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통제와 낙인의 도구, 상벌점제
이은선 leesun131@ewha.ac.kr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책임활동가
학교는 인간이 삶의 일부를 살아가는 공간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단지 지식과 기술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 나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법,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을 익힌다. 이상적인 학교란 서로를 존중하며 다양한 생각과 삶의 방식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현실의 학교는 그런 이상과 거리가 멀다. 특히 상벌점제와 같은 요소는 학교를 복종과 통제의 공간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상벌점제는 학생의 일상을 점수화하고, 점수를 통해 존재의 가치를 판단하는 구조다. 이 점수는 단지 숫자가 아니라 통제와 복종을 강제하는 장치이며, 학생의 잘못이나 선행을 맥락 없이 기계적으로 기록하고 누적시킨다. 이렇게 누적된 점수는 처벌의 근거가 되며, 학교생활기록부를 통해 입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점수를 공개함으로써 낙인 효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상벌점제는 체벌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거세지던 시기에 체벌의 대안으로서 대두하였고, ‘비폭력’이라는 외양을 띠고 학교의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상벌점제는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지 않더라도, 그 실제 적용과 집행 과정에서 학생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침해하고, 감시와 낙인의 논리를 교육 현장에 고착화시키는 제도다. 이 글을 통해 단순히 학생들에게 점수를 부과하기에 교육적이지 않다는 막연한 비판을 넘어서, 상벌점제가 어떻게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고 학교 공간을 왜곡시키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상벌점제 도입의 역사와 맥락
학교가 학생의 생활을 점수로 통제하는 제도 자체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중 지금과 같은 상벌점제가 형태를 갖추고 학교에서 시행된 것은 1990년대 후반 이후다. 당시 생활 지도 강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학교들은 학생의 사소한 언행까지 관리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2000년대 초에는 ‘학생 생활 규정’이 전국적으로 강화되었고, 상벌점제는 학교 현장에서 일상적인 관리 도구로 자리 잡았다.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광주·서울·전북 등지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고, 2011년부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등으로 학교 체벌에 대한 유의미한 제한이 시작되었다. 교육부·교육청들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생활평점제’, ‘그린마일리지’ 같은 이름의 상벌점제를 체벌의 대안으로 적극 권장하고 있었다. 체벌이 제한되자 대부분 학교에서 상벌점제를 도입, 시행했다.
그러면서 상벌점제의 문제점도 본격적으로 부각되고 비판받기 시작했다. 청소년인권운동은 이 제도가 실상 학생을 ‘지도’하거나 ‘교육’하는 것이 아닌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전제하고 자율성과 주체성을 억압하는 도구라고 지적해 왔다. 상벌점제로 인해 규율과 단속이 더 심해졌다거나 퇴학 등의 중징계가 늘어났다는 사례 제보가 이어졌다.❶ 상벌점제는 단순한 생활 지도 차원을 넘어, 학교생활기록부와 연계되면서 입시와도 직접 연결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벌점 몇 점 때문에 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렸다.❷
잘 보이면 상점, 눈 밖에 나면 벌점
상벌점제 아래서 학생은 개별적인 맥락이나 내면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규칙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를 기준으로 판단되는 대상이다. 말투, 옷차림, 머리 모양, 태도 등 일상의 사소한 요소들이 점수화되고, 이를 통해 학생은 평가된다. 규칙이 강조될수록 학생들은 자신을 점수 기준 표에 맞춰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는 곧 자기표현의 제한이자, 존재의 축소다.
