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와 처벌, 분리의 벽을 넘어
하영, 조영선, 조경미, 이윤승, 새시비비 씀
14,000원 | 2024
#생활지도 #생활지도고시 #학생인권
생활지도 고시의 함정,
‘지도’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통제와 처벌의 학교교육을 다시 묻다
생활지도 고시로 교육이 나아질 수 있을까?
이른바 ‘교권’ 강화 논리와 정책이 가진 한계와 문제점은?
통제와 처벌, 배제와 분리 중심의 학교를 극복할 길을 모색한다.
과연 학교교육의 문제가 교사의 생활지도로 해결될 수 있을까. 이 책은 생활지도 고시를 중심으로, ‘생활지도’의 이름으로 학교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을 비판적으로 돌아본다. 생활지도라는 개념과 방식이 오히려 많은 문제를 낳고 있음을 지적하고, 인권적이고 민주적인 학교를 위한 고민거리와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2023년, 교육부는 교권 강화 대책으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생활지도 고시)를 내놓았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그 내용을 이렇게 요약했다. “1.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불가능! 2. 학생 분리 가능! 3. 보호자 인계 가정학습 가능! 4. 물품 분리·보관 가능! 소지 물품 조사 가능! 5. 생활지도 불응 시 조치 가능!” 당시 여러 교육단체·인권단체들은 생활지도 고시가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며, 내용 중 용모·복장 단속, 휴대전화 등 소지품 압수 허용, 분리 조치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던 바 있다.
이 책은 생활지도 고시 시행 직후, 학생인권을 비롯해 소수자들과 연대하는 교사들의 모임인 ‘연대하는 교사잡것들’에서 그 내용을 검토하고 토론한 세미나를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연대하는 교사잡것들에서 활동하는 교사들과 장애 학생의 부모로서 활동해 온 활동가가 함께 썼다.
책 속에서는 생활지도 고시의 내용과 생활지도의 개념을 검토하면서, 학교 현장에서의 경험과 사례를 바탕으로 그 문제점을 짚는다. 먼저 앞부분에서는 생활지도 고시가 만들어진 배경과 학생인권 및 교권 담론의 역사와 현실을 살피고, 생활지도가 학생에 대한 명령과 징계의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이어지는 글은 생활지도 고시에서 중요한 비중을 가진 ‘휴대전화’와 ‘분리’의 문제를 다룬다. 학생의 휴대전화를 통제하고 금지하는 데 열을 올리는 생활지도 고시에 의문을 제기하고, 학생을 교실 밖으로 분리시키는 방식이 낳은 부작용과 문제점을 말한다. 또한, 사례들을 통해 생활지도가 어떻게 다양한 학생들에게 차별적이고 불합리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후반부에서는 생활지도 고시나 법령에 따라 ‘정당한 생활지도’를 하고자 할 때 실제로는 여러 어려움과 딜레마에 부딪히게 됨을 보여 주며, 학교의 환경과 조건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함을 역설한다. 끝으로 학교에 필요한 것은 ‘생활지도 강화’가 아니라 민주적인 규칙과 학생인권을 지키는 제도, 존중과 대화라고 제언한 글로 마무리된다.
저자들은 생활지도 고시라는 특정 제도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생활지도란 어떤 의미로 쓰여 왔는지, 교사의 학생 처벌(징계)과 통제 위주로 이루어져 온 ‘지도’는 과연 정당한지 질문을 던진다. 학생들의 다양성을 고려하고 지원하지 않는 수업이나 차별적인 기준과 부당한 방식의 지도가 행해지는 학교 현실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생활지도 고시에 따른 조치들이 장애 학생을 교실 밖으로 몰아내고 ‘교권 침해 가해자’로 위치시키는 등 어떤 학생들을 지우고 배제하게 되는지를 증언한다. 그리고 교사 개인의 학생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방식이 교사를 더욱 고립시키고 학교의 문제점을 지속시킬 가능성을 우려한다.
