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성장과 미술교육
김인규 씀
24,000원 | 2025
#미술교육 #미술 #자기표현
본능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즐기던 우리는
언제부터, 왜 미술을 멀리하게 되었을까?
미술 교사 김인규가 교실에서 만든 특별한 미술교육 이야기
“미술은 배워서 하는 활동이기 전에 스스로 표현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기반에는 교사의 부단한 노력과 역할이 있다.”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게 한 미술 시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서로를 비교하며
미술을 두려워하던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낸 반짝이는 교육적 순간들을 담다.
그리기를 두려워하는 아이들
누구나 본능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즐긴다. 어린 시절 집 안 벽과 창문, 가구 할 것 없이 신나게 그림을 그리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러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그리기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미술을 지루하거나 어려운 활동으로 여기고 그리기에서는 특히 그렇다. 성인들 역시 그림은 자신이 즐길 만한 것이 아닌 일로 여긴다.
우리들은 언제부터 그림을 못(안) 그리게 되었을까. 저자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은 아닌가 여기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실로 찾아가 아이들을 만난다. 이 책은 중등 미술 교사로 오래 활동해 온 저자가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한 4년의 기록을 담았다.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는 미술을 통해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며 성장하는 과정이자, 저자에게는 미술교육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정립하게 해 준 시간이었다.
이 책의 구조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Ⅰ부. 그리기’는 미술의 가장 기본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기를 다룬다. 첫 그림 그리기가 시작되는 1세 때부터 출발하여 구상적 이미지를 그리는 단계를 거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움츠러들고 때로는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추적한다. 저자는 특히 ‘보고 그리기’ 활동을 강조하며, 보통 ‘보고 그리기’에서 ‘그리기’에 방점을 찍지만 핵심은 ‘보고’에 있다고 말한다.
‘Ⅱ부. 안 그리기’는 미술 하면 ‘그리기’를 떠올리는 데서 벗어나 ‘아무것도 그리지 않기’를 표방하는 전복적 과정을 담았다. 일명 ‘깜지 활동’이다. 무언가를 그려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서 탈피해서 종이와 연필을 그리기의 도구 이상으로 경험해 보기 위함이다. 단지 까맣게 칠하는 활동에서도 아이들의 개성과 창의력이 발휘되는 순간들이 경이로움을 전한다.
‘Ⅲ부. 매체로부터’에서는 미술이 물질성을 가진다는 점에 천착한다. 아무런 주제도 제시하지 않고 그저 재료만 제공했을 때 미술 활동은 의식적이기 전에 감각적인 활동이 된다. 새로운 재료에 자극을 받아 창의성과 상상력을 분출하는 아이들을 보며 저자는 색다른 재료와 매체를 제공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게 된다고 고백한다.
미술은 기본적으로 자기표현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그것은 배워야 가능하다. ‘Ⅵ부. 자기표현으로서 미술과 지식적 차원’에서 저자는 표현의 즐거움을 발견하고 빠져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뒷받침과 지지가 필요하고 교사라는 든든한 지원자와 교실이라는 안전한 공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Ⅴ부. 이미지를 가로질러’에서는 이미지를 놀이의 대상으로 삼아 유쾌하게 비튼다. 이미지는 한번 생성되는 순간 하나의 세계를 형성할 정도로 힘이 세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콜라주 기법을 활용하거나 전통 미술의 무대를 현재로 옮겨 오는 등의 기법으로 아이들은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에서 해방되어 가볍고 경쾌한 활동을 이어 간다.
‘Ⅵ. 끊임없는 교사의 역할’에서는 미술 교과가 가진 특성과 교사의 역할을 다룬다. 아동의 미술에서 교사의 역할을 무의미한 것으로 보는 경향에 대해 저자는 의문을 표하며 아이들은 이미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내버려 둔다고 해서 독창성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에 교사의 역할이 있다. 다른 교과들처럼 정해진 지식이나 규범 안에 있지 않고 자기표현을 기반으로 하는 미술 교과의 독보적 측면도 주목해야 한다.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정해진 답이 없는 미술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실험과 실패를 시도하며 새로운 역동을 만들어 낸다.
