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법화사회와 교육
학교공동체는 회복할 수 있을까?
배려가 사라지고 대화가 단절되며 소송전이 난무하는 학교
허진재
jjheohe@gmail.com
중등 교사,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
2023학년도는 교육계에서 아픈 일이 많이 발생한 한 해였다. 더불어 그동안 교육계에 곪아 있던 문제들이 우수수 터진 한 해이기도 했다. 또한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인해 교육계가 대 혼동을 겪었던 한 해이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정순신 변호사 사태로 인해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이슈로 대두되었고, 2023년 4월 교육부는 학교폭력 근절 종합 대책[ref]교육부, “[보도 자료] 학교폭력 없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발표”, 2023년 4월 12일.[/ref]을 발표하였다. 7월에는 교직 경력 2년 차인 동료 교사가 학교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였고, 여름 내내 교사들은 자발적으로 길거리에 모여 ‘우리는 가르치고 싶다’며 교사들이 마음 놓고 교육하고 학생들과 호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부르짖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학교는 교육하는 곳인데, 왜 교육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르짖어야 하는 상황에 오게 된 것일까?
학생을 지도할 수 없는 학교 교육 환경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라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학교는 어떤 곳일까?
학교는 국가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 교육만 진행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은 코로나19 팬데믹 약 3년의 기간 동안 입증해 주었다. 잠재적 교육과정에 따라 학교는 학생들에게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성을 익히게 하는 곳이라는 점이 입증되었다.
핵가족화가 이뤄진 현대 사회에서 학생들이 사회성을 익힐 수 있는 곳은 사실상 학교가 유일하다. 학교 또한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구성원들 간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성인들처럼 갈등 조절 능력, 자기 조절 능력이 있다면 학교에 다닐 이유가 없다. 성인들보다 미숙한 측면이 있기에 교육이 필요한 것이고, 교사들은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갈등 조정을 해 주면서 사회성을 익히게 도와준다.
하지만 때때로 교사들의 최소 개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생긴다. 방송에서 소위 ‘금쪽이’라고 지칭하는 수준의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이 등장하면 교사들이 최소한의 개입을 할 수 없다.[ref]금쪽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하지는 않으나 방송을 통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맥락이 있어 사용한다.[/ref] 한 명의 학생으로 인해 다수의 구성원들이 안 좋은 영향을 받는다.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사교육 기관이라면 이 학생을 받을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는 그렇지 않다. 학교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관이 아니며,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수의 구성원들을 위해서라도 한 명의 학생을 포기할 수 없기에 교사는 생활 지도를 한다. 학생은 집에 가서 자신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고, 부모는 자녀의 이야기만 듣는다. 자신의 자녀를 교육하는 부모도 있는가 하면, 자녀의 앞에서 같이 교사를 욕하고, 교사에게 항의하는 부모도 있다. 교사가 학생 행동 특성에 대한 누가 기록을 제시하며 생활 지도의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도 ‘교사가 무능해서 그렇다’, ‘교사가 우리 아이에 대해 편견을 갖고 대한다’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며 교사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며 사실상 협박을 하거나, 실제로 아동학대 신고를 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2023년 여름, 수많은 교사들이 검은 옷을 입고 길거리로 자발적으로 나와서 부르짖은 것은 다들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아 있는 거야’, ‘삶을 달리한 선생님들의 모습이 사실 내 모습이야’ 등 이 사건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데, 과연 교사들이 자신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을 위해 소신 있는 교육을 할 수 있을까? 교사라는 사명감 있는 집단의 모습을 잠시 뒤로 미루고 한 직업을 가진 노동자로서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과연 어떤 노동자가 자신의 직업과 직장이 사라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까?
잘못을 고치려 하기보다 자녀 보호를 우선시하는 보호자와 사법 만능주의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게 되면 학생 보호자들과 통화를 거의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이때 다양한 반응을 접하게 된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보호자, 자녀의 가해 행위로 인한 조치를 축소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보호자,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지 묻는 보호자, 더 나아가 학교와 교사에게 잘못이 있다며 교사를 사법 기관에 신고하겠다는 보호자가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녀의 교육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보호자는 없다.