교육 조건의 개선도 학교의 변화도 없이, 교사에게 자의적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은 교육적이지도, 인권적이지도 않고,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방식으로는 학생의 ‘생활’은 ‘지도’될 수 없다. 이 책은 생활지도 고시의 문제점을 곱씹어보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교육은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고민거리와 상상력을 안겨 줄 것이다.
책 속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생활지도 고시와 그 해설서에 맺힌 한을 적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참여자들이 우리가 나눈 분노와 무력감뿐만 아니라 생활지도 고시의 허황된 약속, 현장과 관련된 질문들, 혼란들을 나누어 주었다. “분리의 결과는? 그럼 이제 교실에는 누가 남을까요?”, “특수교육대상자 학부모들을 늘 수업에 방해되는 존재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소수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고시대로 가면 곧 특수교육대상자들은 모두 ‘가정학습’ 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아요”와 같은 소중한 의견들이 오갔다.
- 12쪽
학생과 교사의 위계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교사 집단은 학생인권은 등진 채 자신들이 더 큰 피해자이자 약자라고 호소하며 교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정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이야기되는 ‘교권’이란 매우 한정적인 것이었다.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이나 학교장, 교육 당국으로부터의 부당한 간섭을 막기 위한 권리는 그런 교권 안에는 없었다. 학생 생활지도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권한과 권력, 학생과 양육자로부터의 민원을 막아 낼 권한, 아동학대 가해자로 지목되지 않을 방어권이 교권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이다. 교사의 생활지도의 의미와 범위를 정의하고, 가능한 방식을 규정했는데, 이미 예전부터 해 오던 인권 침해에 가까운 지도 방식들을 허용하는 내용도 담긴 고시였다.
- 28쪽
징계 기준표와 벌점 규정을 보면 ‘교사의 정당한 지도에 불응한 학생’이 첫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이 조항만 가지고도 다른 규정이 필요 없이 학생의 모든 행위를 징계할 수 있다. 학교 내의 형법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 징계 기준이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학교의 잠재적 교육과정은 ‘눈치 교육과정’이 된다.
- 48~49쪽
교육 당국은 교사의 학생에 대한 지도 범위를 실로 광범위하게 제시하고 있다. 생활지도 고시는 ‘학업 및 진로’, ‘보건 및 안전’, ‘인성 및 대인관계’, 그리고 ‘그 밖의 분야’(특수교육대상자와 다문화 학생에 대한 인식 및 태도, 건전한 학교생활 문화 조성을 위한 용모 및 복장, 비행 및 범죄 예방, 그 밖에 학칙으로 정하는 사항)를 생활지도의 범위로 명시했다. 학생인권 규범에 의해 인권 침해라고 비판받은 개인의 두발·복장 등 용모에 대한 단속도 생활지도의 범위라고 제시하여 규제가 폐지된 학교에서도 교사나 교장의 방침에 따라 규제가 부활할 여지를 준 것은, 교육 당국이 과거에는 물론 현재까지도 인권 침해 행위를 교육상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 58쪽
생활지도 고시와 해설서를 더 구체적으로 보면, 휴대전화는 대부분의 단계에서 다뤄진다. 상담 단계에선 휴대전화를 왜 사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내용이 나올 법하지만, 교사가 학생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학생이 전자기기로 녹취와 녹화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주의 단계에선 수업 중 사용 시에 주의를 줄 수 있음이, 훈육 단계에선 훈육의 일환으로서 물품을 분리시킬 수 있음이 나온다. 종합하면 어떻게 수업 시간에 전자기기 사용을 줄이면서 수업에 참여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없고, 휴대전화를 이용한 녹취·녹화를 막고, 상담 중이든 수업 중이든 학생이 교사 허락 없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압수를 해서라도 못 쓰게 하는 표면적인 대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 67~68쪽
분리 조치의 시행은 상호 감시가 일상적인 억압적인 공간을 만든다. 교과 전담 교사로 들어가는 어떤 학급에서는 학생이 조금이라도 수업을 방해한다고 여겨지는 행동(의자를 앞뒤로 밀어 왔다 갔다 하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는)을 할 때, 다른 학생들이 해당 학생을 분리할 것을 먼저 요구한다. 일상적인 분리 조치의 시행은 함께 공간을 구성하는 이들을 존중하고 서로 다름을 이해하는 방식을 익히게 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정상성을 기준으로 계속해서 서로를 평가하게 한다.