상벌점제에 대해 학생들이 자주 지적하는 문제는 그 적용이 불공정하고 자의적이라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체벌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도입되었다는 것은 체벌과 유사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사에 의해 즉각적, 일방적으로 부과되는 상벌점은 자의적 통제를 가능케 하는 장치다. 이의 제기 절차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며 학생의 상황과 맥락에 대한 변호나 이해도 잘 이루어질 수 없다. 반면 교사의 편견이나 주관은 개입되기 쉽다. ‘교사 지시/지도 불응’을 벌점 대상으로, ‘예의 바른 태도’ 등 주관적인 기준을 상점 대상으로 명시한 경우도 매우 많다. 결국 상벌점제는 학생들에게 불공정하다는 인식을 주기 쉽고 불신을 키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법을 배운다. 말수를 줄이고, 감정을 조절하고, 표정을 다듬고, 눈치를 본다. ‘이 행동이 나와 남에게 바람직한가’보다 ‘걸리지는 않을까’를 고민하게 되고 ‘왜’라는 질문은 사라진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침묵과 순응이다. 상벌점제는 촘촘한 기준 표와 숫자로 포장되어 있어 마치 공정하고 객관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가능케 하고 눈치 보기를 학습시킨다.
나는 학교에서 청소년인권과 관련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문제가 많은 학생’으로 분류되었다. 교사들 사이에서 ‘눈엣가시’로 여겨졌고, 복장 문제 등 사소한 이유로도 집중적인 감시와 지적을 받았다. 똑같은 파마를 했더라도 성적이 좋은 친구는 용인되었지만, 나는 ‘규칙 위반’으로 불이익을 받곤 했다. 이유를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규칙이니까”라는 말뿐이었다. 규칙은 맥락을 설명하지 않고, 해석의 여지는 교사에게만 있다. 이런 경험은 나에게 “학교에서 지켜야 할 건 존엄이 아니라 눈치”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감시와 낙인을 조장하는 제도
물론 상벌점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연구도 있다. 예컨대 이현숙(2013)은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집단 상벌점제가 학생들의 학교 적응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❸ 그러나 이 연구는 상벌점제가 작동하는 구조적 맥락과 폭넓은 부작용은 고려하지 않았다. 상벌점제가 낳을 수 있는 심리적 위축, 불안, 자기검열 같은 부정적인 효과는 아예 평가 항목에서 빠져 있고, 비판적 접근 없이 표면적 효과만을 측정한 것이다.
상벌점제의 부작용은 학교를 감시와 위계의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상벌점 체계는 단순히 학생 개인의 행동을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 간 위계 구조를 고착화한다. 상점이 많은 학생은 ‘모범생’이라는 신뢰를 얻는 반면, 벌점이 많은 학생은 ‘문제아’로 낙인찍히곤 한다. 이는 개인의 인격이 아닌, 규칙에 대한 복종 여부로 사람을 판단하는 문화를 강화한다.
더 나아가 상벌점제는 학생 간 감시와 고발을 제도화한다. 예를 들어 어떤 학교에서는 ‘청소 시간에 친구가 걸레질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고해 상점을 받을 수 있고, ‘다른 학생의 학칙 위반을 신고하면 상점 1점’ 같은 규정이 존재한다. 심지어 몇몇 학교에서는 또래 학생의 위반을 신고하지 않으면 연대 책임으로 벌점을 준 사례도 존재한다. 선도부 등의 제도와 결합하여 선도부원이 다른 학생의 용의 복장 규정 위반에 대해 벌점을 부과하는 사례도 있다. 이러한 제도는 학생들로 하여금 친구를 협력자이자 동료가 아닌, 감시와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게 만든다. 공동체의 기반이 되어야 할 연대와 신뢰가 저해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로 인해 학교는 ‘함께 배우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곳’으로 전락하게 된다. 학생은 교사의 시선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시선에도 예민해지며,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검열하게 된다.