‘아동·청소년들이 성숙한 존재들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대다수가 아니라고 답을 할 것이다. 학교 현장이 공식적 교육과정을 통해 교과 학습을 하는 장소인 동시에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부수적인 요소들도 교육하는 현장이냐고 질문을 던지면 대다수는 그렇다고 답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와 가정의 공동 목표가 생긴다. 바로 학생의 올바른 방향으로의 성장이다. 학생에게 아쉬운 점, 학생이 잘못한 점이 있다면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방향을 설정해 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학교와 가정의 역할이다. 그러나 보호자들은 자녀들의 잘못을 고치려 하기보다 자녀 보호만을 우선시한다. 그러면 학생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학생의 잘못된 행동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문제 행동마다 그 원인은 천차만별이기에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충분히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가정에서의 문제가 누적되어 이를 표출하지 못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그 문제를 표출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가정이 같이 협업해야 한다. 일례로 상담을 해 보면 가정에서의 누적된 문제가 부모 앞에서 해소되지 못하니 학교에서 폭발한 경우가 있다. 가정에서 너무 억눌려 지내다가 학교에서 그 스트레스를 모두 해소하는 경우도 있다. 교사들이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추정되는 원인을 파악하였다고 해도 가정에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학생 보호자들이 자신의 자녀는 본인이 제일 잘 안다며 교사가 잘못 원인을 진단하였다고 이야기하는 경우, 자신의 자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경우, 교사가 출산과 육아를 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며 오히려 가르치려 드는 경우 등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자는 소위 말하는 ‘기분 상해죄’를 운운한다. 또한 담임 교사 교체를 요구하며, 이를 들어줄 수 없다 하면 바로 아동학대 가해자라고 신고를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과연 학교와 교사는 가정에 문제 행동 교정을 위해 협업하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학생의 문제 행동으로 인해 학생에 대한 교육적 선도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학교에서 생활교육위원회(과거의 선도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생활교육위원회에서는 학생 생활 규정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 학생에 대해 「초·중등교육법」 및 동법 시행령에 따라 학교 내 봉사, 사회 봉사, 특별 교육, 출석 정지, 퇴학 조치를 내릴 수 있다.[ref]「초·중등교육법」 제18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학생에 가해지는 모든 조치에서 ‘퇴학’ 처분은 의무교육 대상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ref] 학생 및 보호자가 조치에 불복할 경우 재심 청구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학생 및 보호자는 조치 결정을 수용한다. 이 위원회에서는 무조건 처벌하려 하기보다는 교육적으로 어떻게 선도하면 좋을지를 고민하여 조치 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보호자들은 바로 행정 소송부터 제기한다. 학교와 보호자 사이에 몇 달간의 소송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학생이 교원의 정당한 교육 활동 행위를 침해하여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하였다. 학교 내 봉사, 사회 봉사,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 교육 이수 또는 심리 치료, 출석 정지, 학급 교체, 전학, 퇴학 처분을 내릴 수 있다.[ref]「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18조.[/ref] 교권보호위원회의 조치가 내려졌다는 것은 이 학생이 실제로 교원의 정당한 교육 활동 행위를 침해했음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일부 보호자들은 행정 소송부터 제기한다. 또다시 학교와 보호자 사이에 몇 달간의 소송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보호자들의 이러한 대처는 교육청에서 변호사를 채용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고, 보험 업계에서는 교원 안심 보험이 등장하였다.[ref]몇 해 전부터는 매년 수능 직전에 교육청 차원에서 단체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수능 직후에 교사들이 민사 소송에 시달리게 되고, 합의금 명목으로 또는 민사 소송에서 패소하여 배상하는 교사들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ref] 학교에서는 학생의 문제 행동 교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방어적으로 나서게 되고, 원리원칙대로만 처리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교사의 역할이 적극적인 생활교육[ref]문제 행동 학생을 직접 만나서 상담하고 지도하는 행위를 이야기한다.[/ref]을 통해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나가기보다는 ‘교과 수업을 하고 원칙에 따라 행정 처리만을 하는 직장인’으로 점점 국한되어 가는 것이다.
법률상 정의가 모호함에도 교육 활동을 해 온 교사들, 행정 처리를 하는 직장인을 넘어서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나서는 교사들이 궁극적인 문제에 부딪힌 게 있다. 바로 생활 지도의 영역이다.
점점 학교에 법조인이 오는 일이 잦아지고, 소위 민원의 시대라고 할 만한 세상에서 교원의 생활 지도 행위는 법률적으로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초·중등교육법」 및 동법 시행령에서 학생의 생활 지도를 할 수 있도록 명시가 되었고,[ref]「초·중등교육법」 제20조의2,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0조의3.[/ref]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가 시행되었다.[ref]「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이 고시는 서이초 사건와 무관하게 법률과 시행령 개정에 따라 등장할 내용이었으나, 「아동복지법」 개정안,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과 더불어 2023년 7월 18일 서이초 사건 발생에 대한 수습 조치 중 하나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ref] 이에 대해 교사의 생활 지도권 및 교사 보호를 위한 장치가 마련되었다고 환영하는 사람도 있다.[ref]나는 담임 교사가 아니었음에도 고시에 명시된 상담 거부권을 실제로 2차례나 활용하였다.[/ref] 반면 교육계가 이러한 법률적 장치가 마련되어서 운영되어야 하는 현실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ref]역설적이게도 소송전 등에 얽혔던 교사들 중에는 학생들에게 열성을 다했거나, 원칙에 따라 중심을 잡고 학생을 지도해 왔던 교사들이 많아 보인다.[/ref]
학교를 뜨거운 시장으로 여기는 법조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면 정말 다양한 사례의 학교폭력을 마주하게 된다. 지난 4년간 심의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면서 정말 많은 학생 확인서와 보호자 의견서 등을 보았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 지날수록 보호자 의견서에서 교육부 권장 양식이 아니라 변호사 의견서가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변호사 의견서는 아니더라도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받은 것만 같은 양식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 학생에 대해 교육적 선도 조치를 하기 위해 개최되는 기구이다. 무조건적으로 처벌하기 위한 기구가 아니다. 하지만 피해 관련 학생 측에서는 상대측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가해 관련 학생 측에서는 법률 전문가를 동원하여 자녀의 가해 행위를 축소한다든지 무혐의로 만들려고 한다. 더 나아가서 피해 관련 학생 측에 대해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하여 오히려 그들이 가해자인 것마냥 상황을 풀어 나가기도 한다. 현직 생활부장인 교사 학부모, 경찰 학부모, 변호사 학부모들에게서 그런 모습들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학교를 대상으로 소송전을 하는 경우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아동학대 신고라는 카드를 사용하기도 한다. 아동학대 사건이 접수되면 경찰은 수사를 개시해야 하며, 아동학대 혐의가 없더라도 자체적으로 종결할 수 없이 무조건 검찰로 송치하여 판단을 맡겨야 하기에 아동학대 신고가 이뤄지면 교사는 모든 손발이 묶이게 된다.[ref]기존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체계에서는 아동학대 신고와 동시에 바로 직위해제가 이루어지는 것도 가능했다(현재는 아동학대 신고가 이뤄진 후 교육감 의견 청취 제도가 신설되었음). 더불어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 내려질 경우 교원의 직이 상실되기 때문에 아동학대 가해 여부와 상관없이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고 고통의 시간을 겪는다. 무혐의로 판정이 나더라도 보건복지부 시스템에서는 여전히 아동학대 행위자로 남아 있기에 또 다른 문제가 된다.[/ref]
가해 관련 학생 측의 법률 대응에 대해 피해 관련 학생 측 학부모들도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경우라면 그나마 대처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면서 결국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없던 것으로 해 달라고 하거나, 자신의 피해 사실조차도 스스로 축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연 이것을 정의롭다 볼 수 있으며,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이라고 볼 수 있을까?
