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호[에세이] 실패해도 괜찮아, 꽃은 지고 피고 또 피고 (강소연)

2022-09-07
조회수 2241

에세이



실패해도 괜찮아, 꽃은 지고 피고 또 피고

- 숙명여고 맛있는 정원 프로젝트



강소연

momo@sm.sen.hs.kr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

(입시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텃밭 활동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용기를 내는 데 꽤 시간이 필요했다. “텃밭 없는 교사의 봄”(〈월간 교육농〉, 2022년 5월호)에서 지문희 선생님은 나를 두고 ‘오랫동안 준비하고,’ 올해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고 쓰셨더라. 사실 나는 무슨 일을 할 때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해서 시작하는 일과는 거리가 먼 사람 이다. 좌우명은 ‘걸어가며 묻기’.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방향이 서면 그 이후는 좌충우돌하면서 배워 가자 주의다. 어디에선가 도움의 손길이 오겠지 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도 장착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어느 정도’까지 가는 시간이 좀 길었다. 일단 이해가 늦었다. 몇 년의 교육농 활동을 연결하고 종합하며 되새김질하고서야 교육농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어렴풋이 이해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주로 책이나 강의로 농사를 배우고 있었고, 그런 내가 학생들에게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으려나 자신이 없기도 했다.


그러므로 올해 학교에서 ‘숙명여고 맛있는 정원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농 모임 덕택이라 고백한다. 나의 머뭇거림, 더디게 이해하는 모습을 ‘오랫동안의 준비’로 봐 주시는 교육농 선생님들이 함께해 주시고 있기 때문이라고. 든든하다.



‘교육’ + ‘농’ 그리고 영속 농업을 만나다


2013년이었던가.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 농구부 숙소 앞에서 1년 동안 5평 정도의 “쑥대밭(3학년 학생들이 이름 붙였다. ‘숙명여고 대박 나는 텃밭’이라고)”을 빌려 일군 적이 있었다. 난생처음 텃밭을 가꿔 보면서 배우고 느낀 것들이 어렴풋이 내 삶에도 어떤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고, 그때 이후로 언젠가 나와 같이 도시에서 자라 온 우리 학교 학생들과도 이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이 교육농에 문을 두드리게 된 계기였다.


그런데 교육농에 다가가면 갈수록 교육농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텃밭 활동을 교육으로서 하는 일’에 대해 ‘농사 지어 보는 체험 교육’ 이상의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게 느껴지더라. 그래서 내가 이해한 ‘교육+농’을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교육 + 농 : 농을 교육한다? / 농의 다기능성에 주목하자

- 농을 통한 치유와 힐링 

- 농을 통한 연결성의 회복 (나와 자연, 도시와 농촌, 농사와 먹거리, 농부와 소비자) 

- 농을 통한 ‘생태적 가치’의 배움 

- 기후 위기 시대에 전환 교육의 일환으로서의 ‘농’ 

- 농은 삶이자 일상이다.


모임에 가면 이를 바탕으로 학교 텃밭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무엇을 심어야 하고, 어떻게 키워야 하고, 학교 텃밭을 중심으로 한 자원과 에너지의 순환은 어때야 하는지, 텃밭을 둘러싼 관계 맺음은 어때야 하는지 등을 학교 속 실천 사례들을 중심으로 이야기 나누었다. 이런 이야기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영속 농업(퍼머컬처, permaculture)’, ‘지속 가능 농업’이라는 세상과 만나게 되었다.



영속 농업 원리를 이용해 상자 텃밭 운영을 계획하다


도서관 옆 목련나무 아래, 중학교에서 운영하던 상자 텃밭들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에 고등학교 학생용 상자 텃밭을 몇 개 더 놓아도 될까? 그런 마음으로 상자 텃밭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중학교가 데크 공사를 하면서 기존 상자 텃밭들을 안 쓰게 되었단다. 그러니 1년은 중학교 상자 텃밭을 인수해서 운영해 보고, 계속할 거 같으면 추가로 구매하면 어떻겠냐는 교장 선생님의 제안이 있었다. 좋았다. 텃밭 상자 높이가 좀 아쉽긴 했지만 굳이 멀쩡한 텃밭 상자가 있는데 새로 살 필요가 있을까 싶었고, 부담스럽지 않았다. 새로 다 사들였다면 뭔가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 컸을 것 아닌가? 그렇게 시작했던 이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 및 준비 단계에서 들었던 생각들을 잠시 이야기해 본다.


