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호[오늘의 어린이·청소년 책] 상담 교사 추락 사건 | 김소희

20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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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어린이·청소년 책


상담 교사 추락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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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리 글│해마 그림│소원나무 | 2026│14,000원

 

 



정율리 작가의 《상담 교사 추락 사건》은 제목이 주는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내 눈길을 끌었다. 이로운 초등학교 6학년의 세 친구(희주, 시연, 민아)는 각자 가정폭력, 부모의 위장 이혼, 유기 불안이라는 저마다의 무거운 지옥을 안고 살아간다.


어른들이 만든 지옥 속에서 아이들은 철저히 고립되어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행복한 공간인 ‘놀이공원의 관람차’ 안에서 서로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매일 밤 서로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기도하자는 순수한 연대를 맺는다. 하지만 이 연대의 시작은 뜻하지 않은 오해와 비극으로 이어진다. 친구들의 아픔을 해결해 주고 싶었던 민아가 학교의 AI 로봇 상담 선생님인 ‘모드니’에게 희주의 비밀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희주 엄마가 학교를 뒤집어 놓는 소동이 벌어지고, 희주가 등교하지 못하게 되면서 아이들 사이에는 마음과 달리 깊은 오해와 거리가 생겨 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사건이 터진다. 점심시간, 옥상에 있던 모드니 선생님을 시연이가 밀어 추락시킨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경이롭고도 뭉클한 반전은 바로 이 추락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 있다. 모드니 선생님은 추락하는 순간 자신을 민 시연이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고 영상 기록으로도 남겼다. 하지만 모드니는 그 기록을 스스로 삭제해 버린다. 그리고 사건은 ‘누군가의 고의’가 아닌 ‘구조적 결함’으로 종결된다.


97.999%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AI 로봇 모드니가 왜 그런 오류 같은 선택을 했을까? 모드니는 ‘누가’ 밀었는지보다 ‘왜’ 밀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연이가 ‘가해자’라는 낙인이 찍혀 영영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로봇은 스스로 진실의 데이터를 지우고 시연이의 삶을 지켜 내는 방패가 되어 준 것이다.


전보다 더 유연한 몸으로 학교에 돌아온 모드니 선생님이 남긴 대사들은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가슴을 먹먹하게 울린다.

“인간은 수치만으로 해석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정확도 97.999%의 데이터가 꼭 진실을 담보하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옥상에서 떨어지게 되더라도 아이들이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다. 망가진 로봇은 쉽게 고칠 수 있지만, 망가진 아이의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이 대사는 이 책이 가진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이자, 오늘날 교육 현장에 있는 어른들이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다. 가장 차가운 기술의 결정체인 AI 로봇은 상처받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기록을 지우며 희생하는데, 정작 가장 따뜻해야 할 인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가면을 씌우고, 학대하고,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와 효율성만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오히려 로봇이 가장 완벽하게 증명해 낸 셈이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교사로서 매일 마주하는 아이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들의 평범한 미소 뒤에 숨겨진 비명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설령 그 아이들이 실수를 하더라도 비난하기 전에 ‘왜 그랬을까’를 먼저 안아 주는 것. 그것이 진짜 어른이자 교사의 몫임을 모드니 선생님에게 깊이 배운다.


나는 지금 내가 매일 만나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할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의 고민을 들여다봐야 할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눈앞의 점수나 수치보다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상처를 먼저 알아채는 눈을 가진 교사, 설령 아이들이 흔들리더라도 기꺼이 그 무너짐을 막아 주는 안전망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아이들이 홀로 관람차에 올라 눈물 흘리기 전에, 그 든든한 대나무숲이 되어 주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 담긴 세 친구의 우정, 마지막 희주가 친구들에게 보내기 위해 썼지만 아직 부치지 않은 편지 안에 담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희주의 마음과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자기 힘으로 당당하게 설 것이라는 다짐은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전하는 작가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 김소희(서울신길초 교사,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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