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호[수업] 수업의 변화를 이끄는 교사의 행위주체성 | 최은경

20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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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의 변화를 이끄는 교사의 행위주체성[ref]이 글은 2025년 1월 10일 ‘2024 청주교사교육포럼(CITEF) 교사 전문성 신장 워크숍’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한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룬 ‘교사 행위주체성(teacher agency)’은 2015년 ‘OECD Education 2030’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로 제시된 ‘OECD Learning Framework 2030’에서 ‘학생 행위주체성(student agency)’과 더불어 협력적 행위주체성(co-agency)을 강조하며 학생의 행위주체성 형성을 위해 필요한 교육 환경 설계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강조된 것이다. 교사 행위주체성의 이론적 논의는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여기에선 최근 국내에서 논의되는 ‘관계적 교사 행위주체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인간의 존재론적 측면과 경험적 연구를 근거로 한 Lee(2019)는 오래 참음, 애정과 감정을 강조하고, 친밀한 관계에 내포된 대안적 행위자성의 개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학교에서도 이해관계에 밝은 자기주도적인 행위자성을 가진 교사보다 ‘좋은 교육’에 대한 분명한 도덕적 가치와 학생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다른 교사와 협력하는 관계적 성찰을 발휘하는 교사가 “보이지 않지만 힘이 있는” 학교의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 낸다(이상회, 2018)는 관계적 시선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한다.[/ref] 


최은경  nara967@daum.net

경기 수원 매원초 수석교사



“수석님 오시고 협의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학부모 공개 수업이나 자율 장학 사전 협의는 거의 없었는데 이걸 꼭 하라고 하니, 힘듭니다.”


2024년 3월 신규 수석교사 발령을 받고 제일 먼저 전문적학습공동체 운영 계획에 참여했다. 수석교사와 함께하는 수업 탐구로 학부모 공개 수업 사전 협의, 동료 장학 사전·사후 협의 그리고 1학기 교육과정 성찰과 2학기 교육과정 설계까지 모두 4차시다. 하지만 첫 모임을 하기도 전에 위와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이 컸지만, 어렵다고 이야기한 교사를 찾아가 솔직한 이야기를 들었다. 수업과 아이들에 대한 어려움을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이런 반응은 왜 나오는 것일까? 한 연구에 따르면 초등 교사는 하루 중 수업 연구를 위해 1시간 30분 정도를 할애한다고 한다.[ref]정바울 외(2014), 〈교원의 업무시간 실태 분석 및 개선방안연구〉, 한국교육개발원, 65~75쪽.[/ref] 하루 평균 4시간은 새로운 수업을 하니까 보통 1시간(1과목) 수업을 위해 20분 남짓 연구와 준비를 하는 셈이다. 이렇게라도 시간이 되면 좋은데 학급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학년 및 학교 일정과 겹치면 연구는커녕 내일 수업을 준비할 틈도 없이 퇴근 시간을 맞는다.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교사는 ‘좋은’ 수업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수업을 통한 성장도 경험하기 어렵다.


우여곡절 끝에 계획된 대로 수업 협의회에 참가했다. 부드러운 시작을 위해 차와 다과 그리고 선생님들께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준비했다. 서먹하고 낯선 순간이 지나고 수업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각자의 경험과 질문이 오가고 말랑말랑한 분위기에서 환한 얼굴로 마무리할 때가 많다. 협의 전과 후는 확연하게 다른 수업이 만들어진다. 중요한 부분을 찾고 과도한 지점을 없애는 등 욕심을 내지 않고 간결하고 핵심적인 활동을 중심으로 수업을 설계한다. 무엇보다 수업 공개로 ‘평가받는다는 부담을 이겨 내는 단단한 용기와 보이지 않는 연대의 힘’이 생긴다. 교사들은 여유를 찾게 되고 그만큼 보호자와 학생을 환대하게 된다. 힘들고 피곤한 일상에 틈을 내어 만나 수업과 삶을 나눌 때 오는 선물이다.     



