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세월호 10주기, 4.16 교육 체제와 애도 수업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4.16 수업
연대와 공감을 통해 ‘정의’ 감각을 피워 내기를
글
박정현
jhyp73@naver.com
대구 신명고 교사
2014년 4월 16일, 군대 생활관 TV 화면 속 배는 이미 침몰해 있었다. 그 배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생들이 타고 있다고 했다. 참담한 상황이었지만 구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는 눈앞의 훈련 등으로 힘들고 바쁘다 보니 잠깐의 뉴스 시청도 사치였던 때였다. 그렇게 세월호는 잊혀 갔고 전역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2018년 교직에 첫발을 내딛고 맞이한 4월 16일의 교실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노란 리본 그림과 짧은 추모의 글들이 칠판 한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었다. 내게 그 모습은 충격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세월호 참사 관련 계기 교육이나 수업을 하는 교사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잊지 않고 애도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반은 추모 문구를 써 놓은 칠판 쪽 교실 등만 켜 놓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어떤 마음으로 자발적인 추모를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학생들에게 “너희는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칠판에 애도의 말을 적고 노란 리본을 그렸니?”라고 물었다. 그 힘은 ‘공감과 슬픔’이었다. 칠판에 적힌 말과 노란 리본은 자기들과 똑같은 나이에, 너무나 안타깝게 떠나간 이들에 대한 슬픔과 공감이었다. 그 마음들이 모여 학생들 스스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애도하게 된 것이다. 그날 학생들이 보여 준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조금 더 교육적으로 학생들과 함께 기억하고 추모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함께 잊지 않기 : 학급 자율 활동으로 한 4.16 계기 교육
2021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한 후 4.16 계기 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학급 학생들과 4.16 수업을 꼭 해 보고 싶었다. 2021년 새 학기를 앞두고 참여한 전국국어교사모임의 시 창작 연수는 그 결심을 더욱 굳게 했다. 당시 안산 단원고에 재직 중이었던 강사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한 활동과 함께 읽은 시, 결과물까지 모두 공유해 주셨다. 그 수업안대로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은 나는 학급 자율 활동 시간에 4.16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 전에 책상을 ‘ㄷ’ 자 형태로 배치하여 학생들이 연대의 감정을 공간적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세월호 참사를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서는 연대와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수 때 공유받았던 단원고 학생들의 활동에서도 ‘함께 기억함’의 중요성이 가장 많이 드러났다. 지금도 ‘우리 모두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잊히지 않는다면 영원히 살아 숨 쉴 수 있다’ 등 단원고 학생들이 쓴 글들이 기억에 남는다.
먼저 연수에서 받은 ‘4.16 낭독회’ 자료를 활동지 삼아, 학생들과 함께 시 한 편을 읽었다. 김현 시인의 〈기쁨의 두부고로케〉였다. 한 연씩 돌아가며 낭송하다 보면 자연스레 시에 집중하게 된다. 시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영만이가 남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었다. 화자인 영만이는 ‘엄마가 매일 새벽 기도를 나가서 / 형 대신에 나를 위해 기도하면 어떡하지’ 걱정하고, ‘자, 그럼 이제 /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기’라며 도리어 위로한다. 이런 영만이의 마음이 우리 반 학생들의 마음에 가닿았을까? 이렇게 학생들과 함께 시를 낭송하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마음에 다가가 보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지는데, 당시 〈기쁨의 두부고로케〉를 1/3 정도 낭송했을 때 우리 반 학생들의 절반 정도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 낭송했는데, 내가 먼저 너무 펑펑 울어 버려 수업 진행이 5분 정도 지연됐다. 울음을 참고 있던 학생들도 나를 따라 같이 울어 버려 수업이 중간중간 더 지연되기도 했다. 같은 또래인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들을 떠나보낸 가족들의 마음에 공감하다 보니 슬픔이 북받친 것이다. 공감을 바탕으로 한 슬픔, 그리고 이걸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 애도하고 있다는 연대의 마음은 우리 1학년 3반을 더욱 ‘같이(가치)’ 있도록 했다.
다음으로 가수 루시드 폴의 노래 〈아직, 있다〉를 학생들과 함께 들었다. 이 노래의 가사 역시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학생의 시점으로 쓴 것이다. 노래를 들으면서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북받친 슬픔도 진정된 것 같았다. 나도 마찬가지여서, 감정을 추스르고 연수 자료로 받은 단원고 학생들이 쓴 세월호 관련 시와 엽서, 편지 등을 반 학생들에게 낭독해 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를 우리가 왜 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준비해 간 4.16 리본과 팔찌, 배지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며 노란색 포스트잇도 함께 주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창문 등 교실 곳곳에 붙여 보라고 말이다. 그날 우리 반 교실은 노란 포스트잇으로 꾸민 세월호 기억 공간이 되었다.
