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육을 열며
아이들은 어떻게, 무엇을 통해
배우는가
전세란
junseran@gmail.com
본지 편집위원,
서울 초등 교사
봄이다. 요즘 우리 반 어린이들은 한창 식물에 빠져 있다. 시작은 과학 수업에서 심은 강낭콩이었다. 우리는 자기 화분에 손가락으로 구멍 4개를 송송 뚫어 붉은 강낭콩을 심었다. 주말을 지난 어느 아침, 화분마다 초록의 작은 싹이 고개를 내민 걸 발견했을 때, 우리는 환호를 터뜨렸다. 강낭콩 싹 4개가 모두 작은 화분에 자랐다. 하나가 건강하게 자랄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나머지 3개는 학교 화단에 옮겨 심자고 말했더니, 어린이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즈음 분양받은 학급 텃밭에 상추와 방울토마토, 감자도 심었다. 어린이들은 점심시간마다 급식을 서둘러 먹고는 식물에 물을 준다고 텃밭에 가기 일쑤였다. 쑥도 캐 오고, 떨어진 벚꽃 한 송이도 주워 오고, 잡초처럼 섞여 있는 애기똥풀도 꺾어 오고, 이름 모를 풀뿌리도 캐 와 교실 앞 책상에 두었다. 그렇게 교과서에 나온 ‘식물의 생활’, ‘식물의 한살이’, ‘보타니컬 아트’, ‘주의 깊게 관찰하기’를 기꺼이 몸으로, 마음으로 익히며 배우고 있다.
13년의 교직 생활 중 올해만큼 자주 감탄한 해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4학년은 작년 말 학년 희망 조사에서 ‘비선호 학년’으로 꼽혔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새로 도입되는 ‘AI 디지털교과서’ 사용에 대한 우려였다. 더구나 올해부터 적용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연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전자칠판, 디벗❶까지 올해 3, 4학년은 여러모로 변화가 많은 학년이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부담스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함께 4학년을 희망한 동료 교사들을 믿고 마음을 내었다.
‘세계 최초’로 도입한 교실 혁명 도구의 실태
2월 중 하루, 새 학년 집중 준비를 위해 우리 학교 교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특수부와 학년부의 부장을 소개하고, 각 부서의 2025학년도 교육 활동을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정보부장은 3, 4학년 AI 디지털교과서 채택 여부를 동학년 교사들끼리 협의하여 짧은 시간 안에 정하도록 안내하였다. 분명 자율적 결정이라고 했지만, “학교에서 구독료를 내지도 않고, 교육청에서 지원하니 일단 받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라는 정보부장의 사견이 뒤따랐다. 그 말은 꽤 효과적이었다. AI 디지털교과서를 경험해 보고 싶은 교사가 일부 있던 터라 “일단 받아 보자”는 목소리가 더 우세했다. 우리 학교는 3, 4학년 수학, 영어 모두 AI 디지털교과서를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개발된 교과서를 누구도 구경조차 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서울의 AI 디지털교과서 채택률은 24%이다. 세종은 8%, 대구는 98%로 지역별 편차가 상당하다.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지만, 채택률이 높은 지역은 학교에 압력이나 입김이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로 시도된 수업 혁신이자 교실 혁명의 시작이라고 자랑한 디지털교과서의 활용률은 어떨까? 지난 4월 25일 배포된 백승아 국회의원실의 자료❷에 따르면, AI 디지털교과서의 일평균 접속률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한 학기의 반 정도가 지난 시점, 우리 학교의 활용률은? 0%다. 석면 공사로 인해 3월 중순에 새 학년을 시작했고, 디벗 충전함 설치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도 몇 주가 걸렸다. 5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AI 디지털교과서 가입 가정통신문이 배부되었다. 여기서부터가 또 난항이다. AI 디지털교과서를 이용하기 위해 우선 모든 학생이 법정대리인 동의 절차를 통해 디지털원패스 포털에 가입해야 한다. 그리고 가입 후에는 디지털원패스와 학교에서 채택한 출판사에 개인정보 활용을 동의하는 절차를 각각 진행해야 한다. 그사이에 교사는 디지털원패스와 AI 디지털교과서 포털에 접속해 학생들이 모두 가입했는지, 전부 동의했는지 틈틈이 확인하고, 안 되었으면 보호자에게 개별 연락을 취해야 했다. 이렇게 3주가량을 보내고 나니, 이제 겨우 모든 학생이 AI 디지털교과서를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
