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호[특집] 청소년 자살, 사회적 타살 | 개인화된 책임, 시장화된 해법 | 문호진

202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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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청소년 자살, 사회적 타살


개인화된 책임, 시장화된 해법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의 의료화



문호진  mh29@naver.com

의사, 《수능 해킹》 공동 저자





오은영 박사의 육아 프로그램이 지상파를 넘어 유튜브까지 장악하고, ‘금쪽이’가 일상어가 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아동의 행동을 ‘애착 손상’, ‘정서 조절 장애’ 같은 의료적 틀로 해석하는 일을 익숙하게 여긴다. 한때 ‘버릇없는 아이’나 ‘산만한 아이’로 불렸던 행동들이 ‘치료적 개입이 필요한 상태’로 재정의되면서, 양육과 교육의 언어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회적 책임과 교육적 중재가 강조되던 자리에는 의료화된 담론이 들어서는 방식으로 교육과 의료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결국 모든 문제는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글에서 우리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의료화된 양육 담론의 현황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이는 청소년 자살과 정신건강에 관한 대책과도 직결된다. 청소년들이 겪는 정신건강 문제의 원인은 부모의 과도한 통제, 교실의 비민주적 운영, 청소년 자신의 정체성과 진로에 대한 자연스러운 고민, 교우관계의 복잡성 등이 얽혀 있는 다층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의료화된 담론은 이를 단순화하여 개인의 뇌 발달이나 부모의 양육 방법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특히 주요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발언이 교육 분야에서 어떤 변화를 불러오며, 그 과정에서 어떤 구조적 문제들이 은폐되고 개인화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의료인의 관점에서 볼 때, 지금과 같은 담론의 생산 및 유통 구조하에서는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새로운 형태의 부담과 낙인을 부과할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의료화된 양육 규범은 명시적이지 않지만 강력한 사회적 낙인 효과를 만들어 낸다. 조기 학업 개입을 선택하거나 경제적 이유로 정서 중심의 이상적 양육을 실현하기 어려운 가정은 암묵적으로 ‘뇌 발달을 망치는 부모’, ‘정서적 방임자’로 규정될 위험에 놓인다. “부모의 공감 부족이 문제다”, “뇌 발달이 저하된다”, “정서적 자극이 부족하면 자해로 이어진다”와 같은 수사들은 부모 개인의 선택이나 처지를 의료적 위험 행위로 치환하고, 그 책임을 개별 가정에 귀속시킨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프레임이 아동 사이의 차이를 해석하는 방식에 미치는 영향이다. 적기에 풍부한 정서 자극을 받지 못했거나 조기 사교육 환경에서 자란 아동은 ‘뇌 회로가 덜 발달한 아이’,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로 간주될 위험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판단의 근본 원인이 실제로는 많은 경우 가정의 계층적 조건, 보호자의 사회 경제적 제약, 구조적 돌봄 공백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화된 언어 안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개별 가정의 책임이자 위험 요소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접근은 구조적 원인을 양육자의 능력 문제로 환원시키면서, ‘치유형 부모’가 되기 위한 정서적 자기 계발을 사실상 표준화된 책무처럼 제시한다.



전문가들의 뇌과학 기반 양육 담론과 그 함의


최근 몇 년간 국내 주요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양육과 교육 문제를 뇌과학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담론을 주도해 왔다.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김붕년 교수는 자신의 저서 《아이의 뇌》를 통해 양육 원칙을 뇌 발달 단계와 연결시켰고, 세브란스병원 천근아 교수는 유튜브 강연에서 “4세 고시는 아동학대”라며 조기 교육이 뇌 회로를 손상시킨다고 경고했다. 명지병원의 김현수 교수는 부모 교육 플랫폼에서 아동기의 정신건강 문제를 설명하며 ‘정상화 증후군’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아이들의 무기력을 의료적 문제로 규정했다.


