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교육과 교육운동, 전환의 과제
교육은 돌봄의 권리와 정치로 확장해야 한다[ref]이 글은 ‘2024 체제전환운동 포럼’ 교육 세션 준비팀 및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청시행)’ 공부 모임에서 논의와 토론을 거쳐 작성했다.[/ref]
보란
borens@daum.net
본지 편집위원, 경기 중등 교사, 교육노동자 현장실천
삶으로 배우는 돌봄[ref]이때, 돌봄(care)은 특수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라 누구나와 연루된 문제이다. 타자의 필요와 고통의 호소에 반응을 보이는 것, 그런 상호 반응을 통해 사회를 지속시키고 재생산하기 위해 인간이 행하는 모든 활동을 뜻한다. 또한, ‘민주주의의 문제로서 구성원들이 함께 돌보는 것’을 포괄한다. 김영옥·류은숙(2022), 《돌봄과 인권》, 코난북스, 13~14쪽.[/ref]
작년 3월 중순, 엄마는 11년의 폐암 투병 끝에 호스피스 병동에서 삶을 마무리했다. 엄마가 간호사에게 진통제와 안정제를 자주 요청할수록 엄마는 수면 시간이 크게 늘었고 금식하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 우리 자매는 온전히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고 신중하게 돌봄에 집중했다. 평소 서로에게 말없이 무뚝뚝하기만 했던 우리는 엄마와 주고받은 돌봄을 서로에게도 조금씩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나 임종의 순간, 동생과 나는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다투고야 말았다. 나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시는 것이 심상치 않게 느껴져 동생에게 “엄마를 잘 봐야 할 것 같아”라고 말했던 것인데, 동생은 엄마의 상태를 면밀하게 확인하느라 엄마의 기저귀까지 확인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임종 순간을 놓칠까 봐 초조함을 느끼고 화를 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동생은 임종이 임박한 것을 믿을 수가 없어서 보인 행동이었다. 우리는 다른 방식이었지만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의사와 간호사, 수녀님, 청소노동자, 넷째 외삼촌도 힘겨워하는 우리를 다독여 주셨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한참을 기대어 정신없이 울었다. 그리고 많은 존재들의 우연한 도움을 받으며 엄마가 우리에게 부탁했던 장례 미사를 함께할 수 있었다.
사실, 동생과 나는 엄마와 주고받은 돌봄의 관계가 꽤 달랐다. 동생은 코로나19 시기 이전부터 엄마의 일상을 지켜보며 병원 동행과 돌봄 및 간병 노동의 대부분을 세심하게 지원했다. 동생은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고 사회생활을 거의 하지 못했다. 반면에 나는 가족 중 유일하게 정규직 임금 노동을 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느라 집에서의 생활과 가사 노동을 동생과 엄마에게 맡겼다. 그러면서도 나는 엄마와 취향과 가치관의 공통점이 많았기에 엄마와의 관계가 특별한 편이었다.
엄마의 임종 순간에 일어났던 다툼은 가족 관계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었다. 이러한 갈등은 돌봄을 어렵게 하는 가족 관계, 돌봄 자원의 부족, 질병과 장애를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사회 제도와 인식을 마주할 때마다 일어났다. 처음에 우리는 엄마를 그저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며 각자의 의견을 강요하기도 했었다. 동시에 돌봄 제공의 책임에 매여 희생을 감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새로운 관계와 일을 포기하면서도 그로 인한 결핍과 고통에 분노하기도 했다. 결국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하려고 할까?’, ‘나중에 후회하진 않을까?’라는 이유에서 시작한 헌신적인 돌봄이 오히려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엄마의 삶이 위태로워질 때마다 우리는 친구와 가족, 지역 사회와의 접촉면을 잃어버렸다. 다가올 위기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볼 여유도 갖지 못하고 오로지 하루를 살아 내는 것에 급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표적항암제의 임상 시험 중에 부신으로 암이 전이된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이제 적극적인 치료를 중단하고 싶다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임상 시험으로 인한 부작용과 지속적인 검사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우리 자매는 엄마의 의사를 존중하여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면역 항암 치료를 지원할 수 있는 경제적 형편이 못 되기에 우리에게 큰 부담을 줄까 봐 걱정되어 엄마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엄마의 삶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요청한 것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치료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원가족과 거리를 두려 했었고 저임금의 재생산 노동을 하며 다른 방식의 삶을 살길 원했다.
돌봄 및 경제적 자원이 없었던 엄마는 거대 의료 자본 권력으로부터 자기 결정권을 침해받기도 했었다. 특히, 엄마가 표적항암제 부작용을 강하게 호소할 때, 의사는 인간적인 공감 대신 ‘다른 환자들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고 말하며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치료와 검사를 강요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엄마는 의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고 자신의 상태를 자세하게 말했다. 예전의 나라면 엄마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치료를 지속하도록 설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약의 부작용과 암성 통증으로부터 해방되길 바라는 엄마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엄마가 원하는 돌봄의 방식을 꾸준히 물어보고 상황에 맞게 생각을 조율해 나갔다. 나는 엄마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순간에도 취약하고 의존적인 상태로 엄마에게 돌봄을 받고 있었다.
