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폭력
교육적 맥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했던 노력
- 혁신학교 국사봉중의 학교폭력 사안 대응 사례를 중심으로
오승관 ohskkw78@hanmail.net
서울 국사봉중 교사
국사봉중은 학교폭력이나 생활교육 관련한 문제를 논의할 때, 항상 ‘교육적 맥락’을 고민한다. 학교에서 진행되는 모든 활동이 교육이기에, 특별히 교육적 맥락을 고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호할 수도 있다. 또 모든 구성원이 그에 대한 논의를 거쳐 그 실체를 인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학교폭력 사안 및 생활교육을 진행하면서 교육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그것을 표현했던 말이 교육적 맥락이었다.
구체적으로 논의 과정을 회상하면, 기존 학교폭력 처리 절차로만 진행했을 때 교육적 의미·효과를 살리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교육적 맥락을 고려했다. 가령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징계가 해당 사건의 학생에게 교육적으로 바람직할 것인가?’ 즉 ‘조치까지 소요되는 기간, 예상되는 조치의 내용 등을 고려할 때, 교육적으로 적절할 것인가?’ 또는 ‘학교폭력 발생 및 결과와 관련하여 피해 학생에게 교육할 내용은 없는가?’, ‘‘학교장 자체 해결’로 종결하고자 할 때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가?’, ‘피해 학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공식적인 처리 절차에서 구현될 수 있는가?’ 등 피해·가해 학생 모두에게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질문하게 될 때, 교육적 맥락을 따져 보았다.
교육적 맥락을 염두에 두고 학교폭력을 처리하려 하면, 그 자체가 사안 종결의 최종적인 목표가 되었다. 자칫 복잡한 처리 절차를 지키는 것, 보호자의 민원을 처리하고 대응하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있는 현재 상황에서도 교육이라는 가치를 놓치지 않는 기제가 되었다. 이러한 바탕에서 관점의 전환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학교폭력의 처리 절차는 그저 민감하게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교육적 맥락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가령 2024년 새롭게 마련된 ‘전담 조사관’ 제도가 그러했다. 전담 조사관은 학교폭력 조사의 업무를 경감하고 관련된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하지만 조사 시 교사의 입회 문제, 학교 사정을 모르는 조사관의 조사 방향과 태도, 조사 시간 조율 등 전담 조사관 제도는 그 미비함이 뚜렷하다. 그럼에도 교육적 맥락의 관점에서 해당 제도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해 보았다. 사안이 발생했을 때 외부 사람이 조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러한 방향에서 활용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학교폭력을 처리함에 있어 교육적 맥락을 목표로 한 것은 그 자체로 지향해야 할 바이면서, 처리의 어려움을 극복·해소하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참여하는 생활교육
학교폭력 사안 및 생활교육에서의 교육적 맥락에 대한 고민은 국사봉중이 2011년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시작되었다. 혁신학교로서 국사봉중은 생활교육을 민주시민교육으로 혁신하려는 지향이 있었고, 그것을 구현한 것이 ‘공동체 생활협약’이다.
“기본 취지는 ‘학생 생활 지도’를 ‘민주시민교육’으로 혁신하는 것으로, 학생들을 지시·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민주 시민으로 존중하고 (……) 학생들에 대한 통제 위주, 처벌 위주의 학생 생활 규칙을 학생들이 만든 자율적인 생활협약으로 대체, ‘학생 자치’와 ‘학급 자치’를 중심으로 생활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함이다.)”[ref]윤우현, 〈공동체 생활협약 이야기〉, 송순재 외 지음(2017),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 살림터.[/ref]
학생 자율 약속 |
1. 수업 태도 | ① 2분 전 종이 치면 자리에 앉아 수업 준비를 한다. ②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③ 열심히 경청하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
2. 언어 예절 | ④ 친구를 존중하며 예쁘고 고운 말을 사용한다. ⑤ 선생님께는 예의를 갖추어 예쁘고 고운 말을 사용한다. |
3. 휴대전화 | ⑥ 조회 시간에 제출하고 종례 후에 받는다. ⑦ 위의 ⑥호를 위반한 경우 1주일간 청소를 한다. |
