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호[기고] 딥페이크 성폭력과 일상의 민주주의 투쟁 | 수수

20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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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 성폭력과 

일상의 민주주의 투쟁


수수  susumin@sisters.or.kr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딥페이크 성폭력, 변화한 기술과 해결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2024년 여름,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이 재난처럼 우리 사회에 들이닥쳤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5년 전에도 ‘박사방’, ‘N번방’ 같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있었다. 텔레그램 성착취가 사회적 사건이 되자 2020년 초, 국회는 딥페이크 영상물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의결했다. 2021년에는 “여성 연예인들을 고통받게 하는 불법 영상 ‘딥페이크’를 강력히 처벌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시작되었고, 하루 만에 정부 공식 답변 요건인 20만 명을 넘겼다. 이처럼 딥페이크 기술에 의한 젠더 기반 폭력이 일어나기 시작한 지 오래다. 그만큼 대응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오랫동안 이어져 왔고, 국가가 부족하나마 대응책을 강화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작년, 다시 거대한 규모의 딥페이크 성폭력과 마주해야 했다. 


반성폭력 운동은 딥페이크 성폭력을 유구한 디지털성폭력과 기술매개성폭력의 역사 속에서 이해한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1997년 〈빨간 마후라〉 사건과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 여자 화장실 초소형 카메라 설치 사건에서부터 그 역사를 기술하는데, 전자는 ‘비동의 유포 피해 촬영물 사건’으로, 후자는 ‘불법촬영물 유포 사건’이라고 제대로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것을 선명하게 밝혔다.[ref]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2019), 〈2020 한국 사이버성폭력을 진단한다〉, 24쪽.[/ref] 1997년의 비디오테이프와 초소형 카메라는 2024년의 생성형 인공지능 기반 딥페이크와는 전혀 다른 기술이지만, 기술을 매개로 한 젠더폭력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김애라는 기술매개성폭력을 “가상과 대면 상황에서 성적인 피해를 유발하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성폭력”[ref]김애라, 〈딥페이크 이미지는 어떻게 실제와 연결되는가 - 기술매개 성폭력의 ‘실질적’ 피해와 그 의미〉, 허윤 외(2024),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 한겨레출판.[/ref]으로 정의한다. 기술매개성폭력이라는 개념은 성폭력을 매개하는 기술의 변화에 따라 매번 ‘신종 범죄’로 여겨졌던 폭력이 어떤 맥락의 연장선인지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법 체계에서 「성폭력처벌법」, 「정보통신망법」, 「청소년성보호법」, 「형법」으로 분절되어 산개한 피해의 핵심을 설명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허위가 아닌 실체적인 불안


딥페이크 성폭력은 다른 많은 기술매개성폭력처럼 ‘불안 피해’를 야기한다. 기술매개성폭력으로 발생한 피해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기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파일로 남겨지는데, 피해자들은 해당 파일이 완전히 삭제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연쇄적인 피해를 겪게 된다.[ref]김애라(2024), 앞의 책.[/ref]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의 피해 현황 통계에 따르면, ‘유포 불안(31.3%)’은 가장 많은 디지털 성폭력 피해 유형이고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ref]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2024), 〈2023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 한국여성인권진흥원, 18쪽.[/ref] 


‘불안 피해’는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을 마주한 여성 청소년들이 ‘프로필 사진 내려라’라는 자체적인 행동 강령을 만들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성 청소년들은 이런 행동 강령이 피해자의 행동을 제약하는 방식의 대처이며, 가해를 제약하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프로필 사진을 올릴 수 있는 온라인 메신저와 SNS는 끊을 수 없는 일상의 영역이기에, 이런 행동 방침은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런데 ‘프로필 사진 내려라’는 피해 여성 집단의 자구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선 학교의 가정통신문을 통해서 예방 대책처럼 공유되기도 했다. ‘불안 피해’를 피해자 개인이 관리하고 대처해야 할 영역으로 넘겨 버린 것이다. 이 장면은 다수의 피해자가 속해있는 공동체에서 근본적인 해결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었고, 그렇기에 암울했다. 


