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사회의 미래를 위한 대학 개혁의 원칙
사립대 구조 개선 관련 법안들의 한계 극복을 위하여
김명환 kmh@snu.ac.kr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교수노조 전 부위원장
그동안 쏟아진 고등교육 개혁 담론이 정말 학생을 중심에 놓고 그들이 장차 살아갈 삶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냐는 비판이 종종 나온다. 특히 교수들이 내놓는 언설은 자신들의 관점과 이익에 갇혀 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내 눈에도 정작 주인공인 학생과 학생의 미래에 등한한 주장이 없지 않았고, 나름으로 대학 개혁에 대해 발언해 온 나 자신도 교수로서 항상 자기 점검을 해야 마땅하겠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교육이 크나큰 위기 속에 신음하고 있으며 제대로 된 개혁 방안을 만들어 실천해야 한다는 사회적 과제는 엄연하다.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위기를 겪으며 그야말로 갈림길에 서 있다. 우선 인간 스스로가 저지른 온실가스 배출과 생태계 파괴는 심각한 기후-생태 위기를 가져왔다. 코로나19 팬데믹도 이와 직결된 재난이며, 세계 도처에서 극한적인 가뭄과 홍수, 산불과 폭염이 빈발하고 있다. 국제 사회는 탄소 중립의 목표에 합의했지만 충분한 협동과 실질적 조치가 이뤄지는지는 의문이다. 화석 연료에 의존한 산업화를 이끈 자본주의 세계 체제는 약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 위에 번성한 것이라서, 기후-생태 위기는 전 지구적 사회 양극화 심화와 동전의 양면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상징하는 디지털 혁명의 눈부신 발전이 우리 삶을 뒤바꾸고 있지만, 기술적 도약이 곧 더 나은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혐오와 차별, 배제를 자양분으로 삼는 극우적 포퓰리즘 정치가 세계를 휩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도 하나같이 엄중하다. 우리 사회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극히 대조적이라서 기이한 이중 사회로 보이기도 한다. 높은 수준의 민주적 역량과 활기찬 경제, 우리를 향한 세계의 호의적 시선을 떠받치는 한류와 한국어 붐 등을 보면 선진국 운운이 빈말이 아니다. 그러나 빈번한 산업 재해와 비정규직 양산, 여성혐오와 낮은 성평등 지수, 이주민과 난민, 장애인 등 소수자 차별, 청소년이 겪는 비인간적 입시 경쟁 등을 추락 일변도인 출생률, 노인 빈곤율, 자살률 등 세계 최악이라는 지표들과 함께 묶어서 보면 한숨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하나의 민족이 둘로 갈라져 전쟁까지 치르며 분단 속에 산 세월이 80년 가까워지면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체제 구축은 힘겨워지고 있으며, 전시 작전권도 없는 나라가 세계 6위 수준의 군사력과 군수 산업을 보유하고 남의 나라 전쟁에 무기와 탄약을 수출한다.
이처럼 위기가 넘치는 현실에서 민주 시민의 성품과 자질을 갖추고 현실에 적응하여 살아남으면서도 더 나은 가치를 실현할 능력을 가진 젊은이들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깨닫게 된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현재 국회에 발의된 사립대 구조 개선법안들의 허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방향을 모색해야 할지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한 모색의 열쇠말은 무엇보다도 ‘학생’과 ‘미래’이다.
법안들의 심각한 문제와 한계
현재 국회에는 사립대 구조 개선에 관하여 총 4개의 법안이 상정되어 있다. 여야가 각각 2개씩 법안을 냈지만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제도 정치권은 사립 대학 개혁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거의 같은 시각을 가진 셈이다. 사립대는 한국 대학의 80%를 넘는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 구조 개혁의 사회적 파장은 국공립 대학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점에서 제도 정치권의 각성이 절실하다.
