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호[기획] 내란, 광장, 대선, 그리고 개혁의 과제 |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구조적 차별’ | 문호진

2025-06-09
조회수 356

기획 | 내란, 광장, 대선, 그리고 개혁의 과제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구조적 차별’



문호진  mh29@naver.com

《수능 해킹》 공저자, 의사



급작스럽게 치른 대통령 선거지만 여러 후보들이 다양한 공약을 쏟아 냈습니다. 그러나 교육 공약은 평소보다도 더 이목을 끌지 못하는 의제가 되었습니다. 각 정당은 ‘킬러 문항 정국’ 이후 대입이나 사교육 관련 공약은 제시해도 득이 없다고 판단한 듯 보였습니다. 


후보들의 단촐한 교육 공약 중 그래도 ‘서울대 10개 만들기’나 ‘서울대·지방대 공동 학위’는 지역 소멸, 수도권 집중 문제와 연계된 공약들에 힘을 준 것처럼 보입니다. 다만 ‘서울대 10개 만들기’처럼 이름 자체부터 이미 지역에 서울대‘만큼’ 좋은 대학을 만든다는 시혜성을 내포하고, 서울의 유명 대학 교수들이 주도하기까지 하는 이런 ‘교육 공약’은, 지역 교육이 처한 현실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요? 


제 관심사는 대학보다는 고교와 대입에 있는 만큼, 이 글에서는 ‘지역 고교와 교사, 학생들이 처한 현실’을 중심으로, 서두에서 제기한 ‘시혜성’의 문제를 짚어 보려 합니다.



지역 할당이라는 기만과 구조적 차별


지난 4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결식 아동에게 선행을 베푼 울산의 어느 식당을 찾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 행보를 두고 ‘대권용 보여 주기’라는 일각의 비판에 총리실은 “지방에 내려갈 때마다 미담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라는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저는 서울의 정치권력과 미디어가 지방을 바라보는 속마음이, 별 뜻 없이 했을 이 답에 그대로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을 스스로의 몫을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민주적 주체로 존중하는 대신 너그러이 시혜를 베풀 대상으로만 여긴 것입니다. 


비수도권 지역의 교육이나 대입에 대한 담론도 이처럼 철저히 시혜적 차원에서만 전개됩니다. 고교학점제를 도입하여 교육청과 고교가 지역의 현실에 맞는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가장 대표적이겠지요. 표면적으로 개별 학생의 취약한 환경까지 고려해 균등한 기회를 보장한다는 정성평가를 하자거나, 지역, 소득별로 입학 정원을 할당하자는 식의 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면, 정성평가를 하면, 할당을 하면 정말 문제가 해결될까요. 우선 서울의 정책 결정권자 또는 대학 등 선발권자의 시혜에 의해 도입된 제도는 지역의 필요와 요구에 응답해 설계되지 않은 만큼, 당연히 지역의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수도권 출신 지역 자사고 학생들이 엉뚱하게 의학 계열 지역인재전형의 수혜자가 되고, 정말로 의사의 수가 부족해 할당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중소도시나 읍, 면 지역 학생들에게는 정작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 할당은 일단 눈에 보이는 성적의 격차를 거슬러 이루어집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든, ‘해킹’의 결과든, 사람들은 그 격차를 끊임없이 의식합니다. 그 틈을 파고든 사교육 관계자, 사교육특구 학생들은 할당이 ‘불공정’하다고 끊임없이 주장합니다. 반면 격차와 그 발생 원인에 대해 부당함을 짚고 차별에 저항하는 목소리는 매우 빈약합니다. 이는 대중의 지지를 구하는 절차를 생략한 ‘위로부터의 개혁’의 태생적 취약성입니다.

 

결국 할당의 결과로 대학에 진학한 지방 학생들에게 붙는, ‘지균충’ 등의 멸칭은 아무 제지 없이 각종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끊임없이 변주되고 재생산됩니다. 실제로는 열악한 환경에서 더 많은 노력을 감수했던 지방 학생들은 ‘서울 학생들에 비해 배려를 받은 것은 맞다’는 생각을 내면화하며 위축됩니다. 오히려 그들 자신부터 이런 세계관을 앞장서 퍼트리며, ‘후진적인 출신 지역’을 미워하는 일마저 생깁니다. 결국 어렵게 도입한 할당제를 통해 일단 (의미는 없는) 형식적 공정성을 달성했다 해도, 그러한 정책은 이해관계자들의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려 폐지되거나 원래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는 운명을 맞곤 합니다. 


