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통념에 기댄 외면의 동맹 구조
아동학대를 말하는 새로운 방법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hregang@hanmail.net
인권교육과 청소년인권, 구술 기록 활동의 매력에 빠져 살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가장 매력적인 현재가 되고픈 마음을 가꾸며 산다.
지난 겨우내 언론과 인터넷을 도배했던, 지금은 어느새 잊힌 아동학대 사건들을 떠올려 본다. 11세 여아 탈출 사건(속칭 ‘맨발 소녀’ 사건), 7세 여아 살해‧암매장 사건, 6세 아들 살해‧암매장 사건(속칭 ‘원영이’ 사건)……. 얼굴도 모르고 손 한번 맞잡아 본 적 없는 피해 아동들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보냈을 시간들을, 그들의 삶에 어떻게든 접속했을 인연들을 짐작해 본다. 누군가는 피해 아동이 보내온 간절한 신호를 알아차릴 수 있지 않았을까.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피해 아동들의 얼굴 위로 쉼터에서, 그룹홈에서, 거리청소년 지원기관에서 교육을 통해 만나왔던 청소년들의 얼굴이 포개진다. 집에서 탈출한 그이들 역시 부모로부터 오랜 기간 학대받은 경험을 갖고 있었다. 현재 신고와 보호 조치까지 이루어지는 학대 피해 아동은 전체 아동의 1% 남짓이지만, 발견조차 되지 않은 학대 피해가 훨씬 더 많으리란 건 분명하다. 세상의 잣대에 따르자면 죽음에까지 이르지 않은 이 무수한 경험들은 소소한, 견딜 만한 것으로 치부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동학대 생존자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어떤 장면들을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부모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고, 나 역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평범한 아이였고, 학교에서는 교사들의 예쁨을 받는 모범생에 속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동학대 생존자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이들 역시 아동학대 생존자라고 생각한다. 아동학대의 법적 정의는 ‘성인이 아동에게 가하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과 가혹행위, 유기, 방임’➊이지만, 우리 사회가 주로 아동학대로 받아들이는 장면은 이보다 훨씬 협소하고 일그러져 있다. 사람들이 주로 떠올리는 피해 아동의 얼굴, 학대 행위자의 모습, 학대가 가해지는 장면, 이 모두에 아동학대의 진실을 감추는 사회적 통념이 스며들어 있다.
➊ 아동복지법 제3조는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아동학대로 정의하고 있다. 이때 보호자란 “친권자, 후견인, 아동을 보호·양육·교육하거나 그러한 의무가 있는 자 또는 업무·고용 등의 관계로 사실상 아동을 보호·감독하는 자”를 의미한다.
이 글은 아동학대를 둘러싼 그릇된 통념들과 그에 기댄 ‘외면의 동맹 구조’가 피해 아동과 무수한 목격자들의 대응력을 무력화시키는 요인이라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는 지난 3월, 각 정당에 아동학대 예방 정책에 관한 질의서를 보내 안 그래도 선거운동에 바쁜 이들을 애써 괴롭힌(?) 적 있다.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해 보게끔 만들고 싶었다. 각 정당이 보내온 답변서를 뜯어보니 여당은 물론, 이른바 진보적이라 분류되는 정당들 역시 아동학대에 관한 통념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무엇을 학대라 부를 것인가
아동학대라는 말은 그 자체로 참혹한 광경을 연상시킨다. 마구 두들겨 패는 행위, 어두운 방 안에 가두는 행위, 어린아이를 집어던지는 행위, 밥을 굶기는 행위, 추운 겨울날 베란다에 옷을 벗겨 내쫓는 행위,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의 경우처럼 아이를 세탁기에 넣어 위협하는 행위 같은 것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장면에만 아동학대라는 딱지가 주로 붙는다. 그렇다면 추운 겨울날 교실에서 외투나 담요를 걸치지 못하게 만드는 관행도 아동학대라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학생에게 오리걸음을 시키는 일이나 부모가 상대 배우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목격하도록 하는 일도 아동학대라고 주장한다면? 아침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이른 등교와 장기간 학습을 강요하는 것도 아동학대라고 주장한다면?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조차 진심으로 아동학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비유를 통한 강조 어법을 쓴다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아동의 존엄과 안녕을 위협하는 학대가 아닐까.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제시하고 있는 아동학대는 매우 광범위한 데 반해➋, 세상의 잣대는 아동학대를 매우 협소하게 정의한다. 그러다 보니 ‘강도가 약한’ 사건에 대해서는 아동학대가 아닌 훈육이나 지도로 판단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법부의 판단도 사회 통념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서울 구로구청은 아동복지시설에서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뺨을 세게 때리거나 손바닥 등을 때린 행위에 대해 아동학대로 판단, 6개월간 사업정지처분을 내린 적 있다. 이에 대해 시설장이 취소 소송을 제기하자, 서울지방법원 행정12부(이승한 부장판사)는 “여러 명이 함께 지내는 시설의 질서를 흐리는 아동들을 훈계하고 주의를 줘 올바른 행동을 지도하기 위한 목적이 주된 것이었다고 보인다”라면서 아동학대가 아니라고 판단했다.➌
➋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동학대 유형으로 제시하고 있는 행위는 아래와 같다. 행위 유형의 예시는 ‘이런 것도 아동학대일 수 있구나’라는 환기 효과를 가져오지만, 열거된 행위 중심으로만 아동학대를 판단하게 만들 위험성도 동시에 갖고 있다. 성학대의 경우는 행위 유형을 열거하는 것은 더더욱 부적절하기에 생략했다. [신체학대] *직접적으로 신체에 가해지는 행위(손, 발 등으로 때림, 꼬집고 물어뜯는 행위, 조르고 비트는 행위, 할퀴는 행위 등) * 도구를 사용하여 신체를 가해하는 행위(도구로 때림, 흉기 및 뾰족한 도구로 찌름 등) * 완력을 사용하여 신체를 위협하는 행위(강하게 흔듦, 신체 부위 묶음, 벽에 밀어붙임, 떠밀고 움켜잡음, 아동을 던짐, 몸을 거꾸로 매닮, 물에 빠뜨림 등) *신체에 유해한 물질로 신체에 가해지는 행위(화학물질 혹은 약물 등으로 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행위, 화상을 입힘 등) [정서학대] * 원망적/거부적/적대적 또는 경멸적인 언어폭력 등 *잠을 재우지 않는 것 * 벌거벗겨 내쫓는 행위 * 형제나 친구 등과 비교, 차별, 편애하는 행위 * 가족 내에서 왕따 시키는 행위 * 아동이 가정폭력을 목격하도록 하는 행위 * 아동을 시설 등에 버리겠다고 위협하거나 짐을 싸서 쫓아내는 행위 * 미성년자 출입금지 업소에 아동을 데리고 다니는 행위 * 아동의 정서 발달 및 연령상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강요하는 행위(감금, 약취 및 유인, 아동 노동 착취) * 다른 아동을 학대하도록 강요하는 행위 *[성학대] 예시 생략 [방임] * 물리적 방임 :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는 행위 / 불결한 환경이나 위험한 상태에 아동을 방치하는 행위 / 아동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행위 / 보호자가 아동들을 가정 내 두고 가출한 경우 / 보호자가 아동을 시설 근처에 두고 사라진 경우 / 보호자가 친족에게 연락하지 않고 무작정 아동을 친족 집 근처에 두고 사라진 경우 등 * 교육적 방임 : 보호자가 아동을 특별한 사유 없이 학교(의무교육)에 보내지 않거나 아동의 무단결석을 방치하는 행위 * 의료적 방임 : 아동에게 필요한 의료적 처치 및 개입을 하지 않는 행위 •유기 : 아동을 보호하지 않고 버리는 행위 / 아동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사라진 경우 / 시설 근처에 버리고 가는 행위
➌ “법원 “훈육 차원 뺨 때린 것은 ‘아동학대’ 아니다””, 〈연합뉴스〉, 2014년 10월 3일
‘아동학대다 vs. 아니다’를 판별하는 기준을 오직 행위의 ‘유형’이나 ‘강도’에만 두고 있는 한, 아동에 대한 체벌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가혹한 대우를 ‘고문’으로 바라보는 유엔의 권고가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한국 사회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핵심은 행위의 ‘의미’와 ‘효과’다. 어떤 행위가 아동에게 가해지는 의도, 그 과정에서 아동이 놓이게 되는 존재적 위치, 아동의 몸과 마음과 사회적 역량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학교에서 아동이 폭력을 목격하도록 하는 행위를 살펴보자. 나에게는 학교에서 직접 당했던 체벌의 기억보다 친구가 담임에게 여러 차례 뺨을 맞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숨죽이고 있었던 기억이 더 강렬한 상처로 남아 있다.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체벌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려는 의도(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에서 기획된 ‘전시성 체벌’이다. 체벌은 피해 아동 당사자에게만 모욕감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목격하는 학생들도 ‘나 역시 맞아도 괜찮은 존재로 분류된 집단의 일원’이라는 수치심과 ‘나도 언제든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공포심을 느낀다. 그 수치심이 너무 강렬하기에 내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피해자를 분리시키는 방어 의식이 등장한다. ‘쟤니까 맞은 거야.’ 누군가 폭력 피해를 당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명분을 찾아야 한다. ‘걔가 맞을 짓을 했다.’ 나 역시 그때 담임에게 느꼈던 분노보다 더 지독하게 찾아드는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온갖 변명거리를 찾아 헤맸고, 부끄러운 마음에 그 친구와 나누었던 우정을 거둬들였다.
