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가 아니라 ‘세이비어’ 문항이 필요하다
‘킬러 문항’이 남긴 혼란과 수능 개혁을 위한 관점
구본창 sam8586@naver.com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
국가 소멸 위기에 태어나서 ‘킬러 문항’을 푸는 아이러니
인구학적으로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합계 출산율이 2.1명 정도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한다.[ref] 이삼식(2023), 〈초저출산현상 극복과 인구구조 변화 대응〉, 《아시아 브리프》, 3(26).[/ref] 대한민국은 1983년 합계 출산율이 2.06명으로 인구 안정선이 붕괴되었고, 2018년에 1명 이하인 0.98명으로 떨어졌으며, 2023년은 0.7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2047년 전국 229개 시·군·구 전부가 소멸 위험 단계에 진입하게 될, 인구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ref] 감사원(2021), 〈인구구조변화 대응실태〉.[/ref]
이러한 초저출산의 원인으로 과도한 서울 집중 현상과 이에 따른 극심한 경쟁을 꼽는 학자들의 견해, 즉 “경쟁이 심하면 생존이 재생산보다 우선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전문가들의 견해[ref] “합계 출산율 1명 이하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노컷뉴스〉, 2023년 12월 13일.[/ref]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경쟁적 환경은 초저출산뿐만 아니라 어렵게 태어난 아이들에게까지 자해와 자살이라는 그림자를 남긴다. 유기홍 국회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실시한 〈경쟁교육 고통 지표 조사(2022)〉 결과에 의하면 대한민국 초·중·고 학생 4명 중 1명이 학업 성적 스트레스로 자해와 자살을 떠올린다고 한다. 질병관리청의 〈청소년 건강행태조사(2022)〉 결과도 이와 유사하다. 중·고등학생 10명 중 4명은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응답했고 ‘최근 12개월 동안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14.3%나 된다.

즉, 대한민국은 소멸 위기에 놓여 있는 국가인데 태어난 아이들마저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인해 자살과 자해를 떠올리는 환경에 놓여 있어 앞으로도 아이를 낳으려는 재생산의 회로가 멈춘 나라라는 결론이 나온다. 더욱 경악할 만한 사실은 이런 나라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수험생을 ‘kill’하는 소위 ‘킬러 문항’이 출제된 지 수년이라는 것이다. ‘킬러 문항’을 모르고 성인이 된 세대들도 과도한 경쟁 환경에서 생존하느라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현실인데, 청소년 시기부터 생존을 위해 킬러 문항을 넘기 위한 학습 노동을 한 이들의 미래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국가 소멸 위기 앞에도 킬러 문항에 자신을 갈아 넣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나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다.
‘킬러 문항’이라는 카오스
킬러 문항을 둘러싼 교육 환경을 보면 혼란 그 자체이다.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 대학 입시가 이해관계와 욕망으로 얽혀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구조 때문이겠지만 킬러 문항 자체가 주는 혼란도 엄청나다. 킬러 문항의 탄생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된다. 수학 교육과정 개정과 수능 출제 경력을 갖고 있는 현장 교사의 증언에 의하면 킬러 문항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 수능 수학의 평균 점수가 40점 미만으로 지나치게 낮게 나오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안된 산물이라고 한다. 보통의 평가에서 40점 미만이면 낙제에 해당하는데 절반가량의 학생이 40점 이하의 낙제점을 받는 시험을 과연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볼 수 있느냐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수 문항은 난이도를 낮춰 평균 점수를 높이고 소수의 고난도 혹은 초고난도의 문항을 출제해 상위권 학생들을 변별하겠다는 출제 전략의 산물이 바로 킬러 문항이라고 한다. 교육 평가의 목적은 교육과정이 정한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그 취지인데 변별의 목적이 지나치게 개입되면서, 수능이 다수의 학생이 틀리도록 문제를 배배 꼬아야 하는 혼돈의 시험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 입시에 발빠르게 대처하는 사교육계는 ‘킬러 문항 대비 상품’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킬러 문항을 포함해 수능 모의고사 대비 교재를 만들어 대비시키고 관련 강의를 제공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극소수의 학원이 나타났다. 이 학원에 등록하려면 매월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를 지출할 수 있는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제력이 있다 하더라도 학원이 요구하는 모의고사나 수능 성적이 없으면 등록도 불가능하다. 