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호[기고] 핀란드의 대학 입시 제도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 이혁규

20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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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핀란드의 

대학 입시 제도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이혁규  lhk97@cje.ac.kr

전 청주교대 총장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CSAT)을 보는 날을 매우 특별한 날로 여긴다. 수험생들이 시험장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도록 대중교통편이 조정되고, 많은 직장이 평소보다 1시간 늦게 업무를 시작한다. 국어와 영어 듣기 평가 시간에는 고사장에 소음이 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 항공편 운항 일정이 변경되거나 취소된다. 많은 학부모가 수험장 앞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기를 기원하는 모습도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이러한 입시의 풍경은 수험생들의 장래에 이 시험의 결과가 지니는 중요성을 상징한다. 대학 간 서열이 뚜렷한 나라에서 8시간이 채 안 되는 시험 결과가 학생들의 미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 입시 제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는 한국의 교육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이다.


각 대학이 선발에서 참고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인 현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지금부터 약 30년 전인 1994년에 도입되었다. 그 이전에는 ‘학력고사’라고 불리는 시험이 있었다. 그 시험은 사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로 구성되어 있었고, 단순 암기 위주의 평가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 대안으로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과거 학력 고사에는 없던, 제시문을 바탕으로 해석해서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문항 유형이 바뀌었다. 또, 확률적 요행을 줄이기 위해서 사지선다형에서 오지선다형으로 변했다. 그러나 객관식 문항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이에 더하여 2000년대 이후 ‘수시 전형’이라 불리는 학생부 종합 전형이 도입되었다. 학생부 종합 전형은 고등학교에 재학하는 동안 다양한 활동과 내신 성적을 누가 기록한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에 근거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 입시는 학생부 종합 전형이라는 ‘수시 전형’과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에 기반한 ‘정시 전형’의 두 가지를 기본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정시’와 ‘수시’ 중에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하며 그 비중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매년 사회적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나아가 21세기 핵심 역량에 맞는 더 개선된 시험 제도를 향한 개혁 논의는 아예 막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우리와 다른 핀란드의 대학 입학 시험 제도와 시험 문제의 형식과 내용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비교거리가 될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핀란드의 대학 입시 제도를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그중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핀란드 ‘학력시험’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내용은 티나 태흐카(Tiina Tähkä) 핀란드 학력시험위원회 사무총장, 그리고 라보넨 교수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2시간 동안 나눈 대화에 기반한 것이다. 마침 대화가 이루어진 날은 핀란드 학력시험이 실시되는 날이었다. 그런 중요한 날에 기꺼이 대화 시간을 할애해 준 티나 사무총장에게 감사드린다. 우리나라 같으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에 해당 기관의 최고 책임자가 연구자와 사적으로 식사하며 대화 시간을 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점에서 나는 핀란드 사회가 보여 주는 여유와 신뢰의 문화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핀란드 대학 입시 제도 개관


먼저, 핀란드 대학 입시 제도를 전반적으로 살펴보자. 핀란드의 대학 입시 제도는 다양한 평가 요소를 결합하여 유연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중에서도 고등학교 졸업 시 치르는 학력시험(Matriculation Examination)이 중요한 기초 자격으로 활용된다. 여기에 학생들이 지망하는 전공와 연관하여 대학별 시험이나 면접, 특별 전형이 결합된다. 그림 1을 통해서 핀란드 국가 학력시험의 위상을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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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고등교육 체계는 (학문 중심, 연구 지향의) 종합대학(University)과 (직업·실무 지향으로 현장과 밀접한) 응용과학대학(UAS,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의 이원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중 종합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선발 방식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외에도 예술 계열 실기, 인터뷰, 국제 자격증(SAT, GMAT 등)이 보조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핀란드에서 대학을 들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 국가 학력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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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재수, 삼수가 흔한 것처럼 핀란드에서도 한 번에 원하는 대학이나 전공에 합격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의대, 교대, 심리학, 법학 등은 경쟁률이 높아 2~3년 이상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한국과 달리 거대한 ‘재수학원 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스스로 공부하거나 대학 준비 과정(preparatory course), 단기 민간 강좌, 온라인 자료 등을 활용한다. 또, 다른 학과나 응용과학대학에 먼저 진학한 뒤 전과·편입을 하거나, 성인으로서 사회 경험을 쌓은 뒤 다시 지원하는 경우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경로도 제도적으로 보장되기 때문에 입시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우리보다 훨씬 적다.