누가 피해 아동으로 분류되는가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학대 피해 아동은 대개 영‧유아나 10세 아래의 어린아이다. 피해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사회적 공분도 커진다. “그 어린애한테 손댈 데가 어디 있다고!”(청소년에게는 손댈 데가 있다는 말일까.) 지난 2월 25일 발표된 정부의 ‘아동학대 대응 체계 강화대책’의 초점 역시 미취학 아동과 영‧유아 중심으로 짜여 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기관이 매년 펴내는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를 보면, 피해 아동의 연령대는 중학생과 초등학생에 집중돼 있다. 이 연령대에 학대가 많이 일어난다기보다는 외부와의 접촉이 커져 피해가 알려질 가능성이 높고, 피해자의 증언에도 더 높은 신뢰가 부여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통념과는 달리 ‘큰 아이들’도 피해를 당한다.
그런데 이 연령대는 ‘가출’이 이루어지는 첫 시기와도 겹친다. 여러 요인이 복합되어 있겠지만, 탈가정이 학대와 무관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은 발견, 신고되기 전에 집을 ‘탈출’했다. 탈출 이후 아동학대를 신고하고 쉼터나 그룹홈 입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고등학생 연령대의 학대 신고율이 낮은 이유는 피해자의 물리적 힘이 커지면서 학대가 잦아든 까닭도 있겠지만, ‘탈출’ 상태가 장기화되어 더 이상 학대가 지속될 수 없게 된 까닭이 더 클 것이다. 이처럼 피해가 발견되기 어려운 건 영‧유아나 미취학 어린이뿐 아니라, 한 해 누적 20만 명에 달하는 탈가정 청소년도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아동학대 정책에서 이들 청소년의 모습은 좀체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은 아동학대 피해자가 아니라 ‘문제아’ 또는 ‘위기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학대 행위자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가
아동학대 행위자는 주로 비정한 ‘계모’나 천륜마저 저버린 ‘정신 나간 부모’라는 예외적 모습으로 등장한다. 실제 재혼 가정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는 전체의 10%에도 못 미치지만, 사회적 비난은 재혼 가정에 집중돼 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부모 자격에 흠결이 있을 거라 의심받는 ‘계부’나 ‘계모’에 의한 학대는 비난하면서도 “내 자식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당신이 뭔 상관이야?”라는 친부모의 ‘자식 소유권’ 주장에는 관용적인 이중 잣대 때문이다. 계부에 의한 학대보다 계모에 의한 학대가 더 많은 것도 아닌데, 계모에 의한 학대는 유독 부각된다. 모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게임중독 등에 빠져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도 않거나 아이를 무참히 학대하는 ‘정신 나간 부모’보다는 훨씬 더 많은 수의 학대 행위자가 평범한 부모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쉽게 잊힌다.
최근에는 아동학대 행위자가 경제 위기와 사회 불평등의 심화로 사회‧경제적 고립과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희생자’로 얘기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아동학대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물은 질의서에 한 진보정당은 이렇게 답했다. ‘부모의 경우엔 경제적 곤란과 사회적 배제, 낮은 교육 수준이 원인이며, 저성장 시대에 가속화될 빈곤, 실업, 불평등이 성인들의 정신세계를 피폐하게 만들어 아동학대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어린이집 교사의 경우엔 높은 노동 강도에 비해 임금 등 열악한 근무 조건이 주요 원인이다.’ 나는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 전문적 분석을 내놓는 이 진보정당이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나 일면적인 분석을 내놓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보호자의 스트레스와 아동학대 사이에는 분명 상관성이 있지만, 이를 인과관계로 해석할 수는 없다. 왜 경제적 곤란이나 직무에 따른 스트레스를 굳이 아동에게 푸는지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고된 아동학대 사건 중에는 학대 행위자가 직업이 없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2순위는 관리직‧전문직‧사무직인 경우다. 아동학대를 경제적 요인에서만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낮은 교육 수준이 아동학대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주장은 또 어떤가. 이는 학교교육과정을 통해 아동에 대한 존중을 배울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한 주장인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가정이 아닌 근무지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를 떠올려보면 학대 행위자들은 대개 고학력자다.
학대 행위자에 대한 상담이나 조사에서 사회경제적 고립이나 스트레스보다 더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특성은 아동에 대한 그릇된 양육‧훈육관이다. 문제는 아동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아동을 어떤 이익의 성취를 위한 도구, 자신의 소유물, 아랫사람, 완성되지 않은 인격체로서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라고 인식할수록, ‘잘못을 했으면 맞아야 한다’, ‘때려서라도 가르칠 건 가르쳐야 한다’라는 훈육관을 갖고 있을수록 아동학대의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널리 알려진 아동학대 사건들에서도 학대 행위자들은 학대 행위가 아이에 대한 훈육이었다고 말한다.➍단지 처벌을 피하거나 경감시키기 위한 변명이 아니라 굳건한 가치관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는 그들의 ‘과한 행동’은 비난할지언정 그들과 유사한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게다가 이 가치관의 뿌리이자 결과이기도 한 아동의 낮은 사회적 지위를 당연시한다.
