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교육이 직면해야 할 과제
기후 위기와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
한윤정
yunjeong_han@daum.net
한신대 생태문명원 공동 대표
미래는 아이들에게 있다
기후 위기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쪼개진 얼음 위에 서 있는 북극곰이라기보다 청소년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성난 얼굴이다. 2018년 열다섯 살 때 스웨덴 의회 앞에서 매주 금요일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을 시작한 그는 2019년 9월 뉴욕에서 열린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당신들은 거짓말로 나의 꿈도 어린 시절도 짓밟았다”라고 따졌다. “모든 생명이 멸종하기 시작했는데도 당신들은 돈 이야기만 한다”라며 꾸짖기도 했다.
툰베리 이전에는 캐나다 소녀 세번 컬리스-스즈키가 있었다. 1992년 6월 185개국 정상과 대표들이 참여한 유엔환경개발회의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렸다. 당시 열두 살이던 스즈키는 “만약 환경을 되살릴 방법을 모른다면 당장 파괴를 멈춰야 한다. 당신들의 결정에 나와 이후 세대의 미래가 달려 있음을 잊지 말라”라고 역설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6분간 세계를 침묵에 빠트린’ 연설이었지만 툰베리에 비하면 ‘순한 맛’이다.
기후 위기와 생태 환경 파괴라는 문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계급, 젠더, 지역, 식민성 등에 따라 불평등하게 작용하지만 세대 간 부정의는 그보다 더 심각하다. 현재 세대가 쓰고 망치는 만큼 미래 세대에게 돌아갈 몫은 적고 짐은 커진다. 그래서 활동가의 존재는 청소년, 그중에서도 다음 세대를 잉태하는 소녀의 모습으로 대표된다. 우리가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복잡한 현실의 이해타산을 넘어 명확하고 진실한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이들이 만들어 갈 미래에 기대를 걸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한 명의 스즈키, 한 명의 툰베리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비록 2024년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부결되었지만, 지금이 ‘인류세’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에 등장할 때부터 주변 환경과 다른 생물 종에 영향을 주는 ‘생물학적 힘’이었으나 이제는 지구의 물리화학적 구성을 바꾸는 ‘지질학적 힘’이 되었다. 지구 전체를 지배할 만큼 강력하면서도 부정적 결과를 통제할 정도의 실력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문명사회에서 쌓아 온 인간의 윤리와 집단 지성이다.
교육이 이전 세대의 지혜를 전수하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생태전환교육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현재 위기에 대해 기성세대의 잘못과 무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를 탓하기보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체제에서 자유로운 개인은 없다. 기성세대에 주어진 과제는 경제 성장이고 거기 충실했지만 그 목표를 계속 지켜야 하는 건 아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눈부신 경제 성장에 힘입어 인류는 80억까지 늘었고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우주와 지구, 인간의 역사를 꿰뚫었다. 이제 인간이 지구의 물질 순환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이 드러나면서 그에 적절히 대처하는 게 과제이다.
기후 위기는 암울한 시나리오지만 인간의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열린 미래를 제시한다. 기후 위기를 완화하려 노력하고 기후가 변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도록 협력하는 과정에서 지금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미 한계에 이른 화석 연료 사회에서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기술로 옮아가면서 지금과는 다른 일자리나 경제적 기회가 생기고 ‘좋은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기후·생태 위기가 아니라 생태적으로 전환하도록 가르치는 생태전환교육은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를 직시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앎 : 결핍 아닌 다름을 가르치자
지속가능하지 않은 산업 사회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청소년들이 어떻게 하면 생태적인 지식과 태도를 갖출 수 있을까? 먼저 눈앞에 닥친 문제를 숨기지 않고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개인 심리 치료 방법이지만 인지, 정서, 행동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사건이나 경험을 바라보는 생각을 바꾸면 정서와 행동이 함께 변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말과도 통한다. ‘앎 – 삶 – 함’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개인, 특히 집단의 인식 변화는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소비와 그에 따른 쓰레기 배출을 줄이라는 건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쇼핑은 즐거움이자 존재 증명, 정체성의 기반이었기에 소비를 억제하는 일은 금욕을 넘어 자아 상실이 될 수 있다. 부모 세대처럼 아파트와 승용차, 가전제품의 규모를 키우지 못하는 삶에 박탈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몇 개의 지구가 더 필요한 현재와 같은 생활 양식을 지속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건 기만이다. 삶의 기준을 바꿈으로써 ‘결핍’이 아닌 ‘다름’을 지향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성장 중심 사회와는 다른 생산·소비·생활 양식, 다른 노동 형태, 다른 에너지 및 자원 사용 방식, 비인간 세계와의 다른 관계 맺기 등을 이야기할 때다.