취약성을 부정하는 교사, 돌봄을 배제한 ‘전문성’과 ‘교육 제도’의 권위 뒤에 숨다
특히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수행하면서 스스로 약점을 보이는 것을 두려워했다. 경기도의 한 신도시 지역에 발령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감으로부터 과학 영재 학급 설치 사업 신청에 동의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교감의 지시가 위압적으로 느껴지던 차에 노조 조합원인 동료를 만나 이야기 나누면서 이러한 과정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지 깨닫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영재 학급 설치에 반대할 용기를 얻게 되었으나, 직장에서의 사회적 관계보다는 일에 더 몰입하고 싶은 마음에 기피 업무인 3학년 담임 교사에 지원했다. 비록 진로 진학 지도 경험이 없었지만, 화학 교과를 맡았기 때문에 비교적 학업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많은 자연계 학급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초임 여교사가 3학년 담임을 맡았다는 것을 알게 된 몇몇 학생과 양육자는 엄청난 불안감을 느꼈고 교장에게 항의했다고 했다. 나는 학급 학생들의 불안한 마음을 느낄수록 수업과 생활 지도에 더욱 몰입했다. 학생들 앞에서 미숙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학생들의 약점을 지적하면서 차갑게 훈계할 때가 많았다. 그럴수록 처음부터 신뢰 관계를 만들지 못했던 학생들과의 관계가 더 나빠졌다. 물론 나를 끝까지 응원해 준 몇몇 학생과 동료 교육 노동자들이 있었지만, 면역력이 크게 약해지면서 폐에 물이 찼고 겨울 방학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졸업식까지 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 경험은 나에게 오래도록 영향을 미쳤다. ‘일하는 과정에서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돼’, ‘학생들과 양육자에게 약점을 들키면 안 돼’라는 말을 강박처럼 자주 되뇌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도움받는 상황에서도 불안감을 자주 느꼈다. 저경력 시절에는 수업이 끝나도 교실에서 바로 나오지 못했다. 화학을 어려워하거나 관심이 없는 학생에게 개념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수업을 늦게 끝낼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수업 시간에 질문하는 소수의 학생에게 애써 답변하느라 혼자 급식실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교사가 이런 내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고 같이 점심을 먹자며 다가와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세심한 배려까지도 부담스럽게 여기며 거절했다. 다행히 동료 교사는 내 의사를 존중해 주었다. 나는 오래도록 나만의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교사의 전문성과 권한, 공정성을 인정하는 학교 분위기와 맞물려, 타인에게 기대거나 의존하는 것에 수치심과 자책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교사로서 학생들과 양육자, 동료와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수업과 학교 업무를 먼저 문제없이 완수해 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나를 돌볼 여유조차 없었다. 담임 학급에서 정서적인 격려와 지원이 필요해 보이는 학생과 소통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어떻게든 회피하고 싶었다. 심지어 학생이나 양육자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평소 학교 밖 돌봄 자원에 대해 필요를 느끼지 못하다 보니 관련 정보를 제공해 줄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나조차도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돌봄을 나눠 본 경험도 없고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과 연결점이 없다 보니 복지, 상담, 행정, 지원 체계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사실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수업과 대학 입시 관련 업무를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누군가가 이 일을 대신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정상성이 은폐하는 취약성, 그리고 돌봄의 비민주성
현실에서 돌봄은 여전히 ‘그림자 노동’[ref]이반 일리치가 고안한 용어로, 오로지 임금 노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무급의 재생산 노동을 뜻함.[/ref]이다. 이는 성별이분법과 성역할 고정 관념을 통해서, 노동을 생산 노동과 재생산 노동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위계화하고 화폐 가치에 따라 서열을 매긴 것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돌봄은 여성이라면 아무나 수행할 수 있는 값싼 노동으로 여겨진다. 남성은 생산 노동을 책임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돌봄과 재생산 노동에 무임승차해도 된다는 인식은 사회 경제 질서를 지배하고 있다.
결국 취약성을 돌보는 노동은 여성만의 일이 되면서, 이러한 돌봄의 여성화는 가장 문제시되지 않는 억압적 차별의 중심을 이룬다. 산업 사회 서구 중산층을 모델로 한 ‘정상 가족 규범’에서 취약성은 개인과 가족의 사적인 문제로 은폐되기 때문이다. 자본이 원하는 노동자는 비장애인·가부장 남성 노동자이다. 남성 시민은 여성과의 성적 계약을 통해 남성성을 확보하고 공적 영역에 진출하여 고용주와 계약을 맺고 시민권을 누린다. 반면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보호와 통제의 대상이 되고, 남성의 생산 노동을 재생산, 재충전, 자극하는 재생산 노동(성, 가사, 돌봄 노동 등)을 수행하면서도 이를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여성의 몸은 아동의 축사가 되어[ref]채효정(2020), 〈돌봄과 교육, 그 분리와 위계의 역사〉, 《오늘의 교육》, 59호(2020년 11·12월), 19쪽.[/ref], ‘임신과 출산’을 통한 노동력 재생산 및 ‘돌봄 제공자와 양육자’의 책임과 의무를 요구받는다. 이렇듯 성별화된 시민권을 통해 돌봄은 사적 영역에서 여성이 전담하는 일이 된 것이다.[ref]김영옥·류은숙(2022), 앞의 책, 134쪽.[/ref]
돌봄 부정의는 지구에서 인간이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보는 인간 중심 사회 경제 질서에 토대하고 있다. 이 질서는 인간과 비인간 생태, 생명권이 오랫동안 연결되어 돌봄을 주고받았던 공유지와 생태 자원까지 시장화하고 이윤을 무한 축적한다. 이로 인해 빈곤과 질병, 권위주의, 생태 파시즘, 전쟁, 기후 재난 등이 구조적 불평등을 경유하여 비인간 생태와 취약한 사람들의 생명부터 앗아 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도 집은 모두에게 안전하지 않았다. 사회 경제적 지위가 낮은 여성과 아동은 원가족의 방임과 폭력에 고립되기 쉬웠으며, 기저 질환자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은 교육권, 생명권, 노동권, 지역 사회와 연결될 권리마저 침해받았다. 그럼에도 북반구 부르주아 시민들은 돌봄과 재생산의 위기를 남반구 이주배경 가사 돌봄 노동자에게 계속해서 떠넘기고, 지구의 임계까지 온실가스를 대폭 배출하면서 특권을 누리는 동시에 기후 붕괴를 앞당기고 있다.