AI 디지털교과서의 낮은 접속률은 단순히 까다로운 가입 절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3월에 AI 디지털교과서 사용 기반을 갖추었다는 옆 학교 교사에 의하면, 아침마다 학교의 전달 사항을 담은 ‘일일 교육 계획’에는 “AI 디지털교과서 일주일에 한 번 사용하기”가 적혀 있다고 한다. 교사들의 자율적 판단에 따른 활용이 권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심지어 대구시교육청은 AI 디지털교과서 접속률이 0%인 세 학교를 콕 집어 실사를 예고했다고 한다. 교육청 실사 예고 이후, 교사들 사이에서 ‘한 주에 한두 번 정도는 접속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는 결국 교사들에게 암묵적인 사용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AI 디지털교과서가 교육 자료로서 활용률이 떨어지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사용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왜 접근성이 떨어지는지 그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해 보아야 한다. AI 디지털교과서의 최소한의 역할로 여겨지는 ‘수업 보조 자료’라는 효용성조차도 교사들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위해 무리하게 진행한 졸속 사업의 실태이다.
교육복지, 기초학력, 예술교육 대신 에듀테크
채택률도, 가입률도, 접속률도 떨어지는 AI 디지털교과서를 위해 사용되는 예산은 어떻게 될까. 교육부 고시 제2025-87호에 따르면 책정된 디지털교과서의 연간 구독료는 52,500원에서 100,000원 수준이다. 우리 학교는 수학과 영어를 채택하고 있다. 수학 교과서는 학기당 45,250원인데, 우리 학교 3, 4학년 학생 약 280명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학기당 1267만 원, 연간 2500만 원이 넘는다. 영어 교과서의 구독료는 연간 60,000원으로 계산해 보면 1600만 원이 넘는다. 교육청에서 우리 학교만을 위해 4100만 원이 넘는 구독료를 감당하고 있다. 서울 전체를 놓고 보면, 1,317개 학교가 AI 디지털교과서를 채택하고 있으니 얼추 계산해도 500억 원이 넘는다. 물론 학교급에 따라, 또 선정 학년과 교과에 따라 금액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접속률 10% 미만의, 효용도 떨어지는 AI 디지털교과서에 막대한 예산이 낭비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24년과 2025년의 서울특별시 교육비 특별회계 예산 개요를 비교해 보면, 그 재원이 무엇을 절감하여 마련된 예산인지 대충 짚어 봐도 한눈에 드러난다. 디지털혁신미래교육과의 교과용도서지원비는 2024년 약 570억 원에서 1160억 원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한편 삭감된 주요 예산은 기초학력향상지원(127억→83억), 교육복지우선지원학교지원(104억→44억), 지역연계미래교육과정운영(53억→14억), 교육회복지원(80억→40억), 다문화학생지원(54억→38억), 장애성인평생교육(13억→삭제), 학교밖청소년지원(15억→삭제), 학교예술교육지원(53억→삭제), 장애학생교육활동지원(11억→삭제) 등이다. 이렇게 삭감된 예산들이 AI 디지털교과서를 개발한 사기업에게 돌아간 것이다. 예산을 검토하는 내내 분노가 치밀고 황망하다. 무엇이, 어떤 교육과 지원이 더 시급하고 필요한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