특히 공교육에서 기후·생태 위기의 심각성과 함께 삶을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건 매우 중요하다. 공교육은 공동체의 합의된 가치를 반영하며 시민성을 기른다. 교육 대상 범위가 넓고 지속적이며 체계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교육은 세태를 반영하는 정치의 장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정규 교과 외에 가르칠 수 있는 범교과 주제는 안전·건강, 인성, 진로, 민주시민, 인권, 다문화, 통일, 독도, 경제·금융, 환경·지속가능발전 등 10개(2015년 개정 교육과정 기준)에 이른다. ‘환경·지속가능발전’이라는 주제가 들어 있지만 제한된 비교과 시간에 다른 주제들과 경합해야 한다. 1992년부터 중·고등학교 선택 과목에 ‘환경’이 들어왔으나, 2022년 기준 채택 비율이 14%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8년 8%에서 많이 증가했다.)
여전히 국어·영어·수학이 중심인 교육과정의 보수성과 대학 입시 위주의 학사 운영을 고려할 때 기후·생태 위기를 인식하고 생태적 전환의 방식을 찾아 가는 교육이 자리 잡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환경 과목보다 더 나아간 기후 변화 교육을 의무화하거나 생태 전환을 특정한 교과목에 한정되지 않는 교육의 원리로 채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탈리아는 세계 최초로 각급 공립 학교에서 기후 변화 교육을 의무화해 2020년부터 주 1시간씩 연간 33시간을 이수하도록 했다. 프랑스 교육부는 2022년 5대 과제 중 하나로 생태 전환을 선정했다. 우리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 생태전환교육이 포함되었다가 안타깝게도 정권 교체 이후 삭제됐다.
기후 위기를 외면하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처럼 이 문제를 정치 이슈로 바라보는 시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치는 이미 1.5℃를 넘었고❶, 이제 학교 현장에서 생태전환교육은 낯선 용어가 아니다. 제도와 정책이 충분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과학·사회·예술 등 여러 교과가 연계하여 기후·생태 위기를 이해하고 다양한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 시간 확보, 교재 개발, 교사 역량 강화 등 교육 당국의 뒷받침이 절실하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태전환교육의 의미는 인지적 각성에 그치지 않고 정서와 태도의 변화를 끌어내는 데 있다. 그래야만 낙담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실천하는 힘이 생긴다.
삶 : 마음을 움직이는 기후 교육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12.3 계엄 사태 와중에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2030 세대의 정치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고 철저한 개인주의자처럼 보였던 이들이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분노하고 행동했다. 어렸을 때부터 인권과 시민권을 배웠던 젊은 세대의 몸에는 억압받거나 굴종하지 않으려는 자유가 배태되었기에 시대착오적인 국가 지도자의 행위는 부지불식간에 어떤 정서를 자극한 것이다. 사회적·집단적으로 습득된 정서, 감정으로 표출되기 이전에 무의식에 잠재했다가 어느 순간 촉발되는 정신적 에너지를 가리켜 ‘정동(情動)’이라고 한다. 계엄령은 그간의 민주시민교육이 정동으로 체화됐음을 증명했다.