산업 혁명과 제국주의 약탈을 통해 성립된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생명을 유지하고 관리할 것’인지 시장 질서와 복지 제도로 선별하면서, 비장애인 남성 노동자 중심의 노동,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을 조직한다. 이때 국민과 이성애 중심의 정상 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난 난민, 이주배경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은 사회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으며, 시장 경쟁에 뒤처지게 되어 낮은 사회 경제적인 지위에 처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은 공적 영역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동3권과 정치 기본권을 포함한 정치적 영향력이 미약해진다. 돌봄이론가 트론토(Tronto)에 따르면 ‘돌봄 불평등의 악순환(vicious circle of care inequality)’[ref]김희강(2020), 〈돌봄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넘어〉, 《한국여성학》, 36(1), 77쪽.[/ref]을 반복하는 것이다.
돌봄이 배제된 민주주의에서 ‘돌봄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고착화된 불평등을 경험한다. 이때, 트론토는 ‘함께 돌봄’을 통해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유된 돌봄 책임을 주장한다. ‘함께 돌봄’이란 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시민을 돌본다”는 뜻을 가진다. 돌봄은 정부로부터 지원을 보장받아야 하는 시민적 권리이기도 하지만, 사회와 정치공동체를 유지하고 존속하기 위해 모든 구성원이 부담해야 하는 시민적 책임이라는 것이다. ‘함께 돌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어떤 돌봄의 부담과 책임이 따르는지 그리고 누가 얼마나 돌봐야 하는지 등의 돌봄 책임의 분배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상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분배 과정과 의사 결정에 있어 돌봄 불평등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대표되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함께 돌봄’의 책임이 공유될 수 있게 하는 민주적 조건과 절차가 제도화되어야 할 것이다.[ref]김희강(2020), 앞의 논문, 79~80쪽.[/ref]
그러므로 이 돌봄 불평등의 악순환을 해결하려면, 돌봄의 필요와 욕구를 ‘권리’로 해석하여 돌봄을 정의로운 관계 속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먼저, 모든 사람은 취약하다는 것을 인간의 기본 조건으로 놓아야 할 것이다. 이때 모든 사람은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취약성과 의존성은 보편적 권리의 근거라고 여길 수 있다. 이는 인권을 ‘더 나은 상호 의존 관계’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행위이자, 서로의 취약성을 돌아보고 응답할 ‘보편적 책임’으로서의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에 ‘권리’는 개인주의적인 틀에서 벗어나 타인 및 공동체와 의존과 돌봄을 주고받으며 자율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이 돌봄의 권리를 실현하는 ‘정치적 주체’는 의사 결정, 자원의 배분, 향유와 연루되고 관계된 모든 사람이 되어야 한다.[ref]김영옥·류은숙(2022), 앞의 책, 46~47쪽.[/ref]
‘서툴고 불완전한 서로 돌봄’을 함께한 1년 학급살이
엄마와 함께 호스피스 병동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삶에 대한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함께 돌봄’의 갈등과 긴장 속에서 돌봄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수용하게 되었다. 돌봄 의존자와 돌봄 제공자의 상호 관계성은 언제든 균형을 잃어버릴 수 있으며, 꾸준한 소통을 통해 균형점을 조율해야 한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조건 없는 돌봄을 우연히 받았던 경험을 통해 의존하는 법을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실천은 화폐 가치처럼 동등하게 교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내가 증여한 비물질적 가치가 사회와 정치공동체를 존속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취약성은 항상 응답에 실패할 위험이 큰 만큼, 낯선 타자와 세계를 향해 자아 세계가 우연히 마주치고 연결되며 상호 침투하고 서로 오염될 가능성을 높인다. 소위 인간 이성과 자유를 토대로 한 성장과 진보를 상상하는 과학의 발전과는 상반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함께 돌봄’의 관계는 예측 불가능한 만남을 통해 다양한 세계가 마주칠 수 있고, 이를 통해 불확정적으로 새로운 공생 관계를 만들어 가는 거미줄 같은 연결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돌봄의 관계를 통해 나는 조금씩 취약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작년에 나는 수도권 외곽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일하고 있었다. 엄마의 장례식 이후, 학교에 복귀하여 학생과 동료 교육 노동자를 만날 때 많이 힘들었다. 1학년 통합과학 수업을 하던 나는 별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수업을 하다가도 학생들 몰래 눈물을 흘렸다. (나는 3년 전부터, 성폭력 피해와 가족 돌봄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심리 상담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담임 학급과 수업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갑자기 수업 중에 말을 더듬거리거나, 눈물을 보여도 조금 이해를 부탁합니다. 얼마 전 엄마가 세상을 떠나셔서 갑자기 감정이 드러날 때가 있어요”라고 먼저 설명해 주었고 스스로 마음 상태를 점검했다.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학생들의 반응에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누군가를 돌보는 경험을 했었던 학생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해 주었다. 그들은 쉬는 시간에도, 수업 시간에도 나에게 가볍게 말을 걸고 먼저 관심을 표현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완벽함에 대한 강박을 벗어던지고, 종종 수업과 일상에서도 감정을 표현했고, 학생과 동료 교육 노동자와 작은 대화를 주고받는 것에 이상할 만큼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한, 과학과 화학, 실험 시간에는 기후 위기 앞에서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활동가들의 짧은 시를 함께 읽기도 했다. 