결국 킬러 문항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려면 사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배경이 필수다. 그래서 수능에서 고득점을 맞고 정시로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들 10명 중 6~7명이 수도권, 10명 중 2~3명이 강남구 출신이 된 현실을 온 국민이 목도하고 있다.[ref]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보도 자료, “서울대·전국 의대는 강남 출신 전성시대!”, 2023년 5월 9일.[/ref] 즉 경제력, 출신 지역과 같은 부모의 배경에 의한 명백한 불공정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데도 매년 수능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킬러 문항을 대비해 주는 특정 사교육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지난한 전쟁이 치러지고, 킬러 문항이 출제되지 않으면 의대를 비롯해 최상위권 대학 변별이 안 될 것처럼 여론이 들썩인다. 하지만 대다수의 수험생과 학부모는 경제력과 지역적 배경을 갖추지 못해 킬러 문항 대비에서 소외된다. 학교 교육과정으로 도저히 대비할 수 없게 꼬아 놓은 초고난도 문항의 불공정을 경험한 후에야 진짜 공정이 무엇인지 눈뜨게 된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은 이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2019년부터 ‘킬러 문항 출제하지 않는 공정한 수능 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 왔다. 역대급 ‘불수능’이라고 불렸던 2019학년도 수능 시험을 치른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이 정상적인 학교 교육과정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가 출제되었다며 국가 대상 소송을 제안했고 이를 수락하면서 본격적인 운동이 시작되었다.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항을 ‘킬러 문항’으로 규정하고 해당 문항을 출제한 정부에 대해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대입 시험이 고교 교육과정을 준수하도록 규율하는 법이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 교육 규제법)인데, 이 법의 적용 대상으로 수능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피고인 교육부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을 했다.
이후 사교육걱정은 매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하는 6월과 9월 수능 모의고사와 수능 시험 문제를 분석해 킬러 문항 출제 실태를 알렸고 국회와 협업해 선행 교육 규제법의 적용 대상에 수능을 명시하는 법률 개정, 소위 ‘킬러 문항 방지법’ 제정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때마다 교육부는 모의고사와 수능에서 단 한 문제의 킬러 문항도 출제되지 않았다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2023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의 ‘킬러 문항 출제 금지’ 발언 이후 기류가 바뀌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킬러 문항 출제는 없었다던 교육부가 그간의 출제를 사과하는 것은 물론이고 킬러 문항의 예시를 발표하며 향후에는 출제하지 않겠다고 자기를 부인하는 모습은 혼돈 그 자체였다.
하지만 ‘킬러 문항 출제 금지’는 발표 주체인 교육부로서는 입장을 번복하는 혼돈일지 몰라도 교육적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처사이다.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는 수능의 성격과 목적을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는 출제로 고등학교 학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수능은 고교 교육과정을 준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교육으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시험이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최근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거의 대부분이 비웃을 것이다.
대통령의 ‘킬러 문항 출제 금지’ 발언은 또 다른 측면에서 혼란을 야기했다. 대입에 얽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수능을 5개월 남짓 남겨 둔 시점에서 출제에 영향을 미치는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 킬러 문항을 없애는 일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이재명 후보 모두의 공약이었다. 킬러 문항이 야기하는 고통의 문제점에 대해 당위적으로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선자가 국정 과제로 채택하고, 연초에 교육부 업무 계획에 포함시키고, 3월 수능 시행 계획으로 공표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불쑥 나온 말이 혼란을 불렀다. 여기에 사교육계 인사들의 발언과 언론의 호도가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본다.