생태 문명을 위한 교육, 즉 생태전환교육의 원리 역시 ‘정동’이 되어야 한다. 기후·생태 위기가 고조되는 데 마음이 쓰이고 감정이 동요돼야 한다. 생태전환교육의 경험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래야 결핍이 다름이 되고 앎이 삶으로 바뀐다. 나아가 생태전환교육은 ‘근대 문명이 낳은 교육의 문제점과 이의 해결을 위한 교육의 생태적 전환에 비추어 요구되는 관계적이고 이행적인 방식으로 교육을 재정의하는 데 핵심’❷이기도 하다. 여기서 생태전환교육은 기후·생태 위기에 대한 교육을 넘어 생태 문명을 위한 교육, 즉 과거 산업 사회에 맞춰 형성된 교육 방식을 바꾸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핵심은 관계적이고 이행적인 방식을 채택하는 것인데 ‘관계적’이란 연결, 수용, 생성을 가리키고 ‘이행적’이란 과정, 변화, 목적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에 ‘혼자 잘 살 수는 없다’는 생태계의 원리를 깨우쳐 주는 동시에, 이런 원리를 교육에도 적용함으로써 교육 자체가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시대의 과제에 반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생태전환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교육의 생태적·관계적·이행적 전환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교육의 전환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생태전환교육에서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환경교육이 체험과 실습으로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고 과학 지식을 배양해 왔다면 인류세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태전환교육은 더욱 통합적인 접근을 요구한다. 지구 시스템과 인간의 역사를 비롯해 인간과 자연, 정신과 물질을 분리해 온 근대 철학의 문제, 이런 철학에 바탕을 둔 경제와 정치 제도, 과학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 새로운 사고와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문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지식이 기후·생태 위기를 이해하는 데 동원된다. 이처럼 거시적·미시적 지식을 하나로 꿰는 수단으로서 서사(스토리텔링)가 효과적이기에 독서와 토론 등 자기 언어화 과정이 필요하다. 서사는 그 자체로 관계적·이행적이며 숏폼에 노출된 나머지 ‘뇌 썩음’을 자초하는 디지털 문화의 해독제이기도 하다.
질문을 장착한 교육 역시 생태전환교육에서 필수적이다. 융합 교육(STEAM : 과학·기술·공학·예술·수학),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디자인 싱킹, 시나리오 워크숍 등 다양한 교육 방법이 개발되는데 공통 전제는 좋은 질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을 벼린다면 그 중심에는 기후·생태 위기 문제가 놓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교육 방법은 나침반을 들고 불확실한 미래를 항해하는 학습자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개별 지식을 저장하는 게 아니라 총체적인 역량을 키우고자 한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생태전환교육은 혁신 교육의 실험장이 될 수 있다. 혁신의 목적은 기후·생태 위기를 헤쳐 나가는 것이다.
함 : 학교 너머 지역이라는 현장
“Just Do It!” 유명한 스포츠용품 광고의 카피이자 깊은 진리를 담은 선(禪)적 언어이다. ‘그냥 해!’, ‘하면 돼!’, ‘걱정하지 말고 하고자 하는 것을 해!’ 정도의 뜻이다. 우울증 환자에게 의사는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며 자주 걸으라고 조언한다. 우울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상태가 호전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후·생태 위기로 인한 우울도 마찬가지다. 전문가와 정책 입안자들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지 못하면’, ‘기후 변곡점 1.5℃를 넘으면’, ‘미래에 2℃, 3℃, 5℃가 더 올라가면’ 등의 언어를 만들었다. 어른도 두려운데 어린이·청소년들에게는 더욱 공포로 다가올 것이다. 더구나 툰베리의 말처럼 어른들은 계속 딴소리만 한다.
우리 뇌는 만성적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감정, 특히 두려움을 처리하는 편도체가 과잉 활성화되고 의사 결정과 충동 조절을 포함한 실행 기능에 관여하는 전두피질의 활성이 저하되어 정신적 탈진 상태, 즉 번아웃 증후군을 보인다. 기후·생태 위기에서도 불안, 불신, 공포로 비롯된 생존 본능은 자칫 파괴적 행동으로 이어지며, 위기의식에 따른 각성 상태가 지속되면 우울감, 무기력증에 빠져 전환의 가능성을 오히려 제약한다. 위기임에도 세계와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태도를 키우려면 어떤 일이든 직접 시도해 봐야 한다.
유네스코는 전통적인 지속가능발전교육을 넘어 기후 위기의 긴급성과 실천 필요성을 반영한 새로운 교육 모델인 GEP(Greening Education Partnership)를 2022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지속가능발전교육이 주로 이론적 지식과 환경 보호 개념에 머무는 반면, GEP는 적극적인 실천을 강조한다. 여기서 학교는 기후 회복력의 허브로서 탄소 중립을 실천해 국가 감축 목표 달성에 적극 기여할 뿐만 아니라 학교 시설의 녹색화, 교사 연수, 교과 과정 개편을 통해 학생들이 향후 기후 위기에 대비하는 ‘기후준비학습자(climate-ready learners)’로 성장하도록 돕는다.❸
한국에서도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탄소중립 중점학교 등 학교의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정책이 도입되었으나 극소수 학교만 참여한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2024년 생태 전환·자원 순환·탄소 제로 관련 연구·실천 학교는 1,200개 초·중·고 가운데 36개(3%)에 불과하다. 반면 GEP는 2030년까지 50%의 학교를 기후 회복력 허브(에코스쿨)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면서 학교 시설과 운영, 교육과정, 지역 사회와의 협력 등에서 전면적인 변화를 만드는 ‘전 기관적 접근(Whole-institution Approach)’을 강조한다. 에너지 관리, 재활용, 자원 순환, 지역 생태계 보존 등 학교와 지역 사회가 협력해 기후·생태 위기 대응에 나서도록 장려한다.