➍ 대표적으로 2014년 10월 울산 입양 아동 학대 사망 사건에서 상습적인 학대를 가한 양모는 ‘아이가 전기 콘센트에 젓가락을 꽂고 장난을 친다’는 이유로, 2015년 1월 인천 송도 어린이집 교사의 아동 폭행 사건에서 어린이집 교사는 ‘급식판에 남긴 김치를 먹게 하자 아이가 뱉어냈다’는 이유로, 2016년 평택 6세 아들 살해․암매장 사건에서 부모는 ‘아이가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학대를 가했다.
학대가 잦은 장소는 어디인가
아동학대의 장소는 대개 가정이라 짐작된다. 아동학대를 규율하는 법적 체계도, 학대 피해 아동을 발견‧지원하는 대응 체계도, 세상의 관심도 가정에서의 아동학대에 집중되어 있다. 가정이 아니더라도 가정과의 유사성이 높은 기관, 이를테면 어린이집이나 보육시설에 일어나는 아동학대에 대해서는 학대로 인식하고 대응하는 비율이 높다. 2014년 보호 조치가 이루어진 아동학대 사례 중 가정이 아닌 시설에서 일어난 아동학대는 745건으로 전체의 7.4%에 해당한다. 보육교직원에 의한 학대가 295건으로 가장 많았고 아동복지시설 종사자에 의한 학대는 177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초·중·고 교직원에 의한 아동학대는 145건에 불과했다. 학교에서는 아동학대가 희소하기 때문일까.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가 2013년 실시한 ‘2013 전국 학생인권생활실태조사’(전국 초중고생 2,921명 대상)에 따르면, 성인에 의한 체벌(신체적 학대)이나 언어폭력(정서적 학대)이 가장 자주 일어나는 장소로 꼽힌 압도적 1위는 학교였다. 초등학생의 경우만 학교와 집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거의 유사하게 집계됐다. 학교 체벌이 거의 사라졌다는 인식과는 달리, 최근 1년간 체벌을 자주 또는 가끔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은 학생 넷 중 한 명꼴이었다. 이듬해 실시한 ‘2014 전국 학생인권실태조사’(전국 중고생 5,845명 대상)에서는 “최근 1년간 교사에 의한 체벌을 직접 당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는 응답률이 더 높아졌다. “손발이나 도구를 활용한 체벌”의 경우도 자주 또는 가끔 있다고 답한 학생이 무려 45.8%에 이르렀고, “앉았다 일어서기” 등 기합성 체벌의 경우는 자주 또는 가끔 있다고 답한 학생이 60%로 올라섰다. 만약 이 조사가 “학교에서 아동학대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했다면 그 응답률은 매우 낮았을 것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는 학대가 아닌 체벌로 인식되고, 대응을 하는 경우에도 아동학대로 신고하기보다 교육청에 민원을 넣는 방식의 접근을 주로 택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최근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서도 아동학대로 간주하고 신고‧접수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2014년의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개입한 초‧중‧고교에서 일어난 아동학대는 총 145건이었다. 2014년 9월, 강원 삼척의 한 중학생이 교사가 행한 오리걸음, 운동장 뛰기, 엎드려뻗치기 등 이른바 ‘간접 체벌’로 자살한 사건에 대해 경찰이 이례적으로 교사에게 아동복지법 위반 및 폭행 혐의를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➎ 같은 해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왕따를 조장하고 종용한 담임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실제 기소되기도 했다.
➎ 경찰의 기소 방향에 대해 강원도 교총은 교사의 학생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한 법 적용이라고 주장했다. “삼척 자살 중학생 체벌교사 불구속 입건…‘간접체벌도 가혹행위냐’ 놓고 논란”, 〈한겨레〉2014년 11월 12일
신고의무자의 신고율은 왜 낮을까
이제 우리는 아동학대를 둘러싼 통념들이 아동학대의 ‘발견’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아야 한다. 아무리 발견‧보호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할지라도 아동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의 신고 또는 보호 요청이 없다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뒤늦은 발견’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동학대 신고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신고가 활발한 외국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➏
➏ 한국의 아동학대 현황은 신고가 활발한 국가에 견줘 많이 낮은 수준이다. 2012년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한국 인구(5천만)의 6배가 넘는 미국은 우리보다 225배 많은 신고(293만7052건, 46개주 집계)가 접수됐다. 인구가 우리나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한국의 19배(25만2962건)가 신고됐다. 한겨레, “의사들 열 중 일곱 “아동학대 심각 수준””, 2015년 5월 3일.
먼저 신고의무자의 신고율이 낮은 이유부터 살펴보자.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에는 각종 폭력 상담소, 복지전담공무원, 아동‧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의료인과 구급대원, 어린이집‧학교‧학원의 교‧강사 등 총 24개 직군이 포함된다. 정당한 이유 없이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5백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가된다. 하지만, 2014년 신고의무자에 의한 신고는 전체의 29.0%에 불과했다. 신고의무를 지지 않는 이들이 더 많이 신고하는 경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몇 가지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신고의무자가 주로 생활하는 공간에서 아동학대가 별로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 신고의무자가 학대에 대한 민감성이 낮을 가능성, 아동의 삶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을 만큼 근무 여건이 열악할 가능성, 신고를 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 신고 이후 아동의 삶이 나아지리라는 확신이 불명확할 가능성.
교사의 경우만 살펴보자. 실제 신고의무자 가운데 가장 신고를 많이 하는 집단이 초‧중‧고 교사로 전체 신고자의 13.2%를 차지한다. 교사의 아동학대 민감성이 높은 것일까. 직군별 종사자 수를 따져볼 때, 교사의 신고 건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신고에 따른 불이익 정도도 아동복지시설이나 어린이집 종사자에 비해 교사들이 훨씬 낮은 편이다. 반면, 신고의무도 없는 사회복지 관련 종사자들의 신고는 23.2%에 이른다. 가정 내 아동학대의 경우도, 2014년 신고의무자보다 비신고의무자가 신고한 경우가 2배 가까이 높았다. 학교 내 아동학대의 경우엔 신고의무자(아마도 교사)가 신고한 경우는 단 26건인 데 반해, 비신고의무자가 신고한 경우는 145건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에는 전반적으로 침묵하거나 다른 접근을 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점들을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교사의 신고율은 오히려 낮은 편이다. 학교 문화가 폭력적 훈육에 관용적일 때 교사가 학교나 가정에서의 아동학대 징후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엄격하게 대처하기란 어려우리라는 건 예상 가능하다. 실제 학교에서 일어난 아동학대의 경우, 피해 아동이 중학생(42.8%), 초등 고학년(35.9%)에 압도적으로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생활지도’ 또는 ‘교사와 학생의 힘겨루기’ 차원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할 위험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학교 문화가 인권적으로 재편되고 교사들의 민감성이 높아진다 해도 지금 상태라면 교사가 가정 내 아동학대에 적극 개입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아이는 부모 손에 크는 게 가장 낫다’는 통념도 문제지만, 많은 교사들이 신고를 꺼려하는 이유는 아동이 시설로 보내지더라도 생활이 안정될 거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아동학대로 판정되더라도 조치의 대부분은 ‘원가정 보호’와 ‘지속 관찰’이라는 점➐을 생각해보면, 교사들의 우려는 다소 과장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피해 아동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집으로부터 분리되어 낯선 쉼터나 보호시설로 가는 것보다는 ‘원가정 보호’가 더 나을 수 있다. 다만 재학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려면, 학대 행위자(아마도 부모)를 집으로부터 일시 분리시키거나 학대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명확한 조치를 강화하는 편이 낫다. 이 지점에서 정부나 정당 대책이 쉼터 확대 쪽에 맞추어져 있는 것은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➐ <2014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학대 행위자에게 취해진 최종조치결과는 지속관찰이 7,461건(74.4%)으로 가장 많고 고소·고발·사건처리 1,508건(15.0%), 학대 행위자 만나지 못함 550건(5.5%), 아동과 분리 508건(5.1%) 순으로 나타났다.