먼저, 상자 텃밭 운영에 퍼머컬처 원리를 적용해 보고 싶었다.

상자 텃밭으로 구성된 공간에서 퍼머컬처 원리를 구현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퍼머컬처에 대한 이해도, 상자 텃밭의 한해살이에 대한 지식과 경험도 미진한 상황에서 둘의 조합은 더 걱정되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퍼머컬처의 요소들부터 먼저 고민해 보기로 했다. 이런 시도가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실천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더라도, 상자 텃밭 세상 속에서 그 원리들을 이해하려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어 보였다. 현재 시점에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리해 보면, 흙 기르기 + 동반 작물 심기 + 음식물 퇴비장 만들기 + 텃밭 환경을 활용한 텃밭 디자인은 구현 가능한 요소였다.


신청한 학생들과 운영하는 학교 특색 사업으로 기획했지만, 가급적 교과 수업과 연결하고자 했다. 다양한 교과 수업을 통해 배우는 지식을 생태 주제로 융합해 보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현재의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향성이 도출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 문제로서의 ‘생태 문제’는 사회 교과, 텃밭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동반 작물 원리, 탄소 순환 등)은 생물 교과, 관찰과 세밀화는 미술, 도구 만들기는 메이커 스페이스, 관련 지식 번역은 외국어 교과와 연결 가능해 보였고, 실제 생태 융합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선사고의 사례도 살펴보았다. 생태 융합 교육과정에 대해 상상하고 실현 가능성을 살피기 위해 교원학습공동체 생태 교육과정 연구 모임을 꾸렸다. 교원학습공동체는 생물, 도서관, 윤리, 일반사회, 지리, 기술·가정 교사들과 함께하게 되었고, 그중 생물 선생님이 이 프로젝트에 동행해 주었다.


이에 더해 활동을 입체적으로 계획해 보고 싶었다. 상자 텃밭을 가꾸는 것은 기본으로 해서 관련 자료를 번역하고, 퇴비장도 만들어 보고, 텃밭을 디자인해 보고, 관찰하고 그림도 그리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들을 이 프로젝트 안에서 풀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기 위한 예산도 함께 확보하고자 했다.


준비하면서 몇 명이 신청할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았다. 학생들이 ‘웬 텃밭?’ 하며 외면할 수도 있어서, “참여 인원 40명!” 했지만, 속으로는 20명도 안 오면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긴장하며 준비했다 (그것도 오붓하니 좋지만!). 결과적으로는 70여 명의 학생이 신청했는데, 물리적인 한계로 60여 명이 함께하기로 했고 다들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프로젝트에 대한 관심도 있었겠지만, 학생들이 얼마나 대면 활동과 학교생활에 목말랐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조금 더 많은 이가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매력적이고 ‘있어 보어야’ 한다는 고민?! 상자 텃밭이 고달프고 귀찮고 뙤약볕에 땀나는 일(도 맞지만!)만으로 여겨지기보다는, 즐겁고, 유익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공간이 돼야 지속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이 혹하도록 ‘있어 보여야 한다’.


후에 배이슬 선생님은 이 고민에 “일단 꽃을 많이 가득 심자!”라고 응답하셨고 취향 저격이었다. 몰려드는 나비, 벌들만큼이나 아이들로 북적거리는 텃밭이 되었으니! 게다가 원래 꽃만 꽃인가, 덕분에 각종 채소에 꽃이 피는 걸 아이들은 난생처음 보고 있다(상추에 꽃 피는 걸 처음 알았던 몇 년 전의 나처럼). 프로젝트 이름도 ‘맛있는 정원(edible garden을 풀어)’이라고 붙였다. 무엇보다 여러 가지 고민으로 머리가 아팠던 몇 해 전, “홍성이 선생님들에게 쉼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홍성 교육농 샘들이 환대하셨듯이 나도 이 공간에서 대학 입시 공부로 힘들어하고 지친 우리 학교 학생들을 환대할 수 있기를, 텃밭이 그런 장소성이 있는 곳이 되기를 소망했다.