‘발견’하는 시선, ‘해 보기’로 한 마음


학년 수업 지원은 이렇게 했다. 수업에서 제일 어려운 점, 실패한 수업과 해 보고 싶은 수업 이야기를 나누었다.[ref]교사들은 ‘수업에서 생각을 키우는 발문을 하는 방법과 학생들이 질문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요구했다. 해 보고 싶은 수업으로는 토론 수업이 가장 많아 수석교사의 수업은 질문과 탐구, 토론과 글쓰기를 중심으로 공개했다.[/ref] 또 집중이 어려운 학생 유형을 파악하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알아보았다. 3학년의 경우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적용한 ‘신나는 책놀이’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고경력 교사는 4차시 이상, 저경력 교사는 전체 수업을 참관하며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게 했다. 하나는 반 아이 관찰이다. 학생 한두 명을 꾸준히 관찰하며 학급 전체를 살펴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수석교사의 수업 중 자신의 수업에 적용할 점과 질문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 두 가지에 대해 참관 후 글쓰기를 했다.

 

아이들을 관찰했다. 특히 ○○이가 어떻게 참여하는지 무척 궁금했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혼자만의 생각 속에 지내는 때가 많아 늘 도우미 선생님과 함께 수업에 참여한다. (……) ○○이는 여전히 칠판을 보거나 손으로 연필을 만지고 있다. (……) 동시 〈봄〉(유강희)은 참 흥미로운 시다. 아이들이 ‘뾰뾰뾰’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한 글자로 이렇게 다양한 의미와 재미를 찾을 수 있다니 놀라운데 ‘○○이가 동참’을 했다. 몸으로 싹이 나는 걸 표현하는데 자기도 하겠다며 교실 앞으로 나왔다. 여러 번 “뾰뾰뾰”를 외쳤다. 즐거운 표정이다. _ 김 교사


수석 선생님 수업 보면서 되게 놀라웠어요. 그전에는 인디스쿨이나 그런 데 찾아보면 PPT도 좀 화려하고 그래서 순간적으로 아이들이 좀 혹했던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칠판 위주로 학생들이랑 책 한 권을 만들면서 수업하는 걸 보았습니다. 굳이 막 화려한 거 없이도 결국은 목표 도달을 잘 했고 또 그 과정에서 상호 소통이 많으니까, 학생들이 되게 즐거워하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어떻게 이런 수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회/역사 수업에서도 한 가지 주제로 칠판을 활용해서 역사 지도를 그리면서 수업을 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계속 집중했습니다. 질문하고 해답을 찾고 공책에 기록하는 것까지 수업에 몰입하는 경험이 신기했습니다. 계속 해 보고 싶어요. _ 배 교사


17년 차 학년 부장인 김 교사는 자신의 수업에서는 보지 못한 아이의 모습을 보며 놀라워했다. 그리고 기존에 해 오던 자신의 수업과 수석교사의 수업의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학생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구체적으로 실감한다. ‘학생이 어떻게 수업에 참여하는지’를 발견하는 일은 수업에서 교사의 교수 행위와 학생의 자발적인 수업 참여의 관계를 알게 한다. 교사의 행위주체성은 학생에 대한 발견과 탐구와 연결된다. 저경력 교사인 배 교사의 경우 온라인 콘텐츠나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으로 학생들의 집중을 유도하는 것과 달리 ‘칠판, 주제 공책, 발문과 질문’ 위주의 수업에서 학생들이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을 발견했다. “소통이 되는 수업을 많이 고민”한 만큼 자신의 수업에 적용하며 선배 교사의 경험을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힘든 점도 있었다. 