사실 수능은 국어, 수학, 탐구 영역이 상대 평가로 실시되기 때문에 쉬운 수능, 아니 ‘초물수능’이라 하더라도 정시 수능 위주 전형이 불가능한 상황은 나오지 않는다. 상대 평가 등급, 과목별 표준 점수, 탐구 과목의 경우 각기 다른 과목 선택을 보정하기 위해 대학이 임의로 내놓는 변환 표준 점수가 대학별 반영식에 의해 1,000점으로 부풀려지고 이 식에 학생의 점수를 입력하면 소숫점까지 환산되기 때문이다. 수시도 마찬가지이다. 쉬운 수능으로 고득점자가 많아져서 1등급에 해당하는 학생이 11% 이상이 되어서 2등급이 사라지는 소위 ‘등급 블랭크’가 나오게 되면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맞추는 수시 전형에서 혼란이 야기된다는 말도 극단적인 추정이다. 대부분의 대학은 수시 수능 최저 학력 기준으로 4개 영역의 등급의 합이나 평균을 활용한다. 예컨대 K대학의 경우 ‘국어, 수학, 영어, 탐구(2과목 평균) 영역 중 3개 영역 등급의 합이 7 이내 및 한국사 4등급 이내’를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영어와 한국사는 점수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는 절대 평가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국어와 수학은 전체 수험생이 응시하는 과목이므로 1등급이 11%가 나와야 발생하는 등급 블랭크가 현실적으로 나오기 어렵다. 지금까지 시행된 수능이 아무리 쉬워도 국어와 수학에서 등급 블랭크가 발생한 사례가 없다. 2024학년도 수능 응시생이 45만 명이라고 예상할 때 11%에 해당하는 49,500명이 각 영역의 표준 점수 만점을 받아야 할 텐데, 이런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실제로 역대 수능에서 전 과목 만점자가 가장 많이 배출된 해는 2014학년도로 33명이었다. 과목별로는 국어의 경우 2013학년도에 2.36%가 만점을 받았다. 수학은 2015학년도 2.54%이다. 따라서 국·영·수에서 등급 블랭크가 나올 수 없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수시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는 추측이나 입장은 기우이다. 다만 2018학년도 ‘경제’, 2020학년도 ‘윤리와 사상’의 경우 등급 블랭크가 있었지만 이는 소수가 응시한 탐구 영역에서도 소수 과목의 상황이다. 따라서 상대 평가 구조하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한다는 의미는 ‘배운 데서 평가한다’는 상식을 지키는 일일 뿐, 혼란을 야기할 수준의 입시 지각 변동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이번 수능에 과연 킬러 문항은 출제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의 교육부가 호언장담한 대로 2024학년도 수능에서 킬러 문항은 출제되지 않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킬러 문항이 출제된 역대급 불수능이었다. 국회 교육위원회 강득구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24학년도 수능 수학 영역 46개 문항을 분석한 결과 6문항이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것으로 판정되었다. 중등 교사 10명 중 8명이 2024학년도 수능에 킬러 문항이 존재했다고 말한다.[ref] 중등교사노동조합 보도 자료, “수능 운영 제도 관련 중등교사노동조합 현장 교사 설문 실시”, 2023년 12월 5일.[/ref] 정부는 킬러 문항 출제는 없었다고 말하지만 수험생 커뮤니티에서는 시험 종료 직후에 수학 22번 문항을 두고 “이게 킬러가 아니면 뭐가 킬러냐”는 울분이 터졌다.[ref] ““이게 킬러가 아니면 뭐가 킬러냐”… 수학 22번 두고 와글와글”, 〈경향신문〉, 2023년 11월 16일.[/ref]
여기에 역대급 불수능이라는 평가는 수험생과 학부모를 두 번 울린다. 고등학교 3학년을 맡아 본 경력이 있는 현장 교사들은 표준 점수 만점이 130점대가 나오면 불수능이라고 불렀지만 최근에는 140점대가 나오면 불수능으로 본다고 말한다. 그런데 2024학년도 수능은 영역별 표준 점수 만점이 국어가 150점, 수학이 148점인 역대급 불수능이다.[ref] “2024 만점자 1명… 국어 표준 점수 최고점 150점”, 〈KBS〉, 2023년 12월 7일.[/ref] 게다가 절대 평가 과목이어서 90점을 맞으면 1등급인 영어 영역도 1등급 비율이 4.71%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난도가 높았던 시험으로 평가된다.[ref] “불수능 후폭풍… 영어 1, 2등급 크게 줄어 수시·정시 인원 출렁”, 〈한겨레〉, 2023년 12월 7일.[/ref]
종합해 보면 정부는 킬러 문항을 출제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다수의 수험생, 교사, 학부모는 출제되었다고 말하는, 난이도 또한 역대급으로 어려운 시험으로 2024학년도 수능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물수능’은 괜찮은가? 불수능이든 물수능이든 상대 평가 체제에서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은 혹독한 남과의 경쟁을 치른다. 앞서 언급했지만 역대급 물수능이라고 불렸던 2014학년도 수능도 만점자가 33명에 불과하다. ‘수리 가’의 원점수 평균은 44.59점, ‘수리 나’는 47.25점으로 추정되었다.[ref] 메가스터디, 〈2014 수능 채점 결과 종합 분석〉.[/ref] 수학 시험을 치른 절반 이상의 학생이 50점도 못 넘기는 시험을 과연 물수능이라 할 수 있는가. 표준 점수 최고점이나 1등급 비율 등 최상위권 학생들의 성적 추이를 가지고 ‘불수능, 물수능’을 말하지만, 실상 전체 수험생을 기준으로 보면 역대급 물수능으로 평가받은 해에도 수능은 매우 어려운 시험이다. 수능이 쉽게 출제되면 누구라도 만점을 받을 것처럼 호도하며 변별력 시비가 일지만, 현실은 수능은 고부담에 매우 어려운 시험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온당하다.