미술과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
“결국 교육은 아이의 성장을 도모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미술교육의 목표 역시 아이가 미술을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미술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이러한 관점은 책에서 “아이들의 손의 움직임을 따뜻한 시선으로 주목하는” 데서 드러난다. 조금 어설픈 그림에도 저자는 “결코 못 그린 것이 아니라 분명 자기 나름의 성취를 해내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는 지금 새로운 세계를 그려 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미술이 자기 존재의 고유함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데서 중요한 표현 수단 하나를 더 갖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술을 통해 자신을 마음껏 발산하고 성장하며 빛나는 교육적 장면들을 만들어 준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책 속에서
결국 교육은 아이의 성장을 도모하는 일이다. 미술교육의 목표 역시 아이가 미술을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미술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행운을 얻었다. 아이들 또한 즐거움으로 그것에 화답했다. (……)
그간의 미술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미술’에 방점을 찍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혹은 어떻게 배우는가만 중시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나는 그 방점을 ‘아이’에게로 옮겨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술이 자기표현을 기반으로 한다고 할 때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미술은 또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창이 될 수 있다. 감출 수 없는 자기표현이 미술을 통해 드러난다고 할 때 아이의 삶과 함께해야 하는 어른들에게 좋은 참조점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수년간의 나의 여정은 그렇게 미술과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미술교육의 의미와 역할을 짚어 오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책을 펴내며〉 가운데
그림 1-12의 경우는 아주 흥미로운데 누가 봐도 뱀을 그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뱀을 그리려 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몸을 이루는 형태가 일반적인 뱀의 모습과는 다르게 자유분방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형태를 그려 놓고 나서 언뜻 뱀을 떠올렸고 머리 부분 같은 곳에 눈과 혀를 그려 넣어 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래쪽의 그림은 더욱 흥미롭다. 머리 모양을 찾아낸 부분의 형태가 바깥으로 열려 있다. 그럼에도 아이는 그것에서 머리 모양을 보았고 눈과 혀를 그려 넣어 뱀을 만들어 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매우 역동적인 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는 일은 어쩌면 발견하는 일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 발견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 Ⅰ부. 그리기, 〈3. 이름 붙이기〉 가운데, 본문 39쪽
일반적으로 ‘보고 그리기’에서 사람들은 ‘그리기’에 방점을 찍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하면 잘 그릴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가진다. 그렇지만 ‘보고 그리기’에서 핵심은 ‘보고’에 있다. 그 실재를 보는 일이다. 순간순간 그리는 사람과 사물 간의 직접 만남이 성립된다. 아이들은 알고 있는 이미지와 실재가 가진 차이를 발견하게 되며 그 낯설음을 마주해야 한다. 이때 아이들은 당황한다. “헛, 이상한데?” 그러고는 그것을 어찌 해야 할지 막막해한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이상하게 보이면 이상하게 그리라고 한다.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보이는 것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말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결국 알고 있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에서 절충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식의 갈등을 반복하면서 아이들은 아는 것 밖의 세계로 한 발 한 발 다가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보고 그리기’는 세상의 대상들을 온전히 자기 눈으로 찬찬히 마주하고 자신 안에 담아내는 과정인 셈이다. 성장기 어린이가 ‘보고 그리기’에 몰입해 봐야 하는 이유이다.
— Ⅰ부. 그리기, 〈9. ‘보고 그리기’란 무엇일까〉 가운데, 본문 88~89쪽
아이들에게 ‘잘 그리는가, 못 그리는가’ 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일이다. 아이들 사이에서 ‘누구는 잘 그린다’, ‘누구는 못 그린다’라는 비교는 끊임없이 벌어진다. 우월감과 열등감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좌절하고 부끄러워하여 그리기를 회피하게 되기도 한다. 실제로 어떤 아이에게 쉬운 일이 어떤 아이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된다. 관찰력이나 표현력에서 타고난 차이가 있으며 그것은 그림으로 드러난다. 나의 경우 수업이 끝나면 그림들을 모아 놓고 함께 비평하는 시간을 가졌다. 3학년부터 그랬는데, 어떤 아이는 그림을 보여 주지 않으려 하고, 보여 주더라도 숨어 버려서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리가 계속되자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이때 교사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교사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세심히 관찰하여 어디서 어려움을 겪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알맞은 조언을 할 때 아이가 손톱만큼이라도 성취한 부분을 발견하여 격려해야 한다.
— Ⅰ부. 그리기, 〈10. 에필로그 — 잘 그리는 아이〉 가운데, 본문 96~97쪽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그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는 말에 처음엔 아이들이 의아해했다. 어떤 아이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활동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미술’ 하면 무언가를 그려야 한다는 고정 관념으로부터 아이들이 벗어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종이와 연필을 그리기의 도구 이상으로 경험해 보기 위함이었다. 종이가 까매지도록 연필을 문지를 때, 아이들은 그리기 도구 이상, 그 자체로 물건 혹은 물질로서 연필과 종이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문지르는 소리와 함께 그 촉감과 질감을 충분히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연필의 색 또한 단지 까만 것 이상의 다양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 Ⅱ부. 안 그리기, 〈1. 깜지 활동으로부터〉 가운데, 본문 102~103쪽
미술이라는 분야가 가진 핵심적인 측면 중의 하나는 물질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물건을 활용하여 표현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에 사용되는 물건은 전통적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위한 재료 혹은 수단 정도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 이전에 재료 자체가 표현성을 가진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
‘무엇을 표현하자’라고 주제를 제시하고 활동을 시작하면 아이들은 그 표현 목표에 따라 의지적으로 재료를 다루기 시작하지만, 반대로 아무런 주제를 제시하지 않고 재료만 제공하면 아이들은 재료가 가진 물질적 특성에 반응하며 충동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때 미술 활동은 의식적이기 전에 감각적인 활동이 된다. 그럴 때 아이들은 감각성에 기반한 자기표현의 과정으로 몰입할 수 있다.
