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호[기고] 유예되어 온 청소년 인권의 열망을 담아 (쥬리)

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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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예되어 온 청소년 인권의 열망을 담아
‘촛불청소년인권법’ 제정 운동을 하는 이유 

 

쥬리
rkdalswls109@naver.com
청소년인권연대 추진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 실시한 ‘2017 전국 청소년 인권 실태·의식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2명 중 1명 이상이 지난겨울의 박근혜 퇴진 운동에 참여했다. 집회에 참여했다는 사람도 28%가량이었고, 그 외에 온라인에 글을 쓰거나 시국 선언에 참여하거나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등 응답자 중 과반이 박근혜 정부 퇴진이라는 정치적 사안에 목소리를 내고 행동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17년 6월에 발표한 〈고등학생들의 정치 참여 욕구 및 실태 연구〉에 따르면, 고등학생 중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에 1번이라도 참여했다는 비율이 24.3%였다. 청소년들이 처한 사회적·경제적 여건이나, 정치 영역에서 거리를 둘 것을 요구받는 청소년들의 일상을 생각해 보면 가벼이 볼 수 없는 수치이다.


그러나 광장에서는 함께 촛불을 들고 발언하는 시민이었음에도, 청소년들의 삶의 모습은 시민답지도 인간답지도 못하다. 청소년들은 함께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촛불 혁명’을 이루었다고까지 평가받고 있지만, 청소년의 삶은 여전히 암울하다. ‘2017 전국 청소년 인권 실태·의식 조사’에 따르면, 학내 체벌 금지가 법제화되었음에도 최근 1년간 학교에서 교사에 의한 체벌에 노출된 중·고등학생이 35.7%에 달했으며, 교사에 의해 욕설 등 언어 폭력에 노출되었다는 응답도 40.6%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10명 중 1명 이상은 ‘낯선 사람’으로부터 폭행이나 폭언 등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교사나 어른에게 자기 의견을 말할 때 불이익을 받을까 봐 걱정된다”는 문장에 그렇다고 답한 것은 61.2%에 달했다. 대통령을 퇴진시킨 민주주의의 역사적 주체 중 하나가, 여전히 학교 안팎에서 매 맞고 언어 폭력을 당하면서, 어른에게 의견을 말할 때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지위인 것이다. 한국 사회가 청소년에 대한 무시와 차별, 폭력이 심한 나라인가 묻는 질문에는 33.1%가 매우 그렇다고 응답하였고, 34.9%는 조금 그렇다고 응답하여,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경험과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이 무엇인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지난 9월 26일 출범한 전국의 청소년·인권·교육·시민사회 단체들이 결성한 연대체이다. 이른바 ‘촛불 혁명’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는 청소년 인권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명박근혜’ 정부 동안 이뤄 내지 못하고 방해받아 온 오랜 숙원을 이제는 제대로 풀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우리를 모이게 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은 청소년이 시민으로서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법 세 가지를 통칭해 부르는 말로 우리가 채택한 용어이다. 실태 조사에서 드러났듯, 청소년들이 촛불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시민으로서 나란히 섰음에도 청소년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촛불’이라는 말을 넣은 것이기도 하다. 그 내용은 청소년 참정권 쟁취,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학생인권 보장 법률 제정, ‘어린이·청소년 인권법’ 제정이다. 정당 활동을 하는 청소년, 선거 운동을 하는 청소년의 존재를 불법으로 만드는 〈정당법〉과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여 청소년의 정치 활동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고, 현행 만 19세인 선거권과 피선거권 연령 제한을 대폭 완화하려 한다. 학생인권 보장 법률 제정(〈초·중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체벌과 두발 규제, 강제적 자율·보충 학습, 소지품 압수와 같은 반인권적 학교 문화를 개선하고, 학교 운영에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려 한다. 또, ‘어린이·청소년 인권법’ 제정을 통해 모든 공간에서의 어린이·청소년의 인권 내용을 구체화하고, 어린이·청소년 정책의 패러다임을 인권 보장과 존중, 참여로 전환하려 한다.