누구나 함께 모여서 각자의 재능을 공동체 작업물에 증여할 기회를 주었고, 교실이라는 공공의 시공간에서 함께 질문하고 응답할 수 있게 했다. 나 또한 학급과 학교 안에 갈등이 생기면 학생과 동료 노동자에게 진솔하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과 한계를 솔직히 말하기도 했다. 타인이 요청하는 도움에 가능한 선에서 응하는 연습도 자주 했다. “서툴고 불완전하게 우리는 서로를 돌본다”라는 다짐을 학급과 학교 안에서 함께 실천하며 조금씩 돌봄에 응답하다 보니, 내가 커다랗고 복잡한 관계망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져서 무척 신기했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돌봄과 교육이 분리된 것을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이 교육 공간에서 하는 학습 노동을 포함한 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학생의 의무 또는 봉사 활동으로만 여겨지는 것에 의문이 생겼다.[ref]진냥, 〈근본없는 것들을 위한 교육으로의 전환〉, 《2024 체제전환운동 포럼》,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 112쪽.[/ref] 교육 수혜를 명목으로 학생이 돌봄과 재생산 노동을 주체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은폐함으로써, 학생을 시민권을 지닌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불평등을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과학실 청소를 하면서 청소 노동자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나의 무심함으로 인해 그분이 손을 다치는 일을 목격했다. 그분은 손을 다쳤어도 학교에 말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학교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하청 업체에 위험을 외주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급식 노동자의 파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분주하게 일하시는 급식 조리원분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기도 했다. 대화를 통해 필수 노동자가 병원에 가기 어려운 현실이 노동 약자 착취 구조(노동 시장 이중 구조)와 척박한 노동 환경에서 비롯됨을 알게 되었다. 결국 교사/돌봄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비정규직 노동자, 비청소년/청소년, 인간 동물/비인간 동물 등의 이분법이 차별의 기제를 재생산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학교는 어떤 시공간이어야 하는가? 사람을 오로지 인적 자원(노동력)으로 대상화하고 관리하는 ‘시설’이어야 하는 것인가? 그 안에서 교사는 자본주의 체제를 공고하게 만드는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맡아야만 하는가? 책상과 교실의 고립된 공간에서 학생들은 지식을 주입받으며 입시 경쟁에서 능력을 평가받는다. 그리고 각자도생에 놓인 교사들은 상대 평가를 통해 청소년과 동료 교사의 성과를 관리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삶과 생존에 필요한 돌봄과 재생산 노동은 여성·비정규직·고령의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떠맡기고 ‘돌봄 불평등 악순환’의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다. 돌봄 수혜자로 불리는 아동과 청소년의 목소리를 배제하며 대상화하는 것은 돌봄의 관계라고 볼 수 없다. 이렇듯 돌봄을 담당하지 않는 관리자와 교사 노동자는 돌봄의 혜택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상으로 돌아가지 말고, ‘돌봄 가득찬(care-full)’ 사회로 전환하기
지난해 7월 18일, 서울의 강남에 있는 한 초등학교 신규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사회와 학교 현장에서는 오히려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토론마저 불가능해졌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은 공교육 붕괴와 교권 하락의 원인으로 ‘수능 킬러(초고난도) 문항’과 ‘학생인권조례’를 내세웠다. 이어서 정부와 교육 당국이 임시방편으로 내세운 대책은 실효성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공정한 수능 출제’와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였다. 특히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는 2023년 9월 1일부터 시행되었는데, 교사에게 다른 학생의 교육 활동을 방해한 학생들을 강제 분리할 권한을 주고 수업 중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인권 침해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교사의 권한은 인적 자원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가부장적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성을 가진 교육 노동자에게 ‘돌봄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교육 주체의 보편적인 취약성에 대한 정치적 사유를 불가능하게 하며, 학생의 상호 주체성과 돌봄으로서의 인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 구조적 차별에 의한 불평등 문제를 개인과 가정의 문제로 축소하면서, 교육 활동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한다고 여겨지는 장애인, 이주배경 학생, 느린 학습자 등의 잠재적 역량과 기본권을 크게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교권과 더불어 노동권 담론에서도, 여성주의적 접근을 기반으로 하여 가부장적 핵가족이라는 ‘정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급진적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비핵가족적 구성원에게 지역 사회, 가정 및 환경 돌봄을 제공하면서 이들이 ‘정치적 주체’로 상호의존하고, 실질적이고 사회적인 연대를 중심으로 한 ‘돌봄 체계’에 적극적으로 응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동시에 가정과 공동체의 삶과 자연 세계를 돌보는 역량에 ‘돌봄 소득’을 지급하는 것을 제안하여 지역 사회의 회복력을 높이고, 재생산과 돌봄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의 탈상품화를 정치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환경 파괴적 체제를 넘어서 돌봄, 공생, 웰빙, 기본적인 욕구 충족에 초점을 두는 생계 경제, 삶의 조건이자 권리가 실현되어 소외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ref]FaDA(2020), “협력적 페미니스트 탈성장 : 돌봄 가득찬 급진적 전환을 위한 시작으로서의 팬데믹”, 이지은(2021), 〈탈성장과 돌봄〉, 《기본소득》, 10호(2021년 가을), 104~111쪽.[/ref]