— Ⅲ부. 매체로부터, 〈1. 물질성으로부터〉 가운데, 본문 132~135쪽
스스로 가진 심미성을 느끼며 거기에서 성취감을 가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 내면서 얻는 성취감과 스스로 발견하고 수행하며 느끼는 성취감은 다른 차원일 수밖에 없다. 후자에서는 자기 동력과 자기 목적이 발생한다. 쓸모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아름다운 것이 된다. 거기에 자신 스스로가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은 말할 수 없는 것이리라. 미술을 하는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배워야 한다. 물론 배우지 않고도 그럴 수 있는 아이가 있을 텐데 매우 소수일 것이다. (……) 교사라는 튼튼한 지원자와 교실이라는 안전한 공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 Ⅳ부. 자기표현으로서 미술과 지식적 차원, 〈1. 자기표현이란 무엇인가?〉 가운데, 본문 191쪽
어떤 주어진 과제가 있더라도 교사는 이와 같이 아이의 활동이 가진 양면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아이가 성장의 노정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아이의 편에 서서 무엇을 격려하고 고무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개입하고 도움을 주어야 할지 또한 판단해야 한다. 아이는 지금 새로운 세계를 그려 내는 중이기 때문이다.
— Ⅳ부. 자기표현으로서 미술과 지식적 차원, 〈6. 에필로그 — 보고 그리기에서의 자기표현〉 가운데, 본문 237쪽
이미지의 힘은 세다. 한번 생산되는 순간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그래서 자신이 그린 그림 또한 아무리 자유롭게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세계로 자리 잡게 된다. 익숙한 방식으로 그림을 반복하게 되는 이유이다. 상업적으로 생산되어 배포된 이미지들 또한 아이들의 머릿속에 들어와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상상하여 그리기 혹은 자유롭게 그리기를 했을 때, 대체로 스스로 상상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그리지도 않는다. (……)
나는 그래서 이미지 또한 놀이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위해 생산된 이미지를 잘라 다시 분배하고 결합하는 놀이 시간을 가지고자 했다. 물론 그러한 재분배와 재배치 과정에서도 아이들은 익숙한 메커니즘을 따를 가능성이 크지만, 한번 부여했던 질서를 바꿔 보는 것은 그것을 좀 더 융통성 있게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를 위해 콜라주 기법을 활용했다.
— Ⅴ부. 이미지를 가로질러, 〈1. 자유 표현으로부터〉 가운데, 본문 240~241쪽
그런데 그리기를 무서워하는 진짜 이유는 잘 그린다는 그 품평의 기준이 이미 사회 문화적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데 있다. 잘 그린다고 하는 것에 개인의 재능의 차원이 있더라도 그것을 품평하는 기준과 가치는 전혀 개인적이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는 개개인이 가진 ‘독자성’ 혹은 ‘고유성’이 설 자리가 없다. 그렇게 ‘자기표현’은 배제되고 억압되면서 성장하게 된다. 그것은 이미 아이들에게 주어져 있는 조건이다.
다시 치젝으로 돌아가서 말한다면, ‘어린이 속에 있는 독자적인 것을 자유롭게 활동시키’기 위해서는 교사는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오히려 더 많은 조력과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이다. 비교감 속에서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스스로 해내는 것을 든든하게 지지해 주어야 한다. 그것은 아주 부단한 과정이다.
