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호[기획] 교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진냥)

201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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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페미니즘과 교육


교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과 학부모·지역 주민 집단 성폭력 사건에 부쳐


진냥

초등 교사

jinnyang3@gmail.com

초등학교 교사, 큰 몸, 비혼, 여성. 인권과 탈권위, 사회의 물리적 구조에 관심 많음. 하루라도 빨리 교사를 그만두는 게 꿈이었으나 10년이 넘어가면서 포기하고 좀 덜 고통스럽게 학교에서 살아가는 것에 골몰하고 있음.



살면서 얼마나 더 참담한 성폭력 사건들을 접해야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땅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살아 온 지 서른여섯 해. 내가 아프간에 사는 사람도 아닌데 이미 마음이 문드러질 만큼 참담한 사안들을 보고 듣고 내 스스로 헤쳐 왔다. 교사로서도 마찬가지다. 교직에서 열세 번째 해를 맞는 동안 그것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이든 전교조이든 다른 단체이든…….


단연코 말하건대 성폭력이 없는 곳은 없었다. 참담하지 않은 곳은 없었다. 그럼에도 늘 최대치를 갱신하는 듯한 참담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올해 5월도 그랬다. 두 건의 사건이 나의 모든 멘탈을 휩쓸었다. 강남역 10번 출구 화장실에서 일어난 여성혐오 살해, 그리고 학부모와 지역 주민에 의해 일어난 집단 성폭력 사건. 


그런데 이상했다. 온 사회가 참담해 하고 강남역 10번 출구가 포스트잇으로 뒤덮이는데 교육공동체 벗 카페에는 글 하나가 올라오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검색해 보면 없다. 누군가 올린 기사 공유 글 두 개가 전부이다. 나는 너무 궁금했다. 왜? 학교에서도 너무나 조용했다. SNS는 연일 도배되고 있고 내 주변 사람들도 다 멘탈이 무너져 내렸는데, 강남역 10번 출구는 물론 각 지역 곳곳마다 포스트잇으로 추모의 벽이 세워지고 있는데, 왜일까. SNS마저도 20, 30대 여성들의 이야기뿐이었다. 40대 이상의 여자 사람들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지? 학교 선생님들은 왜? 왜? 왜?


그러다 학부모·지역 주민 집단 성폭력 사건이 알려졌다. 이번엔 학교에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어라, 근데 이번엔 여자 선생님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그 사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주변 남자 선생님들뿐이었다. 이것도 이상했다. 생각해 보면 학부모·지역 주민 집단 성폭력 사건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도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카페에 글을 올려서였다. 그제야 체한 것 같이 명치에 걸려 있던 ‘왜?’라는 말이 풀렸다. 아직 토양이 없는 거구나! 문화평론가 손희정은 ‘젠더 민주주의 연속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여성혐오는 없었던 것이 아니라 드디어 가시화되기 시작한 사건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에도 무수히 많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폭력이 이뤄지고 있다. 먼저 학부형 집단 강간 사건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강남역에는 페미니스트들이 ‘개떼같이’ 모여들더니 왜 이 사건에는 입 다물고 있느냐고 얘기한다. 


정확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교사는 자기를 자학하는 방식이 아니라 증거를 수집하고 경찰에 찾아가서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은 명백히 페미니즘의 성과다. 성폭력 피해는 나의 잘못이 아니고,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며, 가해자는 처벌 받아야 한다는 문화적 분위기를 만들어온 게 페미니즘이다. ‘박유천 사건’도 보자. 몇 년 전이었다면 성산업에 종사하는 피해자 여성이 손가락질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나와서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었던 건 ‘토양’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도 마찬가지다. 남성의 여성 살해는 역사적으로 쭉 있어온 사건이다. 만약에 여성 대중이 이 사건을 여성혐오 사건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화장실 변사체녀’로 사라졌을 거다. 여성들이 이 사건을 여성혐오 사건이라고 명명하고 강남역 10번 출구에 가서 쪽지를 붙임으로서 여성혐오 사건이 되었다. 이 모든 게 페미니즘의 토양 안에서 등장했다.


나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5·17 페미사이드’라고 명명하지만, 이 사건은 한국 여성사 안에서 다른 이름으로 쓰이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어떤 이름이 있을까. 5·17 여성봉기?(웃음). 사건을 거치며 여성혐오라는 단어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개념이 잘못되었다는 둥, 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이 곡해하고 있다는 둥. 이런 오해를 만들어내는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왜 이렇게 말하게 됐는지 이해하는 건 중요하다. 그 바탕에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녀’ 담론과 여성 대중이 싸워온 역사가 있다.