기술매개성폭력이 발생시키는 불안이란 감정은 개인이 상상해서 만들어 낸 허구가 아니라 실체를 가지는 감각이다. 사진과 영상, 딥페이크 기술로 제작된 이미지는 탈맥락적으로 유포되거나 유통되지 않는다. 여성의 신체를 물화한 그 이미지에는 늘 식별할 수 있는 텍스트가 따라붙는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때 이 이미지들은 피해자의 실명과 학교,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정보와 함께 유포되었다. 많은 불법촬영물은 ○○동, ○○아파트, ○○색 등 해당 이미지를 검색할 수 있는 텍스트와 함께 유통되고, 해당 텍스트는 “정확한 검색어”로 기능하며, 피해자에게 신변 노출의 위협을 야기한다.[ref]김수아(2024), “기술 매개 젠더 기반 폭력의 관점에서 본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정책”, 〈이화젠더법학〉, 16(3), 이화여자대학교 젠더법학연구소, 200쪽.[/ref] 2024년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 역시 ‘지인능욕방’과 ‘겹지인방’ 등의 존재와 함께 알려졌는데, ‘지인능욕방’은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합성하는 이미지가 어디에 소속된 누구의 것인지를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의 사진을 이용하여 딥페이크 영상물을 제작하고, 집단과 공유하며 조롱하고 모욕하는 가해 공동체들이 생겨났다는 사실은, 딥페이크 기술로 제작된 이미지가 허상이 아니라 현실의 관계망과 단단히 붙어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폭력을 행사했다는 점은 제대로 이야기되지 못했으나 더욱 충분히 논의되어야 하는 문제를 내포한다. 이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대규모의 친밀성과 신뢰의 파괴가 일어난 심각한 문제이다. ‘지인능욕방’은 제작과 시청, 유포가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폭력과 가해를 공유하며 서로 승인받고 으스대는 일이 만연한 현실이 드러났다.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이 일으킨 균열


권김현영은 자명했던 성폭력에 대한 인과 관계의 틀이 깨질 때 ‘사건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한다.[ref]권김현영(2024), 〈성폭력 피해자 대리인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여성학과 박사 학위 논문, 25쪽.[/ref] 이 논의를 빌리자면, 2024년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무너졌기 때문에 사회적 사건이 되었다. 작년 한 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딥페이크 성폭력의 공론화와 보도 순서는 다음과 같다.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유명 대학교 내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들이 보도되었다. 동문 후배들의 사진을 이용해 ‘지인능욕’을 하던 이 사건의 범죄자가 소위 명문대 졸업생이라는 사실이 충격을 주었다. 그다음, 전국 중·고등학교에서 피해가 발견되며, 시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해자의 존재를 목격했다. 가해자들의 수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과 성적 존재가 아니라고 여겼던 10대 청소년이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었다는 점에 충격이 가중되었다. 그리고 ‘누나방’과 ‘엄마방’과 같이 친족을 대상으로 하는 가해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보도되었다. 가장 친밀한 공동체인 가족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사회가 성폭력의 인과 관계라고 생각하던 것은 모두 사회적 편견에 기반한 것이기도 했다. 성폭력은 괴물 같은 사람만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 중심적인 문화와 구조에서 비롯된 젠더 기반 폭력이다. 명문대를 다닌다는 사실이 그가 성폭력을 하지 않으리라고 보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 가해는 늘 빈번했고, 남성 청소년의 성적 욕구를 당연시하는 문화 속에서 성폭력은 자연스러운 욕구라는 이름이 붙어 정당화되었다. 가족은 험난한 사회에서 사랑을 간직하고 있어야 할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지지만, 한국성폭력상담소 역대 상담 통계에서 친족성폭력은 늘 1~2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ref]2024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 통계에 따르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관계가 ‘친족 및 인척’(15.8%)인 경우가 2번째로 많았다.(sisters.or.kr/consult/stat/7465)[/ref] 또한, 성폭력 상담의 약 80%는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가 차지한다. 남성들은 혼자 성을 구매하지 않고 집단으로 구매하며, 여성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서로의 흥겨움을 만들고 남성 연대를 구축한다.[ref]황유나(2022), 《남자들의 방》, 오월의봄.[/ref] 이 모든 현상은 2024년 8월에 ‘사건화’된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들에서 관찰되었다.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닌 것이다.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이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새롭지 않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새롭지 않으니 무력한 것은 아닌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절망과 동시에 다른 질문도 던져야만 한다. 왜 새롭지 않은 일이 계속해서 일어날까? 새롭지 않은 일임에도 왜 충격이 될까? 이 질문을 통해 사회가 여전히 성폭력에 대한 편견에 휩싸여 있고, 사안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을 때 충격은 제대로 해석되지 않는다. 촘촘히 해석되지 않은 충격은 상흔을 남긴 채 그저 흩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새롭지 않은 일이 새로운 일처럼 충격을 줬다는 점은 오히려 사회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이 우리 사회의 편견에 균열을 일으켰다는 점에서부터 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



‘22만 명’의 전조 장면들에 주목하자


딥페이크 성폭력이 ‘사건화’된 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딥페이크 영상물에 대한 철저한 실태 파악과 수사로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아 달라’고 국무회의에서 발언했다.[ref]““애들 SNS 프사 다 내려”… 딥페이크 확산, 학교·학부모 비상” , 〈중앙일보〉, 2024년 8월 28일.[/ref] 교육부는 실태조사를 시작했으며, 경찰청은 ‘딥페이크 성범죄 특별 단속’을 추진하고 국회는 「성폭력처벌법」에 허위영상물에 대한 소지, 구입, 저장, 시청에 관한 죄를 신설했다. 그러나 2025년 2월, 텔레그램에서 피해자 2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성폭력 범죄 집단이 4년 넘게 활동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던 정책 방향이 간과한 원인은 무엇일까? 