작년부터 학교와 교육청에선 ‘에듀테크’를 붙인 각종 AI·디지털 교육 연수가 줄줄이 이어졌다. 우리 학교에서도 디벗과 AI 디지털교과서 선정을 앞두고 많은 연수가 개설되었고, 일단 알아 두자는 마음으로 되는 대로 참여했다. (어느 연수의 끄트머리엔 디지털 교육 연수 배지를 모아 해외 연수를 가 보자는 사탕발림 같은 홍보가 덧붙었다. 최근 들어 가장 호화스러운 연수 환경을 누릴 수 있는 연수 주제도 에듀테크 관련 연수이다.) 그러다 문득 관련 연수들에서 의아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디벗 및 디지털 도구 관련 연수들은 대체로 어떻게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교사의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꽤 강조하여 설명한다. “지금부터 선생님들이 가장 궁금해하시는 점을 알려 드릴게요”라는 말 뒤에는 학생들이 딴짓을 할 수 없도록 교사의 화면을 똑같이 공유하고 잠금을 거는 방법, 교사 기기를 통해 모든 학생의 기기 화면을 확인하는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AI를 활용한 신속한 문제 개발, 과제 수합의 편의성, 효율적인 평가, 학생 관리의 수월성 등이 에듀테크 교육의 주된 장점으로 소개된다. AI 디지털교과서의 중요한 도입 이유로 꼽히는 ‘맞춤형 학습’ 역시 학생 개개인이 일으키는 배움에 주목하기보다는 학생 답안 데이터에 기반해 제공되는 맞춤형 문제 은행에 가깝다. 에듀테크 교육의 목적에는 학생의 성장과 발달은 빠져 있거나 혹은 ‘문제를 잘 푸는’, ‘프롬프트를 잘 만드는’, ‘디지털 도구를 잘 활용하는’ 방향의 성장만을 주목한다. 이 지점에서 AI·디지털 교육이라는 도구로 드러내는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각기 다른 역량을 지닌 개별 존재로서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고 획일화된 루트에 필요한 특정 능력만을 갖춘 인간을 양성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할 때
늘 우리 반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교육 활동은 ‘기린쌤 데이트’였다. 복지 대상 아동을 지원하는 ‘희망교실’이라는 예산을 활용해 그 아동들을 포함해 다양하게 그룹을 구성하여 방과 후에 서점이나 박물관을 가거나 독서 동아리를 꾸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학생들의 관계를 고려해 상당히 고심하여 그룹을 구성하였고, 그룹 학생들의 특성에 맞는 활동을 계획하려고 애썼다. 교실에서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학생들의 이야기와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고, 학생들이 교실에서 느끼는 정서 상태나 관계의 역동도 미묘하게 달라지는 시간이었다. 올해 희망교실 선정 학교는 1,090개교에서 295개교로 줄었다.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중점학교가 아닌 우리 학교는 거의 신청조차 불가능해졌다. 이뿐만 아니라 학급·학년별로 학생 중심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예산도 폭삭 줄었고, 교사와 예술가들이 협업하여 학생들에게 다양한 예술 교육 기회를 제공해 오던 사업은 아예 사라졌다. 모두 우리 반 아이들이 즐겁게 배움을 일으키던 교육 활동들이었다.
올해 유독 수학 학습을 어려워하는 학생이 있다. 작년에는 기초학력 예산을 활용해 방과 후 보충 지도를 위한 문제집이나 간식을 구입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담임 교사의 기초학력 지도를 위한 예산이 일절 없다. 그렇다고 누적된 학습 부진으로 수학 시간마다 괴로워하는 기현(가명)이를 모른 체할 수 없었다. 학습지를 만들어 4월에 며칠 동안 방과 후에 기현이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그런데 아무리 정성껏 가르치고 잘한다고 칭찬하고 맛있는 간식을 사 주어도, 기현이는 내 앞에서 금세 얼어붙거나 도망갈 틈을 노리곤 했다. 방법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5월부터는 함께 수학 공부도 하고 서로 알려 주기도 하는 ‘수학 동아리’를 모집한다고 우리 반 학생들에게 홍보했다.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 서너 명이 함께하겠다고 나섰다. 첫날, 기현이는 처음에는 똑같이 몸을 비틀다가도 자신을 돕는 친구를 ‘마녀 선생님’으로 칭하며 서로 놀리고 웃으며 과제를 해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엔 친구들과 꽤 빠르게 주어진 과제를 해결했다. 남은 20분간 교실에서 풍선을 날리며 놀던 기현이가 말했다. “내일 또 할래요.” “수학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데 괜찮아?”라는 내 물음에 “괜찮다”며 “공부하고 친구들과 같이 놀고 갈래요”라고 한다. 나 혼자 기현이를 남겨 놓고 있을 땐 서로 고되었는데, 친구들과 함께하면서부터 기현이는 즐겁게 배우고 있다. 기현이에게 필요한 (AI 디지털교과서의 최대 장점이라고 자랑하는) ‘맞춤형 교육’은 친구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었다.