현재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 중에 정말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로 보인다. 학교 안의 특수한 상황은 배제하고 오로지 형법상의 논리로만 적용을 한다. 학교폭력예방법이 아닌 형법의 논리로 상대하며, 형법의 논리가 통하지 않을 경우에는 민법, 행정법의 논리를 가져와서 상대한다.[ref]일례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상대측에 민사 소송을 이미 제기했으며, 앞으로 추가로 민사 소송을 수천만 원 제기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피해 관련 학생 측 변호인이 있었다. 당시 상대 측의 가해 행위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학교폭력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웠고, 형법상에서도 가해 행위로 보기 어려웠기에 조치 없음 처분을 내렸었다.[/ref]
학교폭력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 보호자들은 이들을 찾게 되고,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시장은 더 커져만 간다. 그 속에서 학교에서의 교육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현재 소위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들과 보호자(의뢰인)들의 상대는 피해-가해 학생 양측만이 아니다. 학교와 교육청도 그 대응 상대이다.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사에게도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다. 교사는 학생을 생활 지도를 하고 교육했을 뿐인데 소송전에 휘말리게 된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조치에 불복할 경우 행정 심판을 청구할 수 있고, 행정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행정 심판과 행정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처분에 대한 행정 심판, 행정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지원)청에서 심의위원회 진행 실무를 담당했던 장학사에 대해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다. 학생과 직접 대면할 일이 없는 교육(지원)청 장학사는 그저 자신의 업무에 충실히 임해서 처리했을 뿐인데 소송전에 휘말리게 된다. 이것이 과연 옳은 현상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다.
더불어 과연 학교교육 현장이 법조인의 시장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법적인 대응을 하기에 앞서 문제가 생기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우선이지 않을까? 더 나아가 학생의 양육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사법적 대응을 위해 법조인을 찾아가기보단 교육적 관점에 입각하여 문제 해결을 하려는 노력이 우선이지 않을까? 현재 대한민국에서 학교교육 현장에 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 시행과 학교의 교육적 기능
2023년 12월, 교육부는 2024학년도부터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ref]교육부, “[보도 자료]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신설하고 학교전담경찰관 105명 증원 학교·교사, 악성 민원서 벗어나 ‘교육’에 역량 집중”, 2023년 12월 7일.[/ref] 주요 골자는 퇴직 경찰, 퇴직 교원을 중심으로 한 전담 조사관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서 학교에서 학교폭력 사안 조사를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여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 제로센터에 보고하면 학교폭력 제로센터에서는 학교로 전담 조사관을 파견하여 이들이 사안 조사 및 보고서 작성을 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교사들의 업무를 경감해 주고 교사들을 각종 민원 및 법률 분쟁에서 구제하겠다는 것이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의 기본 취지이다.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를 두고 교사들의 심리적 부담감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비판도 많다. 그런데 비판의 목소리 중 교사들의 업무와 책임을 가중시킨다는 등의 이야기는 있지만, 어떻게 이 제도에 교육적 가치관을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ref]교원단체들이 이야기하는 교육적 기능의 회복이라는 것은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 회복(학생의 회복)보다는 교사들의 개인 회복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업무를 누가 맡느냐에 따라서 교육의 회복이 결정되지는 않기 때문이다.[/ref]
지금은 상당수 교사들은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의사소통 미흡으로 생긴 문제라고 판단되면 중간에서 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계 회복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물론 법리적으로 따지면 학교폭력을 인지하면 바로 학교폭력 사안으로 접수하고 처리해야 하지만 ‘교육’이라는 관점을 더 생각하여 본인들이 감내해 왔다.[ref]교육적 관점에 따라 교사들이 감내해 왔다가 추후 문제가 되었을 경우, 이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부재한 것이 현실이다.[/ref] 이를 통해 학생들의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성 함양에 도움을 줌과 동시에 재발을 방지하는 역할을 해 온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점점 교육적 가치관은 등한시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가 시행되면 학교에서 학생들 간에 발생하는 여러 분쟁에 대해 ‘교육’이라는 관점이 개입되기가 정말 어려워진다. 학교폭력 사안을 인지·접수하면 교육지원청(학교폭력 제로센터)에서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이 파견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응보적 관점에서의 접근만이 가능해지는 상황이다.