청년 농부로부터 배우다



▲배이슬 농부님을 초대하여 온라인 강의를 했다.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한 이든농장 배이슬 선생님을 초대한 두 차례의 온라인 강의는 신의 한 수였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1차는 기후 위기와 퍼머컬처, 탄소 순환, 생물 다양성, 씨앗 받는 농사, 동반 작물에 대해, 2차는 퍼머컬처 원리로 운영하는 상자 텃밭의 실제 (농사의 기본기)에 대해 배웠다. 1, 2차 사이에는 배이슬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미생물이 배양된 균 배양체를 흙에 접종하여 흙 기르기를 하는 과정이 있었고 1차 강의를 바탕으로 모둠별로 동반 작물 원리를 활용해서 모둠 상자 텃밭을 디자인해 보았다. 2차 강의에서는 학생들이 디자인한 상자 텃밭들에 대한 구체적인 코멘트도 들었다. 이 두 번의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참 좋았다. 무엇보다 배운 점들을 적어 가는 사이사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는데, 코로나19 암흑기 이후 아이들의 “기대된다”, “설렌다”와 같은 반응을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아이들의 소감문을 읽는 내내 심장이 두근두근하기도 하고, 그간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었나 싶어 마음이 찡하기도 했다.


게다가 아이들이 청년 여성 농부를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 가끔 생각 없이 내뱉는 “공부하기 싫어. 나 농사나 지을까?”라는 말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건 아이들과 구두로 나눈 소감인데, 아이들은 청년 여성 농부가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고, 열정적이고, 똑똑한지(!) 보았다. 물론 사회 문제로 우리가 먹거리를, 먹거리를 키우는 사람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논의는 별도로 해야 한다).


학생들 소감을 몇 개 소개한다.


평소에는 그저 부모님께서 열심히 버신 돈으로 밥을 사 먹는다, 정도로만 밥의 가치를 느꼈는데, 이렇게 작물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살펴보고 기르는 과정을 배워 봄으로써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몇 천 가지가 넘는 씨앗의 종이 있다는 것에 놀랐는데, 이 많은 종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도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다양한 작물의 모습을 접하고, 한 작물에도 정말 다양한 모양과 특징의 씨앗과 작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를 통해 꼭 우리 입맛에 맞는 작물만이 아니라, 모든 작물을 동등하게 소중하게 여기며 작물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앞으로 직접 작물을 기르며 그 과정을 몸소 느끼고, 씨앗과 작물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에 이번 프로젝트가 매우 기대된다.


생각보다 식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정말 없어서 놀라웠습니다. 지금 지구의 상태가 어떠한지 직접적으로 보고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오늘 여러 가지 식물의 꽃을 보고 그것들이 커 가고 다시 씨앗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았는데 그것이 매우 아름답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또 강의 중간중간 말씀해 주시는 식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듣는 것 또한 재미있었습니다. 단순하게 식물의 모양을 보고 할머니들이 지어 놓으신 식물의 이름에 정감이 많이 갔던 것 같습니다! 정원을 디자인했을 때 동반 작물끼리 꽉꽉 채워져 서로 꽃을 키우며 아름답게 자라는 것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퍼머컬처 강의를 듣고 난 후 앞으로 제가 하게 될, 작물을 이쁘게 키워 내는 과정이 매우 기대가 됩니다. 9월, 10월까지 제가 키운 작물이 아름답게 열매를 맺는다면 아주 기쁠 것 같습니다!!!


막연하게 세웠던 계획과는 너무도 다른 내용을 많이 알게 되어 유익하고도 놀라운 시간이었다. 토마토는 생각보다 많이 못 심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청량한 이미지로만 생각했던 민트가 의외로 생명력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쑥보다도 더 강력하다는 점이 조금 신기했다. 작물마다의 특성과 유의 사항, 수확 방법 등을 알게 되었고 감자를 재배하는 방법이 특히나 재미있었다. 싹이 올라올 때마다 흙을 덮어 주어 가며 키우는 방식을 선생님께서 재미있게 설명해 주신 덕에 정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수업에 열중했다. 의외였던 점은 감자 등의 식물을 신문지로 싸서 키우고 흙에 심으면 신문지를 뚫고 자라기도 하고, 그 신문지는 자연적으로 완전히 분해된다는 점이었다. 움직임이 없는 식물이 신문지를 뚫는 힘을 쓴다는 점이 신기했고, 신문지가 자연 분해된다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자연보다는 번화한 도시를 훨씬 좋아해 왔던 터라 맛있는 정원 프로젝트에 지원한 이유 중 하나는 자연과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데, 재미있는 강연을 통해 몰랐던 자연의 신비를 하나씩 알아가는 것 같아서 보람차고 뿌듯하다. (……) 우리 조 텃밭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더라도 강의 내용 중 이론적인 부분들이 학교에서 생명 시간에 배운 것들과 많이 연결되어 신기했다. 생명뿐 아니라 국어나 영어 공부를 하며 접해 본 지문들의 내용과 관련 있는 부분이 많아서 더 흥미로웠다.