2016년 대중문화는 여성들 투쟁의 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슬러 가면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여성 커뮤니티가 나선 일 등 온라인 페미니즘 역사가 켜켜이 쌓여온 부분이 있다. 2015년 칼럼니스트 김태훈의 ‘무뇌아적 페미니스트’라는 글이 여성의 공분을 사고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선언이 촉발되기 시작했다. 페미니스트가 싫어서 IS로 간 청년도 있었다. 메갈리아를 손가락질하지만 메갈리아가 ‘소라넷 폐쇄’라는, 대한민국 경찰이 16년 동안 못한 일을 했다. 이런 맥락을 거치면서 여성들이 강남역 살인사건도 여성혐오 사건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압구정 가슴녀’를 아십니까? [젠더 민주주의 연속 강연] ⑤ 그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닙니다〉, 《시사IN》 460호, 2016년 7월 6일


생각해 보면 나는 토양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1차적 토양은 페이스북이었고 《오늘의 교육》이었고 네이버 블로그였다. 그런 매체들을 통해 나는 나의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하고 공론화하는 것에 대한 용기와 전략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내게는 메갈리아와 2015 데이트 성폭력 폭로가 2차적 토양이 되어주었다.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를 넘어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게 자리 잡았다. 메갈리아의 수많은 갓치들과 데이트 성폭력 폭로자들은 이런 점에서 내게 메시아나 다름없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너덜거리는 상처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더라도 내가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최소한의 믿음을 만들어 준 셈이니 말이다. 


➊ 메갈리아에서 쓰이는 말로, 여성들을 ‘김치녀’라고 부르는 것에 대응하여 뛰어나고 놀랍다는 의미를 담은 ‘갓(god, 신)’을 붙여 메갈리아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나 억압에 저항하는 여성들을 ‘갓치’라고 부른다.



그러나 교사 사회에는 이런 토양이 없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이야기를 꺼낼 순 없다. 교육공동체 벗도 마찬가지다. 카페에 글 하나 없는 상황에서 내가 겪은 교사 사회 내 성폭력과 성차별을 나눌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겠다 마음을 먹었다. 이 글이 부디 수많은 ‘우리들의 이야기’의 시작이고 과정이길 바란다. 



‘섬’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서울서 며칠간 계속 열리는 포럼에 참가하고 싶어서 아는 이에게 숙박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집에 여러 날 묵어본 것은 그 경험이 처음이었다. 내게 숙소를 제공해 주었던 사람은 그 해 서울에 발령을 받은 신규 교사였는데 다른 지역 출신이라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찾아 간 첫날 그 사람은 일이 있어 날 맞아 주지 못했다. 알려 준 주소와 설명을 가지고 혼자 집을 찾아 갔는데 현관에 도착해서 잠시 아연해졌다. 현관문에는 CCTV는 물론 추가로 단 잠금 장치가 3개 더 달려 있었다. 총 4개의 잠금 장치는 여는 방법도 다 달랐다.


디지털 도어락부터 시작해서 칭칭 감겨있는 굵은 쇠사슬 자물쇠에 이르기까지 그 집 문은 영화에 나오는 금고 같았다. 금고 속에 사는 사람. 자신을 금고 속에 가둔 사람. 사실 그 집은 동대문 시장 안에 있는 건물에 있었다. 시장통에 있으니 주거 밀집 지역보다 치안이 더 걱정되긴 하는 환경이었다. 난 더 의아해졌다. 그녀는 살 만큼 사는 집안의 딸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 살지?


집으로 돌아온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등학교부터 기숙학교를 다녔던 그녀는 이미 모든 인적 네트워크가 고향을 떠나 있었다. 그래서 임용고사를 서울로 봤고 합격을 했는데 서울로 주거지를 옮기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라는 게 그제야 몸에 와 닿았다고 한다. 원룸이라도 서울에 전세를 얻으려면 몇천만 원에,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세간을 모조리 새로 마련하려면 또 일이백이 든다.


