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폭력
학교폭력 관련 법 속에서
아동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
- 처벌과 배상 중심 제도가 아동에게 끼치는 영향
김희진 heejin2709@gmail.com
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학교폭력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
‘학교폭력’을 주제어로 최근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가장 많이 검색된 소식 중 하나는 제주도에서 학교 안전 경찰관 배치를 확대했더니 학교폭력이 획기적으로 줄었고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도 높다는 내용이었다.[ref]“제주도, 학교 안전 지켜 주는 ‘경찰쌤’ 6곳으로 확대”, 〈연합뉴스〉, 2025년 2월 17일.[/ref] 국가 경찰이 운영하는 학교 전담 경찰관 제도와 달리 제주의 학교 안전 경찰관은 자치 경찰 중에 선발하며,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정복을 입고 학교에 상주한다고 했다. 2024년까지 3개 고등학교에 학교 안전 경찰관이 배치되었고, 2025년 3월부터는 6개 고등학교에 배치될 예정이다.[ref]“제주에 정복 경찰 상주하는 ‘안심 고교’ 확대”, 〈국민일보〉, 2025년 2월 17일.[/ref]
기사를 읽으며 여러 감정이 스쳤다. 특히 ‘정복’을 입은 경찰관이 학교에 ‘상주’하면서 ‘순찰’을 한다는 내용은 학교를 굉장히 위험한 공간으로 느끼게 했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함”을 사명으로 한다(「경찰공무원 복무규정」 제3조 제1호). 언제부터 학교는 경찰이 주되게 임무를 수행하는 혹은 수행해야 할 안전하지 못한 장소가 된 것일까.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을 위해 학교 전담 경찰관 제도가 시행되었는데, 가해자에 해당하는 학생은 학교를 위협하는 존재에 불과한 건가.
학교폭력 대응은 물론, 최근 초등학생 사망 사건 대책을 비롯해 학교에 경찰을 배치하여 안전을 도모하겠다는 각종 정책의 경향은, 오늘날 「학교폭력예방법」이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지를 돌이켜 봐야 할 이유가 된다. 학교폭력과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경험은 과연 누군가에게 제재를 가하고 분리하는 것 말고,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을 줄여 나가는 기회로도 작동하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현행법에 따른 학교폭력은 매우 광범위한 개념이다. 그 안에는 「형법」 위반의 범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갈등이나 분쟁이 대다수다. 일탈 행위 혹은 문제 행위라 지목될 수는 있어도, 모든 사안에 처벌이 필요하지도, 능사도 아니다. 적지 않은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를 엄밀히 구분하기 어려운데, 이는 아동기의 발달적 특성과 학교라는 공간적 특수성이 결합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오히려 학교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교육하는 공간이고(「교육기본법」 제2조), 그렇다면 학교에서 발생한 여하한 형태의 폭력을 교육의 관점에서 지도하고 안내하는 것이 우선순위여야 한다. 사안에 따라 「소년법」 적용이나 형사 처벌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그다음에 이루어질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아동을 위한 교육의 기본적 환경인 학교는 모든 학생을 포용해야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학생만을 위한 공간일 수는 없는 것이다. 「학교폭력예방법」도 피해 학생의 보호,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 및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간의 분쟁 조정을 통하여 피해·가해 학생 모두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육성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되었다(제1조).
「학교폭력예방법」은 모든 아동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되지 못했다
「학교폭력예방법」 제정 이후, 특히 2012년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기 시작한 이후로 학교의 사법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평가된다. 가해 학생은 입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활기록부 기재를 막거나 처분의 수위를 낮추는 것, 피해 학생은 그에 대한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된다. 여기서 먼저 짚어 볼 부분이 있다. 학교폭력 사안의 초기부터 개입하게 된 변호사들은 갈등의 원만한 해소를 통한 쌍방 학생의 인권 보장에 기여하고 있는가?
이른바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요건을 갖췄을 때 ‘학교폭력’을 전문 분야로 등록할 수 있다. ① 법조 경력 3년 이상, ② 전문 분야 등록 신청 전 3년 내에 관련 교육을 14시간 이상 이수, ③ 전문 분야 등록 신청 전 3년 내에 학교폭력 사건(학교폭력 조치 처분 취소, 학교폭력 불인정 처분 취소, 학교폭력 재심 결정 취소, 손해 배상(학교폭력) 청구의 소 등) 10건 이상 수임.[ref]대한변호사협회(2022), 〈변호사 전문분야 등록에 관한 규정〉.[/ref]
과연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의 ‘전문성’은 어디에 있는가? 현재의 규정상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는 학교폭력과 관련된 법률의 전문가이지, 학생 보호를 위한 전문가라 할 수는 없다. 전문 분야 등록에 필요한 학교폭력 관련 교육도 「학교폭력예방법」 관계 법령과 판례에 관한 내용이지, 아동기의 특성, 교육 환경과 학생인권을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들은 「학교폭력예방법」과 관련 지침이 요구하는 절차를 잘 아는 전문가이고, 이들은 관계된 모든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을 고민하기보다 의뢰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전략을 세우기 쉽다. 자녀의 불이익을 막고자 하는 보호자들은 변호사의 부추김에 이용된다. 소송을 거치며 양측의 감정은 악화되고,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처분을 다투는 행정 심판과 행정 소송은 물론, 형사 소송, 민사 소송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정작 학생은 폭력의 문제를 이해하고 성장할 기회를 빼앗긴다. 승패가 갈리는 학교폭력 사안에서 학교는 되레 뒷짐을 지고 물러나는 실정이다.
법적 쟁송이 아닌 경우도 마찬가지다. 학교폭력 사안의 사실 확인과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피해학생 보호를 판단하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도 “판사·검사·변호사”가 참여하도록 되어 있고(「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 제14조 제1항 제4호), 변호사가 심의위원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 변호사들은 교육적 관점보다 사법적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볼 가능성이 크다. 「학교폭력예방법」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인권을 보호받아야 할 학생은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모두이지만, 기본적으로 변호사는 가해자-피해자의 이분법적 구도가 익숙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법률과 소송의 전문가이지, 아동인권, 학생인권에 관한 훈련을 받은 경우는 많지 않다. 설령 범죄에 해당하는 학교폭력 사안이라 하더라도 다르게 풀어 갈 상상력의 여지가 협소한 부분도 문제다. 아동의 연령과 또래 관계의 특성, 학교 환경의 특수성과 같은 다양한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관계된 아동들의 입장을 두루 고려하면서 학교와의 소통 방식을 고민하는 논의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다음의 블로그 게시물은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의 일반적인 관점과 대응 방식을 보여 주며, 《시사인》 기사에서도 학교폭력 이후 민사 소송이 제기되었던 일이 언급된다.
