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에세이]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지길 | 고래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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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지길

 

고래

hugbird18@gmail.com

강원 초등 교사

 


 

중학생일 때다.

선생님은 사람들이 다 있는 데에서 그러셨다.

“집에 무슨 일이 있니? 괜찮으니까 말해 봐.”

“아무 일도 없는데요.”

교무실을 나오면서 뒤에서 얘기를 하시는 걸 들었다.

“자존심은 있어 가지고.”

그날 아침, 더는 이 집에서 못 살겠다는 엄마의 발치에서 다리를 붙잡고 울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는 없었다. 외삼촌이 학교에 전화를 했나 보다. 나는 학교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응원합니다

 

교사가 된 뒤, 교실이 꾸려지면 나는 가정한다. 이곳엔 당장 오늘 폭력을 겪고 학교에 온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통계에 의하면, 이 가정은 과장이 아니다.

2020년, 코로나19 때문에 가끔씩만 학생들을 만났다. 1학년인 한 학생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예쁜 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학생이었다. 2022년, 담임이 되어 다시 그 학생을 맡았는데 때때로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 때문에 학교를 못 오느냐는 내 물음에 양육자는 집에 무슨 일이 있다고만 했다.

“어머님, 학교에 오셔야 합니다. 힘드시면 제가 댁으로 방문하겠습니다.”

추운 날이었는데, 양육자는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걸치고 홑겹의 얇은 코트를 입고 학교에 오셨다. 따뜻한 차를 내드리고 싶었다. 물만 드시겠다는 것을, 제가 차 마시는 게 좋아 그런다며 같이 차를 마셨다. 감사하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마주 앉아 먼저 물었다.

“어머님, 솔직하게 여쭙겠습니다. 가정폭력이 있었나요?”

양육자는 소리도 내지 않고 한참을 울었다. 이번 주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이번 달은 괜찮았는지, 주변에 사는 친구가 있는지, 친정에서는 알고 있는지, 아이가 폭력을 목격했는지, 마지막으로 목격한 적이 언제인지, 혹시나, 정말 혹시나 성적인 폭력을 아이가 목격한 적이 있는지, 도움을 청할 곳이 있는지 여쭈었다. 그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에겐 잘하려고 해요. 나아지고 있고요.”

“어머님, 저는 가정폭력 신고 의무자입니다. 제가 신고를 도와드릴 수 있어요. 어머님께서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는 걸 잘 알아요. 그런데 어머님이 편해지셔야 아이를 도울 수 있어요.” 

“신고를 원하지 않습니다. 정말 나아지고 있어요. 앞으로 그런 일이 또 일어나면 꼭 말씀드릴게요.”

하는 수 없이 ‘여성긴급전화 1366’을 알려 드리고 헤어졌다.

나는 학생의 아버지가 싫었으나 통화를 할 때는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해 보자고.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하면 아동의 교육과 보호를 담당하는 기관의 종사자와 그 기관장은 피해자 또는 피해자의 법정대리인 등과의 상담을 통하여 가정폭력 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가정폭력 피해자의 명시적인 반대 의견이 없으면 즉시 신고하여야 한다. 아동학대 신고를 하였고, 수업 중에 종종 교실을 나와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나로 인해 또 다른 폭력이 발생할까 봐 며칠을 울었다.

상담 선생님이 힘쓰셔서 발음이 어눌하던 학생은 언어 치료를 받았다. 4학년 때도 이어지길 부탁드리고 학교를 떠났고, 며칠 전 5학년이 된 학생이 연락을 해 왔다. 5학년 8반이 되었단다. SNS 프로필 사진에 예쁜 백구가 아이의 다리 위에 올라와 있었다.

‘강아지를 키우니? 내가 그랬듯, 너도 이 생명과 위로와 사랑을 주고받길 바라. 양육자님, 용기 내 주신 마음을 응원합니다. 평화롭기를 바라요.’

 

나는 상처받았다

 

‘학부모’ 세 사람이 종업식에 학교를 찾아왔다고 한다. 내 문제에 관해 항의를 하고 가셨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하다.

하나, 교과서로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점. 모든 교과서를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양육자를 떠올린다. 교감 선생님이 가장 쉽게 답변을 하실 수 있었던 문제 제기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셨단다. 나는 주간배움안내장에 무슨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무슨 공부는 끝이 났고 무슨 공부는 어떠한 과정 중에 있는지 알려 드리고 있었다.