상벌점제를 공개적으로 시행할 때 어떤 심리적 고통과 낙인을 남길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2021년 전북 전주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시행된 이른바 ‘호랑이 스티커’ 사례다. 이 학급의 교사는 생활 수칙을 어긴 학생의 이름 아래 칠판에 호랑이 캐릭터 모양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 공개적으로 누적시켰다. 스티커가 쌓이면 교실 청소를 하는 등 처벌을 받았는데, 칠판에 붙은 스티커가 많아질수록 그 학생은 학급 내에서 낙인찍혔고, 급식 순서에서 밀리거나 공개적으로 지적받는 등 부정적인 처우를 경험했다. 특히 동료 교사의 자녀가 ‘레드카드 권한’을 위임받아 다른 학생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점은 이 제도가 학생 간 감시 권력 구조를 내면화시키는 수단으로 작동했음을 드러낸다. 이로 인해 일부 학생은 PTSD, 틱장애, 우울 및 불안 증상을 호소하여 치료를 받아야 했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현대 사회의 권력은 단순히 누군가가 명령하고 누군가가 복종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❹ 오히려 감시라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를 조정하고,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스스로를 통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상벌점제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누군가가 곁에서 직접 지시하지 않아도, 교사와 학생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규칙을 지키려 애쓴다. 벌점을 받지 않기 위해, 학교생활기록부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학생은 행동은 물론 감정이나 생각마저 조심스러워진다. 학교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말하는 공간이 아니라, ‘감시받는 존재’로 살아가는 방식을 익히는 공간이 되어 버린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스티그마》에서, 사회가 특정한 사람들에게 ‘문제 있는 사람’,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는 낙인을 붙이며, 그 낙인이 사람의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한다.❺ 낙인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사회적 힘이다. 상벌점제는 점수를 기록, 누적하기 때문에 학생에게 낙인을 남긴다. 상벌점을 공개 게시하는 경우 이런 효과는 더 심해진다. 이처럼 낙인은 외부의 시선에 머물지 않고, 학생 스스로가 자신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며 자기검열과 위축을 낳는다. 고프먼의 이론은 이러한 현실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하며, 상벌점제는 단지 행동을 통제하는 제도를 넘어, 존재를 부정하고 정체성에 상처를 남기는 장치가 된다.
반인권·반민주적 학교의 유지와 강화
상벌점제가 더욱 문제가 된 이유는 많은 학교의 학칙이나 문화, 운영 방식의 문제가 그대로인 채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2010년 전후는 물론 여전히 많은 학교가 학생의 신체, 용의 복장, 사생활, 표현 등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학칙을 두고 있다. 교사가 학생을 통제해야 한다는 인식과 교육 방식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체벌이 제한되자, 많은 학교에서 성찰과 변화 없이 체벌을 대신할 수단으로 상벌점제를 도입했다. 그만큼 상벌점제는 촘촘하고 강력한 처벌 수단이 되었다.
상벌점제로 인해 처벌이 오히려 더 가혹해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벌점이 누적되면 징계나 더 직접적 처벌로 이어지므로, 지각이나 복장 규정 위반과 같은 사소한 규칙 위반이 쌓여 중징계를 받게 된 것이었다. 상벌점제의 낙인 효과까지 더해져, 일부 학교는 벌점을 ‘문제 학생’들을 솎아 내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상벌점제가 학교의 반인권·반민주적 문제점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상벌점제가 비교육적인 것은 단순히 점수를 매기기 때문이 아니다. 제도의 목적과 효과가 감시와 통제의 강화에 있기 때문이다. 상벌점제는 어떤 행동이 왜 문제인지 설명하지 않고,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처벌을 정당화한다. 학생이 ‘문제 행동’을 했을 때 그 이유와 맥락을 살피고 함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상벌점을 부과한다. 그러면서 학생은 ‘남에게 도움이 되고 보람차서’가 아니라, ‘상점을 받기 위해’, ‘벌점을 깎기 위해’ 선행을 하게 된다. 규칙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벌점을 피하기 위해’ 지키게 된다. 규칙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수용해서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처벌을 피하거나 보상을 얻기 위한 외적 동기로 움직이게 만든다면 그것을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교육은 사고하고 질문하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상벌점제가 지배하는 학교는 그런 공간이 될 수 없다. 학교는 규칙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함께 고민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육은 순종을 강요하는 시스템이 되어 버린다. 상벌점제는 그 시스템의 핵심이다. 교육은 자유와 존엄, 자율과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감시와 통제의 체계로는 도달할 수 없는 길이다.