때때로 학생들이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를 어려워하는지 파악하기 좀 어려울 때가 있어요. 어떨 때는 애들이 너무 잘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턱없이 못 따라오기도 하는 걸 보면서 ‘내가 좀 준비를 과하게 했나, 아니면 너무 기대치가 컸나’ 하는 생각도 가끔 합니다. 학생들의 수준을 진단하고 알맞게 적용하고 싶습니다. _ 김 교사


수석 선생님과 선배 교사들의 수업은 40분 안에 목표 도달부터 학생들이 그날 배웠던 걸 상기시키는 것까지 그 흐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떨 때는 좀 빨리 속도를 내고 중요한 부분에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며 천천히 하는 그런 완급 조절 부분이 되게 멋있다고 느껴졌어요. 수석 선생님 수업도 그렇고 다른 선생님 수업도 그렇고. 그래서 그런 부분을 좀 많이 배우고 싶고, 제가 아직 부족하구나 싶었어요. _ 배 교사


김 교사는 수업 출발점에서 학생의 수준을 알맞게 진단하기 위한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 대화에서 진단 활동이 교육과정에서 어떻게 배치되어야 하는지 살펴보았다. 배 교사는 본인이 학생의 역량을 파악하고 알맞게 수업 난이도를 조절하거나 수업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는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을 말했다. 선배 교사들이 멋있게 보이고 나도 그런 성장을 하기 위해 많이 배우겠다는 것이다. ‘배우고 싶은’ 그 마음을 세우는 일은 누가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교사의 첫걸음인 그 마음이 다치지 않게 자라도록 학교가 지원해 주어야 한다.  



시민성을 기르는 깊이 있는 수업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깊이 있는 수업’을 강조한다. 깊이 있는 수업은 어려운 수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과의 주요 ‘개념’을 기반으로 질문과 토론을 통해 지식과 경험이 학생의 삶으로 전이되는 수업을 말한다. 6학년 교사들과 깊이 있는 수업을 설계하였다. 중점 과제인 ‘세계 시민 되기’를 교과의 작은 이야기로 풀어 갔다. 사회과 교육과정 문서를 읽고 내용을 파악한 다음 단원 설계를 핵심 아이디어 차원에서 접근하였다.[ref]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설정한 ‘핵심 아이디어’는 “교과 내 영역 수준에서 설정되는 빅아이디어”로 범위를 교과 내 영역 수준으로 정하였고, “해당 영역을 아우르면서 해당 영역의 학습을 통해 일반화할 수 있는 내용을 핵심적으로 진술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초·중학교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아이디어를 초등 교과 수준에 맞게 재구조화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혼자라면 엄두가 나지 않지만 6학년 선생님들과 세계 시민에 초점을 맞추어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수업이 더 구체화되었다.[/ref] 사회과 (4) 지속가능한 세계 영역,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는 인간의 신념 및 활동은 지구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가능하게 한다’가 핵심 아이디어이다. 그리고 ‘조화를 이루는 대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 질문에 세계 시민과 인권의 관점을 적용했다. 인간을 포함한 비인간 특히 동물과의 공존으로 확대하고 반려 문화와 동물에 대한 존중을 어떻게 키워 갈 것인지 프로젝트로 구현했다. 


수업에서 ‘인권’과 ‘동물권’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기르고자, 동물 권리와 동물 복지를 핵심 개념으로 질문과 탐구 그리고 성찰의 과정을 담았다. ‘모든 동물에게 권리가 있을까?’ ‘동물의 권리 보장을 위해 사람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변화가 있나?’ 


2개의 질문을 놓고 탐구 활동을 설계했다. 「세계 동물 권리 선언」, ‘농장 동물 복지’에 관련된 자료도 만들었다. 수업은 10개 반 280명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이번 수업에서 어떤 것을 배우고 알게 되었을까? 수업 공개를 마치고 수업 나눔을 하며 학생들이 쓴 글을 돌려보았다. 


나는 5학년 때 채식을 했다. 가족들이 성장기에 단백질이 필요하다고 해서 채식을 그만두었다. 그런데 수석 선생님과 수업을 하면서 다시 채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의 존엄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내가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채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고민된다. _ 이○○ 학생


동물권 수업의 결론이 ‘채식’은 아니지만, 삶의 다른 형태를 상상하게 하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담임인 이 교사가 학생의 문제의식을 받아 학급에서 채식 급식과 관련된 수업을 해 보겠다고 했다. 이 교사와 여러 번 만나서 수업을 구상하고 설계하였다. 3개의 질문을 만들었다. 첫째, 수업 주제와 과정을 어떻게 녹여야 할까? 둘째,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는 행동이 ‘채식’으로 나타날 때 어떤 불편함이 있을까? 셋째, 아이들이 어떤 시민으로 자라길 바라는가? 