월급 한 번 받지 않은 상황에서 전액을 다 가족에게 의존해야 하는데, 취업을 한 상황에서 집에다 수천만 원을 손 벌리는 게 당연히 쉽지 않다. 집에서는 2천만 원을 보태 주었다고 했다. 그나마 이 사람은 집에서 보태주기나 했다. 생각해 보면 수많은 신규 교사·신입 사원들이 다른 지역에 발령을 받을 때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 집을 구할 수 있을까. 통장엔 오히려 등록금 대출로 마이너스가 찍혀 있을 것이고 급여는 해당 직군에서 최저액일 텐데. 


내 집 마련의 첫 번째 관문은 결혼이 아닌 지 오래다. 6월의 KTX 아침 시간대는 공사채용 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을 치는 이들로 만원이 된다. 적어도 본적지와 현 거주지 두 지역 이상은 시험을 칠 수 있다. 교사 임용고시도 TO에 따라 지역을 옮겨 다니며 치는 게 낯설지 않다. 취업 난민이다. 그러다 한 군데 합격을 하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 취업 준비 기간 동안 그나마 있던 돈은 다 썼을 것이고 결국 가장 치안이 취약하고 허술한 집을 얻을 수밖에 없다. 관사도 마찬가지다. 누가 직장에서 가깝고 누구든 내가 어디에서 사는지 알 수 있는 관사에서 살고 싶어 하겠는가. 관사에서 사는 이유는 딱 하나다. 돈.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나를 덜 안전하고 덜 보호받는 상황에 놓이게 하면 내 등 뒤엔 늘 불안이 찐득하게 달라붙는다. 나도 알고 다른 이도 안다.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약하다는 증거라는 것을. 



교사의 성은 보호되지 않는다


학부모·지역 주민 집단 성폭력 사건 이후 전교조에서 긴급 설문조사를 했다. 첫 번째 문항이 교직 생활 중 성폭력 피해 사례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술 따르기 및 마시기 강요, 유흥 업소에서 춤 강요, 신체적 접촉, 언어적 성희롱, 키스나 애무 등 심한 성추행, 강간 및 강간 미수 등이 보기였는데 나는 강간 및 강간 미수를 제외하고 모두 다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예전에 근무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학교의 친목회장과 나는 미묘한 긴장관계가 있었다. 그 학교에서 정년퇴임을 앞둔 교사였고 교총 분회장이기도 했다. 나는 그 학교의 유일한 전교조 조합원이었다. 당시 나는 20대 ‘비천한’ 올해 만난 신규 교사의 표현이다. 자기 자신을 ‘우리 학교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린 여교사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유일한 조합원이라는 타이틀이 신경이 쓰였는지 그 분은 내게 자꾸 알은척을 했다. 복도에서 만나면 "나도 전교조에 관심 많아~", "이번에 전교조에서 북한에 쌀은 안 보내나?" 이런 식의 말을 건넸다. 


그러다 여름방학을 앞둔 회식 날. 많은 사람들이 거나하게 취했고 처음 앉았던 자리가 어디인지 내 수저가 어디에 있는지 다들 찾기 어려울 만큼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하고 술잔을 건네던 와중에 그 사람은 내 앞에 마주 앉았다. 역시나 또 전교조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단발적인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왜 이딴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 건가 싶어 불편함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러다 그 사람이 내 무릎을 톡 톡 치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들어도 의미가 없던 이야기들이었지만 들리지 않게 되었다. 처음엔 톡 톡 치던 손가락이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귀가 왕왕 거리기 시작했고 견딜 수 없었던 나는 더 이상 입을 닫고 있을 수 없었다. 그건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더 참을 수 없는 압력에 닫혀 있던 입이 결국 터진 것뿐.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말을 굉장히 잘, 골라야 했다. 나는 비천한 어린 여교사였고 그 사람은 친목회장이었다. 나는 그 학교에 전입한 첫 해였고 그 사람은 퇴임이 1년 남은 원로 교사였다. 내 머리 속은 왕왕 거리는 귀와 전혀 다른 사람처럼 수많은 단어들을 검색하고 있었다. 


선생님, 제가 지금 술도 마시고 해서 예민해져있는 상황인 것 같은데요, 죄송하지만 선생님 손이 무릎에 닿는 게 제가 너무 예민해져서요. 죄송하지만 제게 폭력적인 상황으로 느껴져서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예민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려졌을 수 있지만 내 입에서 거듭되어 나왔던 두 단어를 난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예민해서, 내가 죄송하다는 그 말들. 