1) 사건 초기의 상대방의 인정 진술? 믿을 수 있을까법적으로 경찰, 심지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도 법원에 가서 번복하더라도 유효합니다. 즉 가해자는 언제든지 진술을 번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물며 경찰, 검찰에서의 진술도 그런데, 피해자 또는 선생님 앞에서 진술(가해 사실을 인정한 것)을 번복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학폭위 및 경찰로 진행된 많은 사건이 처음 인정한 내용을 완전히 번복하거나 일부 변경하는 사안이 굉장히 많습니다. 네, 맞습니다. 상대방은 진술의 ‘전체’가 아닌 ‘일부’를 변경하여 진술할 수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전체를 번복하는 사건은 상대적으로 적으나 사건 초기에 진술하였던 내용 중 일부를 심의위원회 내지 경찰에 가서 다르게 진술하는 경우는 너무나 자주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가해 학생 측 변호사입니다. ‘그럼 가해자가 나중에 가서 거짓말을 한다는 말인가요?’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거짓말이 아닙니다. 피해 학생 내지 피해 측 입장에서 볼 때 너무나 확실해 보이는 사실도 법률 전문가가 보았을 때 애매한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가해 학생 측 대리인 내지 변호인은 이러한 사실 관계의 공백 내지 애매모호한 부분을 정리해서 가해 학생에게 유리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건 초기에 가해 학생이 했던 ‘인정’ 발언을 금과옥조와 같이 믿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심의위원회 또는 경찰 신고를 하는 피해 측과 vs 초기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오는 가해 학생 측의 온도 차가 결국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데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더욱 간단하게 생각해 본다면, ‘피해 학생이 생각하기에 그렇게 명백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임에도 가해 학생이 변호사를 선임하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 보시면 답이 나오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 OO법률사무소 블로그 게시물 중, 2024년 3월 5일
생각보다 친구들끼리 치고받는 싸움 과정에서 학교폭력으로 신고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누구로 인하여 싸움이 시작되었는지 판단하여야 하며, 만약 상대방으로 인하여 싸움이 일어난 것이라면 당시 상황을 목격한 학생들의 사실 확인서, 교사의 진술 등을 확보하여 상대방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할 수 있고, 반대로 싸움을 건 쪽이라면 빠르게 사과한 후 상대방 학부모님과 합의를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어떤 사건이든 구체적인 사실 관계에 따라 대처는 달라질 수 있으며, 가해자 측이라고 하여도 섣부르게 사과를 하고 화해를 시도하게 되면 학폭위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상황에 대한 판단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교폭력 사건 또한 일반 범죄 사건처럼 수위는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학교폭력 소재의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더라도 학교폭력의 수위가 상당히 높으며, 실제로 연예계 학폭, 유명인 자제의 학폭 가해 등을 보아도 사회적으로 민감한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법률사무소 블로그 게시물 중, 2023년 3월 11일 |
변호사의 조기 개입이 사건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학교공동체를 회복으로 이끄는 모양새이면 좋으련만 최근에 들은 이야기는 달랐다. 장난으로 시작했다가 감정이 격해져 학생 A가 학생 B의 머리를 때리자 학생 B가 학생 A의 뺨을 때렸다. 결국 뺨을 맞은 학생이 피해자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심의를 요청했다. 그사이 서로 사과도 했다. 부모들도 만나 반성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앞으로 주의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학폭 심의위는 가해자의 폭행에는 지속성이 없고 서로 사과도 하고 반성했다는 이유로 경미한 처분을 내려 사건은 종결하는 듯했다.
그러나 어느 날 날아온 것은 손해 배상으로 몇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소장이었다. 피해가 크지 않았기에 큰 금액의 청구가 의아했다. 법원에서도 조정과 합의를 권했지만, 원고와 원고 측 변호사의 거부로 끝내 조정은 성립하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가해 학생에게 500만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변호사 수임료가 500만 원보다 많았다.[ref]홍민정(2024), 〈학생 다툼 뒤 날아온 수천만 원짜리 손배 소장〉, 《시사인》, 867, 2024년 5월 5일.[/ref]
이처럼 변호사가 주 업무로 하는 소송은 ‘승패’의 판단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변호사가 개입하는 학교폭력 사안의 모든 과정은 절차의 준수, 증거의 유무에 의존하게 된다. 초등 저연령 아동, 장애 아동, 이주배경 아동, 성소수자 아동, 기타 아동의 개별적 특성에 따른 상담과 대화, 중재와 회복을 위한 노력은 법과 지침이 정하는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문제로 지적되기 쉽고, 상호 이해와 협의를 위한 과정은 ‘증거의 부재’로 훼손되기 쉬운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아동은 무엇을 경험할 것인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아닐까.
▲ 학교에든, 보호자에게든 말해도 소용없다는 체념
▲ 반복해서 말하길 요구받는 괴로움, 그 와중에 달라지고 왜곡되는 기억
▲ 변호사 조력 등 위계적 권력의 체감
▲ 관계의 상실
▲ 억울하다는 분노(가해 학생은 왜 이렇게까지 대우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피해 학생 측은 가해 학생이 정당하게 처벌받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학교폭력 단계에서 최소한의 갈등 조정이 없었던 결과 서로의 상처가 더 커졌던 경우가 있었다. 해당 사안에서 가해 학생 A는 다른 학교 학생인 친구 B의 휴대전화를 몰래 보았는데, 사진첩에 있었던 B가 남자 사람 친구와 성적 관계를 맺는 영상을 다른 친구에게 전송하였다. 학교폭력 사안 통지를 받으며 이를 뒤늦게 알게 된 A의 어머니는 B와 그 가족에게 어떻게 사죄해야 할지 교사에게 물었는데, 당시 교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A의 어머니는 교사의 조언에 따라 B에게 연락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고, A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와 경찰 조사의 전 과정에서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처분도 다 수용했다. 그러다 해당 사건이 소년부 송치되어 재판을 받게 된 날, A는 사건 이후 처음 B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B의 어머니는 법정 앞에 찾아와서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는 A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엄벌을 호소하고 갔는데, 알고 보니 동영상 유포에 관계된 다른 가해 학생들은 이미 사과문도 보내고 합의도 했던 것이다. A가 사과나 합의를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사정은 반성이 없는 점으로 참작되어 A는 단기 소년원 송치 처분을 받았다. 큰 범죄인 건 맞지만, 재판 당시 A가 만 13세였고, 초범이며, 재범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정을 고려하면 상당히 중한 처분이라 볼 수 있었다.