이처럼 지역의 실질적 필요와 대중의 지지라는 단단한 민주적 기반이 없으니, 서울의 정책 결정권자, 유명 대학의 입학 담당자들은 일련의 공격을 감수하며 제도를 유지할 동기가 없습니다. 그런 ‘시혜적 선의’를 믿을 수 있다 한들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원래 지역 일반고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졌던 서울대학교의 지역균형선발전형에서 수도권 학생을 뽑는 비율이 갈수록 높아진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우리는 지역의 학교, 학생들이 직면한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격차의 원인을 면밀히 살펴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제시하는 대안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 ‘백래시’를 견디며 지속되기 위해서는 우선 정책을 뒷받침할 탄탄한 담론을 구축하고, 무엇보다 변화에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인 부작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대중의 지지를 구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는 그간 진보 교육계가 가장 등한시했던 일입니다.


물론 이는 정말로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입니다. 격차의 요인들이 복합적인데다 서로 얽혀 있기까지 하고 개별 요인마다 대책도 따로 세워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정당화할 수 없는 격차, 정책적 수단을 써 역량을 배양해 풀어야 하는 격차, 그리고 현장이 책임져야 하는 격차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지역 학생들이 문제 풀이 테크닉에 익숙하지 않아 생긴 격차라면 이는 부당하며 할당 등의 인위적 수단을 활용해도 됩니다. 그렇지만 ‘과학 II’ 과목이나 ‘기하’ 등 몇몇 선택 과목에서의 격차는 해당 과목을 지도할 수 있는 교사를 지역에 충분히 배치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는 학생의 교육권 차원의 문제인 만큼 교원이 부족한 지역에 순환 근무를 실시하고 추가 수당을 도입하는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다만 학교생활기록부가 실제 수업 중 수행한 활동과 무관하게 쓰여 학생이 대입에서 불이익을 당했다면, 과중한 기록 업무의 경감은 따로 논의해야 하지만 일단 이는 분명한 잘못이며 시정되어야만 합니다. 어려운 작업이지만, 이 과정을 건너뛰고 불평등과 차별에 대응하는 방법은 없다는 점만큼은 분명합니다. 격차의 원인들을 하나하나 살펴 개선하지는 않고 할당을 통해 결과만을 편하게 짜맞췄으니, 수혜를 받는 지방 고교 재학생들조차 그 결과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선택권의 허상, 격차를 고착화하는 제도


과연 지금의 접근법이 지역 교육의 현실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요. 현재의 정책 기조는 ‘고교학점제를 도입해 개별 교육청과 학교에 폭넓은 자율성을 부여하고, 획일적인 수능 대비 대신 학생에게 더 많은 과목, 더 다양한 활동에 대한 선택권을 주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방적 요구를 직면한 지역은 스스로의 실정에 맞는 대응을 모색할 자원도, 시간적 여력도 없으니 실무적으로는 서울의 몇몇 유명 고교나 자사고, 국제학교를 롤 모델로 삼고, 해당 학교의 ‘생기부 잘 쓰는 선도 교사’나 지역 고교에 대입 노하우를 지도하는 ‘대학 관계자’의 연수에 맞춰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중 지역의 자원이 집중된 몇몇 ‘모델 학교’는 ‘학생부종합전형에 강한 지역 고교’, ‘IB 교육과정으로 교육 혁명을 이뤄 낸 지역 고교’ 등의 미담 사례로 만들어져 널리 홍보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미담’은 과연 현실과 부합할까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런 기획이 굴러가기 시작하면 교육청 관계자, 이사장, 교장 등의 관리자들은 교사와 학생들을 총동원해 그럴듯한 그림을 만들어 내려 애씁니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만 볼 수 있고, 카메라가 꺼진 뒤에는 영원히 보지 못할 모습이지요. 그 카메라 앞에 선 학생들이 한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요. 저는 《수능 해킹》을 쓰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수의 지방 일반고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이런 ‘모델 학교’와 관련해 스스로가 체감한 변화를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라도 긍정한 학생은 단언컨대 없었습니다. 나아가 이렇게 연출한 각지의 미담 사례가 ‘성공 사례’로 포장되어, 지역의 단위 학교들이 이를 따라가는 과정도 문제입니다. 그러면서 지역 고교들은 입시 제도가 복잡해지고 그 실제 적용까지 학교에 따라 파편화되는 일련의 흐름에 기여합니다. 


자원이 부족하고 정보가 퍼지는 속도도 느린 지역의 환경에서, 분화된 대입 제도나 교육과정의 개별 과목에 대한 지역 고교의 실제 대응 역량은 필연적으로 더욱 약화됩니다. 노력할수록 문제의 해결과는 더욱 멀어지는 악순환에 빠진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그 자체로 불평등의 실제 원인을 가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지역에는 여러 불리한 조건이 있을 뿐, 지역의 개별 교사나 학생의 역량, 열의가 떨어지거나 교육 방법론이 낙후된 것이 아닙니다. 또 서울 유명 고교가 지역에 비해 ‘양질의 교육’을 하는 것 역시 절대 아닙니다. 지리적 여건 때문에 특정 과목의 교사가 부족하거나, 학교 사이의 거리가 멀어 다양한 수업을 열기 어렵고 연다 해도 ‘과학 II’ 과목처럼 ‘형식적 개설’에 그칩니다. 이처럼 불리한 조건들로 인한 구조적 요인이 중첩되고 누적된 결과가 격차가 될 뿐입니다. 


