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호[기획] 학교 안에서 성소수자 교사로 살아가기 (홀로 걷는 바람)

기획/ 페미니즘과 교육

 

학교 안에서 성소수자 교사로 살아가기

 

홀로 걷는 바람

초등학교 교사

lovebear02@gmail.com

어렸을 적부터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고, 지금도 좋은 교사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40대 중년 초등교사입니다. 인권교육에 관심이 있는 선생님들과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 모임 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순간이 올 줄 알았다.


당신의 걱정은 늘 친절로 위장되어 있었지만 사실 좀 지긋지긋했음을 고백한다. 당신은 그게 상대방을 위한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듣는 입장에서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감동스럽지도, 고맙지도 않았다. 이젠 그만할 때도 됐다 싶은데, 아마도 당신들의 그 오지랖은 평생을 따라다닐 것 같다. 그러니 이쯤에서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당신을 위해서도 이 말을 해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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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결혼 적령기’라는 말은 공중전화와 더불어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 중에 하나임에도 아직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남아 있다. 그들은 미혼未婚이거나 비혼非婚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결혼 여부를 확인하고, 결혼하지 않았다면 왜 안 했는지를 묻고 또 묻는다. 결혼이 얼마나 중요한 인생 과업인지를 설득하려 하고 궁극에는 나이 들어 외로울 것이라는 걱정 섞인 예언까지 하며 오지랖 신공을 펼치신다. 나중에는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지만 해 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별 해괴망측한 궤변까지 늘어놓으며 결혼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담아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결혼을 선택한 자신의 삶이 얼마나 모순에 차 있는지는 돌아보지 못한 채, 자신이 무심코 걸어 온 길에 대한 확신만을 가지고 온갖 성차별과 불평등으로 얼룩진 결혼 제도와 결혼 관계에 대한 성찰도 없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한 조언을 늘어놓는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부끄러운 일인가.

 

신앙을 전파하는 전도 행위에 가까운 결혼 얘기의 시작은 사소한 걱정에서 시작한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는 질문에 ‘챙겨 먹을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는 현대인의 당연한 일상을 고백하면 예기치 못하는 상황에서 훅 치고 들어오는 말이 ‘그러게, 결혼을 해야 부인이 밥을 챙겨 주지’이다. 헐~ 밥 챙겨 줄 사람을 구하기 위해 결혼을 하는 것이란 말인가. 더구나 이런 성차별적 발화의 주체가 여성인 경우 더욱 할 말을 잃게 된다. 대놓고 ‘남편 밥해 주려고 결혼하셨어요?’라고 묻고 싶지만 그 정도 싸가지 없는 이미지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나는 ‘요즘 남편 밥 차려 주는 여자가 어디 있어요. 각자 차려 먹는 거지’라며 나름 깨인 남성처럼 보이는 응대로 화제를 돌리려 한다. 하지만 여기가 또 함정이다.

 

“아유~ 자기 같은 사람이 결혼하면 부인한테 잘 해 줄 텐데 왜 결혼을 안 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모든 대화는 결혼으로 통한다는 기-승-전-결혼의 이 대화법을 17년째 반복하고 있다. 결혼 적령기라는 말이 아직 유효할 나이쯤에는 그 시기만 넘기면 이 대화의 사슬에서 풀려날 줄 알았다. 그런데 만혼이나 비혼이 늘어난 시대적 변화가 이 질문의 유통기한을 무기한 연장시켜 버린 것이다. 젠장, 나이 마흔을 넘어 이제 중년의 나이로 접어드는데도 여전히 이 질문은 나를 겨냥하고 있다. 가족들도 슬슬 포기하는 질문을 직장 동료인 교사들은 포기할 줄을 모른다.

 

나는 차라리 그들 스스로 결혼 제도의 모순을 고백하는 ‘뒷담화’ 자리가 좋다. 결혼이라는 것을 선택하고 수십 년간 얼마나 남편(혹은 부인)이라는 타인과 고통스럽게 살아왔는지를 고백하는 이야기가 좋다. 최소한 그 속에는 진실함이라도 있다.