나는 한부모 가정 지원 단체를 통해 위 보호 처분의 항고 사건 보조인으로 참여하면서 일련의 경과를 알게 되었고, 늦게나마 사죄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애썼다. A의 경우, 처음에는 9호 보호 처분에 대한 충격과 억울함이 컸으나, 나와의 상담, 소년원에서의 교육 등을 통해 행위의 중대성을 인지한 뒤에 진심으로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당시에 B의 변호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로는 B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일상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재고의 여지없이 디지털 성범죄는 발생하지 말아야 할 중범죄이다. 하지만 적어도 학교폭력 조사와 심의 단계에서 A가 B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전달할 기회가 제대로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학교가 피해 학생을 보호하는 방법은 분리와 접근 금지만이 아닐 텐데, 학교에 회복적 사법을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이 좀 더 있었다면 A의 반성과 B의 회복, 이들의 성장에도 좀 더 나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한편, 「학교폭력예방법」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하지만, 이 법의 수범자 중 하나인 대중과 언론은 폭력의 유무와 대응 방식(학교폭력을 했느냐, 누가 했느냐, 얼마나 수위 높은 폭력을 행했느냐, 보호자의 갑질이 있었느냐, 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했느냐 등)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2023년 경기도 용인에서의 장애 아동 학대 사건의 경우, 다수의 언론 매체가 해당 아동학대 사건의 배경으로 알려진 ‘학교폭력’ 사안과 관련한 장애 아동의 행위를 불필요하게 자세히 보도하면서, 장애 아동의 특성과 그 행동이 발현될 수 있는 맥락은 생략한 채 특정 행위만을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묘사해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였다. 해당 사안에서 학대 피해 장애 아동은 “문제 행동을 일삼는 파렴치한 가해자”로 각인되었고, 장애 아동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도 강화되었다. 범죄소년·촉법소년에 대한 처벌 강화 주장과 유사하게, 학교폭력은 연령, 장애, 경제적 상황 등 취약성을 매개하여 아동에 대한 사회적 혐오를 강화하는 실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일련의 절차가 학생 당사자를 중심에 두지 않는 현실이다. 학교가 학교폭력(의심) 사안을 인지한 이후 진행되는 학교장 자체 해결,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처분, 혹은 소송에 따른 결과 중에 어떤 단계이건 학생 당사자가 그 결과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고 보기 어렵다. 학교와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통지는 주로 학생 보호자를 대상으로 하고, 소송은 사실상 학생의 보호자가 주도한다. 그러나 보호자의 ‘동의’와 학생의 의사가 항상 일치한다고 볼 수 없으며, 보호자가 자신의 자녀인 학생과 다른 학생 모두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많지 않다. 과연 학교폭력 관련 제도가 학생을 위하여 설계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예방을 위한 교육’과 ‘교육적 대처’가 핵심이어야 한다
현행법과 지침에 따라 「학교폭력예방법」은 신고 등 학교폭력으로 사안이 접수되어야 적용된다.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교육부, 2024)에 따를 때, 피해 학생, 목격 학생, 보호자 등이 직접 교사에게 말하는 경우 외에도 교사가 학생에 대한 개별 상담으로 파악하거나, 학생들에 대한 설문 조사 등의 방식도 ‘신고’가 될 수 있다.
일체의 신고·조사 방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동이 접근할 수 있는, 아동 친화적인 신고·접수의 경로는 있어야 한다. 아동의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은 폭넓게 준비되어야 하고, 신고와 법적 다툼이 권리 구제에 필수적인 경우도 많다.
46. 아동은 자신의 부당함을 표현하기 위해 옴부즈퍼슨이나 모든 아동 시설(특히, 학교, 주간 보호 센터)에서 옴부즈퍼슨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아동은 이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아동 의견을 고려하는 데 있어 가족 내에 갈등이 발생할 경우, 아동은 지역 사회의 청소년 복지 서비스 담당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47. 아동은 권리 침해에 대한 구제를 받기 위하여 소송/진정을 제기하고 상소할 수 있어야 한다. 소송/진정 절차는 아동이 이를 사용하여도 폭력이나 처벌에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 유엔아동권리위원회(2009),
〈일반 논평 제12호 : 아동의 의견이 청취될 권리〉
하지만 학생 간의 여하한 다툼이나 분쟁을 ‘학교폭력’으로 명명하고 ‘신고·접수’를 통해 기록을 시작하는 순간, 설령 그 결과가 학교폭력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거나 정리되더라도 조사를 거치면서 갈등이 더욱 커질 우려도 적지 않고,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는 가해·피해 학생 모두에게 낙인이 될 수 있다. 학교폭력 사안이 인정되지 않은 사안의 피해 학생은 세상에 대한 불신, 또래에서 배제되는 등의 박탈감을 겪을 수 있고, 만약 피해 학생이 평소 문제 행동으로 미운털이 박힌 학생이었다면 학교폭력의 문제가 ‘네 잘못’으로 치부될 때도 있으니, 이는 제도의 사각지대이다.
학교폭력 신고에 따른 ‘조사’의 형식도 각종 사법적 조치를 예정하는 불안감을 가중한다. 현재의 조사 관행과 실무는 폭력이 문제라는 것, 문제 해결에 학생 당사자의 태도와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내하는 과정이 아니라, 처벌 혹은 처분의 대상인지와 아닌지를 가늠하는 것에 주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학교폭력 사안의 첫 단계부터 변호사 조력 등 상호 공격적 형태의 방어를 취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 가해의 불인정 또는 축소, 피해의 강조와 반복, 대화의 단절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6조 제1항의 단서 규정[ref]“학교의 장은 학교폭력 사건을 인지한 경우 피해 학생의 반대 의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지체 없이 가해자(교사를 포함한다)와 피해학생을 분리하여야 하며, 피해 학생이 긴급 보호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제1호부터 제3호까지 및 제6호의 조치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학교의 장은 심의위원회에 즉시 보고하여야 한다.”[/ref]도 검토가 필요하다. 피해 학생의 반대 의사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지체 없이 가해자와 피해 학생을 분리하도록 하는 이른바 ‘즉시 분리’ 제도는 학교폭력 사안을 마주하는 교원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학교폭력으로 명명된 모든 사안을 처벌의 관점에서 접근하게 한다. 학교폭력의 정도가 심각하거나 피해 학생이 겪는 불안감이 상당한 경우와 같이 즉각적인 분리가 필요한 사안도 있다. 하지만 학생 간의 관계에 위해가 되지 않는다면 공동체 회복을 위한 접근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가해 학생 역시 학교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해야 할 학교의 구성원이고, 갈등의 요소를 줄여 나가는 일은 당사자 학생들만의 몫이 아니라, 동료 학생들과 교원들 공동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런 사건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방과후 돌봄 시간 중, 남학생 2명(A, B), 여학생 1명(C)이 남자 화장실에서 서로의 성기를 만졌던 일이다. 사건 직후에 방과후 교사가 화장실에 같이 있는 학생들을 인지해 나오도록 했고, 학생들의 부모들에게 세 아이가 함께 화장실 같은 칸에 있었던 일까지는 설명했다. 그런데 이날 저녁, A의 어머니는 담임 교사의 전화를 받았고, 아이들 사이에 성기를 만지는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C의 어머니가 학교에 알렸다고 했다. 이에 A의 어머니도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A로부터 B와 C가 ‘비밀 놀이’를 하자며 제안해서 화장실에 가게 되었고, 본인은 처음 겪는 일이 불편하고 싫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때 학교의 조치는 다음 날부터 A와 B의 분리, 등교 금지였다. 피해학생 C는 이틀 뒤 해바라기센터에서 상담도 받았다고 알려 왔다. A의 부모는 고민 끝에 변호사 상담을 했는데, 당시 변호사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경우 남자들은 범죄자 취급을 받고,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어렵다. 해바라기센터는 성범죄 피해 여성을 위한 기관이라 여성의 말에 더 많은 힘을 실어 주고, 남자에게 몹시 불리하다. 처음부터 해바라기센터에 데려간 것은 민사 소송도 생각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나는 A가 내담하던 상담센터 선생님이 도움을 요청하면서 A의 가족과 소통하게 되었고, 이후 경찰 조사 과정까지 모니터링하였다. 다행히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A가 만 7세에 불과했고, 경찰에서도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해 주어 이후 추가적인 학내 갈등이나 소송은 없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사이에서 발생한 위의 일을 단순히 ‘학교폭력’, ‘성범죄’로 바라보았던 학교의 대처는 아쉬움이 크다. (A와 C가 같은 반 학생이 아니었음에도) 즉시 분리를 위한 등교 금지가 결정된 순간, A와 B는 성범죄자, C는 성범죄 피해 여성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학생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피해를 주장하는 학부모와 방어할 수밖에 없는 학부모의 존재만 남았다. 학생들은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는데, 누군가가 떠나거나 서로 피하려 애쓰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 되어 버린 셈이다. 없었으면 좋을 일이나, 발생한 일에 대해서 잘 대처하는 것도 교육의 역할이다. 학교폭력 대응도 교육의 범주인데, 학교의 첫 대처는 교육이라 보기 어려웠다.
