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와 불평등저자 인터뷰 ④ 채효정 “학벌없는사회 운동의 한 시대를 돌아보다”

채효정

정치학자.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저자. 《삐딱할 용기》 공저자


책이 나온 뒤 당신 페이스북에 ‘한 시대를 돌아봤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나 그것부터 알아야겠기에’라고 썼다. 《오늘의 교육》에 기고한 같은 제목의 글에 이어 반학벌 운동의 일대기를 정리한 소회가 궁금하다. 

이 책에서는 학벌없는사회 운동이 부딪쳤던 시대적 한계와 판단 오류를 되짚어 보는 데 중점을 두었다. 우리가 학벌주의를 타파한다고 ‘학벌보다는 능력으로’라고 외쳤던 것이 당시 어떻게 능력주의에 문을 열어주고 정당화했는지 돌아보는 일은 교육운동을 비롯해 한국 사회의 여러 시민운동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의도와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 운동 사례를 볼 수 있다. 전체 정치 지형 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확인하고 자신의 발언과 실천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과거 시대의 학벌주의와 최근의 현상으로서 능력주의를 구분했는데, 다른 저자(박권일)는 ‘학벌주의는 능력주의의 일종’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학벌주의와 능력주의의 관계를 정리한다면?

근대 사회 부르주아들은 봉건 사회의 가문을 결속하던 핏줄과 신분 대신 지적 능력을 탁월성의 표지로 사용했다. 이때 학력과 학벌은 지적 성취의 뒤에 있는 사회적 배경을 감추고 개인적 노력의 결과로 보이게 하는 기능을 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학벌주의는 능력주의의 일종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선배가 끌어주고 후배가 밀어주는 가족적 연고주의가 강하게 나타났다. 때문에 과거 한국의 학벌주의에는 서구적 합리주의나 능력주의와 배치되는 면도 있었다. 지금은 이것도 깨어졌다. 문제는 구시대적 학벌주의를 깨트린 것이 평등주의 운동이 아니라 공정이나 능력 같은 학벌주의의 새로운 문법이었다는 것이다. 학벌주의는 해체되지 않고 능력주의 언어를 통해 더욱 강고해졌다.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이 어려운데 입시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예전에는 소위 명문대에 들어가면 그다음 취업문은 조금 쉬웠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좁은 문 다음에 더 좁은 문인 셈인데, 바늘구멍이 좁아지면 경쟁이 치열해지는 건 당연하지 않나. 80%가 대학에 가는 사회에서 학력 인플레이션은 대학 졸업장의 일반 가치를 떨어뜨리지만 반대로 상위권 극소수 대학의 학벌 가치는 그만큼 더 높아진다. 참여자가 많아지면 경쟁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착시 효과는 상위권 대학 합격자들을 ‘더 뛰어난 능력자’로 인정받게 만든다. 대학이 많아지면 경쟁이 완화될 것이라던 주장은 주택 공급을 늘리면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는 예측만큼이나 엉터리였다.


다른 공저자들의 글 중에서 각별히 깊은 인상을 남긴 내용이 있다면 어느 부분이었나?

김혜진의 〈차별받는 노동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를 읽으면서 교육과정에서 주입되고 체화된 평가주의와 능력주의가 그대로 취업·고용과정으로 이어져 노동 현장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깊이 느꼈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노동자가 되기 이전의 ‘노동자 만들기’ 과정에 관여해야 하고, 교육운동은 학교 과정만이 아니라 학생 이후의 노동하는 삶에 대해 반드시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학교는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경쟁주의, 평가주의, 능력주의 뿐만 아니라 교과 내용에서도 완전히 ‘자본의 학교’가 되어 있다. 이걸 교육 현장 안팎에서 줄탁동시로 함께 깨 나가야 한다.


각별히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부분이 있는가?

대학이 어떻게 권력의 재생산 도구가 되고 있는지 대학과 자본, 교육과 시장을 연결해서 보자. 미래교육이나 혁신교육 담론에서 누락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대학자유화와 금융자유화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학의 팽창은 새로운 금융시장을 창출했고, 대규모의 청년부채, 가계부채를 만들어냈다. 학자금 대출은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은행과 금융자본의 배를 불리는 대표적인 약탈적 금융사업이다.

대학기업화의 본질은 대학이 금융사업체가 되어 금융자본의 투기, 약탈, 지대수익 모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도 노인도 모두 대출의 노예가 되어, 벌어서 교육시장 주택시장에 갖다 바치며 살게 하는 구조다. 독재의 칼날이 아니라 도래하는 원리금 상환일이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반신자유주의 투쟁에서 빠짐없이 교육 개혁이 중심에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도 다시 시작하자. 대학 서열 해체하고, 입시 철폐하고, 대학 등록금 무상화하자. 목줄에 매달려 타인과 싸우지 말고, 그 목줄과 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