그림 1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원하면 1년을 더 수학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핀란드의 일반계 고등학교(lukio)는 원래 3년제이지만, 학생이 학력시험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더 높은 성적을 얻고자 할 때 자발적으로 1년을 더 다니기도 한다. 의대·법대·교대 등 경쟁이 치열한 전공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교환 학생이나 건강 문제 등으로 학업이 지연됐을 때도 추가 1년을 선택한다. 이는 낙제가 아니라 학생의 속도와 상황을 존중하는 제도로, 한국의 재수학원과 달리 학교에 남아 시험 준비를 이어 가는 방식에 가깝다. 나는 제도 운영과 관련하여 이런 차이가 부럽게 느껴졌다. 한국 같으면 “재수”라는 이름으로 학교 밖으로 내몰릴 이들이, 핀란드에서는 여전히 학교 안에서 대입 준비를 이어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제도 운영의 차이가 아니라, 학생을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과 다른 핀란드의 출제 문화


양국의 대학 입시 제도가 다른 만큼 시험 문제 출제 문화도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20여 년 전에 3년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위원을 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문화에 대한 문화기술지 연구〉 논문을 게재한 적도 있다. 한 달 가까이 합숙 출장 형태로 외부와 단절된 채 시험 문제만을 출제하는 것은 낯선 경험이었다. 이러한 한국의 모습이 핀란드의 평가 책임자에게도 낯설게 여겨지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이러한 한국의 출제 문화에 대한 티나의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티나 

한국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자들이 출제를 위해서 한 달 동안 격리된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나요? 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어서 시험 정보를 유출할까 두려운가요? 아니면 그들이 스파이여서 무언가 정보를 빼내는 걸 두려워하나요?


티나의 질문을 듣는 순간 나의 경험이 떠올랐다. 공항 검문소를 통과하는 듯했던 입소, 창문마다 설치된 봉인 장치, 옥상이나 주변이 둘러쳐진 야외에서 식사 후 잠시 허용되던 짧은 외출 시간 등의 기억도 떠올랐다. 이 독특한 출제 풍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열었다.


이혁규 

제 영어 실력 부족으로 우리나라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기 어렵네요. 약 20년 전, 제가 출제자로 참여했을 때는 31일 동안 격리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요즘은 그때보다 조금 더 길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출제자들을 격리해서 출제하는 관행이 생긴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경쟁 때문입니다. 대학은 위에서 아래로 서열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들과 학생들은 시험 문제 하나에도 매우 민감합니다. 만약 시험 문제가 사전에 유출되면 큰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티나 

그만큼 중요한 시험이군요.


이혁규 

네, 실수가 있으면 큰일 납니다. 또, 다른 이유로 그런 상황 때문에 출제자들이 모여서 사전에 시험을 준비할 공간이나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비밀 장소로 가서 거기서 출제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함께 출제하지 않으면 고품질의 시험 문제를 만들 수 없습니다.


티나 

이해되었습니다. 여기 핀란드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입니다. 우리는 시험 출제자들이 비밀을 지킨다고 믿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티나는 핀란드에서는 대학 교수나 전문가들을 직장과 가정으로부터 분리해서 오랫동안 격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나도 한국도 매우 민주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대학 시험 출제와 같은 영역을 제외하고 사람들을 별도로 오랫동안 격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출제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한때 문제 은행식 출제 방식을 시범 실시해 보려고 했으나 문제의 질과 보안 문제 등으로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티나는 여러 나라가 문제 은행을 활용하지만 핀란드는 문제 은행을 활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번 사용된 문제는, 비록 비밀을 유지한다고 해도, 너무 많은 사람이 그 문제를 알게 되므로 반복해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한 시험일수록 문제 은행은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견해였다.