그럼에도 지역 고교는 앞서 살펴보았듯 서울 유명 고교와 대학의 교원에게 관련 연수를 받고, 국제학교 교사를 교장으로 위촉해 ‘모델 학교’를 만들어 격차에 대응합니다. 자연스럽게 유명 자사고와 국제학교는 ‘선진적 노하우를 지도하는 우월한 입장’에, 반대로 지역 일반고는 ‘부족한 점을 극복하는 열등한 입장’에 놓입니다. 당연히 대학은 ‘우수 고교’ 학생을 우대하는 구실로 이런 상황을 활용합니다. 지역의 교육 환경을 개선한다며 각지의 ‘모델 학교’에서 수행되는 일련의 사업으로 운 좋은 몇몇은 혜택을 보겠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는 지금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강화하는 역할만을 할 뿐입니다.


또 지방에서는 대입 정보가 늦게 퍼지는데, 이는 그런 정보가 유통되는 사교육 특구, 유명 고교와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보 격차는 고교나 학원의 각종 ‘해킹’과 연결되어 있고, 당연히 이런 정보를 활용하는 노하우는 질 높은 교육, 예컨대 현실의 여러 문제를 잘 풀어내도록 돕는 교육과는  무관하고 심지어 상충되기도 합니다. 


결국 유명 특목고, 자사고나 국제학교의 ‘선진적 모델’은 보통 그들의 요란한 홍보와 달리 애당초 존재하지 않거나, 공교육 바깥의 자원을 사교육이나 ‘부모 찬스’ 등의 사적 구제를 통해 끌어와 지탱하는 것입니다. 이런 ‘해킹 노하우’는 면접 합격자 답안 복원 등의 ‘데이터 사유화’, 사교육 컨설턴트가 쓴 생기부 초안을 학생이 제출하면 그대로 받아적는 식의 (학부모나 사교육 업체와의) ‘암묵적 담합’처럼, 뿌리 깊은 악습에 해당합니다. 이는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어렵고, 연수 등의 명시적인 형태로 전수될 리도 없습니다.


교육청과 개별 학교에 부여된 자율성은 각 단위의 지리적, 인문적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제반 여건을 파악해, 지역 실정에 맞춘 대응을 하기 위한 방편일 뿐입니다. 교육 자치 역시 ‘출신 지역, 사회 경제적 여건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에게 동등한 교육권을 보장한다’는 헌법적 가치 구현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고교학점제의 성공을 위해서는 지역 학생, 학부모, 교사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청취해 개별 지역이 직면한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개별 지역의 고교 배치, 인접 지역과의 접근성을 고려해 교원 배치 모델을 만들고, 신규 교원 선발을 위한 예산을 편성해 예상되는 교원 부족에 대응하는 등의, 개별 지역의 현실에 맞춘 면밀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고교학점제의 도입 과정은 중앙의 명망가들이 ‘미담 사례’를 통해 지방을 시혜적으로 대상화하는 지금의 구도를 비판하기는커녕, 그들이 원하는 그림을 적극적으로 연출해 무분별하게 편승하는 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연히 정책이 실제 현장에 구현되는 과정에서는 ‘모든 학생의 보편적 교육권 보장’이라는 본연의 목적은 잊힌 채, ‘선택권’, ‘자율성’처럼 일부 전문가 집단의 이해에 부합하는 몇몇 지엽적, 기술적인 가치만이 강조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교육 자치는, ‘해킹으로 지탱되는 선진적 모델의 껍데기’만을 도입하기 위해 개별 지역이 경쟁하는 수단으로 오용되었을 뿐입니다.



아틀라스의 굴레를 끊어 낼 수 있는가


다음으로 점차 커지는 격차에 ‘교직원과 학생들의 더 많은 노력’으로 대응하려는,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흐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북과 강원교육청은 수능형 문항 제작 연수, 수능 대비 야간반 운영 등 수능 대비에 집중하는 한편, 광주시교육청은 ‘0교시’와 ‘야자’를 부활시켰습니다. 지역이 ‘야자’를 부활시켜 열심히 수능을 대비하는 것처럼, 지역 고교 선생님들은 회의를 하고, 밤잠을 줄여 몇몇 학생의 생활기록부에 달라붙어 겨우 대입 실적을 만들어 냅니다. 