교육부 최초 발표안에서는 전담 조사관은 퇴직 교원, 퇴직 경찰을 위촉해서 한다고 하였으나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는 청소년 전문가도 위촉하는 등 자체적으로 보완을 거친 곳도 있다. 학교 현장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 학생들과 직접 호흡한 지 오래된 사람, 학교 밖 기관에서 학생들과 만나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기에 학교폭력 사안을 확인하면서 ‘교육 기관’에서 사실상 ‘수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평생 수사를 해 왔던 경찰, 평생 교육을 해 왔던 교원 등 다양한 집단들이 ‘교육’이라는 가치 아래에서 최선의 화음을 낼 수 있을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학교가 어떤 곳인지, 학교에서 요구되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교과 학습만을 원하는가, 아니면 그 외 부수적인 잠재적 교육과정의 영역까지를 원하는가? 잠재적 교육과정의 영역까지를 원한다면 어디까지를 원하는가? 기본 매뉴얼에 의한 인성 지도까지인가, 아니면 학생들 간의 갈등 조정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생활교육인가?
서울 강남 도곡동의 중학교에서 동급생을 흉기로 상해를 입힌 후 스스로 삶을 마감한 사건,[ref]“서울 강남 중학교서 남학생 흉기 휘두른 뒤 극단선택… 여학생 1명 다쳐”, 〈JTBC〉, 2023년 4월 17일.[/ref] 2023년 여름에 발생한 신림동 묻지 마 살인 사건, 관악산 산책로 강간 살인 사건, 2024년 1월 중학생에 의해 발생한 배현진 의원 피습 사건[ref]“습격범은 중학생… ‘배현진 의원이냐’ 묻고 머리 가격”, 〈조선일보〉, 2024년 1월 25일.[/ref] 등 사회적으로 흉악한 범죄라고 이야기되는 사건의 원인을 이야기할 때 학교교육을 지목하는 경우들이 있다. 여기서 질문을 하고 싶다. 이러한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어렸을 때부터 교육하는 것이 학교의 영역인가? 아니면 학교는 교과교육만을 하면 되는 것인가?
교육은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까, 수동적·방어적으로 임해야 할까? 학생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의 행동 교정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양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는 것이 교육일까? 아니면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은 뒤로하고 일단 살려야 할 학생들만 살리고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에 대한 지도는 회피하며 교사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교육일까?
학교가 교육 기관이라면, 그래서 적극적인 교육을 해야 하는 곳이라면, 더불어 교과교육 이외의 잠재적 교육과정의 영역까지 교육을 원한다면 학교공동체 구성원들이 ‘배려’와 ‘존중’이라는 단어를 잊지 말아야 한다. 학생은 교원을, 교원은 학생을, 학부모는 교원을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학교 현장이 점점 사법화되고 있는 것은 상호 간에 배려와 존중이 상실되어 가기 때문이다. 배려와 존중의 상실로 인한 악순환은 계속 반복되고, 학교 현장의 문제는 점점 곪았다가 터지는 것이다.
체벌이 있던 시절은 이미 종언을 맞이했다. 교사들이 권위주의적 의식을 갖고 학생을 대하던 경향도 희미해졌다. 교사들이 점점 세대 교체가 되면서 학생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교사들이 많아졌다. 교사에 대해 학생과 보호자의 무조건적인 존중이 요구되는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교사의 잘못에 대해 학생과 보호자도 지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일부에 의해 배려와 존중이라는 가치가 점점 무너지고 있다. 어떤 집단이든 물 흐리는 사람은 한두 명씩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극소수의 문제로 전체를 호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배려와 존중의 상실이 점점 증가하고 문화화되는 것은 문제다.
배려와 존중과 더불어 ‘대화’가 필요하다. 가정에서의 대화도 필요하고, 가정과 학교 사이의 대화도 필요하다. 학생과 만나다 보면 대화가 많이 이뤄진 가정의 자녀와 그렇지 않은 가정의 자녀, 방치된 가정의 자녀와 그렇지 않은 가정의 자녀가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차이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 경제적 지위, 가정 형태와는 상관이 없다. 학교에서 심리적 안정을 보이고 다른 학생들과 두루 잘 지내는 학생들은 가정에서 부모와 대화가 많이 이뤄지고 그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가치를 배운 학생들이다. 반면 가정에서 대화가 없거나 방치된 학생들 중에는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모습의 학생들은 부모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을 가진 경우,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우수한 경우에서도 어렵지 않게 보인다.
가정과 학교 사이에서의 대화도 필요하다. 자녀가 문제 행동을 일으킬 때 문제를 회피하기보다는 “어떻게 교육해야 내 자녀가 올바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를 물어야 한다. 문제 행동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학교에 물으며 가정에서의 견해까지도 공유해 주어야 한다. 서로 가르치려는 자세는 지양하고 서로 대화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보호자들은 교사가 자녀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한다면 이에 대해 경청하고, 그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 이때 교사든 부모든 고압적인 자세가 되면 안 되고, 서로 정중히 경청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대화 과정에서 서로 납득이 가지 않고 기분 상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상대에 대한 존중은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기에 지금 학교교육 현장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대한민국 학교를 생각해 보자. 학교교육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지금 학교에서는 자녀의 학교폭력 이력을 만들지 않기 위한 소송, 자녀의 학교폭력 이력 삭제를 위한 소송, 자녀의 각종 위원회[ref]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생활교육위원회, 교권보호위원회.[/ref] 처분 무력화를 위한 소송, 담임 교사 및 교과 담당 교사 교체를 위한 민원 및 소송, 자녀의 학교생활기록부 중 교사의 평가 영역 기재 내역[ref]교과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 등.[/ref] 수정을 위한 소송 등 각종 소송전이 전개되고 있다. 그 전에 학생의 올바른 성장과 교육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기획 | 법화사회와 교육
학교공동체는 회복할 수 있을까?