나는 핀란드의 시험 제도가 ‘신뢰와 책임’의 철학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많은 연구자들이 외국 학자나 정책 결정자를 만나서 한국의 격리식 출제 문화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겠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디지털 형식의 컴퓨터 기반 시험 제도 도입


2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가 모두 흥미로웠지만, 그중에서도 내 관심을 끈 것은 핀란드가 매우 일찍이 고등학교 졸업 학력시험을 디지털 형식의 컴퓨터 기반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현재 핀란드 학력시험은 전면적으로 디지털 방식으로 운영된다. 수험생은 자신의 노트북이나 학교에서 대여한 노트북을 사용하여 시험을 본다. 시험은 시험위원회가 제공한 USB 메모리를 통해 맞춤형 리눅스 운영 체제로 부팅된다. 모든 시험은 인터넷이 차단된 상태에서 로컬 서버를 통해 진행되며, 답안은 자동으로 저장·백업된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런 시험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핀란드 학력시험위원회는 ‘아비티(Abitti)’ 시스템을 통해 학교와 학생이 사전에 디지털 시험을 연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 시험 운영의 전체 과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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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거의 논의 안건이 되지 않는 디지털 형식의 시험이 핀란드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방식을 도입하기로 한 결정은 2013년에 내려졌다고 한다. 그 후 3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서 2016년에 최초의 시험이 실시되었고, 2019년에 완전히 디지털화된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그 과정은 점진적이었다. 처음에는 지리와 독일어 교과에 도입되었고, 다른 교과로 확대되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늦게 전환된 과목이 수학인데, 수학 교사와 학생들이 수학을 손으로 계산하지 않는 것을 매우 낯설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험을 치른다고 해도 종이와 연필을 써서 계산할 수 있으며, 그 결과를 디지털 형식으로 표시하면 된다고 하였다.


나는 다른 나라보다 일찍 디지털 형식의 시험 제도를 도입한 이유가 궁금했다. 아마도 디지털 문해력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추측되었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질문을 했다.


이혁규 

시험을 디지털 형식으로 전환한 주된 이유는 학생들의 디지털 문해력을 향상하기 위해서인가요?


티나 

네, 우리가 디지털 시험을 도입한 이유는 디지털 기술이 학생들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미래에 필수적이에요. 종이와 펜으로 시험을 보던 상황에서는 학교 시스템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현대 사회에 맞게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죠. 시험이 종이와 펜으로 진행되다 보니 학교 시스템이 학생들이 필요한 것을 적극적으로 제공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학교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시험도 변화해야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시험이 교육 목표에 더 타당성 있게 다가가길 원했습니다. 실제 세계에서 마주치는 동영상 같은 것들이 시험에 포함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학생들이 분석해야 하는 자료를 포함했습니다.


이혁규 

그래서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났나요?


티나 

학교는 변했습니다. 변화는 매우 컸죠. 이제 컴퓨터는 고등학교에서 필수 도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어린 학생들과 나이가 많은 학생들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컴퓨터로 이루어집니다. 일부 사람들은 변화가 지나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컴퓨터로 할 필요는 없다는 점도 이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변화는 놀라웠습니다.


나는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오늘날 학생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접한다. 그리고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도 다양한 도구를 사용한다. 장차 학생들이 생활하게 될 어떤 직장도 순전히 종이와 펜만으로 업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텍스트, 이미지, 음성, 동영상 등 다양한 소재를 시험에서 다루는 핀란드식이 훨씬 미래 지향적으로 비쳤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는 데에는 찬반 논쟁이 있기 마련 아닐까? 당연히 이러한 디지털 형식의 시험을 도입하는 것과 관련하여 찬반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새 위원회가 구성됐을 때 의장으로 지명된 사람이 이 아이디어에 반대하여 당시 장관이 그 사람 대신에 다른 사람을 임명하는 진통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주요 이해관계자들 간에 폭넓은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설명을 들으며 핀란드의 빠른 전환이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시대 변화에 발맞추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티나는 이러한 디지털 형식의 도입으로 인해서 학생들이 현실에서 접하는 다양한 자료들을 시험 문제에서도 대상으로 다룰 수 있게 된 것이 매우 큰 성과라고 하였다. 예를 들어, 컴퓨터로 에세이를 작성하는 경우, 처음에 자기 생각을 적고 이후에 문장을 수정하거나 추가하는 것이 자유롭기 때문에 손으로만 쓰는 것보다 효과적이고 현대적인 방식이라고 했다. 