딥페이크 사건을 ‘재난’으로 명명한 나영은 “재난으로 인해 또 다른 세상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이제는 토대를 바꾸어야 한다”[ref]나영(2024), 〈딥페이크, 처벌보다 중요한 것은 성적 문해력을 키우는 일〉, 《황해문화》, 125, 353쪽.[/ref]고 강조했다. 그렇다. 토대가 바뀌지 않은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딥페이크 성폭력 텔레그램 방의 22만 명에는 ‘22개의 전조 장면’이 있다고 논평한 바 있다.[ref]“[단호한시선]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22만명’ 발생 전조였던 22개 장면”, 한국성폭력상담소, 2024년 8월 30일.(sisters.or.kr/activity/react/7270)[/ref] 이 장면에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장관을 공석으로 두고 여성폭력 대응 예산을 삭감해 버린 행정부와,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감경하던 사법부, 성산업을 방치하고 강간죄 개정에 반대하는 입법부가 나란히 서 있다. 포괄적 성교육이 ‘조기 성애화’를 야기할 거라며 막아서고, 공공 도서관 내 성평등 성교육 도서를 열람 제한하고 폐기하도록 민원을 넣은 극우 기독교 세력도 자리를 차지했다. 페미니스트를 ‘낙인찍힌 정체성’으로 만들어 버린 여성혐오 논리와 그에 동조하는 기업도 있었다. 이런 장면들이 딥페이크 성폭력이란 재난의 토대가 되었고, 그렇기에 바꾸어야 했던 것도 이 장면들이었다. 


해를 넘겼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또다시 재난으로 무너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 대통령의 불법 계엄은 또 다른 재난이었다. 흥미롭게도 불법 계엄을 일으킨 대통령과 그를 비호하는 극우 세력의 상당수는 딥페이크 성폭력 22만 명을 만들어 낸 22개의 전조 장면에서도 만날 수 있다. 성폭력에 대한 편견과 통념에 기반하며 일상의 폭력을 방치하는 자들이 민주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대통령 탄핵’과 일상의 민주주의와 ‘사회대개혁’을 외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존엄한 얼굴들을 마주 바라보기


대규모로 자행되는 폭력의 구조와 그에 맞서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해야 할 또 다른 일이 있다. 바로 가해자를 마주 보는 것이다. 물론 처벌은 기본일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들이 관계를 이용해 가해했듯이, 처벌 이후에도 관계의 문제는 남아 있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는, 무수히 많은 학생들이 가해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남아 있다. 앞서 대규모의 친밀성과 신뢰의 파괴가 학교에서 벌어졌다고 서술하였다. 그렇기에 학교는 이들의 관계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가 이 학생들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에 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경찰청은 2024년 1월부터 9월까지 검거한 딥페이크 성폭력 범죄 피의자 중 97.6%가 남성이고, 83.7%가 10대였다고 밝혔다. 이들은 약자-여성의 얼굴을 자신과 교류할 수 있는 존엄한 상대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 남성 사회의 문법을 그대로 따랐다. 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딥페이크 영상물 제작과 ‘능욕’은 자신이 알고 있는 구체적인 여성을 성적 대상물로 만들어 버리는 행위였다. 남성 문화의 자장 안에서 자신의 얼굴과 약자의 얼굴을 동일시하지 않고, 오로지 호기심의 대상으로서 여성의 얼굴을 소비하기 위해 불법 촬영물 네트워크가 존재[ref]김주희, 〈N번방은 신종 범죄인가? - 얼굴의 젠더 정치〉, 권김현영 외(2020),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휴머니스트, 129쪽.[/ref]했다. 지인을 ‘능욕’하는 폭력이 일종의 놀이 문화로 기능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의 해결 지도를 떠올릴 수 있다. 학교를 일종의 공동체로 볼 수 있다면,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의 가장 큰 특징은 ‘신뢰’가 파괴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피해를 회복하고 가해자가 반성하는 토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관계’ 자체를 회복해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면하게 하고 사과시켜 억지로 용서하고 용서받게 하자는 제안이 아니다. 가해자 스스로가 자신이 맺는 관계에서 파괴한 존엄한 친밀성과 평등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물건으로, 조각으로 나뉘었던 여성의 얼굴과 신체를 이어 붙여, 구체적이고 존엄한 사람을 마주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훈련해야 한다.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노동자대회, 여성파업대회, 한국여성대회와 같은 여러 집회가 열렸다. 집회 부스를 찾은 여성 청소년들은 학생인권법 제정, 강간죄 개정, 차별금지법 제정 등 다양한 요구가 담긴 피켓을 망설임 없이 들었다. 서울에서는 시간이 지나고 같은 자리에서 윤석열 퇴진 범시민대행진이 열렸다. 무수히 많은 참여 인원 속에는 여성의 날 부스에 참여하고 남태령에서 맞서 싸웠던 여성 청소년들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 역시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여성 청소년들이 제보하고, 스스로 피해 학교 명단을 만들거나, 기자들과 연락했기 때문에 공론화되었다. 충격을 모아 행동을 만들고 힘을 만드는,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이고 존엄한 얼굴에 모두가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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