이들은 모두 발달장애 거점병원,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자살예방센터 등 공적 기관의 수장을 맡아온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발언은 단순한 개인 의견이 아니라 한국 정신건강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공적 담론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은 뇌과학과 진단 용어를 활용해 부모의 잘못된 양육 방식이 아이의 회복탄력성, 자기조절력, 인지 회로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고 경고하며, 부모가 더 정서적으로 정교한 양육을 수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한다.


이들은 단순히 조기 교육의 해악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뇌과학과 발달심리학의 수사를 통해 특정한 양육 방식을 과학적이고 윤리적인 ‘정답’처럼 제시하고 있다. 그들의 담론에서 이러한 ‘이상화된 양육 모델’을 감당할 수 있는 학부모는 암묵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문화적·경제적 자원을 가진 계층으로 전제된다. 좋은 부모란 학업적 조기 교육의 유혹을 이겨 내고, ‘자연스러운’ 발달을 지원하며, 놀이와 정서적 공감을 일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여유를 지닌 사람으로 설정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의료화된 언어가 의도와 달리 양육을 개인의 지식과 능력 문제로 환원시키면서, 구조적 불평등을 간과하고 새로운 형태의 계층 구분을 만들어 낼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점이다. 상담, 연수, 부모 교육 프로그램 등은 이제 ‘마음 회복’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사교육 콘텐츠로 재편되고 있다.


김붕년 교수는 《아이의 뇌》 개정판을 소개하는 언론 보도자료에서 아동의 인지·정서 발달과 뇌과학적 구조를 연결한 육아 원칙을 제시한다. “아이의 뇌 발달 단계에 맞춰 사고력, 공감력, 실행력을 성장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표면적으로 아이를 독립적 존재로 대하라는 진보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김 교수가 이런 주장을 펴는 과정에서 명시적,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육아에 뇌과학이 필요하다”, “부모가 뇌의 구조를 이해해야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다”는 관점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뇌과학은 높은 통계적 변이와 넓은 해석 범위를 지닌 분야이며, 개별 아동의 경험과 발달의 과정은 뇌구조와 일대일로 대응되지 않는다. “공감력은 정서 지능의 발달과 연결된다”, “실행력은 전두엽의 성숙도와 관련이 있다”는 명제들은 일정 부분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지만, 이를 개별 아동의 구체적 양육 상황에 적용하는 것은 집단 단위의 개연성을 개인 단위의 인과로 연결하게 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뇌과학 기반 양육 원칙이 제시되는 분위기에서, 부모를 ‘과학적 부모’와 ‘비과학적 부모’로 나누는 새로운 계층 구분을 만들어 낼 가능성도 무시하기가 어렵다. 뇌과학을 학습하고 적용할 시간과 자원을 가진 부모만이 ‘올바른 양육’을 할 수 있다는 암묵적 메시지는 결국 양육의 책임을 개인화하고 계층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천근아 교수는 유튜브 채널(〈빅퀘스천〉) 강연 〈아동학대입니다 : 어릴 때 조기 교육, 선행학습에 시달린 아이의 뇌에 생기는 충격적인 변화〉 영상에서, “해마 발달은 정서와 직결되어 있고, 정서적 경험 없이 외운 인지 정보는 장기 기억으로 가지 않는다”, “아이가 너무 이른 시기에 영어 단어를 외우면 뇌 회로가 망가진다”고 주장한다. 조기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러한 설명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그 표현 방식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4세 고시는 아동학대입니다”, “엄마가 옆에 없으면 아이는 버려졌다고 생각한다”와 같은 극단적 표현은 일상적 양육 행위를 과도하게 병리화한다. 맞벌이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처럼 ‘이상적’ 정서 돌봄을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부모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는 깊은 죄책감과 무력감을 안긴다. “엄마가 모든 걸 대신해 주면 아이는 타성에 젖는다”, “성취 경험이 없으면 열등감으로 이어진다”는 조언들은 정서적 돌봄의 ‘적정선’을 제시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부모가 끊임없이 자신의 양육 방식을 검열하도록 만든다.