4. 안전한 학교생활 | ⑧ 안전을 위해 흔들리는 귀걸이는 하지 않는다. ⑨ 우리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복도 및 교실에서는 반드시 앞이 막힌 운동화나 실내화를 신는다. ⑩ 나와 친구들이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장난은 절대 하지 않는다. ⑪ 교실, 복도, 운동장 등 학교의 모든 공간을 깨끗하게 사용한다. ⑫ 학교의 모든 물건과 시설을 소중하게 다룬다. |
5. 평화로운 학교생활 | ⑬ 어떤 형태의 폭력 행위도 유발하거나 방관하지 않는다. ⑭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여 평화롭고 행복이 넘치는 학교 문화를 만든다. |
▲국사봉중 공동체 생활협약 중 ‘학생 자율 약속’
위와 같은 취지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공동체 생활협약’을 제정했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학생의 생활교육을 진행한다. 또한 매년 공청회와 원탁 토론을 통해 개정 논의를 진행해 오고 있다. 이 논의 테이블을 ‘삼자협약위원회’라고 하며 이것이 생활교육위원회를 실질적으로 대체한다. 생활교육위원회와 삼자협약위원회의 가장 큰 차이는 구성원과 그 목표이다. 생활교육위원회는 주로 교사로 구성하고 관련 학생과 보호자에게 진술 기회를 부여하며 징계를 심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삼자협약위원회는 교사, 학생, 보호자가 동등한 위원으로 참석하여 문제 상황을 공유하고 자발적 개선을 이끌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삼자협약위원회가 만들어 내는 차이는 생활교육을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풍은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하는 데도 이어지며, 교육적 맥락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어 낸다. 학교폭력 사안과 생활교육에서 교장이 적극적인 중재자가 되고, 학년부 교사들은 공동 대응을 하며, 보호자는 적극적인 협조자가 된다. 특히, 보호자를 적극적인 협조자로 만드는 것은 학교폭력으로 인한 민원을 줄이고, 교육적 맥락을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신고 접수 초기부터 피해·가해 보호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처리 절차와 예상되는 진행 상황에 대한 안내, 교육적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 등을 함께한다. 이는 학교폭력 책임 교사뿐만 아니라 담임 교사, 교장·감 모두 함께하며, 보호자의 학교에 대한 신뢰를 만든다. 보호자가 학교를 신뢰하면, 그 자체로 민원 가능성은 줄어들고 학교 구성원이 지향하는 교육에 대한 협조 가능성은 높아진다.
공동체 생활협약에 따른 학교폭력 사안 처리 사례
학교의 공개적인 장소에서 4명의 학생이 다른 3명의 학생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가위바위보 같은 장난으로 시작된 폭력이었으나, 나중에는 피해 학생들에게 벽을 짚게 하고 가해 학생들이 돌아가며 엉덩이를 발이나 막대기로 때리는 행위가 반복되었다. 가위바위보와 같은 게임 없이 “너 다시 엎드려”와 같은 강요로 폭행이 지속되었으며, 피해 학생 중 한 명은 여학생이었다. 명백한 폭력 상황이었고, 목격자가 많이 있었기에 신고를 접수하고 학교폭력 처리 절차대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고민되었던 교육적 맥락은 피해 학생들에 대한 교육이었다. 피해·가해 학생들은 모두 같은 무리이긴 했으나, 학생들 사이에 위계가 분명하게 존재했다. 폭력도 그러한 위계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해 학생뿐만 아니라 피해 학생도 해당 사건을 ‘장난’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피해 학생들에게 폭력과 그것을 인지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했다.
공식적인 학교폭력의 처리 절차와 별도로 삼자협약위원회를 개최했다. 본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심의위원회)와 교내 생활교육위원회는 중복으로 개최할 수 없다. 그러나 본교의 삼자협약위원회는 징계를 목적으로 하는 생활교육위원회와 다르기에 개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피해·가해 학생의 보호자들에게 충분하게 상황을 설명했고,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었다. 가해 학생과 보호자, 피해 학생과 보호자 14명이 한자리에 모였고, 해당 사건에 대해 논의했다. 그 자리에서 가해 학생 보호자가 직접 사과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는 해당 사건을 ‘장난’으로 치부하는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함이었고, 가해 학생 보호자의 사과를 통해 그러한 교육적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었다. 절차 자체를 지키는 것을 넘어서서 보호자와의 적극적 소통과 그것을 중재한 교장·교사의 역할이 바탕이 된 일이었다.