흙 배달, 씨앗과 모종 구하기 하며… 탄소 발자국 생각


▲학생들이 디자인한 상자 텃밭들



퍼머컬처 원리를 구현해 보자 했으니, 가급적 학교 울타리 안의 에너지를 활용하고 잘 가두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상자 텃밭이 놓인 주변의 환경을 파악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가서 봤던 것 같다. 해는 어느 정도 드는지, 물은 어디서 공급해야 하는지, 텃밭 북쪽 편의 온실을 활용할 방법이 있을지, 텃밭 서쪽의 도서관 갈색 벽돌을 활용할 방법은 있을지, 목련나무 아래 민트와 원추리가 잔뜩 살고 있는 작은 텃밭은 어떻게 활용할지, 온실 안에 쌓여 있는 볏짚을 사용해도 될지 등. 결과적으로는 온실도 볏짚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운영 첫해다 보니, 흙도 사 와야 했고, 씨앗이 없으니 모종들도 다 사 올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탄소 발자국을 남겼다. 학생들과 소통하고 싶은 가치 중 ‘다양성’이 있어서 학생들이 원하는 다양한 씨앗, 모종을 구해 주고 싶었는데, 한 곳에서 모두 구할 수가 없었다. 인터넷, 화훼 단지, 심지어 진안에 가서 구해 오기도 했다. 당분간 씨앗 농사를 제대로 짓고, 여러 해 운영을 해서 노하우가 쌓일 때까지는 취지와는 다르게 많은 것을 외부에서 들여와야 할 것 같다. 예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양토를 배달받지 않고, 흙 기르기를 통해 운영하는 ‘상자 텃밭’이 가능할지가 중요한 과제다. 이건 교육농 선생님들과도 고민을 계속 나누고 싶다.



마령초 선배 농부님들 고마워요



▲ 진안 마령초 학생들이 보내 준 씨앗 안내



자랑 하나. 씨앗, 모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배이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마령초등학교 학생들이 기르고 채종한 귀한 씨앗들을 선물받았다. 자신들이 키운 씨앗을 포장하고, 종이에 이 씨앗을 심고 키우는 법을 그림과 글로 표현하여 후배 농부들인 숙명여고 학생들에게 건네주었다. 예상치 못한 연결의 감동이 컸다. 전북 진안의 초등학교

학생들과 서울 강남의 고등학교 학생들의 연결이라니! 씨앗은 생명이니 팔지 않고 나눠 준다는 가치 추구가 참 좋았다. 동시에 우리가 잘농사지어 다시 나눔해야 할 텐데 하는 부담도 생겼다. 그런데 이슬 샘이 말씀을 보태신다. “실패하면 어때요~. 우리한테 씨앗 많아요.”

이 자리를 빌려, 마령초 학생들과 배이슬 선생님, 고마워요. 우리가 답장이라도 꼭 쓸 수 있음 좋을 텐데요. 진안에 있는 학생들에게 우리도 비슷한 고민을 하며 여기에 있다고 존재감을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얘네, 정말 텃밭에 진심이야”


4, 5월 씨앗과 모종이 들어오는 날, 학생들은 계획한 대로 자기 상자 텃밭에 채소, 꽃, 허브를 심었다. 심고 나서는 자주 올까 싶었는데, 자기가 심은 작물이 얼마나 컸는지 보고 싶어서 점심시간만 되면 ‘맛있는 정원’이 학생들로 북적북적해졌다. 정원지기들만 오는 것이 아니라, 반 친구, 동아리 친구들을 여럿씩 데리고 와서는 상자 텃밭 안 작물들의 이름을 알려 주고, 별명을 붙이기도 하더라. 이렇게 학생들이 햇빛 받으면서, 웃고 떠들면서 재잘재잘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본 게 얼마 만인지……. “왜 저 상자 텃밭 허브는 자라는데, 저희 것은 안 자라요?”, “선생님, 허브를 어디서부터 순지르기 해 주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가운데 텃밭에 저도 물 줘도 되나요?” 등 질문도 많이 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저도 옮겨 보고 싶어요.” “삽질해 보고 싶어요.” “신청 안 했는데, 저도 여기다가 씨앗 하나 넣어도 되나요?”