 

예전에 휴일 당직 근무가 남아 있던 시절, 하필 추석 명절에 당직 근무를 서게 된 적이 있다. 철없던 나는 함께 당직 근무를 하게 된 선배 여교사에게 남들 다 쉬는 명절에 근무해서 속상하시겠다며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셔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서운하시겠다는 오지랖을 떨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에 한 방 먹었다. “어머, 나 오늘 근무해서 얼마나 좋은데. 근무 핑계로 시댁에도 가지 않고 명절 음식도 안 만들고, 결혼한 여교사들에게 명절 근무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 모르는구나?” 가족들이 모두 모여 화목한 한 때를 보낸다는 명절은 사실, 사기였다. 며칠 전부터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고, 하루에도 몇 번의 상을 차리며 ‘지들끼리’ 좋은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예처럼 일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은 숨겨지는 것이다.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지금은 사라진 ‘명절 당직’을 그리워할 수많은 기혼 여성들이 있을 (것이며, 그러면서도 시댁에 오지 않는 며느리를 흉볼 시누이들도 있을) 것이다.

 

술 먹고 자기 결혼식에 늦은 남편, 새벽까지 안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리던 숱한 밤들, 갓난아기를 쉬고 있는 남편에게 맡기고 출근했다 돌아오니 남편은 자고 있고 아이는 작은 욕조 속에서 똥오줌을 싸고 그 물을 마시며 첨벙거리며 놀고 있더라는 기가 막힌 이야기들. 그러고는 아이가 어느덧 다 크니 젊었을 적엔 그렇게 놀러만 다니던 남편이 가정적(?)이 되어 잘해 주더라는 나름 해피엔딩의 이야기까지, 결혼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담긴 뒷담화에는 그들도 미처 깨닫지 못한 가부장제에 대한 신랄한 증언이 담겨 있다.

 

아주 오래 전에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퀴즈 프로그램 중에 나이 든 노부부 여러 쌍이 출연하여 문제를 내고 답을 맞히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방송이 서툰 촌부들을 불러다 예상 밖의 질문과 대답을 들으며 즐거워하던 예능 방송이었는데, 그때 진행자는 꼭 이런 질문을 하곤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하시죠?” 그때 그 시절에도 할머니들은 진행자의 식상한 질문에 “이 영감이 젊었을 적 얼마나 속을 썩였는데…”라며 질문한 사람을 궁색하게 만들곤 했었다. 이제 황혼 이혼이라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할머니들이 많아지면서 더 이상 ‘참고 사는’ 일이 미덕이 되지도 않으며, 자식을 볼모로 자신의 삶을 헌신하도록 강요당하는 삶을 ‘참된 어머니’의 삶으로 칭송하지도 않는 시대가 오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타인의 희생을 쉽게 칭송하는 사람은 사실 자신에게 부과될지도 모르는 삶의 짐을 타인에게 떠넘기며 안도의 숨을 내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실 남들에게 입이 닳도록 결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현실은 통째로 망각하고 환상을 전파하는 사람들이다. 그 환상을 확대 유지시켜 주는 장치 중에 하나가 드라마다. 최근에는 그에 못지않은 강력한 매체가 등장했는데 바로 SNS다. 드라마는 그나마 가상 인물들을 통해 환상을 재현해 내지만, SNS 속의 사람들은 바로 내 주변에 존재하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멋진 곳으로 여행을 가고, 분위기 있는 곳에서 식사를 하고, 가족과 함께 여가를 즐기는 모습이 사진과 함께 실시간 중계된다. 그곳에는 개인의 불행이나 고통 따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은 과대 포장되고 고통은 감추어진다. 결국 불행은 개인의 몫으로 돌려진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는 환상은 근대적 산물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에서도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정혼하여 결혼하는 일은 별로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만나 ‘연애’를 통해 결혼을 하는 일이 그보다 특이한 일이었다. 결혼은 지극히 사회적 필요에 의해 맺어지는 관습적 행위에 불과했다. 그것은 노동과 성의 착취 제도였으며, 출산과 양육이라는 사슬에 묶인 여성을 현모양처의 신화에 가둔 사회적 협잡에 다름 아니었다. 동화 <나무꾼과 선녀>는 그 일면을 보여준다. 옷을 ‘훔친’ 나무꾼(과연 옷만 훔쳤을까?) 때문에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고 나무꾼과 결혼한 선녀의 행동은 정말 자유로운 선택이었을까.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 선녀 옷을 돌려주지 말라던 사슴(이 나쁜 놈)의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결국 하늘나라로 도망간 선녀를 기어이 따라 온 나무꾼의 (스토커 같은 무시무시한) 행동은 가정폭력을 피해 도망간 여성을 끝까지 쫓아가는 남편들을 떠올리게 한다.