이 법안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한국 고등교육 생태계의 미래를 설계하는 큰 그림이 아예 빠진 채로, 일부 대학들을 어떻게 순조롭게 문을 닫게 할 것인가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법안들은 박근혜 정부 시기의 관련 법안들에 비해서도 대폭 후퇴한 내용이다. 그 당시의 법안들은 교육부 장관이 3년마다 대학 구조 개혁 기본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반면에 현재의 법안들은 대학 구조 개선의 기본 방향이나 계획에 대한 언급조차 없는 퇴행적 틀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법안들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 가장 염려스러운 점은 특정 대학의 폐교 여부가 개별 대학 운영진의 결정이나 대학 외부의 경영 진단에 따른 회생 가능성에 달려 있어, 지역 경제, 지역 사회나 대학 생태계를 고려하는 거시적 국가 정책이 작용할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만약 특정 지역의 대학 다수가 폐교를 선택하여 사라지면 해당 지역의 공동화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학교 규모는 작더라도 지역의 인재 양성과 경제 활성화의 핵심이 될 대학을 살리기 위한 문제의식과 구체적 방안이 아쉬운 것이다.
요컨대, 현재의 법안들은 경영이 어려워진 ‘사학 소유주’만을 위한 것이며 지역과 지역의 젊은이, 지방 대학 학생은 철저히 외면하는 낡은 틀에 갇혀 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실마리로서 첫째, 전문대와 한국폴리텍대를 포함한 ‘고등직업교육’ 활성화, 둘째, 교수와 연구자의 보호와 양성의 과제를 살펴보자.
학생과 미래를 위한 대학 개혁 ①
- ‘고등직업교육’ 내실화와 무상화
현재의 법안들은 모두 폐기하고, 전국의 대학을 젊은 학생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제대로 개혁할 길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제는 사실 복잡하게 얽힌 문제가 많고 예산도 많이 드는 사업이므로 속 시원한 해법이 나오기 어렵다. 그러나 기존의 개혁 담론이 소홀히 하는 ‘고등직업교육’이라는 의제는 꼭 따져 봐야 한다.
대학들을 구조 조정 하여 활력 있고 건강한 대학 생태계를 형성하려면 대학 개혁 담론에서 배제되어 온 전문대학과 한국폴리텍대학의 활성화가 절실하다. 이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노력은 첫째,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들의 활로를 마련해 줌으로써 사회적 정의와 평등에 기여하며, 둘째, 제조업의 공동화를 막고 우수한 산업 기술 인력을 계속 배출함으로써 국제 경쟁력을 지켜 미래의 한국에 기여하는 일이다.
그동안 전문대는 4년제 일반대에 갈 성적을 올리지 못한 학생을 위한 학교로 홀대받아 왔다. 그러나 지난 십수 년간 4년제 사립 대학들이 전문대가 담당해 온 실용 학과들을 마구잡이로 신설해 전문대의 영역을 침범했고, 반면에 전문대들도 3년제, 4년제 전공 과정을 많이 개설해 왔다. 이처럼 일반대와 전문대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진 터에 아예 그 구분을 없애고 일반대 중 다수는 전문대 교육 목표에 걸맞은 체제로 전환하는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집중적인 논의가 필요한 것이 ‘고등직업교육’이다.
‘고등직업교육’은 고등교육 연구와 담론에서 전문대학의 교육을 다루기 위해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지만 법률에서 사용되는 정식 용어는 아니다. 「고등교육법」을 살펴보면, 제37조는 산업대학, 제55조는 기술대학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고, 전문대학은 제47조[ref] 「고등교육법」 제47조 : 전문대학은 사회 각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재능을 연마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직업인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ref]가 규정한다. 한편, 고용노동부 산하에 있지만 전문대학과 기능이 같은 한국폴리텍대학은 「국민 평생 직업능력 개발법」에 법적 근거가 있으며, 1968년 중앙직업훈련원으로 출범했다가 1998년 기능대학 24개와 직업 전문 학교 21개의 통합을 통해 학교 법인 한국폴리텍대학으로 출범했다. 「국민 평생 직업능력 개발법」의 제2조(정의) 제5항 ““기능대학”이란 「고등교육법」 제2조 제4호에 따른 전문대학으로서 학위과정인 제40조에 따른 다기능기술자과정 또는 학위전공심화과정을 운영하면서 직업훈련과정을 병설운영하는 교육·훈련기관을 말한다”.(강조는 필자) 이는 폴리텍대의 법적 규정이며, 이 조항에 따를 때 폴리텍대는 전문대학에 속한다. 이처럼 관련 법률을 잠깐 살펴봐도 ‘고등직업교육’이 법률 용어로 채택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이고 산업대학, 전문대학, 기술대학, 기능대학 등의 규정과 위상이 혼란스럽다. 장기적으로 이들 대학의 성격과 위상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해 재조정할 필요가 크다.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된 성공의 배후에는 높은 수준의 숙련도와 창의성을 발휘한 우수한 노동 인력이 있다. 또, 지난 코로나19 대유행에서도 우리는 대기업부터 중소 제조업에 이르는 산업 생태계가 민첩하게 대응함으로써 서구처럼 마스크 부족이나 생필품 대란을 겪지 않았다. 그만큼 전통적인 제조업의 기술 혁신과 우수 인력은 탄소 중립 시대에 응전력을 지닌 경제 발전에 중요하며, 이를 위해 전문대와 폴리텍대의 역할이 긴요한 것이다.