- 93쪽
학생 분리에 대한 권한이 주어졌다고 해도 현재 학교는 교사가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며, 이런 조건에서 분리 조치는 학생을 회복과 지원으로부터 배제하기 쉽다. 즉 학급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에 대한 학교 내에서의 협력적인 지원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닌, 개인에게 생활지도권을 부여한 후 그 책임을 혼자서 감당하게 하는 방식은 교원을 고립시킨다. 한마디로 각자도생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학교 구조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103쪽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과 생활지도’를 보장한다는 것이, 학교에서의 결정 과정에 학생이나 양육자는 아무런 의견도 제시할 수 없고 저항할 수 있는 방어권도 없이, 교사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겠다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 장애를 가진 학생이 겪는 교육 환경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교사의 교육활동과 생활지도의 권한만을 강조한다면, 장애 학생의 통합교육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장애 학생의 참여를 위한 교육 현장의 변화와 지원 없이는 장애를 가진 학생의 존재 자체가 교사의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여겨질 것이다.
- 127쪽
두 사례에서 앞서 나열한 기준들 중, 교사의 생활지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사회적 통념”이다. 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사회적 통념은 청소년을 무성無性적 존재로 보거나 청소년의 성에 관련한 행동 자체를 용인하지 않는다. 또 시스젠더와 이성애가 정상적인 성장의 기준으로 여겨진다. 이 기준을 벗어난 학생에 대해 지도하는 것이 교사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 140~141쪽
생활지도 고시를 통해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지도 권한을 명문화하여 교권을 강화하겠다는 교육부의 설명과는 달리, 교사가 징계를 하려고 해도 법령과 학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인권의 원칙은 징계 시에도 계속 지켜져야 하며, 이는 생활지도 고시보다도 상위법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현재 생활지도 고시를 정확하게 살펴보지 않고 정부의 말만 듣고 사례에서와 같이 무리하게 강한 주의, 지도, 물리적 제지 등을 사용했을 때 교사가 기대하는 징계는 오히려 어렵고, 만약에 징계를 하더라도 학생 측에서 이의를 제기하면 징계의 부당성이 쉽게 입증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점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빈 수레만 요란한 생활지도 고시다.
- 176쪽
우선 교사가 모든 학생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은 독재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라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누구도 누구의 행동을 강제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원칙이 통할 때, 현재 교사에게 부과되는 무한 책임도 시스템에서 보호하는 감당할 만한 책임으로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 해도 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의 정확한 경계가 있을 때 교사들도 안전한 노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학생인권법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분명하고 안전한 경계가 될 수 있다.
- 218~219쪽
우리나라의 교육 관행에서 ‘대화’와 ‘상담’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다뤄져 왔다. 물론 학교 현장에서 대화와 상담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때 주된 발화자는 교사이다. 교사가 판단하기에 옳은 것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하고, 학생이 납득되지 않을 때 질문을 하거나 반대 의견을 말하는 것은 교사의 지시에 불응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교에서의 ‘대화’와 ‘상담’은 대개 상호소통이라기보다 지시와 복종에 가깝다. 지시에 따른 복종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즉각적으로 벌을 주는 징계권이 사용되고, 상담의 끝은 결국 교사의 지시가 관철되는 것이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왜 그 지시를 따르지 않는가 또는 교사가 말하는 가치가 당사자에게 왜 의미 있게 들리지 않는가에 대해 소통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강제적으로 복종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이렇게 대화를 지속해야 할 필요가 없어져 버린다.