식물이 자라는 것을 유심히 관찰할 때, 전자칠판에 자유 낙서를 어느 정도 허용할지 학급회의로 결정할 때, 어려워하는 친구를 서로 돕겠다고 모여 앉아 있을 때, 학생들이 어떻게 배우고 성장하는지 올해는 학급 학생 수가 적은 터라 더 또렷하게 보인다. 학생들이 협력, 의사소통, 배려, 갈등 조절, 공동체성 등의 가치를 어떤 교육 활동과 일상 경험에서 배우는지, 그럼으로써 어떻게 성장하는지 말이다. 물론 AI 시대의 흐름에 맞춰 디지털 활용 능력을 기르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AI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교육이 한 인간의 성장과 발달이라는 교육의 궁극적 목표와 어떤 방향성을 공유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들어 본 바가 없다. 효율적인 학생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디지털 교육 연수는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다. AI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학생들의 가입 절차를 모두 마친 후, 학생 디벗으로 먼저 접속해 둘러본 AI 디지털교과서 시스템은 나를 더 분노하게 했다. 이만한 예산을 들여 고작 이 정도의 기능으로 학생들의 다른 배움 기회를 깎아 먹었다니……. 이 사업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다시 재고해야 한다. AI·디지털을 활용하는 교육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교육이 어떤 배움을 지향하고 있는지, 한정된 교육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지, 학생을 중심에 둔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고민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❶ 디벗(Digital+벗)은 ‘스마트기기는 나의 디지털 학습 친구’라는 의미로, 서울시교육청에서 온라인 학습 플랫폼을 마련해 학생들에게 1인 1기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급하는 디지털기기이다.
❷ “AI 디지털교과서, 대부분 학교서 일 평균 접속률 10% 못 미쳐”, 〈한국대학신문〉, 2025년 4월 25일.
오늘의 교육을 열며
아이들은 어떻게, 무엇을 통해
배우는가
전세란
junseran@gmail.com
본지 편집위원,
서울 초등 교사
봄이다. 요즘 우리 반 어린이들은 한창 식물에 빠져 있다. 시작은 과학 수업에서 심은 강낭콩이었다. 우리는 자기 화분에 손가락으로 구멍 4개를 송송 뚫어 붉은 강낭콩을 심었다. 주말을 지난 어느 아침, 화분마다 초록의 작은 싹이 고개를 내민 걸 발견했을 때, 우리는 환호를 터뜨렸다. 강낭콩 싹 4개가 모두 작은 화분에 자랐다. 하나가 건강하게 자랄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나머지 3개는 학교 화단에 옮겨 심자고 말했더니, 어린이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즈음 분양받은 학급 텃밭에 상추와 방울토마토, 감자도 심었다. 어린이들은 점심시간마다 급식을 서둘러 먹고는 식물에 물을 준다고 텃밭에 가기 일쑤였다. 쑥도 캐 오고, 떨어진 벚꽃 한 송이도 주워 오고, 잡초처럼 섞여 있는 애기똥풀도 꺾어 오고, 이름 모를 풀뿌리도 캐 와 교실 앞 책상에 두었다. 그렇게 교과서에 나온 ‘식물의 생활’, ‘식물의 한살이’, ‘보타니컬 아트’, ‘주의 깊게 관찰하기’를 기꺼이 몸으로, 마음으로 익히며 배우고 있다.
13년의 교직 생활 중 올해만큼 자주 감탄한 해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4학년은 작년 말 학년 희망 조사에서 ‘비선호 학년’으로 꼽혔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새로 도입되는 ‘AI 디지털교과서’ 사용에 대한 우려였다. 더구나 올해부터 적용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연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전자칠판, 디벗❶까지 올해 3, 4학년은 여러모로 변화가 많은 학년이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부담스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함께 4학년을 희망한 동료 교사들을 믿고 마음을 내었다.
