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호[특집] ‘민주주의 흉내’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로 | 학교 능력주의의 시간과 유예되는 민주주의 | 이혜정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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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민주주의 흉내’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로 


학교 능력주의의 시간과 유예되는 민주주의



이혜정  nanbaram@ginue.ac.kr

경인교대 교육학과





광장의 민주주의와 지금, 우리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령 이후의 광장은 살아 있는 민주주의 교실이었다. 광장의 매일은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실천하는 시간이었으며, 거기서 사람들은 교과서 없이도 서로에게 민주주의를 배웠다. 그 광장의 힘으로 우리는 대통령 탄핵을 이루고,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치를 수 있었다. 겨울과 봄을 거치며, 열렸던 광장은 닫히고 정권은 바뀐 것이다. 그런데 2024~2025년 광장의 역동과 실천을 기록하고 분석한 책과 글은 공통적으로 광장의 민주주의가 정권 교체 너머의 세계를 상상했음을 이야기한다. 2025년 1월 이루어진 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으로 ‘사회대개혁’을 꼽았으며, 광장의 주축이었던 ‘2030 응원봉 여성 청년’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포함한 평등의 실현을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보았다(이예슬·강한들, 2025).


그렇다면 광장 이후 교체된 정권은 사회대개혁과 평등 사회 실현에 얼마나 큰 관심과 의지를 갖고 있을까. 새 정부의 대통령과 일부 주요 인사는 차별금지법이 민생 문제에 비하여 급하지 않은 문제라고 언급하거나, 여전히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민서영·정희완, 2025; 조현호, 2025). 그리고 새로운 정권의 주요 정책 중 구조적 불평등 개선과 차별 시정에 관한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광장을 채웠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광장의 민주주의가 내포한 의미와 힘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연구자로서 광장 이후의 우리 사회에 대해서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지난 겨울과 봄, 광장에서 상상하고 실천했던 민주주의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광장을 채웠던 민주주의의 상상력은 어디서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 사이에서 이 글은 2024~2025년 광장의 민주주의를 학교교육과 연결시켜 보려는 시도이다. 나는 살아 있는 민주주의 교실이었던 광장이 지금의 학교교육에 새로운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광장의 주축이었던 ‘응원봉 여성 청년’들이 보여 준 시간성과 신체성은 민주주의를 언젠가 이루어야 할 이상향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나-우리가 실천하고 실현(해야)하는 것으로 재정의하였다. 이 민주주의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모두를 위한 평등의 실현이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타자에게 직접 몸으로 달려가 연대하며 사회가 곧 나임을 자각하는 실천이다. 이러한 광장의 민주주의는 학교가 민주주의를 가르치거나 민주 시민의 역량을 갖춘 개인을 양성함으로써 도래할 민주주의 사회를 예비하는 것을 넘어서야 함을 시사한다. 이 민주주의는 학교가 지금 여기에 있는 모든 존재를 위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간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학교의 존재론과 인식론, 윤리론은 무엇인지, 학교의 가르침과 배움, 일상과 관계는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성찰해야 함을 요청한다(이혜정, 2025). 


이 글에서 나는 학교의 능력주의가 전제하는 몸과 시간은 어떤 것인지 비판적으로 살펴보며, 이 지배적인 신체성과 시간성이 학교의 민주주의 실현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그리고 학교교육이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시공간이 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할 것이다. 이 글을 통해 광장의 민주주의를 하나의 화석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우리 삶, 교육과 연결시킬 수 있을까 같이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학교 능력주의가 전제하는 몸과 공통 감각의 부재


지금 대부분의 학교는 민주주의에 무관심하다. 소위 ‘진보’ 정권 시기 민주주의는 학교교육 정책 의제의 일부가 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학교와 민주주의를 잇던 끈마저도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일부 시·도에서 ‘학교 민주주의’와 ‘민주시민교육’은 정책 문서를 비롯한 공식적 문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용어가 되었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학교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실천은 개별화, 주변화되고 있다(박상준, 2025; 허연호, 2025). 그런데 학교와 민주주의가 별개일 수 있을까. 「교육기본법」 제2조에 명시된 한국 공교육의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에 있다. 학교의 존재 자체가 민주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차원이 아니라 일상의 차원에서 학교에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되고 있고, 그 실현을 막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학교의 일상에서 민주주의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맥락 중 하나가 학교를 지배하는 능력주의 질서라고 생각한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보는 신념이자 질서이다(마이클 영, 1958/2020; 최진, 2023). 학교를 지배하는 능력주의 신념은 능력의 원천과 이를 개발하는 책임이 개별 인간에게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개인의 능력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학업 성취와 입시 결과 나아가 직업 지위의 획득은 적절하고 공정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이러한 능력주의 질서 안에서 ‘능력을 개인의 몫으로 볼 수 있는지’, ‘이때의 능력이란 무엇인지’, ‘능력에 따른 보상이 가능하다는 논리의 전제는 무엇이고 그것은 타당한지’, ‘지금 나의 위치와 몫은 나만의 성취인 것인지’ 등의 질문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능력을 보유하고 그 능력을 평가받으며, 그에 따라 보상을 받는 주체는 모두 개인(individual)이다. 학생들은 서로 비교와 경쟁의 대상으로 존재하며, 대다수의 학생들은 자신이 다른 몸이나 물질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된 신체로 살아간다고 느낀다. 개인의 능력이 강조되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거나 의존하고 있다고 감각하기 어렵다.