폴리텍대는 고용 보험 기금에 의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어 기자재, 실습 시설, 교육 프로그램 등 교육 환경에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전문대들에 비해 더 나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주무 부처가 고용노동부와 교육부로 서로 다른 폴리텍대와 전문대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상호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범부처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 그런 노력을 통해 ‘고등직업교육’의 개념과 위상을 정립하고 관련 법률을 정비하는 동시에 산업 정책, 인력 수급 정책 차원에서 특정 전공이 2년, 3년, 4년 과정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정확히 평가하여 지역의 전문대와 폴리텍대가 수행할 고등직업교육을 현실에 맞게 재편해야 한다. 특히 고등직업교육 기관의 특성상 재교육 기관·평생교육 기관의 역할도 강화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나아가 고등직업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무상 교육을 추진해야 한다. 전문대와 폴리텍대 학생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 출신이며, 그들이 사회에서 겪는 열악한 근로 조건과 저임금의 현실은 단기간에 극복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을 위한 대학교육 무상화는 날로 심각해지는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는 유력한 정책 수단이다. 또, 무상교육은 인구 급감의 현실에서 우수한 해외의 젊은이들을 유학생으로 받아 국내 제조업에 정착하게 함으로써 경제 활동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사회적 위기 대처에도 기여할 것이다.
학생과 미래를 위한 대학 개혁 ②
- 대학 교원의 보호와 양성
국회 토론회 등 다른 기회에도 반복했던 이야기지만, 두 대학 졸업식 축사를 거론하고 싶다. 첫째는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은 허준이 교수가 2022년 8월의 서울대학교 후기 졸업식에서 한 축사이다. 많은 이들이 이 축사를 동영상으로 보고 감탄했으며, 나 역시 가슴이 뭉클할 만큼 진지하고 정직하고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더불어 나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노동자인 천현우 작가의 《쇳밥일지》에 나오는 전문대(청강문화산업대학) 졸업식 축사도 함께 읽기를 권한다. 천현우는 폴리텍대를 나온 청년공으로서 온갖 밑바닥 고생을 겪은 경험을 토대로 전문대를 마치고 사회로 나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진솔한 조언을 건넨다. 우리의 고등교육은 허준이 같은 탁월한 학자를 배출하는 동시에 천현우 같은 강인하고 교양 있는 노동자들을 기르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실력 있고 열정적인 선생 밑에서 훌륭한 인재가 배출된다. ‘청출어람’이라는 옛말은 좋은 선생 밑에서 더 좋은 인재가 나온다는 뜻이지, 실력 없는 나쁜 선생이나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 조건에 시달리는 지친 학자 밑에서도 훌륭한 인재가 나온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향후 15년 안에 입학 정원의 절반 가까이를 줄여야 할 비상한 대학 구조 조정 국면에서 일자리를 잃을 교수·연구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 대책은 사실상 없다. 그냥 경쟁력 없는 기업이 망하면 그 직원이 실직하는 것과 똑같이 학교가 없어지면 학교 선생의 실직도 당연하다는 단순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기업 파산의 경우에도 대량 해고만이 답이 아니듯이, 장기간 공부하고 연구해 온 수많은 교수·연구자를 방치하는 일은 국가 정책이라고 부를 수 없다.