교사의 업무 경감도 필요하다. 교사가 아동의 총체적인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아동과의 안정적 관계 속에서 지속적인 관찰과 사후 대책까지 일관성 있게 추진하려면 불필요한 ‘생활지도’ 업무의 강요, 행정 업무의 압박으로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학교 내 아동학대 신고자를 내부 고발자, 다시 말해 ‘배신자’로 낙인찍는 문화를 바꾸고 공익제보자로서 두텁게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 마련도 시급하다.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규정한 공익신고의 범위에 학교에서의 아동학대도 포함되어 있지만, 초‧중등교육법 같은 개별 법률에서 이를 명시하고 구체적인 신고자 보호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더 두터운 보호 방안이다.➑
➑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법에는 신고 대상이 되는 ‘공익침해행위’를 관련 법률의 벌칙에 해당하는 행위와 인허가의 취소․정지 등 행정처분의 대상이 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아동학대도 공익신고 대상이다. 아동학대와 관련된 법률에는 아동복지법, 영유아보육법, 유아교육법, 입양특례법, 사회복지사업법, 청소년활동진흥법 등이 있다. 2015년 초 잇따라 불거진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이후 개정된 영유아보육법은 아동학대 등 위법행위의 신고 및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 금지(42조의2), 아동학대 행위 등이 발생할 경우 시설폐쇄 가능(45조), 아동학대를 하거나 공익신고자에 대한 불이익조치를 취한 경우 어린이집원장의 자격정지(46조)나 자격취소(48조) 등을 규정하고 있는 데 반해, <초중등교육법>이나 <학원의설립․운영및과외교습에관한법률>에서는 아동학대나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규정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피해 아동은 왜 알리지 못하는가
아동학대 사건의 특성상 당사자인 아동이 적극적으로 주변에 알리고 보호를 요청하지 않으면 은폐되고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우리는 아동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요인과 아동 스스로 학대를 견디는 이유를 유심히 따져 보아야 한다. 먼저 아동이 자신의 경험을 학대로 인식하지 못하기/않기 때문일 수 있다. “네가 잘못했으니까 야단친 거야.” “네가 잘하지 그랬니?” 가해자의 학대 행위가 사회적으로는 훈육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릴 때, 주변의 분위기가 학대 행위자에게 동조적일 때, 특히 권위를 가진 학교가 또래에 의한 폭력에 대해서는 엄격하지만 ‘어른/보호자’에 의한 폭력에는 허용적일 때, 아동이 자기 경험을 학대로 인지하기란 어렵다. 특히 가정 내 학대의 경우, 아동은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 너무나 치명적이기에 학대도 사랑으로 해석하고자 안간힘을 쓰거나 자기가 부모를 힘들게 만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거나 나만 잘하면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아동학대로 인지하더라도 대응력을 높일 수 있는 일상의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대응을 포기하게 된다. 아동은 자기의 호소를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일상적으로 받으며 산다. 증언대에 선 아동은 뭔가를 오해한 것이거나 거짓말쟁이인 것으로 의심받곤 한다. 실제 아동학대를 신고하는 경우에도 아동의 진술만으로 가해자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교육기관에서는 학대 행위자가 가진 ‘공식적 권위’에 아동이 도전하여 신고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아동이 자신이 당한 피해를 신고하고 증언할 수 있으려면 일상적으로 자기의 발언과 감정을 존중받는 경험이 쌓여야 하고, 부당한 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언하고 해결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의 홍보 대상에서 주로 아동은 빠져 있으며 안전 교육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학대 예방 교육은 가정 내 학대에만 초점을 맞춰 ‘부모님이 나쁘게 대하면 신고하세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신고 이후’에 대한 불안이 신고를 가로막기도 한다. 신고를 해도 제대로 해결이 안 된 채 학대 행위자를 지속적으로 대면해야 할 수도 있고, 보복성 학대나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다. 특히 가정 내 학대의 경우, 원가정이 깨질 경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도 클 수 있다. 이처럼 피해자의 복합적 감정을 헤아리고 피해 아동과 그 가족에 대한 생활지원 대책이 함께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된다.➒ 2014년 9월 아동학대처벌특례법 시행으로 학대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아동학대가 범죄라는 캠페인이 확산되자, 아동 본인에 의한 신고가 눈에 띄게 급증했다➓는 사실은 아동 자신의 인권 의식 못지않게 아동학대를 대하는 사회의 공식적 메시지, 신변과 생활의 안전 확보가 아동학대 대응 체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준다.
➒ 현재 아동학대 예방 예산은 일반 예산 항목으로 편성되지 않고 형사처벌을 받은 이들이 내는 벌금으로 마련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 판매 수입인 ‘복권기금’에서 충당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제한적 예산으로 피해 아동과 가족에 대한 복지 지원 체계를 충분히 만들어 내기란 불가능하다.
➓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이 시행되기 이전인 2014년 1월부터 9월 28일까지 아동 본인에 의한 학대 신고는 148건(1.3%)이었으나 시행 이후 약 3개월 동안 무려 480건(12.7%)으로 증가하였다.
낱개의 반짝 대책으로는 안 된다
아동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세상의 관심은 극단적, 개별적 사안에만 반짝 집중되다 만다. 정부의 대응 역시 전수조사, 학대 의심 장소에 대한 감시 강화(어린이집의 경우 CCTV 설치), 전담경찰관 배치, 가해자 처벌 강화, 예방교육 강화 등 비슷한 형태의 대응 패턴만 반복되고 있다. 2012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학교폭력 문제에서도 정부는 거의 대동소이한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부모에 의한 학대‧사망 사건에만, ‘사후 대응’에만 초점을 맞춘 대책으로는 아동학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책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발표된 정책마저도 여론의 관심이 잦아들면 꼬리를 감추는 경우가 많다. 2015년 어린이집 학대 사건 이후 대대적 정부 정책이 발표되고 여당도 당 특별위원회까지 꾸려 수차례 당정협의를 했지만 제대로 된 정책 시행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결국엔 어린이집에 CCTV가 설치되는 것만으로 마무리되었다. 게다가 올해 아동학대 대책 관련 예산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26.5%나 줄었다. 올 초 발표된 정부와 여당의 정책 역시 비슷한 경로를 밟을 공산이 크다.
우리 옛이야기와 서구로부터 전해진 잔혹 동화들이 대개 아동학대를 소재로 하고 있을 만큼 아동학대는 뿌리 깊은 사회문제다. 얼마나 온정적인 부모를 두고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학교 성적이나 학교에서의 위치가 어땠든가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지금 또는 한때 ‘아동’이었고, 그렇게 대접받아도 되는 존재로 분류된 바 있었으며, 학대를 학대라 부르지 못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아동학대가 근절될 것이란 기대는 접어두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다만 우리는 아동학대의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피해자의 회복력을 지원하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굳건히 뒷받침할 인식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동학대를 둘러싼 사회적 통념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아동의 생활 공간 전반에서 아동을 존중하고 아동의 사회적 지위와 피해 아동의 대응력‧회복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면적인 정책 전환이 뒤따라야 한다.