기후 위기는 전 지구적 문제이지만 그 대응은 지역마다 주어진 과제이다. 점점 나빠지는 기후를 막을 수는 없더라도 그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회복하는 정도는 공동체의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학생들은 지역 사회의 생태 복원이나 자원 순환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수동적인 피해자의 위치를 벗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대도시에도 자연과 생명이 살아 숨 쉰다. 옥상에서 채소가 자라고 벌들이 꿀을 모은다. 햇빛 발전, 도시 농업 등 생산적인 활동은 기후 위기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자연을 관찰하며 생태계의 순환과 상호 의존성을 몸소 체험한다면 자신의 삶이 더 큰 생명의 흐름 속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긍정의 힘
어린이·청소년들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청소년 활동가들은 기성세대가 지나쳤던 문제에 대해 신선한 시각으로 접근하며 창의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순수한 열정과 진정성으로 대중과 정치인, 정책 입안자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태도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청소년기의 활동은 미래에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춘 어른으로 성장하는 발판이기도 하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기후 위기 대응과 생태·환경 보존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소수 활동가가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집단 지성을 발휘해 공동 행동에 나서는 것도 기후 위기 세대의 특징이다. 그레타 툰베리가 등장한 지 몇 달 만에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기후행동이 결성되어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기후 문제를 본격적으로 알렸다. 그들은 환경부와 서울시교육청을 찾아가 기후 위기 교육을 해 달라고 요구했으며, 국가의 기후 위기 대응이 청소년들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는 데 부족하다는 헌법 소원을 제기해 5년 만에 승소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따라 정부는 2030년 이후부터 2050년까지의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올해 안에 마련해야 한다.
누구나 활동가가 되는 건 아니지만 기후 위기 시대의 어린이·청소년들은 생태 전환의 주체로 키워져야 한다. 자신의 역할과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인식시키고,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강조하며, 성공 사례 및 롤 모델을 제시하는 게 생태전환교육의 역할이다. 단순히 덜 쓰고 덜 버리는 금욕적 생활을 강요할 게 아니라 문제의 복합적 원인과 사회적 책임을 이해하고, 혁신적이면서 참여적인 해결책을 찾아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해야 한다. 이를 통해 어린이·청소년들은 자신감을 갖고 미래의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생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우울과 절망은 더는 할 일이 없을 때 찾아온다.
어린이·청소년들이 기후 위기와 함께 성장하는 데 필요한 건 그들의 앎, 삶, 함이 통합되는 현장이다. 일차적으로는 학교가 기후 위기 시대의 ‘리빙랩(Living Lab)’이 되어야 한다. 텃밭과 자원 재활용보다 좀 더 과감한 실험이 교실에서, 급식실에서, 운동장에서 이뤄지면 좋겠다. 교과 수업과 생활지도, 행정 업무의 부담이 큰 선생님들과 함께 지역 활동가들이 학생들의 협력자가 되는 길도 있다. 주춤해진 혁신교육지구 사업이 생태 전환을 중심으로 다시 활성화돼 학교의 담장을 넘어 학부모, 이웃 주민들과 함께 탄소 배출 줄이기와 지역 생태계 복원, 에너지·먹거리·돌봄 등을 지역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생태적 재지역화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긍정의 힘과 더불어!
❶ 세계기상기구(WMO)는 2025년 1월 10일 ‘2024년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5℃ 상승한 것으로 관측됐다’고 밝혔다.
❷ 남미자 외(2024), 《생태 문명을 향한 교육 원리》, 학이시습.
❸ 이재영, “한국의 UNESCO 기후변화교육파트너십(GEP) 참여의 실익 및 잠재력 검토”, 〈유네스코 이슈 브리프〉, 2024년 제4호, 유네스코한국위원회, 6쪽.