— Ⅵ. 끊임없는 교사의 역할, 〈1. 자유롭지 않은 아이들〉 가운데, 본문 286~287쪽
미술 표현은 이렇게 아이들의 모습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에서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 거기에는 잘하고 못하고를 넘어서는 아이의 정서적, 심리적 차원의 또 다른 배경이 있다. 미술은 다른 교과들처럼 정해진 지식이나 규범 안에 있지 않고 자기표현을 기반으로 하는 특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담아내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미술 표현의 힘일 것이다. 아이의 내면을 표현으로 녹여 내니 말이다. 미술 교사는 아이들의 그런 면모와 함께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 Ⅵ. 끊임없는 교사의 역할, 〈3. 발달과 성장〉 가운데, 본문 305쪽
다른 시간에는 통제되거나 금지되어야 할 행동도 표현의 범위 안에서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학교 물건을 파손하는 것과 미술 재료를 파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미술 시간에는 무엇을 망가트릴 수도 있고 엉뚱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그것이 재료인 이상, 그것을 다루는 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표현 활동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기표현을 실험하고 탐구할 수 있다. 활동의 과정에서 교실을 어지럽히는 것도 허용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 Ⅵ부. 끊임없는 교사의 역할, 〈5. 교실과 수업이라는 가상 공간〉 가운데, 본문 325쪽
학습의 과정과 결과가 아이들의 ‘표현 활동’이라는 것이 미술교육이 가진 독보적인 특성이다. 그리고 그 표현은 순전히 아이들의 창조적인 활동을 그 내용으로 한다. 때문에 그것은 교사에 의해 결코 가르쳐지지 않는다. 교사는 그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할 수는 있지만, 그 표현의 내용을 제시할 수는 없다. 순전히 아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에 ‘자기표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결국 표현은 아이들의 몫이 되고, 아이들의 표현 욕구를 자극하고 촉구할 수 있는 재료를 제시하고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일이 교사의 몫이 된다. 표현이 미술 교과의 학습 내용이라면, 학습은 전적으로 아이들의 몫이 되고, 교사는 그것을 지원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미술 교과가 가지는 독보적인 측면이다. 그동안 미술교육이 등한히 여겨 온 미술교육의 핵심이다.
— Ⅵ부. 끊임없는 교사의 역할, 〈6. 미술 교과의 독보적인 성격〉 가운데, 본문 330~331쪽
책의 목차
책을 펴내며 | 나는 왜 이런 책을 쓰게 되었을까
Ⅰ. 그리기
1. 출발
2. 구상적 이미지의 등장
3. 이름 붙이기
4. 이름 붙이지 못하는, 혹은 않는 아이
5. 친구를 따라 하려던 아이
6. 함께하며 크는 아이들
7. 보고 그리기의 시작
8. 본격적으로 보고 그리기
9. ‘보고 그리기’란 무엇일까
10. 에필로그 — 잘 그리는 아이
Ⅱ. 안 그리기
1. 깜지 활동으로부터
2. 깜지 활동의 확장
3. 매체 탐구로서 깜지
4. 에필로그 — 깜지를 고집하는 아이
Ⅲ. 매체로부터
1. 물질성으로부터
2. 물감으로부터
3. 입체적 재료로부터
4. 에필로그 — 찰흙 활동의 또 다른 모습
Ⅳ. 자기표현으로서 미술과 지식적 차원
1. 자기표현이란 무엇인가?
2. 깜지 활동에서 자기표현과 지식적 차원의 개입
3. 물감 활동에서 — 지식적 차원의 두 가지 측면
4. 서예에서 — 지식적 차원과 자기표현
5. 입체 표현에서의 전개
6. 에필로그 — 보고 그리기에서의 자기표현
Ⅴ. 이미지를 가로질러
1. 자유 표현으로부터
2. 인물 그리기로부터
3. 김홍도의 〈씨름도〉 속으로
4. 에필로그 — 공간의 발견
Ⅵ. 끊임없는 교사의 역할
1. 자유롭지 않은 아이들
2. 자기 존재의 표현으로서 미술
3. 발달과 성장
4. 사회적 과정으로
5. 교실과 수업이라는 가상 공간
6. 미술 교과의 독보적인 성격
부록
1. 유치원 과정
2. 화분 그리기 과정
3. 깜지 활동 과정
4. 물감 활동 과정
5. 인물 그리기 과정
6. 서예와 수묵 과정
7. 입체 활동 과정
감사의 글
저자 소개
김인규
30년 가까이 중등학교에서 미술 교사를 지냈다. 젊은 시절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미술 활동을 한 바 있으며 퇴직 후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하면서 집필에 이르게 되었다. 오랜 세월 전국미술교과모임에 몸담으며 동료 교사들과 함께 미술교육 연구를 해 왔다. 발달장애인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미술 활동을 하여 왔고 지금은 작가로서 활동하며 지내고 있다. 중등학교의 미술 교과서(미진사)를 여러 차례 대표 집필하였고, 《시각문화교육 관점에서 쓴 미술교과서》(휴머니스트)의 집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저서로는 《나의 그림은 실제상황이다》(푸른나무), 《화장실에서 놀자》(디딤돌), 《안면도가 우리 학교야》(디딤돌)가 있고,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 : 지형그리기》(문화과학사), 《장소 특정적 미술》(현실문화)의 번역에 참여하였다.