그런데 실제로 학교와 교실에서 몸들은 서로 얽혀 있다. 여러 학생과 교사가 수업하고 생활하는 교실 공간에서 감정과 감각을 가진 몸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으며, 누구도 상호 의존과 협력의 범위 밖에 있을 수 없다. 나의 건강과 안녕이 곧 다른 사람의 건강을 책임지게 만들었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우리 존재 자체가 ‘얽혀 있음(entanglement)’을 감각하게 해 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학교 효과 연구에서 어떤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느냐에 따라 학업 성취의 정도가 달라짐을 입증한 ‘동료 효과(peer effect)’ 개념은 사실 학생들의 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생성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예시이다. 역설적이게도 학생들을 개개인으로 감각하게 만드는 상대 평가야말로, 서로의 성취에 의하여 자신의 성취가 결정되는, 얽힘을 보여 주는 제도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개별적(이라고 여겨지는) 몸은 실제로는 얽혀서 존재한다.


그러나 단절되고 고립된 개인, 경계 지어진 개체(bounded individual)로서의 몸을 전제하는 능력주의는 이러한 얽힘을 감각 하지 못하게 하고, 학생들이 낱낱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이러한 신체 감각은 실제 학교라는 시공간 속에서 타인과 비인간 존재에게 의존하고 얽혀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학생 개개인의 구체적인 일상과는 간극이 있다. 학교 안에서 청소년들이 서로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현상은 이 얽힘에 대한 무감각이 낳은 결과일 수 있다. 


이 무감각은 사회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나를 느끼는 감각인 공통 감각(common sense)의 부재와도 연결된다. 우리는 공통 감각을 가질 때 타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관용할 수 있으며(최진, 2023),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문제로 여길 수 있다. 공통의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하는 것을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이 공통 감각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단절되고 고립된 신체를 전제하는 능력주의는 내가 이 사회의 일부라는 감각,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내가 존재한다는 감각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다.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최근의 ‘공정’ 담론은 구조적 평등을 보완하기 위해 소수자에 대해 지원하는 것을 공동체에 속한 개인들의 존재론적 책임으로 여기기보다는 특정 집단에 대한 ‘특혜’ 혹은 다수 집단이 감당해야 할 ‘역차별’의 문제로 본다.


2024~2025년 광장의 주체들은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문제로 여겨, 연대가 필요한 곳이면 재빨리 찾아가서 촉수적(tentacular) 연대를 실천하였고, 그 과정에서 나/그들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들을 경험했다. 또한 광장을 채웠던 사람들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서로의 민주주의를 보장해 주는 관계로 얽혔으며, 거기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다(이혜정, 2025). 반면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학교에서는 연결,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공통감각을 갖기 어렵다. 능력주의가 전제하는 단절되고 고립된 몸은 민주주의 실현을 어렵게 만든다.



학교 능력주의의 시간과 유예되는 민주주의


학교를 지배하는 능력주의 신념과 질서 안에서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것이며, 현재는 미래의 학업 성취와 대학 입시라는 목적을 위한 시간으로 의미화된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다수의 학생들은 대학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매일의 시간을 살아가며, 시험 날짜, 입시 일정이라는 목표점은 공부의 양과 내용과 방법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시간성은 출생-입학-졸업-취업-결혼-출산-육아 등으로 이어지는 생애 과정을 규범적인 것으로 여기는 이성애 중심/비장애 중심/중산층 중심적인 시간성과 연결된다. 학교의 능력주의 질서 속에서 선형적이고 목적론적인 시간성을 경험하는 학생들은 졸업 후 취업, 결혼, 출산 등으로 이어지는 목표를 향해 효율적인 시간 배치를 반복하게 된다.