부디 아동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자. 교사와 학생 간 상담 과정에서 인지된 학교폭력(의심)의 문제는 반드시 학교폭력 사안으로 접수부터 해야 할까? 즉각적인 분리가 필요한 상황도 있겠지만, 학생 등 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사전 단계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논의에는 교사의 권한 인정과 역량 강화도 요청된다. 학교폭력에 대응해야 할 교사의 노동 환경 개선과 맞닿아 있는 문제다.
나의 이러한 견해가 폭력 사안에 있어 가해 학생에 대한 징계 등 적극적인 개입과 사후 조치, 혹은 「소년법」에 따른 보호 조치가 필요한 경우가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을 감지하는 학내 구성원의 책임에 더 큰 무게를 두면서, 갈등을 풀어 갈 다양한 장치들이 적극 논의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학교폭력 사안에 있어 인권이 보호되어야 할 학생은 모든 학생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피해 학생의 보호,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 및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간의 분쟁 조정을 통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 그러나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갈등이나 분쟁을 학교폭력으로 의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폭력예방법 제2조 제1호는 ‘학교폭력’의 개념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으며, 제3조는 ‘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 국민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학교폭력’ 개념의 확대 해석으로 인하여 지나치게 많은 학교폭력 가해자를 양산하거나, 같은 행위를 두고서도 그것을 학교폭력으로 문제를 삼는지에 따라 위 법에 따른 조치 대상이 되는지 여부가 달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의 규정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학교생활 내외에서 학생들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이나 분쟁의 발생은 당연히 예상되고 학교폭력으로 인하여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1항에 열거된 조치를 받은 경우 이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고 졸업할 때까지 보존하게 되므로, 일상적인 학교생활 중에 일어난 어떤 행위가 학교폭력예방법에서 말하는 ‘학교폭력’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그 발생 경위와 상황, 행위의 정도 등을 신중히 살펴 판단하여야 한다.
- 대구고등법원 2022. 10. 21. 선고 2022누3118 판결 중
학생의 참여와 의견 청취는 가장 중요한 권리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의 〈아동 권리 협약〉 이행 보고에 따른 최종 견해에서 “온라인 폭력 및 학교폭력을 포함한 높은 아동학대 발생률(26(a)항)” 및 “널리 퍼져 있는 학교 내 집단 괴롭힘과 학업 성적 등과 관련된 차별(41(i)항)”을 우려하면서, “사이버 괴롭힘을 포함하여 집단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 예방, 조기 발견 메커니즘, 아동 및 전문가의 역량 강화, 중재 절차, 사례 관련 자료 수집을 위한 통일된 지침과 같은 조치를 강화할 것(42(i)항)”을 권고하였다. 이와 함께 다른 권고에서 “교사를 포함한 모든 성범죄자가 강요의 증거 유무와 상관없이 기소(29(f)항)”되도록 하고, 아동 사법 제도에 관한 공정한 절차와 차별 없는 대우 등을 언급한 최종 견해의 전반적인 맥락을 비추어 볼 때, 학생 간의 학교폭력 사안에서는 예방을 위한 노력, 학교 구성원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 조성, 전문성을 갖춘 중재자의 역할, 누적된 사례를 통한 지속적인 메커니즘 개선 등이 아동인권을 위한 과제라 할 것이다. 여기서도 학교폭력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분리, 가해 학생 처벌 강화는 우선순위에 해당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아동의 참여와 의견 청취권” 보장은 학교폭력 사안을 다루는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이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일반 논평 제12호〉를 통해 “아동의 견해에 정당한 비중을 두는 것은 차별을 없애고 약자에 대한 괴롭힘 예방, 지도 방안에서 특히 중요(109항)”하며, “아동을 지도에서 배제하거나 정학 처분을 내릴 경우에는 아동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사법적 검토를 받아야 한다(114항)”고 강조하였다. 아동이 관계된 사안에서 보호자의 조력도 마땅히 중요하지만, 핵심은 학생 당사자의 참여권, 의견에 대한 정당한 비중이다. 이 목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에 집중해야 하며, 듣는 과정도 교육적 맥락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하지만 「학교폭력예방법」의 몇몇 규정만 보아도, 학생과 보호자의 의견에 동등한 무게를 두려는, 필요시 학생의 의견에 더 큰 비중을 두려는 관점은 부족하다. 가해 학생에 대한 처분의 집행 정지 결정에 관한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의4 제1항이 “피해 학생 또는 그 보호자의 의견을 청취하여야” 하고, “피해 학생 또는 그 보호자가 의견 진술의 기회를 포기한다는 뜻을 명백히 표시한 경우”에는 듣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은 보호자의 의사가 학생의 의사와 같거나 학생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전제했다고 보인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 현실에서 학생과 보호자의 의사가 항상 같을 수 없으며, 때로 보호자가 자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결정을 할 때도 있다. 그나마 “피해 학생 또는 그 보호자의 요청”(제13조 제5항), “피해 학생과 그 보호자의 심의위원회 개최 요구 의사”(제13조의2 제2항 제1호), “피해 학생 및 그 보호자가 심의위원회 개최를 원하는 경우”(제13조의2 제3항), “피해 학생 및 그 보호자”(제16조 제2항), “가해 학생 및 보호자”(제17조 제8항)와 같은 규정들은 학생과 보호자 모두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으나, 보호자(어른)의 의견에 우선순위를 두곤 하는 익숙한 관행 속에서 학생의 의견에는 독자적으로 비중이 부여되기 어렵다. 당연히 잘 들으려는 노력도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학생의 의견을 듣는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재한 상황에서, 학생은 학교폭력 사안의 주변부로 밀려나곤 한다.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법에 구체적으로 반영하기엔 한계가 있겠지만, 적어도 학생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절실하지 않을까.
「학교폭력예방법」이 정말로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 그리고 “학생의 인권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면, ① 예방을 위한 사전 작업과 ② 탐지의 노력 이후의 단계에서, ③ 학생이 학교 전반을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적인 책무여야 한다. 학생 당사자의 존재가 온전히 존중되는 환경은 학교에 대한 모두의 신뢰를 키우는 출발이자 신뢰가 지켜지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학생의 참여가 보장되는 학교 환경이라면, 학교장이 학교폭력 사안을 은폐·축소하리라는 의심도 결과적으로 완화될 것이다.