2022년 고3 담임을 맡았을 때도, 학급 자율 활동 시간에 4.16 계기 수업을 진행했다. 또한 전교생에게 우리 반 교실을 4.16 기억 공간으로 꾸미려고 하니 함께 만들어 보자고 안내하기도 했다. 2년 연속 우리 반 교실은 4.16 기억 공간이 되었고 더 많은 학생들이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할 수 있었다. 그날 학생들이 붙인 포스트잇 중 하나를 그대로 옮겨 본다.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며 생명과 일상의 소중함을, 타인을 향한 공감과 위로를 배운다.
REMEMBER 0416
2023년, 3학년 2반 교실과 복도를 4.16 기억 공간으로 만들어 학생이 자유롭게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할 수 있게 했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러 2014년 당시 언니, 오빠들의 나이보다 많아졌어요. 저는 머지않아 수능을 앞두고 있고,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오고, 4월 16일이 왔어요. 그 당시에 저는 그저 어린 초등학생에 불과했기에 참 어리석었어요. 왜 ‘세월호 참사’만 기억해야 하나요? 어른들은 너무 모순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수학여행 안 간다고, 체육대회를 하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쉽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언니, 오빠, 다른 희생자분들 그리고 유가족분들.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부디 언니, 오빠 다른 희생자분들 그 시간에 머물러 계시지 말고 노란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직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분들도 부디 그곳에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영원히 기억할게요.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2022년 4월 16일)
점을 선과 면으로 만든 학생의 성장과 동료 교사의 지지
2년 동안 4.16 계기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걱정도 많았다. 학생들이 이 수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내가 생각한 교육적 의미가 학생들에게 온전히 닿을지 걱정됐다. 지금이야 고등학생이지만 세월호 참사 당시엔 초등학생이었던 학생들이다. 당시 상황을 가물가물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괜히 인터넷에서 떠도는 가짜 정보나 정치적 관점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지도 걱정되었다. 몇몇 교사들은 내가 학생들에게 세월호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한다고 오해하기도 했다.
나는 2019년부터 교직원 명찰에 4.16을 애도하고 기억하려는 의미로 추모 배지를 달고 다녔다. 이듬해 한 부장 선생님께서 배지가 정치적 메시지를 줄 수 있으니 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교무부장 선생님도 동조했다. 교직에 막 들어선 내게 두 부장 선생님의 이야기는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배지를 빼지 않았다. 학생들이 보여 준 세월호 참사를 향한 순수한 애도의 마음을 확인했고, 정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료 선생님들의 지지와 응원도 큰 힘이 되었다. 본인은 계기 수업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대단하다”고 응원해 주고, 자신도 매년 4월 16일이면 훈화로라도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지지해 주는 동료 선생님들이 고마웠다.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용히, 또는 약식으로 애도와 기억을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 걱정과 고민, 응원과 지지 속에서 나름 욕심도 생겼다. 학급 계기 교육을 넘어서는 수업으로 발전시켜 보고 싶었다. 특히 2021년 첫 수업을 통해 우리 반 학생들의 성장을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해 친구들과 관계를 정립해 가는 시기에, 4.16 수업은 1학년 3반 학생들에게 연대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학교에 소문이 퍼지자 수업 자료와 추모 물품을 받으러 온 다른 반, 다른 학년 학생들의 반응도 내게 힘이 되었다. 그들의 뜻깊은 참여와 연대로 ‘이 수업을 수면 아래에서 할 필요가 전혀 없겠구나’ 싶었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2022년 입시로 바쁜 고3 아이들과 4.16 계기 수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전교생에게 우리 반 교실을 기억 공간으로 함께 꾸미자고 제안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학생들이 전해 준 용기 덕분이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23년에는 담당 교과인 국어 수업과 연결해 보았다. 학습 목표를 ‘문학을 통한 연대와 기억’으로 정했다. ‘기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4.16 기억 상점’에서 노란 리본 배지와 노란 팔찌를 사려고 했다. 그런데 물품 구입 공문의 결재권자인 교감 선생님은 세월호 관련 물품 구입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내 수업이 정치적 중립에 위배된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민원을 넣을 수도 있다며 걱정된다고 했다.