배려가 사라지고 대화가 단절되며 소송전이 난무하는 학교
허진재
jjheohe@gmail.com
중등 교사,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
2023학년도는 교육계에서 아픈 일이 많이 발생한 한 해였다. 더불어 그동안 교육계에 곪아 있던 문제들이 우수수 터진 한 해이기도 했다. 또한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인해 교육계가 대 혼동을 겪었던 한 해이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정순신 변호사 사태로 인해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이슈로 대두되었고, 2023년 4월 교육부는 학교폭력 근절 종합 대책[ref]교육부, “[보도 자료] 학교폭력 없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발표”, 2023년 4월 12일.[/ref]을 발표하였다. 7월에는 교직 경력 2년 차인 동료 교사가 학교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였고, 여름 내내 교사들은 자발적으로 길거리에 모여 ‘우리는 가르치고 싶다’며 교사들이 마음 놓고 교육하고 학생들과 호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부르짖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학교는 교육하는 곳인데, 왜 교육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르짖어야 하는 상황에 오게 된 것일까?
학생을 지도할 수 없는 학교 교육 환경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라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학교는 어떤 곳일까?
학교는 국가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 교육만 진행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은 코로나19 팬데믹 약 3년의 기간 동안 입증해 주었다. 잠재적 교육과정에 따라 학교는 학생들에게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성을 익히게 하는 곳이라는 점이 입증되었다.
핵가족화가 이뤄진 현대 사회에서 학생들이 사회성을 익힐 수 있는 곳은 사실상 학교가 유일하다. 학교 또한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구성원들 간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성인들처럼 갈등 조절 능력, 자기 조절 능력이 있다면 학교에 다닐 이유가 없다. 성인들보다 미숙한 측면이 있기에 교육이 필요한 것이고, 교사들은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갈등 조정을 해 주면서 사회성을 익히게 도와준다.
하지만 때때로 교사들의 최소 개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생긴다. 방송에서 소위 ‘금쪽이’라고 지칭하는 수준의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이 등장하면 교사들이 최소한의 개입을 할 수 없다.[ref]금쪽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하지는 않으나 방송을 통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맥락이 있어 사용한다.[/ref] 한 명의 학생으로 인해 다수의 구성원들이 안 좋은 영향을 받는다.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사교육 기관이라면 이 학생을 받을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는 그렇지 않다. 학교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관이 아니며,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수의 구성원들을 위해서라도 한 명의 학생을 포기할 수 없기에 교사는 생활 지도를 한다. 학생은 집에 가서 자신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고, 부모는 자녀의 이야기만 듣는다. 자신의 자녀를 교육하는 부모도 있는가 하면, 자녀의 앞에서 같이 교사를 욕하고, 교사에게 항의하는 부모도 있다. 교사가 학생 행동 특성에 대한 누가 기록을 제시하며 생활 지도의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도 ‘교사가 무능해서 그렇다’, ‘교사가 우리 아이에 대해 편견을 갖고 대한다’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며 교사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며 사실상 협박을 하거나, 실제로 아동학대 신고를 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2023년 여름, 수많은 교사들이 검은 옷을 입고 길거리로 자발적으로 나와서 부르짖은 것은 다들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아 있는 거야’, ‘삶을 달리한 선생님들의 모습이 사실 내 모습이야’ 등 이 사건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데, 과연 교사들이 자신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을 위해 소신 있는 교육을 할 수 있을까? 교사라는 사명감 있는 집단의 모습을 잠시 뒤로 미루고 한 직업을 가진 노동자로서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과연 어떤 노동자가 자신의 직업과 직장이 사라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까?
잘못을 고치려 하기보다 자녀 보호를 우선시하는 보호자와 사법 만능주의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게 되면 학생 보호자들과 통화를 거의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이때 다양한 반응을 접하게 된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보호자, 자녀의 가해 행위로 인한 조치를 축소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보호자,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지 묻는 보호자, 더 나아가 학교와 교사에게 잘못이 있다며 교사를 사법 기관에 신고하겠다는 보호자가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녀의 교육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보호자는 없다.