개인적 견해로, 현재의 「학교폭력예방법」은 아동 사법[ref]국내에서는 ‘소년 사법(juvenile justice)’이라고 하나,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일반 논평 제24호〉를 통해 ‘소년(juvenile)’이라는 용어가 갖는 낙인과 협소한 범주를 극복하고자, 이를 ‘아동 사법(child justice)’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ref]과 교육 복지의 중간에 위치하며, 교육 복지는 아동 보호 체계와 청소년 복지·지원 체계의 경계에서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약한 학생이 상대적으로 학교폭력의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더 크고, 학교폭력의 경험 자체로 학생의 취약성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의 지위를 이렇게 해석할 때, 학교라는 공간을 매개로 발생하는 학교폭력의 대처에는 학생 개인과 가정 환경, 학교 및 주변 환경을 아울러 살피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학교폭력의 책임을 학생과 그 보호자의 탓으로 넘기는 것은 교육은 물론 아동 보호에 대한 공적인 책임을 외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에서 사법 외적인 절차를 상상하고 실천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렇게 가장 기초적인 예방부터, 잘못을 알고 인정하는 방법, 사과를 수용하고 나를 존중하는 방법, 서로 함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 가는 과정이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은 모든 사람의 기본적 인권이고, 학교를 통한 공교육은 모든 아동의 권리임을 기억해야 한다.
특집 -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폭력
학교폭력 관련 법 속에서
아동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
- 처벌과 배상 중심 제도가 아동에게 끼치는 영향
김희진 heejin2709@gmail.com
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학교폭력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
‘학교폭력’을 주제어로 최근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가장 많이 검색된 소식 중 하나는 제주도에서 학교 안전 경찰관 배치를 확대했더니 학교폭력이 획기적으로 줄었고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도 높다는 내용이었다.[ref]“제주도, 학교 안전 지켜 주는 ‘경찰쌤’ 6곳으로 확대”, 〈연합뉴스〉, 2025년 2월 17일.[/ref] 국가 경찰이 운영하는 학교 전담 경찰관 제도와 달리 제주의 학교 안전 경찰관은 자치 경찰 중에 선발하며,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정복을 입고 학교에 상주한다고 했다. 2024년까지 3개 고등학교에 학교 안전 경찰관이 배치되었고, 2025년 3월부터는 6개 고등학교에 배치될 예정이다.[ref]“제주에 정복 경찰 상주하는 ‘안심 고교’ 확대”, 〈국민일보〉, 2025년 2월 17일.[/ref]
기사를 읽으며 여러 감정이 스쳤다. 특히 ‘정복’을 입은 경찰관이 학교에 ‘상주’하면서 ‘순찰’을 한다는 내용은 학교를 굉장히 위험한 공간으로 느끼게 했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함”을 사명으로 한다(「경찰공무원 복무규정」 제3조 제1호). 언제부터 학교는 경찰이 주되게 임무를 수행하는 혹은 수행해야 할 안전하지 못한 장소가 된 것일까.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을 위해 학교 전담 경찰관 제도가 시행되었는데, 가해자에 해당하는 학생은 학교를 위협하는 존재에 불과한 건가.
학교폭력 대응은 물론, 최근 초등학생 사망 사건 대책을 비롯해 학교에 경찰을 배치하여 안전을 도모하겠다는 각종 정책의 경향은, 오늘날 「학교폭력예방법」이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지를 돌이켜 봐야 할 이유가 된다. 학교폭력과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경험은 과연 누군가에게 제재를 가하고 분리하는 것 말고,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을 줄여 나가는 기회로도 작동하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현행법에 따른 학교폭력은 매우 광범위한 개념이다. 그 안에는 「형법」 위반의 범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갈등이나 분쟁이 대다수다. 일탈 행위 혹은 문제 행위라 지목될 수는 있어도, 모든 사안에 처벌이 필요하지도, 능사도 아니다. 적지 않은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를 엄밀히 구분하기 어려운데, 이는 아동기의 발달적 특성과 학교라는 공간적 특수성이 결합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오히려 학교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교육하는 공간이고(「교육기본법」 제2조), 그렇다면 학교에서 발생한 여하한 형태의 폭력을 교육의 관점에서 지도하고 안내하는 것이 우선순위여야 한다. 사안에 따라 「소년법」 적용이나 형사 처벌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그다음에 이루어질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아동을 위한 교육의 기본적 환경인 학교는 모든 학생을 포용해야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학생만을 위한 공간일 수는 없는 것이다. 「학교폭력예방법」도 피해 학생의 보호,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 및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간의 분쟁 조정을 통하여 피해·가해 학생 모두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육성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되었다(제1조).
「학교폭력예방법」은 모든 아동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되지 못했다
「학교폭력예방법」 제정 이후, 특히 2012년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기 시작한 이후로 학교의 사법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평가된다. 가해 학생은 입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활기록부 기재를 막거나 처분의 수위를 낮추는 것, 피해 학생은 그에 대한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된다. 여기서 먼저 짚어 볼 부분이 있다. 학교폭력 사안의 초기부터 개입하게 된 변호사들은 갈등의 원만한 해소를 통한 쌍방 학생의 인권 보장에 기여하고 있는가?
이른바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요건을 갖췄을 때 ‘학교폭력’을 전문 분야로 등록할 수 있다. ① 법조 경력 3년 이상, ② 전문 분야 등록 신청 전 3년 내에 관련 교육을 14시간 이상 이수, ③ 전문 분야 등록 신청 전 3년 내에 학교폭력 사건(학교폭력 조치 처분 취소, 학교폭력 불인정 처분 취소, 학교폭력 재심 결정 취소, 손해 배상(학교폭력) 청구의 소 등) 10건 이상 수임.[ref]대한변호사협회(2022), 〈변호사 전문분야 등록에 관한 규정〉.[/ref]
과연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의 ‘전문성’은 어디에 있는가? 현재의 규정상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는 학교폭력과 관련된 법률의 전문가이지, 학생 보호를 위한 전문가라 할 수는 없다. 전문 분야 등록에 필요한 학교폭력 관련 교육도 「학교폭력예방법」 관계 법령과 판례에 관한 내용이지, 아동기의 특성, 교육 환경과 학생인권을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들은 「학교폭력예방법」과 관련 지침이 요구하는 절차를 잘 아는 전문가이고, 이들은 관계된 모든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을 고민하기보다 의뢰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전략을 세우기 쉽다. 자녀의 불이익을 막고자 하는 보호자들은 변호사의 부추김에 이용된다. 소송을 거치며 양측의 감정은 악화되고,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처분을 다투는 행정 심판과 행정 소송은 물론, 형사 소송, 민사 소송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정작 학생은 폭력의 문제를 이해하고 성장할 기회를 빼앗긴다. 승패가 갈리는 학교폭력 사안에서 학교는 되레 뒷짐을 지고 물러나는 실정이다.
