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호[읽은 이야기] 오늘의 교육 2025 3·4 vol.85 | 윤예슬

202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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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이야기

오늘의 교육 2025 3·4 vol.85



사범대에 입학한 후 교직 이수를 하면서 필수로 〈학교폭력 예방 및 학생의 이해〉라는 과목을 들어야 했다. 학교폭력 문제가 대두됐던 2012년, 범정부 차원에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고자 예비 교원의 교직과목 세부 이수 기준으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과목을 신설하고 이를 의무적으로 이수토록 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충격에 빠트렸던 여러 학교폭력 사건으로 인해 가해 학생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주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연예인들은 대중의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연예계를 떠나며 마무리된 사건을 여럿 본 기억이 있다. 또한 한창 ‘사적 복수’를 주제로 한 드라마들이 만들어졌고, 학교폭력 가해자들을 철저히 응징하는 소위 말해 ‘사이다’ 서사가 끊임없이 소비되어 엄청난 흥행몰이를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려 나 또한 이유 모를 찝찝함을 가진 채 학교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용서 없는 처벌’이 옳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폭력 예방 및 학생의 이해〉 과목의 첫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는 “학교폭력은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교육이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셨다. 


교수님의 이야기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낯선 언어였지만  내 생각에 작은 균열을 만들었다. 당시 나는 피해자의 ‘회복’에는 백번 공감했으나, 가해자에게 처벌보다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에 고개를 갸웃했던 것 같다.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신규 발령을 받아 교사가 된 지 2개월이 지났다. 일반 학교에 배치된 특수 교사여서 특수교육 업무만 하고 있지만, ‘학교폭력 업무만큼은 꼭 피해야 한다’, ‘몇 학년에서 이런 학교폭력이 있었다더라’는 식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최근 ‘특수교육대상자 인권 실태 조사’에 참여했는데, ‘특수교육대상자에 대한 학교폭력 사건이 최근 발생했는지’ 묻는 항목이 있었다. 다행히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 ‘없음’이라고 체크할 수 있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만약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학교폭력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된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나는 피해 학생의 회복에 집중하며 가해 학생에게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진심으로 뉘우치게 할 수 있을지, 그런 교육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학교에서 일어나는 여러 학교폭력 사건과 더불어 교권 침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우리 사회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공동체적 문제해결과 피해자의 회복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가해자에 대한 모두가 만족스러울 만한 처벌, 가해자에 대한 불이익만을 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사람은 주변과의 크고 작은 갈등과 충돌을 통해 성장한다.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학생 간 갈등과 충돌이 발생했다면, 학생들이 비약적으로 발달은 이룰 수 있는 교육의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학교에서는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생들을 분리하고 차단한다.’ 우리는 처벌의 늪에 빠져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 않는가?


얼마 전 나는 학생끼리 생긴 사소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잘못한 것으로 보이는 학생에게 억지로 상황을 설명한 채 사과를 시켰던 적이 있다. 이 일을 계기로 여러 동료 선생님들께 ‘친구끼리 다퉜을 때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했다. 선생님들은 입을 모아 ‘행감바’를 말씀해 주셨다. 행감바는 행동, 감정, 바람의 줄임말로, 갈등이 생겼을 때 친구의 행동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 후, 나의 감정에 관해 이야기하고, 친구에게 바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갈등이 생기게 된 상황을 명확히 표현하고,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도 하고, 친구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며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과를 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학생들이 자기 삶의 여러 갈등을 회복적 정의에 따라 공동체적으로 해결할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 바람을 품고 나는 오늘도 교실에서 ‘행감바’를 실천하고 있다.


이제야 “학교폭력은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교육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법’만 남고 ‘교육’은 사라진 학교가 아니라, 공동체적 해결을 통해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 윤예슬(교육공동체 벗 조합원)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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