지금처럼 대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위 돈이 안 되고 인기 없는 기초 학문 연구자를 위한 실질적 정책 수립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역의 개별 사립대가 기초·교양 교육을 내실 있게 제공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지역별 네트워크를 통해 대학들이 교육 인력과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체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런 협력 체제를 통해 국어와 글쓰기, 영어 등 외국어, 수학, 물리, 컴퓨터 등의 기초 교육, 인문 교육을 중심으로 한 교양 교육 등을 내실 있고 다양하게 강화할 수 있다. 문을 닫는 대학들에 근무하던 관련 교수 인력을 인접 대학이 모두 흡수하여 채용하기가 불가능하다면, 정부 지원과 대학별 분담을 통해 해당 지역 네트워크의 공동 교육 인력으로 유지하여 교수·연구자 보호와 기초·교양 교육(혹은 공통 역량 교육) 내실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은 나라 만들기’ 차원의 대학 개혁
올바른 고등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고등교육이 제대로 혁신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학 교수 집단의 자기 혁신이 대전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국민 여론은 대학 교수 집단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않으며, 현 정부와 여당은 물론 어떤 정치 세력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대학 교수 집단의 보수성과 개인주의적 성향 등 갖가지 문제가 혁신의 실질적 책임자로서 이들에 대한 대학 외부의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기 어렵게 한다. 더구나 고등교육 개혁은 막대한 예산이 꾸준히 투입되어야 하므로 개혁의 전망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진정한 고등교육 개혁을 외면하는 순간 나라는 망가진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우리 사회는 놀라운 역사적 성과와 풍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위기를 벗어날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갈림길의 해결책이 오직 고등교육 개혁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릇된 언설이지만, 대책을 마련하는 데서 ‘더 나은 나라 만들기’ 차원의 고등교육 혁신이 빠진다면 밝은 미래로 가는 길을 찾기 힘들다. 우리는 일단 오는 5월 말로 종료되는 21대 국회에서 현재의 사립대 구조 개선법이 여야 양당만의 합의로 통과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동시에 정말 충실한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전망에 입각한 입법 논의를 위해 지금부터 힘써야 한다.
학생과 사회의 미래를 위한 대학 개혁의 원칙
사립대 구조 개선 관련 법안들의 한계 극복을 위하여
김명환 kmh@snu.ac.kr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교수노조 전 부위원장
그동안 쏟아진 고등교육 개혁 담론이 정말 학생을 중심에 놓고 그들이 장차 살아갈 삶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냐는 비판이 종종 나온다. 특히 교수들이 내놓는 언설은 자신들의 관점과 이익에 갇혀 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내 눈에도 정작 주인공인 학생과 학생의 미래에 등한한 주장이 없지 않았고, 나름으로 대학 개혁에 대해 발언해 온 나 자신도 교수로서 항상 자기 점검을 해야 마땅하겠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교육이 크나큰 위기 속에 신음하고 있으며 제대로 된 개혁 방안을 만들어 실천해야 한다는 사회적 과제는 엄연하다.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위기를 겪으며 그야말로 갈림길에 서 있다. 우선 인간 스스로가 저지른 온실가스 배출과 생태계 파괴는 심각한 기후-생태 위기를 가져왔다. 코로나19 팬데믹도 이와 직결된 재난이며, 세계 도처에서 극한적인 가뭄과 홍수, 산불과 폭염이 빈발하고 있다. 국제 사회는 탄소 중립의 목표에 합의했지만 충분한 협동과 실질적 조치가 이뤄지는지는 의문이다. 화석 연료에 의존한 산업화를 이끈 자본주의 세계 체제는 약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 위에 번성한 것이라서, 기후-생태 위기는 전 지구적 사회 양극화 심화와 동전의 양면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상징하는 디지털 혁명의 눈부신 발전이 우리 삶을 뒤바꾸고 있지만, 기술적 도약이 곧 더 나은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혐오와 차별, 배제를 자양분으로 삼는 극우적 포퓰리즘 정치가 세계를 휩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도 하나같이 엄중하다. 우리 사회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극히 대조적이라서 기이한 이중 사회로 보이기도 한다. 높은 수준의 민주적 역량과 활기찬 경제, 우리를 향한 세계의 호의적 시선을 떠받치는 한류와 한국어 붐 등을 보면 선진국 운운이 빈말이 아니다. 그러나 빈번한 산업 재해와 비정규직 양산, 여성혐오와 낮은 성평등 지수, 이주민과 난민, 장애인 등 소수자 차별, 청소년이 겪는 비인간적 입시 경쟁 등을 추락 일변도인 출생률, 노인 빈곤율, 자살률 등 세계 최악이라는 지표들과 함께 묶어서 보면 한숨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하나의 민족이 둘로 갈라져 전쟁까지 치르며 분단 속에 산 세월이 80년 가까워지면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체제 구축은 힘겨워지고 있으며, 전시 작전권도 없는 나라가 세계 6위 수준의 군사력과 군수 산업을 보유하고 남의 나라 전쟁에 무기와 탄약을 수출한다.