대입 전형이 상대적으로 단순했던 과거에는, 서울보다 ‘더욱 많이 노력’하는 방식으로 지역 고교의 불리한 환경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습니다. 광주시교육청 등 몇몇 비수도권 교육청은 서울이나 경기교육청에 비해 몸집이 작고 지역 내 환경이 상대적으로 균일하다 보니 유연한 의사 결정, 일관된 정책 적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살려 2000년대까지는 대입에서 만족스러운 실적을 내곤 했습니다. 


반면 지금은 복잡해진 대입 제도와 사교육의 대응 노하우가 얽혀 고도화된 만큼, 지방이 과거의 성공 사례를 본받아 ‘더 많이 노력’해도 현장의 교사,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부담만 가중될 뿐 커지는 격차를 줄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다시 말해 이미 한계에 달한 지역 교사와 학생의 이탈만 가속화시켜 결과적으로는 더 큰 격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역 교육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교원의 중도 퇴직 비율을 보면, 5년 미만은 전남>충남>강원>경북>충북 순으로, 5년 이상 15년 미만은 충북>충남>전남>강원>경북 순으로 높았습니다. 순서만 바뀌었을 뿐 모두 비수도권, 소도시와 군 단위가 많은 지역이란 점을 생각하면 이미 지역 교육이 당면한 현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애초에 ‘노력의 부족’이 격차의 근본 원인이 아님을 짚어야 합니다. 밖으로 내세우는 명분이 어떻든, 대학은 대입의 과정을 ‘학생, 학부모, 학교의 자원을 손쉽게 대학의 성과로 포섭하는 도구’로 여길 뿐입니다. 물론 대학은 단일한 행위 주체가 아니니, 어떤 악의나 공모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출신 지역, 내신 성적 등 입학 시점의 학생 데이터’를 ‘졸업 이후 취업률, 대학원 진학 결과’ 등과 비교하고 대학의 입장에서 최적의 결과를 끌어내는 식으로 산출하는 보편적 통계 기법, 그리고 이러한 방식을 충분한 공적 감시 없이 대학이 자율적으로 대입 전형에 반영하는 일련의 연쇄가 필연적으로 가져온 결과일 뿐입니다. 그러니 대학이 ‘인성’, ‘창의성’, ‘잠재력’ 등을 살펴 학생을 뽑는다고 홍보한들, 결국 실제 당락을 가르는 요소는 ‘부모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의 양과 질’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지역이 제도 변화에 충분히 적응한다면, 대학은 늘 그랬듯 “내신을 부풀리는 지방 일반고의 평가를 믿기 어렵다”며 다시 규칙을 바꿀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심증이 아닌, 그간 대입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입증된 사실입니다. 결국 이는 지역의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해 서울 유명 고교만큼 대입 제도에 잘 대응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아틀라스의 굴레입니다.


앞서 여러 현안들을 두루 비판적으로 검토했지만, 단위 교육청이나 학교의 ‘각자도생’에는 분명 불가피한 면이 있습니다. 지역이 처한 어려움을 그저 실적을 만들 기회로만 여기는 서울 명망가들의 욕망, 또 예쁘게 보도 자료로 가공한 미담을 편하게 받아쓸 뿐 지역의 실제 현실을 취재해 살필 생각은 없는 중앙 언론의 무책임 앞에서 지역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IB 교육과정을 먼저 도입해 유력 정치인, 대학 교수, 언론이 원하던 ‘그림’을 만들어 낸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은, 어쩌면 그 보상으로 교육을 넘어 지역 경제에까지 미치는 긍정적 파급 효과를 누리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죄수의 딜레마’ 앞에서 개별 학교, 개별 교육청, 개별 분과가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추구한 결과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글 전체에 걸쳐 이런 대응이 운 좋은 소수만을 구했을 뿐, 거시적 관점에서는 격차를 키우는 방향으로만 작동했다는 점을 살폈습니다. 


결국 저는 우리 모두가 지금의 ‘각자도생’에서 벗어나 함께 다른 접근법을 고민해야만 하는 시점이 왔다고 느낍니다. 다만 그간의 정책 대안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며 각종 ‘백래시’에 시달리는 지금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논의에 참여하는 여러 주체들이 방어적인 태도로 임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글을 마치려 합니다. 앞서 살핀 것처럼 이 불편한 현실을 우리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바라볼 수 없다면, 우리가 제시하려는 대안을 당사자부터가 환영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❶  ‘해킹’은 ‘본래의 교육적 의도를 우회하는 편법’으로서, 《수능 해킹》에서는 수능을 중심으로 상세히 논한 바 있습니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 ‘해킹’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구분 없이, 수능과 학교 시험, 생기부 기록을 포괄하는 대입의 모든 과정에서 벌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교 교육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부터 살펴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고 수능과 사교육만을 살피면 ‘해킹’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어렵고, 유효한 대안으로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❷  “학교가 힘들어 떠나는 교사들 해마다 증가… 역대 최대치”, 〈더코리아〉, 2024년 10월 6일.

0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