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호[기고] 시험지 밖, 관계와 관찰을 통한 진단 활동 상상하기 | 전세란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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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험지 밖,

관계와 관찰을 통한

진단 활동 상상하기

 


전세란 junseran@gmail.com

본지 편집위원,

서울 초등 교사


 



신학기가 3주 정도 지났다. 15년 차쯤 된 올해는 유난히 새 학기를 시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작년 학생들과 찐하게 학급 생활을 하고 눈물의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설을 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 학기를 맞아 그런지 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고생했다. 첫날, 아이들 역시 3학년 생활을 잊지 못한 채 긴장한 기색으로 새 교실로 들어왔다.


새 학급의 학생 명부를 받아 들 때, 몇 명의 어린이 이름 뒤에는 별이 달려 있었다. 별의 이유는 보호자의 강한 민원이기도 하고, 학습 부진이기도 하고, 신경 다양성 측면의 이유이기도 하다. 전 학년 담임 교사들은 학급에서 좀 더 신경을 썼던 학생들을 표시한다. 학급 배정 시 한 학급에 몰리지 않도록 균형 있게 배정한다. 나는 웬만하면 전 학년 선생님들에게 학생에 대한 정보를 미리 묻지 않은 채 학생을 만나 보고 알아 가는 편이다. 꼭 필요한 정보는 자연스레 전해진다. 별의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들을 직접 몇 주간 살펴보고, 영 소통이 어렵거나 파악이 힘든 경우, 좀 더 입체적인 정보가 필요한 때가 되어서야 여러 경로를 통해 이해의 과정을 넓혀 간다.


학기 초는 1년 살이를 잘 꾸리기 위한 굉장히 중요한 기간이다. 그 어느 때보다 유심히 아이들을 관찰하고 정보를 모은다. 누가 아침에 가장 먼저 오는지, 수업 시간에 손 들고 발표하는 걸 두려워하지는 않는지, 놀이 시간에는 어떤 활동을 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지, 모둠 활동을 할 때는 어떻게 의견을 나누는지 세심하게 살피고 기록한다. 아이들 역시 교사와 친구들을 살핀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어떤 상황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지, 배움에 있어서 무엇을 강조하는지, 어떤 친구가 나와 성향이 비슷한지 면밀히 탐색하고 ‘진단’한다. 함께 맞추어 살아가기 위한 진단은 쌍방향으로 이루어지고 관계 맺음의 역동 안에서 끊임없는 과정을 요한다.


 

관계를 지워 버린 ‘진단’

 

한편, 교육청이 요구하는 학기 초 학생 ‘진단’의 형태는 매우 납작하다. 특히 올해 서울시교육청에서는 기초학력 진단 검사를 지필 평가로 한정했고, 국가 차원에서 마련한 일제고사 식의 평가지인 기초학력 진단 검사나 맞춤형 학업 성취도 자율 평가지를 활용할 것을 권장했다. ‘책임교육학년’이라는 초3과 중1은 둘 중 하나를 필수로 실시하도록 하였으며, 그중 맞춤형 학업 성취도 자율 평가(이하 맞자평)를 실시하는 학교에는 학습 지원 대상 아동을 지원하는 학습 지원 튜터를 우선 배정하겠다고 안내하여 공분을 샀다. 사실상 학습 지원 대상 아동이 많아 지원이 필요한 학교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까웠다. (이후 서울시교육청은 전교조 서울지부와의 면담(2026년 3월 6일)을 통해 지필 평가를 관찰, 면담 등이 포함된 평가 방식으로 수정하고 맞자평 실시 여부와 상관없이 학습 지원 튜터를 순차적으로 배치하겠다고 답변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논의 없이 기초학력 진단 검사지를 활용한 일괄 진단 평가를, 3학년은 추가로 맞자평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4학년은 개학 이튿날부터 이틀 동안 국어, 수학, 사회, 영어, 과학 다섯 과목의 평가를 보기로 했다. 진단 평가 시험지와 답안지가 교실로 배부되면서 학급에 있는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현재 맡은 4학년 7학급 중 5학급이 통합 학급이다. 유난히 특수교육대상자가 많은 학년이고, 모두 발달 장애 진단을 받은 어린이들이다. 그중 두 아이는 눈맞춤이 잘 되지 않고 상동 행동과 반향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졌다. 학생들은 개인 대형으로 앉아 가림판을 펴고 조용히 ‘시험’의 형태로 진단 평가를 숨죽여 보았다. 일부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에게는 그 40분을 조용히 버티고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곤욕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수 학급 담당 교사와 기초학력 담당 부장에게 대체 진단지나 활동이 없는지 문의했지만, ‘4학년 학생들 모두가 보는 일괄 평가고 첫2주간은 통합학급 적응 기간이기에 교실에서 똑같은 평가지로 진단 검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을 뿐이었다.