지금은 ‘세이비어(savior)’ 문항을 내야 할 때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상대 평가, 킬러 문항, 불수능 아래에서 대한민국은 많은 것을 상실했다. 먼저는 초저출산, 인구 절벽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경쟁 교육의 고통에 넘어지며 매년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다음으로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 학교의 평가는 교육 목표의 달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실시되어야 한다.[ref] 이형빈(2015), 《교육과정-수업-평가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맘에드림.[/ref] 그런데 서열이 높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변별의 도구가 된 수능이 학교의 평가 목적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 역대 정부가 노상 외쳐 왔던 교육 개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수능이 바뀌어야 한다. 상대 평가, 킬러 문항, 불수능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 땅에 더 이상 발을 딛어서는 안 된다. 이제 수험생을 죽이는 문항이 아니라 살리는 문항을 내야 한다. ‘세이비어(savior) 문항’의 형태와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이 시급히 현실에서 수능으로 구현되어야, 대한민국은 초저출산으로 소멸 위기에서 벗어날 해법을 찾을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킬러’가 아니라 ‘세이비어’ 문항이 필요하다
‘킬러 문항’이 남긴 혼란과 수능 개혁을 위한 관점
구본창 sam8586@naver.com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
국가 소멸 위기에 태어나서 ‘킬러 문항’을 푸는 아이러니
인구학적으로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합계 출산율이 2.1명 정도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한다.[ref] 이삼식(2023), 〈초저출산현상 극복과 인구구조 변화 대응〉, 《아시아 브리프》, 3(26).[/ref] 대한민국은 1983년 합계 출산율이 2.06명으로 인구 안정선이 붕괴되었고, 2018년에 1명 이하인 0.98명으로 떨어졌으며, 2023년은 0.7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2047년 전국 229개 시·군·구 전부가 소멸 위험 단계에 진입하게 될, 인구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ref] 감사원(2021), 〈인구구조변화 대응실태〉.[/ref]
이러한 초저출산의 원인으로 과도한 서울 집중 현상과 이에 따른 극심한 경쟁을 꼽는 학자들의 견해, 즉 “경쟁이 심하면 생존이 재생산보다 우선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전문가들의 견해[ref] “합계 출산율 1명 이하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노컷뉴스〉, 2023년 12월 13일.[/ref]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경쟁적 환경은 초저출산뿐만 아니라 어렵게 태어난 아이들에게까지 자해와 자살이라는 그림자를 남긴다. 유기홍 국회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실시한 〈경쟁교육 고통 지표 조사(2022)〉 결과에 의하면 대한민국 초·중·고 학생 4명 중 1명이 학업 성적 스트레스로 자해와 자살을 떠올린다고 한다. 질병관리청의 〈청소년 건강행태조사(2022)〉 결과도 이와 유사하다. 중·고등학생 10명 중 4명은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응답했고 ‘최근 12개월 동안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14.3%나 된다.