특히 “편도체가 과활성화되어 자해로 이어진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뇌의 가지치기를 방해한다” 같은 뇌과학적 설명은 상관관계를 인과관계처럼 제시함으로써 부모들에게 ‘내가 아이의 뇌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을 심어 준다. 이는 조기 교육을 비판하면서도 또 다른 형태의 양육 압박을 만들어 내는 역설적 결과를 낳는다.


김현수 교수는 테크빌교육 부모교육 플랫폼(〈부모공감〉)의 〈요즘 사춘기 아이들 이해하기〉라는 강연에서 ‘정상화 증후군’이라는 비공식 진단명을 만들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주체성이 없는 아이들을 ‘정상화된 위기의 청소년’으로 규정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침묵, 무기력, 반응 부족을 모두 의료적 문제로 전환하고, 이를 부모의 양육 태도와 연결 짓는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ADHD 같은 실제 진단명을 ‘미움받는 행동을 하는 유형’으로 설명하면서, 눈치 없는 아이, 잘 못 알아듣는 아이 등을 하나의 부정적 군으로 묶으며 아동의 다양한 기질과 표현을 병리화된 틀로 가두는 방식이다. 나아가 그의 강연에서 “느낌을 반영해 주지 않는다”, “정해진 틀에 가둔다”처럼 ‘문제 부모’의 행동을 설명하는 방식은 정서적 언어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양육 실패의 책임을 부모 개인에게 전가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런 방식의 담론을 접하게 되면, 부모는 ‘아이의 문제는 부모의 대응 미흡과 연결되며, 해결을 위해 전문가의 교육과 중재가 필요하다’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구조적 문제의 개인화와 계층적 재생산


전문가 담론에서 시작되어 교육 정책으로 확산된 의료화 프레임은 양육의 구조적 조건을 무시한 채 개별 부모의 지식과 실천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뇌과학적 지식을 습득하고, 정서적 공감을 일상적으로 제공하며, 조기 교육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부모란 결국 충분한 시간과 경제적 여유, 문화적 자본을 가진 중산층 이상의 부모를 전제한다.


맞벌이 가정,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와 경제적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부모들에게 ‘뇌 발달에 맞는 양육’, ‘정서 중심 교육’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일 수 있다. 그러나 의료화된 양육 담론은 이러한 구조적 제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부모가 동일한 조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전제한다. 이는 양육 격차를 부모 개인의 노력과 지식 부족으로 환원시키며, 계층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 전문가가 모두 공적 위치를 가진 인물들이라는 사실이다. 김붕년 교수는 발달장애인 거점병원 중앙지원단장과 국제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부회장을, 천근아 교수는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현수 교수 역시 올해까지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을 맡았으며,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센터장, 코로나19 유행 당시 서울시 코비드19 심리지원단 단장을 역임하며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개인 의원을 운영하는 개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뇌과학에 기반한 양육 지침서’를 낼 수는 있다. 그러나 김붕년 교수와 같이 정부와 학계, 민간 영역에서 다양한 공적 역할을 수행해 온 인물이, 본인의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부모 입장에서 아이의 뇌 발달 구조까지 학습하지 않으면 양육에 실패할 수 있다는 인상을 받을 여지가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처럼 공공 정신건강 정책의 설계와 실행에 깊이 관여해 온 위치에 있는 이들이 양육 문제를 개인화하는 담론을 생산하는 것은 공적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아이의 뇌》에서 강조되는 뇌 기반 양육 지침은 부모를 돕고자 하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공적 시스템을 우회하여 부모가 더욱 정밀한 정보 소비자이자 실천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문화적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교육과 공적 보건 시스템의 역할은, 양육이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 것, 교사가 정서적 소진 없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전문가와 공적 시스템은 부모가 뇌과학을 몰라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담론과 정책은 오히려 부모와 교사 개인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습득하고 정서적 자기 관리를 수행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는 교육과 돌봄의 공적 책임을 사적 영역으로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화된 양육 담론은 부모뿐 아니라 아동에게도 새로운 형태의 낙인을 부과할 위험이 있다. ‘적기’에 ‘적절한’ 정서 자극을 받지 못한 아이, 조기 사교육에 노출된 아이는 ‘뇌 회로가 손상된 아이’로 규정된다. 이러한 판단은 아동이 처한 구조적 조건이나 가족의 사회·경제적 제약을 무시한 채, 개별 아동을 의료적 위험군으로 분류한다. 이는 특히 취약 계층 아동에게 이중의 불이익으로 작용한다. 경제적 여건상 ‘이상적’ 양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발달상의 문제를 가진 것으로 낙인찍히고, 이는 다시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의 윤리적 책임은 명확하다. 세계정신의학회(WPA)는 “정신과 의사는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을 줄이기 위해 모든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 조항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진료실 안의 태도뿐 아니라 강연, 교육, 연수, 미디어 콘텐츠 등 공적 발화 전반에 걸쳐 낙인을 줄이기 위한 윤리적 실천을 요구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역시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ADHD를 ‘미움받는 행동 유형’으로 설명하거나, 아동의 특정한 행동에 ‘증후군’ 같은 이름을 붙여 병리화하는 김현수 교수의 방식은 이러한 윤리 기준과 충돌할 여지가 있다.