티나는 또한 디지털 형식 시험의 중요한 성과로 보안 강화를 꼽았다. 종이 시험지를 학교로 우송할 경우 중간에서 유출될 위험이 존재하지만, 디지털 시험은 강력한 암호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보안이 철저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설명을 들으며 한국의 수능 문제 관리 현실을 떠올렸다. 시험지를 인쇄·운송·보관하는 전 과정에서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고, 그만큼 보안 사고의 위험도 존재한다. 반면 핀란드는 디지털 시험으로 전환하면서 문제 관리의 철저함을 기술과 제도의 신뢰 위에 세우고 있었다.



문제 상황에 대한 대처 방식


그러나 디지털 형식의 시험 출제 방식은 또 다른 관리의 문제를 분명히 발생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만 대의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해야 할 것이고, 학교 내부 통신망에 오류 없이 접속할 수 있어야 하며, 개별 학생들에게 고유 번호 부여, 답안 저장 등에서도 기술적인 오류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혹시 문제가 생길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궁금하였다. 마침 오늘이 시험 날이라서 더 호기심이 생겼다. 마침 이런 운영 문제와 관련하여 티나에게 전화가 걸려 왔고, 티나는 우리와의 대화를 끊고 잠시 전체 시험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였다. 전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험 출제 당일에도 최고 책임자가 이렇게 외국의 학자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여유로움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가 끝난 후 티나는 시험장 관리와 관련된 대화 내용의 개요를 설명해 주었다.


티나 

제가 전화 메시지를 좀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 영어 시험이 있었거든요. (잠시 후) 모든 게 잘 진행되고 있어요. 지금 부총무가 시험을 관리하고 있는데, 혹시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어요.


라보넨 

비키(Vikki) 학교에서는 오늘 아침에 약간의 작은 문제들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티나 

네, 항상 문제가 발생하지요. 약 400개의 학교, 수많은 교실, 그리고 수많은 컴퓨터가 있으므로 언제나 무언가가 발생합니다. (잠시 침묵) 오늘은 한 학교에서 시험 시작이 약 25분 정도 지연됐어요.


한 교실에서 시험이 25분이나 지연되었다면 큰 문제가 아닌가? 만약 이런 사태가 발생하였다면 한국에서는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우선 여러 신문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실릴 것이다. 그리고 책임 추궁을 하는 거친 목소리들이 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런 이미지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티나에게 물었다.


이혁규 

그런 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 처리하나요?


티나 

우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전화할 수 있는 두 가지 서비스가 있어요. 하나는 기술적 문제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머지 거의 모든 것을 다룹니다. 기술적 문제에 대해서는 준비된 팀이 있어서 필요한 조언을 해 줄 수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학교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은 네트워크 연결에 문제가 있었고, 학교 자체에서 네트워크를 재정비해야 했죠.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 주면서 문제를 해결했어요. 다른 전화선은 긴급 상황에 대응하는 것인데 상황은 다양해요. 예를 들어, 보통은 수험생이 학교에 와서 ‘저 이 시험 보려고 왔어요’라고 하는데 학교에서는 ‘당신이 등록된 기록이 없네요’라고 하는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혁규 

네, 네.


티나 

그러면 우리는 학교와 함께 상황을 확인합니다. 그 경우 해결책은 대개는 일단 학생들이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한 다음, 학생이 실수를 했는지 또는 다른 문제가 있었는지 서류 작업을 통해 해결하게 됩니다. 만약 학교 측에서 실수했다면 그것은 학생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학생들을 고사장으로 안내하여 시험을 보게 하고 상황을 확인하게 됩니다. 일종의 보류 상태이지요.


이혁규 

그렇군요.


티나 

그 외에도 상황은 다양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누군가가 시험장에 휴대전화를 가지고 들어왔다면 처벌이 필요할 수도 있죠. 또는 화재 경보가 울릴 수도 있어요. 당연히 먼저 대피시키고, 이후에 그들이 우리에게 전화하여 가짜 경보였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할 것입니다. 만약 가짜 경보라면, 모두를 진정시키고 다시 시작하라고 요청하죠. 그래서 문제 해결은…… (잠시 침묵) 항상 무언가가 잘못되곤 해요.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는 상황은 불가능해요.