한 남학생이 3학년 2학기가 되어서 갑자기 등교를 거부했다. 학생과 보호자 모두 해당 상황을 2학년 때 학급에서 당했던 학교폭력에 의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안을 인지하면 즉시 신고해야 하기에 신고를 접수하고 피해 진술을 받기 시작했다. 피해 학생은 가해 학생 3명을 지목했으나, “○○이가 ○○라고 했다” 이상의 진술은 하지 못했고, 학생 작성 확인서를 쓰는 걸 거부했다. 이후 그 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는 등의 이유로 조사는 더욱 어려워졌다. 퇴원 이후에도 학생은 트라우마를 이유로 끝내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못했다. “○○이가 ○○라고 했다”는 정도의 진술을 바탕으로 가해 학생들을 조사했다.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의 진술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자신들이 피해 학생에게 했었던 다른 불편한 상황을 진술해 주었다.
사안을 절차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통합지원센터는 ‘학교장 자체 해결’ 또는 ‘학교폭력이 아닌 사안’으로 종결해야 한다고 했다. 학교 내 전담 기구는 절차적인 종결에 얽매이지 않고 사리에 맞는 판단을 하기로 했다. ‘학교장 자체 해결’이라는 것은 학교폭력이 실존했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이가 ○○라고 했다” 정도의 진술만으로 그것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다른 사안과의 형평성도 맞지 않았다. 반대로 ‘학교폭력이 아닌 사안’도 아니었다. 학급 내에서 피해 학생의 어려움은 분명히 있었고, 완전히 다른 사안을 말하긴 했으나 가해 학생들의 진술도 있었다. 절차적 종결에 매몰되지 않고, 피해 학생의 심리·정서를 위해 판단하기로 했다. 이에 피해 학생과 보호자에게 충분한 상황 설명과 양해를 구했으며, 피해 학생과 보호자는 진실한 사과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할 수 있겠다고 해 주었다. 이에 일부 사실을 인정한 가해 학생에게 사과를 제안했다. 다행히 가해 학생들도 사과하기로 했고, 피해 학생은 그 사과를 받기로 했다. 공식적인 절차는 ‘조사 불능’으로 종결했다. 절차적 완결성보다 교육적 맥락을 고려하는 것을 우선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마지막 사례는 3학년 여학생의 언어폭력 사건이다. 소위 ‘패드립’이었는데 죽은 부모를 놀리는 심각한 수위였고, 가해 관련 학생은 전년도에도 가해 전력이 있었다. 이때 가장 염두에 두었던 교육적 맥락은 즉각적이고 강한 선도 조치였다. 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학교로 오게 했으며, 해당 학생을 포함하여 교장, 교감, 학년 부장 등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사안에 대해 논의했다. 공식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실질적으로 삼자협약위원회가 개최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 가해 학생 스스로 문제 행동에 대해 충분히 진술하도록 했으며, 보호자의 자녀 훈육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고 지지하기도 했다. 아울러 즉각적인 선도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 보호자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절차상으로는 가해 학생 선도를 위한 긴급조치로 5호(특별 교육 이수)를 활용했다. 5호 조치는 심의위원회 추인을 요하는 중대한 조치이지만, 절차상 문제가 없고 보호자와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면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결정과 실행에는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후 피해 학생에 대한 충분한 사과가 있었고 특별 상담을 통한 추수 지도를 통해 문제 행동을 개선할 수 있었다.[ref]이상의 사례는 국사봉중에서 발생한 사안 처리 내용을 바탕으로 비밀 누설 금지 원칙을 지키기 위해 사건의 개요를 각색하여 소개한 것이다.[/ref]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교육
학교폭력 사안 처리에서 ‘교육적 맥락’을 고민한다는 것이 기존 절차 내에 그러한 고민이 전혀 없다는 전면적인 비판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외면할 수 없다. 가령, 과다한 심의로 인해 최대 28일로 정해진 심의 기간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해 학생에 대한 징계와 선도, 교육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효과가 있다는 것은 굳이 교육 이론을 끌어오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징계 사실이 생활기록부에 기록되어 입시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징계 이후 학교생활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적 맥락’을 다시 고민하게 됐다. 나의 단견으로는 학교폭력에서의 ‘교육적 맥락’이란 갈등 경험과 해결 경험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폭력에 비추어 볼 때, 학교폭력을 예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통 성인들의 인간관계를 돌아보면, 학생들의 관계 회복, 공동체성 회복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혹은 꼭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갈등을 겪고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교사·보호자와 같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잘 해결하는 그 경험 자체가 바로 교육적 맥락을 지키는 것이지 않을까?