즉, 대한민국은 소멸 위기에 놓여 있는 국가인데 태어난 아이들마저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인해 자살과 자해를 떠올리는 환경에 놓여 있어 앞으로도 아이를 낳으려는 재생산의 회로가 멈춘 나라라는 결론이 나온다. 더욱 경악할 만한 사실은 이런 나라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수험생을 ‘kill’하는 소위 ‘킬러 문항’이 출제된 지 수년이라는 것이다. ‘킬러 문항’을 모르고 성인이 된 세대들도 과도한 경쟁 환경에서 생존하느라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현실인데, 청소년 시기부터 생존을 위해 킬러 문항을 넘기 위한 학습 노동을 한 이들의 미래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국가 소멸 위기 앞에도 킬러 문항에 자신을 갈아 넣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나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다.
‘킬러 문항’이라는 카오스
킬러 문항을 둘러싼 교육 환경을 보면 혼란 그 자체이다.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 대학 입시가 이해관계와 욕망으로 얽혀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구조 때문이겠지만 킬러 문항 자체가 주는 혼란도 엄청나다. 킬러 문항의 탄생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된다. 수학 교육과정 개정과 수능 출제 경력을 갖고 있는 현장 교사의 증언에 의하면 킬러 문항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 수능 수학의 평균 점수가 40점 미만으로 지나치게 낮게 나오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안된 산물이라고 한다. 보통의 평가에서 40점 미만이면 낙제에 해당하는데 절반가량의 학생이 40점 이하의 낙제점을 받는 시험을 과연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볼 수 있느냐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수 문항은 난이도를 낮춰 평균 점수를 높이고 소수의 고난도 혹은 초고난도의 문항을 출제해 상위권 학생들을 변별하겠다는 출제 전략의 산물이 바로 킬러 문항이라고 한다. 교육 평가의 목적은 교육과정이 정한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그 취지인데 변별의 목적이 지나치게 개입되면서, 수능이 다수의 학생이 틀리도록 문제를 배배 꼬아야 하는 혼돈의 시험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 입시에 발빠르게 대처하는 사교육계는 ‘킬러 문항 대비 상품’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킬러 문항을 포함해 수능 모의고사 대비 교재를 만들어 대비시키고 관련 강의를 제공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극소수의 학원이 나타났다. 이 학원에 등록하려면 매월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를 지출할 수 있는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제력이 있다 하더라도 학원이 요구하는 모의고사나 수능 성적이 없으면 등록도 불가능하다. 결국 킬러 문항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려면 사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배경이 필수다. 그래서 수능에서 고득점을 맞고 정시로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들 10명 중 6~7명이 수도권, 10명 중 2~3명이 강남구 출신이 된 현실을 온 국민이 목도하고 있다.[ref]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보도 자료, “서울대·전국 의대는 강남 출신 전성시대!”, 2023년 5월 9일.[/ref] 즉 경제력, 출신 지역과 같은 부모의 배경에 의한 명백한 불공정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데도 매년 수능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킬러 문항을 대비해 주는 특정 사교육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지난한 전쟁이 치러지고, 킬러 문항이 출제되지 않으면 의대를 비롯해 최상위권 대학 변별이 안 될 것처럼 여론이 들썩인다. 하지만 대다수의 수험생과 학부모는 경제력과 지역적 배경을 갖추지 못해 킬러 문항 대비에서 소외된다. 학교 교육과정으로 도저히 대비할 수 없게 꼬아 놓은 초고난도 문항의 불공정을 경험한 후에야 진짜 공정이 무엇인지 눈뜨게 된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은 이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2019년부터 ‘킬러 문항 출제하지 않는 공정한 수능 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 왔다. 역대급 ‘불수능’이라고 불렸던 2019학년도 수능 시험을 치른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이 정상적인 학교 교육과정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가 출제되었다며 국가 대상 소송을 제안했고 이를 수락하면서 본격적인 운동이 시작되었다.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항을 ‘킬러 문항’으로 규정하고 해당 문항을 출제한 정부에 대해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대입 시험이 고교 교육과정을 준수하도록 규율하는 법이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 교육 규제법)인데, 이 법의 적용 대상으로 수능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피고인 교육부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을 했다.