기후 위기 교육이 직면해야 할 과제
기후 위기와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
한윤정
yunjeong_han@daum.net
한신대 생태문명원 공동 대표
미래는 아이들에게 있다
기후 위기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쪼개진 얼음 위에 서 있는 북극곰이라기보다 청소년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성난 얼굴이다. 2018년 열다섯 살 때 스웨덴 의회 앞에서 매주 금요일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을 시작한 그는 2019년 9월 뉴욕에서 열린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당신들은 거짓말로 나의 꿈도 어린 시절도 짓밟았다”라고 따졌다. “모든 생명이 멸종하기 시작했는데도 당신들은 돈 이야기만 한다”라며 꾸짖기도 했다.
툰베리 이전에는 캐나다 소녀 세번 컬리스-스즈키가 있었다. 1992년 6월 185개국 정상과 대표들이 참여한 유엔환경개발회의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렸다. 당시 열두 살이던 스즈키는 “만약 환경을 되살릴 방법을 모른다면 당장 파괴를 멈춰야 한다. 당신들의 결정에 나와 이후 세대의 미래가 달려 있음을 잊지 말라”라고 역설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6분간 세계를 침묵에 빠트린’ 연설이었지만 툰베리에 비하면 ‘순한 맛’이다.
기후 위기와 생태 환경 파괴라는 문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계급, 젠더, 지역, 식민성 등에 따라 불평등하게 작용하지만 세대 간 부정의는 그보다 더 심각하다. 현재 세대가 쓰고 망치는 만큼 미래 세대에게 돌아갈 몫은 적고 짐은 커진다. 그래서 활동가의 존재는 청소년, 그중에서도 다음 세대를 잉태하는 소녀의 모습으로 대표된다. 우리가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복잡한 현실의 이해타산을 넘어 명확하고 진실한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이들이 만들어 갈 미래에 기대를 걸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한 명의 스즈키, 한 명의 툰베리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비록 2024년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부결되었지만, 지금이 ‘인류세’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에 등장할 때부터 주변 환경과 다른 생물 종에 영향을 주는 ‘생물학적 힘’이었으나 이제는 지구의 물리화학적 구성을 바꾸는 ‘지질학적 힘’이 되었다. 지구 전체를 지배할 만큼 강력하면서도 부정적 결과를 통제할 정도의 실력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문명사회에서 쌓아 온 인간의 윤리와 집단 지성이다.
교육이 이전 세대의 지혜를 전수하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생태전환교육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현재 위기에 대해 기성세대의 잘못과 무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를 탓하기보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체제에서 자유로운 개인은 없다. 기성세대에 주어진 과제는 경제 성장이고 거기 충실했지만 그 목표를 계속 지켜야 하는 건 아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눈부신 경제 성장에 힘입어 인류는 80억까지 늘었고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우주와 지구, 인간의 역사를 꿰뚫었다. 이제 인간이 지구의 물질 순환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이 드러나면서 그에 적절히 대처하는 게 과제이다.
기후 위기는 암울한 시나리오지만 인간의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열린 미래를 제시한다. 기후 위기를 완화하려 노력하고 기후가 변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도록 협력하는 과정에서 지금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미 한계에 이른 화석 연료 사회에서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기술로 옮아가면서 지금과는 다른 일자리나 경제적 기회가 생기고 ‘좋은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기후·생태 위기가 아니라 생태적으로 전환하도록 가르치는 생태전환교육은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를 직시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앎 : 결핍 아닌 다름을 가르치자
지속가능하지 않은 산업 사회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청소년들이 어떻게 하면 생태적인 지식과 태도를 갖출 수 있을까? 먼저 눈앞에 닥친 문제를 숨기지 않고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개인 심리 치료 방법이지만 인지, 정서, 행동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사건이나 경험을 바라보는 생각을 바꾸면 정서와 행동이 함께 변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말과도 통한다. ‘앎 – 삶 – 함’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개인, 특히 집단의 인식 변화는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소비와 그에 따른 쓰레기 배출을 줄이라는 건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쇼핑은 즐거움이자 존재 증명, 정체성의 기반이었기에 소비를 억제하는 일은 금욕을 넘어 자아 상실이 될 수 있다. 부모 세대처럼 아파트와 승용차, 가전제품의 규모를 키우지 못하는 삶에 박탈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몇 개의 지구가 더 필요한 현재와 같은 생활 양식을 지속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건 기만이다. 삶의 기준을 바꿈으로써 ‘결핍’이 아닌 ‘다름’을 지향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성장 중심 사회와는 다른 생산·소비·생활 양식, 다른 노동 형태, 다른 에너지 및 자원 사용 방식, 비인간 세계와의 다른 관계 맺기 등을 이야기할 때다.