국사봉중의 대응 사례가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을 바탕으로 한 학교폭력 처리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법적 절차를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절차에 매몰되어 놓치기 쉬운 교육적 맥락에 대한 고민과 지향은 엿볼 수 있다. 학교폭력 대응에서 교육적 맥락을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학교교육을 학생, 교사, 보호자가 함께 한다는 교풍에서 비롯되었으며, 교장의 적극적인 중재와 보호자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 구현되었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역시 이러한 교육적 맥락을 살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논의해 보았으면 한다.
특집 -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폭력
교육적 맥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했던 노력
- 혁신학교 국사봉중의 학교폭력 사안 대응 사례를 중심으로
오승관 ohskkw78@hanmail.net
서울 국사봉중 교사
국사봉중은 학교폭력이나 생활교육 관련한 문제를 논의할 때, 항상 ‘교육적 맥락’을 고민한다. 학교에서 진행되는 모든 활동이 교육이기에, 특별히 교육적 맥락을 고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호할 수도 있다. 또 모든 구성원이 그에 대한 논의를 거쳐 그 실체를 인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학교폭력 사안 및 생활교육을 진행하면서 교육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그것을 표현했던 말이 교육적 맥락이었다.
구체적으로 논의 과정을 회상하면, 기존 학교폭력 처리 절차로만 진행했을 때 교육적 의미·효과를 살리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교육적 맥락을 고려했다. 가령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징계가 해당 사건의 학생에게 교육적으로 바람직할 것인가?’ 즉 ‘조치까지 소요되는 기간, 예상되는 조치의 내용 등을 고려할 때, 교육적으로 적절할 것인가?’ 또는 ‘학교폭력 발생 및 결과와 관련하여 피해 학생에게 교육할 내용은 없는가?’, ‘‘학교장 자체 해결’로 종결하고자 할 때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가?’, ‘피해 학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공식적인 처리 절차에서 구현될 수 있는가?’ 등 피해·가해 학생 모두에게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질문하게 될 때, 교육적 맥락을 따져 보았다.
교육적 맥락을 염두에 두고 학교폭력을 처리하려 하면, 그 자체가 사안 종결의 최종적인 목표가 되었다. 자칫 복잡한 처리 절차를 지키는 것, 보호자의 민원을 처리하고 대응하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있는 현재 상황에서도 교육이라는 가치를 놓치지 않는 기제가 되었다. 이러한 바탕에서 관점의 전환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학교폭력의 처리 절차는 그저 민감하게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교육적 맥락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가령 2024년 새롭게 마련된 ‘전담 조사관’ 제도가 그러했다. 전담 조사관은 학교폭력 조사의 업무를 경감하고 관련된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하지만 조사 시 교사의 입회 문제, 학교 사정을 모르는 조사관의 조사 방향과 태도, 조사 시간 조율 등 전담 조사관 제도는 그 미비함이 뚜렷하다. 그럼에도 교육적 맥락의 관점에서 해당 제도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해 보았다. 사안이 발생했을 때 외부 사람이 조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러한 방향에서 활용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학교폭력을 처리함에 있어 교육적 맥락을 목표로 한 것은 그 자체로 지향해야 할 바이면서, 처리의 어려움을 극복·해소하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참여하는 생활교육
학교폭력 사안 및 생활교육에서의 교육적 맥락에 대한 고민은 국사봉중이 2011년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시작되었다. 혁신학교로서 국사봉중은 생활교육을 민주시민교육으로 혁신하려는 지향이 있었고, 그것을 구현한 것이 ‘공동체 생활협약’이다.
① 2분 전 종이 치면 자리에 앉아 수업 준비를 한다.
②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③ 열심히 경청하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④ 친구를 존중하며 예쁘고 고운 말을 사용한다.
⑤ 선생님께는 예의를 갖추어 예쁘고 고운 말을 사용한다.
⑦ 위의 ⑥호를 위반한 경우 1주일간 청소를 한다.
⑧ 안전을 위해 흔들리는 귀걸이는 하지 않는다.
⑨ 우리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복도 및 교실에서는 반드시 앞이 막힌 운동화나 실내화를 신는다.
⑩ 나와 친구들이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장난은 절대 하지 않는다.
⑪ 교실, 복도, 운동장 등 학교의 모든 공간을 깨끗하게 사용한다.
⑫ 학교의 모든 물건과 시설을 소중하게 다룬다.
⑬ 어떤 형태의 폭력 행위도 유발하거나 방관하지 않는다.
⑭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여 평화롭고 행복이 넘치는 학교 문화를 만든다.