- 225쪽
목차
들어가는 글 6
2023년, 생활지도를 둘러싼 이상한 논쟁 16
생활지도란 무엇인가 40
휴대전화, 만악의 근원일까 62
학생 분리, 정상성으로 경계 짓기 84
장애 학생에게 생활지도 고시란 110
젠더·섹슈얼리티 사례로 보는,
다양성을 거부하게 하는 생활지도 135
생활지도 고시가 학교에 가져오는 딜레마 156
민주적인 규칙과 학생인권이 필요하다 206
저자 소개 229
저자 소개
하영
초등 교사,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 세상 곳곳의 억압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던 어린 저는 교사로 학교에 돌아왔습니다. 삶을 미래로 유예하지 않고 지금을 잘 살아 낼 수 있도록 어린이들의 삶을 바라보고 그 곁에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자 청소년인권운동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비판적 어린이학에 토대를 두고 공부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조영선
중등 교사,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서울의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살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을 만나 ‘내 안의 꼰대스러움’으로부터 해방되면서 ‘학교에서 살아가는 힘’이 커지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좌충우돌하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는 괜찮은 교사, 아니 ‘괜춘한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조경미
통합교육 다모여 활동가.
실질적인 교육 현장의 변화를 위해 목소리 내고 움직이는 것을 지향하는 ‘통합교육 다모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 학생에 대한 이해와 지원 대신 비장애인 중심주의적으로 장애 학생을 교실에서 쫓아내는 식의 생활지도에 관한 문제의식으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말뿐인, 형식적인 통합교육이 아닌, 모두를 위한 통합교육이 필요합니다.
이윤승
중등 교사,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수학에서는 충분하다는 표현으로 ‘sufficient’를 씁니다. 더 이상 필요없다는 뜻의 ‘enough’와 달리, ‘sufficient’는 더 커져도 좋은 상태입니다. 학생의 인권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권이 충분하다고 할 때도 ‘sufficient’를 써야 하며, 더 나아가기를 멈추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학교 안팎에서 활동해 왔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새시비비
중등 교사.
교사가 선한 의지를 가지고 가르친다는 가정에 의문을 품고 있는 교사입니다. 성평등한청소년인권실현을위한전북시민연대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BUT, [벗]
‘BUT,’ 시리즈는 우리 시대의 교육 현안을
깊게 분석하고 대안·해법·방향을 모색하는
교육공동체 벗의 연구서 총서입니다.
통제와 처벌, 분리의 벽을 넘어
하영, 조영선, 조경미, 이윤승, 새시비비 씀
14,000원 | 2024
#생활지도 #생활지도고시 #학생인권
생활지도 고시의 함정,
‘지도’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통제와 처벌의 학교교육을 다시 묻다
생활지도 고시로 교육이 나아질 수 있을까?
이른바 ‘교권’ 강화 논리와 정책이 가진 한계와 문제점은?
통제와 처벌, 배제와 분리 중심의 학교를 극복할 길을 모색한다.
과연 학교교육의 문제가 교사의 생활지도로 해결될 수 있을까. 이 책은 생활지도 고시를 중심으로, ‘생활지도’의 이름으로 학교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을 비판적으로 돌아본다. 생활지도라는 개념과 방식이 오히려 많은 문제를 낳고 있음을 지적하고, 인권적이고 민주적인 학교를 위한 고민거리와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2023년, 교육부는 교권 강화 대책으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생활지도 고시)를 내놓았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그 내용을 이렇게 요약했다. “1.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불가능! 2. 학생 분리 가능! 3. 보호자 인계 가정학습 가능! 4. 물품 분리·보관 가능! 소지 물품 조사 가능! 5. 생활지도 불응 시 조치 가능!” 당시 여러 교육단체·인권단체들은 생활지도 고시가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며, 내용 중 용모·복장 단속, 휴대전화 등 소지품 압수 허용, 분리 조치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던 바 있다.
이 책은 생활지도 고시 시행 직후, 학생인권을 비롯해 소수자들과 연대하는 교사들의 모임인 ‘연대하는 교사잡것들’에서 그 내용을 검토하고 토론한 세미나를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연대하는 교사잡것들에서 활동하는 교사들과 장애 학생의 부모로서 활동해 온 활동가가 함께 썼다.