올해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30만 2800건이었고 이혼건수는 10만 9000건이었다고 한다. 결혼은 이제 후회하더라도 한번쯤 해 보는 인생의 필수 코스가 아니다. 그러니 제발 타인에게 결혼에 대한 전도는 그만해 주길 바란다. 이것은 부탁이 아니라 경고다.

 

2


사실 나는 결혼이 ‘필요’하다. 나는 이미 7년이 넘게 한 집에서 동거하는 사람이 있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 오긴 했지만 인생의 동반자로 남은 삶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나 결혼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 그림의 떡 같은 제도이다. 나는 게이, 즉 성소수자다. 성소수자인 나에게 결혼은 허락되지 않은 ‘그들만의 리그’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결혼이라고 부르는 제도 속에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특혜와 권리들을 담아 놓고 당신들이 맘대로 정해 놓은 규칙에 맞는 사람에게만 그 권리들을 허용하고 있다.

 

내가 아는 오래된 게이 커플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지만 불행히도 한 사람이 급성 뇌 질환으로 쓰러지게 되었다. 가족에게 커밍아웃 후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발병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가족들은 냉담하기만 했다. 결국 그의 연인이 그의 병원비부터 간병까지 도맡아야 했다. 그의 연인은 병든 애인을 요양원에 보내고 매주 문병을 했고, 생계가 어려웠지만 간병비와 병원비까지 힘겹게 부담했다. 몇 년 후, 결국 병이 악화되어 그는 요양원에서 생을 마쳤다. 문제는 그가 죽고 나서였다. 그를 전혀 거들떠보지 않던 가족이 그의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그를 돌보던 애인은 사랑하던 이의 시신조차 볼 수 없었고, 가족들은 제대로 된 장례 절차도 없이 서둘러 화장했다. 그의 병원비를 대느라 빚까지 지게 된 애인은 그의 사후에 지급된 보험금에 대해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었다. 기저귀 값조차 보태지 않던 가족들은 금전적 보상은 물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의 애인을 그의 삶에서 지워 버렸다.


나는 가끔 내가 먼저 죽는다면 남겨질 애인의 삶 또한 이렇게 되지 않을까 진심으로 걱정이 된다. 우리 둘의 관계는 몇십 년을 함께 살았건 법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혹은 그가 아플 때도 마찬가지이다. 우린 서로가 아플 때도 의료적인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우린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내고 있지만 서로에게 진짜 가족이 되어 줄 수는 없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옆 중학교에 근무하던 게이 동생이 있었다. 그는 기간제 교사였는데, 몇 년 전 한국에서의 교사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학부 때와는 다른 전공을 택해서 공부하는 데 꽤 힘들어했다. 그가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한국을 떠난 이유 중 하나는 매우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며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이었다. 더구나 부모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이기까지 했다. 그는 뉴욕에서 공부하며 나름의 자유를 만끽하는 듯 보였고, 작년 미국에서 결혼 제도에 대한 차별이 없어짐과 동시에 필리핀계 미국인인 애인과 결혼식을 올려 합법적인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 사는 또 하나의 게이 커플이 있었다. 내가 후원하는 성소수자 단체의 같은 회원이기도 했던 형, 그리고 그 형의 필리핀 국적의 이주노동자인 애인이었다. 그 형도 작년에 법률적인 효력은 없으나 지인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그의 남편(그는 이렇게 부른다)은 합법적 체류 기간이 끝나 미등록 노동자가 되었고, 결혼 후 고국에 있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도 재입국이 불가능해 장례식에조차 갈 수가 없었다. 결국 한국에서 형이 대신 장례식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둘의 결혼은 인정받을 수 없었고, 따라서 한국에서 남편의 신분 또한 합법적으로 획득할 수 없었다. 형은 올해 초 어렵게 임용된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남편의 나라인 필리핀으로 남편과 함께 떠났다. 한국에서는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을 바꿀 수 없었던 형은 차라리 남편의 나라에서 사는 삶을 택한 것이다.