라보넨 

아무리 많이 확인해도 여전히 뭔가 잘못될 수 있죠.


티나 

단순히 확률 문제죠. 그렇게 많은 항목을 처리하면서 실수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나에게) 물리학이나 다른 분야에서 배경지식이 있나요?


이혁규 

제 전공 배경은 사회과학입니다.


티나 

그럼 물리학 예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많은 항목이 있을 때, 비현실적인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져요. 그것이 대수의 법칙과 낮은 확률의 개념입니다.


나는 소위 문과 전공이라 티나의 마지막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찾아보았다. ‘대수의 법칙’은 표본의 수가 커질수록 평균값이 기대값에 가까워진다는 원리이다. 여기서는 다소 느슨한 은유적 표현으로, “처리해야 할 사건(항목)이 많아질수록 예외적이거나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반드시 발생한다”는 의미로 사용한 듯하다. 이어서 ‘낮은 확률’이란 개별 사건 하나하나의 문제 발생 확률은 아주 낮지만, 수천, 수만 건의 사건이 누적되면 낮은 확률의 사건도 실제로는 “거의 반드시” 일어난다는 의미였다. 즉, 시험장 전체에서 “아무 문제도 없는 상태”가 오히려 비현실적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과학적 설명이었다.


핀란드의 시험 운영 철학은 ‘문제 없는 시험’을 기대하기보다, 언제든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대처 방안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데 있었다. 이는 한국의 수능 운영 문화와 비교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오류가 하나라도 발생하면 때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직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나 통계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기대는 오히려 비현실적일 수 있다. 사회적 신뢰 부족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말할 수 없이 큰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한국도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기반 시험으로 전환한다면, 그에 맞는 신뢰 시스템의 재구축이 필수적일 것이다.



시험 문항과 각 유형별 출제 비율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시험으로 출제될까? 한국의 맥락에서는 객관식 오지선다형 문제는 극복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된다. 반면에 논술형 문제의 도입은 사교육을 팽창시키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각자의 경험과 관점에 따라서 워낙 다양한 의견이 분출하기 때문에 하나의 방향을 정하고 일관된 개혁을 하기가 어렵다. 고등학교 3년 동안의 내신과 학교생활 기록을 바탕으로 하는 수시 입학의 경우에도 초기 의도와는 달리 공정성을 이유로 학교생활에 대한 다양한 기록 반영은 크게 축소되어 이제는 내신 성적만 남은 꼴이다. 핀란드의 입시는 우리에 비해서 간단한 편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한국에서 자주 논의되지만, 공정성 논란으로 인해서 실행되지 못하는 논술형 대입 도입 문제를 염두에 두면서 핀란드의 사정을 물었다.


이혁규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선다형 문제, 단답형 문제, 에세이 문제 간의 비율입니다. 각 영역은 균형 있게 출제되나요?


티나 

과목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국어와 문학 과목에는 객관식 문제가 없고, 오직 에세이 쓰기만 있죠. 반면에, 언어 과목 같은 경우는 독해나 청취와 같은 객관식 문제들이 많이 있어요. 물론 에세이 문제도 있습니다. 그 비율은 50:50 정도일 거예요. 답이 한 단어로 끝나는 짧은 문제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선다형 문제는 아니지만, 답이 정해져 있는 형태의 문제이지요. 그리고 물리학 같은 과목에서는 객관식 문제가 한 문제뿐이고, 나머지 7개의 문제는 주로 계산이나 설명을 요구하는 문제입니다. 또는 에세이 형식의 문제가 나올 수도 있어요. 주로 계산과 설명을 요구하는 문제들입니다.


라보넨 

수학에서는 최근에 처음으로 객관식 문제가 나왔습니다. 이전에는 그런 유형의 문제가 없었죠.