그러려면, 돌봄과 교육의 위계로 인한 불평등 경험을 돌아보는 정치적 말하기를 하기 위한 민주적 절차와 조건을 제도화해야 한다. 교사 또한 돌봄 부정의에 직면한 청소년과 교육 노동자와 함께 교육 현장에서의 불평등한 돌봄 경험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을 돌봄의 권리와 정치로 확장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성장 중심적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 ‘사회적 형평성’을 지향하며, ‘돌봄의 권리’ 강화를 위하여 국가가 비권위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응답할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특집 | 교육과 교육운동, 전환의 과제
교육은 돌봄의 권리와 정치로 확장해야 한다[ref]이 글은 ‘2024 체제전환운동 포럼’ 교육 세션 준비팀 및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청시행)’ 공부 모임에서 논의와 토론을 거쳐 작성했다.[/ref]
보란
borens@daum.net
본지 편집위원, 경기 중등 교사, 교육노동자 현장실천
삶으로 배우는 돌봄[ref]이때, 돌봄(care)은 특수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라 누구나와 연루된 문제이다. 타자의 필요와 고통의 호소에 반응을 보이는 것, 그런 상호 반응을 통해 사회를 지속시키고 재생산하기 위해 인간이 행하는 모든 활동을 뜻한다. 또한, ‘민주주의의 문제로서 구성원들이 함께 돌보는 것’을 포괄한다. 김영옥·류은숙(2022), 《돌봄과 인권》, 코난북스, 13~14쪽.[/ref]
작년 3월 중순, 엄마는 11년의 폐암 투병 끝에 호스피스 병동에서 삶을 마무리했다. 엄마가 간호사에게 진통제와 안정제를 자주 요청할수록 엄마는 수면 시간이 크게 늘었고 금식하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 우리 자매는 온전히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고 신중하게 돌봄에 집중했다. 평소 서로에게 말없이 무뚝뚝하기만 했던 우리는 엄마와 주고받은 돌봄을 서로에게도 조금씩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나 임종의 순간, 동생과 나는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다투고야 말았다. 나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시는 것이 심상치 않게 느껴져 동생에게 “엄마를 잘 봐야 할 것 같아”라고 말했던 것인데, 동생은 엄마의 상태를 면밀하게 확인하느라 엄마의 기저귀까지 확인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임종 순간을 놓칠까 봐 초조함을 느끼고 화를 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동생은 임종이 임박한 것을 믿을 수가 없어서 보인 행동이었다. 우리는 다른 방식이었지만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의사와 간호사, 수녀님, 청소노동자, 넷째 외삼촌도 힘겨워하는 우리를 다독여 주셨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한참을 기대어 정신없이 울었다. 그리고 많은 존재들의 우연한 도움을 받으며 엄마가 우리에게 부탁했던 장례 미사를 함께할 수 있었다.
사실, 동생과 나는 엄마와 주고받은 돌봄의 관계가 꽤 달랐다. 동생은 코로나19 시기 이전부터 엄마의 일상을 지켜보며 병원 동행과 돌봄 및 간병 노동의 대부분을 세심하게 지원했다. 동생은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고 사회생활을 거의 하지 못했다. 반면에 나는 가족 중 유일하게 정규직 임금 노동을 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느라 집에서의 생활과 가사 노동을 동생과 엄마에게 맡겼다. 그러면서도 나는 엄마와 취향과 가치관의 공통점이 많았기에 엄마와의 관계가 특별한 편이었다.
엄마의 임종 순간에 일어났던 다툼은 가족 관계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었다. 이러한 갈등은 돌봄을 어렵게 하는 가족 관계, 돌봄 자원의 부족, 질병과 장애를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사회 제도와 인식을 마주할 때마다 일어났다. 처음에 우리는 엄마를 그저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며 각자의 의견을 강요하기도 했었다. 동시에 돌봄 제공의 책임에 매여 희생을 감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새로운 관계와 일을 포기하면서도 그로 인한 결핍과 고통에 분노하기도 했다. 결국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하려고 할까?’, ‘나중에 후회하진 않을까?’라는 이유에서 시작한 헌신적인 돌봄이 오히려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엄마의 삶이 위태로워질 때마다 우리는 친구와 가족, 지역 사회와의 접촉면을 잃어버렸다. 다가올 위기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볼 여유도 갖지 못하고 오로지 하루를 살아 내는 것에 급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표적항암제의 임상 시험 중에 부신으로 암이 전이된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이제 적극적인 치료를 중단하고 싶다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임상 시험으로 인한 부작용과 지속적인 검사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우리 자매는 엄마의 의사를 존중하여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면역 항암 치료를 지원할 수 있는 경제적 형편이 못 되기에 우리에게 큰 부담을 줄까 봐 걱정되어 엄마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엄마의 삶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요청한 것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치료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원가족과 거리를 두려 했었고 저임금의 재생산 노동을 하며 다른 방식의 삶을 살길 원했다.
돌봄 및 경제적 자원이 없었던 엄마는 거대 의료 자본 권력으로부터 자기 결정권을 침해받기도 했었다. 특히, 엄마가 표적항암제 부작용을 강하게 호소할 때, 의사는 인간적인 공감 대신 ‘다른 환자들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고 말하며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치료와 검사를 강요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엄마는 의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고 자신의 상태를 자세하게 말했다. 예전의 나라면 엄마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치료를 지속하도록 설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약의 부작용과 암성 통증으로부터 해방되길 바라는 엄마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엄마가 원하는 돌봄의 방식을 꾸준히 물어보고 상황에 맞게 생각을 조율해 나갔다. 나는 엄마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순간에도 취약하고 의존적인 상태로 엄마에게 돌봄을 받고 있었다.