 

아주 우연히 내 주변에서 이 두 가지 사건이 한 해에 일어났다. 한 사람은 필리핀계 미국인과 결혼해서 미국 국적 획득은 물론이고 주변의 축복 속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고, 또 한 사람은 필리핀 이주노동자와 결혼하였으나 합법적 지위는 고사하고 결국 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두 커플 중에 누가 더 행복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이 나라는 둘 중 어떤 커플에게도 행복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의 문제이며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절대 결혼 제도가 완벽한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혼을 해야 사랑이 완성되는 것처럼 떠들어대는 사람이 있다면 가엽다는 생각마저 들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가 가진 제도 중 권리의 측면에서 개인 간의 결합을 가장 합리적으로 보장해 주는 제도는 결혼 제도 뿐이다. 프랑스에서는 2013년 동성 결혼 합법화 이전에도 1999년부터 시민 결합 제도에 해당하는 시민연대 계약PACS, pacte civil de solidarité을 시행해 왔다. 이 시민연대 계약은 성소수자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두 이성 또는 동성 성인간의 시민 결합 제도이다. 다른 국가들의 시민 결합 제도와 마찬가지로 법적 권리와 의무가 주어지지만 결혼보다는 제한적이다. 프랑스 의회는 동성 커플에게도 법적 지위를 주기 위해 1999년 11월 시민연대 계약법을 입법하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통계에 의하면 시민연대 계약을 맺은 커플 중 94%가 이성애자 커플이었다. 이 제도는 동성 결혼 합법화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나는 한국에도 이런 제도가 시행되길 희망한다. 왜 사람들이 꼭 결혼을 통해서만 한 집에 살면서 서로의 삶에 동반자가 되어 줄 지위를 획득해야 하는가. 나는 결혼 이외에도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여 사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저 친숙한 관계만으로도 충분히 결혼한 커플 이상의 행복을 누리고 살고 있다. 그러니 이 땅에 태어난 국민에게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할 헌법적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맞는다면 그것이 결혼 제도이건 시민간의 연대 계약이건 제도적 보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법적 지위와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나는 게이다. 그리고 7년째 동거중이다. 그러니 날 위해 동성 결혼 합법화 투쟁이라도 할 생각이 아니고서야 나에게 결혼하라고 말하는 것은 나를 조롱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3


학교 안 성소수자로 사는 것에는 사실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 나는 그 속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나는 그저 결혼하지 않은(혹은 못한) 40대의 과체중인 남교사로 보일 뿐이다. 대부분의 성소수자들은 사회 속 자신의 자리에서 그렇게 투명 인간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만드는 음식을 먹고, 그들이 전하는 뉴스를 보고, 그들에게 자신의 자녀들을 맡기고, 그들과 함께 같은 직장에서 생활하면서도 사람들은 성소수자들을 모른다고 생각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수십, 수백 년간 이 땅의 많은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 살아왔다. 때로는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으며.

 

오래된 억압 속에서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된다. 그저 스스로 부끄럽고 낯선 존재가 되어갈 뿐이다. 타인의 멸시보다 더 힘든 것은 스스로의 자긍심을 잃고 비굴하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럴 듯하게 보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까지 감추며 살 수는 없다. 인류 역사는 인간이 모든 굴레로부터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해방시켜 온 역사이다. 노예가 그랬고, 신분제 사회 속의 농노와 노비들이 그랬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그러했으며 이성애 중심주의 속에서 성소수자들이 그러한 길을 걷고 있다. 인간은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억압과 모멸을 견디며 살도록 강요할 수 없다.

 

온라인 공간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그 중에는 특정 회사에 근무하는 직장인 모임도 있고, 의사나 법조인 등 전문직 그룹도 있다. 또 다소 폐쇄적이긴 하지만 공무원들로 구성된 커뮤니티도 존재한다. 모임에는 군인과 경찰, 소방 공무원 등 다양한 직종의 공무원들이 있으며 그 중에는 교사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는 성소수자 동료나 친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17년간 초등교사로 근무하며 꽤 많은 주변 교사들, 그리고 적은 수이지만 내가 만난 학부모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무모함도 한 몫을 했겠지만 그들이 보여 준 이해와 관용의 태도가 나에게 준 용기 덕분이었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주변에 당신이 알고 있는 성소수자가 아직 한 명도 없다면 당신이 혹시 너무 편협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 볼 일이다.  

 

성소수자로 학교에 존재한다는 것은 많은 거짓말을 일상화해야 하는 일이다. 그 일상화된 거짓말 중의 하나가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언급한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애인이 있는데 있다고 말하기 어렵고, 함께 사는 사람이 있는데도 솔로인 척 해야 하고, 결혼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유들을 늘어놓아야 한다. 때로는 매우 까탈스러운 사람인 척할 때도 있고, 때로는 애정 따위는 초월해 버린 사람처럼 말해야 할 때도 있다. 해가 바뀌고, 근무지가 바뀌고, 관계가 바뀔 때마다 나는 대부분이 거짓말인 설명을 늘어놓아야 하고 사소한 대화에도 긴장을 한다.