둘째, 교실에 ‘평등하고 안전한 교실’이라고 쓰여 있는데 교실 안에서 교사와 학생이 어떻게 평등한 관계일 수 있느냐는 점. 나도 이 점을 인정한다. 그래도 조금 항변을 하자면 애를 쓰기는 했다. 학생들과 같이 의논하며 수업을 만들어 갔다. 매일 아침 하루의 일과를 공유하고 궁금한 점을 듣고 답했다. 교과서로만 공부하면 나 혼자 정보를 가지는 꼴이고, 그러면 하루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쉽게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양새일 수는 있겠지만 존댓말을 썼고, 억울한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교사인 나에게 모든 마음을 꺼낼 수 있었을까?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내가 자꾸 무언가를 많이 물으니 부담스럽고 답하기 어려워 진짜로 원하는 바가 아닌 다른 말을 꺼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이 말엔 성평등이 담겨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성별의 특성을 배웠고, 관련된 그림책을 같이 읽었다. 모두가 각자의 개성이 있으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자는 뜻이다. 누구는 나가서 놀고 싶지 않고, 누구는 나가서 놀기를 무척 좋아한다. 학생들은 서로의 특성을 잘 알고 존중했다. 우리 반은 다른 반에 비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우정을 쌓는 것 같아 내 나름대로 뿌듯하기도 했다.

평등하고 안전하다는 말에는 이런 뜻도 있음을 학부모들에게 설명하고 싶었다. 모든 사람이 다른 요구를 가지고 있고, 교사는 이에 맞추어 지원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학기 초에 가정에 보내는 편지에도 개인의 특성을 존중하고 지원하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안내했다. 그리고 교육과정 설명회 때 방문한 분들과 둘러앉아 내 어려움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꼭 도와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나 혼자 생각해서 학생에게 좋은 것을 주기는 어렵다고. 그리고 이 관점을 바탕으로 몇몇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셋째, 아이에 관해 나쁜 얘기만 해서 담임인 나와 전화를 하고 나면 양육자들이 펑펑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자신이 알던 아이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관찰한 그대로를 자세히 말씀드렸고, 어떻게 도울 것인지 의논해 보자고 했다. 어떠한 양육자는 귀 기울여 들어 방법을 찾았고, 어떠한 양육자는 논의를 거부하였다. 상담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으로는 반응이 좋지 않았던 양육자가 내 태도에 대해 학교에 항의하겠다고 했단다. 이제껏 나는 양육자들께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시라고, 의논해 주셔서 고맙다고, 자주 말했었다. 솔직한 마음이었다.

넷째, 아이에 관해 나쁜 얘기만 하는 담임인 내가, 교실에서 학생의 능력을 단정 짓고 대할 거라고 했다. 덧붙여 양육자들은 학기 초 ‘학교에 들려드리는 우리 아이 이야기’에 너무 솔직하고 자세하게 적어 후회하셨단다. 학생의 능력을 단정 짓기보다, 학생의 반응에는 다 처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지원하려 노력했다. 누구는 좀처럼 앉아 있을 수가 없고, 누구는 얌전히 앉아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도통 글로 쓸 수 없다. 둘에게 같은 과제를 요구하는 것이 맞는가. 계절이 변하면 자주 우는 아이와, 어젯밤에 부모의 싸움을 지켜보고 온 아이의 처지를 어찌 고려하지 않을 수 있는가.

다섯째, 화가 난다고 내가 교실 밖으로 나간다는 점. 생각난다. 학생들이 주먹질을 하며 싸웠다. 내가 곁에 왔는데도 멈추지 않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선생님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잠깐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겠다”고 복도에 나가 있었다. 속상하고 화가 난다고, 종종 표현했다. 어떠한 행동은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음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더 건강한 방법이 있을 거라는 걸 안다.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미칠 폭력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두렵기도 하다. 아마 내 부족을 말씀하셨다면 사과를 드렸을 것이다. 올해 선생님이 교실에서 큰 목소리로 혼을 내서 아이가 무서워한다는 양육자의 연락을 받았을 때, ‘죄송하다, 제 모습을 돌아볼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드린다. 학생 마음에 있는 말을 들어 보고 사과하겠다’고 했다. 진심이었다.

여섯째, 내게 전화를 해서 항의를 하면 그 내용에 대해 따져 되묻기 때문에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그랬나? 나는 말의 뜻이 이해가 안 가면 다시 한번 되묻는 습관이 있다. 때때로 그런 습관을 오해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알지만, 서로의 말이 뜻하는 바가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오해가 쌓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교감 선생님은 내가 사투리를 쓰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고 하셨다는데, 무엇 때문에 따진다고 느껴지셨는지 나는 들어 볼 길이 없다.