이처럼 위기가 넘치는 현실에서 민주 시민의 성품과 자질을 갖추고 현실에 적응하여 살아남으면서도 더 나은 가치를 실현할 능력을 가진 젊은이들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깨닫게 된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현재 국회에 발의된 사립대 구조 개선법안들의 허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방향을 모색해야 할지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한 모색의 열쇠말은 무엇보다도 ‘학생’과 ‘미래’이다.
법안들의 심각한 문제와 한계
현재 국회에는 사립대 구조 개선에 관하여 총 4개의 법안이 상정되어 있다. 여야가 각각 2개씩 법안을 냈지만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제도 정치권은 사립 대학 개혁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거의 같은 시각을 가진 셈이다. 사립대는 한국 대학의 80%를 넘는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 구조 개혁의 사회적 파장은 국공립 대학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점에서 제도 정치권의 각성이 절실하다.
이 법안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한국 고등교육 생태계의 미래를 설계하는 큰 그림이 아예 빠진 채로, 일부 대학들을 어떻게 순조롭게 문을 닫게 할 것인가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법안들은 박근혜 정부 시기의 관련 법안들에 비해서도 대폭 후퇴한 내용이다. 그 당시의 법안들은 교육부 장관이 3년마다 대학 구조 개혁 기본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반면에 현재의 법안들은 대학 구조 개선의 기본 방향이나 계획에 대한 언급조차 없는 퇴행적 틀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법안들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 가장 염려스러운 점은 특정 대학의 폐교 여부가 개별 대학 운영진의 결정이나 대학 외부의 경영 진단에 따른 회생 가능성에 달려 있어, 지역 경제, 지역 사회나 대학 생태계를 고려하는 거시적 국가 정책이 작용할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만약 특정 지역의 대학 다수가 폐교를 선택하여 사라지면 해당 지역의 공동화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학교 규모는 작더라도 지역의 인재 양성과 경제 활성화의 핵심이 될 대학을 살리기 위한 문제의식과 구체적 방안이 아쉬운 것이다.
요컨대, 현재의 법안들은 경영이 어려워진 ‘사학 소유주’만을 위한 것이며 지역과 지역의 젊은이, 지방 대학 학생은 철저히 외면하는 낡은 틀에 갇혀 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실마리로서 첫째, 전문대와 한국폴리텍대를 포함한 ‘고등직업교육’ 활성화, 둘째, 교수와 연구자의 보호와 양성의 과제를 살펴보자.
학생과 미래를 위한 대학 개혁 ①
- ‘고등직업교육’ 내실화와 무상화
현재의 법안들은 모두 폐기하고, 전국의 대학을 젊은 학생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제대로 개혁할 길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제는 사실 복잡하게 얽힌 문제가 많고 예산도 많이 드는 사업이므로 속 시원한 해법이 나오기 어렵다. 그러나 기존의 개혁 담론이 소홀히 하는 ‘고등직업교육’이라는 의제는 꼭 따져 봐야 한다.
대학들을 구조 조정 하여 활력 있고 건강한 대학 생태계를 형성하려면 대학 개혁 담론에서 배제되어 온 전문대학과 한국폴리텍대학의 활성화가 절실하다. 이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노력은 첫째,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들의 활로를 마련해 줌으로써 사회적 정의와 평등에 기여하며, 둘째, 제조업의 공동화를 막고 우수한 산업 기술 인력을 계속 배출함으로써 국제 경쟁력을 지켜 미래의 한국에 기여하는 일이다.