취약성을 부정하는 교사, 돌봄을 배제한 ‘전문성’과 ‘교육 제도’의 권위 뒤에 숨다
특히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수행하면서 스스로 약점을 보이는 것을 두려워했다. 경기도의 한 신도시 지역에 발령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감으로부터 과학 영재 학급 설치 사업 신청에 동의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교감의 지시가 위압적으로 느껴지던 차에 노조 조합원인 동료를 만나 이야기 나누면서 이러한 과정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지 깨닫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영재 학급 설치에 반대할 용기를 얻게 되었으나, 직장에서의 사회적 관계보다는 일에 더 몰입하고 싶은 마음에 기피 업무인 3학년 담임 교사에 지원했다. 비록 진로 진학 지도 경험이 없었지만, 화학 교과를 맡았기 때문에 비교적 학업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많은 자연계 학급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초임 여교사가 3학년 담임을 맡았다는 것을 알게 된 몇몇 학생과 양육자는 엄청난 불안감을 느꼈고 교장에게 항의했다고 했다. 나는 학급 학생들의 불안한 마음을 느낄수록 수업과 생활 지도에 더욱 몰입했다. 학생들 앞에서 미숙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학생들의 약점을 지적하면서 차갑게 훈계할 때가 많았다. 그럴수록 처음부터 신뢰 관계를 만들지 못했던 학생들과의 관계가 더 나빠졌다. 물론 나를 끝까지 응원해 준 몇몇 학생과 동료 교육 노동자들이 있었지만, 면역력이 크게 약해지면서 폐에 물이 찼고 겨울 방학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졸업식까지 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 경험은 나에게 오래도록 영향을 미쳤다. ‘일하는 과정에서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돼’, ‘학생들과 양육자에게 약점을 들키면 안 돼’라는 말을 강박처럼 자주 되뇌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도움받는 상황에서도 불안감을 자주 느꼈다. 저경력 시절에는 수업이 끝나도 교실에서 바로 나오지 못했다. 화학을 어려워하거나 관심이 없는 학생에게 개념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수업을 늦게 끝낼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수업 시간에 질문하는 소수의 학생에게 애써 답변하느라 혼자 급식실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교사가 이런 내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고 같이 점심을 먹자며 다가와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세심한 배려까지도 부담스럽게 여기며 거절했다. 다행히 동료 교사는 내 의사를 존중해 주었다. 나는 오래도록 나만의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교사의 전문성과 권한, 공정성을 인정하는 학교 분위기와 맞물려, 타인에게 기대거나 의존하는 것에 수치심과 자책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교사로서 학생들과 양육자, 동료와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수업과 학교 업무를 먼저 문제없이 완수해 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나를 돌볼 여유조차 없었다. 담임 학급에서 정서적인 격려와 지원이 필요해 보이는 학생과 소통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어떻게든 회피하고 싶었다. 심지어 학생이나 양육자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평소 학교 밖 돌봄 자원에 대해 필요를 느끼지 못하다 보니 관련 정보를 제공해 줄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나조차도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돌봄을 나눠 본 경험도 없고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과 연결점이 없다 보니 복지, 상담, 행정, 지원 체계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사실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수업과 대학 입시 관련 업무를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누군가가 이 일을 대신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정상성이 은폐하는 취약성, 그리고 돌봄의 비민주성
현실에서 돌봄은 여전히 ‘그림자 노동’[ref]이반 일리치가 고안한 용어로, 오로지 임금 노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무급의 재생산 노동을 뜻함.[/ref]이다. 이는 성별이분법과 성역할 고정 관념을 통해서, 노동을 생산 노동과 재생산 노동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위계화하고 화폐 가치에 따라 서열을 매긴 것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돌봄은 여성이라면 아무나 수행할 수 있는 값싼 노동으로 여겨진다. 남성은 생산 노동을 책임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돌봄과 재생산 노동에 무임승차해도 된다는 인식은 사회 경제 질서를 지배하고 있다.
결국 취약성을 돌보는 노동은 여성만의 일이 되면서, 이러한 돌봄의 여성화는 가장 문제시되지 않는 억압적 차별의 중심을 이룬다. 산업 사회 서구 중산층을 모델로 한 ‘정상 가족 규범’에서 취약성은 개인과 가족의 사적인 문제로 은폐되기 때문이다. 자본이 원하는 노동자는 비장애인·가부장 남성 노동자이다. 남성 시민은 여성과의 성적 계약을 통해 남성성을 확보하고 공적 영역에 진출하여 고용주와 계약을 맺고 시민권을 누린다. 반면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보호와 통제의 대상이 되고, 남성의 생산 노동을 재생산, 재충전, 자극하는 재생산 노동(성, 가사, 돌봄 노동 등)을 수행하면서도 이를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여성의 몸은 아동의 축사가 되어[ref]채효정(2020), 〈돌봄과 교육, 그 분리와 위계의 역사〉, 《오늘의 교육》, 59호(2020년 11·12월), 19쪽.[/ref], ‘임신과 출산’을 통한 노동력 재생산 및 ‘돌봄 제공자와 양육자’의 책임과 의무를 요구받는다. 이렇듯 성별화된 시민권을 통해 돌봄은 사적 영역에서 여성이 전담하는 일이 된 것이다.[ref]김영옥·류은숙(2022), 앞의 책, 134쪽.[/ref]
돌봄 부정의는 지구에서 인간이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보는 인간 중심 사회 경제 질서에 토대하고 있다. 이 질서는 인간과 비인간 생태, 생명권이 오랫동안 연결되어 돌봄을 주고받았던 공유지와 생태 자원까지 시장화하고 이윤을 무한 축적한다. 이로 인해 빈곤과 질병, 권위주의, 생태 파시즘, 전쟁, 기후 재난 등이 구조적 불평등을 경유하여 비인간 생태와 취약한 사람들의 생명부터 앗아 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도 집은 모두에게 안전하지 않았다. 사회 경제적 지위가 낮은 여성과 아동은 원가족의 방임과 폭력에 고립되기 쉬웠으며, 기저 질환자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은 교육권, 생명권, 노동권, 지역 사회와 연결될 권리마저 침해받았다. 그럼에도 북반구 부르주아 시민들은 돌봄과 재생산의 위기를 남반구 이주배경 가사 돌봄 노동자에게 계속해서 떠넘기고, 지구의 임계까지 온실가스를 대폭 배출하면서 특권을 누리는 동시에 기후 붕괴를 앞당기고 있다.
