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이야기
오늘의 교육
2025 1·2 vol.83
《오늘의 교육》은 어떠한 반성도 없이 살아가는 일상을 잠시 멈춰 세운다. 이번 호에 기대어 특수 교사로서 장애 학생들을 쉽게, 매일 대상화해 왔던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평등하고 공평해’라는 생각은 더 많은 권력과 권위를 지닌 사람들이 하는 생각”(안정선, 326쪽)이라는 문장에 마음이 내내 머문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인간이라고 선언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자주 정상성에서 동떨어진 존재로 여겨지며 불평등을 겪는다. 특히 발화의 양이 적거나 신체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거나, 다루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학생일수록 그 존재가 자주 지워진다. 내 교실이 그랬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한계를 자의적으로 설정하고, 그 기준에 맞추려는 개입을 교육이라 믿었다. 그들의 심오하고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드러나는 행동만 문제 삼은 결과였다.
세모의 교실은 달랐다. 교사도 학생도 각자의 고유한 불완전함 — 자해나 ADHD와 같은 특성들 — 이 새로운 완전함으로 인정받는다. “본인을 이루었던 특징들이 지워졌지만 교실은 안정을 찾는”(76쪽) 기존의 학교와 달리, 그곳은 모두를 포용하는 안전한 교실이었다. “진정한 통합이란 단순히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김헌용, 115쪽)한다는 점에서. 다만, 세모의 말처럼 이 같은 변화는 교사 개인의 신념에만 의존할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특수교육대상 학생을 수용하는 학교”(정예현, 203쪽)의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학교는 그런 곳”(80쪽)이어야 하니까.
같은 맥락에서, 장애학의 시선에서 오늘의 학교를 조망하는 구윤숙의 연재는 특별히 소중하다. 덕분에 장애 학생들이 학교에서 겪는 현실을 새롭게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비)장애 학생들, 교사, 보호자 모두가 고도로 비장애인 중심으로 짜인 학교에서 ‘통합교육’이라는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 이유는 이미 특수학급을 통해 “일반 학급 내에 있는 특수 학생들이 분리 교육”(232쪽)을 받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이 구조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은 결국 완벽한 형태의 분리 교육 기관인 ‘특수학교’로 내몰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 관여한 이들은 실패의 무력감에 시달린다.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선다. “학교는 통합교육을 위해 뭘 더 할 수 있을까?”(221쪽) 나에게도 해답은 없다. “아름다운 판도라처럼 좋아 보이긴 하는데 받아들였다가는 숨겨 두었던 온갖 문제들이 튀어나올”(238쪽)까 봐 나 역시 무섭다. 그렇다고 튀어나온 문제들을 다시 판도라의 상자 안에 구겨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해 인천의 한 특수 교사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 선생님의 죽음은 교사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학교 현장의 기이한 시스템 속에서 벌어진 사회적 참사였다. 선생님의 희생을 애도하며, 이제 더 이상 준비되지 않은 학교에서 외롭게 방치되는 교사가 없도록 주저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 최한나(교육공동체 벗 조합원)
읽은 이야기
오늘의 교육
2025 1·2 vol.83
《오늘의 교육》은 어떠한 반성도 없이 살아가는 일상을 잠시 멈춰 세운다. 이번 호에 기대어 특수 교사로서 장애 학생들을 쉽게, 매일 대상화해 왔던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평등하고 공평해’라는 생각은 더 많은 권력과 권위를 지닌 사람들이 하는 생각”(안정선, 326쪽)이라는 문장에 마음이 내내 머문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인간이라고 선언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자주 정상성에서 동떨어진 존재로 여겨지며 불평등을 겪는다. 특히 발화의 양이 적거나 신체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거나, 다루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학생일수록 그 존재가 자주 지워진다. 내 교실이 그랬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한계를 자의적으로 설정하고, 그 기준에 맞추려는 개입을 교육이라 믿었다. 그들의 심오하고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드러나는 행동만 문제 삼은 결과였다.
세모의 교실은 달랐다. 교사도 학생도 각자의 고유한 불완전함 — 자해나 ADHD와 같은 특성들 — 이 새로운 완전함으로 인정받는다. “본인을 이루었던 특징들이 지워졌지만 교실은 안정을 찾는”(76쪽) 기존의 학교와 달리, 그곳은 모두를 포용하는 안전한 교실이었다. “진정한 통합이란 단순히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김헌용, 115쪽)한다는 점에서. 다만, 세모의 말처럼 이 같은 변화는 교사 개인의 신념에만 의존할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특수교육대상 학생을 수용하는 학교”(정예현, 203쪽)의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학교는 그런 곳”(80쪽)이어야 하니까.
같은 맥락에서, 장애학의 시선에서 오늘의 학교를 조망하는 구윤숙의 연재는 특별히 소중하다. 덕분에 장애 학생들이 학교에서 겪는 현실을 새롭게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비)장애 학생들, 교사, 보호자 모두가 고도로 비장애인 중심으로 짜인 학교에서 ‘통합교육’이라는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 이유는 이미 특수학급을 통해 “일반 학급 내에 있는 특수 학생들이 분리 교육”(232쪽)을 받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이 구조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은 결국 완벽한 형태의 분리 교육 기관인 ‘특수학교’로 내몰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 관여한 이들은 실패의 무력감에 시달린다.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선다. “학교는 통합교육을 위해 뭘 더 할 수 있을까?”(221쪽) 나에게도 해답은 없다. “아름다운 판도라처럼 좋아 보이긴 하는데 받아들였다가는 숨겨 두었던 온갖 문제들이 튀어나올”(238쪽)까 봐 나 역시 무섭다. 그렇다고 튀어나온 문제들을 다시 판도라의 상자 안에 구겨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해 인천의 한 특수 교사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 선생님의 죽음은 교사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학교 현장의 기이한 시스템 속에서 벌어진 사회적 참사였다. 선생님의 희생을 애도하며, 이제 더 이상 준비되지 않은 학교에서 외롭게 방치되는 교사가 없도록 주저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 최한나(교육공동체 벗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