더 나은 학교를 상상하며
시인 유하는 말한다. “나는 내 인생의 고작 1할을 학교에서 배웠다. 그 1할조차도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이었다.” 상벌점제가 가르치는 것도 바로 그 굴복이다. 우리는 상상력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하며, 교육은 그 가능성을 여는 장이어야 한다.
학생은 점수로 매겨질 수 없는 존재다. 행동 하나하나를 수치화해 통제하고 분류하는 제도는, 결국 교육의 이름으로 존엄을 침해하고 삶을 억압하는 구조를 정당화할 뿐이다. 상벌점제를 폐지하자는 요구는 단지 하나의 제도 개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교육을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교육은 통제가 아니라 이해에서, 처벌이 아니라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학생을 규칙의 대상이 아닌 맥락과 이야기를 지닌 주체로 바라보는 학교, 감시가 아니라 신뢰를 중심에 두는 공동체에서 진정한 배움은 가능하다. 우리는 더 나은 학교를 상상한다. 실수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질문이 억압받지 않으며, 각자의 다름이 배척의 이유가 되지 않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관리 수단’이 아니라, 존엄을 중심에 둔 교육의 재구성이다.
❶ “체벌 떠난 자리에 공포의 벌점”, 〈한겨레〉, 2010년 12월 30일.
❷ “벌점을 우습게 여기면 대학 가는 길 ‘빨간불’”, 〈동아일보〉, 2010년 12월 14일.
❸ 이현숙(2013), 〈집단상벌점제가 아동의 학교적응에 미치는 영향: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13(4), 518-528쪽.
❸ 미셸 푸코, 오생근 옮김(2016),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❺ 어빙 고프먼, 윤선길 옮김(2009), 《스티그마》, 한신대학교출판부.
기고
통제와 낙인의 도구, 상벌점제
이은선 leesun131@ewha.ac.kr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책임활동가
학교는 인간이 삶의 일부를 살아가는 공간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단지 지식과 기술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 나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법,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을 익힌다. 이상적인 학교란 서로를 존중하며 다양한 생각과 삶의 방식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현실의 학교는 그런 이상과 거리가 멀다. 특히 상벌점제와 같은 요소는 학교를 복종과 통제의 공간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상벌점제는 학생의 일상을 점수화하고, 점수를 통해 존재의 가치를 판단하는 구조다. 이 점수는 단지 숫자가 아니라 통제와 복종을 강제하는 장치이며, 학생의 잘못이나 선행을 맥락 없이 기계적으로 기록하고 누적시킨다. 이렇게 누적된 점수는 처벌의 근거가 되며, 학교생활기록부를 통해 입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점수를 공개함으로써 낙인 효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상벌점제는 체벌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거세지던 시기에 체벌의 대안으로서 대두하였고, ‘비폭력’이라는 외양을 띠고 학교의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상벌점제는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지 않더라도, 그 실제 적용과 집행 과정에서 학생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침해하고, 감시와 낙인의 논리를 교육 현장에 고착화시키는 제도다. 이 글을 통해 단순히 학생들에게 점수를 부과하기에 교육적이지 않다는 막연한 비판을 넘어서, 상벌점제가 어떻게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고 학교 공간을 왜곡시키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상벌점제 도입의 역사와 맥락
학교가 학생의 생활을 점수로 통제하는 제도 자체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중 지금과 같은 상벌점제가 형태를 갖추고 학교에서 시행된 것은 1990년대 후반 이후다. 당시 생활 지도 강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학교들은 학생의 사소한 언행까지 관리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2000년대 초에는 ‘학생 생활 규정’이 전국적으로 강화되었고, 상벌점제는 학교 현장에서 일상적인 관리 도구로 자리 잡았다.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광주·서울·전북 등지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고, 2011년부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등으로 학교 체벌에 대한 유의미한 제한이 시작되었다. 교육부·교육청들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생활평점제’, ‘그린마일리지’ 같은 이름의 상벌점제를 체벌의 대안으로 적극 권장하고 있었다. 체벌이 제한되자 대부분 학교에서 상벌점제를 도입, 시행했다.