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국어 시간에 시 수업을 하고 시 내용이 세월호 참사를 다루고 있을 뿐인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나는 기억과 연대라는 교육적 효과를 더욱 높이기 위해 추모 배지와 팔찌를 국어과 예산으로 구입해서 나누어 주는 게 왜 정치적 중립에 위배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업에 정치적인 내용은 전혀 없으니 감사하지만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덧붙였다. 세월호 관련 교육은 교육청에서 인정받은 교과서도 있고, 교육부에서 계기 교육 관련 공문이 내려온다고도 했다. 정 걱정되면 수업안과 활동지를 드릴 테니 수업에도 들어오시라고 했다. 교감 선생님은 본인이 굳이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활동지와 수업안을 안 봐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학교 예산으로 세월호 물품을 사는 게 걱정이라고 해서 국어과 예산으로 이 물품을 사면 안 되는 근거가 있느냐고 물었다. 수업 목표에 더욱 잘 다가가기 위해 수업 운영비, 수업 물품비로 구입하는 것인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나는 교감 선생님의 걱정이나 감정, 생각으로 이 수업 물품을 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따를 수 없다고 거듭 결재 요청을 했다. 이틀간의 실랑이 끝에 계획보다 늦었지만 추모 배지와 팔찌를 주문할 수 있었다. 이렇게 4.16 시 수업을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문학을 통한 연대와 기억 : 4.16 문학 수업
문학 수업에서는 작품 선정이 8할의 비중을 차지한다. 쉽게 읽히면서 의미가 있어야 수업 이후에도 학생들의 삶 속에 남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여 년의 시간 동안 이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많은 작가들이 세월호 문학을 발표했다. 제한된 시간에 타인의 공감을 일으키기에는 시가 좀 더 적합할 것 같아 세월호 문학 중 시 작품을 찾아보았다.
진은영 시인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읽다가 세월호 내용을 담은 시를 두 편 골랐다. 학생들과 함께 읽기에 〈그날 이후〉,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가 적절할 것 같았다. 〈그날 이후〉의 화자는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유예은’ 학생,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의 화자는 ‘예은’ 학생의 쌍둥이 언니라고 생각했다. 당시 고2였던 예은이와 쌍둥이 동생을 잃고 스무 살이 된 언니, 이 두 화자의 이야기에 또래인 고3 학생들이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저 학생들에게 이 수업을 왜 하는지 수업 목표가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건들이 많지만, 그중에 왜 ‘4.16을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와 같은 학생과 교사에게 벌어진 사건을 학교에서, 수업에서 다루는 것이 당연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문학이 아픔을 기억하고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됨을, 아픔을 함께하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공동체, 연대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싶었다.
이어서 학생들에게 10분 동안 위 두 시를 조용히 읽도록 했다. 마음에 와닿는 시어나 시구에 형광펜으로 줄도 긋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시어나 시구는 그대로 따라 적어 보게 했다. 마음에 와닿는 이유도 함께 적어 보라고 했다. 이후 10분 동안은 마음에 와닿은 시어와 시구, 그 이유를 함께 나누어 보았다. 내가 먼저 이야기했다. 교사가 진솔하게 수업에 참여하면 학생들도 자연스레 이야기할 수 있다.
여덟 반을 수업하는 동안 학생들이 제일 많이 언급한 시구는 〈그날 이후〉의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였다.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는 엄마, 아빠를 생각하는 예쁜 마음, 그걸 하늘에서밖에, 생각으로만 할 수밖에 없는 예은이의 슬픈 상황이 와닿았다고 한다. 또한 자신들의 아빠와 엄마를 생각나게 하고 가족애를 느낄 수 있어 깊은 공감을 이끌어 냈다고 한다. 내가 가장 많이 언급한 시구는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의 ““얘들아, 어서 벗자 이건 너희들이 입기엔 너무 사이즈가 큰 슬픔이다””였다. 이런 참사를 겪게 한 어른으로서의 미안함이 내내 나를 너무 부끄럽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수업을 더욱 계속해야 할 책임과 의지를 다지게 하는 시구이기도 했다.
계기 수업 때처럼 김현 시인의 〈기쁨의 두부고로케〉도 순서대로 돌아가며 한 행씩 낭송했다. 나도 함께 낭송했다. 위 두 시도 좋지만, 〈기쁨의 두부고로케〉는 시 전체는 길고 각 행은 짧아 학급 모두가 돌아가며 낭송하기에 적절했다. 무엇보다 이 시가 슬픔 너머에 있는 의지와 희망을 전달하는 정서를 담고 있고 이를 학생들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하기에 좋다.
낭송을 마치고 노란 포스트잇을 나누어 주며 시에 대한 감상과 오늘 수업을 통해 느낀 점을 적게 했다. 작성한 포스트잇은 교실 어디든 붙이고 싶은 곳에 붙이라고 했다. 세월호 배지와 팔찌, 리본도 나눠 주며 자유롭게 가져가라고 했다.