말을 했지만 그 사람은 알아듣지 못했고 나는 같은 이야기를 서너 차례 반복했다. 반복하는 동안 내 언성은 좀 더 높아졌고 안 되겠다 싶어 그냥 일어섰다. 그러자 그 사람도 따라 일어섰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내 손을 끌어 자기 쪽으로 가지고 갔다. 나는 나이 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하듯 허리를 숙였다. 그 사람은 자기가 미안하다며 중얼중얼 뭐라고 했고 가져간 내 손에 입을 맞추었다.


머리에서 실 하나가 끊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대로 뒤로 돌아 식당 밖으로 걸어 나왔다. 식당 입구에는 학교 선생님들이 담배를 피고 있었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머리에 필터링이 끊어진 채로 나도 담배 한 대 달라고 했다. 같은 학년 선생님이 담배를 한 대 꺼내 불을 붙여주며 구석으로 날 데리고 갔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같은 학년 선생님에게 설명을 했고 그 사람은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그 날은 그게 끝이었다. 나도 위로해 준 그 사람도 회식 자리로 돌아갔고 회식은 계속 되었다. 


그 다음 날 학교에 와서 업무 메신저로 글을 썼다. 가해자, 날 위로해 준 같은 학년 선생님, 내가 속한 학년 부장, 그리고 교감 지명을 받은 나이가 많은 여자 선생님 한 분. 그렇게 목록에서 찍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쭉 쓴 A4 한 장쯤 되는 글을 보냈다. 여자 선생님께 바로 전화가 왔다. 그 양반 그럴 줄 알았다며 내가 이야기해 보겠다고 말했다. 학년부장은 바로 내 교실 앞으로 왔다. 하지만 정작 와서는 어험 어험 헛기침만 하다 돌아갔다. 두세 시간 지나서 가해자에게 전화가 왔다. 그 사람이 한 첫 마디는 ‘내가 그러는 사람이 아닌데 정말이냐’였다. 그 말에 정말 빡이 쳤다. 


하지만 그 이상 내가 뭘 할 수도 없었다. 학년부장도, 교감 지명을 받은 또 다른 원로 교사도 사적으로 그 사람에게 말을 해보겠다는 게 다였다. 내가 받은 피해는 공론화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럴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떠나고 내가 피하는 것이었다. 술 먹고 노는 걸 싫어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회식 때마다 나이 많은 남교사들에게 블루스를 강요받는 건 끔찍했다.


신뢰하던 한 여자 부장이 내 손을 끌어 교감 손 위에 포개어 줄 때는 정말 쓰레기더미 속에 맨살로 누워 있는 느낌이었다. 회식만 끝나면 집에 와서 이불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러다 두 번째 학교부터 회식 때 노래방만 가면 나보다 나이 어린 여교사들을 등 뒤로 숨겼다. 내가 나보다 나이 어린 여교사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인사는 “지켜 주셔서 고마웠어요”였다. 


내가 아는 한 교사는 교실 키보드 밑에 사직서를 깔아놓고 교직 생활을 했었다. 그 사직서가 자신이 학교를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말했다. 학교가 힘든 것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녀의 삶에서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 중 하나는 학생들의 성희롱이었다. 생각보다 드물지 않은 일이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 나는 아직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피해 입은 성폭력을 공식적 사건 해결 과정으로 다루는 사례를 단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다. 당한 사례는 무수하지만.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당하는 성폭력 사례들은 비겁하게도 학생인권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하지만 정작 내가 아는 그 교사도, 다른 사람들도, 그리고 나도 절망하는 것은 ‘학생이 내게 성폭력을 행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20대 여성으로 살아가다 보면 내게 성폭력을 행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다. 정작 끔찍하고 분노스러운 것은 내가 겪은 일이 교사라는 이유로 성폭력이라 호명되지 않고, 교사라는 이유로 내가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피해자라는 위치보다 교사라는 것을 더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요받는 것. 어떤 사람이 교실에서 내게 야동을 보여주며 ‘선생님, 섹스해 봤어요?’라고 물어 본다 하더라도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교육자로서 왜 이런 행동이 잘못이고 바람직한 성 관념은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친절히 설명해야 하는 것이 나의 직무이자 의무라고 이 사회가 규정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학교라는 공간이 절대로 날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순간순간 바늘로 찌르듯 인지되는 것이 절망스러운 것이다. 