기고
통념에 기댄 외면의 동맹 구조
아동학대를 말하는 새로운 방법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hregang@hanmail.net
인권교육과 청소년인권, 구술 기록 활동의 매력에 빠져 살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가장 매력적인 현재가 되고픈 마음을 가꾸며 산다.
지난 겨우내 언론과 인터넷을 도배했던, 지금은 어느새 잊힌 아동학대 사건들을 떠올려 본다. 11세 여아 탈출 사건(속칭 ‘맨발 소녀’ 사건), 7세 여아 살해‧암매장 사건, 6세 아들 살해‧암매장 사건(속칭 ‘원영이’ 사건)……. 얼굴도 모르고 손 한번 맞잡아 본 적 없는 피해 아동들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보냈을 시간들을, 그들의 삶에 어떻게든 접속했을 인연들을 짐작해 본다. 누군가는 피해 아동이 보내온 간절한 신호를 알아차릴 수 있지 않았을까.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피해 아동들의 얼굴 위로 쉼터에서, 그룹홈에서, 거리청소년 지원기관에서 교육을 통해 만나왔던 청소년들의 얼굴이 포개진다. 집에서 탈출한 그이들 역시 부모로부터 오랜 기간 학대받은 경험을 갖고 있었다. 현재 신고와 보호 조치까지 이루어지는 학대 피해 아동은 전체 아동의 1% 남짓이지만, 발견조차 되지 않은 학대 피해가 훨씬 더 많으리란 건 분명하다. 세상의 잣대에 따르자면 죽음에까지 이르지 않은 이 무수한 경험들은 소소한, 견딜 만한 것으로 치부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동학대 생존자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어떤 장면들을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부모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고, 나 역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평범한 아이였고, 학교에서는 교사들의 예쁨을 받는 모범생에 속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동학대 생존자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이들 역시 아동학대 생존자라고 생각한다. 아동학대의 법적 정의는 ‘성인이 아동에게 가하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과 가혹행위, 유기, 방임’➊이지만, 우리 사회가 주로 아동학대로 받아들이는 장면은 이보다 훨씬 협소하고 일그러져 있다. 사람들이 주로 떠올리는 피해 아동의 얼굴, 학대 행위자의 모습, 학대가 가해지는 장면, 이 모두에 아동학대의 진실을 감추는 사회적 통념이 스며들어 있다.
➊ 아동복지법 제3조는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아동학대로 정의하고 있다. 이때 보호자란 “친권자, 후견인, 아동을 보호·양육·교육하거나 그러한 의무가 있는 자 또는 업무·고용 등의 관계로 사실상 아동을 보호·감독하는 자”를 의미한다.
이 글은 아동학대를 둘러싼 그릇된 통념들과 그에 기댄 ‘외면의 동맹 구조’가 피해 아동과 무수한 목격자들의 대응력을 무력화시키는 요인이라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는 지난 3월, 각 정당에 아동학대 예방 정책에 관한 질의서를 보내 안 그래도 선거운동에 바쁜 이들을 애써 괴롭힌(?) 적 있다.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해 보게끔 만들고 싶었다. 각 정당이 보내온 답변서를 뜯어보니 여당은 물론, 이른바 진보적이라 분류되는 정당들 역시 아동학대에 관한 통념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무엇을 학대라 부를 것인가
아동학대라는 말은 그 자체로 참혹한 광경을 연상시킨다. 마구 두들겨 패는 행위, 어두운 방 안에 가두는 행위, 어린아이를 집어던지는 행위, 밥을 굶기는 행위, 추운 겨울날 베란다에 옷을 벗겨 내쫓는 행위,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의 경우처럼 아이를 세탁기에 넣어 위협하는 행위 같은 것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장면에만 아동학대라는 딱지가 주로 붙는다. 그렇다면 추운 겨울날 교실에서 외투나 담요를 걸치지 못하게 만드는 관행도 아동학대라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학생에게 오리걸음을 시키는 일이나 부모가 상대 배우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목격하도록 하는 일도 아동학대라고 주장한다면? 아침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이른 등교와 장기간 학습을 강요하는 것도 아동학대라고 주장한다면?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조차 진심으로 아동학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비유를 통한 강조 어법을 쓴다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아동의 존엄과 안녕을 위협하는 학대가 아닐까.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제시하고 있는 아동학대는 매우 광범위한 데 반해➋, 세상의 잣대는 아동학대를 매우 협소하게 정의한다. 그러다 보니 ‘강도가 약한’ 사건에 대해서는 아동학대가 아닌 훈육이나 지도로 판단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법부의 판단도 사회 통념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서울 구로구청은 아동복지시설에서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뺨을 세게 때리거나 손바닥 등을 때린 행위에 대해 아동학대로 판단, 6개월간 사업정지처분을 내린 적 있다. 이에 대해 시설장이 취소 소송을 제기하자, 서울지방법원 행정12부(이승한 부장판사)는 “여러 명이 함께 지내는 시설의 질서를 흐리는 아동들을 훈계하고 주의를 줘 올바른 행동을 지도하기 위한 목적이 주된 것이었다고 보인다”라면서 아동학대가 아니라고 판단했다.➌
➋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동학대 유형으로 제시하고 있는 행위는 아래와 같다. 행위 유형의 예시는 ‘이런 것도 아동학대일 수 있구나’라는 환기 효과를 가져오지만, 열거된 행위 중심으로만 아동학대를 판단하게 만들 위험성도 동시에 갖고 있다. 성학대의 경우는 행위 유형을 열거하는 것은 더더욱 부적절하기에 생략했다. [신체학대] *직접적으로 신체에 가해지는 행위(손, 발 등으로 때림, 꼬집고 물어뜯는 행위, 조르고 비트는 행위, 할퀴는 행위 등) * 도구를 사용하여 신체를 가해하는 행위(도구로 때림, 흉기 및 뾰족한 도구로 찌름 등) * 완력을 사용하여 신체를 위협하는 행위(강하게 흔듦, 신체 부위 묶음, 벽에 밀어붙임, 떠밀고 움켜잡음, 아동을 던짐, 몸을 거꾸로 매닮, 물에 빠뜨림 등) *신체에 유해한 물질로 신체에 가해지는 행위(화학물질 혹은 약물 등으로 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행위, 화상을 입힘 등) [정서학대] * 원망적/거부적/적대적 또는 경멸적인 언어폭력 등 *잠을 재우지 않는 것 * 벌거벗겨 내쫓는 행위 * 형제나 친구 등과 비교, 차별, 편애하는 행위 * 가족 내에서 왕따 시키는 행위 * 아동이 가정폭력을 목격하도록 하는 행위 * 아동을 시설 등에 버리겠다고 위협하거나 짐을 싸서 쫓아내는 행위 * 미성년자 출입금지 업소에 아동을 데리고 다니는 행위 * 아동의 정서 발달 및 연령상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강요하는 행위(감금, 약취 및 유인, 아동 노동 착취) * 다른 아동을 학대하도록 강요하는 행위 *[성학대] 예시 생략 [방임] * 물리적 방임 :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는 행위 / 불결한 환경이나 위험한 상태에 아동을 방치하는 행위 / 아동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행위 / 보호자가 아동들을 가정 내 두고 가출한 경우 / 보호자가 아동을 시설 근처에 두고 사라진 경우 / 보호자가 친족에게 연락하지 않고 무작정 아동을 친족 집 근처에 두고 사라진 경우 등 * 교육적 방임 : 보호자가 아동을 특별한 사유 없이 학교(의무교육)에 보내지 않거나 아동의 무단결석을 방치하는 행위 * 의료적 방임 : 아동에게 필요한 의료적 처치 및 개입을 하지 않는 행위 •유기 : 아동을 보호하지 않고 버리는 행위 / 아동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사라진 경우 / 시설 근처에 버리고 가는 행위
➌ “법원 “훈육 차원 뺨 때린 것은 ‘아동학대’ 아니다””, 〈연합뉴스〉, 2014년 10월 3일
‘아동학대다 vs. 아니다’를 판별하는 기준을 오직 행위의 ‘유형’이나 ‘강도’에만 두고 있는 한, 아동에 대한 체벌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가혹한 대우를 ‘고문’으로 바라보는 유엔의 권고가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한국 사회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핵심은 행위의 ‘의미’와 ‘효과’다. 어떤 행위가 아동에게 가해지는 의도, 그 과정에서 아동이 놓이게 되는 존재적 위치, 아동의 몸과 마음과 사회적 역량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학교에서 아동이 폭력을 목격하도록 하는 행위를 살펴보자. 나에게는 학교에서 직접 당했던 체벌의 기억보다 친구가 담임에게 여러 차례 뺨을 맞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숨죽이고 있었던 기억이 더 강렬한 상처로 남아 있다.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체벌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려는 의도(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에서 기획된 ‘전시성 체벌’이다. 체벌은 피해 아동 당사자에게만 모욕감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목격하는 학생들도 ‘나 역시 맞아도 괜찮은 존재로 분류된 집단의 일원’이라는 수치심과 ‘나도 언제든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공포심을 느낀다. 그 수치심이 너무 강렬하기에 내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피해자를 분리시키는 방어 의식이 등장한다. ‘쟤니까 맞은 거야.’ 누군가 폭력 피해를 당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명분을 찾아야 한다. ‘걔가 맞을 짓을 했다.’ 나 역시 그때 담임에게 느꼈던 분노보다 더 지독하게 찾아드는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온갖 변명거리를 찾아 헤맸고, 부끄러운 마음에 그 친구와 나누었던 우정을 거둬들였다.