텃밭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학생들은 감탄하고, 신기해했다. ‘배움이라는 것이 저렇게 감탄하고 마음을 두근두근하게 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시로 힘들어하는 교실 상황이 떠올라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했다. 특히 참가 학생 60명 중 1/3에 해당하는 3학년 학생들이 점심 먹고 루틴처럼 들르는 현상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생기부에 한 줄 더 쓰려는 이유로만 신청한 것 아닐까 여겼던 점도 남몰래 반성했다. 학생들은 맛있는 정원에 와서는, 여기 오면 힐링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공부하느라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가기도 했다. 토마토를 지주에 묶는 법을 열심히 설명하다가도 텃밭은 공부의 힘듦을 나누는 상담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농담으로 마음을 가볍게 만들고 돌아가는 그런 매력적인 공간이 되어 주었다. 교무실에서 보조 의자 놓고, 작은 목소리로 하는 상담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도 점심시간에 텃밭에 가서 학생들을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1일 1텃밭.’ 텃밭용 앞치마를 두르고, 일을 하고 있기도 했지만, 일하는 척, 학생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을 때도 많았다. 어제는 텃밭에서 학생들이 저 멀리서 오면서 나를 발견하고는 “선생님이 없을 리가 없지” 한다. 교무실에 학생들이 나를 찾으러 왔는데, “아마 강소연 선생님 텃밭 나가셨을 거야”라고 대답해 주고는 그 말이 재미있게 느껴졌다는 동료 교사의 말씀도 좋았다. 텃밭에 친구 따라 놀러 온 한 학생이 말했다. “아니 얘네, 정말 텃밭에 진심이야.”



모종 심기 이후 학생들의 소감


물 주러 갈 때마다 성장하는 작물들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계속 물 주고 직접 씨앗을 심고 챙기다 보니 정도 더욱더 많이 들고 뿌듯한 마음이 컸다. 텃밭에 갈 때마다 기록을 위해 사진을 항상 찍어 두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커서 놀라웠다. 텃밭을 둘러보는데 다른 친구들 텃밭을 보니 꽃이 너무 화사해서 우리 모둠도 꽃 한 종류는 심어 둘 걸 조금 후회했다. 텃밭을 보다 보면 알록달록한 장면이 힐링이 됐다. 그리고 내가 평소 알던 이 작물이 이렇게 크는구나 또는 처음 보는 작물은 다 자란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였다. 또한 놀라운 점은 텃밭에 자주 가다 보니 평소에는 벌레를 보고 깜짝 놀라며 질색을 했을 내가 텃밭에 사는 벌레들을 봐도 태연하며 어느새 ‘빨간색 벌레라니 신기하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익숙해져 갔다. 정성 들여 키운 텃밭인 만큼 무럭무럭 잘 자라 주었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무성하게 커 가는 작물들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텃밭 정원 프로젝트를 하면서 여러 식물의 이름과 동반 작물이 무엇이고 어떤 환경에서 식물이 잘 자라는지를 알게 되었다. 또한 점심시간에 텃밭에 가서 나의 상자 텃밭에 물을 주고 작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위안과 힐링이 되었던 것 같다.


처음에 상자 텃밭을 계획할 때만 해도 조금 막연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실제로 텃밭을 가꿔 나가 보니 정말 제가 저만의 정원을 만들어 나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떤 작물을 심을지부터 어떻게 심을지 등을 하나하나 제손으로 결정해 나가는 과정이 이전에 없던 새롭고 뿌듯한 경험이었습니다. 전에 꽃이 아직 나지 않았던 라벤더가 꽃봉오리가 핀 것을 처음 봤을 때의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니까 정원을 관리하는 일이 더 즐겁게 느껴졌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정원을 가꾸면서 라벤더뿐만 아니라 다른 작물들도 잘 자라 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고, 더 정성을 다해 가꾸어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점심을 먹고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하는 장소가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에 기특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잎이 하나 시들었을 땐 속상하고 내가 뭘 잘못했을지 생각해 본다. 처음에는 이런 감정을 내가 텃밭을 가꾸면서 느낄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애정이 가서 신기했다. 내 텃밭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다른 텃밭이 건조할 땐 물을 주기도 하고, 꽃이 핀 텃밭을 구경하다 보니 내가 모르던 것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맛있는 정원이 없으면 허전할 것 같다.