법적 쟁송이 아닌 경우도 마찬가지다. 학교폭력 사안의 사실 확인과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피해학생 보호를 판단하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도 “판사·검사·변호사”가 참여하도록 되어 있고(「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 제14조 제1항 제4호), 변호사가 심의위원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 변호사들은 교육적 관점보다 사법적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볼 가능성이 크다. 「학교폭력예방법」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인권을 보호받아야 할 학생은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모두이지만, 기본적으로 변호사는 가해자-피해자의 이분법적 구도가 익숙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법률과 소송의 전문가이지, 아동인권, 학생인권에 관한 훈련을 받은 경우는 많지 않다. 설령 범죄에 해당하는 학교폭력 사안이라 하더라도 다르게 풀어 갈 상상력의 여지가 협소한 부분도 문제다. 아동의 연령과 또래 관계의 특성, 학교 환경의 특수성과 같은 다양한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관계된 아동들의 입장을 두루 고려하면서 학교와의 소통 방식을 고민하는 논의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다음의 블로그 게시물은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의 일반적인 관점과 대응 방식을 보여 주며, 《시사인》 기사에서도 학교폭력 이후 민사 소송이 제기되었던 일이 언급된다.
1) 사건 초기의 상대방의 인정 진술? 믿을 수 있을까
법적으로 경찰, 심지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도 법원에 가서 번복하더라도 유효합니다. 즉 가해자는 언제든지 진술을 번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물며 경찰, 검찰에서의 진술도 그런데, 피해자 또는 선생님 앞에서 진술(가해 사실을 인정한 것)을 번복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학폭위 및 경찰로 진행된 많은 사건이 처음 인정한 내용을 완전히 번복하거나 일부 변경하는 사안이 굉장히 많습니다. 네, 맞습니다. 상대방은 진술의 ‘전체’가 아닌 ‘일부’를 변경하여 진술할 수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전체를 번복하는 사건은 상대적으로 적으나 사건 초기에 진술하였던 내용 중 일부를 심의위원회 내지 경찰에 가서 다르게 진술하는 경우는 너무나 자주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가해 학생 측 변호사입니다. ‘그럼 가해자가 나중에 가서 거짓말을 한다는 말인가요?’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거짓말이 아닙니다. 피해 학생 내지 피해 측 입장에서 볼 때 너무나 확실해 보이는 사실도 법률 전문가가 보았을 때 애매한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가해 학생 측 대리인 내지 변호인은 이러한 사실 관계의 공백 내지 애매모호한 부분을 정리해서 가해 학생에게 유리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건 초기에 가해 학생이 했던 ‘인정’ 발언을 금과옥조와 같이 믿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심의위원회 또는 경찰 신고를 하는 피해 측과 vs 초기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오는 가해 학생 측의 온도 차가 결국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데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더욱 간단하게 생각해 본다면, ‘피해 학생이 생각하기에 그렇게 명백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임에도 가해 학생이 변호사를 선임하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 보시면 답이 나오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 OO법률사무소 블로그 게시물 중, 2024년 3월 5일
생각보다 친구들끼리 치고받는 싸움 과정에서 학교폭력으로 신고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누구로 인하여 싸움이 시작되었는지 판단하여야 하며, 만약 상대방으로 인하여 싸움이 일어난 것이라면 당시 상황을 목격한 학생들의 사실 확인서, 교사의 진술 등을 확보하여 상대방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할 수 있고, 반대로 싸움을 건 쪽이라면 빠르게 사과한 후 상대방 학부모님과 합의를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어떤 사건이든 구체적인 사실 관계에 따라 대처는 달라질 수 있으며, 가해자 측이라고 하여도 섣부르게 사과를 하고 화해를 시도하게 되면 학폭위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상황에 대한 판단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교폭력 사건 또한 일반 범죄 사건처럼 수위는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학교폭력 소재의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더라도 학교폭력의 수위가 상당히 높으며, 실제로 연예계 학폭, 유명인 자제의 학폭 가해 등을 보아도 사회적으로 민감한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법률사무소 블로그 게시물 중, 2023년 3월 11일
이처럼 변호사가 주 업무로 하는 소송은 ‘승패’의 판단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변호사가 개입하는 학교폭력 사안의 모든 과정은 절차의 준수, 증거의 유무에 의존하게 된다. 초등 저연령 아동, 장애 아동, 이주배경 아동, 성소수자 아동, 기타 아동의 개별적 특성에 따른 상담과 대화, 중재와 회복을 위한 노력은 법과 지침이 정하는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문제로 지적되기 쉽고, 상호 이해와 협의를 위한 과정은 ‘증거의 부재’로 훼손되기 쉬운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아동은 무엇을 경험할 것인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아닐까.
▲ 학교에든, 보호자에게든 말해도 소용없다는 체념
▲ 반복해서 말하길 요구받는 괴로움, 그 와중에 달라지고 왜곡되는 기억
▲ 변호사 조력 등 위계적 권력의 체감
▲ 관계의 상실
▲ 억울하다는 분노(가해 학생은 왜 이렇게까지 대우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피해 학생 측은 가해 학생이 정당하게 처벌받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학교폭력 단계에서 최소한의 갈등 조정이 없었던 결과 서로의 상처가 더 커졌던 경우가 있었다. 해당 사안에서 가해 학생 A는 다른 학교 학생인 친구 B의 휴대전화를 몰래 보았는데, 사진첩에 있었던 B가 남자 사람 친구와 성적 관계를 맺는 영상을 다른 친구에게 전송하였다. 학교폭력 사안 통지를 받으며 이를 뒤늦게 알게 된 A의 어머니는 B와 그 가족에게 어떻게 사죄해야 할지 교사에게 물었는데, 당시 교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A의 어머니는 교사의 조언에 따라 B에게 연락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고, A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와 경찰 조사의 전 과정에서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처분도 다 수용했다. 그러다 해당 사건이 소년부 송치되어 재판을 받게 된 날, A는 사건 이후 처음 B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B의 어머니는 법정 앞에 찾아와서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는 A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엄벌을 호소하고 갔는데, 알고 보니 동영상 유포에 관계된 다른 가해 학생들은 이미 사과문도 보내고 합의도 했던 것이다. A가 사과나 합의를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사정은 반성이 없는 점으로 참작되어 A는 단기 소년원 송치 처분을 받았다. 큰 범죄인 건 맞지만, 재판 당시 A가 만 13세였고, 초범이며, 재범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정을 고려하면 상당히 중한 처분이라 볼 수 있었다.
