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수학 시간에
시로 창을 내었다
권혁천
전 서울 중등 교사
오랫동안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쳐 왔습니다.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수업은 언제나 어려웠습니다. 교직 초반, 젊은 시절의 저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수학을 쉽게 이해하고 문제를 잘 풀게 할 수 있을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습니다. 입시와 경쟁이라는 거대한 벽에 둘러싸인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그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자주 “수학은 왜 배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은 늘 제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저는 제대로 답을 찾지 못하고 교과서와 참고서의 문제 풀이 수업에만 집중한 채 세월에 휩쓸려 한참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관성과 습관에 얽매인 제 수업이 교실에서 생기를 잃은 채 무너져 있음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시험 점수로 판단되는 죽은 지식을 파는 장사꾼처럼, 얄팍한 문제 풀이 방법만 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많은 학생이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수업을 억지로 따라왔고, 용감한 몇몇은 분명한 방식으로 수업을 거부했습니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깊은 자괴감 속에서, 저는 다시 처음부터 수학교육과 수업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수학이라는 과목이 지닌 진정한 배움을 학생들과 어떻게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지, 그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교사들이 굳게 믿는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여러 교육 이론에도 기웃거려 보았습니다. 깊은 울림을 주는 배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현학적인 동어반복에 머물러 수업 현장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제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배움에 이르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분명히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교사 자신만의 수업 철학을 가질 때, 수업은 비로소 조금 더 살아나고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시험 문제 풀이와 입시, 기호와 식에 갇힌 학교 수학 너머의 배움을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수학이라는 학문이 품고 있는 탐구를 통한 개념 이해와 발견의 순수한 기쁨, 편의주의와 효율성을 넘어서는 아름답고 올바른 약속과 규칙, 발견을 정의롭게 활용하는 태도, 그리고 수학과 나와 우리 삶의 관계 같은 것들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런 배움을 향해 새로운 수업을 탐색하고 시도하던 끝에, 마지막으로 제가 선택한 것은 수학 수업과 시의 연결이었습니다.
저는 수학을 과학의 언어에만 가두지 않고, 아름다움의 탐구와 발견으로 이끌고 싶었습니다. 시는 그러한 것들을 서툴게나마 우리의 수준에서 순수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표현을 통해 수학에서의 배움도 한층 깊어지고 더 큰 의미를 갖게 되리라 믿었습니다. 또한 시는 생명과 물질을 포함한 타자에 대한 위무의 역할을 지니고 있기에, 딱딱하게 느껴지는 수학 수업에 따뜻함을 더해 줄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에는 한 과목을 일정 기간 집중해서 배우는 에포크 수업이 있습니다. 그 수업은 교사가 단원에 대한 자신의 수업 철학을 담은 ‘여는 시’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시작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저 자신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기에 그 벽은 제가 먼저 허물어야 한다고 마음먹고 용기 내어 제가 쓴 서툰 ‘여는 시’로 수업의 문을 열었습니다.
자연의 수
자연의 수는
본래 겸손함을 나타내는 것이었을지도
나와 같은 한 사람
값없이 베푸는 나무 두 그루
그리고
공생과 순환에 얽힌
수많은 보이지 않는 생명들
하지만
1등과 2등으로 가른
언젠가부터는
과학의 언어가 되어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연 위에 군림했어
잘게 나누어 신비를 다 안 것처럼 으쓱거렸지만
어느 수학자의 풀리지 않은 가설❶처럼
씨수❷의 근원조차 알지 못한 것은
교만을 멈추라는 이야기일지도
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세상을 다 알았다 말할 수 없어
그러니
우리 배움은 다시 그 처음으로 겸손하게
어머니 대자연님의 지혜에 귀를 기울여
다른 언어로
탐구하고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람이 전하는
봄 내음과 엄마의 숨결 맡을 수 있기를
중학교 1학년 수학의 첫 단원은 소인수분해입니다. 소수(prime number)와 소인수분해를 새롭게 배우면서, 초등학교에서 배운 자연수의 보다 확장된 의미를 학습하는 것입니다. 저는 소인수분해와 문제 풀이를 넘어, 소수가 지닌 불규칙성과 자연수에 스스로를 가두어 온 인간의 경쟁과 탐욕까지 함께 성찰해 보길 바랐습니다.
단원을 마칠 때는 교사의 ‘여는 시’에 응답하여 학생들에게 ‘닫는 시’를 써 보도록 하였습니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 수업을 마무리하는 자투리 시간에 단원을 공부한 소감이나 감상을 자유롭게 적게 했습니다.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닫는 시’를 적었습니다.