싹이 잘 나지 않을까 우려해 한 구멍에 씨앗을 2, 3개 우수수 몰아 심었던 파스닙, 몇 주가 지나도 싹이 틀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길었던 중간고사가 끝나고 다른 작물들을 심을 시기가 될 무렵 잡초들 사이에서 삐죽 머리를 내민 새싹을 보고 굉장히 신기하고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생명의 성장을 가시적으로 목격하는 경험은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게 하는 동시에 내가 보낸 시간들을 돌아보게끔 한다. 무성한 다른 텃밭들의 다양한 작물 사이에서 자신의 템포로 잎을 뻗어 나가는 작물들을 틈틈이 관찰하면 나 역시 새로 시작하겠다는 동기 부여를 받게 된다. 어쩌면 나 역시 동반 작물 키우기의 동반 작물로서 그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계절이 바뀌고 내가 뭔가 끝맺음을 이뤘을 때 내 텃밭을 나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가끔 상상해 본다. 아직은 모르겠다.

식물을 심어서 얼추 텃밭의 모양이 되어 가는 걸 보면서 매일매일 뿌듯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심고, 물 주고, 나름(?) 관리를 하다 보니 정이 붙었는지 점심을 먹고 나면 오늘은 얼마나 자랐나 보러 오는 것이 루틴이 되었어요. 그리고 반 친구들한테 지나가는 말로 오늘은 뭐뭐 심었다~ 이런 식으로 자랑했는데 친구들도 보고 싶다면서 와서는 심는 거 도와주고 맨날 식물들의 안부를 물어봐 주고… 내일도 밥 먹고 와서 구경하기로 했어요. 애들이 이름도 지어 주고 그래서 저희 텃밭이 우리 반 대표 텃밭이 되었다는 아주 기쁜 소식입니다! 처음에 텃밭의 크기를 생각하지 않고 식물 개수를 너무 다양하게 계획해서 완전히 계획대로는 하지 못했다는 점이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나름 동반 작물 관계가 있는 것들을 심게 된 것 같아서 만족스럽습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매일매일 기대할 것이 있다는 점이 텃밭의 묘미인 것 같아요!



기록 농사 + 책으로 짓는 농사


기록 농사를 짓기 위해 홍동의 ‘꿈이 자라는 뜰’에서 텃밭 달력 농사 일지를 30권 주문했다. 2인 1모둠당 1권씩. 농사 일지는 지역이 달라 시기는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겠지만, 시기별로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생각해 보면 좋을 것들이 적혀 있어서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다. 지역이 달라 차이가 나는 것은 우리 텃밭을 관찰하는 것으로 해결해 보자고 학생들에게 당부해 두었다.


또 하나, 맛있는 정원의 한 해를 잘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온라인 협업 툴을 하나 선정하였고 모둠별로 각자의 페이지를 할당했다. 다른 모둠 페이지는 편집할 수는 없지만 서로 구경은 할 수 있다. 텃밭에 올 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자기 페이지에 사진과 함께 텃밭의 변화를 기록해 나가고 있다. 확실히 세대가 달라 그런지 학생들은 온라인 협업 툴을 잘 활용하였다.


우리 텃밭 상자가 관행농과 달리 작물들의 식재 간격이 촘촘하고 꽃, 허브, 채소를 동반 작물 원리에 따라 섞어서 심어 두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왜 이렇게 심은 거냐고 질문을 하시기도 한다. 우리 텃밭의 취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각 텃밭 상자에 모둠별로 자기 페이지 큐알 코드를 만들어서 코팅한 후(코팅을 하지 않을 방법이 없어 고민되었다) 꽂아 두었다. 그래서 텃밭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이 상자 텃밭에 심긴 작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텃밭 친구들이 어떤 생각으로 텃밭을 이렇게 기획한 것인지를 알고 싶다면, 큐알 코드를 찍어 들어가 보면 된다.


우리 텃밭이 도서관 옆에 있는 것을 활용하여, 도서관에는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구입해서 생태를 주제로 전시해 놓았다. 학생들에게도 모둠별로 퍼머컬처 관련 도서 등을 2권씩 배부하고, 틈틈이 찾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다 본 책은 소장해도 좋지만, 내년에 후배들에게 물려주면 좋겠다고 해 두었다. 그런데, 아직은 내용을 조금 어려워하는 눈치라, 어떤 도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후 조금 더 세심하게 고민해야겠다. (이때 전시했던 책은 《가이아의 정원》, 《나의 위대한 생태텃밭》, 《텃밭정원 가이드북》, 《식물의 책》, 《키친 허브》, 《호미 한자루 농법》,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곡식 채소 도감》, 《씨앗 받는 농사 매뉴얼》 등이다.)