통합학급인 각 교실에서는 일제식 지필 평가 방식의 진단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담임 교사별로 알아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반 어린이는 그나마 조용히 만들기를 하며 진단 평가 시간을 버틸 수 있었지만, 한 학급의 특수교육대상 어린이는 조용한 시간이 길어지면 큰 소리를 내고 힘들어하여, 담임 교사가 자신의 어린 자녀가 하고 있는 색칠 공부 거리를 잔뜩 챙겨 오기도 했고, 또 다른 학급의 아이는 큰 소리로 발을 계속 굴러서 활동 보조인과 함께 학교 산책을 다녀오도록 했다고 하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교육 형평성을 앞세워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평가를 실시하게 하였지만, 학급별 결과를 제출할 때 특수교육대상 아동은 비고란에 ‘특수’라고 적고 점수를 미기재했다는 점이다. 도달 여부에 대한 가정 통지도 특수교육대상 아동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진단 검사라는 이름으로 마련된 일괄적 ‘진단’의 시간 속에서 특수교육대상 학생은 그냥 자리만 채우고 앉아 있었을 뿐 완전히 배제되었다.


특수교육대상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도 일괄적 지필 평가로 이루어지는 진단 검사의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학생의 정서 상태나 학습 태도 등 다른 어떤 요인도 고려되지 않고 시험 점수로만 도달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나는 외려 평가를 앞두거나 진행하는 시간 동안 아이가 보이는 정의적인 영역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 시험 점수가 몇 점인지 끊임없이 묻는 아이, 시험을 잘 못 보면 부모님에게 혼난다며 불안에 떠는 아이, 긴장되어 자꾸 집중력을 잃고 시간 내에 다 풀지 못하는 아이, 시험 내내 연필을 질근질근 씹는 아이 등 그 시간 속의 아이들을 관찰하며 얻는 정보가 내게는 학급 살이를 계획하고 학생을 맞춤형으로 지도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시험의 형태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한눈에 알 수는 있지만, 점수로 판정된 ‘미도달 학생’에게 학교에서 제공되는 것은 ‘방과 후 학습 지도 교실’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뿐이다. 점수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공부를 못하는 아이를 구분하고 보충 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끝이다. 그러나 대체로 비슷한 아이들이 매년 반복적으로 ‘미도달 학생’에 이름을 올리는 걸 보면 납작한 진단과 형식적인 처방이 그다지 효과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점수로 환원될 수 없는 아이들

 

학기 초의 진단은 단순 ‘평가’가 아니라 훨씬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활동’의 형태로 꽤 긴 기간 마련되어야 한다. 사지선다형 국어 진단 평가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왔지만 글쓰기 표현에서 자기 생각을 펼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맞춤법을 왕창 틀리는 아이도 있고, 진단 검사 시험을 한 문제도 풀지 못했던 특수교육대상 어린이는 과학 시간에 자석 단원 공부를 시작하니 유튜브에서 봤다면서 극의 성질을 줄줄 말하고 실험에도 적극 참여했다. 수학 교과의 경우 각 단원 공부를 시작하기 전 학생들이 이전 학습에서 구멍 난 부분을 발견하는데, 영역별로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내용의 편차가 커서 진단 평가 도달 여부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 과목 높은 점수를 보인 어린이 중 한 명은 모둠 활동을 할 때 제 의견만 이야기해서 친구들과 갈등을 일으킬 때가 잦고, 자기가 제일 낮은 점수일 거라며 시험 내내 위축되었던 한 어린이는 앞으로 우리 반의 ‘든든이’가 되겠다는 다짐을 내보이며 교실의 일을 안 보이는 곳에서 솔선수범 살피며 척척 챙긴다.


이 모든 정보들을 모아 모둠을 구성하고 수업 활동의 방향을 계획하며 교실에서 어떤 가치를 나눌지 고심하고 조정한다. 독서 습관이 부족한 아이들을 모아 독서 동아리를 계획하기도 하고, 한 아이와는 생활 습관을 개선하기 위한 약속을 정하기도 하며, 모둠 활동을 할 때 어떻게 평화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지 연습하는 수업을 해 보기도 한다. 이는 점수로는 파악하기 힘든 교실 속 상황과 아이들의 개별적 특성을 반영한 처방이다. 이 또한 끊임없이 조정되고 조율해 갈 것이다.


지필 평가가 진단 활동의 한 형태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사지선다형 일괄적 지필 평가만을 강조하는 진단 검사 지침은 ‘역량과 성장 중심 평가’를 앞세우면서 사실상 학생의 능력을 주요 과목의 문제 풀이 능력으로 협소하게 국한한 것이다. 미도달 학생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이런 형태의 평가는 보호자와 학생, 교사 모두 점수 자체에 연연하게 만든다. 일괄적 지필 평가가 보여 주는 점수는 이 학생이 사교육을 얼마나 잘 받고 있으며 문제 풀이에 얼마나 능한지 보여 줄 뿐이다. 교실 장면에서의 개별 학생들의 다양한 역량과 정서는 사지선다형 평가 점수로는 결코 확인할 수 없다. 진단 검사의 형태가 아니라 활동과 관찰의 형태로 기초학력의 범위를 확장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학생의 온전한 성장을 돕기 위한 진단은 끊임없는 과정 중에 있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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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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