수학
변○○
규칙이 많은 수학 세계에서
나타날 때 규칙이 없는 소수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도 이 소수를 아는 듯하다
이것들을 보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단원을 통해 소수의 중요성을 깊이 알게 되었다.
소수의 처음
손○○
모든 수를 존재하게 하는 수
아니,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할지도
뭐든 시작이 중요하다고
사람들은 왜 시작을 잊고 살아갈까?
매번 처음처럼 수를 구성하는 소수처럼
우리도 시작을 잊지 말고 매사에
즐겁게 열정적이게 행복하게,
소수처럼, 처음처럼
학생들은 소수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우리 세계와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시를 지었습니다. 자신들의 본성 속에 있는 시적 감수성이 그대로 살아나는 학생들의 시를 통해 저도 많이 배우게 되어 기뻤습니다.
두 번째 단원은 자연수를 음수, 양수로 확장한 정수와 유리수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사의 ‘여는 시’로 정수와 유리수 수업을 열었습니다.
비움과 채움
올 봄엔
초록이 더 빨리 찾아왔습니다
스산했던 겨울숲에 대한
안타까움은 인간의 오만일 뿐입니다
다 비워낸 후에야 채울 수 있음을
겸손하게 이야기합니다
비움과 채움
슬픔과 기쁨
겸손함과 자랑
……
인간은 양수와 음수로 나누듯
두 가지 감정으로 구분하려 애를 쓰는 듯합니다
자연은 넓게 크게 보라고 하는데
큰 나무들의 잎들이 늦게 피어나는 것은
잡풀들과 낮은 키의 관목들이
먼저 햇빛 받으라는 배려인 것을
더 잘게 나누는 것은
더 깊고 넓게 보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더 세밀하게 분석하고 통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연수로 족하지만
더 넓게 정수와 유리수로 나아갑니다
전체를 보면서
조금은 겸손한 성숙으로 나아가기 위함입니다
수의 확장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이런 확장은 새로운 발견의 기쁨이면서 수학 난제들을 해결하는 동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가능성을 무한한 영역으로 확대하려는 탐욕으로 귀결된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더 넒은 차원의 수학을 배울 때는 겸손함과 비움으로 새롭게 채울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습니다.
양수 음수
정○○
나는 양수일까 음수일까
내가 만약 음수라면 같은 음수를 만나
함께 양수가 되어야지
아무리 부족한 점이 많아도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와
함께하면 극복할 수 있으니까
문자와 식, 정비례와 반비례, 도형 등을 공부하면서도 이런 식으로 우리는 함께 시를 썼습니다. 어떤 학생은 방정식 단원의 해를 꿈에 비유하였고, 어떤 학생은 정비례 반비례 그래프의 특성을 가지고 우리 삶에 빗대어 보았습니다. 기본적인 수학 개념을 학생들이 분명하게 이해한 것 같아 수학 교사로서 기뻤고, 그들의 배움이 확장되어 행복했습니다.
꿈
김□□
x는 미지수다.
구하지 않는 한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숫자를 대입해서 방정식을 풀어보면
x의 값, 해를 알 수 있다
꿈도 마찬가지다.
도전해보지 않으면 그 꿈을 아무도 모르고,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도전과 노력이 숫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꿈을 이루려고
끊임없이 도전(대입)하고, 노력하면
그 꿈의 결과를 알 수 있다.
반비례 그래프
정○○
반비례 그래프는
축, 축에 한없이 가까워지지만
결코 그 축에 닿을 수 없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나는 일도
완벽에 닿을 수 없다
완벽에 한없이 가까워질 뿐이다.
수학에서 도형 단원은 유클리드 기하학에 기반한 엄격한 정의 속에서 논리적인 절차를 주로 배웁니다. 이 단원을 배우면서 학생들은 수많은 통제와 규제, 그리고 자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를 적기도 했습니다.
평면
박○○
한 정다각형만으로는
평면을 채울 수 없는 도형이 있다
예를 들면 정오각형만으로는
평면을 빈틈없이 가득 채울 수 없다
그치만
아무런 도형이나 막 넣으면 안 되나?
꼭 같은 도형이어야 하나?
빈틈을 채워주는 그런 도형도 필요하다
다각형의 정의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 다음 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데 짧은 시 속에 수학적 개념과 자신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정도의 배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각형
김○○
다각형은 선분으로만
둘러싸인 도형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게 수학은
이해 안 감으로 둘러싸여 있다.