목련나무 아래에 머물다 보면 일어나는 일


▲목련나무 밑 숙명여고의 맛있는 정원. 30개의 텃밭 상자를 2, 3학년 학생들이 2인 1모둠으로 가꾸고 있다. 맛있는 정원은 아이들에게 배움의 공간이자, 학업으로 지친 학생들에게 힐링의 공간이기도 하다.



숙명여고 맛있는 정원에는 정말 나 혼자 알기에는 아깝고 재밌는, 그리고 때로는 가슴 뭉클한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었다. 웹툰으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웹툰을 그릴 능력은 없으니, 지면에 몇가지 소개한다(여기서 학생들 이름은 다 땡땡이이다. 땡땡이는 다 다른 사람이다).


아니 그건 뿌리잖아

마령초 학생들에게 받은 레인보우 옥수수 씨앗을 옥수수를 계획한 모둠에 나눠 주고, 집에서 모종을 키워 오게 했다. 옥수수는 얼핏 보면 뿌리랑 싹이 헷갈리기도 한다. 아무리 그래도 자세히 관찰하면 어쨌거나 뿌리에는 솜털이 송송송 달려 있다. 모종까지는 예쁘게 잘 키워서 온 땡땡이. 이제 모종을 상자 텃밭에 옮겨 심었다고 해서 보러 갔더니, 옥수수가 안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하얀 뿌리가 하늘로 솟아 있다. 싹은 땅에 싹 묻어 주고 솜털 달린 뿌리는 하늘로…….

아이고야!


너네 텃밭에 잡초 나라아~~~

학생들이 개구지다. 살짝 시기심들도 있다. “선생님, 우리 텃밭 토마토는 잘 안 크는데 옆 텃밭은 너무 잘 커요” 하고 속상해하기도 한다. 질투의 살짝 개구진 버전. 어느 날 텃밭에 가 보니 한 땡땡이가 민들레 홀씨를 들고 후~~ 불고 있다. 그런데 방향이 텃밭 상자다. 옆 친구에게 깔깔거리면서 “너네 텃밭에 잡초 많이 나라아~~~” 하!


토마토 어디 갔니?

“토마토는 일곱 번째 줄기부터 꽃이 달리니, 그 전까지는 다 땅에다가 눕혀서 심어 주세요. 눕혀서 심어 주면 그 줄기에서 다시 뿌리가 나와서 영양분을 잘 빨아들이고 튼실한 열매가 달릴 거예요. 눕혀 있다고 누워서 자라는 게 아니라 땅 위의 부분은 해를 바라보면서 다시 위로 자라니 걱정 말고요.” 배이슬 선생님이 토마토 심는 꿀 팁을 알려 주셨다. 나도 배운 대로 학생들에게 열심히 설명해 주었는데, 다 심었다고 하길래 조금 있다 가 보니 토마토가 없다. 토마토 어딨어? 그랬더니 학생들 왈. “묻어 줬는데요?” 응??? 토마토를 가로로 묻어 버렸다. 헉! 빨리 구해 주자, 얘들아…….


선생님, 동반 작물 심기 했는데, 왜 이렇게 모기가 많나요?

6월이 되니, 날이 더워지고 텃밭 근처에 모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텃밭 근처엔 수풀이 많아서 모기도 그냥 모기가 아니라 다리에 줄무늬가 있는 검은 산모기다. 아이들도 많이 물려서 피부가 여기저기 빨갛다. 한 학생 왈. 나를 원망하면서, “선생님 동반 작물 심으면 해충이 안 온다면서 왜 모기가 저를 이렇게 많이 무나요?” 응? 아, 그건 동반 작물에 오는 해충을 방제해 준다는 거지…… 땡땡이한테 오는 해충을 방제해 주는 것은 아니라서요?


(울상을 하고) 선생님 꽃이 져요. 어떻게 해야 하죠?

어느 날 땡땡이가 울상이다. “선생님 메리골드가 자꾸 져요. 뭐가 문젤까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아, 땡땡아, 꽃은 원래 피고 지는 거예요. 여기 꽃망울이 또 있잖아요. 이게 또 필 거고, 이건 지는 거고. 