그러면서 상벌점제의 문제점도 본격적으로 부각되고 비판받기 시작했다. 청소년인권운동은 이 제도가 실상 학생을 ‘지도’하거나 ‘교육’하는 것이 아닌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전제하고 자율성과 주체성을 억압하는 도구라고 지적해 왔다. 상벌점제로 인해 규율과 단속이 더 심해졌다거나 퇴학 등의 중징계가 늘어났다는 사례 제보가 이어졌다.❶ 상벌점제는 단순한 생활 지도 차원을 넘어, 학교생활기록부와 연계되면서 입시와도 직접 연결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벌점 몇 점 때문에 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렸다.❷
잘 보이면 상점, 눈 밖에 나면 벌점
상벌점제 아래서 학생은 개별적인 맥락이나 내면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규칙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를 기준으로 판단되는 대상이다. 말투, 옷차림, 머리 모양, 태도 등 일상의 사소한 요소들이 점수화되고, 이를 통해 학생은 평가된다. 규칙이 강조될수록 학생들은 자신을 점수 기준 표에 맞춰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는 곧 자기표현의 제한이자, 존재의 축소다.
상벌점제에 대해 학생들이 자주 지적하는 문제는 그 적용이 불공정하고 자의적이라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체벌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도입되었다는 것은 체벌과 유사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사에 의해 즉각적, 일방적으로 부과되는 상벌점은 자의적 통제를 가능케 하는 장치다. 이의 제기 절차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며 학생의 상황과 맥락에 대한 변호나 이해도 잘 이루어질 수 없다. 반면 교사의 편견이나 주관은 개입되기 쉽다. ‘교사 지시/지도 불응’을 벌점 대상으로, ‘예의 바른 태도’ 등 주관적인 기준을 상점 대상으로 명시한 경우도 매우 많다. 결국 상벌점제는 학생들에게 불공정하다는 인식을 주기 쉽고 불신을 키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법을 배운다. 말수를 줄이고, 감정을 조절하고, 표정을 다듬고, 눈치를 본다. ‘이 행동이 나와 남에게 바람직한가’보다 ‘걸리지는 않을까’를 고민하게 되고 ‘왜’라는 질문은 사라진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침묵과 순응이다. 상벌점제는 촘촘한 기준 표와 숫자로 포장되어 있어 마치 공정하고 객관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가능케 하고 눈치 보기를 학습시킨다.
나는 학교에서 청소년인권과 관련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문제가 많은 학생’으로 분류되었다. 교사들 사이에서 ‘눈엣가시’로 여겨졌고, 복장 문제 등 사소한 이유로도 집중적인 감시와 지적을 받았다. 똑같은 파마를 했더라도 성적이 좋은 친구는 용인되었지만, 나는 ‘규칙 위반’으로 불이익을 받곤 했다. 이유를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규칙이니까”라는 말뿐이었다. 규칙은 맥락을 설명하지 않고, 해석의 여지는 교사에게만 있다. 이런 경험은 나에게 “학교에서 지켜야 할 건 존엄이 아니라 눈치”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감시와 낙인을 조장하는 제도
물론 상벌점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연구도 있다. 예컨대 이현숙(2013)은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집단 상벌점제가 학생들의 학교 적응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❸ 그러나 이 연구는 상벌점제가 작동하는 구조적 맥락과 폭넓은 부작용은 고려하지 않았다. 상벌점제가 낳을 수 있는 심리적 위축, 불안, 자기검열 같은 부정적인 효과는 아예 평가 항목에서 빠져 있고, 비판적 접근 없이 표면적 효과만을 측정한 것이다.