‘세계 최초’로 도입한 교실 혁명 도구의 실태
2월 중 하루, 새 학년 집중 준비를 위해 우리 학교 교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특수부와 학년부의 부장을 소개하고, 각 부서의 2025학년도 교육 활동을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정보부장은 3, 4학년 AI 디지털교과서 채택 여부를 동학년 교사들끼리 협의하여 짧은 시간 안에 정하도록 안내하였다. 분명 자율적 결정이라고 했지만, “학교에서 구독료를 내지도 않고, 교육청에서 지원하니 일단 받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라는 정보부장의 사견이 뒤따랐다. 그 말은 꽤 효과적이었다. AI 디지털교과서를 경험해 보고 싶은 교사가 일부 있던 터라 “일단 받아 보자”는 목소리가 더 우세했다. 우리 학교는 3, 4학년 수학, 영어 모두 AI 디지털교과서를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개발된 교과서를 누구도 구경조차 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서울의 AI 디지털교과서 채택률은 24%이다. 세종은 8%, 대구는 98%로 지역별 편차가 상당하다.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지만, 채택률이 높은 지역은 학교에 압력이나 입김이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로 시도된 수업 혁신이자 교실 혁명의 시작이라고 자랑한 디지털교과서의 활용률은 어떨까? 지난 4월 25일 배포된 백승아 국회의원실의 자료❷에 따르면, AI 디지털교과서의 일평균 접속률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한 학기의 반 정도가 지난 시점, 우리 학교의 활용률은? 0%다. 석면 공사로 인해 3월 중순에 새 학년을 시작했고, 디벗 충전함 설치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도 몇 주가 걸렸다. 5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AI 디지털교과서 가입 가정통신문이 배부되었다. 여기서부터가 또 난항이다. AI 디지털교과서를 이용하기 위해 우선 모든 학생이 법정대리인 동의 절차를 통해 디지털원패스 포털에 가입해야 한다. 그리고 가입 후에는 디지털원패스와 학교에서 채택한 출판사에 개인정보 활용을 동의하는 절차를 각각 진행해야 한다. 그사이에 교사는 디지털원패스와 AI 디지털교과서 포털에 접속해 학생들이 모두 가입했는지, 전부 동의했는지 틈틈이 확인하고, 안 되었으면 보호자에게 개별 연락을 취해야 했다. 이렇게 3주가량을 보내고 나니, 이제 겨우 모든 학생이 AI 디지털교과서를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
AI 디지털교과서의 낮은 접속률은 단순히 까다로운 가입 절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3월에 AI 디지털교과서 사용 기반을 갖추었다는 옆 학교 교사에 의하면, 아침마다 학교의 전달 사항을 담은 ‘일일 교육 계획’에는 “AI 디지털교과서 일주일에 한 번 사용하기”가 적혀 있다고 한다. 교사들의 자율적 판단에 따른 활용이 권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심지어 대구시교육청은 AI 디지털교과서 접속률이 0%인 세 학교를 콕 집어 실사를 예고했다고 한다. 교육청 실사 예고 이후, 교사들 사이에서 ‘한 주에 한두 번 정도는 접속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는 결국 교사들에게 암묵적인 사용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AI 디지털교과서가 교육 자료로서 활용률이 떨어지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사용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왜 접근성이 떨어지는지 그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해 보아야 한다. AI 디지털교과서의 최소한의 역할로 여겨지는 ‘수업 보조 자료’라는 효용성조차도 교사들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위해 무리하게 진행한 졸속 사업의 실태이다.