나는 한부모 가정 지원 단체를 통해 위 보호 처분의 항고 사건 보조인으로 참여하면서 일련의 경과를 알게 되었고, 늦게나마 사죄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애썼다. A의 경우, 처음에는 9호 보호 처분에 대한 충격과 억울함이 컸으나, 나와의 상담, 소년원에서의 교육 등을 통해 행위의 중대성을 인지한 뒤에 진심으로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당시에 B의 변호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로는 B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일상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재고의 여지없이 디지털 성범죄는 발생하지 말아야 할 중범죄이다. 하지만 적어도 학교폭력 조사와 심의 단계에서 A가 B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전달할 기회가 제대로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학교가 피해 학생을 보호하는 방법은 분리와 접근 금지만이 아닐 텐데, 학교에 회복적 사법을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이 좀 더 있었다면 A의 반성과 B의 회복, 이들의 성장에도 좀 더 나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한편, 「학교폭력예방법」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하지만, 이 법의 수범자 중 하나인 대중과 언론은 폭력의 유무와 대응 방식(학교폭력을 했느냐, 누가 했느냐, 얼마나 수위 높은 폭력을 행했느냐, 보호자의 갑질이 있었느냐, 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했느냐 등)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2023년 경기도 용인에서의 장애 아동 학대 사건의 경우, 다수의 언론 매체가 해당 아동학대 사건의 배경으로 알려진 ‘학교폭력’ 사안과 관련한 장애 아동의 행위를 불필요하게 자세히 보도하면서, 장애 아동의 특성과 그 행동이 발현될 수 있는 맥락은 생략한 채 특정 행위만을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묘사해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였다. 해당 사안에서 학대 피해 장애 아동은 “문제 행동을 일삼는 파렴치한 가해자”로 각인되었고, 장애 아동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도 강화되었다. 범죄소년·촉법소년에 대한 처벌 강화 주장과 유사하게, 학교폭력은 연령, 장애, 경제적 상황 등 취약성을 매개하여 아동에 대한 사회적 혐오를 강화하는 실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일련의 절차가 학생 당사자를 중심에 두지 않는 현실이다. 학교가 학교폭력(의심) 사안을 인지한 이후 진행되는 학교장 자체 해결,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처분, 혹은 소송에 따른 결과 중에 어떤 단계이건 학생 당사자가 그 결과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고 보기 어렵다. 학교와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통지는 주로 학생 보호자를 대상으로 하고, 소송은 사실상 학생의 보호자가 주도한다. 그러나 보호자의 ‘동의’와 학생의 의사가 항상 일치한다고 볼 수 없으며, 보호자가 자신의 자녀인 학생과 다른 학생 모두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많지 않다. 과연 학교폭력 관련 제도가 학생을 위하여 설계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예방을 위한 교육’과 ‘교육적 대처’가 핵심이어야 한다
현행법과 지침에 따라 「학교폭력예방법」은 신고 등 학교폭력으로 사안이 접수되어야 적용된다.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교육부, 2024)에 따를 때, 피해 학생, 목격 학생, 보호자 등이 직접 교사에게 말하는 경우 외에도 교사가 학생에 대한 개별 상담으로 파악하거나, 학생들에 대한 설문 조사 등의 방식도 ‘신고’가 될 수 있다.
일체의 신고·조사 방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동이 접근할 수 있는, 아동 친화적인 신고·접수의 경로는 있어야 한다. 아동의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은 폭넓게 준비되어야 하고, 신고와 법적 다툼이 권리 구제에 필수적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학생 간의 여하한 다툼이나 분쟁을 ‘학교폭력’으로 명명하고 ‘신고·접수’를 통해 기록을 시작하는 순간, 설령 그 결과가 학교폭력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거나 정리되더라도 조사를 거치면서 갈등이 더욱 커질 우려도 적지 않고,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는 가해·피해 학생 모두에게 낙인이 될 수 있다. 학교폭력 사안이 인정되지 않은 사안의 피해 학생은 세상에 대한 불신, 또래에서 배제되는 등의 박탈감을 겪을 수 있고, 만약 피해 학생이 평소 문제 행동으로 미운털이 박힌 학생이었다면 학교폭력의 문제가 ‘네 잘못’으로 치부될 때도 있으니, 이는 제도의 사각지대이다.
학교폭력 신고에 따른 ‘조사’의 형식도 각종 사법적 조치를 예정하는 불안감을 가중한다. 현재의 조사 관행과 실무는 폭력이 문제라는 것, 문제 해결에 학생 당사자의 태도와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내하는 과정이 아니라, 처벌 혹은 처분의 대상인지와 아닌지를 가늠하는 것에 주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학교폭력 사안의 첫 단계부터 변호사 조력 등 상호 공격적 형태의 방어를 취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 가해의 불인정 또는 축소, 피해의 강조와 반복, 대화의 단절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6조 제1항의 단서 규정[ref]“학교의 장은 학교폭력 사건을 인지한 경우 피해 학생의 반대 의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지체 없이 가해자(교사를 포함한다)와 피해학생을 분리하여야 하며, 피해 학생이 긴급 보호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제1호부터 제3호까지 및 제6호의 조치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학교의 장은 심의위원회에 즉시 보고하여야 한다.”[/ref]도 검토가 필요하다. 피해 학생의 반대 의사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지체 없이 가해자와 피해 학생을 분리하도록 하는 이른바 ‘즉시 분리’ 제도는 학교폭력 사안을 마주하는 교원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학교폭력으로 명명된 모든 사안을 처벌의 관점에서 접근하게 한다. 학교폭력의 정도가 심각하거나 피해 학생이 겪는 불안감이 상당한 경우와 같이 즉각적인 분리가 필요한 사안도 있다. 하지만 학생 간의 관계에 위해가 되지 않는다면 공동체 회복을 위한 접근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가해 학생 역시 학교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해야 할 학교의 구성원이고, 갈등의 요소를 줄여 나가는 일은 당사자 학생들만의 몫이 아니라, 동료 학생들과 교원들 공동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런 사건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방과후 돌봄 시간 중, 남학생 2명(A, B), 여학생 1명(C)이 남자 화장실에서 서로의 성기를 만졌던 일이다. 사건 직후에 방과후 교사가 화장실에 같이 있는 학생들을 인지해 나오도록 했고, 학생들의 부모들에게 세 아이가 함께 화장실 같은 칸에 있었던 일까지는 설명했다. 그런데 이날 저녁, A의 어머니는 담임 교사의 전화를 받았고, 아이들 사이에 성기를 만지는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C의 어머니가 학교에 알렸다고 했다. 이에 A의 어머니도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A로부터 B와 C가 ‘비밀 놀이’를 하자며 제안해서 화장실에 가게 되었고, 본인은 처음 겪는 일이 불편하고 싫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때 학교의 조치는 다음 날부터 A와 B의 분리, 등교 금지였다. 피해학생 C는 이틀 뒤 해바라기센터에서 상담도 받았다고 알려 왔다. A의 부모는 고민 끝에 변호사 상담을 했는데, 당시 변호사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경우 남자들은 범죄자 취급을 받고,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어렵다. 해바라기센터는 성범죄 피해 여성을 위한 기관이라 여성의 말에 더 많은 힘을 실어 주고, 남자에게 몹시 불리하다. 처음부터 해바라기센터에 데려간 것은 민사 소송도 생각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나는 A가 내담하던 상담센터 선생님이 도움을 요청하면서 A의 가족과 소통하게 되었고, 이후 경찰 조사 과정까지 모니터링하였다. 다행히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A가 만 7세에 불과했고, 경찰에서도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해 주어 이후 추가적인 학내 갈등이나 소송은 없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사이에서 발생한 위의 일을 단순히 ‘학교폭력’, ‘성범죄’로 바라보았던 학교의 대처는 아쉬움이 크다. (A와 C가 같은 반 학생이 아니었음에도) 즉시 분리를 위한 등교 금지가 결정된 순간, A와 B는 성범죄자, C는 성범죄 피해 여성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학생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피해를 주장하는 학부모와 방어할 수밖에 없는 학부모의 존재만 남았다. 학생들은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는데, 누군가가 떠나거나 서로 피하려 애쓰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 되어 버린 셈이다. 없었으면 좋을 일이나, 발생한 일에 대해서 잘 대처하는 것도 교육의 역할이다. 학교폭력 대응도 교육의 범주인데, 학교의 첫 대처는 교육이라 보기 어려웠다.