수업 안내는 진지하게 했지만, 수업 자체는 최대한 자유롭게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교사가 “우리 모두 아픔을 같이 공감해야 해”, “함께 연대해야 해”, “같이 기억해야 해”라고 명시적인 말을 하기보다 시와 글, 그리고 그걸 함께 읽는 교실 상황, 분위기,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이 수업의 목표를 좀 더 자연스레 달성하기를 원했다.
학생들이 시를 통해 느낀 감정과 생각은 대부분 공감과 미안함이었다. 잊으며 지냈다는 사실에 미안해하고, 자기들처럼 웃고 행복하게 생활하지 못하는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일상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낸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이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나는 한 번도 내 이름이 예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를 읽고 예은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멋지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 시 안의 예은이는 예쁜 이름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지만, 이 시를 통해 자신의 이름이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리 잡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편히 눈감기를 바랐다. 하지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었지만 점점 기억에서 잊히고 있는 현실을 깨닫게 되어 마음이 아팠다. 〈그날 이후〉와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라는 시는 수업 때 읽고 나서도 계속 마음속에 맴돌아서 시집을 빌려 다시 읽어 볼 정도로 여운이 남았다. 시를 다시 읽어 보니 시에 담긴 문구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졌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 시가, 세월호가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기를 바라게 됐다.
- 3학년 O예은
반 전체가 돌아가며 시 낭송을 할 때, “너는 이제 다 커버렸는데 /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똑같다 / 바뀐 그림 하나 없이”라는 구절이 가장 내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때 학생들은 이제 다 큰 성인이지만, 우리는 아직 그때 일을 잊지 못하고 그들을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바쁜 현대 사회 속 우리 모두가 가슴 아파했던 사건들에 너무 빨리 무뎌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을 통해 그때의 아픔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느꼈다.
- 3학년 이O민
10주기 이후를 바라보며
4.16 수업을 지난 3년 동안 해 오면서, 내가 이 수업을 할 자격이 있는가를 늘 생각했다. 팽목항 한번 가 본 적 없는 내가 하는 수업이 공허하진 않을까? 정말 진실될까? 고민했다. 하지만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생각과 감정을 남기고 성장을 일으키는 게 교사다. 그러니 나마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우리 반, 우리 학교 학생들은 자기 생에서 이 수업을 통해 느끼게 될 감정과 생각을 다시 겪기는 힘들 것이다. 나와 내 수업이 특별해서라는 오만이 아닌, 문학의 힘이 분명 학생들에게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일으킬 생각과 감정을 갖게 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이 학교에서 누군가는 꼭 진지하게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4.16 계기 수업, 문학 수업을 멈추지 않고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실 교감 선생님과의 갈등은 나를 참 힘들게 했다. 그런데 그 힘듦과 혼란 속에서 불현듯 그동안의 내 고민이 해결됐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아직까지 오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누군가에게 이 참사가 주는 의미와 본질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물러서지 말아야겠다고 말이다. 학생들이 혹시나 그런 오해를 진실로 믿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거나 현혹되지 않도록 말이다. 우리가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애도하며 앞으로 나아갈지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라도 4.16 수업은 계속되어야 했다.
이러한 내 고민과 우려를 일깨우는 글이 《미래 교육과 4.16》 교과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생명안전 시민넷 공동 대표인 김훈 작가가 강연에서 우리 사회와 시민들에게 전한 이야기였다. 그 글을 학생들과 함께 읽으며 4.16 문학 수업을 마무리했다.
“사람들은 점점 남의 고통이나 슬픔에 공감하는 감각을 잃고 있습니다. 자기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생명, 타인과 세계에 대한 감수성과 감각이 마비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의 감수성이 마비된다는 것은 인격적인 비극입니다. 감각이 없는 사람은 정의나 불의를 알 수 없습니다. 정의나 불의라는 것은 어떤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라는 감각이 없는 사람은 정의나 불의를 추상적인 관념으로만 이해하게 됩니다.”[ref]김훈 작가의 “나는 왜 생명과 안전을 말하는가” 강연 내용 중에서(생명안전 시민이야기 마당, 2019년 9월 27일). [민태홍 외(2022), 《미래 교육과 4.16》, 해냄에듀, 94쪽] 참고.[/ref]
나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기억과 공감, 연대의 중요성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또한 곧 사회로 나아갈 학생들에게 참사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무언가를 전하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연대와 공감을 바탕으로 한 ‘정의’였다. 슬픔이 잦아든 학생들은 ‘도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궁금할 테다. 그래서 책임자는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진상을 규명했는지, 지금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되었는지, ‘정의’를 바탕으로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10주기를 맞은 올해도 어김없이 학생들과 함께 4.16 문학 수업을 진행할 것이다. 학생들이 연대와 공감을 통해 정의에 대한 감각을 피워 내기를 바란다.