그동안 전문대는 4년제 일반대에 갈 성적을 올리지 못한 학생을 위한 학교로 홀대받아 왔다. 그러나 지난 십수 년간 4년제 사립 대학들이 전문대가 담당해 온 실용 학과들을 마구잡이로 신설해 전문대의 영역을 침범했고, 반면에 전문대들도 3년제, 4년제 전공 과정을 많이 개설해 왔다. 이처럼 일반대와 전문대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진 터에 아예 그 구분을 없애고 일반대 중 다수는 전문대 교육 목표에 걸맞은 체제로 전환하는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집중적인 논의가 필요한 것이 ‘고등직업교육’이다.
‘고등직업교육’은 고등교육 연구와 담론에서 전문대학의 교육을 다루기 위해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지만 법률에서 사용되는 정식 용어는 아니다. 「고등교육법」을 살펴보면, 제37조는 산업대학, 제55조는 기술대학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고, 전문대학은 제47조[ref] 「고등교육법」 제47조 : 전문대학은 사회 각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재능을 연마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직업인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ref]가 규정한다. 한편, 고용노동부 산하에 있지만 전문대학과 기능이 같은 한국폴리텍대학은 「국민 평생 직업능력 개발법」에 법적 근거가 있으며, 1968년 중앙직업훈련원으로 출범했다가 1998년 기능대학 24개와 직업 전문 학교 21개의 통합을 통해 학교 법인 한국폴리텍대학으로 출범했다. 「국민 평생 직업능력 개발법」의 제2조(정의) 제5항 ““기능대학”이란 「고등교육법」 제2조 제4호에 따른 전문대학으로서 학위과정인 제40조에 따른 다기능기술자과정 또는 학위전공심화과정을 운영하면서 직업훈련과정을 병설운영하는 교육·훈련기관을 말한다”.(강조는 필자) 이는 폴리텍대의 법적 규정이며, 이 조항에 따를 때 폴리텍대는 전문대학에 속한다. 이처럼 관련 법률을 잠깐 살펴봐도 ‘고등직업교육’이 법률 용어로 채택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이고 산업대학, 전문대학, 기술대학, 기능대학 등의 규정과 위상이 혼란스럽다. 장기적으로 이들 대학의 성격과 위상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해 재조정할 필요가 크다.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된 성공의 배후에는 높은 수준의 숙련도와 창의성을 발휘한 우수한 노동 인력이 있다. 또, 지난 코로나19 대유행에서도 우리는 대기업부터 중소 제조업에 이르는 산업 생태계가 민첩하게 대응함으로써 서구처럼 마스크 부족이나 생필품 대란을 겪지 않았다. 그만큼 전통적인 제조업의 기술 혁신과 우수 인력은 탄소 중립 시대에 응전력을 지닌 경제 발전에 중요하며, 이를 위해 전문대와 폴리텍대의 역할이 긴요한 것이다.
폴리텍대는 고용 보험 기금에 의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어 기자재, 실습 시설, 교육 프로그램 등 교육 환경에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전문대들에 비해 더 나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주무 부처가 고용노동부와 교육부로 서로 다른 폴리텍대와 전문대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상호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범부처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 그런 노력을 통해 ‘고등직업교육’의 개념과 위상을 정립하고 관련 법률을 정비하는 동시에 산업 정책, 인력 수급 정책 차원에서 특정 전공이 2년, 3년, 4년 과정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정확히 평가하여 지역의 전문대와 폴리텍대가 수행할 고등직업교육을 현실에 맞게 재편해야 한다. 특히 고등직업교육 기관의 특성상 재교육 기관·평생교육 기관의 역할도 강화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나아가 고등직업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무상 교육을 추진해야 한다. 전문대와 폴리텍대 학생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 출신이며, 그들이 사회에서 겪는 열악한 근로 조건과 저임금의 현실은 단기간에 극복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을 위한 대학교육 무상화는 날로 심각해지는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는 유력한 정책 수단이다. 또, 무상교육은 인구 급감의 현실에서 우수한 해외의 젊은이들을 유학생으로 받아 국내 제조업에 정착하게 함으로써 경제 활동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사회적 위기 대처에도 기여할 것이다.