일곱째, 학생들이 싸우고 나면 이 집과 저 집에 말을 다르게 한다는 점. 아, 또 떠오른다(나는 상상으로 연결 지을 수밖에 없다). 두 학생 간 갈등이 생겨서 각 가정에 말씀을 드린 일이다. 한 학생이 급식실 가는 길에 며칠 동안 다른 학생의 발꿈치를 밟았다고 했다. 학생들끼리는 다시 그러지 않겠다며 사과를 하고 받고 용서를 했다. 사과를 받은 학생의 양육자는 “실수로 그랬다”고 사과를 했기 때문에 진정한 사과가 아니며, ‘실수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다시 사과를 하면 좋겠다고 했다. 피해를 준 학생의 양육자에게 ‘실수가 아니라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게 지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날, 사과를 했던 학생은 솔직하게는 창피해서 실수라고 말했다며 다시 사과를 했다. 사과받은 학생은 내게 엄마가 학폭을 열면 ○○이가 전학을 간다고 했는데, 엄마한테 오늘 일을 잘 설명드려서 학폭이 열리지 않게 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학생의 요청에 양육자에게 아이가 집으로 가기 전에 먼저 드릴 말씀이 있다고 상담을 요청드렸다. 아이의 마음을 양육자에게 꼭 전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양육자는 왜 아이의 말을 듣기 전에 교사와 먼저 대화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에 아이의 말을 듣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날 밤, 사과를 받은 학생의 양육자가 여태껏 무슨 피해를 받았는지 아이에게 다그쳐 물은 녹음 파일을 밤 10시가 넘어 문자와 카카오톡으로 보내 왔다. 사과를 한 학생이 선생님이 안 볼 때 때린 적이 있고 욕을 한 적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두 학생은 그간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금 대화를 나눴다. 피해를 받은 학생은 ‘때렸다’라는 것은 팔에 손이 닿는 것처럼 친 것이지 아플 정도는 아니었다고, 집에서와는 다르게 설명하였다. 두 사람 다 어디에서 있었던 일인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지만, 둘은 사과를 하고 사과를 받았다. 그날, 피해를 준 학생의 양육자는 나의 만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퇴근을 하고서 아이와 함께 피해를 입었다는 학생의 양육자가 운영하는 가게에 찾아가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고 한다.

학생 둘과 상담한 내용을 녹음한 파일로 자신에게 보내라 한 그 양육자에게 나는 어떻게 해야 믿음을 얻을 수 있을까.

‘어머님, 아이가 저에게 ○○이에게 사과를 잘 받았다고 꼭 전해 주라고 했어요. 학폭이 열리지 않게 엄마를 잘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아이가 집에 오면 먼저 오늘 학교에서 마음이 어땠는지 들어봐 주시면 좋겠어요.’

나는 이런 말을 나누고 싶었다. 양육자의 속상한 마음을 들어 주고 싶었다. 내가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불안해하는 양육자들에게 위와 같은 답들을 들려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년에 내가 담임이 되지 않길 바라시는 거니까.

“선생님이 열심히 하시는 건 잘 안다 했어. 근데, 너무 열심히 하지 마. 안 듣는 사람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어.”

“교감 선생님, 사람 앞에 두고 어떻게 열심히 안 해요. 그럴 거면 선생 안 했죠!”

교감 선생님께서 어르고 달래며 하시는 말씀은 처음 듣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간의 교직 생활 동안 양육자들과 나눈 마음들은 나에게도 위로가 아니었는가. 하지만 오늘의 나는 실패다. ‘과하고’ ‘적당히’를 모르는 내가 창피했다. 그리고 학생을 두고 애써 온 교사와 양육자 사이의 맥락을 지우고, 한 다리 건너 교감 선생님께만 마음을 얘기하고 가 버린 양육자들이 너무 미웠다.

나는 상처받았다.


보아 주는 사람들

 

학생의 평판이 좋지 않았다. 학기 초 학부모 상담에서는 여러 차례 학생의 이름이 나왔다. 쉽지 않았다. 학생의 어머니는 젊었고,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다른 학부모와는 소통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때때로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생님,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렵고, 가끔은 정말 실망하게 돼요. 아침에 잘하자 말하고 갔는데 오늘 또 그런 일이 생기고…….”

나는 그 말이 얼마나 솔직한 말인지 느낀다.

나는 학생들에게 교사와 양육자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는 한다.

“선생님과 보호자님은 여러분을 돕기 위해 사이좋게 의논하는 친구예요. 그리고 우리는 어른이어서 마음이 튼튼하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걱정하지 말고 꼭 말해 주세요. 그게 우리에겐 기쁨이에요.”

그렇게 느끼기에, 어머님께 진실한 마음으로 답을 한다. “어머님, 정말 애쓰시는 걸 알아요. 잘하고 계셔요. 학년 초를 생각해 보세요. 정말 많이 자랐잖아요. 오늘도 ○○이에게 잘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는 어머님과의 대화를 토대로 앞으로 어떻게 지내면 좋을지를 내일 다시 ○○이와 이야기 나눠 볼게요. 평안한 밤 보내세요.”

2학기가 되어서 학생의 어머니는 돌봄 영역의 일을 시작했고, 나는 그 순간을 같이 축하했다. 저임금 노동이다. 물가는 올라가고 형편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엄마의 병원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는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기분이 좋았다. 동료 교사, 돌봄 전담사, 같은 반 학생들이 그가 학교생활을 정성스레 해 나가는 모습을 보아 주고 이야기를 건네기도 하였다.