▲국사봉중 공동체 생활협약 중 ‘학생 자율 약속’
위와 같은 취지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공동체 생활협약’을 제정했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학생의 생활교육을 진행한다. 또한 매년 공청회와 원탁 토론을 통해 개정 논의를 진행해 오고 있다. 이 논의 테이블을 ‘삼자협약위원회’라고 하며 이것이 생활교육위원회를 실질적으로 대체한다. 생활교육위원회와 삼자협약위원회의 가장 큰 차이는 구성원과 그 목표이다. 생활교육위원회는 주로 교사로 구성하고 관련 학생과 보호자에게 진술 기회를 부여하며 징계를 심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삼자협약위원회는 교사, 학생, 보호자가 동등한 위원으로 참석하여 문제 상황을 공유하고 자발적 개선을 이끌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삼자협약위원회가 만들어 내는 차이는 생활교육을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풍은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하는 데도 이어지며, 교육적 맥락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어 낸다. 학교폭력 사안과 생활교육에서 교장이 적극적인 중재자가 되고, 학년부 교사들은 공동 대응을 하며, 보호자는 적극적인 협조자가 된다. 특히, 보호자를 적극적인 협조자로 만드는 것은 학교폭력으로 인한 민원을 줄이고, 교육적 맥락을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신고 접수 초기부터 피해·가해 보호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처리 절차와 예상되는 진행 상황에 대한 안내, 교육적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 등을 함께한다. 이는 학교폭력 책임 교사뿐만 아니라 담임 교사, 교장·감 모두 함께하며, 보호자의 학교에 대한 신뢰를 만든다. 보호자가 학교를 신뢰하면, 그 자체로 민원 가능성은 줄어들고 학교 구성원이 지향하는 교육에 대한 협조 가능성은 높아진다.
공동체 생활협약에 따른 학교폭력 사안 처리 사례
학교의 공개적인 장소에서 4명의 학생이 다른 3명의 학생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가위바위보 같은 장난으로 시작된 폭력이었으나, 나중에는 피해 학생들에게 벽을 짚게 하고 가해 학생들이 돌아가며 엉덩이를 발이나 막대기로 때리는 행위가 반복되었다. 가위바위보와 같은 게임 없이 “너 다시 엎드려”와 같은 강요로 폭행이 지속되었으며, 피해 학생 중 한 명은 여학생이었다. 명백한 폭력 상황이었고, 목격자가 많이 있었기에 신고를 접수하고 학교폭력 처리 절차대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고민되었던 교육적 맥락은 피해 학생들에 대한 교육이었다. 피해·가해 학생들은 모두 같은 무리이긴 했으나, 학생들 사이에 위계가 분명하게 존재했다. 폭력도 그러한 위계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해 학생뿐만 아니라 피해 학생도 해당 사건을 ‘장난’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피해 학생들에게 폭력과 그것을 인지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했다.
공식적인 학교폭력의 처리 절차와 별도로 삼자협약위원회를 개최했다. 본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심의위원회)와 교내 생활교육위원회는 중복으로 개최할 수 없다. 그러나 본교의 삼자협약위원회는 징계를 목적으로 하는 생활교육위원회와 다르기에 개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피해·가해 학생의 보호자들에게 충분하게 상황을 설명했고,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었다. 가해 학생과 보호자, 피해 학생과 보호자 14명이 한자리에 모였고, 해당 사건에 대해 논의했다. 그 자리에서 가해 학생 보호자가 직접 사과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는 해당 사건을 ‘장난’으로 치부하는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함이었고, 가해 학생 보호자의 사과를 통해 그러한 교육적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었다. 절차 자체를 지키는 것을 넘어서서 보호자와의 적극적 소통과 그것을 중재한 교장·교사의 역할이 바탕이 된 일이었다.
한 남학생이 3학년 2학기가 되어서 갑자기 등교를 거부했다. 학생과 보호자 모두 해당 상황을 2학년 때 학급에서 당했던 학교폭력에 의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안을 인지하면 즉시 신고해야 하기에 신고를 접수하고 피해 진술을 받기 시작했다. 피해 학생은 가해 학생 3명을 지목했으나, “○○이가 ○○라고 했다” 이상의 진술은 하지 못했고, 학생 작성 확인서를 쓰는 걸 거부했다. 이후 그 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는 등의 이유로 조사는 더욱 어려워졌다. 퇴원 이후에도 학생은 트라우마를 이유로 끝내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못했다. “○○이가 ○○라고 했다”는 정도의 진술을 바탕으로 가해 학생들을 조사했다.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의 진술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자신들이 피해 학생에게 했었던 다른 불편한 상황을 진술해 주었다.