특히 공교육에서 기후·생태 위기의 심각성과 함께 삶을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건 매우 중요하다. 공교육은 공동체의 합의된 가치를 반영하며 시민성을 기른다. 교육 대상 범위가 넓고 지속적이며 체계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교육은 세태를 반영하는 정치의 장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정규 교과 외에 가르칠 수 있는 범교과 주제는 안전·건강, 인성, 진로, 민주시민, 인권, 다문화, 통일, 독도, 경제·금융, 환경·지속가능발전 등 10개(2015년 개정 교육과정 기준)에 이른다. ‘환경·지속가능발전’이라는 주제가 들어 있지만 제한된 비교과 시간에 다른 주제들과 경합해야 한다. 1992년부터 중·고등학교 선택 과목에 ‘환경’이 들어왔으나, 2022년 기준 채택 비율이 14%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8년 8%에서 많이 증가했다.)
여전히 국어·영어·수학이 중심인 교육과정의 보수성과 대학 입시 위주의 학사 운영을 고려할 때 기후·생태 위기를 인식하고 생태적 전환의 방식을 찾아 가는 교육이 자리 잡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환경 과목보다 더 나아간 기후 변화 교육을 의무화하거나 생태 전환을 특정한 교과목에 한정되지 않는 교육의 원리로 채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탈리아는 세계 최초로 각급 공립 학교에서 기후 변화 교육을 의무화해 2020년부터 주 1시간씩 연간 33시간을 이수하도록 했다. 프랑스 교육부는 2022년 5대 과제 중 하나로 생태 전환을 선정했다. 우리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 생태전환교육이 포함되었다가 안타깝게도 정권 교체 이후 삭제됐다.
기후 위기를 외면하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처럼 이 문제를 정치 이슈로 바라보는 시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치는 이미 1.5℃를 넘었고❶, 이제 학교 현장에서 생태전환교육은 낯선 용어가 아니다. 제도와 정책이 충분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과학·사회·예술 등 여러 교과가 연계하여 기후·생태 위기를 이해하고 다양한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 시간 확보, 교재 개발, 교사 역량 강화 등 교육 당국의 뒷받침이 절실하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태전환교육의 의미는 인지적 각성에 그치지 않고 정서와 태도의 변화를 끌어내는 데 있다. 그래야만 낙담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실천하는 힘이 생긴다.
삶 : 마음을 움직이는 기후 교육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12.3 계엄 사태 와중에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2030 세대의 정치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고 철저한 개인주의자처럼 보였던 이들이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분노하고 행동했다. 어렸을 때부터 인권과 시민권을 배웠던 젊은 세대의 몸에는 억압받거나 굴종하지 않으려는 자유가 배태되었기에 시대착오적인 국가 지도자의 행위는 부지불식간에 어떤 정서를 자극한 것이다. 사회적·집단적으로 습득된 정서, 감정으로 표출되기 이전에 무의식에 잠재했다가 어느 순간 촉발되는 정신적 에너지를 가리켜 ‘정동(情動)’이라고 한다. 계엄령은 그간의 민주시민교육이 정동으로 체화됐음을 증명했다.