2학기 내내 연극 공연을 준비했다. 12월, 교직원, 학생, 양육자를 초대하고 우리의 첫 공연을 올렸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양육자 한 분이 말씀하셨다.

“솔직히 3학년 생활을 걱정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이렇게 준비한 걸 보니 잘 지내고 있었군요. 선생님, 수고 많으셨어요.”

반을 맡은 일은 나의 선택이었다. 학교를 옮겨 왔는데 아무도 맡기를 원치 않는 학년이 있었다. 어려우시다면 내게 주십사 했다. 대신 인자하신 분을 짝꿍 선생님이 되게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짝꿍 선생님은 이 모든 과정을 함께 나누고 들어 주셨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보시기를 추천한다)에서의 선생님은 곁이 없어 옥상 위로 올라가야 했다. 나에겐 곁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극장 앞에서 만난 양육자

 

다시 학기를 시작한다. 타인의 마음과 집안일에 관심을 두다 상처를 받기도, 위로를 받기도 했던 지난해를 돌아본다. 올해 목표를 ‘열심히 살지 않기’에 두었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올해 양육자들과는 어느 정도의 경계를 두고 서로를 만나야 할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채로 시작했으니, 정답은 여전히 모르겠다. 모두가 삶을 잘 돌보고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어, 그냥 살기만 해도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교실에 있는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어느 때의 나였음을 잊을 수 없다. 내 처지를 잘 살펴 줄 어른이 있어야 했을 텐데, 어째서 나는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했을까. 왜 나는 오랜 시간을 더 많이 아팠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내가 만난 거의 대부분의 양육자는 피양육자를 잘 돌보고 싶어 하는 선의를 갖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교사 또한 그렇다. 그런데 양육자와 교사는 ‘어린이는 어떠한 환경에서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가’를 묻고 답할 수 있는 자리가 없다. 뉴스를 보고 같은 대목에서 혀를 끌끌 차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할 자리는 없다. 그렇게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힘을 기를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서로가 가진 관점에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겠지만 확인할 요량이 없으니 그렇게 오해와 불신이 쌓인다.

“이제 제가 교직에 있으면서 꿈꾸는 것은 양육자 모임을 만드는 거예요. 교실로는 종종 초대를 하곤 했지만, 양육자들이 만나서 생각을 충분히 나누는 자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상담을 하다 보면 다들 아이들 키우면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 막막해하고 외로워하시는 것 같거든요. 낮에 시간을 내기 어려우신 분들도 계시니까, 시간이 되면 저녁에요. 엄마만 말고 다른 양육자들도요.”

작년 초부터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 말을 왜 하게 되었을지 돌이켜 본다. 재작년, 한 양육자와 아이를 보살피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오랜 상의 끝에 아이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진단을 받게 되었다. 아이가 교실을 어떻게 겪으며 살고 있을지, 우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약물 치료가 아이의 특성을 해치지는 않을까 고민하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답이 없지만 진실하게 어려움을 나눴다. 과거의 우리 엄마랑 아빠한테도 이런 친구가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 싶었다.

작년, 지역의 단관 극장 지키기 투쟁 현장을 자주 오갔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극장 앞에서 “학생들이 나이를 먹고 저도 나이가 들어 원주의 아카데미극장 로비에서 스치며 만나고 싶다”는 발언을 한 뒤 그분이 나타나 반갑게 인사를 하셨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몇 달이 흘러 극장이 무너지기 전 마지막 거리 행진이 있던 때에 아마도 마지막일지 모르겠다며, 그분께 거리에서 만나자고 용기를 내 문자를 드렸다. 내가 문자와 전화를 돌렸던 모든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거리로 나와 주신 분이다.

나는 교사와 양육자에게 서로가 애쓰는 마음을 확인할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그러면 학교 담장을 넘어 일상을 함께 사는 진짜 친구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어린이에게 더 좋은 것이 무엇인지 나누게 되었으니까,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가 곁에 있음을 기억하는 일들이 늘어날 거라 믿는다. 학생들에게 하는 말을 다시 떠올린다.

“선생님과 보호자님은 여러분을 돕기 위해 사이좋게 의논하는 친구예요. 그리고 우리는 어른이어서 마음이 튼튼하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걱정하지 말고 꼭 말해 주세요. 그게 우리에겐 기쁨이에요.”

가장 약한 이를 돕는 일은 결국 나를 돕는 일이었음을 다시 기억하고 새긴다.

 


❶ 여성가족부(2023), 〈2022 가정폭력 실태조사〉. 우리나라 성인 여성 10명 중 1명은 지난 1년간 배우자나 파트너에 의해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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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