평행선과 엇각의 성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첫사랑에 비유한 따뜻한 위로가 되는 시도 있습니다.
엇각 같은 첫사랑
박○○
엇각은 두 직선이
평행할 때만 그 크기가 같다
첫사랑과 나는 평형해서 못 만나지만
속에는 엇각과 같은
크기가 같고 생각이 같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1년 동안 수학을 배우며 함께 쓴 시들을 모았습니다. 미술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의 미술 작품을 파일로 모두 공유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시에 각자의 미술 작품을 곁들여, 학년 말에 시화집 형태의 시집을 발간하였습니다. 학생들이 미술 시간에 만든 작품 중에는 ‘클리핑 마스크(clipping mask)❸’를 활용한 작업이 있습니다. 클리핑 마스크로 본 세상은 틀 안에 갇힌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무한한 세계를 발견하게 합니다. 문제 해결의 과정을 찾아 가는 수학 공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정해진 답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도, 더 넓은 세계를 탐구하는 배움이 있었습니다. 그 배움은 클리핑 마스크 작품들처럼 아이들의 시 속에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지금 다시 펼쳐보아도 여전히 귀하고 아름다운 시들입니다. 비로소 제 수업에도 작고 소박하지만 따뜻한 배려와 아름다움이 스며 있음을 느끼며, 학생들에게 깊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❶ 무한히 많은 소수의 규칙성에 관한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1826~1866)의 아직 풀리지 않은 가설.
❷ 소수(prime number)의 또 다른 이름. 모든 자연수는 소수들의 곱으로 표현할 수 있으므로 그 바탕이 되는 소수를 씨앗의 개념인 씨수(seed number)로 표현한 것.
❸ 클리핑 마스크(clipping mask)는 디자인 작업에서 ‘특정 도형이나 글자 안에 이미지를 가두는 기능’이라고 이해하면 가장 쉽습니다. 쉽게 말해, 액자(마스크)와 사진(이미지)의 관계와 같습니다. 액자의 모양이 원형이면 사진도 원형으로 보이고, 별 모양이면 사진도 별 모양으로 보이게 됩니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 교육공동체 벗 가입하기
에세이
수학 시간에
시로 창을 내었다
권혁천
전 서울 중등 교사
오랫동안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쳐 왔습니다.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수업은 언제나 어려웠습니다. 교직 초반, 젊은 시절의 저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수학을 쉽게 이해하고 문제를 잘 풀게 할 수 있을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습니다. 입시와 경쟁이라는 거대한 벽에 둘러싸인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그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자주 “수학은 왜 배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은 늘 제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저는 제대로 답을 찾지 못하고 교과서와 참고서의 문제 풀이 수업에만 집중한 채 세월에 휩쓸려 한참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관성과 습관에 얽매인 제 수업이 교실에서 생기를 잃은 채 무너져 있음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시험 점수로 판단되는 죽은 지식을 파는 장사꾼처럼, 얄팍한 문제 풀이 방법만 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많은 학생이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수업을 억지로 따라왔고, 용감한 몇몇은 분명한 방식으로 수업을 거부했습니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깊은 자괴감 속에서, 저는 다시 처음부터 수학교육과 수업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수학이라는 과목이 지닌 진정한 배움을 학생들과 어떻게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지, 그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교사들이 굳게 믿는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여러 교육 이론에도 기웃거려 보았습니다. 깊은 울림을 주는 배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현학적인 동어반복에 머물러 수업 현장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제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배움에 이르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분명히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교사 자신만의 수업 철학을 가질 때, 수업은 비로소 조금 더 살아나고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시험 문제 풀이와 입시, 기호와 식에 갇힌 학교 수학 너머의 배움을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수학이라는 학문이 품고 있는 탐구를 통한 개념 이해와 발견의 순수한 기쁨, 편의주의와 효율성을 넘어서는 아름답고 올바른 약속과 규칙, 발견을 정의롭게 활용하는 태도, 그리고 수학과 나와 우리 삶의 관계 같은 것들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런 배움을 향해 새로운 수업을 탐색하고 시도하던 끝에, 마지막으로 제가 선택한 것은 수학 수업과 시의 연결이었습니다.