부디 아동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자. 교사와 학생 간 상담 과정에서 인지된 학교폭력(의심)의 문제는 반드시 학교폭력 사안으로 접수부터 해야 할까? 즉각적인 분리가 필요한 상황도 있겠지만, 학생 등 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사전 단계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논의에는 교사의 권한 인정과 역량 강화도 요청된다. 학교폭력에 대응해야 할 교사의 노동 환경 개선과 맞닿아 있는 문제다.
나의 이러한 견해가 폭력 사안에 있어 가해 학생에 대한 징계 등 적극적인 개입과 사후 조치, 혹은 「소년법」에 따른 보호 조치가 필요한 경우가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을 감지하는 학내 구성원의 책임에 더 큰 무게를 두면서, 갈등을 풀어 갈 다양한 장치들이 적극 논의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학교폭력 사안에 있어 인권이 보호되어야 할 학생은 모든 학생이다.
학생의 참여와 의견 청취는 가장 중요한 권리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의 〈아동 권리 협약〉 이행 보고에 따른 최종 견해에서 “온라인 폭력 및 학교폭력을 포함한 높은 아동학대 발생률(26(a)항)” 및 “널리 퍼져 있는 학교 내 집단 괴롭힘과 학업 성적 등과 관련된 차별(41(i)항)”을 우려하면서, “사이버 괴롭힘을 포함하여 집단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 예방, 조기 발견 메커니즘, 아동 및 전문가의 역량 강화, 중재 절차, 사례 관련 자료 수집을 위한 통일된 지침과 같은 조치를 강화할 것(42(i)항)”을 권고하였다. 이와 함께 다른 권고에서 “교사를 포함한 모든 성범죄자가 강요의 증거 유무와 상관없이 기소(29(f)항)”되도록 하고, 아동 사법 제도에 관한 공정한 절차와 차별 없는 대우 등을 언급한 최종 견해의 전반적인 맥락을 비추어 볼 때, 학생 간의 학교폭력 사안에서는 예방을 위한 노력, 학교 구성원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 조성, 전문성을 갖춘 중재자의 역할, 누적된 사례를 통한 지속적인 메커니즘 개선 등이 아동인권을 위한 과제라 할 것이다. 여기서도 학교폭력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분리, 가해 학생 처벌 강화는 우선순위에 해당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아동의 참여와 의견 청취권” 보장은 학교폭력 사안을 다루는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이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일반 논평 제12호〉를 통해 “아동의 견해에 정당한 비중을 두는 것은 차별을 없애고 약자에 대한 괴롭힘 예방, 지도 방안에서 특히 중요(109항)”하며, “아동을 지도에서 배제하거나 정학 처분을 내릴 경우에는 아동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사법적 검토를 받아야 한다(114항)”고 강조하였다. 아동이 관계된 사안에서 보호자의 조력도 마땅히 중요하지만, 핵심은 학생 당사자의 참여권, 의견에 대한 정당한 비중이다. 이 목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에 집중해야 하며, 듣는 과정도 교육적 맥락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하지만 「학교폭력예방법」의 몇몇 규정만 보아도, 학생과 보호자의 의견에 동등한 무게를 두려는, 필요시 학생의 의견에 더 큰 비중을 두려는 관점은 부족하다. 가해 학생에 대한 처분의 집행 정지 결정에 관한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의4 제1항이 “피해 학생 또는 그 보호자의 의견을 청취하여야” 하고, “피해 학생 또는 그 보호자가 의견 진술의 기회를 포기한다는 뜻을 명백히 표시한 경우”에는 듣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은 보호자의 의사가 학생의 의사와 같거나 학생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전제했다고 보인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 현실에서 학생과 보호자의 의사가 항상 같을 수 없으며, 때로 보호자가 자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결정을 할 때도 있다. 그나마 “피해 학생 또는 그 보호자의 요청”(제13조 제5항), “피해 학생과 그 보호자의 심의위원회 개최 요구 의사”(제13조의2 제2항 제1호), “피해 학생 및 그 보호자가 심의위원회 개최를 원하는 경우”(제13조의2 제3항), “피해 학생 및 그 보호자”(제16조 제2항), “가해 학생 및 보호자”(제17조 제8항)와 같은 규정들은 학생과 보호자 모두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으나, 보호자(어른)의 의견에 우선순위를 두곤 하는 익숙한 관행 속에서 학생의 의견에는 독자적으로 비중이 부여되기 어렵다. 당연히 잘 들으려는 노력도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학생의 의견을 듣는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재한 상황에서, 학생은 학교폭력 사안의 주변부로 밀려나곤 한다.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법에 구체적으로 반영하기엔 한계가 있겠지만, 적어도 학생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절실하지 않을까.
「학교폭력예방법」이 정말로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 그리고 “학생의 인권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면, ① 예방을 위한 사전 작업과 ② 탐지의 노력 이후의 단계에서, ③ 학생이 학교 전반을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적인 책무여야 한다. 학생 당사자의 존재가 온전히 존중되는 환경은 학교에 대한 모두의 신뢰를 키우는 출발이자 신뢰가 지켜지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학생의 참여가 보장되는 학교 환경이라면, 학교장이 학교폭력 사안을 은폐·축소하리라는 의심도 결과적으로 완화될 것이다.
개인적 견해로, 현재의 「학교폭력예방법」은 아동 사법[ref]국내에서는 ‘소년 사법(juvenile justice)’이라고 하나,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일반 논평 제24호〉를 통해 ‘소년(juvenile)’이라는 용어가 갖는 낙인과 협소한 범주를 극복하고자, 이를 ‘아동 사법(child justice)’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ref]과 교육 복지의 중간에 위치하며, 교육 복지는 아동 보호 체계와 청소년 복지·지원 체계의 경계에서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약한 학생이 상대적으로 학교폭력의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더 크고, 학교폭력의 경험 자체로 학생의 취약성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의 지위를 이렇게 해석할 때, 학교라는 공간을 매개로 발생하는 학교폭력의 대처에는 학생 개인과 가정 환경, 학교 및 주변 환경을 아울러 살피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학교폭력의 책임을 학생과 그 보호자의 탓으로 넘기는 것은 교육은 물론 아동 보호에 대한 공적인 책임을 외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에서 사법 외적인 절차를 상상하고 실천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렇게 가장 기초적인 예방부터, 잘못을 알고 인정하는 방법, 사과를 수용하고 나를 존중하는 방법, 서로 함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 가는 과정이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은 모든 사람의 기본적 인권이고, 학교를 통한 공교육은 모든 아동의 권리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