학생과 미래를 위한 대학 개혁 ②
- 대학 교원의 보호와 양성
국회 토론회 등 다른 기회에도 반복했던 이야기지만, 두 대학 졸업식 축사를 거론하고 싶다. 첫째는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은 허준이 교수가 2022년 8월의 서울대학교 후기 졸업식에서 한 축사이다. 많은 이들이 이 축사를 동영상으로 보고 감탄했으며, 나 역시 가슴이 뭉클할 만큼 진지하고 정직하고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더불어 나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노동자인 천현우 작가의 《쇳밥일지》에 나오는 전문대(청강문화산업대학) 졸업식 축사도 함께 읽기를 권한다. 천현우는 폴리텍대를 나온 청년공으로서 온갖 밑바닥 고생을 겪은 경험을 토대로 전문대를 마치고 사회로 나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진솔한 조언을 건넨다. 우리의 고등교육은 허준이 같은 탁월한 학자를 배출하는 동시에 천현우 같은 강인하고 교양 있는 노동자들을 기르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실력 있고 열정적인 선생 밑에서 훌륭한 인재가 배출된다. ‘청출어람’이라는 옛말은 좋은 선생 밑에서 더 좋은 인재가 나온다는 뜻이지, 실력 없는 나쁜 선생이나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 조건에 시달리는 지친 학자 밑에서도 훌륭한 인재가 나온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향후 15년 안에 입학 정원의 절반 가까이를 줄여야 할 비상한 대학 구조 조정 국면에서 일자리를 잃을 교수·연구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 대책은 사실상 없다. 그냥 경쟁력 없는 기업이 망하면 그 직원이 실직하는 것과 똑같이 학교가 없어지면 학교 선생의 실직도 당연하다는 단순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기업 파산의 경우에도 대량 해고만이 답이 아니듯이, 장기간 공부하고 연구해 온 수많은 교수·연구자를 방치하는 일은 국가 정책이라고 부를 수 없다.
지금처럼 대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위 돈이 안 되고 인기 없는 기초 학문 연구자를 위한 실질적 정책 수립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역의 개별 사립대가 기초·교양 교육을 내실 있게 제공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지역별 네트워크를 통해 대학들이 교육 인력과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체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런 협력 체제를 통해 국어와 글쓰기, 영어 등 외국어, 수학, 물리, 컴퓨터 등의 기초 교육, 인문 교육을 중심으로 한 교양 교육 등을 내실 있고 다양하게 강화할 수 있다. 문을 닫는 대학들에 근무하던 관련 교수 인력을 인접 대학이 모두 흡수하여 채용하기가 불가능하다면, 정부 지원과 대학별 분담을 통해 해당 지역 네트워크의 공동 교육 인력으로 유지하여 교수·연구자 보호와 기초·교양 교육(혹은 공통 역량 교육) 내실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은 나라 만들기’ 차원의 대학 개혁
올바른 고등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고등교육이 제대로 혁신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학 교수 집단의 자기 혁신이 대전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국민 여론은 대학 교수 집단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않으며, 현 정부와 여당은 물론 어떤 정치 세력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대학 교수 집단의 보수성과 개인주의적 성향 등 갖가지 문제가 혁신의 실질적 책임자로서 이들에 대한 대학 외부의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기 어렵게 한다. 더구나 고등교육 개혁은 막대한 예산이 꾸준히 투입되어야 하므로 개혁의 전망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진정한 고등교육 개혁을 외면하는 순간 나라는 망가진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우리 사회는 놀라운 역사적 성과와 풍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위기를 벗어날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갈림길의 해결책이 오직 고등교육 개혁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릇된 언설이지만, 대책을 마련하는 데서 ‘더 나은 나라 만들기’ 차원의 고등교육 혁신이 빠진다면 밝은 미래로 가는 길을 찾기 힘들다. 우리는 일단 오는 5월 말로 종료되는 21대 국회에서 현재의 사립대 구조 개선법이 여야 양당만의 합의로 통과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동시에 정말 충실한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전망에 입각한 입법 논의를 위해 지금부터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