저는 수학을 과학의 언어에만 가두지 않고, 아름다움의 탐구와 발견으로 이끌고 싶었습니다. 시는 그러한 것들을 서툴게나마 우리의 수준에서 순수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표현을 통해 수학에서의 배움도 한층 깊어지고 더 큰 의미를 갖게 되리라 믿었습니다. 또한 시는 생명과 물질을 포함한 타자에 대한 위무의 역할을 지니고 있기에, 딱딱하게 느껴지는 수학 수업에 따뜻함을 더해 줄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에는 한 과목을 일정 기간 집중해서 배우는 에포크 수업이 있습니다. 그 수업은 교사가 단원에 대한 자신의 수업 철학을 담은 ‘여는 시’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시작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저 자신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기에 그 벽은 제가 먼저 허물어야 한다고 마음먹고 용기 내어 제가 쓴 서툰 ‘여는 시’로 수업의 문을 열었습니다.
자연의 수
자연의 수는
본래 겸손함을 나타내는 것이었을지도
나와 같은 한 사람
값없이 베푸는 나무 두 그루
그리고
공생과 순환에 얽힌
수많은 보이지 않는 생명들
하지만
1등과 2등으로 가른
언젠가부터는
과학의 언어가 되어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연 위에 군림했어
잘게 나누어 신비를 다 안 것처럼 으쓱거렸지만
어느 수학자의 풀리지 않은 가설❶처럼
씨수❷의 근원조차 알지 못한 것은
교만을 멈추라는 이야기일지도
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세상을 다 알았다 말할 수 없어
그러니
우리 배움은 다시 그 처음으로 겸손하게
어머니 대자연님의 지혜에 귀를 기울여
다른 언어로
탐구하고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람이 전하는
봄 내음과 엄마의 숨결 맡을 수 있기를
중학교 1학년 수학의 첫 단원은 소인수분해입니다. 소수(prime number)와 소인수분해를 새롭게 배우면서, 초등학교에서 배운 자연수의 보다 확장된 의미를 학습하는 것입니다. 저는 소인수분해와 문제 풀이를 넘어, 소수가 지닌 불규칙성과 자연수에 스스로를 가두어 온 인간의 경쟁과 탐욕까지 함께 성찰해 보길 바랐습니다.
단원을 마칠 때는 교사의 ‘여는 시’에 응답하여 학생들에게 ‘닫는 시’를 써 보도록 하였습니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 수업을 마무리하는 자투리 시간에 단원을 공부한 소감이나 감상을 자유롭게 적게 했습니다.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닫는 시’를 적었습니다.
수학
변○○
규칙이 많은 수학 세계에서
나타날 때 규칙이 없는 소수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도 이 소수를 아는 듯하다
이것들을 보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단원을 통해 소수의 중요성을 깊이 알게 되었다.
소수의 처음
손○○
모든 수를 존재하게 하는 수
아니,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할지도
뭐든 시작이 중요하다고
사람들은 왜 시작을 잊고 살아갈까?
매번 처음처럼 수를 구성하는 소수처럼
우리도 시작을 잊지 말고 매사에
즐겁게 열정적이게 행복하게,
소수처럼, 처음처럼
학생들은 소수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우리 세계와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시를 지었습니다. 자신들의 본성 속에 있는 시적 감수성이 그대로 살아나는 학생들의 시를 통해 저도 많이 배우게 되어 기뻤습니다.
두 번째 단원은 자연수를 음수, 양수로 확장한 정수와 유리수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사의 ‘여는 시’로 정수와 유리수 수업을 열었습니다.
비움과 채움
올 봄엔
초록이 더 빨리 찾아왔습니다
스산했던 겨울숲에 대한
안타까움은 인간의 오만일 뿐입니다
다 비워낸 후에야 채울 수 있음을
겸손하게 이야기합니다
비움과 채움
슬픔과 기쁨
겸손함과 자랑
……
인간은 양수와 음수로 나누듯
두 가지 감정으로 구분하려 애를 쓰는 듯합니다
자연은 넓게 크게 보라고 하는데
큰 나무들의 잎들이 늦게 피어나는 것은
잡풀들과 낮은 키의 관목들이
먼저 햇빛 받으라는 배려인 것을
더 잘게 나누는 것은
더 깊고 넓게 보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더 세밀하게 분석하고 통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연수로 족하지만
더 넓게 정수와 유리수로 나아갑니다
전체를 보면서
조금은 겸손한 성숙으로 나아가기 위함입니다
수의 확장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이런 확장은 새로운 발견의 기쁨이면서 수학 난제들을 해결하는 동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가능성을 무한한 영역으로 확대하려는 탐욕으로 귀결된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더 넒은 차원의 수학을 배울 때는 겸손함과 비움으로 새롭게 채울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습니다.