김인규 씀
24,000원 | 2025
#미술교육 #미술 #자기표현
본능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즐기던 우리는
언제부터, 왜 미술을 멀리하게 되었을까?
미술 교사 김인규가 교실에서 만든 특별한 미술교육 이야기
“미술은 배워서 하는 활동이기 전에 스스로 표현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기반에는 교사의 부단한 노력과 역할이 있다.”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게 한 미술 시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서로를 비교하며
미술을 두려워하던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낸 반짝이는 교육적 순간들을 담다.
그리기를 두려워하는 아이들
누구나 본능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즐긴다. 어린 시절 집 안 벽과 창문, 가구 할 것 없이 신나게 그림을 그리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러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그리기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미술을 지루하거나 어려운 활동으로 여기고 그리기에서는 특히 그렇다. 성인들 역시 그림은 자신이 즐길 만한 것이 아닌 일로 여긴다.
우리들은 언제부터 그림을 못(안) 그리게 되었을까. 저자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은 아닌가 여기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실로 찾아가 아이들을 만난다. 이 책은 중등 미술 교사로 오래 활동해 온 저자가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한 4년의 기록을 담았다.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는 미술을 통해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며 성장하는 과정이자, 저자에게는 미술교육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정립하게 해 준 시간이었다.
이 책의 구조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Ⅰ부. 그리기’는 미술의 가장 기본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기를 다룬다. 첫 그림 그리기가 시작되는 1세 때부터 출발하여 구상적 이미지를 그리는 단계를 거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움츠러들고 때로는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추적한다. 저자는 특히 ‘보고 그리기’ 활동을 강조하며, 보통 ‘보고 그리기’에서 ‘그리기’에 방점을 찍지만 핵심은 ‘보고’에 있다고 말한다.
‘Ⅱ부. 안 그리기’는 미술 하면 ‘그리기’를 떠올리는 데서 벗어나 ‘아무것도 그리지 않기’를 표방하는 전복적 과정을 담았다. 일명 ‘깜지 활동’이다. 무언가를 그려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서 탈피해서 종이와 연필을 그리기의 도구 이상으로 경험해 보기 위함이다. 단지 까맣게 칠하는 활동에서도 아이들의 개성과 창의력이 발휘되는 순간들이 경이로움을 전한다.
‘Ⅲ부. 매체로부터’에서는 미술이 물질성을 가진다는 점에 천착한다. 아무런 주제도 제시하지 않고 그저 재료만 제공했을 때 미술 활동은 의식적이기 전에 감각적인 활동이 된다. 새로운 재료에 자극을 받아 창의성과 상상력을 분출하는 아이들을 보며 저자는 색다른 재료와 매체를 제공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게 된다고 고백한다.
미술은 기본적으로 자기표현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그것은 배워야 가능하다. ‘Ⅵ부. 자기표현으로서 미술과 지식적 차원’에서 저자는 표현의 즐거움을 발견하고 빠져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뒷받침과 지지가 필요하고 교사라는 든든한 지원자와 교실이라는 안전한 공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Ⅴ부. 이미지를 가로질러’에서는 이미지를 놀이의 대상으로 삼아 유쾌하게 비튼다. 이미지는 한번 생성되는 순간 하나의 세계를 형성할 정도로 힘이 세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콜라주 기법을 활용하거나 전통 미술의 무대를 현재로 옮겨 오는 등의 기법으로 아이들은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에서 해방되어 가볍고 경쾌한 활동을 이어 간다.
‘Ⅵ. 끊임없는 교사의 역할’에서는 미술 교과가 가진 특성과 교사의 역할을 다룬다. 아동의 미술에서 교사의 역할을 무의미한 것으로 보는 경향에 대해 저자는 의문을 표하며 아이들은 이미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내버려 둔다고 해서 독창성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에 교사의 역할이 있다. 다른 교과들처럼 정해진 지식이나 규범 안에 있지 않고 자기표현을 기반으로 하는 미술 교과의 독보적 측면도 주목해야 한다.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정해진 답이 없는 미술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실험과 실패를 시도하며 새로운 역동을 만들어 낸다.