기획 | 세월호 10주기, 4.16 교육 체제와 애도 수업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4.16 수업
연대와 공감을 통해 ‘정의’ 감각을 피워 내기를
글
박정현
jhyp73@naver.com
대구 신명고 교사
2014년 4월 16일, 군대 생활관 TV 화면 속 배는 이미 침몰해 있었다. 그 배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생들이 타고 있다고 했다. 참담한 상황이었지만 구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는 눈앞의 훈련 등으로 힘들고 바쁘다 보니 잠깐의 뉴스 시청도 사치였던 때였다. 그렇게 세월호는 잊혀 갔고 전역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2018년 교직에 첫발을 내딛고 맞이한 4월 16일의 교실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노란 리본 그림과 짧은 추모의 글들이 칠판 한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었다. 내게 그 모습은 충격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세월호 참사 관련 계기 교육이나 수업을 하는 교사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잊지 않고 애도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반은 추모 문구를 써 놓은 칠판 쪽 교실 등만 켜 놓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어떤 마음으로 자발적인 추모를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학생들에게 “너희는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칠판에 애도의 말을 적고 노란 리본을 그렸니?”라고 물었다. 그 힘은 ‘공감과 슬픔’이었다. 칠판에 적힌 말과 노란 리본은 자기들과 똑같은 나이에, 너무나 안타깝게 떠나간 이들에 대한 슬픔과 공감이었다. 그 마음들이 모여 학생들 스스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애도하게 된 것이다. 그날 학생들이 보여 준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조금 더 교육적으로 학생들과 함께 기억하고 추모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함께 잊지 않기 : 학급 자율 활동으로 한 4.16 계기 교육
2021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한 후 4.16 계기 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학급 학생들과 4.16 수업을 꼭 해 보고 싶었다. 2021년 새 학기를 앞두고 참여한 전국국어교사모임의 시 창작 연수는 그 결심을 더욱 굳게 했다. 당시 안산 단원고에 재직 중이었던 강사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한 활동과 함께 읽은 시, 결과물까지 모두 공유해 주셨다. 그 수업안대로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은 나는 학급 자율 활동 시간에 4.16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 전에 책상을 ‘ㄷ’ 자 형태로 배치하여 학생들이 연대의 감정을 공간적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세월호 참사를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서는 연대와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수 때 공유받았던 단원고 학생들의 활동에서도 ‘함께 기억함’의 중요성이 가장 많이 드러났다. 지금도 ‘우리 모두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잊히지 않는다면 영원히 살아 숨 쉴 수 있다’ 등 단원고 학생들이 쓴 글들이 기억에 남는다.
먼저 연수에서 받은 ‘4.16 낭독회’ 자료를 활동지 삼아, 학생들과 함께 시 한 편을 읽었다. 김현 시인의 〈기쁨의 두부고로케〉였다. 한 연씩 돌아가며 낭송하다 보면 자연스레 시에 집중하게 된다. 시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영만이가 남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었다. 화자인 영만이는 ‘엄마가 매일 새벽 기도를 나가서 / 형 대신에 나를 위해 기도하면 어떡하지’ 걱정하고, ‘자, 그럼 이제 /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기’라며 도리어 위로한다. 이런 영만이의 마음이 우리 반 학생들의 마음에 가닿았을까? 이렇게 학생들과 함께 시를 낭송하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마음에 다가가 보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지는데, 당시 〈기쁨의 두부고로케〉를 1/3 정도 낭송했을 때 우리 반 학생들의 절반 정도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 낭송했는데, 내가 먼저 너무 펑펑 울어 버려 수업 진행이 5분 정도 지연됐다. 울음을 참고 있던 학생들도 나를 따라 같이 울어 버려 수업이 중간중간 더 지연되기도 했다. 같은 또래인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들을 떠나보낸 가족들의 마음에 공감하다 보니 슬픔이 북받친 것이다. 공감을 바탕으로 한 슬픔, 그리고 이걸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 애도하고 있다는 연대의 마음은 우리 1학년 3반을 더욱 ‘같이(가치)’ 있도록 했다.
다음으로 가수 루시드 폴의 노래 〈아직, 있다〉를 학생들과 함께 들었다. 이 노래의 가사 역시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학생의 시점으로 쓴 것이다. 노래를 들으면서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북받친 슬픔도 진정된 것 같았다. 나도 마찬가지여서, 감정을 추스르고 연수 자료로 받은 단원고 학생들이 쓴 세월호 관련 시와 엽서, 편지 등을 반 학생들에게 낭독해 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를 우리가 왜 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준비해 간 4.16 리본과 팔찌, 배지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며 노란색 포스트잇도 함께 주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창문 등 교실 곳곳에 붙여 보라고 말이다. 그날 우리 반 교실은 노란 포스트잇으로 꾸민 세월호 기억 공간이 되었다.