이러한 학교 능력주의의 시간성 속에서 학생들은 공부나 입시와 무관한 욕망들을 유예(조용환, 2009)한다. 연애, 취미 생활, 봉사 활동, 여행 등은 모두 대학 입시 이후로 미뤄진다. 그런데 이 유예는 민주주의와 정의의 유예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비민주적인 제도, 관행, 문화는 대학 입시와 무관한 것들의 항목에 속하기 때문에 토론과 해결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학교에서 이런 식으로 유지되는 것에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학교폭력으로 사건화되지는 않은) 무례와 모욕 등이 포함된다. 대학 입시라는 커다란 목표를 향해가는 이 선형적인 시간 안에서 정의나 윤리 문제는 중요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렇게 유예된 욕망이나 민주주의, 정의는 ‘나중에’도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 능력 향상과 보상의 톱니바퀴로 작동하는 능력주의 질서는 대학 입시 이후에도 취업-결혼-출산-육아 등으로 계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능력주의 시간 안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유예하는 것은 사실상 비민주적 질서의 유지, 부정의의 존속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학교에서 대학 입시 결과라는 나중을 위해 지금 여기에서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유예하는 것이 문제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12.3 내란 이후의 광장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지금 여기에서의 민주주의’는 나중에 도래할 이상적인 사회를 위해 현재를 도구화하고 유예하는 것이 아닌, 도중(in the middle)의 시간성(Gallop, 2019/2023)을 보여 준다. ‘민주주의를 위해 만들어진 광장은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기조에 의하여 만들어진 ‘평등 수칙’은 광장을 지금 이 순간 아무도 차별받지 않은 공간으로 만드는 조건으로 작동했다. 거기서 민주주의는 유예되지 않고 바로 실현되었다(이혜정, 2025). 능력에 따른 보상을 원칙으로 삼는 능력주의 질서 안에서 학교는 능력을 끝없이 향상시키기 위한 공간이며, 여기서의 현재는 미래의 성취를 위해 도구화되는 시간이다. 이러한 시간성이 지배하는 공간에서는 민주주의 실현 또한 끝없이 유예될 수밖에 없다. 



지금 여기에서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민주주의를 절차나 제도를 넘어 구성원 간 공유된 삶의 양식이나 서로 관계 맺고 협력하며 공동의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Dewey, 2016/2007)으로 접근할 때, 대다수 학교의 일상은 여전히 민주적이지 않다. 그리고 학교의 능력주의 신념과 질서는 단절되고 고립된 신체와 선형적이고 목적론적인 시간성을 전제하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의 민주주의 실현을 어렵게 만든다. 사실, 한국의 학교교육을 지배하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그동안 많이 이루어져 왔다(김태심, 2020; 백병부 외, 2021; 최진, 2023). 그럼에도 능력주의에 기반한 학교 제도와 문화, 질서와 규범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뼈와 살, 감정과 무의식이 능력주의적 신념과 질서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는 우리를 억압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과 욕망, 몸을 특정한 방식으로 생성하는 담론적 실체이다(엄수정·송요성, 2021). 무엇이 좋고 바람직한 것인지, 어떤 삶이 추구할 만한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되는 능력주의는 우리를 구성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학교의 능력주의를 비판함으로써 그 모순과 불평등 정당화 매커니즘을 밝히는 것은 사실 현실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기 어렵다. 능력주의의 신체성과 시간성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이 글 또한 현재의 학교를 변화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글에서 비판하고 있는 능력주의의 몸과 시간 감각은 그 질서에 의하여 주조된 것이면서 동시에 다른 움직임과 감각의 가능성에 열려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존재와 얽힌 내 몸을 감각하고 서로의 취약성을 돌보며 의존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 목적론적이고 효율적인 시간성 밖의 낯선 시간을 살아 내는 것은 사실 정책이나 제도의 큰 변화 없이도 지금 바로 가능하다. 그럼에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상상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그런데 학교에는 능력주의의 신체성과 시간성 바깥의 주체들이 언제나 존재한다. 학교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촘촘한 학업 계획과 사교육 스케줄을 효율적으로 소화하는 능력주의적 신체들이 성실함과 유능함을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곳이지만, 능력주의의 신체성과 시간성에 적합하지 않은 몸들 또한 배우고 생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학교가 정해 놓은 속도에 비하여 느리게 배우고 성장하는 몸, 학교가 인정하는 능력 이외의 것들에 관심 기울이는 몸, 이성애 규범성 바깥의 생애 경로를 겪는 몸, 비장애인과는 다르게 감각하고 느끼고 움직이는 몸 등. 학교에는 여기서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다른 몸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의 모든 존재가 능력주의 질서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몸들의 낯선 움직임과 감각은 능력주의 질서에 틈을 내는 신체성과 시간성을 탐색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능력주의가 지배적인 학교에서 이 다른 몸들은 무능력하거나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지며 때로는 이상하고 위험한 존재로 간주되기도 한다. 학교는 이 존재들의 낯선 감각과 경험을 펼쳐 낼 공간을 허락하지 않으며, 이들은 오히려 차별과 배제,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학교는 평등을 실현하는 공간’이라는 구호는 사실 능력주의적 신체성과 시간성이 지배하는 현실 안에서 무력해진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에게 평등한 주권을 부여하고 이 주권이 실현될 때 유지될 수 있는 정치 체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평등한 주권의 실현은 모두가 존엄의 평등을 보장받고 누릴 때 가능하다(백병부 외, 2019). 학교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는 것은 이 다른 몸들도 존엄한 존재로서 평등하게 주권을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교실을 실천하고 이론화한 벨 훅스의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평생의 실천을 통해 만들어 갔던 평등한 교실(hooks, 1994/2008)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교실과 학교를 만들어 가려는 실천들은 지금 여기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평등한 교실은 어떤 신체성과 시간성도 환대받는 공간이다. 모두가 평등한 교실에서는 다양한 몸들이 나름의 속도와 방식으로 움직이고 살아도 배제되지 않고 배울 수 있으며, 여기서 학생들은 ‘아무도 차별받지 않는 세계’를 경험한다. 이것은 학교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모두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교실이 바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공간이며, 이 공간에서 낯설고 다른 몸들이 펼쳐 내는 움직임과 감각은 새로운 학교의 질서와 가능성, 나아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❶  ‘우리’라는 호명은 이 범주 바깥의 누군가를 상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운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2024~2025년 광장 이후의 한국 사회를 고민하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을 ‘우리’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때의 ‘우리’는 특정한 정체성으로 묶인 사람이 아니라 사회를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같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❷  ‘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현재는 ‘광장을 잇는 윤퇴청’으로 개편되어 운영 중)에서 2025년 1월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광장에 나왔던 청년들의 1순위 요구는 ‘사회대개혁을 위한 사회 문제 해결’로 응답자 중 63.1%가 이 항목을 선택하였다(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 2025).