티나 

문제는 학생들이 교육과정 목표를 달성했는지를 평가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또 이는 자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출제자들이 평가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문제 유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주어진 자원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라보넨 

시험 시간이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한 과목 시험에 약 6시간인데, 요즘에는 컴퓨터 기반 시스템 덕분에 각 문제를 푸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쉽게 모니터링할 수 있지요. 그래서 문제 제작자들에게 좋은 피드백이 됩니다. 그 6시간을 어떻게 현명하게 사용할지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되죠.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핀란드는 한 과목을 평가하는 데 무려 6시간을 배정하고 있다. 당연히 여러 날 시험을 보게 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유형의 문제를 내는지에 대한 철학도 분명했다. 단답형, 선다형, 에세이 문제를 출제하는 기준은 그것이 교육과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적합한가이다. 객관식 출제와 논술형 출제가 교육과정의 목적에 따라서 자유롭게 선택되기보다는 선발의 공정성이나 사교육 유발 효과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의해서 좌우되는 우리나라의 담론 지형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대화가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제공해 준다.


독자들은 핀란드의 실제 시험 문제가 어떤 내용으로 되어 있는지 무척 궁금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시험이 끝나고 나면 문제를 공개하듯이 핀란드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모두가 시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웹사이트에서는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모의시험도 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과목과 연도를 입력하면 필요한 연도의 국어, 수학, 사회 시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수능 문제는 공개되지만, 핀란드처럼 누구나 쉽게 접근해 모의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한 체계적 지원은 학생들의 학습 자율성을 한층 더 강화하는 방식이었다.



신뢰도와 타당도의 균형 문제


시험의 신뢰도와 타당도 등과 관련된 내용도 대화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다소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지만, 공정성이 매우 중요한 우리나라는 시험 문제의 타당도보다 신뢰도가 더 중시되는 경향이 있다. 핀란드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이수했는지 평가하려는 목적 중심으로 문제를 낸다고 한다. 문항 출제의 신뢰도와 타당도의 관계와 양자 사이의 균형에 관한 문제는 티나가 먼저 질문해서 대화가 이루어졌다.


티나 

항상 서로 다른 시스템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 입학 시험에서는 다지선다형 문제와 다른 유형의 서술형 질문의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다지선다형 문제와 논술형 문제 중 어느 쪽이 더 많나요?


이혁규 

정확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대부분의 시험은 다지선다형 문제입니다. 이유 중 하나는 컴퓨터로 채점하기 때문입니다.


티나 

그렇군요. 그것은 자원 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다지선다형 문제와 논술형 문제는 신뢰도와 타당성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지선다형 문제는 매우 신뢰도가 높은 방식입니다. 1점 또는 0점을 정확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타당성에 대한 문제가 남습니다.

이 문제가 교육과정을 고려했을 때 정말 좋은 문제인가?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측정하고 있는가? 학생들이 다지선다형 문제를 풀 수 있는 기술을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가? 혹은 학생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분석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다지선다형 문제는 암기나 응용에 관한 문제일 수 있지만, 높은 사고 기술을 요구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요소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다지선다형 문제만 있다면 신뢰도는 매우 높겠지만, 타당도는 낮을 것입니다. 

반면에 만약 논술형 문제만 있다면, 평가자들 간에 의견이 다를 위험이 있지만, 타당성은 높습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대학이나 비즈니스 생활을 위해 실제로 배워야 하는 기술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평가자들이 평가하고 채점하는 데 많은 자원이 필요하지만, 논술형 문제 자체는 비교적 간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 다지선다형 문제는 좋은 문제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는 어려운 균형 과제입니다.


티나는 평가에 대한 식견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긍정할 수 있는 문제 제기를 했다. 한국의 평가 전문가 중에 신뢰도와 타당도 사이의 긴장 관계를 모르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 입시에서는 신뢰도를 앞세워 타당도를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게도 자주 발생한다. 객관식 시험의 공정성에 대한 한국인의 믿음은 일종의 신앙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이미 1980년대 초에 문명 비평가인 이어령 교수는 《신한국인》이라는 책에서 한국인은 객관식 시험을 통해서 비로소 근대를 경험했다고까지 설파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아직도 그 근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즉, 한국은 신뢰도를 중시하면서도 결국 교육적 타당도를 희생하는 악순환 속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답을 이어 갔다.


