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호[리뷰] 생명과 안전은 민주주의와 함께 간다 | 간우연

20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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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안전은 

민주주의와 함께 간다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 씀,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창비, 2024

서교인문사회연구실 기획, 김현준 외 씀, 《재난 이후, 사회》, 나름북스, 2024



간우연  gana2020@korea.kr

경기도 시흥시 웃터골초 교사



민주주의와 생명·안전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초등학교 6학년 사회 시간에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대해 역사적 사건과 「헌법」을 통해 다룬다. 또 한편으로, 학교는 다양한 안전교육을 정해진 시간 이상 편성하라는 교육과정 운영 지침을 받는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로 안전교육이 강화되었지만, 그 사회적 의미를 모르고 매년 개인의 안전을 지키는 방법만 다루는 안전교육엔 한계가 있다. 교육과정에 법적인 근거 규정까지 제시하며 안전교육을 하라고 되어 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교육과정에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관련 교과나 활동에 끼워 넣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바꿔 보고 싶었다.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주제와 ‘생명과 안전’이라는 주제를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헌법」에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이 명시되어 있고, 재해 예방을 통한 국민 보호를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발전과 세월호·이태원 참사 이야기를 국민의 권리와 국가의 의무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재난 이후, 사회》,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두 책은 이태원 참사를 중심으로 생명과 안전을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 묻고 있다. 《재난 이후, 사회》는 재난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여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책이다.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는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안전한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을 연결시켜 보았다.



국민의 생명을 국가가 보장하는가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장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 주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었을 때, 어떤 국민은 살리고 어떤 국민은 죽게 할 것인가? 국가가 제공하는 안전은 평등한 것인가? 국민들의 죽음의 무게는 서로 다른가?


“푸코는 통치성이라는 개념을 생명에 대한 통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생명 권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생명 권력의 핵심 특징을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둔다’로 규정한다.”[ref]김현준 외(2024), 《재난 이후, 사회》, 나름북스, 54쪽.[/ref] 이런 분석은 개인이 가지는 생명의 가치가 평등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전제로 본다면 국민이 국가를 믿고 자신의 생명을 국가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그 대안이 필요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국민의 생명은 보장되는가 하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세월호·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은 국가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보장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난 이후, 사회》에서는 이에 대한 답으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간은 그 취약성으로 인해 타자와의 협력이 없다면 손쉽게 파괴되는 존재이기에 인간성의 핵심은 상호의존성이고 사회는 상호의존성에 기초한 연대를 통해 사회적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이며, 이를 위해 공통의 인프라를 방어하고 구축하고자 하는 아래로부터의 정치이다.[ref]김현준 외(2024), 앞의 책, 56쪽.[/ref]


재난이 발생할 때도 인간적인 삶을 위한 기본적 사회적 인프라가 공공재로 제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호의존과 연대, 아래로부터의 정치가 필요하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한다는 것의 의미를 확장하여,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개인 간의 사회적 연대에 힘써야 함을 나타내는 내용이다. 



사회적 연대의 의미


사람은 정치적인 동물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회적 연대는 정치적 결과를 이끌어 낼 때 완성된다. 세월호·이태원 참사에 관한 사회적 연대는, 진실 규명과 안전 사회 구축이라는 정치적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진실 규명을 통해 반드시 책임자에 대한 적절한 문책과 역할을 다한 인사에 대한 포상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안전 사회 구축을 위해서는 사건의 정치적 의미에 대한 해석과 적절한 자원의 분배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참사에서 사회적 연대의 핵심에는 유가족이 있다. 유가족의 가장 간절한 바람이야말로 진상 규명과 다시는 유가족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한 안전 사회 구축이기 때문이다. 유가족의 활동은 사회를 바꿔 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유가족과 적절하게 연대하는 사회일까?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에는, 참사 이후 유가족 사이의 연대와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연대를 국가가 가로막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유가족 간의 연락을 차단했고, 유가족 동의 없이 국가 애도 기간을 설정하고 희생자의 영정조차 없는 분향소를 설치했으며, 국가 애도 기간 이후엔 마치 없었던 일처럼 사람들의 기억에서 참사를 지우려는 언행들이 이어졌다. 유가족들은 사회적 연대 없이 철저히 개별화되어 있다가, 아픔을 견디다 못해 다른 유가족을 찾아 연대를 만들어 갔다.