6학년 중점 과제인 ‘세계 시민 교육’으로 주제를 설정하니 동물 복지, 공정 무역, 바다 환경 등 다양한 주제가 떠올랐어요. 특히 동물권 수업 후 우리 반 아이들은 생각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관점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고 함께 실천해 볼 수 있는 ‘채식’을 선정했어요. (……) 수업을 구상할 때 동학년 선생님들과 수석 선생님의 조언을 받았고 아낌없이 나눠 주시는 선생님들께 많이 배우고 나만의 수업을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 기후 위기는 현재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도전 과제 중 하나이며 세계 시민으로서 일상에서 실천하는 작은 변화가 기후 위기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채식’을 통해 공장식 축산과 대규모 벌목 등으로 초래한 기후 위기와 그 과정을 탐구하는 것은 삶으로 전이되는 깊이 있는 수업이라 생각하고요.

사실 수석 선생님과 수업을 고민하던 지난 주말에도 저는 고기를 열심히 먹고 곧 추워지니 겨울옷을 장만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방학 때 어디를 갈까 항공권을 열심히 찾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제 삶을 돌아보게 됐어요. ‘아이들이 어떤 시민으로 자라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불편하고 힘든 질문과 마주했기 때문이에요. ‘교사로서 나는 어떤 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질문에 해답을 찾는 과정이 바로 수업이었어요. 저는 유쾌하고 다정한 시민으로 살아가길 바라요. _ (수업 공개 이후) 이 교사와 나눈 대화 중


5년 차 이 교사는 6학년이 처음인데 동학년 교사들과 하는 공동 연구와 공동 수업의 경험이 자신을 성장시킨다고 했다. 이 교사의 수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학생의 작은 질문을 놓치지 않고 수업으로 연결한 점이다. ‘채식 급식’이라는 논쟁적인 질문을 다양한 방식의 탐구 활동으로 엮어 가고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다양성’과 ‘존중’을 아이들 스스로 발견하게 했다. ‘깊이 있는 수업’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은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교사로서 나는 어떤 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는 과정이 바로 수업이었어요. 저는 유쾌하고 다정한 시민으로 살아가길 바라요”(교사의 시민성)라는 대목이다. 수업을 통해 교사 또한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찾고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 선생님 수업을 보면서 ‘우리 반에서는 어떻게 적용할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평소에 영화를 활용한 수업에 관심이 많아요. 동물권과 관련된 영화 〈P짱은 내 친구〉를 보고 토론 주제를 찾아 수업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_ 김 교사


수석 선생님 수업과 제 수업이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습니다. 사실 사회과 세계 시민 단원은 수석 선생님 수업으로 대체하고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실과 시간에 음식 만들기 할 때, ‘좋은 음식은 어떤 것인지? 무엇이 몸에 좋은 음식인지?’를 질문하는 것이 세계 시민과 연관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한 주제를 통합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기 위해 수업에 대한 철학과 세계관이 먼저라는 것도……. 좀 어렵긴 하지만 학년 공동으로 ‘세계 시민’을 주제로 동아리 발표회로 연결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_ 원 교사


이 교사의 수업은 다른 교사들에게도 고민과 새로운 생각을 던져 주었다. “내 수업에 어떻게 적용할까?”라는 질문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수업’이 무엇인지 찾고 적용하며 교사의 전문성을 높이게 했다. 또한 수업을 집중해서 보는 경험은 ‘타인의 수업과 나의 수업, 교과와 교과 사이의 연결’된 점을 찾게 했다. 그리고 ‘깊이 있는 수업에 대한 철학과 세계관’이 혼자가 아니라 ‘학년 공동 교육과정 운영’을 통해 연결되고 성장한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교사는 학생의 작은 질문을 놓치지 않고 수업을 통해 해답을 찾으며 교사의 시민성을 키워 간다. 교사 개개인의 수업이 학년에서 우리의 수업으로 연결될 때 더 깊이 있는 수업 철학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시민성에 기반한 공동 실천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공동 연구와 실천의 행위주체성