이후 사교육걱정은 매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하는 6월과 9월 수능 모의고사와 수능 시험 문제를 분석해 킬러 문항 출제 실태를 알렸고 국회와 협업해 선행 교육 규제법의 적용 대상에 수능을 명시하는 법률 개정, 소위 ‘킬러 문항 방지법’ 제정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때마다 교육부는 모의고사와 수능에서 단 한 문제의 킬러 문항도 출제되지 않았다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2023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의 ‘킬러 문항 출제 금지’ 발언 이후 기류가 바뀌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킬러 문항 출제는 없었다던 교육부가 그간의 출제를 사과하는 것은 물론이고 킬러 문항의 예시를 발표하며 향후에는 출제하지 않겠다고 자기를 부인하는 모습은 혼돈 그 자체였다.
하지만 ‘킬러 문항 출제 금지’는 발표 주체인 교육부로서는 입장을 번복하는 혼돈일지 몰라도 교육적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처사이다.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는 수능의 성격과 목적을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는 출제로 고등학교 학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수능은 고교 교육과정을 준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교육으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시험이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최근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거의 대부분이 비웃을 것이다.
대통령의 ‘킬러 문항 출제 금지’ 발언은 또 다른 측면에서 혼란을 야기했다. 대입에 얽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수능을 5개월 남짓 남겨 둔 시점에서 출제에 영향을 미치는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 킬러 문항을 없애는 일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이재명 후보 모두의 공약이었다. 킬러 문항이 야기하는 고통의 문제점에 대해 당위적으로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선자가 국정 과제로 채택하고, 연초에 교육부 업무 계획에 포함시키고, 3월 수능 시행 계획으로 공표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불쑥 나온 말이 혼란을 불렀다. 여기에 사교육계 인사들의 발언과 언론의 호도가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본다.
사실 수능은 국어, 수학, 탐구 영역이 상대 평가로 실시되기 때문에 쉬운 수능, 아니 ‘초물수능’이라 하더라도 정시 수능 위주 전형이 불가능한 상황은 나오지 않는다. 상대 평가 등급, 과목별 표준 점수, 탐구 과목의 경우 각기 다른 과목 선택을 보정하기 위해 대학이 임의로 내놓는 변환 표준 점수가 대학별 반영식에 의해 1,000점으로 부풀려지고 이 식에 학생의 점수를 입력하면 소숫점까지 환산되기 때문이다. 수시도 마찬가지이다. 쉬운 수능으로 고득점자가 많아져서 1등급에 해당하는 학생이 11% 이상이 되어서 2등급이 사라지는 소위 ‘등급 블랭크’가 나오게 되면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맞추는 수시 전형에서 혼란이 야기된다는 말도 극단적인 추정이다. 대부분의 대학은 수시 수능 최저 학력 기준으로 4개 영역의 등급의 합이나 평균을 활용한다. 예컨대 K대학의 경우 ‘국어, 수학, 영어, 탐구(2과목 평균) 영역 중 3개 영역 등급의 합이 7 이내 및 한국사 4등급 이내’를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영어와 한국사는 점수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는 절대 평가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국어와 수학은 전체 수험생이 응시하는 과목이므로 1등급이 11%가 나와야 발생하는 등급 블랭크가 현실적으로 나오기 어렵다. 지금까지 시행된 수능이 아무리 쉬워도 국어와 수학에서 등급 블랭크가 발생한 사례가 없다. 2024학년도 수능 응시생이 45만 명이라고 예상할 때 11%에 해당하는 49,500명이 각 영역의 표준 점수 만점을 받아야 할 텐데, 이런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실제로 역대 수능에서 전 과목 만점자가 가장 많이 배출된 해는 2014학년도로 33명이었다. 과목별로는 국어의 경우 2013학년도에 2.36%가 만점을 받았다. 수학은 2015학년도 2.54%이다. 따라서 국·영·수에서 등급 블랭크가 나올 수 없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수시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는 추측이나 입장은 기우이다. 다만 2018학년도 ‘경제’, 2020학년도 ‘윤리와 사상’의 경우 등급 블랭크가 있었지만 이는 소수가 응시한 탐구 영역에서도 소수 과목의 상황이다. 