한 내용들이 유통되는 걸 보면 ‘정알못’들에게 일련의 사건들을 정리해서 보여 주는 영상이나 카드 뉴스가 많이 소비가 되더라. 시청각화 하는 작업이 품이 굉장히 많이 드는 작업이긴 한데, 좀 더 대중들한테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


➊ 정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쥬리 지금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랑 과거에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더 만나고 소통할 연결망을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운동을 긍정적으로 기억하고 자기 삶에서 여전히 삶의 원리로 가져갈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에 청소년운동을 했던 비청소년들의 지원이나 네트워크가 있는 것이 운동에 힘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청소년운동의 근황을 공유해 줄 수 있는 연결망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이라도 만나는 가벼운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자기가 했던 운동을 부정적으로 기억하게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그게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잖나. 누군가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정부에서 이달의 독립운동가 지정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달의 청소년운동가를 지정하는 건 어떨까? (웃음) 그럼 이 책에 담기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공유될 수 있을 것 같다.

 

공현 처음에 청소년운동을 했던 분들이 슬슬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시기가 되었는데, 청소년기를 벗어나 부모가 되거나 어른이 된 분들이 어떻게 좋은 청소년운동의 지지자로 남고, 어떤 삶을 살지 그런 것을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유지되었으면 한다.

 

누니 공현이 내러티브를 만들자고 이야기했는데, 청소년운동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어 주는 게 고마운 일일 것이다. 지금은 운동을 안 하는 사람들까지도 포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선물해 줘야 할까, 이런 고민이 든다. 아이디어가 생기면 기금을 마련하는 것은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기금을 모으는 활동 자체가 사람들을 연결하는 캠페인이 되기도 하고.

 

공현 오래 전부터, 두발자유가 되면 그동안 운동을 해 온 분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당신들 덕분에 두발 자유가 20년 만에 됐습니다’ 아직 두발 자유가 안 되긴 했는데, 지금까지 걸어온 만큼이라도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대중조직을 준비하고 있는데, 첫 목표가 300명의 청소년 회원과 다섯 개의 지역모임이다. 연말에 ‘행동하는 청소년들의 모난돌 파티’도 준비하고 있다. 그런 것에 함께해 달라.

 

쥬리 고운 활동가 중에 교사가 된 분도 있고, 마을 활동을 하는 분들도 있다. 그중에는 청소년들을 만나는 직업을 가진 분들도 많을 텐데 조직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분들이 새로운 청소년운동가를 양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면 청소년운동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배경내 역사 속의 인물을 찾는 활동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느 학교의 종이 비행기 시위에 참여한 분들을 찾는다거나. 역사 속의 어떤 장면에 당신이 했던 게 청소년운동이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나정훈 우리가 활동을 할 때 사용했던 언어나 관계 맺음 방식이 기성의 운동 방식과 조직 운영 방식과 차이가 있었고, 지금도 내가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 차이가 나더라. 나이로는 청소년을 벗어난 지는 한참 됐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튕겨져 나올 때마다 청소년운동을 할 때의 문제의식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요즘에도 나이 든 아저씨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면 항상 싸우게 된다. 나도 이제 그들과 같이 늙어 가는 나이인데, 왜 나는 아직도 이들을 미워할까? 우리 안에서 우리의 언어들이 가진 특징이라거나 소통이나 관계 맺음의 방식들이 정리되면 좋겠다. 우리의 방식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가졌던 문화, 양식의 의미를 찾는 작업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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