‘수업 탐구단’은 조금 특별하게 만들어졌다. 탐구단을 모집한다는 공문을 보고 2명의 교사가 수석실을 방문했다. 15~18년 차 경력의 두 교사는 부장도 했고, 대학원 진학으로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였다. 그런데 주변에서 ‘지금처럼 열심히 하려거든 승진을 목표로 구체적으로 하라’는 주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내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수업을 통해 해답을 찾고 싶다는 의지가 컸다. 우리는 ‘매원 북(book) 돋움 탐구수업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독서 기반 탐구 질문 - 쓰기 수업 실천으로 삶의 맥락 속에서 미래 핵심 역량 기르기’를 운영 주제로 잡았다. 생태교육을 주제로 10차시 수업 중 1~2차시는 수석교사가 먼저 하고 나머지는 각 교실에서 진행했다.


수석 선생님 수업에서 아이들이 만든 질문이 놀라웠습니다. (……) 수업을 구상하며 여러 차례 모여서 의논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환경 교과서가 없는 상태에서 성취 수준을 개발하고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 혼자라면 할 수 없었을 겁니다. 3학년 아이들에게 적합한 활동을 찾는 것, 적절한 교재를 알아보는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학교가 ‘탄소 중립 교육 중점 학교’인데 교육과정이나 수업으로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자기 집 쓰레기 분류 활동’을 하며 ‘가지고 싶은 마음이 아끼려는 마음보다 크기 때문이고, 상품에 대한 선전을 보고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답을 찾으면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_ 김 교사 


저는 탐구단 활동이 어렵고 미안했습니다. 두 분께 많이 배웠고요. 특히 그림책을 읽고 다양한 학습 방법을 적용하고 아이들에게 어떤 피드백을 주어야 할지 고민한 지점도 인상 깊습니다. 학년에서 함께 하니까 그림책 ‘원화 전시회’도 기획할 수 있었고, 전교 어린이가 원화를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수업을 공개할 때도 수원시 전체 교사들이 온다니까 부담 100배였는데 3개 반이 같이 하면서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중견 교사로서 후배 교사들에게 이 경험을 나누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_ 권 교사


수업 탐구단 교사들도 교실을 열고 수업을 공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공개 여부를 따지지 않고 모두가 공동 수업안을 만들었고, ‘원화 전시회’와 당일 수업 나눔까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도움을 주었다. 공동 연구와 수업 실천은 동료와 연대하고 서로를 돌보는 마음을 키우는 기회가 되었다. 자기의 경험을 후배 교사들에게도 나눌 수 있다는 관계의 확장으로 성장했다.[ref]권 교사(15년 차)는 수업에 자신 없었던 자신이 학년에서 공동으로 교육과정을 연구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자존감을 얻었다고 했다. 자존감은 곧 자기 돌봄의 힘으로 일상 수업에서 실천을 무르익게 했고 이후 수업과 학급 운영, 학부모와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확장시킨 동력이 되었다고 했다.[/ref]



가르칠 수 있는 용기


교사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생애사적으로 각기 다른 성장을 경험한다. 특히 학교 분위기와 학년 구성원에 따라 동료성을 발휘하여 서로를 돌보고 연대하며 헌신한다. 교사 생애별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통해 교사의 전문성과 행위주체성을 구현해 가야 할 것이다.[ref]2025년 3월부터 ‘인턴 교사제’가 시행되고 있다. 주로 수석교사가 있는 학교에 발령 대기자 중 희망자를 중심으로 6개월간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학교를 경험하게 한다. 학교 업무뿐만 아니라 교육과정과 수업, 수업 참관 및 수업 보조 교사 역할을 거치며 단독 수업도 할 수 있다. 발령 이전에 학교 경험을 통해 신규 교사의 현장 안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인턴 교사제와 같은 정책이 지속성을 갖기 위해 교육청의 일방적 시행이 아니라 현장과 소통을 기반하여 운영해 가야 한다.[/ref]