❸  나는 2024~2025년 광장의 주축은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나온 여성 청년이라고 생각한다. 응원봉 자체가 K팝 아이돌 팬덤 도구이고, 이 팬덤의 주체는 여성 청년들이며, 이들은 “아이돌 팬덤이 나서면 얼마나 큰 응집과 행동력이 발휘되는지(이유진, 2025)” 보여 주는, 광장의 주역이었다. 그리고 이 여성 청년들이 보여 준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과 실천은 이전과는 다른 감각과 감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이혜정, 2025).

❹  얽힘은 양자역학의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이는 서로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상호 연결되어 동시에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신유물론 페미니즘 연구자인 캐런 버라드(Karen Barad)는 양자역학의 이 개념을 발전시켜 세계와 물질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연결’이 서로 다른 개체가 별개로 존재하면서 어떤 국면에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개념이라면, 얽힘은 개체들의 존재 자체가 끊임없이 관계 맺으며 변화하고 이 과정 자체가 서로를 생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 안에 있음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❺  ‘촉수적(tentacular)’라는 개념은 Haraway(2016/2021)가 위기의 지구 행성을 위한 지식 생성과 행위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거미나 문어의 촉수는 다면적, 역동적이며, 집단적인 얽힘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기존의 사고와 행위가 뇌를 중심으로 하는, 인지-행동의 순서를 전제하는 것이라면 촉수적 움직임은 신체적이고 역사적인 행위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광장에서 ‘응원봉 여성 청년’들이 보여 준 연대는 거미나 문어의 촉수가 움직이듯 예측 불가의 집단적 얽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이혜정, 2025).

❻  이 약속은 ‘윤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것(civilnet.net/act/?idx=134767724&bmode=view)으로 광장에서는 ‘평등 수칙’이라고 불리며, 집회 손팻말 등으로 제작되어 배포되었다.

❼  효율적인 능력주의의 신체성과 시간성은 사실 누군가의 돌봄과 보호를 통해 가능한 것이다. 의식주와 그 밖의 편의를 제공해 주고, 사교육 정보를 입수하여 실행하게 해 주며, 진학과 진로 전략을 짜서 실현시켜 주는 보호자 없이 능력주의의 몸이 능력의 향상과 효율성을 견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학생의 능력주의적 신체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과 보호를 통해 보호자의 신체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학교의 능력-보상 시스템은 이러한 연결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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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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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