2022년 고3 담임을 맡았을 때도, 학급 자율 활동 시간에 4.16 계기 수업을 진행했다. 또한 전교생에게 우리 반 교실을 4.16 기억 공간으로 꾸미려고 하니 함께 만들어 보자고 안내하기도 했다. 2년 연속 우리 반 교실은 4.16 기억 공간이 되었고 더 많은 학생들이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할 수 있었다. 그날 학생들이 붙인 포스트잇 중 하나를 그대로 옮겨 본다.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며 생명과 일상의 소중함을, 타인을 향한 공감과 위로를 배운다.
REMEMBER 0416
2023년, 3학년 2반 교실과 복도를 4.16 기억 공간으로 만들어 학생이 자유롭게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할 수 있게 했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러 2014년 당시 언니, 오빠들의 나이보다 많아졌어요. 저는 머지않아 수능을 앞두고 있고,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오고, 4월 16일이 왔어요. 그 당시에 저는 그저 어린 초등학생에 불과했기에 참 어리석었어요. 왜 ‘세월호 참사’만 기억해야 하나요? 어른들은 너무 모순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수학여행 안 간다고, 체육대회를 하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쉽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언니, 오빠, 다른 희생자분들 그리고 유가족분들.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부디 언니, 오빠 다른 희생자분들 그 시간에 머물러 계시지 말고 노란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직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분들도 부디 그곳에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영원히 기억할게요.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2022년 4월 16일)
점을 선과 면으로 만든 학생의 성장과 동료 교사의 지지
2년 동안 4.16 계기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걱정도 많았다. 학생들이 이 수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내가 생각한 교육적 의미가 학생들에게 온전히 닿을지 걱정됐다. 지금이야 고등학생이지만 세월호 참사 당시엔 초등학생이었던 학생들이다. 당시 상황을 가물가물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괜히 인터넷에서 떠도는 가짜 정보나 정치적 관점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지도 걱정되었다. 몇몇 교사들은 내가 학생들에게 세월호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한다고 오해하기도 했다.
나는 2019년부터 교직원 명찰에 4.16을 애도하고 기억하려는 의미로 추모 배지를 달고 다녔다. 이듬해 한 부장 선생님께서 배지가 정치적 메시지를 줄 수 있으니 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교무부장 선생님도 동조했다. 교직에 막 들어선 내게 두 부장 선생님의 이야기는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배지를 빼지 않았다. 학생들이 보여 준 세월호 참사를 향한 순수한 애도의 마음을 확인했고, 정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료 선생님들의 지지와 응원도 큰 힘이 되었다. 본인은 계기 수업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대단하다”고 응원해 주고, 자신도 매년 4월 16일이면 훈화로라도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지지해 주는 동료 선생님들이 고마웠다.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용히, 또는 약식으로 애도와 기억을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 걱정과 고민, 응원과 지지 속에서 나름 욕심도 생겼다. 학급 계기 교육을 넘어서는 수업으로 발전시켜 보고 싶었다. 특히 2021년 첫 수업을 통해 우리 반 학생들의 성장을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해 친구들과 관계를 정립해 가는 시기에, 4.16 수업은 1학년 3반 학생들에게 연대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학교에 소문이 퍼지자 수업 자료와 추모 물품을 받으러 온 다른 반, 다른 학년 학생들의 반응도 내게 힘이 되었다. 그들의 뜻깊은 참여와 연대로 ‘이 수업을 수면 아래에서 할 필요가 전혀 없겠구나’ 싶었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2022년 입시로 바쁜 고3 아이들과 4.16 계기 수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전교생에게 우리 반 교실을 기억 공간으로 함께 꾸미자고 제안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학생들이 전해 준 용기 덕분이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23년에는 담당 교과인 국어 수업과 연결해 보았다. 학습 목표를 ‘문학을 통한 연대와 기억’으로 정했다. ‘기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4.16 기억 상점’에서 노란 리본 배지와 노란 팔찌를 사려고 했다. 그런데 물품 구입 공문의 결재권자인 교감 선생님은 세월호 관련 물품 구입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내 수업이 정치적 중립에 위배된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민원을 넣을 수도 있다며 걱정된다고 했다.