상벌점제의 부작용은 학교를 감시와 위계의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상벌점 체계는 단순히 학생 개인의 행동을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 간 위계 구조를 고착화한다. 상점이 많은 학생은 ‘모범생’이라는 신뢰를 얻는 반면, 벌점이 많은 학생은 ‘문제아’로 낙인찍히곤 한다. 이는 개인의 인격이 아닌, 규칙에 대한 복종 여부로 사람을 판단하는 문화를 강화한다.
더 나아가 상벌점제는 학생 간 감시와 고발을 제도화한다. 예를 들어 어떤 학교에서는 ‘청소 시간에 친구가 걸레질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고해 상점을 받을 수 있고, ‘다른 학생의 학칙 위반을 신고하면 상점 1점’ 같은 규정이 존재한다. 심지어 몇몇 학교에서는 또래 학생의 위반을 신고하지 않으면 연대 책임으로 벌점을 준 사례도 존재한다. 선도부 등의 제도와 결합하여 선도부원이 다른 학생의 용의 복장 규정 위반에 대해 벌점을 부과하는 사례도 있다. 이러한 제도는 학생들로 하여금 친구를 협력자이자 동료가 아닌, 감시와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게 만든다. 공동체의 기반이 되어야 할 연대와 신뢰가 저해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로 인해 학교는 ‘함께 배우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곳’으로 전락하게 된다. 학생은 교사의 시선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시선에도 예민해지며,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검열하게 된다.
상벌점제를 공개적으로 시행할 때 어떤 심리적 고통과 낙인을 남길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2021년 전북 전주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시행된 이른바 ‘호랑이 스티커’ 사례다. 이 학급의 교사는 생활 수칙을 어긴 학생의 이름 아래 칠판에 호랑이 캐릭터 모양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 공개적으로 누적시켰다. 스티커가 쌓이면 교실 청소를 하는 등 처벌을 받았는데, 칠판에 붙은 스티커가 많아질수록 그 학생은 학급 내에서 낙인찍혔고, 급식 순서에서 밀리거나 공개적으로 지적받는 등 부정적인 처우를 경험했다. 특히 동료 교사의 자녀가 ‘레드카드 권한’을 위임받아 다른 학생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점은 이 제도가 학생 간 감시 권력 구조를 내면화시키는 수단으로 작동했음을 드러낸다. 이로 인해 일부 학생은 PTSD, 틱장애, 우울 및 불안 증상을 호소하여 치료를 받아야 했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현대 사회의 권력은 단순히 누군가가 명령하고 누군가가 복종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❹ 오히려 감시라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를 조정하고,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스스로를 통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상벌점제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누군가가 곁에서 직접 지시하지 않아도, 교사와 학생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규칙을 지키려 애쓴다. 벌점을 받지 않기 위해, 학교생활기록부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학생은 행동은 물론 감정이나 생각마저 조심스러워진다. 학교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말하는 공간이 아니라, ‘감시받는 존재’로 살아가는 방식을 익히는 공간이 되어 버린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스티그마》에서, 사회가 특정한 사람들에게 ‘문제 있는 사람’,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는 낙인을 붙이며, 그 낙인이 사람의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한다.❺ 낙인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사회적 힘이다. 상벌점제는 점수를 기록, 누적하기 때문에 학생에게 낙인을 남긴다. 상벌점을 공개 게시하는 경우 이런 효과는 더 심해진다. 이처럼 낙인은 외부의 시선에 머물지 않고, 학생 스스로가 자신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며 자기검열과 위축을 낳는다. 고프먼의 이론은 이러한 현실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하며, 상벌점제는 단지 행동을 통제하는 제도를 넘어, 존재를 부정하고 정체성에 상처를 남기는 장치가 된다.