더 나아가, 전문가의 책임은 과학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해석과 적용이 가능한 환경을 제도 안에 구축하는 데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특히 공적 위치에 있는 전문가라면 부모가 전문 지식을 습득해야만 양육에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보다는, 그러한 지식이 공교육과 공적 보건 시스템 안에서 누구나 접근 가능한 형태로 제공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데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게 설계할 책임은 제도 설계자이자 담론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함께 짊어져야 할 책무다.



의료화 담론의 정책화, 새로운 민간 교육 시장의 확장


전문가들의 의료화된 양육 담론은 점차 교육 행정의 언어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들어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뇌 발달’, ‘정서적 손상’, ‘트라우마’ 같은 의료적 용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구조적 교육 개혁보다는 개인의 심리적 치유와 정서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2025년 6월 18일 서울시교육청이 개최한 ‘사교육 경감 프로젝트를 위한 시민 토론회’였다. 이 자리에서 엄소용 연세대 의대 교수는 “영유아기 학업 중심 조기 교육이 창의성·놀이 능력·사회성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뇌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취지의 설명을 덧붙였다.


이에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은 “4세 고시, 7세 고시는 정상적인 발달을 가로막는 범죄 행위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라며 화답했다. 이는 조기 교육에 대한 사회적 위기의식을 의료화된 뇌 손상·발달 저해 프레임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천근아 교수가 유튜브에서 “영유아 사교육은 뇌 발달을 저해시킨다”라고 표현한 것과 정확히 같은 논리 구조가 교육 정책의 공식 담론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후 서울시교육청의 정책 발언 및 사업 구조는 이러한 해석 틀 위에 각종 정책 패키지 브랜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프레임은 곧 학생 자살 사건을 둘러싼 행정 언어에도 동일하게 반영되었다. 지난 7월, 한 입시 학원 건물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 직후 정근식 교육감은 게시한 페이스북 글에서 “이번 참극은 과열 경쟁과 일부 학원의 마케팅이 부추긴 일”이라고만 규정하고, 스스로의 책임으로 귀속될 여지가 있는 공교육 내의 문제에 대한 언급은 일절 피했다. 문제의 원인을 철저히 외부에만 둔 채, 그의 글이 제시하는 대응의 방식은 “합동 점검”, “학원 연수 강화”, “입법 촉구” 등 실행 가능한 정무적 리스트로만 구성되었다. 이는 실제 제도 설계보다는 정치적 대응을 위한 브랜딩형 발화에 가까웠다. 구조적 문제를 의료화된 언어로 포장한 후, 해결책은 개별 주체(학원, 부모)의 ‘연수’와 ‘관리’로 환원시키는 방식이었다.