 

간혹 어렵게 커밍아웃한 동료 교사도 온전히 내 편이 되어 주지는 못한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 오랜만에 동료 교사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방학 때 데이트는 많이 했어? 더 늦기 전에 얼른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해야지”라고 말한 사람은 내가 유일하게 학교에서 커밍아웃한 선배였다. 나는 매우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서운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성소수자 이슈가 교사들 사이에 회자될 때 우호적으로 말해 주는 사람은 그 선배뿐이다.  

 

주변에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한편으로 서운함이 들 때는 이렇게 알면서도 모른 척할 때나 성소수자에 대해 잘 모르면서 그냥 이해한다고 말할 때이다. 모르면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나 개인에 대한 인정일지는 몰라도 성소수자 전체에 대한 인정은 아닐 수 있다. 누군가를 알고 이해한다고 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그가 인정해 주길 원하는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커밍아웃을 한 후 오히려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길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더 거북해 하는 이유가 뭘까. 나는 그것이 무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대학 동기가 섞여 있는 모임에서 커밍아웃을 했던 적이 있다. 성소수자를 처음 접해 본다는 모임 사람들은 다소 짓궂은 질문을 포함하여 호기심 어린 질문들을 마구 던졌다. 그때 잠자코 있던 대학 동기가 말했다. “당신들이 내 대학 동기에 대해 그렇게 바라보고 물어보는 것이 기분 나쁘다”라고. 하지만 나는 그 동기의 말에 더 기운이 빠졌다. 그에게는 이미 몇 년 전에 커밍아웃을 했음에도 그는 내 성소수자 정체성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했다. 그저 나를 좋은 친구로만 기억하고 대했을 뿐,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나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에 반해 나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사람들에게 나는 진심으로 나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느꼈다. 마음속으로는 나에 대한 편견을 품고서 겉으로만 나를 인정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편견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나를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고마웠다.

 

흔히 교양 있는 (척하는) 지식인 모임에 가면 이런 현상을 종종 겪는다. 뭔가 자신들이 모르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가 던져지면 아무도 그 주제를 긴 대화로 발전시키지 않는다. 최대한 자신의 생각은 감추고 남의 얘기들로만 대화를 채워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화의 소재는 금세 바닥나기 때문에 이야기는 오래 가지 못한다. 어떤 이는 나에게 만날 때마다 성소수자 이슈만 이야기 하려고 한다고 나무라듯이 얘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사람’ 이야기를 자신이 얼마나 자주, 길게 언급하는지는 느끼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나는 성소수자로서 내가 느끼는 사회적 문제와 관계들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내가 아는 장애인 활동가는 만날 때마다 장애인 문제를 얘기하고, 장애 관련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가 장애인 이슈만 이야기한다고 느끼는 않는다. 그는 그냥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를 알기 위해 그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고 그를 더 잘 알기 위해 장애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들을 질문한다. 그가 나를 위해 일부러 성소수자 얘기를 꺼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를 더 잘 알고 싶다면 내가 그런 얘기들을 꺼냈을 때 그것에 대해 더 물어볼 수는 있을 것이다.

 

다른 사회적 집단들도 그렇지만 특히 교사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잘 인정하지 않는 집단 중 하나이다.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물어 보는 것이다. 당신이 성소수자에 대해 잘 모른다면 물어 보라. 요즘엔 다양한 인터넷 사이트 등에 그런 질문에 대한 수많은 대답이 있다. 물론 그것이 제대로 된 정보인지는 당신이 검증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시대가 변했음을 당신도 알고 나도 안다. 당신이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변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결혼에 대한 시선이 그렇고 여성에 대한 시선이 그렇고, 소수자들에 대한 시선 역시 그렇다. 나는 성소수자임이 늘 자랑스럽다. 한때 누군가가 다시 태어난다면 성소수자로 태어나겠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억압 받아 서러운 게이로 태어나느니 이성애자로 태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당당하게 사랑하고 싶다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게이인 내가 자랑스럽다. 이 땅에 소수자로 살면서 또 다른 소수자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 고맙고 감사하다. 남성으로 살면서도 여성들과 기꺼이 연대할 수 있고, 장애인의 소외를 공감할 수 있으며, 약자의 고통에 가슴을 내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게이가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감정과 느낌들이 지금 내게는 너무 소중하다. 그리고 나는 당신과도 이 느낌들을 기꺼이 공유할 준비가 되어있다. 당신은 준비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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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