생태 문명을 위한 교육, 즉 생태전환교육의 원리 역시 ‘정동’이 되어야 한다. 기후·생태 위기가 고조되는 데 마음이 쓰이고 감정이 동요돼야 한다. 생태전환교육의 경험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래야 결핍이 다름이 되고 앎이 삶으로 바뀐다. 나아가 생태전환교육은 ‘근대 문명이 낳은 교육의 문제점과 이의 해결을 위한 교육의 생태적 전환에 비추어 요구되는 관계적이고 이행적인 방식으로 교육을 재정의하는 데 핵심’❷이기도 하다. 여기서 생태전환교육은 기후·생태 위기에 대한 교육을 넘어 생태 문명을 위한 교육, 즉 과거 산업 사회에 맞춰 형성된 교육 방식을 바꾸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핵심은 관계적이고 이행적인 방식을 채택하는 것인데 ‘관계적’이란 연결, 수용, 생성을 가리키고 ‘이행적’이란 과정, 변화, 목적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에 ‘혼자 잘 살 수는 없다’는 생태계의 원리를 깨우쳐 주는 동시에, 이런 원리를 교육에도 적용함으로써 교육 자체가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시대의 과제에 반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생태전환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교육의 생태적·관계적·이행적 전환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교육의 전환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생태전환교육에서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환경교육이 체험과 실습으로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고 과학 지식을 배양해 왔다면 인류세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태전환교육은 더욱 통합적인 접근을 요구한다. 지구 시스템과 인간의 역사를 비롯해 인간과 자연, 정신과 물질을 분리해 온 근대 철학의 문제, 이런 철학에 바탕을 둔 경제와 정치 제도, 과학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 새로운 사고와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문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지식이 기후·생태 위기를 이해하는 데 동원된다. 이처럼 거시적·미시적 지식을 하나로 꿰는 수단으로서 서사(스토리텔링)가 효과적이기에 독서와 토론 등 자기 언어화 과정이 필요하다. 서사는 그 자체로 관계적·이행적이며 숏폼에 노출된 나머지 ‘뇌 썩음’을 자초하는 디지털 문화의 해독제이기도 하다.
질문을 장착한 교육 역시 생태전환교육에서 필수적이다. 융합 교육(STEAM : 과학·기술·공학·예술·수학),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디자인 싱킹, 시나리오 워크숍 등 다양한 교육 방법이 개발되는데 공통 전제는 좋은 질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을 벼린다면 그 중심에는 기후·생태 위기 문제가 놓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교육 방법은 나침반을 들고 불확실한 미래를 항해하는 학습자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개별 지식을 저장하는 게 아니라 총체적인 역량을 키우고자 한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생태전환교육은 혁신 교육의 실험장이 될 수 있다. 혁신의 목적은 기후·생태 위기를 헤쳐 나가는 것이다.
함 : 학교 너머 지역이라는 현장
“Just Do It!” 유명한 스포츠용품 광고의 카피이자 깊은 진리를 담은 선(禪)적 언어이다. ‘그냥 해!’, ‘하면 돼!’, ‘걱정하지 말고 하고자 하는 것을 해!’ 정도의 뜻이다. 우울증 환자에게 의사는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며 자주 걸으라고 조언한다. 우울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상태가 호전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후·생태 위기로 인한 우울도 마찬가지다. 전문가와 정책 입안자들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지 못하면’, ‘기후 변곡점 1.5℃를 넘으면’, ‘미래에 2℃, 3℃, 5℃가 더 올라가면’ 등의 언어를 만들었다. 어른도 두려운데 어린이·청소년들에게는 더욱 공포로 다가올 것이다. 더구나 툰베리의 말처럼 어른들은 계속 딴소리만 한다.
우리 뇌는 만성적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감정, 특히 두려움을 처리하는 편도체가 과잉 활성화되고 의사 결정과 충동 조절을 포함한 실행 기능에 관여하는 전두피질의 활성이 저하되어 정신적 탈진 상태, 즉 번아웃 증후군을 보인다. 기후·생태 위기에서도 불안, 불신, 공포로 비롯된 생존 본능은 자칫 파괴적 행동으로 이어지며, 위기의식에 따른 각성 상태가 지속되면 우울감, 무기력증에 빠져 전환의 가능성을 오히려 제약한다. 위기임에도 세계와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태도를 키우려면 어떤 일이든 직접 시도해 봐야 한다.
유네스코는 전통적인 지속가능발전교육을 넘어 기후 위기의 긴급성과 실천 필요성을 반영한 새로운 교육 모델인 GEP(Greening Education Partnership)를 2022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지속가능발전교육이 주로 이론적 지식과 환경 보호 개념에 머무는 반면, GEP는 적극적인 실천을 강조한다. 여기서 학교는 기후 회복력의 허브로서 탄소 중립을 실천해 국가 감축 목표 달성에 적극 기여할 뿐만 아니라 학교 시설의 녹색화, 교사 연수, 교과 과정 개편을 통해 학생들이 향후 기후 위기에 대비하는 ‘기후준비학습자(climate-ready learners)’로 성장하도록 돕는다.❸
한국에서도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탄소중립 중점학교 등 학교의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정책이 도입되었으나 극소수 학교만 참여한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2024년 생태 전환·자원 순환·탄소 제로 관련 연구·실천 학교는 1,200개 초·중·고 가운데 36개(3%)에 불과하다. 반면 GEP는 2030년까지 50%의 학교를 기후 회복력 허브(에코스쿨)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면서 학교 시설과 운영, 교육과정, 지역 사회와의 협력 등에서 전면적인 변화를 만드는 ‘전 기관적 접근(Whole-institution Approach)’을 강조한다. 에너지 관리, 재활용, 자원 순환, 지역 생태계 보존 등 학교와 지역 사회가 협력해 기후·생태 위기 대응에 나서도록 장려한다.