미술과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
“결국 교육은 아이의 성장을 도모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미술교육의 목표 역시 아이가 미술을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미술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이러한 관점은 책에서 “아이들의 손의 움직임을 따뜻한 시선으로 주목하는” 데서 드러난다. 조금 어설픈 그림에도 저자는 “결코 못 그린 것이 아니라 분명 자기 나름의 성취를 해내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는 지금 새로운 세계를 그려 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미술이 자기 존재의 고유함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데서 중요한 표현 수단 하나를 더 갖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술을 통해 자신을 마음껏 발산하고 성장하며 빛나는 교육적 장면들을 만들어 준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책 속에서
결국 교육은 아이의 성장을 도모하는 일이다. 미술교육의 목표 역시 아이가 미술을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미술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행운을 얻었다. 아이들 또한 즐거움으로 그것에 화답했다. (……)
그간의 미술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미술’에 방점을 찍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혹은 어떻게 배우는가만 중시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나는 그 방점을 ‘아이’에게로 옮겨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술이 자기표현을 기반으로 한다고 할 때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미술은 또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창이 될 수 있다. 감출 수 없는 자기표현이 미술을 통해 드러난다고 할 때 아이의 삶과 함께해야 하는 어른들에게 좋은 참조점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수년간의 나의 여정은 그렇게 미술과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미술교육의 의미와 역할을 짚어 오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책을 펴내며〉 가운데
그림 1-12의 경우는 아주 흥미로운데 누가 봐도 뱀을 그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뱀을 그리려 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몸을 이루는 형태가 일반적인 뱀의 모습과는 다르게 자유분방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형태를 그려 놓고 나서 언뜻 뱀을 떠올렸고 머리 부분 같은 곳에 눈과 혀를 그려 넣어 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래쪽의 그림은 더욱 흥미롭다. 머리 모양을 찾아낸 부분의 형태가 바깥으로 열려 있다. 그럼에도 아이는 그것에서 머리 모양을 보았고 눈과 혀를 그려 넣어 뱀을 만들어 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매우 역동적인 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는 일은 어쩌면 발견하는 일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 발견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 Ⅰ부. 그리기, 〈3. 이름 붙이기〉 가운데, 본문 39쪽
일반적으로 ‘보고 그리기’에서 사람들은 ‘그리기’에 방점을 찍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하면 잘 그릴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가진다. 그렇지만 ‘보고 그리기’에서 핵심은 ‘보고’에 있다. 그 실재를 보는 일이다. 순간순간 그리는 사람과 사물 간의 직접 만남이 성립된다. 아이들은 알고 있는 이미지와 실재가 가진 차이를 발견하게 되며 그 낯설음을 마주해야 한다. 이때 아이들은 당황한다. “헛, 이상한데?” 그러고는 그것을 어찌 해야 할지 막막해한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이상하게 보이면 이상하게 그리라고 한다.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보이는 것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말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결국 알고 있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에서 절충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식의 갈등을 반복하면서 아이들은 아는 것 밖의 세계로 한 발 한 발 다가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보고 그리기’는 세상의 대상들을 온전히 자기 눈으로 찬찬히 마주하고 자신 안에 담아내는 과정인 셈이다. 성장기 어린이가 ‘보고 그리기’에 몰입해 봐야 하는 이유이다.
— Ⅰ부. 그리기, 〈9. ‘보고 그리기’란 무엇일까〉 가운데, 본문 88~89쪽
아이들에게 ‘잘 그리는가, 못 그리는가’ 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일이다. 아이들 사이에서 ‘누구는 잘 그린다’, ‘누구는 못 그린다’라는 비교는 끊임없이 벌어진다. 우월감과 열등감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좌절하고 부끄러워하여 그리기를 회피하게 되기도 한다. 실제로 어떤 아이에게 쉬운 일이 어떤 아이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된다. 관찰력이나 표현력에서 타고난 차이가 있으며 그것은 그림으로 드러난다. 나의 경우 수업이 끝나면 그림들을 모아 놓고 함께 비평하는 시간을 가졌다. 3학년부터 그랬는데, 어떤 아이는 그림을 보여 주지 않으려 하고, 보여 주더라도 숨어 버려서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리가 계속되자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이때 교사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교사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세심히 관찰하여 어디서 어려움을 겪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알맞은 조언을 할 때 아이가 손톱만큼이라도 성취한 부분을 발견하여 격려해야 한다.
— Ⅰ부. 그리기, 〈10. 에필로그 — 잘 그리는 아이〉 가운데, 본문 96~97쪽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그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는 말에 처음엔 아이들이 의아해했다. 어떤 아이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활동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미술’ 하면 무언가를 그려야 한다는 고정 관념으로부터 아이들이 벗어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종이와 연필을 그리기의 도구 이상으로 경험해 보기 위함이었다. 종이가 까매지도록 연필을 문지를 때, 아이들은 그리기 도구 이상, 그 자체로 물건 혹은 물질로서 연필과 종이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문지르는 소리와 함께 그 촉감과 질감을 충분히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연필의 색 또한 단지 까만 것 이상의 다양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 Ⅱ부. 안 그리기, 〈1. 깜지 활동으로부터〉 가운데, 본문 102~103쪽
미술이라는 분야가 가진 핵심적인 측면 중의 하나는 물질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물건을 활용하여 표현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에 사용되는 물건은 전통적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위한 재료 혹은 수단 정도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 이전에 재료 자체가 표현성을 가진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
‘무엇을 표현하자’라고 주제를 제시하고 활동을 시작하면 아이들은 그 표현 목표에 따라 의지적으로 재료를 다루기 시작하지만, 반대로 아무런 주제를 제시하지 않고 재료만 제공하면 아이들은 재료가 가진 물질적 특성에 반응하며 충동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때 미술 활동은 의식적이기 전에 감각적인 활동이 된다. 그럴 때 아이들은 감각성에 기반한 자기표현의 과정으로 몰입할 수 있다.