책 속에서는 생활지도 고시의 내용과 생활지도의 개념을 검토하면서, 학교 현장에서의 경험과 사례를 바탕으로 그 문제점을 짚는다. 먼저 앞부분에서는 생활지도 고시가 만들어진 배경과 학생인권 및 교권 담론의 역사와 현실을 살피고, 생활지도가 학생에 대한 명령과 징계의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이어지는 글은 생활지도 고시에서 중요한 비중을 가진 ‘휴대전화’와 ‘분리’의 문제를 다룬다. 학생의 휴대전화를 통제하고 금지하는 데 열을 올리는 생활지도 고시에 의문을 제기하고, 학생을 교실 밖으로 분리시키는 방식이 낳은 부작용과 문제점을 말한다. 또한, 사례들을 통해 생활지도가 어떻게 다양한 학생들에게 차별적이고 불합리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후반부에서는 생활지도 고시나 법령에 따라 ‘정당한 생활지도’를 하고자 할 때 실제로는 여러 어려움과 딜레마에 부딪히게 됨을 보여 주며, 학교의 환경과 조건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함을 역설한다. 끝으로 학교에 필요한 것은 ‘생활지도 강화’가 아니라 민주적인 규칙과 학생인권을 지키는 제도, 존중과 대화라고 제언한 글로 마무리된다.
저자들은 생활지도 고시라는 특정 제도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생활지도란 어떤 의미로 쓰여 왔는지, 교사의 학생 처벌(징계)과 통제 위주로 이루어져 온 ‘지도’는 과연 정당한지 질문을 던진다. 학생들의 다양성을 고려하고 지원하지 않는 수업이나 차별적인 기준과 부당한 방식의 지도가 행해지는 학교 현실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생활지도 고시에 따른 조치들이 장애 학생을 교실 밖으로 몰아내고 ‘교권 침해 가해자’로 위치시키는 등 어떤 학생들을 지우고 배제하게 되는지를 증언한다. 그리고 교사 개인의 학생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방식이 교사를 더욱 고립시키고 학교의 문제점을 지속시킬 가능성을 우려한다.
교육 조건의 개선도 학교의 변화도 없이, 교사에게 자의적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은 교육적이지도, 인권적이지도 않고,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방식으로는 학생의 ‘생활’은 ‘지도’될 수 없다. 이 책은 생활지도 고시의 문제점을 곱씹어보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교육은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고민거리와 상상력을 안겨 줄 것이다.
책 속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생활지도 고시와 그 해설서에 맺힌 한을 적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참여자들이 우리가 나눈 분노와 무력감뿐만 아니라 생활지도 고시의 허황된 약속, 현장과 관련된 질문들, 혼란들을 나누어 주었다. “분리의 결과는? 그럼 이제 교실에는 누가 남을까요?”, “특수교육대상자 학부모들을 늘 수업에 방해되는 존재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소수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고시대로 가면 곧 특수교육대상자들은 모두 ‘가정학습’ 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아요”와 같은 소중한 의견들이 오갔다.
- 12쪽
학생과 교사의 위계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교사 집단은 학생인권은 등진 채 자신들이 더 큰 피해자이자 약자라고 호소하며 교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정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이야기되는 ‘교권’이란 매우 한정적인 것이었다.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이나 학교장, 교육 당국으로부터의 부당한 간섭을 막기 위한 권리는 그런 교권 안에는 없었다. 학생 생활지도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권한과 권력, 학생과 양육자로부터의 민원을 막아 낼 권한, 아동학대 가해자로 지목되지 않을 방어권이 교권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이다. 교사의 생활지도의 의미와 범위를 정의하고, 가능한 방식을 규정했는데, 이미 예전부터 해 오던 인권 침해에 가까운 지도 방식들을 허용하는 내용도 담긴 고시였다.
- 28쪽
징계 기준표와 벌점 규정을 보면 ‘교사의 정당한 지도에 불응한 학생’이 첫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이 조항만 가지고도 다른 규정이 필요 없이 학생의 모든 행위를 징계할 수 있다. 학교 내의 형법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 징계 기준이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학교의 잠재적 교육과정은 ‘눈치 교육과정’이 된다.