산업 혁명과 제국주의 약탈을 통해 성립된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생명을 유지하고 관리할 것’인지 시장 질서와 복지 제도로 선별하면서, 비장애인 남성 노동자 중심의 노동,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을 조직한다. 이때 국민과 이성애 중심의 정상 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난 난민, 이주배경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은 사회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으며, 시장 경쟁에 뒤처지게 되어 낮은 사회 경제적인 지위에 처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은 공적 영역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동3권과 정치 기본권을 포함한 정치적 영향력이 미약해진다. 돌봄이론가 트론토(Tronto)에 따르면 ‘돌봄 불평등의 악순환(vicious circle of care inequality)’[ref]김희강(2020), 〈돌봄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넘어〉, 《한국여성학》, 36(1), 77쪽.[/ref]을 반복하는 것이다.
돌봄이 배제된 민주주의에서 ‘돌봄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고착화된 불평등을 경험한다. 이때, 트론토는 ‘함께 돌봄’을 통해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유된 돌봄 책임을 주장한다. ‘함께 돌봄’이란 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시민을 돌본다”는 뜻을 가진다. 돌봄은 정부로부터 지원을 보장받아야 하는 시민적 권리이기도 하지만, 사회와 정치공동체를 유지하고 존속하기 위해 모든 구성원이 부담해야 하는 시민적 책임이라는 것이다. ‘함께 돌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어떤 돌봄의 부담과 책임이 따르는지 그리고 누가 얼마나 돌봐야 하는지 등의 돌봄 책임의 분배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상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분배 과정과 의사 결정에 있어 돌봄 불평등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대표되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함께 돌봄’의 책임이 공유될 수 있게 하는 민주적 조건과 절차가 제도화되어야 할 것이다.[ref]김희강(2020), 앞의 논문, 79~80쪽.[/ref]
그러므로 이 돌봄 불평등의 악순환을 해결하려면, 돌봄의 필요와 욕구를 ‘권리’로 해석하여 돌봄을 정의로운 관계 속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먼저, 모든 사람은 취약하다는 것을 인간의 기본 조건으로 놓아야 할 것이다. 이때 모든 사람은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취약성과 의존성은 보편적 권리의 근거라고 여길 수 있다. 이는 인권을 ‘더 나은 상호 의존 관계’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행위이자, 서로의 취약성을 돌아보고 응답할 ‘보편적 책임’으로서의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에 ‘권리’는 개인주의적인 틀에서 벗어나 타인 및 공동체와 의존과 돌봄을 주고받으며 자율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이 돌봄의 권리를 실현하는 ‘정치적 주체’는 의사 결정, 자원의 배분, 향유와 연루되고 관계된 모든 사람이 되어야 한다.[ref]김영옥·류은숙(2022), 앞의 책, 46~47쪽.[/ref]
‘서툴고 불완전한 서로 돌봄’을 함께한 1년 학급살이
엄마와 함께 호스피스 병동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삶에 대한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함께 돌봄’의 갈등과 긴장 속에서 돌봄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수용하게 되었다. 돌봄 의존자와 돌봄 제공자의 상호 관계성은 언제든 균형을 잃어버릴 수 있으며, 꾸준한 소통을 통해 균형점을 조율해야 한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조건 없는 돌봄을 우연히 받았던 경험을 통해 의존하는 법을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실천은 화폐 가치처럼 동등하게 교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내가 증여한 비물질적 가치가 사회와 정치공동체를 존속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취약성은 항상 응답에 실패할 위험이 큰 만큼, 낯선 타자와 세계를 향해 자아 세계가 우연히 마주치고 연결되며 상호 침투하고 서로 오염될 가능성을 높인다. 소위 인간 이성과 자유를 토대로 한 성장과 진보를 상상하는 과학의 발전과는 상반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함께 돌봄’의 관계는 예측 불가능한 만남을 통해 다양한 세계가 마주칠 수 있고, 이를 통해 불확정적으로 새로운 공생 관계를 만들어 가는 거미줄 같은 연결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돌봄의 관계를 통해 나는 조금씩 취약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작년에 나는 수도권 외곽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일하고 있었다. 엄마의 장례식 이후, 학교에 복귀하여 학생과 동료 교육 노동자를 만날 때 많이 힘들었다. 1학년 통합과학 수업을 하던 나는 별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수업을 하다가도 학생들 몰래 눈물을 흘렸다. (나는 3년 전부터, 성폭력 피해와 가족 돌봄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심리 상담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담임 학급과 수업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갑자기 수업 중에 말을 더듬거리거나, 눈물을 보여도 조금 이해를 부탁합니다. 얼마 전 엄마가 세상을 떠나셔서 갑자기 감정이 드러날 때가 있어요”라고 먼저 설명해 주었고 스스로 마음 상태를 점검했다.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학생들의 반응에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누군가를 돌보는 경험을 했었던 학생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해 주었다. 그들은 쉬는 시간에도, 수업 시간에도 나에게 가볍게 말을 걸고 먼저 관심을 표현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완벽함에 대한 강박을 벗어던지고, 종종 수업과 일상에서도 감정을 표현했고, 학생과 동료 교육 노동자와 작은 대화를 주고받는 것에 이상할 만큼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한, 과학과 화학, 실험 시간에는 기후 위기 앞에서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활동가들의 짧은 시를 함께 읽기도 했다. 누구나 함께 모여서 각자의 재능을 공동체 작업물에 증여할 기회를 주었고, 교실이라는 공공의 시공간에서 함께 질문하고 응답할 수 있게 했다. 나 또한 학급과 학교 안에 갈등이 생기면 학생과 동료 노동자에게 진솔하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과 한계를 솔직히 말하기도 했다. 