— Ⅲ부. 매체로부터, 〈1. 물질성으로부터〉 가운데, 본문 132~135쪽
스스로 가진 심미성을 느끼며 거기에서 성취감을 가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 내면서 얻는 성취감과 스스로 발견하고 수행하며 느끼는 성취감은 다른 차원일 수밖에 없다. 후자에서는 자기 동력과 자기 목적이 발생한다. 쓸모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아름다운 것이 된다. 거기에 자신 스스로가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은 말할 수 없는 것이리라. 미술을 하는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배워야 한다. 물론 배우지 않고도 그럴 수 있는 아이가 있을 텐데 매우 소수일 것이다. (……) 교사라는 튼튼한 지원자와 교실이라는 안전한 공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 Ⅳ부. 자기표현으로서 미술과 지식적 차원, 〈1. 자기표현이란 무엇인가?〉 가운데, 본문 191쪽
어떤 주어진 과제가 있더라도 교사는 이와 같이 아이의 활동이 가진 양면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아이가 성장의 노정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아이의 편에 서서 무엇을 격려하고 고무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개입하고 도움을 주어야 할지 또한 판단해야 한다. 아이는 지금 새로운 세계를 그려 내는 중이기 때문이다.
— Ⅳ부. 자기표현으로서 미술과 지식적 차원, 〈6. 에필로그 — 보고 그리기에서의 자기표현〉 가운데, 본문 237쪽
이미지의 힘은 세다. 한번 생산되는 순간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그래서 자신이 그린 그림 또한 아무리 자유롭게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세계로 자리 잡게 된다. 익숙한 방식으로 그림을 반복하게 되는 이유이다. 상업적으로 생산되어 배포된 이미지들 또한 아이들의 머릿속에 들어와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상상하여 그리기 혹은 자유롭게 그리기를 했을 때, 대체로 스스로 상상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그리지도 않는다. (……)
나는 그래서 이미지 또한 놀이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위해 생산된 이미지를 잘라 다시 분배하고 결합하는 놀이 시간을 가지고자 했다. 물론 그러한 재분배와 재배치 과정에서도 아이들은 익숙한 메커니즘을 따를 가능성이 크지만, 한번 부여했던 질서를 바꿔 보는 것은 그것을 좀 더 융통성 있게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를 위해 콜라주 기법을 활용했다.
— Ⅴ부. 이미지를 가로질러, 〈1. 자유 표현으로부터〉 가운데, 본문 240~241쪽
그런데 그리기를 무서워하는 진짜 이유는 잘 그린다는 그 품평의 기준이 이미 사회 문화적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데 있다. 잘 그린다고 하는 것에 개인의 재능의 차원이 있더라도 그것을 품평하는 기준과 가치는 전혀 개인적이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는 개개인이 가진 ‘독자성’ 혹은 ‘고유성’이 설 자리가 없다. 그렇게 ‘자기표현’은 배제되고 억압되면서 성장하게 된다. 그것은 이미 아이들에게 주어져 있는 조건이다.
다시 치젝으로 돌아가서 말한다면, ‘어린이 속에 있는 독자적인 것을 자유롭게 활동시키’기 위해서는 교사는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오히려 더 많은 조력과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이다. 비교감 속에서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스스로 해내는 것을 든든하게 지지해 주어야 한다. 그것은 아주 부단한 과정이다.