‘촛불청소년인권법’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을 뿐, 이 모든 것들은 실상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청소년도 참정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 학생이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은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모두 십수 년 이상 해 온 이야기이고 우리 운동의 의제였다. ‘낡은 의제’는 종종 낡았다는 이유로 더 천대받곤 한다. 지겹고 신선하지 않아 뉴스가 되지 못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낡은 의제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건, 그만큼 문제의 뿌리가 깊고 세상이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어쩌면 그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세상, 인생의 초기를 ‘다르게’ 경험한 인간들이 이룬 사회는 지금과는 다른 곳일 것이다.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편법을 써서 자기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➊ 삶이 아닌, 동등하게 대화할 수 있기에 타인을 배려할 권한도 가지는 삶으로 성장한 인간은, 지금 우리와 얼마나 다를까.


➊ 경제력과 결정권을 빼앗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일상은 부모나 교사 등 어른에게서 그 권리를 허락받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어른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나날들로 점철되어 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의 내용은 급진적이지 않다. 선거권 제한 기준 연령을 최대한 낮추어 일부의 청소년이라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하라는 것, 대다수의 나라에서 하고 있듯이 정당 가입 및 선거 운동의 연령 제한을 없애라는 것, 학교와 학원·시설·기관·가정 등에서 최소한의 어린이·청소년 인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서울에서 촛불 1주년 대회가 진행되던 2017년 10월 28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청소년행동단이 진행한 기자회견의 제목은 “인간으로서의 존중과 참정권을 요구하는 청소년 행동–촛불 1년, 우리에게는 아직 민주주의가 오지 않았다”였다. 우리는 국민들이 다 같이 위대한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자찬하고 있지만, 청소년은 민주주의를 이루는 과정에는 참여했지만 그 민주주의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한 청소년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청소년 참정권은 청소년에게 완전한 인권을 약속해 주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그 시작은 열 수 있게 해 준다”고. 촛불청소년인권법은 ‘다른 세상’을 위한 시작을 하자는 제안이다.



청소년 인권, 왜 법률로 보장해야 하는가


➋ 아래 내용은 ‘2017 전국 청소년인권실태·의식조사 결과발표 토론회’에 토론문으로 제출된 공현의 글 〈청소년 인권, 왜 법으로 보장해야 하는가〉를 참고하였다.



현재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 광주광역시, 서울특별시, 전라북도 4개 광역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제정된 이 네 지역의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운동이 이룬, 개별 학교를 넘어선 최초의 가시적 성과였고 이를 통해 실제로 시행 지역에서 두발의 부분 자유화, 강제 자율·보충 학습과 체벌을 줄이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시행한 지 4~7년이 경과한 학생인권조례는 또한 명백한 한계에 부딪히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첫 번째로, 중앙 정부가 학생인권 보장 의지가 약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오히려 학생인권조례 무효 소송을 걸고 시행령을 개정하여 학생인권조례가 상위법 위반이라는 논란을 유도하는 등 학생인권조례 시행을 훼방 놓아 왔다. 그래서 교장이나 교사가 학생인권조례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일이 상당수 일어났고 조례는 학교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 교육부 장관이 되면서 학생인권에 대한 중앙 정부의 입장이 바뀌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미 학생인권조례가 초기 정착하는 것을 크게 방해받고 말았다.


두 번째는 조례라는 제도 형식 자체의 한계이다. 조례의 한계는 전국적으로 적용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조례의 법적 강제성이나 위상이 약하다는 것이다. 여러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입법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지역 의회 구성상 좌초되는 등 지역별로 각자 입법을 하는 방안은 어려움이 확인되었다. 또한 현재 〈초·중등교육법〉상 학교장이 학교 운영이나 학교 규칙 제정 등의 권한을 포괄적으로 쥐고 있고 교원 인사 등에도 학생인권 문제가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의 강제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교육청의 의지에 따라 학생인권조례의 위상이 좌우되기도 한다.