교육복지, 기초학력, 예술교육 대신 에듀테크
채택률도, 가입률도, 접속률도 떨어지는 AI 디지털교과서를 위해 사용되는 예산은 어떻게 될까. 교육부 고시 제2025-87호에 따르면 책정된 디지털교과서의 연간 구독료는 52,500원에서 100,000원 수준이다. 우리 학교는 수학과 영어를 채택하고 있다. 수학 교과서는 학기당 45,250원인데, 우리 학교 3, 4학년 학생 약 280명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학기당 1267만 원, 연간 2500만 원이 넘는다. 영어 교과서의 구독료는 연간 60,000원으로 계산해 보면 1600만 원이 넘는다. 교육청에서 우리 학교만을 위해 4100만 원이 넘는 구독료를 감당하고 있다. 서울 전체를 놓고 보면, 1,317개 학교가 AI 디지털교과서를 채택하고 있으니 얼추 계산해도 500억 원이 넘는다. 물론 학교급에 따라, 또 선정 학년과 교과에 따라 금액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접속률 10% 미만의, 효용도 떨어지는 AI 디지털교과서에 막대한 예산이 낭비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24년과 2025년의 서울특별시 교육비 특별회계 예산 개요를 비교해 보면, 그 재원이 무엇을 절감하여 마련된 예산인지 대충 짚어 봐도 한눈에 드러난다. 디지털혁신미래교육과의 교과용도서지원비는 2024년 약 570억 원에서 1160억 원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한편 삭감된 주요 예산은 기초학력향상지원(127억→83억), 교육복지우선지원학교지원(104억→44억), 지역연계미래교육과정운영(53억→14억), 교육회복지원(80억→40억), 다문화학생지원(54억→38억), 장애성인평생교육(13억→삭제), 학교밖청소년지원(15억→삭제), 학교예술교육지원(53억→삭제), 장애학생교육활동지원(11억→삭제) 등이다. 이렇게 삭감된 예산들이 AI 디지털교과서를 개발한 사기업에게 돌아간 것이다. 예산을 검토하는 내내 분노가 치밀고 황망하다. 무엇이, 어떤 교육과 지원이 더 시급하고 필요한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
작년부터 학교와 교육청에선 ‘에듀테크’를 붙인 각종 AI·디지털 교육 연수가 줄줄이 이어졌다. 우리 학교에서도 디벗과 AI 디지털교과서 선정을 앞두고 많은 연수가 개설되었고, 일단 알아 두자는 마음으로 되는 대로 참여했다. (어느 연수의 끄트머리엔 디지털 교육 연수 배지를 모아 해외 연수를 가 보자는 사탕발림 같은 홍보가 덧붙었다. 최근 들어 가장 호화스러운 연수 환경을 누릴 수 있는 연수 주제도 에듀테크 관련 연수이다.) 그러다 문득 관련 연수들에서 의아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디벗 및 디지털 도구 관련 연수들은 대체로 어떻게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교사의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꽤 강조하여 설명한다. “지금부터 선생님들이 가장 궁금해하시는 점을 알려 드릴게요”라는 말 뒤에는 학생들이 딴짓을 할 수 없도록 교사의 화면을 똑같이 공유하고 잠금을 거는 방법, 교사 기기를 통해 모든 학생의 기기 화면을 확인하는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AI를 활용한 신속한 문제 개발, 과제 수합의 편의성, 효율적인 평가, 학생 관리의 수월성 등이 에듀테크 교육의 주된 장점으로 소개된다. AI 디지털교과서의 중요한 도입 이유로 꼽히는 ‘맞춤형 학습’ 역시 학생 개개인이 일으키는 배움에 주목하기보다는 학생 답안 데이터에 기반해 제공되는 맞춤형 문제 은행에 가깝다. 에듀테크 교육의 목적에는 학생의 성장과 발달은 빠져 있거나 혹은 ‘문제를 잘 푸는’, ‘프롬프트를 잘 만드는’, ‘디지털 도구를 잘 활용하는’ 방향의 성장만을 주목한다. 이 지점에서 AI·디지털 교육이라는 도구로 드러내는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각기 다른 역량을 지닌 개별 존재로서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고 획일화된 루트에 필요한 특정 능력만을 갖춘 인간을 양성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할 때
늘 우리 반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교육 활동은 ‘기린쌤 데이트’였다. 복지 대상 아동을 지원하는 ‘희망교실’이라는 예산을 활용해 그 아동들을 포함해 다양하게 그룹을 구성하여 방과 후에 서점이나 박물관을 가거나 독서 동아리를 꾸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학생들의 관계를 고려해 상당히 고심하여 그룹을 구성하였고, 그룹 학생들의 특성에 맞는 활동을 계획하려고 애썼다. 교실에서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학생들의 이야기와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고, 학생들이 교실에서 느끼는 정서 상태나 관계의 역동도 미묘하게 달라지는 시간이었다. 올해 희망교실 선정 학교는 1,090개교에서 295개교로 줄었다.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중점학교가 아닌 우리 학교는 거의 신청조차 불가능해졌다. 이뿐만 아니라 학급·학년별로 학생 중심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예산도 폭삭 줄었고, 교사와 예술가들이 협업하여 학생들에게 다양한 예술 교육 기회를 제공해 오던 사업은 아예 사라졌다. 모두 우리 반 아이들이 즐겁게 배움을 일으키던 교육 활동들이었다.