‘아동·청소년들이 성숙한 존재들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대다수가 아니라고 답을 할 것이다. 학교 현장이 공식적 교육과정을 통해 교과 학습을 하는 장소인 동시에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부수적인 요소들도 교육하는 현장이냐고 질문을 던지면 대다수는 그렇다고 답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와 가정의 공동 목표가 생긴다. 바로 학생의 올바른 방향으로의 성장이다. 학생에게 아쉬운 점, 학생이 잘못한 점이 있다면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방향을 설정해 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학교와 가정의 역할이다. 그러나 보호자들은 자녀들의 잘못을 고치려 하기보다 자녀 보호만을 우선시한다. 그러면 학생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학생의 잘못된 행동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문제 행동마다 그 원인은 천차만별이기에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충분히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가정에서의 문제가 누적되어 이를 표출하지 못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그 문제를 표출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가정이 같이 협업해야 한다. 일례로 상담을 해 보면 가정에서의 누적된 문제가 부모 앞에서 해소되지 못하니 학교에서 폭발한 경우가 있다. 가정에서 너무 억눌려 지내다가 학교에서 그 스트레스를 모두 해소하는 경우도 있다. 교사들이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추정되는 원인을 파악하였다고 해도 가정에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학생 보호자들이 자신의 자녀는 본인이 제일 잘 안다며 교사가 잘못 원인을 진단하였다고 이야기하는 경우, 자신의 자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경우, 교사가 출산과 육아를 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며 오히려 가르치려 드는 경우 등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자는 소위 말하는 ‘기분 상해죄’를 운운한다. 또한 담임 교사 교체를 요구하며, 이를 들어줄 수 없다 하면 바로 아동학대 가해자라고 신고를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과연 학교와 교사는 가정에 문제 행동 교정을 위해 협업하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학생의 문제 행동으로 인해 학생에 대한 교육적 선도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학교에서 생활교육위원회(과거의 선도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생활교육위원회에서는 학생 생활 규정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 학생에 대해 「초·중등교육법」 및 동법 시행령에 따라 학교 내 봉사, 사회 봉사, 특별 교육, 출석 정지, 퇴학 조치를 내릴 수 있다.[ref]「초·중등교육법」 제18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학생에 가해지는 모든 조치에서 ‘퇴학’ 처분은 의무교육 대상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ref] 학생 및 보호자가 조치에 불복할 경우 재심 청구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학생 및 보호자는 조치 결정을 수용한다. 이 위원회에서는 무조건 처벌하려 하기보다는 교육적으로 어떻게 선도하면 좋을지를 고민하여 조치 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보호자들은 바로 행정 소송부터 제기한다. 학교와 보호자 사이에 몇 달간의 소송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학생이 교원의 정당한 교육 활동 행위를 침해하여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하였다. 학교 내 봉사, 사회 봉사,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 교육 이수 또는 심리 치료, 출석 정지, 학급 교체, 전학, 퇴학 처분을 내릴 수 있다.[ref]「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18조.[/ref] 교권보호위원회의 조치가 내려졌다는 것은 이 학생이 실제로 교원의 정당한 교육 활동 행위를 침해했음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일부 보호자들은 행정 소송부터 제기한다. 또다시 학교와 보호자 사이에 몇 달간의 소송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보호자들의 이러한 대처는 교육청에서 변호사를 채용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고, 보험 업계에서는 교원 안심 보험이 등장하였다.[ref]몇 해 전부터는 매년 수능 직전에 교육청 차원에서 단체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수능 직후에 교사들이 민사 소송에 시달리게 되고, 합의금 명목으로 또는 민사 소송에서 패소하여 배상하는 교사들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ref] 학교에서는 학생의 문제 행동 교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방어적으로 나서게 되고, 원리원칙대로만 처리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교사의 역할이 적극적인 생활교육[ref]문제 행동 학생을 직접 만나서 상담하고 지도하는 행위를 이야기한다.[/ref]을 통해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나가기보다는 ‘교과 수업을 하고 원칙에 따라 행정 처리만을 하는 직장인’으로 점점 국한되어 가는 것이다.
법률상 정의가 모호함에도 교육 활동을 해 온 교사들, 행정 처리를 하는 직장인을 넘어서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나서는 교사들이 궁극적인 문제에 부딪힌 게 있다. 바로 생활 지도의 영역이다.
점점 학교에 법조인이 오는 일이 잦아지고, 소위 민원의 시대라고 할 만한 세상에서 교원의 생활 지도 행위는 법률적으로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초·중등교육법」 및 동법 시행령에서 학생의 생활 지도를 할 수 있도록 명시가 되었고,[ref]「초·중등교육법」 제20조의2,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0조의3.[/ref]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가 시행되었다.[ref]「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이 고시는 서이초 사건와 무관하게 법률과 시행령 개정에 따라 등장할 내용이었으나, 「아동복지법」 개정안,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과 더불어 2023년 7월 18일 서이초 사건 발생에 대한 수습 조치 중 하나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ref] 이에 대해 교사의 생활 지도권 및 교사 보호를 위한 장치가 마련되었다고 환영하는 사람도 있다.[ref]나는 담임 교사가 아니었음에도 고시에 명시된 상담 거부권을 실제로 2차례나 활용하였다.[/ref] 반면 교육계가 이러한 법률적 장치가 마련되어서 운영되어야 하는 현실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ref]역설적이게도 소송전 등에 얽혔던 교사들 중에는 학생들에게 열성을 다했거나, 원칙에 따라 중심을 잡고 학생을 지도해 왔던 교사들이 많아 보인다.[/ref]
학교를 뜨거운 시장으로 여기는 법조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면 정말 다양한 사례의 학교폭력을 마주하게 된다. 지난 4년간 심의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면서 정말 많은 학생 확인서와 보호자 의견서 등을 보았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 지날수록 보호자 의견서에서 교육부 권장 양식이 아니라 변호사 의견서가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변호사 의견서는 아니더라도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받은 것만 같은 양식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 학생에 대해 교육적 선도 조치를 하기 위해 개최되는 기구이다. 무조건적으로 처벌하기 위한 기구가 아니다. 하지만 피해 관련 학생 측에서는 상대측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가해 관련 학생 측에서는 법률 전문가를 동원하여 자녀의 가해 행위를 축소한다든지 무혐의로 만들려고 한다. 더 나아가서 피해 관련 학생 측에 대해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하여 오히려 그들이 가해자인 것마냥 상황을 풀어 나가기도 한다. 현직 생활부장인 교사 학부모, 경찰 학부모, 변호사 학부모들에게서 그런 모습들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학교를 대상으로 소송전을 하는 경우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아동학대 신고라는 카드를 사용하기도 한다. 아동학대 사건이 접수되면 경찰은 수사를 개시해야 하며, 아동학대 혐의가 없더라도 자체적으로 종결할 수 없이 무조건 검찰로 송치하여 판단을 맡겨야 하기에 아동학대 신고가 이뤄지면 교사는 모든 손발이 묶이게 된다.[ref]기존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체계에서는 아동학대 신고와 동시에 바로 직위해제가 이루어지는 것도 가능했다(현재는 아동학대 신고가 이뤄진 후 교육감 의견 청취 제도가 신설되었음). 더불어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 내려질 경우 교원의 직이 상실되기 때문에 아동학대 가해 여부와 상관없이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고 고통의 시간을 겪는다. 무혐의로 판정이 나더라도 보건복지부 시스템에서는 여전히 아동학대 행위자로 남아 있기에 또 다른 문제가 된다.[/ref]
가해 관련 학생 측의 법률 대응에 대해 피해 관련 학생 측 학부모들도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경우라면 그나마 대처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면서 결국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없던 것으로 해 달라고 하거나, 자신의 피해 사실조차도 스스로 축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연 이것을 정의롭다 볼 수 있으며,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이라고 볼 수 있을까?