학부모·지역 주민 집단 성폭력 사건 이후 교육청에서 내려온 지침은 단 하나였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학부모 상담을 하지 말 것. 화도 나지 않았다. 그냥 너무 먹먹했다.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그냥 너무 심장 있는 곳이 무겁고 답답해 화도 나지 않았다. 그 말은 그냥 ‘우린 너네를 보호해 줄 수 없어’라는 말로 들렸다. 실제로도 그렇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재차 확인하고 나자 입 안에 모래알이 가득한 느낌이었다. 



교장도 다름없다


이것도 예전 일이다. 방학 중 볼일이 있어 교무실에 들렀는데 다른 교사 한 명이 교무실에 들어섰다. 들어서면서부터 “아이고 아이고 교감 선생님~ 방학 잘 보내고 계십니까~”라고 인사를 하며 들어서자 교감이 자리에서 일어나 맞았다. 서로 악수를 했고 반도에 흔한 외모 칭찬(이라고 쓰고 개소리라고 읽는다)이 오갔다. 그동안 손을 계속 잡고 있던 그 교사는 교감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이후에도 한동안 서로 덕담이 오갔다. 나는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힘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다. 내가 경력이 쌓이고 승진을 하고 그러면 안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교감도 똑같았다. 심지어 그 교감은 오빠가 교육장이라 배경이 빵빵하고 파워가 세기로 유명한 교감이었다. 일을 잘 못해도 다들 쩔쩔 맸다. 그런데도……. 


세월이 제법 흐른 지금도 그렇게 다를 건 없다. 예전에야 학교에도 유리천장이 있었지만 최근 3년 정도를 기점으로 시 지역에서는 여자 교장·교감이 급속도로 늘어나 요즘은 오히려 남자 교장이 대구지역에는 더 드물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학교가 여성주의적으로 변화하진 않았다. 오히려 학교 관리자로 누구를 원하는지 이야기한 대화에서 ‘여자 교장만 아니면 돼’라는 말은 공공연하게 그리고 빈번하게 나온다. 진지하게 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여자 교장들은 너무 꼼꼼하다, 마음이 좁다, 기분에 따라 일처리가 너무 다르다, 뒤끝이 길다 등 주로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다. 죽도록 고생해 교장이 되면 뭐하나 결국 ‘히스테리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➋ 예전에는 자궁 때문에 생기는 병으로 알려졌다.



단언컨대, 학교에서 남교사들은 절대 하지 않는 일이 있다. 바로 시상 보조다. 입학식이나 졸업식과 같은 학교 행사에서 연단 위에 교장 옆에 서서 상장이나 증정품 따위를 건네주는 일. 보통 그 학교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여교사가 맡는다. 웃기게도 나는 시상 보조를 한 번도 맡은 적이 없다. 나는 키가 크니까. 대부분의 교장들은 나보다 키가 작았고 연단 위에서 내가 교장을 내려다보는 모양새는 행사의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시상 보조는 외모를 따지기도 한다. 행사를 보조하고 분위기를 ‘꾸미는’ 것은 사회나 학교를 가리지 않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적 역할 강요다.


그래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학교에서 ‘교사’를 살아내고 있지만 ‘여성’을 살아내고 있기도 하다고. 내게는 학교 안에서 ‘교사’로서의 대안도 필요하지만 ‘여성’으로서의 대안도 필요하다고. 그래서 학부모·지역 주민 집단 성폭력 사건 때 나온 전교조 지회 성명서 같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훌륭한 교육자로서의 소양이 있다 운운하는 소리는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사적이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단계는 발화, 그리고 공론화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말했든 우리 모두의 발화로 토양을 만드는 것 말이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성폭력이나 성차별을 이야기하면 당사자들끼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사회가 여성을 그리고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말 그대로 사회 전체의 문제다. 이것이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이고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것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우리들’이 관련되어 있는지를 증언해 보이는 방법으로 행해져왔다. 2016년 성폭력과 여성혐오는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선명한 의제 중 하나다. ‘남자친구’의 입과 손을 빌지 않고 내 스스로 나의 역사를 증명하고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당신들이, 이 사회가, 이 학교가 문제라고 말하는 수많은 교사들의 발화가 있길 바란다. 이 글이 부디 그 과정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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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s://www.crcna.org/news-and-views/stand-speak-out-sit-down-be-qui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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