누가 피해 아동으로 분류되는가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학대 피해 아동은 대개 영‧유아나 10세 아래의 어린아이다. 피해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사회적 공분도 커진다. “그 어린애한테 손댈 데가 어디 있다고!”(청소년에게는 손댈 데가 있다는 말일까.) 지난 2월 25일 발표된 정부의 ‘아동학대 대응 체계 강화대책’의 초점 역시 미취학 아동과 영‧유아 중심으로 짜여 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기관이 매년 펴내는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를 보면, 피해 아동의 연령대는 중학생과 초등학생에 집중돼 있다. 이 연령대에 학대가 많이 일어난다기보다는 외부와의 접촉이 커져 피해가 알려질 가능성이 높고, 피해자의 증언에도 더 높은 신뢰가 부여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통념과는 달리 ‘큰 아이들’도 피해를 당한다.
그런데 이 연령대는 ‘가출’이 이루어지는 첫 시기와도 겹친다. 여러 요인이 복합되어 있겠지만, 탈가정이 학대와 무관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은 발견, 신고되기 전에 집을 ‘탈출’했다. 탈출 이후 아동학대를 신고하고 쉼터나 그룹홈 입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고등학생 연령대의 학대 신고율이 낮은 이유는 피해자의 물리적 힘이 커지면서 학대가 잦아든 까닭도 있겠지만, ‘탈출’ 상태가 장기화되어 더 이상 학대가 지속될 수 없게 된 까닭이 더 클 것이다. 이처럼 피해가 발견되기 어려운 건 영‧유아나 미취학 어린이뿐 아니라, 한 해 누적 20만 명에 달하는 탈가정 청소년도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아동학대 정책에서 이들 청소년의 모습은 좀체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은 아동학대 피해자가 아니라 ‘문제아’ 또는 ‘위기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학대 행위자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가
아동학대 행위자는 주로 비정한 ‘계모’나 천륜마저 저버린 ‘정신 나간 부모’라는 예외적 모습으로 등장한다. 실제 재혼 가정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는 전체의 10%에도 못 미치지만, 사회적 비난은 재혼 가정에 집중돼 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부모 자격에 흠결이 있을 거라 의심받는 ‘계부’나 ‘계모’에 의한 학대는 비난하면서도 “내 자식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당신이 뭔 상관이야?”라는 친부모의 ‘자식 소유권’ 주장에는 관용적인 이중 잣대 때문이다. 계부에 의한 학대보다 계모에 의한 학대가 더 많은 것도 아닌데, 계모에 의한 학대는 유독 부각된다. 모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게임중독 등에 빠져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도 않거나 아이를 무참히 학대하는 ‘정신 나간 부모’보다는 훨씬 더 많은 수의 학대 행위자가 평범한 부모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쉽게 잊힌다.
최근에는 아동학대 행위자가 경제 위기와 사회 불평등의 심화로 사회‧경제적 고립과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희생자’로 얘기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아동학대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물은 질의서에 한 진보정당은 이렇게 답했다. ‘부모의 경우엔 경제적 곤란과 사회적 배제, 낮은 교육 수준이 원인이며, 저성장 시대에 가속화될 빈곤, 실업, 불평등이 성인들의 정신세계를 피폐하게 만들어 아동학대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어린이집 교사의 경우엔 높은 노동 강도에 비해 임금 등 열악한 근무 조건이 주요 원인이다.’ 나는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 전문적 분석을 내놓는 이 진보정당이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나 일면적인 분석을 내놓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보호자의 스트레스와 아동학대 사이에는 분명 상관성이 있지만, 이를 인과관계로 해석할 수는 없다. 왜 경제적 곤란이나 직무에 따른 스트레스를 굳이 아동에게 푸는지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고된 아동학대 사건 중에는 학대 행위자가 직업이 없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2순위는 관리직‧전문직‧사무직인 경우다. 아동학대를 경제적 요인에서만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낮은 교육 수준이 아동학대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주장은 또 어떤가. 이는 학교교육과정을 통해 아동에 대한 존중을 배울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한 주장인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가정이 아닌 근무지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를 떠올려보면 학대 행위자들은 대개 고학력자다.
학대 행위자에 대한 상담이나 조사에서 사회경제적 고립이나 스트레스보다 더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특성은 아동에 대한 그릇된 양육‧훈육관이다. 문제는 아동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아동을 어떤 이익의 성취를 위한 도구, 자신의 소유물, 아랫사람, 완성되지 않은 인격체로서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라고 인식할수록, ‘잘못을 했으면 맞아야 한다’, ‘때려서라도 가르칠 건 가르쳐야 한다’라는 훈육관을 갖고 있을수록 아동학대의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널리 알려진 아동학대 사건들에서도 학대 행위자들은 학대 행위가 아이에 대한 훈육이었다고 말한다.➍단지 처벌을 피하거나 경감시키기 위한 변명이 아니라 굳건한 가치관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는 그들의 ‘과한 행동’은 비난할지언정 그들과 유사한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게다가 이 가치관의 뿌리이자 결과이기도 한 아동의 낮은 사회적 지위를 당연시한다.