배이슬 선생님이, 처음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실패해도 괜찮아. 또 심으면 돼’ 하셨을 때가 떠올랐다. 지금의 무한 경쟁 입시 제도 속에서 자란 학생들은 삐끗하는 실수를 스스로 잘 용납하지 못한다. 옆에 있는 친구랑 조금이라도 다르게 한 것 같으면 그럼 자기는 ‘틀렸냐’고 묻고, 내 작물이 잘 안 자라면 실패한 것 같은 마음이 드나 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렇다. 고교 시절 학생들의 실수, 방황을 너그럽게 애정을 가지고 기다려 주는 분위기 속에 있지 않았다 보니, 학생들과의 활동에서도 그 과정에서 실패하는 경험을 하면 얼마나 낙심할까 싶어 신경 쓰게 된다. 그래서 배이슬 선생님이 레인보우 옥수수 결실을 어떻게든 내 보고 싶은 내 마음을 눈치채고는, “샘, 실패해도 돼요. 저한테 씨앗 많이 있어요” 해 주셨던 것이 참 고마웠다. 실패해도 되고, 방황해도 되고, 항상 ‘배우고 느낀 점’이 무엇인지 추궁하지 않으면서 그냥 있는 그대로 학생들을 기다려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이 피기도 하고 피고 나면 지기도 한다는 것을, 항상 예쁘게 피어 있는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들고 지면서 열매 맺기를 하고, 때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때도 있다는 것을 맛있는 정원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앞으로 맛있는 정원에서는


학생들에게 프로젝트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프로젝트는 퍼머컬처에 관한 2회의 강의 후 텃밭 상자를 10월까지 잘 가꿀 학생들이 신청하면 되며, 그 외 활동들은 다 선택이고, 여러분들이 부담 갖지 말고 자발적으로 해 주었으면 한다고. 그래서 내심 궁금했다. 텃밭에 매일 들러 돌보는 일도 때론 부담스러울 텐데, 얼마나 많은 학생이 그 외 활동에 참여해 줄까. 그런데 또 나의 예상을 깨고, 5월에 텃밭 상자와 별도로 활동별 모둠을 새로 조직했더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시 그 활동을 신청했다. 6월 이후 우리는 이런 활동을 계획했다.


허브데이, 꽃비빔밥데이, 세밀화 그리기,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Sack Garden, 동반 작물 연구, 빗물 저금통, 해외 사례 번역, 텃밭 작물로 요리하기, 스마트 팜(학생 제안), 우주에서 작물 키우기 연구(학생 제안).


이 중 2학년 학생들과 함께 1차 허브데이를 진행했다. 딜로 딜버터를 만들고, 각종 허브, 꽃을 따서 생꽃차를 만들어 점심시간에 티타임을 가졌다. 학생들 만족도가 높아서, 기말고사 끝나고 2차로 진행할 때는 우리끼리만 하지 말고, 산책길을 지나가는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나눠 주거나 팔아 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세밀화 그리기 모둠에서는 2학년 특색 수업인 메이커스 룸에서 배우고 있는 우드 버닝 펜을 활용해서 자투리 나무로 텃밭 팻말을 만들고, 그 안에 그림과 내용을 그리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다른 활동들은 각 모둠 친구들과 의논을 해서 방학을 이용해서 진행할 예정인데, 이 중 살짝 고민은 스마트 팜이다. 스마트 팜에 관한 주제는 학생의 제안으로 넣게 된 것인데, 내가 볼 때는 스마트 팜의 철학과 퍼머컬처의 철학은 충돌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일단 우리가 공부한 퍼머컬처에 대해서도, 스마트 팜에 대해서도 조금 더 깊이 공부하고, 그 관계를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 나누었다. 그 주제를 정리하는 것으로도 각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요즘 스마트 팜이 미래 농업, 미래 교육 이라는 이름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나도 이번 기회에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학생들로부터 나도 배움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


앞으로 계획해 놓은 일도 많고 갈 길이 멀다. 어디까지 가게 될까. 9, 10월 가을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맛있는 정원과 함께한 올 한 해를 어떻게 돌아보게 될까. 누구든 도와주겠지 하는 나의 낙관이 아직까지는 힘을 발휘하고 있어 다행스럽다. 교육농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많은 분들이 응원하고 격려해 주셨으니까. 학생들은 프로젝트 마무리 소감문을 어떻게 쓸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참여 중인 학생 하나가 “선생님은 선생님에게 잘 맞는 일을 찾아서 도전하시네요”라고 나를 칭찬해 주었다. 왠지 10년 후에 학교에 놀러와도 선생님을 목련나무 아래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나. 그 말이 정말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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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