세 번째는 청소년들의 주체적·집단적 힘의 한계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더라도 학교 현장에서 이를 활용하여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청소년들의 조직화 및 자력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청소년운동이 아직은 그러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으며, 교육청 역시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면서 청소년들의 자력화를 지원하는 데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학생만이 아니다. 교육청 공무원이나 교사들에게 학생인권조례를 주지시키고 인권 보장의 주체로 만드는 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현장의 주체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는 널리 알려진 몇 개 내용만 효력을 가지고 조례 안의 여타 다양한 권리들에 대해서는 학생 당사자들조차 그 존재를 잘 모르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학생인권 사안이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문제는 비슷하다. 2015년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보호자가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이 금지됨에 따라 사실상 가정과 학교 등에서의 체벌이 금지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몇몇 아동학대 사건이 논란이 되며 법률이 강화된 부분은 있지만, 무엇이 아동학대인지 판단할 기준조차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어린이·청소년 인권의 구체적 내용을 명확히 밝힌 법, 체벌 금지를 한층 분명히 적시한 법, 인권 개선을 위한 정부의 노력과 책무를 부과하는 법이 있어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2002년부터 15년째 외치고 있는 선거권 제한 연령 인하와 청소년 참정권 보장 역시, 단지 ‘선거권 제한 연령을 몇 살로 할 것이냐’ 하는 논의나, ‘18세면 병역 의무나 납세 의무를 질 수 있는 나이니까 선거권도 보장하자’ 같은 주먹구구식 논리를 넘어서, 체계적 입법을 통한 실현이 필요하다.


➌ 선거권은 납세나 병역 의무의 수행에 따라오는 대가성 권리가 아닌, 중요한 기본권 또는 인권으로 보아야 한다. 만약 이런 논리에 따른다면 학교 재학 중일 시 납세나 병역 의무 등도 면제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학교 재학 중인 청소년은 선거권에서 배제하자는 일부의 논리도 옳은 말이 될 것이고, 18세 미만의 청소년의 선거권이나 참정권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2017년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제기하는 입법 과제들은, 청소년 인권이 먼 길을 온 끝에 다시 한 번 국회의 문을 두드리는 과정이다. 이 이름에 ‘촛불’을 붙인 것은, 촛불 광장에서 실현되고 경험했던 민주주의의 기억을 반추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청소년에게 시민의 권리를 돌려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바로잡는 과정에 필수적이라는 문제의식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이는 십수 년 이상 청소년 인권을 외치고 걸어온 역사가 요구하는, 2002년 대중적 촛불 집회가 시작된 이래로 항상 광장에 청소년들이 함께 섰던 경험에서부터 싹을 틔운, 일종의 ‘적폐 청산’의 열망이다.


촛불로 만들어진 문재인 정부, 개혁의 과제를 짊어진 제20대 국회가 이를 잊거나 미뤄 두지 말기를 촉구한다. 또한 ‘우리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는 청소년들의 곁을 많은 동료 시민들이 지키며 촛불청소년인권법 입법의 과제를 함께 이뤄 내길 바란다. 어린이·청소년의 생활과 성장이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로 생각되지 않고 어린이·청소년의 양육이 사적인 부담이자 재량인 채로 있어서는, 우리 사회의 원자화와 각자도생도 해소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시민으로 권리를 보장받고 존중받지 못한다면,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소년을 위한 삶을 살고자 교육계 등의 직업을 택한 많은 ‘어른’들에게, 통제를 위한 사소한 규제들이 그 관계를 가득 채우는 현실을 변화시키고, 청소년과 진정으로 만나고자 했던 애초의 꿈을 실현할 유일한 길은 이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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