이혁규 

우리도 그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당성을 희생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신뢰도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는 높은 경쟁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티나 

네, 그게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것은 학교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입 시험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혁규 

맞아요. 우리는 그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지만, 전환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교육 분야에서 큰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티나 

여기에서도 어느 정도 논쟁이 있지만, 우리는 학교 시스템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학생들이 미래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뢰도를 높인다면, 졸업 시험이 학교가 학생들을 다음 단계로 잘 이끌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로 여겨질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항상 균형의 문제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몇 년 전에 나의 막내아들이 학교에서 내준 모의고사 언어 영역 문제를 풀던 장면이 기억났다. 나는 사회과교육 분야의 학자로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적지 않은 독서를 해 온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편이다. 그런데 막내아들이 풀고 있는 문제를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학자 데리다를 소재로 하는 지문이었는데 지문 내용이 어려웠을 뿐 아니라 문제 자체를 풀기도 어려웠다. 이런 고난도의 문제를 고등학교 3학년이 풀어야 한다니?! 이는 서열화된 대학 구조에 맞게 학생들의 순위를 내야 하는 입시 구조와 맞물려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하면 이해하기도 어려운 소위 ‘킬러 문항’을 출제해야 했다. 물론, ‘킬러 문항’은 출제의 비교육성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어서 몇 년 전에 없어졌다. 그러나 그 자리를 소위 ‘준 킬러 문항’들이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 상위급 학생들의 서열을 내야 하는 현실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험 문항의 난이도를 유지하는 문제


신뢰도와 타당도 문제와 함께 매년 시험 문항의 난이도를 유사하게 유지하는 것도 한국에서는 큰 이슈 중 하나이다. 비밀리에 출제 위원이 섭외되고 격리된 공간에서 문항을 출제하기 때문에 문항의 신뢰도, 타당도, 난이도 등을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전에 점검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문제 은행식의 정선된 출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피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매년 유사한 난이도로 시험을 출제하겠다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 본부에서 약속하지만, 시험 문제의 난이도는 지나치게 쉬운 ‘물수능’와 지나치게 어려운 ‘불수능’ 사이를 오가곤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핀란드에서는 시험 문항의 난이도 확보에 어려움이 없는지를 물어보았다.


이혁규 

시험의 타당성을 어떻게 확보하는지도 궁금합니다. 난이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요.


티나 

그것도 매우 중요한 질문이지요. 난이도를 완전히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주로 시험을 너무 어렵게 출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문제를 만드는 전문가들이 학생들이 알고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하나는 문제들이 너무 쉬우면 상위 점수에서 점수 차이가 너무 작아지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상위 점수에 몰리게 되면 학생들은 작은 실수 하나로 큰 차이가 나게 됩니다. 모두가 그런 상황을 피하려 하기 때문에 시험은 보통 너무 어렵게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난이도에 따라 점수 비율을 조정하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시험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후에 대략 상위 5%가 최고 점수를 받는 식으로 설정하죠.


이혁규 

네, 그렇군요.


티나 

우리 시스템에서 성적을 줄 때, 우리는 정확한 백분율이 아닌 6개의 성적 등급만을 부여합니다. 이 때문에 특정 점수에서 등급 간의 경계를 정해야 하는데, 만약 점수로 아주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 정확한 비율 결과를 내려고 한다면, 시스템에 너무 많은 잡음이 생길 겁니다. 그래서 대학들이 우리 성적을 사용할 때는 여러 과목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스템이 수학과 같은 특정 과목들 간에 미세한 차이를 드러내기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조금 거친 등급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해마다 난이도가 달라지는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했다. 라보넨 교수는 특정 등급에 도달하는 점수가 약간 달라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대체로 그럴 수 있다고 수긍한다고 했다. 시험 문항이 달라졌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적인 차이이며 어떤 편향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란다. 즉, 핀란드에서는 시험 난이도 자체가 큰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지 않지만, 경쟁이 치열한 전공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학 간 연합 출제 방식을 활용한다. 나는 대화를 나누면서 핀란드에서는 심리학, 의학, 교육학 등이 인기 있는 학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전공에서는 각 대학에서 연합하여 별도의 영역별 시험 문제를 출제해 고등학교 졸업 시험에 더하여 학생 선발의 자료로 활용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핀란드에서 매우 인기 있는 직업인 교사가 되려면, 헬싱키 대학의 경우 때로 10:1에 달하는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해당 전공의 교수들이 별도로 모여서 교육학 관련 글이나 논문을 모아 입시 몇 달 전에 미리 공개하면, 학생들은 그 자료를 바탕으로 논술과 면접을 준비하는 식이다.