정근식 교육감은 7월 18일,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2주기를 맞아 게시한 페이스북 글에서도 동일한 구조를 반복했다. “반복적 민원에 시달리다 상처를 입은 선생님이 많다”는 현실을 언급하며, 교육청의 대응은 “100인의 변호인단”, “SEM119 긴급지원팀”, “마음닥터 의료 기관 연계”, “치유 연수” 등 의료–법률–컨설팅 기반 시스템의 나열로 구성됐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교사 보호를 위한 행정 구조 설계나 공적 책임 분산 체계 등의 개선이 아니라, 정서적 고통을 외부 전문가 시스템으로 전가하는 구조였다. 업무 경감이나 민원 대응 절차 조정 같은 핵심적 실무 개선은 구체성 없는 언급으로만 남은 채 주변화되었고, 연수와 패키지 중심의 ‘관리 가능한 사업’의 목록만이 강조되었다.


이는 부모 교육 담론에서 ‘좋은 부모’라는 이상을 설정해 놓고, 그 실행 책임은 개인에게 돌린 뒤, 연수·상담·컨설팅이라는 상품을 통해 보완책을 제시하는 구조와 정확히 평행을 이룬다. 교사에게도 ‘강해져야 한다’, ‘회복된 감정 상태로 수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윤리적 기준이 설정되지만, 그 실행을 위한 제도적 설계는 비어 있다. 정작 감정을 책임져야 할 학교는 아무것도 설계하지 않고, 교육청은 슬픔과 회복을 정책화하지 못한 채 연계–자문–홍보 사업으로만 포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은 학생와 교사 모두에게 ‘책임지지 않는 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에 놓인다. 서울시교육청의 ‘마음닥터’, ‘치유 연수’ 같은 프로그램들은 구조적 문제를 정서적 관리로 전환시키는 동시에, 학교 및 공공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 상담·컨설팅 시장에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 공적 기관이 구조적 개선 대신 개인의 정서 관리를 강조할 때, 그 빈자리는 결국 시장이 메우게 되는 것이다.


같은 형태의 상담 및 컨설팅 시장은 앞서 이야기한 의료화된 양육 담론이 만들어 낸 부모의 불안과 죄책감 역시 새로운 형태의 교육 시장을 탄생시켰다. ‘뇌 발달 이해하기’, ‘정서적 공감 능력 기르기’, ‘올바른 놀이 방법’ 등을 가르치는 부모 교육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김현수 교수의 강연이 테크빌교육이라는 민간 플랫폼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이러한 시장화의 단적인 예다.


이 시장은 아동의 발달 문제를 의료의 틀로 규정하고, 사교육과 같은 특정한 현상에 책임을 돌리며 ‘문제는 구조가 아닌 개인의 책임’이라는, 전문가와 언론, 정책 당국이 암묵적으로 규정하는 틀 위에서 확장된다. 부모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연수를 받으며, 전문가의 조언을 구해야 한다. 이는 기존의 학업 중심 사교육을 비판하면서도 정서·심리 영역의 새로운 사교육 시장을 만들어 내는 역설적 결과를 낳는다. 서울시교육청이 ‘사교육 경감’을 외치며 학원 규제를 강화하지만, 동시에 의료화된 담론을 수용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교사 및 학교,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컨설팅과 상담이라는 민간 교육 영역의 정당성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의료화된 양육 담론이 남긴 과제


오늘날 양육과 교육의 문제는 점차 의료의 언어로 재편되고 있다. 주요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뇌과학 기반 양육 담론은 부모에게 더 많은 지식과 정서적 정교함을 요구하며, 서울시교육청 같은 공적 기관도 이러한 프레임을 수용하여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정서 관리 문제로 전환시키는 양상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양육의 책임은 개별 가정에 전가되고, 새로운 형태의 계층 구분과 사회적 낙인이 생산될 우려가 크다. 부모 교육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며, 의료화된 언어는 오히려 부모의 불안과 죄책감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접근은 모든 아이가 동등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공적 시스템의 책임을 간과하게 만든다.


양육과 교육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려면 개인의 능력이 아닌 사회 구조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를 뇌과학적 결핍이나 부모의 양육 실패로 단순화하는 대신, 교육 환경의 민주화, 청소년의 자율성 존중, 다층적 지원 체계 구축 등 복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의료화된 담론이 만들어 내는 개인화와 시장화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공적 책임에 기반한 보편적 돌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과제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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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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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