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국어 시간에 시 수업을 하고 시 내용이 세월호 참사를 다루고 있을 뿐인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나는 기억과 연대라는 교육적 효과를 더욱 높이기 위해 추모 배지와 팔찌를 국어과 예산으로 구입해서 나누어 주는 게 왜 정치적 중립에 위배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업에 정치적인 내용은 전혀 없으니 감사하지만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덧붙였다. 세월호 관련 교육은 교육청에서 인정받은 교과서도 있고, 교육부에서 계기 교육 관련 공문이 내려온다고도 했다. 정 걱정되면 수업안과 활동지를 드릴 테니 수업에도 들어오시라고 했다. 교감 선생님은 본인이 굳이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활동지와 수업안을 안 봐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학교 예산으로 세월호 물품을 사는 게 걱정이라고 해서 국어과 예산으로 이 물품을 사면 안 되는 근거가 있느냐고 물었다. 수업 목표에 더욱 잘 다가가기 위해 수업 운영비, 수업 물품비로 구입하는 것인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나는 교감 선생님의 걱정이나 감정, 생각으로 이 수업 물품을 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따를 수 없다고 거듭 결재 요청을 했다. 이틀간의 실랑이 끝에 계획보다 늦었지만 추모 배지와 팔찌를 주문할 수 있었다. 이렇게 4.16 시 수업을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문학을 통한 연대와 기억 : 4.16 문학 수업
문학 수업에서는 작품 선정이 8할의 비중을 차지한다. 쉽게 읽히면서 의미가 있어야 수업 이후에도 학생들의 삶 속에 남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여 년의 시간 동안 이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많은 작가들이 세월호 문학을 발표했다. 제한된 시간에 타인의 공감을 일으키기에는 시가 좀 더 적합할 것 같아 세월호 문학 중 시 작품을 찾아보았다.
진은영 시인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읽다가 세월호 내용을 담은 시를 두 편 골랐다. 학생들과 함께 읽기에 〈그날 이후〉,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가 적절할 것 같았다. 〈그날 이후〉의 화자는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유예은’ 학생,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의 화자는 ‘예은’ 학생의 쌍둥이 언니라고 생각했다. 당시 고2였던 예은이와 쌍둥이 동생을 잃고 스무 살이 된 언니, 이 두 화자의 이야기에 또래인 고3 학생들이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저 학생들에게 이 수업을 왜 하는지 수업 목표가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건들이 많지만, 그중에 왜 ‘4.16을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와 같은 학생과 교사에게 벌어진 사건을 학교에서, 수업에서 다루는 것이 당연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문학이 아픔을 기억하고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됨을, 아픔을 함께하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공동체, 연대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싶었다.
이어서 학생들에게 10분 동안 위 두 시를 조용히 읽도록 했다. 마음에 와닿는 시어나 시구에 형광펜으로 줄도 긋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시어나 시구는 그대로 따라 적어 보게 했다. 마음에 와닿는 이유도 함께 적어 보라고 했다. 이후 10분 동안은 마음에 와닿은 시어와 시구, 그 이유를 함께 나누어 보았다. 내가 먼저 이야기했다. 교사가 진솔하게 수업에 참여하면 학생들도 자연스레 이야기할 수 있다.
여덟 반을 수업하는 동안 학생들이 제일 많이 언급한 시구는 〈그날 이후〉의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였다.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는 엄마, 아빠를 생각하는 예쁜 마음, 그걸 하늘에서밖에, 생각으로만 할 수밖에 없는 예은이의 슬픈 상황이 와닿았다고 한다. 또한 자신들의 아빠와 엄마를 생각나게 하고 가족애를 느낄 수 있어 깊은 공감을 이끌어 냈다고 한다. 내가 가장 많이 언급한 시구는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의 ““얘들아, 어서 벗자 이건 너희들이 입기엔 너무 사이즈가 큰 슬픔이다””였다. 이런 참사를 겪게 한 어른으로서의 미안함이 내내 나를 너무 부끄럽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수업을 더욱 계속해야 할 책임과 의지를 다지게 하는 시구이기도 했다.
계기 수업 때처럼 김현 시인의 〈기쁨의 두부고로케〉도 순서대로 돌아가며 한 행씩 낭송했다. 나도 함께 낭송했다. 위 두 시도 좋지만, 〈기쁨의 두부고로케〉는 시 전체는 길고 각 행은 짧아 학급 모두가 돌아가며 낭송하기에 적절했다. 무엇보다 이 시가 슬픔 너머에 있는 의지와 희망을 전달하는 정서를 담고 있고 이를 학생들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하기에 좋다.
낭송을 마치고 노란 포스트잇을 나누어 주며 시에 대한 감상과 오늘 수업을 통해 느낀 점을 적게 했다. 작성한 포스트잇은 교실 어디든 붙이고 싶은 곳에 붙이라고 했다. 세월호 배지와 팔찌, 리본도 나눠 주며 자유롭게 가져가라고 했다.