나는 이런 대학 간의 연합 출제 방식이 대학 단독 출제 방식보다 더 신뢰롭고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특정 전공별로 교수들이 연합하여 공통 자료를 제시하고 논술·면접을 준비하게 한다면, 사교육을 줄이면서도 교육적 타당성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이런 제도를 통해서 모든 학생들에게 최대한의 길을 열어 주려고 한다는 티나의 다음 언급도 주목할 만하다.


티나 

대학 입학과 관련해서는 학생들이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두 가지 주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졸업 시험(대학 입학 자격시험) 결과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점수는 5~6개 과목의 성적을 포함합니다. 또 다른 방법은 입학 시험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막다른 길이 없는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졸업 시험(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참여하지 못한 학생들에게도 입학 시험을 통해 기회를 제공합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vs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


티나와 나, 그리고 가끔씩 끼어들어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 라보넨과의 대화는 사전 각본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알고 싶은 내용을 질문지로 티나에게 미리 보낸 터였다. 대화의 마무리 부분에 티나는 질문지를 꺼내서 살펴보면서 대화에서 빠진 부분이 없는지를 체크하였다. 그리고 시험 문항 채점의 공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티나 

(질문 목록을 다시 살펴보고 나서) 시험 채점의 공정성에 대한 질문이 있군요. 저희는 모두에게 제공하는 일반적인 평가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개됩니다. 그러나 답안은 비공개입니다. 답안을 작성한 사람은 자신의 답안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그 정보를 공개하고 싶다면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개별 답변이나 평가 의견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결과가 나오면, 학생들은 온라인에서 자신의 답안을 확인하고 받은 점수를 볼 수 있습니다. 매년 일부 신문에서는 모국어 에세이 중 최고의 답안을 선정하여 보도합니다. 자신의 에세이가 보도되는 것은 젊은 학생들에게 매우 큰 영예로 여겨집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력고사나 수능에서 1등을 해서 인터뷰를 하는 학생의 기사가 실리는 한국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우리는 객관식 시험을 보기 때문에 ‘최고의 에세이’를 국민들이 감상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대학별로 논술을 보는 경우에도 학생들의 모범 답안이 언론에 공개되는 적은 없다. 공정성의 논란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대학들이 조심스러운 행보 때문이리라.


대화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핀란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시험을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이라고 부르지 않는 점도 눈에 들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보는 핀란드의 국가 시험은 대학 입시에 중요하게 활용된다. 그렇지만 핀란드에서 이 시험은 고등학교의 학력 내용을 충실히 이수하고 졸업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평가하는 데 더 비중을 둔다. 이와 관련하여 티나와 라보넨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티나 

거의 200년 전에 우리의 학교 시스템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졸업 시험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은 비록 그것이 대학 입학시험으로 만들어졌지만,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타당성을 높이는 이유입니다. 고등학교와 대학 간의 연결이 더 활발할 때 타당성이 증가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을 우선시합니다. 단순히 대학들이 입학생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것이 핀란드의 매우 중요한 정책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보넨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최종 시험이 교육과정에 따라 출제되는 것이지요. 그게 중요한 점입니다. 물론, 그 결과는 다른 목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균형을 이루는 방법입니다.


대화를 마치면서 시험의 이름을 결정하는 문제 하나에도 한 나라의 교육철학과 문화가 반영되어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핀란드의 철학과 문화가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3학년 2학기만 되면 정상적인 교육과정의 운영이 거의 불가능해지는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언제나 정상화될 수 있을까? 그리고 선발의 공정성을 우선해 학생들의 능력을 21세기의 평생 학습 상황에 맞게 타당하게 평가하는 문제는 항상 뒤로 밀려나도 좋은 것일까? 시험 출제와 관리 과정에서 사회적 신뢰는 어떻게 확보하며 인간의 삶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실수들을 지혜롭게 처리하는 합리적인 문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많은 질문이 꼬리를 무는 대화 과정이었다. 


결국 이 인터뷰는 시험 제도가 단순한 선발 장치가 아니라, 한 사회의 교육철학과 신뢰 문화를 드러내는 창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 준 티나 태흐카 사무총장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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