타인이 요청하는 도움에 가능한 선에서 응하는 연습도 자주 했다. “서툴고 불완전하게 우리는 서로를 돌본다”라는 다짐을 학급과 학교 안에서 함께 실천하며 조금씩 돌봄에 응답하다 보니, 내가 커다랗고 복잡한 관계망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져서 무척 신기했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돌봄과 교육이 분리된 것을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이 교육 공간에서 하는 학습 노동을 포함한 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학생의 의무 또는 봉사 활동으로만 여겨지는 것에 의문이 생겼다.[ref]진냥, 〈근본없는 것들을 위한 교육으로의 전환〉, 《2024 체제전환운동 포럼》,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 112쪽.[/ref] 교육 수혜를 명목으로 학생이 돌봄과 재생산 노동을 주체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은폐함으로써, 학생을 시민권을 지닌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불평등을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과학실 청소를 하면서 청소 노동자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나의 무심함으로 인해 그분이 손을 다치는 일을 목격했다. 그분은 손을 다쳤어도 학교에 말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학교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하청 업체에 위험을 외주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급식 노동자의 파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분주하게 일하시는 급식 조리원분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기도 했다. 대화를 통해 필수 노동자가 병원에 가기 어려운 현실이 노동 약자 착취 구조(노동 시장 이중 구조)와 척박한 노동 환경에서 비롯됨을 알게 되었다. 결국 교사/돌봄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비정규직 노동자, 비청소년/청소년, 인간 동물/비인간 동물 등의 이분법이 차별의 기제를 재생산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학교는 어떤 시공간이어야 하는가? 사람을 오로지 인적 자원(노동력)으로 대상화하고 관리하는 ‘시설’이어야 하는 것인가? 그 안에서 교사는 자본주의 체제를 공고하게 만드는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맡아야만 하는가? 책상과 교실의 고립된 공간에서 학생들은 지식을 주입받으며 입시 경쟁에서 능력을 평가받는다. 그리고 각자도생에 놓인 교사들은 상대 평가를 통해 청소년과 동료 교사의 성과를 관리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삶과 생존에 필요한 돌봄과 재생산 노동은 여성·비정규직·고령의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떠맡기고 ‘돌봄 불평등 악순환’의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다. 돌봄 수혜자로 불리는 아동과 청소년의 목소리를 배제하며 대상화하는 것은 돌봄의 관계라고 볼 수 없다. 이렇듯 돌봄을 담당하지 않는 관리자와 교사 노동자는 돌봄의 혜택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상으로 돌아가지 말고, ‘돌봄 가득찬(care-full)’ 사회로 전환하기
지난해 7월 18일, 서울의 강남에 있는 한 초등학교 신규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사회와 학교 현장에서는 오히려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토론마저 불가능해졌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은 공교육 붕괴와 교권 하락의 원인으로 ‘수능 킬러(초고난도) 문항’과 ‘학생인권조례’를 내세웠다. 이어서 정부와 교육 당국이 임시방편으로 내세운 대책은 실효성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공정한 수능 출제’와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였다. 특히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는 2023년 9월 1일부터 시행되었는데, 교사에게 다른 학생의 교육 활동을 방해한 학생들을 강제 분리할 권한을 주고 수업 중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인권 침해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교사의 권한은 인적 자원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가부장적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성을 가진 교육 노동자에게 ‘돌봄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교육 주체의 보편적인 취약성에 대한 정치적 사유를 불가능하게 하며, 학생의 상호 주체성과 돌봄으로서의 인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 구조적 차별에 의한 불평등 문제를 개인과 가정의 문제로 축소하면서, 교육 활동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한다고 여겨지는 장애인, 이주배경 학생, 느린 학습자 등의 잠재적 역량과 기본권을 크게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교권과 더불어 노동권 담론에서도, 여성주의적 접근을 기반으로 하여 가부장적 핵가족이라는 ‘정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급진적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비핵가족적 구성원에게 지역 사회, 가정 및 환경 돌봄을 제공하면서 이들이 ‘정치적 주체’로 상호의존하고, 실질적이고 사회적인 연대를 중심으로 한 ‘돌봄 체계’에 적극적으로 응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동시에 가정과 공동체의 삶과 자연 세계를 돌보는 역량에 ‘돌봄 소득’을 지급하는 것을 제안하여 지역 사회의 회복력을 높이고, 재생산과 돌봄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의 탈상품화를 정치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환경 파괴적 체제를 넘어서 돌봄, 공생, 웰빙, 기본적인 욕구 충족에 초점을 두는 생계 경제, 삶의 조건이자 권리가 실현되어 소외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ref]FaDA(2020), “협력적 페미니스트 탈성장 : 돌봄 가득찬 급진적 전환을 위한 시작으로서의 팬데믹”, 이지은(2021), 〈탈성장과 돌봄〉, 《기본소득》, 10호(2021년 가을), 104~111쪽.[/ref]
그러려면, 돌봄과 교육의 위계로 인한 불평등 경험을 돌아보는 정치적 말하기를 하기 위한 민주적 절차와 조건을 제도화해야 한다. 교사 또한 돌봄 부정의에 직면한 청소년과 교육 노동자와 함께 교육 현장에서의 불평등한 돌봄 경험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을 돌봄의 권리와 정치로 확장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성장 중심적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 ‘사회적 형평성’을 지향하며, ‘돌봄의 권리’ 강화를 위하여 국가가 비권위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응답할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