현재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 중에 정말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로 보인다. 학교 안의 특수한 상황은 배제하고 오로지 형법상의 논리로만 적용을 한다. 학교폭력예방법이 아닌 형법의 논리로 상대하며, 형법의 논리가 통하지 않을 경우에는 민법, 행정법의 논리를 가져와서 상대한다.[ref]일례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상대측에 민사 소송을 이미 제기했으며, 앞으로 추가로 민사 소송을 수천만 원 제기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피해 관련 학생 측 변호인이 있었다. 당시 상대 측의 가해 행위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학교폭력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웠고, 형법상에서도 가해 행위로 보기 어려웠기에 조치 없음 처분을 내렸었다.[/ref]
학교폭력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 보호자들은 이들을 찾게 되고,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시장은 더 커져만 간다. 그 속에서 학교에서의 교육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현재 소위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들과 보호자(의뢰인)들의 상대는 피해-가해 학생 양측만이 아니다. 학교와 교육청도 그 대응 상대이다.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사에게도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다. 교사는 학생을 생활 지도를 하고 교육했을 뿐인데 소송전에 휘말리게 된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조치에 불복할 경우 행정 심판을 청구할 수 있고, 행정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행정 심판과 행정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처분에 대한 행정 심판, 행정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지원)청에서 심의위원회 진행 실무를 담당했던 장학사에 대해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다. 학생과 직접 대면할 일이 없는 교육(지원)청 장학사는 그저 자신의 업무에 충실히 임해서 처리했을 뿐인데 소송전에 휘말리게 된다. 이것이 과연 옳은 현상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다.
더불어 과연 학교교육 현장이 법조인의 시장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법적인 대응을 하기에 앞서 문제가 생기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우선이지 않을까? 더 나아가 학생의 양육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사법적 대응을 위해 법조인을 찾아가기보단 교육적 관점에 입각하여 문제 해결을 하려는 노력이 우선이지 않을까? 현재 대한민국에서 학교교육 현장에 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 시행과 학교의 교육적 기능
2023년 12월, 교육부는 2024학년도부터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ref]교육부, “[보도 자료]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신설하고 학교전담경찰관 105명 증원 학교·교사, 악성 민원서 벗어나 ‘교육’에 역량 집중”, 2023년 12월 7일.[/ref] 주요 골자는 퇴직 경찰, 퇴직 교원을 중심으로 한 전담 조사관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서 학교에서 학교폭력 사안 조사를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여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 제로센터에 보고하면 학교폭력 제로센터에서는 학교로 전담 조사관을 파견하여 이들이 사안 조사 및 보고서 작성을 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교사들의 업무를 경감해 주고 교사들을 각종 민원 및 법률 분쟁에서 구제하겠다는 것이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의 기본 취지이다.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를 두고 교사들의 심리적 부담감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비판도 많다. 그런데 비판의 목소리 중 교사들의 업무와 책임을 가중시킨다는 등의 이야기는 있지만, 어떻게 이 제도에 교육적 가치관을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ref]교원단체들이 이야기하는 교육적 기능의 회복이라는 것은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 회복(학생의 회복)보다는 교사들의 개인 회복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업무를 누가 맡느냐에 따라서 교육의 회복이 결정되지는 않기 때문이다.[/ref]
지금은 상당수 교사들은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의사소통 미흡으로 생긴 문제라고 판단되면 중간에서 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계 회복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물론 법리적으로 따지면 학교폭력을 인지하면 바로 학교폭력 사안으로 접수하고 처리해야 하지만 ‘교육’이라는 관점을 더 생각하여 본인들이 감내해 왔다.[ref]교육적 관점에 따라 교사들이 감내해 왔다가 추후 문제가 되었을 경우, 이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부재한 것이 현실이다.[/ref] 이를 통해 학생들의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성 함양에 도움을 줌과 동시에 재발을 방지하는 역할을 해 온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점점 교육적 가치관은 등한시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가 시행되면 학교에서 학생들 간에 발생하는 여러 분쟁에 대해 ‘교육’이라는 관점이 개입되기가 정말 어려워진다. 학교폭력 사안을 인지·접수하면 교육지원청(학교폭력 제로센터)에서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이 파견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응보적 관점에서의 접근만이 가능해지는 상황이다.