➍ 대표적으로 2014년 10월 울산 입양 아동 학대 사망 사건에서 상습적인 학대를 가한 양모는 ‘아이가 전기 콘센트에 젓가락을 꽂고 장난을 친다’는 이유로, 2015년 1월 인천 송도 어린이집 교사의 아동 폭행 사건에서 어린이집 교사는 ‘급식판에 남긴 김치를 먹게 하자 아이가 뱉어냈다’는 이유로, 2016년 평택 6세 아들 살해․암매장 사건에서 부모는 ‘아이가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학대를 가했다.
학대가 잦은 장소는 어디인가
아동학대의 장소는 대개 가정이라 짐작된다. 아동학대를 규율하는 법적 체계도, 학대 피해 아동을 발견‧지원하는 대응 체계도, 세상의 관심도 가정에서의 아동학대에 집중되어 있다. 가정이 아니더라도 가정과의 유사성이 높은 기관, 이를테면 어린이집이나 보육시설에 일어나는 아동학대에 대해서는 학대로 인식하고 대응하는 비율이 높다. 2014년 보호 조치가 이루어진 아동학대 사례 중 가정이 아닌 시설에서 일어난 아동학대는 745건으로 전체의 7.4%에 해당한다. 보육교직원에 의한 학대가 295건으로 가장 많았고 아동복지시설 종사자에 의한 학대는 177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초·중·고 교직원에 의한 아동학대는 145건에 불과했다. 학교에서는 아동학대가 희소하기 때문일까.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가 2013년 실시한 ‘2013 전국 학생인권생활실태조사’(전국 초중고생 2,921명 대상)에 따르면, 성인에 의한 체벌(신체적 학대)이나 언어폭력(정서적 학대)이 가장 자주 일어나는 장소로 꼽힌 압도적 1위는 학교였다. 초등학생의 경우만 학교와 집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거의 유사하게 집계됐다. 학교 체벌이 거의 사라졌다는 인식과는 달리, 최근 1년간 체벌을 자주 또는 가끔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은 학생 넷 중 한 명꼴이었다. 이듬해 실시한 ‘2014 전국 학생인권실태조사’(전국 중고생 5,845명 대상)에서는 “최근 1년간 교사에 의한 체벌을 직접 당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는 응답률이 더 높아졌다. “손발이나 도구를 활용한 체벌”의 경우도 자주 또는 가끔 있다고 답한 학생이 무려 45.8%에 이르렀고, “앉았다 일어서기” 등 기합성 체벌의 경우는 자주 또는 가끔 있다고 답한 학생이 60%로 올라섰다. 만약 이 조사가 “학교에서 아동학대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했다면 그 응답률은 매우 낮았을 것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는 학대가 아닌 체벌로 인식되고, 대응을 하는 경우에도 아동학대로 신고하기보다 교육청에 민원을 넣는 방식의 접근을 주로 택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최근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서도 아동학대로 간주하고 신고‧접수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2014년의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개입한 초‧중‧고교에서 일어난 아동학대는 총 145건이었다. 2014년 9월, 강원 삼척의 한 중학생이 교사가 행한 오리걸음, 운동장 뛰기, 엎드려뻗치기 등 이른바 ‘간접 체벌’로 자살한 사건에 대해 경찰이 이례적으로 교사에게 아동복지법 위반 및 폭행 혐의를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➎ 같은 해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왕따를 조장하고 종용한 담임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실제 기소되기도 했다.
➎ 경찰의 기소 방향에 대해 강원도 교총은 교사의 학생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한 법 적용이라고 주장했다. “삼척 자살 중학생 체벌교사 불구속 입건…‘간접체벌도 가혹행위냐’ 놓고 논란”, 〈한겨레〉2014년 11월 12일
신고의무자의 신고율은 왜 낮을까
이제 우리는 아동학대를 둘러싼 통념들이 아동학대의 ‘발견’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아야 한다. 아무리 발견‧보호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할지라도 아동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의 신고 또는 보호 요청이 없다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뒤늦은 발견’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동학대 신고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신고가 활발한 외국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➏
➏ 한국의 아동학대 현황은 신고가 활발한 국가에 견줘 많이 낮은 수준이다. 2012년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한국 인구(5천만)의 6배가 넘는 미국은 우리보다 225배 많은 신고(293만7052건, 46개주 집계)가 접수됐다. 인구가 우리나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한국의 19배(25만2962건)가 신고됐다. 한겨레, “의사들 열 중 일곱 “아동학대 심각 수준””, 2015년 5월 3일.
먼저 신고의무자의 신고율이 낮은 이유부터 살펴보자.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에는 각종 폭력 상담소, 복지전담공무원, 아동‧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의료인과 구급대원, 어린이집‧학교‧학원의 교‧강사 등 총 24개 직군이 포함된다. 정당한 이유 없이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5백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가된다. 하지만, 2014년 신고의무자에 의한 신고는 전체의 29.0%에 불과했다. 신고의무를 지지 않는 이들이 더 많이 신고하는 경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몇 가지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신고의무자가 주로 생활하는 공간에서 아동학대가 별로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 신고의무자가 학대에 대한 민감성이 낮을 가능성, 아동의 삶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을 만큼 근무 여건이 열악할 가능성, 신고를 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 신고 이후 아동의 삶이 나아지리라는 확신이 불명확할 가능성.
교사의 경우만 살펴보자. 실제 신고의무자 가운데 가장 신고를 많이 하는 집단이 초‧중‧고 교사로 전체 신고자의 13.2%를 차지한다. 교사의 아동학대 민감성이 높은 것일까. 직군별 종사자 수를 따져볼 때, 교사의 신고 건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신고에 따른 불이익 정도도 아동복지시설이나 어린이집 종사자에 비해 교사들이 훨씬 낮은 편이다. 반면, 신고의무도 없는 사회복지 관련 종사자들의 신고는 23.2%에 이른다. 가정 내 아동학대의 경우도, 2014년 신고의무자보다 비신고의무자가 신고한 경우가 2배 가까이 높았다. 학교 내 아동학대의 경우엔 신고의무자(아마도 교사)가 신고한 경우는 단 26건인 데 반해, 비신고의무자가 신고한 경우는 145건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에는 전반적으로 침묵하거나 다른 접근을 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점들을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교사의 신고율은 오히려 낮은 편이다. 학교 문화가 폭력적 훈육에 관용적일 때 교사가 학교나 가정에서의 아동학대 징후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엄격하게 대처하기란 어려우리라는 건 예상 가능하다. 실제 학교에서 일어난 아동학대의 경우, 피해 아동이 중학생(42.8%), 초등 고학년(35.9%)에 압도적으로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생활지도’ 또는 ‘교사와 학생의 힘겨루기’ 차원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할 위험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학교 문화가 인권적으로 재편되고 교사들의 민감성이 높아진다 해도 지금 상태라면 교사가 가정 내 아동학대에 적극 개입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아이는 부모 손에 크는 게 가장 낫다’는 통념도 문제지만, 많은 교사들이 신고를 꺼려하는 이유는 아동이 시설로 보내지더라도 생활이 안정될 거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아동학대로 판정되더라도 조치의 대부분은 ‘원가정 보호’와 ‘지속 관찰’이라는 점➐을 생각해보면, 교사들의 우려는 다소 과장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피해 아동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집으로부터 분리되어 낯선 쉼터나 보호시설로 가는 것보다는 ‘원가정 보호’가 더 나을 수 있다. 다만 재학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려면, 학대 행위자(아마도 부모)를 집으로부터 일시 분리시키거나 학대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명확한 조치를 강화하는 편이 낫다. 이 지점에서 정부나 정당 대책이 쉼터 확대 쪽에 맞추어져 있는 것은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➐ <2014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학대 행위자에게 취해진 최종조치결과는 지속관찰이 7,461건(74.4%)으로 가장 많고 고소·고발·사건처리 1,508건(15.0%), 학대 행위자 만나지 못함 550건(5.5%), 아동과 분리 508건(5.1%) 순으로 나타났다.