올해 유독 수학 학습을 어려워하는 학생이 있다. 작년에는 기초학력 예산을 활용해 방과 후 보충 지도를 위한 문제집이나 간식을 구입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담임 교사의 기초학력 지도를 위한 예산이 일절 없다. 그렇다고 누적된 학습 부진으로 수학 시간마다 괴로워하는 기현(가명)이를 모른 체할 수 없었다. 학습지를 만들어 4월에 며칠 동안 방과 후에 기현이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그런데 아무리 정성껏 가르치고 잘한다고 칭찬하고 맛있는 간식을 사 주어도, 기현이는 내 앞에서 금세 얼어붙거나 도망갈 틈을 노리곤 했다. 방법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5월부터는 함께 수학 공부도 하고 서로 알려 주기도 하는 ‘수학 동아리’를 모집한다고 우리 반 학생들에게 홍보했다.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 서너 명이 함께하겠다고 나섰다. 첫날, 기현이는 처음에는 똑같이 몸을 비틀다가도 자신을 돕는 친구를 ‘마녀 선생님’으로 칭하며 서로 놀리고 웃으며 과제를 해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엔 친구들과 꽤 빠르게 주어진 과제를 해결했다. 남은 20분간 교실에서 풍선을 날리며 놀던 기현이가 말했다. “내일 또 할래요.” “수학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데 괜찮아?”라는 내 물음에 “괜찮다”며 “공부하고 친구들과 같이 놀고 갈래요”라고 한다. 나 혼자 기현이를 남겨 놓고 있을 땐 서로 고되었는데, 친구들과 함께하면서부터 기현이는 즐겁게 배우고 있다. 기현이에게 필요한 (AI 디지털교과서의 최대 장점이라고 자랑하는) ‘맞춤형 교육’은 친구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었다.
식물이 자라는 것을 유심히 관찰할 때, 전자칠판에 자유 낙서를 어느 정도 허용할지 학급회의로 결정할 때, 어려워하는 친구를 서로 돕겠다고 모여 앉아 있을 때, 학생들이 어떻게 배우고 성장하는지 올해는 학급 학생 수가 적은 터라 더 또렷하게 보인다. 학생들이 협력, 의사소통, 배려, 갈등 조절, 공동체성 등의 가치를 어떤 교육 활동과 일상 경험에서 배우는지, 그럼으로써 어떻게 성장하는지 말이다. 물론 AI 시대의 흐름에 맞춰 디지털 활용 능력을 기르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AI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교육이 한 인간의 성장과 발달이라는 교육의 궁극적 목표와 어떤 방향성을 공유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들어 본 바가 없다. 효율적인 학생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디지털 교육 연수는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다. AI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학생들의 가입 절차를 모두 마친 후, 학생 디벗으로 먼저 접속해 둘러본 AI 디지털교과서 시스템은 나를 더 분노하게 했다. 이만한 예산을 들여 고작 이 정도의 기능으로 학생들의 다른 배움 기회를 깎아 먹었다니……. 이 사업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다시 재고해야 한다. AI·디지털을 활용하는 교육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교육이 어떤 배움을 지향하고 있는지, 한정된 교육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지, 학생을 중심에 둔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고민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❶ 디벗(Digital+벗)은 ‘스마트기기는 나의 디지털 학습 친구’라는 의미로, 서울시교육청에서 온라인 학습 플랫폼을 마련해 학생들에게 1인 1기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급하는 디지털기기이다.
❷ “AI 디지털교과서, 대부분 학교서 일 평균 접속률 10% 못 미쳐”, 〈한국대학신문〉, 2025년 4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