따라서 상대 평가 구조하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한다는 의미는 ‘배운 데서 평가한다’는 상식을 지키는 일일 뿐, 혼란을 야기할 수준의 입시 지각 변동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이번 수능에 과연 킬러 문항은 출제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의 교육부가 호언장담한 대로 2024학년도 수능에서 킬러 문항은 출제되지 않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킬러 문항이 출제된 역대급 불수능이었다. 국회 교육위원회 강득구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24학년도 수능 수학 영역 46개 문항을 분석한 결과 6문항이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것으로 판정되었다. 중등 교사 10명 중 8명이 2024학년도 수능에 킬러 문항이 존재했다고 말한다.[ref] 중등교사노동조합 보도 자료, “수능 운영 제도 관련 중등교사노동조합 현장 교사 설문 실시”, 2023년 12월 5일.[/ref] 정부는 킬러 문항 출제는 없었다고 말하지만 수험생 커뮤니티에서는 시험 종료 직후에 수학 22번 문항을 두고 “이게 킬러가 아니면 뭐가 킬러냐”는 울분이 터졌다.[ref] ““이게 킬러가 아니면 뭐가 킬러냐”… 수학 22번 두고 와글와글”, 〈경향신문〉, 2023년 11월 16일.[/ref]
여기에 역대급 불수능이라는 평가는 수험생과 학부모를 두 번 울린다. 고등학교 3학년을 맡아 본 경력이 있는 현장 교사들은 표준 점수 만점이 130점대가 나오면 불수능이라고 불렀지만 최근에는 140점대가 나오면 불수능으로 본다고 말한다. 그런데 2024학년도 수능은 영역별 표준 점수 만점이 국어가 150점, 수학이 148점인 역대급 불수능이다.[ref] “2024 만점자 1명… 국어 표준 점수 최고점 150점”, 〈KBS〉, 2023년 12월 7일.[/ref] 게다가 절대 평가 과목이어서 90점을 맞으면 1등급인 영어 영역도 1등급 비율이 4.71%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난도가 높았던 시험으로 평가된다.[ref] “불수능 후폭풍… 영어 1, 2등급 크게 줄어 수시·정시 인원 출렁”, 〈한겨레〉, 2023년 12월 7일.[/ref]
종합해 보면 정부는 킬러 문항을 출제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다수의 수험생, 교사, 학부모는 출제되었다고 말하는, 난이도 또한 역대급으로 어려운 시험으로 2024학년도 수능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물수능’은 괜찮은가? 불수능이든 물수능이든 상대 평가 체제에서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은 혹독한 남과의 경쟁을 치른다. 앞서 언급했지만 역대급 물수능이라고 불렸던 2014학년도 수능도 만점자가 33명에 불과하다. ‘수리 가’의 원점수 평균은 44.59점, ‘수리 나’는 47.25점으로 추정되었다.[ref] 메가스터디, 〈2014 수능 채점 결과 종합 분석〉.[/ref] 수학 시험을 치른 절반 이상의 학생이 50점도 못 넘기는 시험을 과연 물수능이라 할 수 있는가. 표준 점수 최고점이나 1등급 비율 등 최상위권 학생들의 성적 추이를 가지고 ‘불수능, 물수능’을 말하지만, 실상 전체 수험생을 기준으로 보면 역대급 물수능으로 평가받은 해에도 수능은 매우 어려운 시험이다. 수능이 쉽게 출제되면 누구라도 만점을 받을 것처럼 호도하며 변별력 시비가 일지만, 현실은 수능은 고부담에 매우 어려운 시험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온당하다.
지금은 ‘세이비어(savior)’ 문항을 내야 할 때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상대 평가, 킬러 문항, 불수능 아래에서 대한민국은 많은 것을 상실했다. 먼저는 초저출산, 인구 절벽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경쟁 교육의 고통에 넘어지며 매년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다음으로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 학교의 평가는 교육 목표의 달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실시되어야 한다.[ref] 이형빈(2015), 《교육과정-수업-평가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맘에드림.[/ref] 그런데 서열이 높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변별의 도구가 된 수능이 학교의 평가 목적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 역대 정부가 노상 외쳐 왔던 교육 개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수능이 바뀌어야 한다. 상대 평가, 킬러 문항, 불수능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 땅에 더 이상 발을 딛어서는 안 된다. 이제 수험생을 죽이는 문항이 아니라 살리는 문항을 내야 한다. ‘세이비어(savior) 문항’의 형태와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이 시급히 현실에서 수능으로 구현되어야, 대한민국은 초저출산으로 소멸 위기에서 벗어날 해법을 찾을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