- 48~49쪽
교육 당국은 교사의 학생에 대한 지도 범위를 실로 광범위하게 제시하고 있다. 생활지도 고시는 ‘학업 및 진로’, ‘보건 및 안전’, ‘인성 및 대인관계’, 그리고 ‘그 밖의 분야’(특수교육대상자와 다문화 학생에 대한 인식 및 태도, 건전한 학교생활 문화 조성을 위한 용모 및 복장, 비행 및 범죄 예방, 그 밖에 학칙으로 정하는 사항)를 생활지도의 범위로 명시했다. 학생인권 규범에 의해 인권 침해라고 비판받은 개인의 두발·복장 등 용모에 대한 단속도 생활지도의 범위라고 제시하여 규제가 폐지된 학교에서도 교사나 교장의 방침에 따라 규제가 부활할 여지를 준 것은, 교육 당국이 과거에는 물론 현재까지도 인권 침해 행위를 교육상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 58쪽
생활지도 고시와 해설서를 더 구체적으로 보면, 휴대전화는 대부분의 단계에서 다뤄진다. 상담 단계에선 휴대전화를 왜 사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내용이 나올 법하지만, 교사가 학생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학생이 전자기기로 녹취와 녹화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주의 단계에선 수업 중 사용 시에 주의를 줄 수 있음이, 훈육 단계에선 훈육의 일환으로서 물품을 분리시킬 수 있음이 나온다. 종합하면 어떻게 수업 시간에 전자기기 사용을 줄이면서 수업에 참여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없고, 휴대전화를 이용한 녹취·녹화를 막고, 상담 중이든 수업 중이든 학생이 교사 허락 없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압수를 해서라도 못 쓰게 하는 표면적인 대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 67~68쪽
분리 조치의 시행은 상호 감시가 일상적인 억압적인 공간을 만든다. 교과 전담 교사로 들어가는 어떤 학급에서는 학생이 조금이라도 수업을 방해한다고 여겨지는 행동(의자를 앞뒤로 밀어 왔다 갔다 하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는)을 할 때, 다른 학생들이 해당 학생을 분리할 것을 먼저 요구한다. 일상적인 분리 조치의 시행은 함께 공간을 구성하는 이들을 존중하고 서로 다름을 이해하는 방식을 익히게 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정상성을 기준으로 계속해서 서로를 평가하게 한다.
- 93쪽
학생 분리에 대한 권한이 주어졌다고 해도 현재 학교는 교사가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며, 이런 조건에서 분리 조치는 학생을 회복과 지원으로부터 배제하기 쉽다. 즉 학급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에 대한 학교 내에서의 협력적인 지원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닌, 개인에게 생활지도권을 부여한 후 그 책임을 혼자서 감당하게 하는 방식은 교원을 고립시킨다. 한마디로 각자도생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학교 구조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103쪽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과 생활지도’를 보장한다는 것이, 학교에서의 결정 과정에 학생이나 양육자는 아무런 의견도 제시할 수 없고 저항할 수 있는 방어권도 없이, 교사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겠다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 장애를 가진 학생이 겪는 교육 환경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교사의 교육활동과 생활지도의 권한만을 강조한다면, 장애 학생의 통합교육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장애 학생의 참여를 위한 교육 현장의 변화와 지원 없이는 장애를 가진 학생의 존재 자체가 교사의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여겨질 것이다.
- 127쪽
두 사례에서 앞서 나열한 기준들 중, 교사의 생활지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사회적 통념”이다. 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사회적 통념은 청소년을 무성無性적 존재로 보거나 청소년의 성에 관련한 행동 자체를 용인하지 않는다. 또 시스젠더와 이성애가 정상적인 성장의 기준으로 여겨진다. 이 기준을 벗어난 학생에 대해 지도하는 것이 교사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 140~141쪽
생활지도 고시를 통해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지도 권한을 명문화하여 교권을 강화하겠다는 교육부의 설명과는 달리, 교사가 징계를 하려고 해도 법령과 학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인권의 원칙은 징계 시에도 계속 지켜져야 하며, 이는 생활지도 고시보다도 상위법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현재 생활지도 고시를 정확하게 살펴보지 않고 정부의 말만 듣고 사례에서와 같이 무리하게 강한 주의, 지도, 물리적 제지 등을 사용했을 때 교사가 기대하는 징계는 오히려 어렵고, 만약에 징계를 하더라도 학생 측에서 이의를 제기하면 징계의 부당성이 쉽게 입증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점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빈 수레만 요란한 생활지도 고시다.