반인권·반민주적 학교의 유지와 강화
상벌점제가 더욱 문제가 된 이유는 많은 학교의 학칙이나 문화, 운영 방식의 문제가 그대로인 채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2010년 전후는 물론 여전히 많은 학교가 학생의 신체, 용의 복장, 사생활, 표현 등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학칙을 두고 있다. 교사가 학생을 통제해야 한다는 인식과 교육 방식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체벌이 제한되자, 많은 학교에서 성찰과 변화 없이 체벌을 대신할 수단으로 상벌점제를 도입했다. 그만큼 상벌점제는 촘촘하고 강력한 처벌 수단이 되었다.
상벌점제로 인해 처벌이 오히려 더 가혹해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벌점이 누적되면 징계나 더 직접적 처벌로 이어지므로, 지각이나 복장 규정 위반과 같은 사소한 규칙 위반이 쌓여 중징계를 받게 된 것이었다. 상벌점제의 낙인 효과까지 더해져, 일부 학교는 벌점을 ‘문제 학생’들을 솎아 내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상벌점제가 학교의 반인권·반민주적 문제점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상벌점제가 비교육적인 것은 단순히 점수를 매기기 때문이 아니다. 제도의 목적과 효과가 감시와 통제의 강화에 있기 때문이다. 상벌점제는 어떤 행동이 왜 문제인지 설명하지 않고,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처벌을 정당화한다. 학생이 ‘문제 행동’을 했을 때 그 이유와 맥락을 살피고 함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상벌점을 부과한다. 그러면서 학생은 ‘남에게 도움이 되고 보람차서’가 아니라, ‘상점을 받기 위해’, ‘벌점을 깎기 위해’ 선행을 하게 된다. 규칙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벌점을 피하기 위해’ 지키게 된다. 규칙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수용해서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처벌을 피하거나 보상을 얻기 위한 외적 동기로 움직이게 만든다면 그것을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교육은 사고하고 질문하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상벌점제가 지배하는 학교는 그런 공간이 될 수 없다. 학교는 규칙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함께 고민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육은 순종을 강요하는 시스템이 되어 버린다. 상벌점제는 그 시스템의 핵심이다. 교육은 자유와 존엄, 자율과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감시와 통제의 체계로는 도달할 수 없는 길이다.
더 나은 학교를 상상하며
시인 유하는 말한다. “나는 내 인생의 고작 1할을 학교에서 배웠다. 그 1할조차도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이었다.” 상벌점제가 가르치는 것도 바로 그 굴복이다. 우리는 상상력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하며, 교육은 그 가능성을 여는 장이어야 한다.
학생은 점수로 매겨질 수 없는 존재다. 행동 하나하나를 수치화해 통제하고 분류하는 제도는, 결국 교육의 이름으로 존엄을 침해하고 삶을 억압하는 구조를 정당화할 뿐이다. 상벌점제를 폐지하자는 요구는 단지 하나의 제도 개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교육을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교육은 통제가 아니라 이해에서, 처벌이 아니라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학생을 규칙의 대상이 아닌 맥락과 이야기를 지닌 주체로 바라보는 학교, 감시가 아니라 신뢰를 중심에 두는 공동체에서 진정한 배움은 가능하다. 우리는 더 나은 학교를 상상한다. 실수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질문이 억압받지 않으며, 각자의 다름이 배척의 이유가 되지 않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관리 수단’이 아니라, 존엄을 중심에 둔 교육의 재구성이다.
❶ “체벌 떠난 자리에 공포의 벌점”, 〈한겨레〉, 2010년 12월 30일.
❷ “벌점을 우습게 여기면 대학 가는 길 ‘빨간불’”, 〈동아일보〉, 2010년 12월 14일.
❸ 이현숙(2013), 〈집단상벌점제가 아동의 학교적응에 미치는 영향: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13(4), 518-528쪽.
❸ 미셸 푸코, 오생근 옮김(2016),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❺ 어빙 고프먼, 윤선길 옮김(2009), 《스티그마》, 한신대학교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