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와 불평등저자 인터뷰 ② 박권일 “능력주의, 오작동이 문제인가?”

박권일 

사회비평가. 《축제와 탈진》, 《소수의견》저자. 《88만원 세대》,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공저자


9년 전 이맘때 칼럼 〈능력주의와 학벌주의〉에서 학벌주의와 능력주의가 같은 뿌리로부터 나온 것이면서도 대결하고 있는 상황, 젊은 세대가 능력주의에 높은 지지를 보내는 사회 상황을 짚어 냈다.

나도 잊고 있던 글인데, 어떻게 찾아내셨는지 대단하다! 생각해 보니 그 글은 능력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처음으로 구체화시킨 글이었다. 이후에 중요한 계기가 하나 더 있었다. 일베가 본격적으로 사회 문제화하기 전 그곳 게시판에 상주하며 오가는 얘기들을 수개월 관찰한 적이 있다. 일베의 논리가 단지 패륜적 막말이라기보다 기저에 심층 담론이 있고, 그게 바로 능력주의라는 걸 깨달았다. 이후 ‘넷우익’ 담론과 ‘공정성’ 담론이 이어져 맺히는 결절점이 바로 능력주의이고, 이것이 한국의, 특히 청년세대의 ‘정의론’이 됐다는 걸 알게 됐다.


이처럼 오랫동안 문제를 제기해 왔는데,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화제로 부상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이라 보나?

최근 들어 마이클 샌델이나 토마 피케티 같은 유명한 학자들이 능력주의를 직접 거론하고 글도 써내고 있는데, 전세계적인 불평등과 그에 대한 문제의식들이 가져온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공통감각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능력주의가 오작동해서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진정한 능력주의’를 추구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진정한 능력주의’는 개인이 실제로 가진 재능이나 기여의 차이에 대한 차별적 보상이 ‘정확히’ 또 ‘비례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우선 고유한 개인의 재능이나 기여가 가지는 응분의 몫(desert)을 인과적으로 추적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가능하다해도 개별 인간에게 돌아갈 몫은 지금보다 훨씬 적어질 것이다. 경제학에서 노동, 자본, 토지의 생산성이 가치원천이라고 주장하는 존 클라크의 한계 생산성 이론이 파산한 사실, 그리고 로버트 솔로 이후 나타난 지식유산 이론은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결과들이 특정한 누군가의 기여가 아니라 익명의 인류가 축적해온 지식유산에 대한 대가이며 ‘공짜 점심’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이론을 글자 그대로 밀어붙이면 배타적 독점권이나 특허도 설 자리가 없어진다.

요컨대 진정한 능력주의를 주장하면, 누구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대가를 주장하기 어렵다.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고, 인류 전체가 오랜 역사에 걸쳐서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에 편승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론적으로 진정한 능력주의를 추구하면 모든 사람의 재산을 몰수해야 할 지경에 이른다. 대다수는 이를 욕망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진정한 능력주의’라는 것은 그저 대중의 막연한 통념에 따라 관철될 터인데, 그 결과 부정확하고 자의적 기준에 따라 인간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는 이데올로기로만 기능하게 된다. 그 자체가 민주주의와 인간 존엄에 대한 가장 끔찍한 위협의 하나일 것이다.


능력주의의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반론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문제의식이 아직 대중화되지도 않았는데 대안이 나올 리가 없다. 대안이 쉽게 나왔다면 능력주의가 이렇게 오랫동안 힘을 발휘했을 리도 없다. 또한 이미 많은 글에서 구체적인 방향을 언급해 오기도 했다. 능력주의 외에 다양한 업적 평가 방식, 자원 분배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한국의 기업 내 업무 평가, ERP 이런 것들을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말도 안 되게 비과학적인 부분이 많다. 그런 평가 방식이 수치화되면서 마치 객관적인 평가인양 노동현장을 규율하고 있다. 하다못해 ‘장학금을 성적순으로 주는 게 맞느냐, 경제적 상황에 맞춰 주는 게 맞느냐’도 아직 합의가 안 되어 있다. 아니, 한국 사회에서는 압도적으로 전자가 옳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이런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양한 기준들이 논의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논의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다른 필자의 글 중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었나?

모두 각각 본인의 경험과 전문 영역에서 능력주의의 문제의식을 녹여낸 좋은 글이었다.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꼭지는 이유림의 〈뛰어난 여성들은 자신의 파이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글이다. 예전에 ‘야망보지’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저 말이 가지는 위험을 느꼈다. ‘능력주의에 포섭된 약자-소수자 운동’이란 주제로 한 번 글을 써 보고 싶었는데 결국 쓰지는 못했다. 내가 쓰려 했던 내용보다 훨씬 잘 쓰셨다. 읽으면서 많이 배웠다.


책이 나왔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공저자들끼리 한 번이라도 만나서 논의하지 못하고 낸 게 아쉽다. 그래서 동어반복적인 부분도 있어서 좀 안타깝다. 물론 코로나19 상황 등 물리적 조건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책은 나왔으니 되었다. 어떻게든 결과물을 내는 게 중요하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