- 176쪽
우선 교사가 모든 학생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은 독재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라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누구도 누구의 행동을 강제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원칙이 통할 때, 현재 교사에게 부과되는 무한 책임도 시스템에서 보호하는 감당할 만한 책임으로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 해도 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의 정확한 경계가 있을 때 교사들도 안전한 노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학생인권법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분명하고 안전한 경계가 될 수 있다.
- 218~219쪽
우리나라의 교육 관행에서 ‘대화’와 ‘상담’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다뤄져 왔다. 물론 학교 현장에서 대화와 상담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때 주된 발화자는 교사이다. 교사가 판단하기에 옳은 것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하고, 학생이 납득되지 않을 때 질문을 하거나 반대 의견을 말하는 것은 교사의 지시에 불응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교에서의 ‘대화’와 ‘상담’은 대개 상호소통이라기보다 지시와 복종에 가깝다. 지시에 따른 복종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즉각적으로 벌을 주는 징계권이 사용되고, 상담의 끝은 결국 교사의 지시가 관철되는 것이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왜 그 지시를 따르지 않는가 또는 교사가 말하는 가치가 당사자에게 왜 의미 있게 들리지 않는가에 대해 소통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강제적으로 복종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이렇게 대화를 지속해야 할 필요가 없어져 버린다.
- 225쪽
목차
들어가는 글 6
2023년, 생활지도를 둘러싼 이상한 논쟁 16
생활지도란 무엇인가 40
휴대전화, 만악의 근원일까 62
학생 분리, 정상성으로 경계 짓기 84
장애 학생에게 생활지도 고시란 110
젠더·섹슈얼리티 사례로 보는,
다양성을 거부하게 하는 생활지도 135
생활지도 고시가 학교에 가져오는 딜레마 156
민주적인 규칙과 학생인권이 필요하다 206
저자 소개 229
저자 소개
하영
초등 교사,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 세상 곳곳의 억압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던 어린 저는 교사로 학교에 돌아왔습니다. 삶을 미래로 유예하지 않고 지금을 잘 살아 낼 수 있도록 어린이들의 삶을 바라보고 그 곁에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자 청소년인권운동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비판적 어린이학에 토대를 두고 공부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조영선
중등 교사,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서울의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살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을 만나 ‘내 안의 꼰대스러움’으로부터 해방되면서 ‘학교에서 살아가는 힘’이 커지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좌충우돌하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는 괜찮은 교사, 아니 ‘괜춘한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조경미
통합교육 다모여 활동가.
실질적인 교육 현장의 변화를 위해 목소리 내고 움직이는 것을 지향하는 ‘통합교육 다모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 학생에 대한 이해와 지원 대신 비장애인 중심주의적으로 장애 학생을 교실에서 쫓아내는 식의 생활지도에 관한 문제의식으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말뿐인, 형식적인 통합교육이 아닌, 모두를 위한 통합교육이 필요합니다.
이윤승
중등 교사,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수학에서는 충분하다는 표현으로 ‘sufficient’를 씁니다. 더 이상 필요없다는 뜻의 ‘enough’와 달리, ‘sufficient’는 더 커져도 좋은 상태입니다. 학생의 인권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권이 충분하다고 할 때도 ‘sufficient’를 써야 하며, 더 나아가기를 멈추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학교 안팎에서 활동해 왔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새시비비
중등 교사.
교사가 선한 의지를 가지고 가르친다는 가정에 의문을 품고 있는 교사입니다. 성평등한청소년인권실현을위한전북시민연대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BUT, [벗]
‘BUT,’ 시리즈는 우리 시대의 교육 현안을
깊게 분석하고 대안·해법·방향을 모색하는
교육공동체 벗의 연구서 총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