《재난 이후, 사회》에서는 유가족 운동을 호네트의 인정 이론을 통해 분석한다. 인정 이론에서 ‘인정’은 사람들이 서로를 동등한 주체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상호 인정이 나아가 사회 혹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공동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즉, 인정이란 사회 그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의미한다. 인정은 사랑, 권리, 사회적 가치 부여의 형태로 나타난다. 인정을 박탈하는 것으로는 ‘무시’가 있는데, 이는 폭력, 권리 부정, 가치 부정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소개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로 이어지는 대형 참사를 겪으면서도 참사 유가족을 인정하는 법적인 장치는 마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인정 투쟁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노력이 바로 ‘○○ 참사 특별법’이다.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은 “놀러 가서 죽었다”는 등 존재를 부정당하는 수많은 말들을 이겨 내야 했고, 대통령의 거부권이라는 또 다른 무시까지 견뎌 내야 했다.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에서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이뤄 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헌법적 권리를 확장시키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제·개정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한 발짝 나아가게 만들었다. 바로 안전에 대한 권리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안전권이란 다양한 형태의 자연 재난 및 사회 재난의 위협, 그리고 그 밖의 각종 재난 관련 사회의 위협으로부터 헌법상에 보장된 개인의 생명·신체 및 재산 등과 같은 법익을 온전히 보호받거나 보장받을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의미한다.[ref]김현준 외(2024), 앞의 책, 75쪽.[/ref]


생명과 안전에 대한 교육을 하면서, 「헌법」상 권리로서 안전권을 이야기하고, 안전권을 침해받은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이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연대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특히 학생들에게는 안전권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사회적 연대를 어떻게 만들고 이어 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기 계획을 갖게 하는 것이 교육적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유익한 일이고, 다시 말해 자기 자신에게도 유익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 연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곧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스스로의 입장을 가지는 기회이기도 하다.



재난은 ‘남의 일’?


“재난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재난은 ‘남의 일’이에요.” 이 말은 유가족이기도 한 윤석기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 대책위원회 위원장의 말이다. 유가족으로 살아가면서 국가와 사회로부터 겪은 무시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유가족들은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얻지 못한다. 가장 먼저 유가족이 모일 권리를 얻지 못한다. 모일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하고 그때부터 무시를 경험한다. 어렵게 모이게 되더라도 유가족의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대표될 수 없는 사회 구조에 부딪친다. 다양한 위원회와 기구가 있지만, 유가족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장치와 제도는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유가족은 잊혀 가는 존재이고 반대로 잊히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가 된다. 재난에 대한 안전권을 보장하는 사회라면 유가족의 의견을 사회 전반에 반영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일 텐데도, 우리 사회에는 유가족에 대한 제도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재난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재난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모두가 인정하고 이를 대비하기 하기 위한 법적인 장치, 가칭 ‘생명안전기본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점점 강화되고 있지만, 이를 적절하게 운영하기 위한 시민들의 견제와 감시는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재난이 나의 일이 되고 안전이 권리가 되기 위해서는 시민의 안전권이 강화되어야 하고,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유가족은 이런 적절한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첫 번째 주체이다.



학생들과 수업을 한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하여 수업을 한다면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학생들과 함께 헌법적 가치와 권리를 통해 재난 등 참사에서 국가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 다음으로 시민들의 연대를 통한 안전권의 의미 구축과 안전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안전권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노력과 더불어 시민들의 노력이 함께할 때 안전한 사회를 이룰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민주주의 발전과 생명·안전은 동전의 앞면, 뒷면과 같다. 민주주의가 발전해야 국민의 권리가 보장되고, 다른 면인 안전권도 확대되어 간다. 안전권이 확대되는 과정은 개인의 생명과 안전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생명과 안전을 지켜 가는 과정이기에 정치라는 영역을 통해 가능하다. 이렇듯 민주주의와 안전은 함께 발전하는 것이며 그 속에서는 시민들의 연대가 꼭 필요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변화하기 위해서라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이런 사실을 함께 기억하고 배워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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