사안을 절차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통합지원센터는 ‘학교장 자체 해결’ 또는 ‘학교폭력이 아닌 사안’으로 종결해야 한다고 했다. 학교 내 전담 기구는 절차적인 종결에 얽매이지 않고 사리에 맞는 판단을 하기로 했다. ‘학교장 자체 해결’이라는 것은 학교폭력이 실존했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이가 ○○라고 했다” 정도의 진술만으로 그것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다른 사안과의 형평성도 맞지 않았다. 반대로 ‘학교폭력이 아닌 사안’도 아니었다. 학급 내에서 피해 학생의 어려움은 분명히 있었고, 완전히 다른 사안을 말하긴 했으나 가해 학생들의 진술도 있었다. 절차적 종결에 매몰되지 않고, 피해 학생의 심리·정서를 위해 판단하기로 했다. 이에 피해 학생과 보호자에게 충분한 상황 설명과 양해를 구했으며, 피해 학생과 보호자는 진실한 사과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할 수 있겠다고 해 주었다. 이에 일부 사실을 인정한 가해 학생에게 사과를 제안했다. 다행히 가해 학생들도 사과하기로 했고, 피해 학생은 그 사과를 받기로 했다. 공식적인 절차는 ‘조사 불능’으로 종결했다. 절차적 완결성보다 교육적 맥락을 고려하는 것을 우선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마지막 사례는 3학년 여학생의 언어폭력 사건이다. 소위 ‘패드립’이었는데 죽은 부모를 놀리는 심각한 수위였고, 가해 관련 학생은 전년도에도 가해 전력이 있었다. 이때 가장 염두에 두었던 교육적 맥락은 즉각적이고 강한 선도 조치였다. 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학교로 오게 했으며, 해당 학생을 포함하여 교장, 교감, 학년 부장 등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사안에 대해 논의했다. 공식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실질적으로 삼자협약위원회가 개최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 가해 학생 스스로 문제 행동에 대해 충분히 진술하도록 했으며, 보호자의 자녀 훈육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고 지지하기도 했다. 아울러 즉각적인 선도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 보호자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절차상으로는 가해 학생 선도를 위한 긴급조치로 5호(특별 교육 이수)를 활용했다. 5호 조치는 심의위원회 추인을 요하는 중대한 조치이지만, 절차상 문제가 없고 보호자와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면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결정과 실행에는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후 피해 학생에 대한 충분한 사과가 있었고 특별 상담을 통한 추수 지도를 통해 문제 행동을 개선할 수 있었다.[ref]이상의 사례는 국사봉중에서 발생한 사안 처리 내용을 바탕으로 비밀 누설 금지 원칙을 지키기 위해 사건의 개요를 각색하여 소개한 것이다.[/ref]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교육
학교폭력 사안 처리에서 ‘교육적 맥락’을 고민한다는 것이 기존 절차 내에 그러한 고민이 전혀 없다는 전면적인 비판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외면할 수 없다. 가령, 과다한 심의로 인해 최대 28일로 정해진 심의 기간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해 학생에 대한 징계와 선도, 교육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효과가 있다는 것은 굳이 교육 이론을 끌어오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징계 사실이 생활기록부에 기록되어 입시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징계 이후 학교생활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적 맥락’을 다시 고민하게 됐다. 나의 단견으로는 학교폭력에서의 ‘교육적 맥락’이란 갈등 경험과 해결 경험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폭력에 비추어 볼 때, 학교폭력을 예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통 성인들의 인간관계를 돌아보면, 학생들의 관계 회복, 공동체성 회복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혹은 꼭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갈등을 겪고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교사·보호자와 같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잘 해결하는 그 경험 자체가 바로 교육적 맥락을 지키는 것이지 않을까?
국사봉중의 대응 사례가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을 바탕으로 한 학교폭력 처리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법적 절차를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절차에 매몰되어 놓치기 쉬운 교육적 맥락에 대한 고민과 지향은 엿볼 수 있다. 학교폭력 대응에서 교육적 맥락을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학교교육을 학생, 교사, 보호자가 함께 한다는 교풍에서 비롯되었으며, 교장의 적극적인 중재와 보호자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 구현되었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역시 이러한 교육적 맥락을 살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논의해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