기후 위기는 전 지구적 문제이지만 그 대응은 지역마다 주어진 과제이다. 점점 나빠지는 기후를 막을 수는 없더라도 그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회복하는 정도는 공동체의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학생들은 지역 사회의 생태 복원이나 자원 순환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수동적인 피해자의 위치를 벗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대도시에도 자연과 생명이 살아 숨 쉰다. 옥상에서 채소가 자라고 벌들이 꿀을 모은다. 햇빛 발전, 도시 농업 등 생산적인 활동은 기후 위기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자연을 관찰하며 생태계의 순환과 상호 의존성을 몸소 체험한다면 자신의 삶이 더 큰 생명의 흐름 속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긍정의 힘
어린이·청소년들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청소년 활동가들은 기성세대가 지나쳤던 문제에 대해 신선한 시각으로 접근하며 창의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순수한 열정과 진정성으로 대중과 정치인, 정책 입안자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태도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청소년기의 활동은 미래에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춘 어른으로 성장하는 발판이기도 하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기후 위기 대응과 생태·환경 보존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소수 활동가가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집단 지성을 발휘해 공동 행동에 나서는 것도 기후 위기 세대의 특징이다. 그레타 툰베리가 등장한 지 몇 달 만에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기후행동이 결성되어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기후 문제를 본격적으로 알렸다. 그들은 환경부와 서울시교육청을 찾아가 기후 위기 교육을 해 달라고 요구했으며, 국가의 기후 위기 대응이 청소년들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는 데 부족하다는 헌법 소원을 제기해 5년 만에 승소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따라 정부는 2030년 이후부터 2050년까지의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올해 안에 마련해야 한다.
누구나 활동가가 되는 건 아니지만 기후 위기 시대의 어린이·청소년들은 생태 전환의 주체로 키워져야 한다. 자신의 역할과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인식시키고,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강조하며, 성공 사례 및 롤 모델을 제시하는 게 생태전환교육의 역할이다. 단순히 덜 쓰고 덜 버리는 금욕적 생활을 강요할 게 아니라 문제의 복합적 원인과 사회적 책임을 이해하고, 혁신적이면서 참여적인 해결책을 찾아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해야 한다. 이를 통해 어린이·청소년들은 자신감을 갖고 미래의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생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우울과 절망은 더는 할 일이 없을 때 찾아온다.
어린이·청소년들이 기후 위기와 함께 성장하는 데 필요한 건 그들의 앎, 삶, 함이 통합되는 현장이다. 일차적으로는 학교가 기후 위기 시대의 ‘리빙랩(Living Lab)’이 되어야 한다. 텃밭과 자원 재활용보다 좀 더 과감한 실험이 교실에서, 급식실에서, 운동장에서 이뤄지면 좋겠다. 교과 수업과 생활지도, 행정 업무의 부담이 큰 선생님들과 함께 지역 활동가들이 학생들의 협력자가 되는 길도 있다. 주춤해진 혁신교육지구 사업이 생태 전환을 중심으로 다시 활성화돼 학교의 담장을 넘어 학부모, 이웃 주민들과 함께 탄소 배출 줄이기와 지역 생태계 복원, 에너지·먹거리·돌봄 등을 지역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생태적 재지역화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긍정의 힘과 더불어!
❶ 세계기상기구(WMO)는 2025년 1월 10일 ‘2024년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5℃ 상승한 것으로 관측됐다’고 밝혔다.
❷ 남미자 외(2024), 《생태 문명을 향한 교육 원리》, 학이시습.
❸ 이재영, “한국의 UNESCO 기후변화교육파트너십(GEP) 참여의 실익 및 잠재력 검토”, 〈유네스코 이슈 브리프〉, 2024년 제4호, 유네스코한국위원회, 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