양수 음수
정○○
나는 양수일까 음수일까
내가 만약 음수라면 같은 음수를 만나
함께 양수가 되어야지
아무리 부족한 점이 많아도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와
함께하면 극복할 수 있으니까
문자와 식, 정비례와 반비례, 도형 등을 공부하면서도 이런 식으로 우리는 함께 시를 썼습니다. 어떤 학생은 방정식 단원의 해를 꿈에 비유하였고, 어떤 학생은 정비례 반비례 그래프의 특성을 가지고 우리 삶에 빗대어 보았습니다. 기본적인 수학 개념을 학생들이 분명하게 이해한 것 같아 수학 교사로서 기뻤고, 그들의 배움이 확장되어 행복했습니다.
꿈
김□□
x는 미지수다.
구하지 않는 한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숫자를 대입해서 방정식을 풀어보면
x의 값, 해를 알 수 있다
꿈도 마찬가지다.
도전해보지 않으면 그 꿈을 아무도 모르고,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도전과 노력이 숫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꿈을 이루려고
끊임없이 도전(대입)하고, 노력하면
그 꿈의 결과를 알 수 있다.
반비례 그래프
정○○
반비례 그래프는
축, 축에 한없이 가까워지지만
결코 그 축에 닿을 수 없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나는 일도
완벽에 닿을 수 없다
완벽에 한없이 가까워질 뿐이다.
수학에서 도형 단원은 유클리드 기하학에 기반한 엄격한 정의 속에서 논리적인 절차를 주로 배웁니다. 이 단원을 배우면서 학생들은 수많은 통제와 규제, 그리고 자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를 적기도 했습니다.
평면
박○○
한 정다각형만으로는
평면을 채울 수 없는 도형이 있다
예를 들면 정오각형만으로는
평면을 빈틈없이 가득 채울 수 없다
그치만
아무런 도형이나 막 넣으면 안 되나?
꼭 같은 도형이어야 하나?
빈틈을 채워주는 그런 도형도 필요하다
다각형의 정의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 다음 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데 짧은 시 속에 수학적 개념과 자신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정도의 배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각형
김○○
다각형은 선분으로만
둘러싸인 도형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게 수학은
이해 안 감으로 둘러싸여 있다.
평행선과 엇각의 성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첫사랑에 비유한 따뜻한 위로가 되는 시도 있습니다.
엇각 같은 첫사랑
박○○
엇각은 두 직선이
평행할 때만 그 크기가 같다
첫사랑과 나는 평형해서 못 만나지만
속에는 엇각과 같은
크기가 같고 생각이 같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1년 동안 수학을 배우며 함께 쓴 시들을 모았습니다. 미술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의 미술 작품을 파일로 모두 공유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시에 각자의 미술 작품을 곁들여, 학년 말에 시화집 형태의 시집을 발간하였습니다. 학생들이 미술 시간에 만든 작품 중에는 ‘클리핑 마스크(clipping mask)❸’를 활용한 작업이 있습니다. 클리핑 마스크로 본 세상은 틀 안에 갇힌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무한한 세계를 발견하게 합니다. 문제 해결의 과정을 찾아 가는 수학 공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정해진 답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도, 더 넓은 세계를 탐구하는 배움이 있었습니다. 그 배움은 클리핑 마스크 작품들처럼 아이들의 시 속에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지금 다시 펼쳐보아도 여전히 귀하고 아름다운 시들입니다. 비로소 제 수업에도 작고 소박하지만 따뜻한 배려와 아름다움이 스며 있음을 느끼며, 학생들에게 깊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❶ 무한히 많은 소수의 규칙성에 관한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1826~1866)의 아직 풀리지 않은 가설.
❷ 소수(prime number)의 또 다른 이름. 모든 자연수는 소수들의 곱으로 표현할 수 있으므로 그 바탕이 되는 소수를 씨앗의 개념인 씨수(seed number)로 표현한 것.
❸ 클리핑 마스크(clipping mask)는 디자인 작업에서 ‘특정 도형이나 글자 안에 이미지를 가두는 기능’이라고 이해하면 가장 쉽습니다. 쉽게 말해, 액자(마스크)와 사진(이미지)의 관계와 같습니다. 액자의 모양이 원형이면 사진도 원형으로 보이고, 별 모양이면 사진도 별 모양으로 보이게 됩니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 교육공동체 벗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