교육부 최초 발표안에서는 전담 조사관은 퇴직 교원, 퇴직 경찰을 위촉해서 한다고 하였으나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는 청소년 전문가도 위촉하는 등 자체적으로 보완을 거친 곳도 있다. 학교 현장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 학생들과 직접 호흡한 지 오래된 사람, 학교 밖 기관에서 학생들과 만나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기에 학교폭력 사안을 확인하면서 ‘교육 기관’에서 사실상 ‘수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평생 수사를 해 왔던 경찰, 평생 교육을 해 왔던 교원 등 다양한 집단들이 ‘교육’이라는 가치 아래에서 최선의 화음을 낼 수 있을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학교가 어떤 곳인지, 학교에서 요구되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교과 학습만을 원하는가, 아니면 그 외 부수적인 잠재적 교육과정의 영역까지를 원하는가? 잠재적 교육과정의 영역까지를 원한다면 어디까지를 원하는가? 기본 매뉴얼에 의한 인성 지도까지인가, 아니면 학생들 간의 갈등 조정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생활교육인가?
서울 강남 도곡동의 중학교에서 동급생을 흉기로 상해를 입힌 후 스스로 삶을 마감한 사건,[ref]“서울 강남 중학교서 남학생 흉기 휘두른 뒤 극단선택… 여학생 1명 다쳐”, 〈JTBC〉, 2023년 4월 17일.[/ref] 2023년 여름에 발생한 신림동 묻지 마 살인 사건, 관악산 산책로 강간 살인 사건, 2024년 1월 중학생에 의해 발생한 배현진 의원 피습 사건[ref]“습격범은 중학생… ‘배현진 의원이냐’ 묻고 머리 가격”, 〈조선일보〉, 2024년 1월 25일.[/ref] 등 사회적으로 흉악한 범죄라고 이야기되는 사건의 원인을 이야기할 때 학교교육을 지목하는 경우들이 있다. 여기서 질문을 하고 싶다. 이러한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어렸을 때부터 교육하는 것이 학교의 영역인가? 아니면 학교는 교과교육만을 하면 되는 것인가?
교육은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까, 수동적·방어적으로 임해야 할까? 학생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의 행동 교정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양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는 것이 교육일까? 아니면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은 뒤로하고 일단 살려야 할 학생들만 살리고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에 대한 지도는 회피하며 교사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교육일까?
학교가 교육 기관이라면, 그래서 적극적인 교육을 해야 하는 곳이라면, 더불어 교과교육 이외의 잠재적 교육과정의 영역까지 교육을 원한다면 학교공동체 구성원들이 ‘배려’와 ‘존중’이라는 단어를 잊지 말아야 한다. 학생은 교원을, 교원은 학생을, 학부모는 교원을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학교 현장이 점점 사법화되고 있는 것은 상호 간에 배려와 존중이 상실되어 가기 때문이다. 배려와 존중의 상실로 인한 악순환은 계속 반복되고, 학교 현장의 문제는 점점 곪았다가 터지는 것이다.
체벌이 있던 시절은 이미 종언을 맞이했다. 교사들이 권위주의적 의식을 갖고 학생을 대하던 경향도 희미해졌다. 교사들이 점점 세대 교체가 되면서 학생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교사들이 많아졌다. 교사에 대해 학생과 보호자의 무조건적인 존중이 요구되는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교사의 잘못에 대해 학생과 보호자도 지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일부에 의해 배려와 존중이라는 가치가 점점 무너지고 있다. 어떤 집단이든 물 흐리는 사람은 한두 명씩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극소수의 문제로 전체를 호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배려와 존중의 상실이 점점 증가하고 문화화되는 것은 문제다.
배려와 존중과 더불어 ‘대화’가 필요하다. 가정에서의 대화도 필요하고, 가정과 학교 사이의 대화도 필요하다. 학생과 만나다 보면 대화가 많이 이뤄진 가정의 자녀와 그렇지 않은 가정의 자녀, 방치된 가정의 자녀와 그렇지 않은 가정의 자녀가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차이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 경제적 지위, 가정 형태와는 상관이 없다. 학교에서 심리적 안정을 보이고 다른 학생들과 두루 잘 지내는 학생들은 가정에서 부모와 대화가 많이 이뤄지고 그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가치를 배운 학생들이다. 반면 가정에서 대화가 없거나 방치된 학생들 중에는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모습의 학생들은 부모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을 가진 경우,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우수한 경우에서도 어렵지 않게 보인다.
가정과 학교 사이에서의 대화도 필요하다. 자녀가 문제 행동을 일으킬 때 문제를 회피하기보다는 “어떻게 교육해야 내 자녀가 올바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를 물어야 한다. 문제 행동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학교에 물으며 가정에서의 견해까지도 공유해 주어야 한다. 서로 가르치려는 자세는 지양하고 서로 대화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보호자들은 교사가 자녀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한다면 이에 대해 경청하고, 그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 이때 교사든 부모든 고압적인 자세가 되면 안 되고, 서로 정중히 경청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대화 과정에서 서로 납득이 가지 않고 기분 상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상대에 대한 존중은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기에 지금 학교교육 현장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대한민국 학교를 생각해 보자. 학교교육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지금 학교에서는 자녀의 학교폭력 이력을 만들지 않기 위한 소송, 자녀의 학교폭력 이력 삭제를 위한 소송, 자녀의 각종 위원회[ref]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생활교육위원회, 교권보호위원회.[/ref] 처분 무력화를 위한 소송, 담임 교사 및 교과 담당 교사 교체를 위한 민원 및 소송, 자녀의 학교생활기록부 중 교사의 평가 영역 기재 내역[ref]교과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 등.[/ref] 수정을 위한 소송 등 각종 소송전이 전개되고 있다. 그 전에 학생의 올바른 성장과 교육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