— Ⅵ. 끊임없는 교사의 역할, 〈1. 자유롭지 않은 아이들〉 가운데, 본문 286~287쪽
미술 표현은 이렇게 아이들의 모습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에서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 거기에는 잘하고 못하고를 넘어서는 아이의 정서적, 심리적 차원의 또 다른 배경이 있다. 미술은 다른 교과들처럼 정해진 지식이나 규범 안에 있지 않고 자기표현을 기반으로 하는 특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담아내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미술 표현의 힘일 것이다. 아이의 내면을 표현으로 녹여 내니 말이다. 미술 교사는 아이들의 그런 면모와 함께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 Ⅵ. 끊임없는 교사의 역할, 〈3. 발달과 성장〉 가운데, 본문 305쪽
다른 시간에는 통제되거나 금지되어야 할 행동도 표현의 범위 안에서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학교 물건을 파손하는 것과 미술 재료를 파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미술 시간에는 무엇을 망가트릴 수도 있고 엉뚱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그것이 재료인 이상, 그것을 다루는 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표현 활동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기표현을 실험하고 탐구할 수 있다. 활동의 과정에서 교실을 어지럽히는 것도 허용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 Ⅵ부. 끊임없는 교사의 역할, 〈5. 교실과 수업이라는 가상 공간〉 가운데, 본문 325쪽
학습의 과정과 결과가 아이들의 ‘표현 활동’이라는 것이 미술교육이 가진 독보적인 특성이다. 그리고 그 표현은 순전히 아이들의 창조적인 활동을 그 내용으로 한다. 때문에 그것은 교사에 의해 결코 가르쳐지지 않는다. 교사는 그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할 수는 있지만, 그 표현의 내용을 제시할 수는 없다. 순전히 아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에 ‘자기표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결국 표현은 아이들의 몫이 되고, 아이들의 표현 욕구를 자극하고 촉구할 수 있는 재료를 제시하고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일이 교사의 몫이 된다. 표현이 미술 교과의 학습 내용이라면, 학습은 전적으로 아이들의 몫이 되고, 교사는 그것을 지원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미술 교과가 가지는 독보적인 측면이다. 그동안 미술교육이 등한히 여겨 온 미술교육의 핵심이다.
— Ⅵ부. 끊임없는 교사의 역할, 〈6. 미술 교과의 독보적인 성격〉 가운데, 본문 330~331쪽
책의 목차
책을 펴내며 | 나는 왜 이런 책을 쓰게 되었을까
Ⅰ. 그리기
1. 출발
2. 구상적 이미지의 등장
3. 이름 붙이기
4. 이름 붙이지 못하는, 혹은 않는 아이
5. 친구를 따라 하려던 아이
6. 함께하며 크는 아이들
7. 보고 그리기의 시작
8. 본격적으로 보고 그리기
9. ‘보고 그리기’란 무엇일까
10. 에필로그 — 잘 그리는 아이
Ⅱ. 안 그리기
1. 깜지 활동으로부터
2. 깜지 활동의 확장
3. 매체 탐구로서 깜지
4. 에필로그 — 깜지를 고집하는 아이
Ⅲ. 매체로부터
1. 물질성으로부터
2. 물감으로부터
3. 입체적 재료로부터
4. 에필로그 — 찰흙 활동의 또 다른 모습
Ⅳ. 자기표현으로서 미술과 지식적 차원
1. 자기표현이란 무엇인가?
2. 깜지 활동에서 자기표현과 지식적 차원의 개입
3. 물감 활동에서 — 지식적 차원의 두 가지 측면
4. 서예에서 — 지식적 차원과 자기표현
5. 입체 표현에서의 전개
6. 에필로그 — 보고 그리기에서의 자기표현
Ⅴ. 이미지를 가로질러
1. 자유 표현으로부터
2. 인물 그리기로부터
3. 김홍도의 〈씨름도〉 속으로
4. 에필로그 — 공간의 발견
Ⅵ. 끊임없는 교사의 역할
1. 자유롭지 않은 아이들
2. 자기 존재의 표현으로서 미술
3. 발달과 성장
4. 사회적 과정으로
5. 교실과 수업이라는 가상 공간
6. 미술 교과의 독보적인 성격
부록
1. 유치원 과정
2. 화분 그리기 과정
3. 깜지 활동 과정
4. 물감 활동 과정
5. 인물 그리기 과정
6. 서예와 수묵 과정
7. 입체 활동 과정
감사의 글
저자 소개
김인규
30년 가까이 중등학교에서 미술 교사를 지냈다. 젊은 시절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미술 활동을 한 바 있으며 퇴직 후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하면서 집필에 이르게 되었다. 오랜 세월 전국미술교과모임에 몸담으며 동료 교사들과 함께 미술교육 연구를 해 왔다. 발달장애인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미술 활동을 하여 왔고 지금은 작가로서 활동하며 지내고 있다. 중등학교의 미술 교과서(미진사)를 여러 차례 대표 집필하였고, 《시각문화교육 관점에서 쓴 미술교과서》(휴머니스트)의 집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저서로는 《나의 그림은 실제상황이다》(푸른나무), 《화장실에서 놀자》(디딤돌), 《안면도가 우리 학교야》(디딤돌)가 있고,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 : 지형그리기》(문화과학사), 《장소 특정적 미술》(현실문화)의 번역에 참여하였다.