교사의 업무 경감도 필요하다. 교사가 아동의 총체적인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아동과의 안정적 관계 속에서 지속적인 관찰과 사후 대책까지 일관성 있게 추진하려면 불필요한 ‘생활지도’ 업무의 강요, 행정 업무의 압박으로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학교 내 아동학대 신고자를 내부 고발자, 다시 말해 ‘배신자’로 낙인찍는 문화를 바꾸고 공익제보자로서 두텁게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 마련도 시급하다.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규정한 공익신고의 범위에 학교에서의 아동학대도 포함되어 있지만, 초‧중등교육법 같은 개별 법률에서 이를 명시하고 구체적인 신고자 보호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더 두터운 보호 방안이다.➑
➑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법에는 신고 대상이 되는 ‘공익침해행위’를 관련 법률의 벌칙에 해당하는 행위와 인허가의 취소․정지 등 행정처분의 대상이 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아동학대도 공익신고 대상이다. 아동학대와 관련된 법률에는 아동복지법, 영유아보육법, 유아교육법, 입양특례법, 사회복지사업법, 청소년활동진흥법 등이 있다. 2015년 초 잇따라 불거진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이후 개정된 영유아보육법은 아동학대 등 위법행위의 신고 및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 금지(42조의2), 아동학대 행위 등이 발생할 경우 시설폐쇄 가능(45조), 아동학대를 하거나 공익신고자에 대한 불이익조치를 취한 경우 어린이집원장의 자격정지(46조)나 자격취소(48조) 등을 규정하고 있는 데 반해, <초중등교육법>이나 <학원의설립․운영및과외교습에관한법률>에서는 아동학대나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규정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피해 아동은 왜 알리지 못하는가
아동학대 사건의 특성상 당사자인 아동이 적극적으로 주변에 알리고 보호를 요청하지 않으면 은폐되고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우리는 아동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요인과 아동 스스로 학대를 견디는 이유를 유심히 따져 보아야 한다. 먼저 아동이 자신의 경험을 학대로 인식하지 못하기/않기 때문일 수 있다. “네가 잘못했으니까 야단친 거야.” “네가 잘하지 그랬니?” 가해자의 학대 행위가 사회적으로는 훈육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릴 때, 주변의 분위기가 학대 행위자에게 동조적일 때, 특히 권위를 가진 학교가 또래에 의한 폭력에 대해서는 엄격하지만 ‘어른/보호자’에 의한 폭력에는 허용적일 때, 아동이 자기 경험을 학대로 인지하기란 어렵다. 특히 가정 내 학대의 경우, 아동은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 너무나 치명적이기에 학대도 사랑으로 해석하고자 안간힘을 쓰거나 자기가 부모를 힘들게 만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거나 나만 잘하면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아동학대로 인지하더라도 대응력을 높일 수 있는 일상의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대응을 포기하게 된다. 아동은 자기의 호소를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일상적으로 받으며 산다. 증언대에 선 아동은 뭔가를 오해한 것이거나 거짓말쟁이인 것으로 의심받곤 한다. 실제 아동학대를 신고하는 경우에도 아동의 진술만으로 가해자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교육기관에서는 학대 행위자가 가진 ‘공식적 권위’에 아동이 도전하여 신고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아동이 자신이 당한 피해를 신고하고 증언할 수 있으려면 일상적으로 자기의 발언과 감정을 존중받는 경험이 쌓여야 하고, 부당한 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언하고 해결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의 홍보 대상에서 주로 아동은 빠져 있으며 안전 교육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학대 예방 교육은 가정 내 학대에만 초점을 맞춰 ‘부모님이 나쁘게 대하면 신고하세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신고 이후’에 대한 불안이 신고를 가로막기도 한다. 신고를 해도 제대로 해결이 안 된 채 학대 행위자를 지속적으로 대면해야 할 수도 있고, 보복성 학대나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다. 특히 가정 내 학대의 경우, 원가정이 깨질 경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도 클 수 있다. 이처럼 피해자의 복합적 감정을 헤아리고 피해 아동과 그 가족에 대한 생활지원 대책이 함께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된다.➒ 2014년 9월 아동학대처벌특례법 시행으로 학대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아동학대가 범죄라는 캠페인이 확산되자, 아동 본인에 의한 신고가 눈에 띄게 급증했다➓는 사실은 아동 자신의 인권 의식 못지않게 아동학대를 대하는 사회의 공식적 메시지, 신변과 생활의 안전 확보가 아동학대 대응 체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준다.
➒ 현재 아동학대 예방 예산은 일반 예산 항목으로 편성되지 않고 형사처벌을 받은 이들이 내는 벌금으로 마련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 판매 수입인 ‘복권기금’에서 충당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제한적 예산으로 피해 아동과 가족에 대한 복지 지원 체계를 충분히 만들어 내기란 불가능하다.
➓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이 시행되기 이전인 2014년 1월부터 9월 28일까지 아동 본인에 의한 학대 신고는 148건(1.3%)이었으나 시행 이후 약 3개월 동안 무려 480건(12.7%)으로 증가하였다.
낱개의 반짝 대책으로는 안 된다
아동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세상의 관심은 극단적, 개별적 사안에만 반짝 집중되다 만다. 정부의 대응 역시 전수조사, 학대 의심 장소에 대한 감시 강화(어린이집의 경우 CCTV 설치), 전담경찰관 배치, 가해자 처벌 강화, 예방교육 강화 등 비슷한 형태의 대응 패턴만 반복되고 있다. 2012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학교폭력 문제에서도 정부는 거의 대동소이한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부모에 의한 학대‧사망 사건에만, ‘사후 대응’에만 초점을 맞춘 대책으로는 아동학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책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발표된 정책마저도 여론의 관심이 잦아들면 꼬리를 감추는 경우가 많다. 2015년 어린이집 학대 사건 이후 대대적 정부 정책이 발표되고 여당도 당 특별위원회까지 꾸려 수차례 당정협의를 했지만 제대로 된 정책 시행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결국엔 어린이집에 CCTV가 설치되는 것만으로 마무리되었다. 게다가 올해 아동학대 대책 관련 예산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26.5%나 줄었다. 올 초 발표된 정부와 여당의 정책 역시 비슷한 경로를 밟을 공산이 크다.
우리 옛이야기와 서구로부터 전해진 잔혹 동화들이 대개 아동학대를 소재로 하고 있을 만큼 아동학대는 뿌리 깊은 사회문제다. 얼마나 온정적인 부모를 두고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학교 성적이나 학교에서의 위치가 어땠든가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지금 또는 한때 ‘아동’이었고, 그렇게 대접받아도 되는 존재로 분류된 바 있었으며, 학대를 학대라 부르지 못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아동학대가 근절될 것이란 기대는 접어두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다만 우리는 아동학대의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피해자의 회복력을 지원하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굳건히 뒷받침할 인식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동학대를 둘러싼 사회적 통념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아동의 생활 공간 전반에서 아동을 존중하고 아동의 사회적 지위와 피해 아동의 대응력‧회복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면적인 정책 전환이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