수업 안내는 진지하게 했지만, 수업 자체는 최대한 자유롭게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교사가 “우리 모두 아픔을 같이 공감해야 해”, “함께 연대해야 해”, “같이 기억해야 해”라고 명시적인 말을 하기보다 시와 글, 그리고 그걸 함께 읽는 교실 상황, 분위기,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이 수업의 목표를 좀 더 자연스레 달성하기를 원했다.
학생들이 시를 통해 느낀 감정과 생각은 대부분 공감과 미안함이었다. 잊으며 지냈다는 사실에 미안해하고, 자기들처럼 웃고 행복하게 생활하지 못하는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일상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낸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이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나는 한 번도 내 이름이 예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를 읽고 예은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멋지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 시 안의 예은이는 예쁜 이름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지만, 이 시를 통해 자신의 이름이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리 잡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편히 눈감기를 바랐다. 하지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었지만 점점 기억에서 잊히고 있는 현실을 깨닫게 되어 마음이 아팠다. 〈그날 이후〉와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라는 시는 수업 때 읽고 나서도 계속 마음속에 맴돌아서 시집을 빌려 다시 읽어 볼 정도로 여운이 남았다. 시를 다시 읽어 보니 시에 담긴 문구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졌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 시가, 세월호가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기를 바라게 됐다.
- 3학년 O예은
반 전체가 돌아가며 시 낭송을 할 때, “너는 이제 다 커버렸는데 /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똑같다 / 바뀐 그림 하나 없이”라는 구절이 가장 내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때 학생들은 이제 다 큰 성인이지만, 우리는 아직 그때 일을 잊지 못하고 그들을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바쁜 현대 사회 속 우리 모두가 가슴 아파했던 사건들에 너무 빨리 무뎌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을 통해 그때의 아픔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느꼈다.
- 3학년 이O민
10주기 이후를 바라보며
4.16 수업을 지난 3년 동안 해 오면서, 내가 이 수업을 할 자격이 있는가를 늘 생각했다. 팽목항 한번 가 본 적 없는 내가 하는 수업이 공허하진 않을까? 정말 진실될까? 고민했다. 하지만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생각과 감정을 남기고 성장을 일으키는 게 교사다. 그러니 나마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우리 반, 우리 학교 학생들은 자기 생에서 이 수업을 통해 느끼게 될 감정과 생각을 다시 겪기는 힘들 것이다. 나와 내 수업이 특별해서라는 오만이 아닌, 문학의 힘이 분명 학생들에게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일으킬 생각과 감정을 갖게 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이 학교에서 누군가는 꼭 진지하게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4.16 계기 수업, 문학 수업을 멈추지 않고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실 교감 선생님과의 갈등은 나를 참 힘들게 했다. 그런데 그 힘듦과 혼란 속에서 불현듯 그동안의 내 고민이 해결됐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아직까지 오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누군가에게 이 참사가 주는 의미와 본질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물러서지 말아야겠다고 말이다. 학생들이 혹시나 그런 오해를 진실로 믿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거나 현혹되지 않도록 말이다. 우리가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애도하며 앞으로 나아갈지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라도 4.16 수업은 계속되어야 했다.
이러한 내 고민과 우려를 일깨우는 글이 《미래 교육과 4.16》 교과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생명안전 시민넷 공동 대표인 김훈 작가가 강연에서 우리 사회와 시민들에게 전한 이야기였다. 그 글을 학생들과 함께 읽으며 4.16 문학 수업을 마무리했다.
“사람들은 점점 남의 고통이나 슬픔에 공감하는 감각을 잃고 있습니다. 자기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생명, 타인과 세계에 대한 감수성과 감각이 마비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의 감수성이 마비된다는 것은 인격적인 비극입니다. 감각이 없는 사람은 정의나 불의를 알 수 없습니다. 정의나 불의라는 것은 어떤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라는 감각이 없는 사람은 정의나 불의를 추상적인 관념으로만 이해하게 됩니다.”[ref]김훈 작가의 “나는 왜 생명과 안전을 말하는가” 강연 내용 중에서(생명안전 시민이야기 마당, 2019년 9월 27일). [민태홍 외(2022), 《미래 교육과 4.16》, 해냄에듀, 94쪽] 참고.[/ref]
나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기억과 공감, 연대의 중요성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또한 곧 사회로 나아갈 학생들에게 참사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무언가를 전하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연대와 공감을 바탕으로 한 ‘정의’였다. 슬픔이 잦아든 학생들은 ‘도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궁금할 테다. 그래서 책임자는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진상을 규명했는지, 지금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되었는지, ‘정의’를 바탕으로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10주기를 맞은 올해도 어김없이 학생들과 함께 4.16 문학 수업을 진행할 것이다. 학생들이 연대와 공감을 통해 정의에 대한 감각을 피워 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