최근 ‘추락한 교권에 열악한 처우… 교단 떠나는 MZ 교사들’[ref]“추락한 교권에 열악한 처우… 교단 떠나는 MZ 교사들”, 〈EBS뉴스〉,  2024년 7월 29일.[/ref]과 같은 뉴스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제가 바라는 점은 ‘가르칠 권리’입니다. 최근 아동학대랑 교권 이슈가 많이 있잖아요. 근데 저도 학교 다니면서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 예를 들면 교실 체육 중에 ‘가가볼’이라고 있는데, 학생이 다쳐서 학부모 한 분이 크게 태클을 걸었다고 들었어요. 교실 체육을 하다가 손가락이 부러진 것 같은데, 그런 것 때문에 위험한 요소가 있으면 (다들) 안 하겠다는 말씀을 하세요.” _ 이 교사


이 말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안전하게 가르칠 권리’이다. “안전하지 않는데 굳이 할 필요 있나?” 같은 피드백은 교사의 마음을 꺾이게 한다. 이것은 수업과 교육과정 운영이 외부적인 요구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가르칠 권리’를 펼칠 수 있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다. 교사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가 지속되기 위해 공동체 안에서 불안의 지점을 찾고 함께 숙고해야 한다. 교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를 개선하여, 교육공동체 전체가 안전을 위한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ref]2025년 2월 11일, 춘천지방법원의 강원도 속초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사망 사고에 대한 판결이 교육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선 학교에서는 현장체험학습이 잠정적으로 중단되고 있다.[/ref] 교사와 학생 모두 안전하게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와 법으로 합리적인 대안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학교 구성원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전문학습공동체의 구축이 요구된다. 학습공동체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고경력 교사 특히 학년 부장이나 연구부장, 수석교사 등 중간 리더의 성장을 위한 시스템이 보장되어야 한다.[ref]교육청 단위 교무, 연구부장 대상의 연수가 있고 관내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하지만 운영 자체가 정보 나눔 선에 그치고 있다. 한편 전국 단위 ‘수석교사 네트워크’에서는 상시적인 연구과 강의 그리고 사례 나눔으로 수석교사의 연구자·실천가로서의 역할을 지원하고 있다.[/ref] 또한 학교장 등 관리자의 리더십 역량을 키우고, 교사와 관리자, 교육청 차원의 국제적 협력 네트워크도 지속적으로 개척해야 할 것이다.[ref]2025년 2월 4일, 30개 이상 전국 단위 교육 관련 단체가 참여한 ‘덴마크는 어떻게 민주시민을 기르는가? - 자존감, 공감, 민주시민교육, 덴마크 교사와 학생으로부터 듣는다’ 강연은 국제적 협력 네트워크에 대한 좋은 예가 될 것이다. (youtu.be/ddoXexSvRO8)[/ref]


교사의 행위주체성의 발현은 가르침을 통해 학생의 발달을 이끈다. 교수의 주체인 교사가 ‘나는 누구인지, 어떤 교사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탐색하고 성찰할 여유가 필요한다. 교사의 가르침에 대한 마음이 살아나고 수업 이야기가 강물처럼 흐를 수 있도록, 개인적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닌 공동체 안에서 연대와 환대 그리고 돌봄의 문화를 만드는 것은 시대적인 요구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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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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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2024), 〈신규 수석교사의 수업분투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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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2024), 〈신규 수석교사의 수업분투기 2〉, 

《어린이와 함께 여는 국어교육》, 82,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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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2018), The Future of Education and Skills : Education 2030, The Future We Want, OECD.

OECD(2019), OECD Learning Compass 2030 Concept Note Series, OE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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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